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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29화 (29/200)

29화 현장 지휘

사박, 사박, 사박.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바닥에 깔린 풀들을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아직 사냥 대회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아델라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조용하네요.”

“아직까지는 다들 사냥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어깨에 멘 라이플을 고쳐 잡았다. 아델라인은 그런 알렉스의 곁을 계속 따라갔다.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아델라인의 몸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알렉스에게 질문했다.

“사냥 대회의 점수 측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그러자 알렉스는 주변을 주욱 둘러보며 답했다.

“뭐, 전통 규칙을 계속 준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사냥감을 잡은 사람이 1등이지만, 만약 비슷비슷한 사냥감들을 잡았을 경우에는 잡은 사냥감들의 무게를 달아 측정하지요.”

“그렇군요. 그러면 오늘 같은 경우에는 많이 잡는 사람이 장땡이겠네요?”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면 오늘 같은 경우에는 무슨 사고가 일어나는 거죠? 맹수를 사냥감으로 푸는 것도 아닐 테고.”

그때, 어느 한쪽에서 우렁찬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소리 세 번, 약간의 간격을 두고 두 번 더, 긴 소리 한 번에 짧은 소리 세 번.

높낮이도 길이도 제각각인 소리를 들은 알렉스는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

“벌써 사고가 났군요.”

“벌써요?”

탕! 탕! 탕!

그때, 나팔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델라인은 갑자기 울린 총성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총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라이플을 어깨에 멘 뒤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연필로 기록해 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나팔 소리. 그 나팔 소리를 듣자, 알렉스는 또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 넣은 뒤 연필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상황이 끝났군요. 큰 부상자는 없을 듯합니다.”

“벌써요? 어떤 사고였기에.”

그러자 알렉스는 그가 열심히 적던 수첩을 보여 줬다. 그러나 제대로 무언가를 받치지 않고 쓴 수첩에는 대충 휘갈겨 쓴 약어만이 적혀 있었다.

“…뭔 뜻이에요, 이게?”

그러자 알렉스는 하나하나 집어 가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처음 들려온 신호는 2번 상황 발생. 그러니까, 사냥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는 총격이 발생했고 발생한 뒤에는 상황 종료. 부상자 발생 후송 요청,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알아들은 건 절반 정도밖에 안 되지만,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는 수첩을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다시 라이플을 손에 쥐었다.

“자, 우리는 할 일을 하러 가지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자, 그녀는 한껏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총성이, 그리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냥 대회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알렉스의 곁에 바싹 붙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잠시 아델라인을 바라본 뒤, 그녀에게 말했다.

“무섭습니까?”

“…어디선가 튀어나온 사냥개에게 물릴 수 있다는 상황이 편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자, 조금 서둘러 보지요, 곧 쉴 수 있을 겁니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살짝 재촉했다. 알렉스가 많이 배려했음에도, 아델라인은 빠르게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알렉스의 등판을 보며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애써 옮겼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알렉스는 저렇게 짐을 바리바리 들고도 숨 한 번 거칠어지지 않는 거야. 진짜 같은 사람인 건가?

그때, 아델라인의 귀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간신히 숨을 몰아쉰 뒤 허리를 펴자, 조그만 개울가가 펼쳐져 있었다. 그 개울가의 널찍한 바위 위에 크로스백을 올려놓은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쉬었다가 움직이지요.”

“좋아요!”

아델라인이 거부할 리가 없었다. 이미 몸은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얼른 바위 위에 오른 뒤, 그대로 평평한 바위에 누워 버렸다.

“하아…….”

새파란 하늘에 조각조각 떠다니는 구름. 하늘을 올려다보자 모든 근심이 잊히는 듯했다. 아델라인은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른 다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사이 알렉스는 배낭에서 보자기에 싸인 것들을 꺼내고 있었다.

“나이아가 이거 가져가라 하더군요. 도시락이라고.”

“역시 나이아네요.”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찬합들을 열어 봤다. 공작가의 요리사가 신경 써서 준비한 샌드위치와 간식들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는걸 보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둘이 먹어도 남겠는데요? 같이 먹어요.”

“고마워요.”

알렉스도 라이플을 잠시 내려놓은 뒤, 수통으로 목을 축이고 아델라인의 옆에 앉았다.

갑자기 가까워진 그에, 샌드위치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있던 아델라인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렉스는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알렉스가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만족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델라인도 덩달아 미소를 띠었다.

