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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28화 (28/200)

28화 사냥 대회

알렉스는 광장에 서서 시계탑을 바라봤다. 9시에 만나기로 했기에, 그는 10분 전부터 길쭉한 가방을 든 채 광장의 동상 앞에 서 있었다. 붉은색 제복이라는 눈에 띄는 옷차림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번씩 알렉스를 바라봤다.

설마 이번에도 늦는 건가? 알렉스는 살짝 초조한 얼굴로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오늘만큼은 제때 도착해야 했다.

현장에서 사냥 대회의 경비와 통제를 맡을 휘태커 경감과 의논을 마치고, 실제로 사냥 대회에 참가하며 대회 중의 돌발상황을 감시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공작가의 문장을 단 마차가 갑자기 알렉스의 앞으로 달려와 멈춰 섰다.

덜컥. 마차의 창문이 열리고, 아델라인이 그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어서 타요!”

알렉스는 마부가 마부석에서 내리기도 전에 직접 마차 문을 열고 마차 안으로 올라탔다. 알렉스는 한쪽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델라인과 나이아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좀만 더 늦었으면 말이라도 한 필 빌려서 가려고 했는데, 다행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옆자리에 가방을 기대어 놓자, 아델라인은 가방을 바라보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그건 뭐예요?”

그러자 알렉스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답했다.

“장비는 챙겨 가야 하니까.”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을 응시했다. 마치 자신을 천천히 뜯어보는 듯한 그 눈빛에, 아델라인은 살짝 긴장하고 말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시선을 회피하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아니. 그냥. 어제 잘 들어갔나 싶어서.”

아델라인이 오늘 입은 옷은 평소 입던 옷과는 달랐다. 그녀는 수렵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 복장을 보곤 한숨을 살짝 쉬었다.

수렵복이라면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 활동성과 저시인성. 쉽게 말하자면 움직이기 쉽고, 눈에 안 띄는 게 우선이었다. 알렉스를 비롯한 라이플맨들의 제복이 진녹색인 이유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옷은 그런 수렵복의 조건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다시피 한 옷은 분명 움직임에 방해가 될 것이고, 수렵복에 달린 화려한 장식이나 무늬는 당연히 눈에 띌 것이었다.

그래. 자신은 그게 못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바라본 것이다. 저런 엉터리 수렵복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알렉스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며 자기 암시를 했다. 그때, 아델라인이 알렉스에게 물었다.

“잘 어울리나요?”

움찔. 정곡을 찔려 버린 알렉스는 살짝 귀를 붉히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나 잠시 뒤, 알렉스는 다시 시선을 아델라인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그걸 수렵복이라고 맞춘 겁니까. 너무 몸에 딱 맞춰져 있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냥을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은 갖춰야지요. 그리고…….”

알렉스는 멈추지 않고 아델라인의 옷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아델라인은 그의 말을 들으며 점점 위축되는 걸 느꼈다. 살짝 억울하기까지 했다.

아니. 디자이너가 이렇게 하래서 했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델라인의 귀에 날 선 말들이 가득 들어찰 때 즈음, 알렉스의 말이 잠시 끊겼다. 잠시 한숨을 내쉰 그가 창문을 바라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울리기는 합니다.”

알렉스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걸 본 아델라인 역시 알렉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살짝 당황하며 볼을 붉히고 아래를 바라봤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델라인이었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띠었다.

“고마워요. 칭찬해 줘서.”

아델라인이 미소를 짓는 걸 곁눈질한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오늘은 절대 술 마시지 마십시오. 사냥 대회에서는 매해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절대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 다니십시오.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해 사상자가 나왔다니,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때, 어느새 도심을 벗어난 마차가 속도를 높여 포장도로를 달려 나갔다. 옆에는 여러 대의 마차가 같은 방향을 달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마차 위에 사냥개가 있는 케이지를 한껏 실은 마차도 있었다.

“뭔가 본격적인데요. 사냥개도 데려가는 걸 보면.”

“황실에서 주최하는 사냥 대회이니, 실력을 뽐내고 싶은 사람들도 오기 마련이지요. 1등에게 주어지는 상품도 대단하고.”

“상품이 뭔데요?”

그러자 알렉스는 곧바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올해는… 금장 장식이 된 플린트락 리볼버 라이플과 피스톨 각각 한정씩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체화 시켜 봤다.

한참을 눈을 감고 고민하던 아델라인은 끝내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

리볼버.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총. 물론 알렉스가 쓰는 총을 보면 서부극 영화에서 나오는 리볼버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알렉스를 비롯한 라이플맨들이 쓰는 라이플과 달리 여러 발을 쏠 수 있다는 건 차이가 없을 것이었다.

알렉스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욕심이 섞여 있었다. 물론 그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체념이 조금 더 많이 섞여 있긴 했지만.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한번 도전해 보는 건 어때요? 알렉스라면 분명히 1등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 임무는 사냥 대회를 즐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함부로 제 본분을 망각하면 안 되겠지요.”