샌드위치를 한 조각씩 먹고, 목이 막힐 때쯤 알렉스가 수건으로 꽁꽁 싸매진 물병 하나와 양철 컵 두 개를 꺼내 물병에 담긴 액체를 따랐다. 아델라인이 양철 컵을 잡자, 그녀의 손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다.

나이아가 챙겨 준 건 냉차였다. 아델라인은 냉차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자,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떠올랐다.

“좋네요… 어쩐지 나른하기도 하고.”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별일 없는 한 여기에서 더 움직일 일은 없으니 편히 쉬셔도 됩니다.”

“그래요? 여기서 계속 기다리는 건가요?”

아델라인은 눈을 반짝이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더 이상 허덕이며 걷지 않아도 된다고? 진짜? 라고 말하는듯한 아델라인의 눈빛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움직여야겠지만.”

알렉스는 긍정으로 말했건만, 아델라인은 부정으로 이해했다.

“뭐야… 결국 움직여야 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기도 하죠.”

알렉스는 청포도를 한 알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인은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매번 움찔거렸지만, 반대로 알렉스의 모습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대체 이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옆에서 대포라도 쏴야 눈 한 번 깜짝, 하려나.

그때, 아델라인의 시선을 느낀 알렉스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

그때, 아델라인의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방법이라면 알렉스를 놀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델라인은 기회를 노리기 위해 일단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델라인을 빤히 바라봤다.

“정말로?”

“정말로.”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알렉스를 안심시켰다. 그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계획이 세워졌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로 무방비하게 노출된 알렉스의 뺨을 바라봤다. 여름이라 살짝 달아올라 붉어진 그의 뺨은 어떤 촉감일까.

아델라인은 조심스레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일념만으로 아델라인은 더더욱 가까이 그에게 붙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화들짝 놀라며 알렉스와 거리를 벌렸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베르티에가 부하 한 명과 함께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베르티에의 손에는 라이플이, 그 부하의 손에는 지금껏 잡은 사냥감들이 들려 있었다.

“두 분은 여기 계셨군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영애?”

베르티에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자, 아델라인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잘 들어갔습니다. 사냥은 잘하고 계신가요?”

“뭐,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 아쉽군요.”

베르티에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위와 실력을 겨뤄 볼 기회가 흔치 않은데.”

그러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기회 아닙니까. 우승에 도전해 보시지요.”

“상대할만한 사람들이 없는데 내가 뭐 하러 전력을 다하나.”

베르티에는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알렉스의 표정이 바뀌며,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바쁘시지 않습니까? 도약병 출신이 사냥 대회 입상도 못 하면 그것도 꽤나 민망할 텐데 말입니다.”

알렉스는 양철 컵에 담긴 냉차를 홀짝이며 베르티에를 노려봤다. 그러자 베르티에는 보란 듯이 아델라인의 옆에 앉았다.

“약간의 휴식은 기량 보존에 큰 도움이 되지.”

베르티에가 애써 태연하게 대꾸하자, 알렉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지난번을 떠올려 보면.”

알렉스가 던진 한마디 말에, 여유로워 보이던 베르티에의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녹색과 파란색. 두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때, 뒤에서 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델라인은 둘 사이의 신경전에 위축되어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홱 돌렸다.

그때, 그들의 귀에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

뒤를 돌아보자, 베르티에가 지나온 수풀을 황소만 한 늑대가 헤치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알렉스가 지도를 꺼내 베르티에에게 던지며 말했다.

“두 사람은 어서 아델라인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라이플을 쥐고 부싯돌을 철컥, 당겼다. 그러자 베르티에는 지도를 낚아챈 뒤, 부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하는 들고 있던 사냥감들을 내려놓은 뒤, 아델라인을 둘러업었다.

“뭐, 뭐예요 지금!”

아직 늑대를 보지 못한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들리자, 반사적으로 저항하며 버둥댔다. 그러나 그녀의 항의는 무시해 버린 두 사람은 곧장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 허리춤에서 총검을 뽑아 든 알렉스는 자신의 왼손 손등을 그었다. 그의 손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자, 아델라인과 베르티에 일행을 바라보던 늑대는 다시 알렉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 네 상대는 나다.”

철크덕!

알렉스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라이플에 총검을 꽂았다. 그다음, 곧바로 아델라인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었다. 그러자 늑대도 비릿한 피 냄새를 따라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알렉스를 쫓아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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