그때, 마차가 멈춰 섰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인 사냥터는 복작거리고 있었다. 마부가 계단을 내리고 문을 열자, 알렉스는 가방을 챙긴 뒤 마차에서 내려 아델라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럼, 가실까요.”

“기꺼이.”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나이아까지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는 마차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마차를 몰며 멀어져 갔다.

주변에서는 사교를 위해 마련된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과 사냥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이 나뉘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 인파들을 헤치고 휘태커 경감이 다가왔다. 어제 알현장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그의 눈가는 판다처럼 짙은 다크서클이 끼어 있었다.

“매닝햄 대위! 늦지 않게 와 줬군.”

사람들 보는 앞이라고 격식을 차린 말투로 알렉스를 부른 그는, 알렉스의 옆에 있는 아델라인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

“이쪽의 영애분은?”

“제 파트너입니다. 아델라인, 이쪽은 제3 수도경비대장 휘태커 경감.”

그러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로피츠 공작가의 아델라인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러자 뜻밖의 상황에 벙쪄 있던 휘태커는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제3 수도경비대의 애런 휘태커 경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다음, 휘태커는 알렉스의 어깨를 꽉 쥐고 끌어당겨 팔을 어깨에 걸친 뒤, 그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구했다는 파트너가 저 영애였냐?!”

휘태커의 목소리에 섞인 당혹감을 느낀 알렉스였지만, 알렉스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대안을 쉽사리 찾을 수도 없었고.

“뭐, 주변에서 찾다 보니.”

“‘주변에서 찾다 보니’는 빌어먹을,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그럼 뭐, 황궁을 쉽사리 드나들 수 있는 인물 중에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그리고 이해관계가 때마침 맞아떨어지는 인물을 구하기가 쉬운 줄 아십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미친놈아……!”

휘태커는 어깨너머로 아델라인을 흘긋 바라봤다. 아델라인은 갑자기 알렉스를 끌고 가 쑥덕거리는 휘태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진무구한 눈인 건지, 아니면 그조차도 위장인 건지. 휘태커로서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한숨만 하아아아― 내쉬었다.

“…조심해라.”

“당연히 조심해야지요.”

알렉스는 휘태커의 팔을 들어낸 뒤, 아델라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반쯤 정신을 놓은 휘태커를 뒤로 하며, 알렉스는 아델라인과 나이아를 이끌고 사냥터로 향했다. 조금 걸어가자, 이미 전날부터 마련해 둔 공간에 세워진 공작가의 천막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진녹색 제복을 입은 소대장 하나가 알렉스를 보고 경례를 했다.

“충성.”

그러자 알렉스는 경례를 받은 뒤 곧바로 질문했다.

“충성. 애들 배치는?”

“끝났습니다. 다만 너무 사람이 부족해 2인 1조로 분산시켜도 조별 간격이 너무 넓습니다.”

알렉스는 그 소대장이 건넨 지도를 받은 뒤, 말했다.

“어쩔 수 있나.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인 것을. 아무튼, 이거 보고 동선 수립할게.”

알렉스가 지도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하자, 소대장은 경례한 뒤 다시 사냥터로 향했다.

“그 지도는 뭐예요?”

아델라인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며 알렉스에게 묻자, 알렉스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며 답했다.

“제 대원들이 배치되어 있는 위치입니다. 이걸 반영해 동선을 짤 겁니다. 제가 준비할 동안 읽어 두고 계십시오.”

알렉스는 테이블에 가방과 지도를 올려놓은 뒤, 가방을 열고 탄띠와 탄약낭을 꺼내 몸에 착용했다. 그런 다음, 가방에서 미리 싸 온 의약품과 탄약포들을 꺼냈다. 아델라인은 지도를 펼쳐 보면서도 알렉스가 장비를 챙기는 모습을 바라봤다.

기름 먹인 천으로 감싼 탄약포를 허리띠의 탄약낭에 차곡차곡 넣고, 다른 주머니에는 의약품들을 넣는 단순한 행동에서도 정성이 묻어나고 있었다.

의사들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몇 분 동안 계속해서 손을 씻는다고 했었나? 아델라인은 알렉스가 장비를 챙기고 점검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몇 번이고 정비했을 게 분명한 총기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고, 또다시 점검하는 모습이 의사들이 깨끗한 손을 계속해서 씻는 모습과 겹쳐 보였다.

철컥. 철컥. 챠르르르. 탁탁.

피스톨과 라이플에 화약이 들이부어지고 납탄이 들어갔다. 탄약을 재어 넣는 알렉스의 모습은 신중하다 못해 조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준비를, 아마도 그는 끊임없이 반복해 왔던 것이겠지.

세이드를 잡기 위해 야밤에 아스테리오스의 근거지를 습격했을 때도, 황후의 암살을 막기 위해 먼저 황궁으로 돌아갔을 때도.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아델라인은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별일 없겠죠?”

그러자 알렉스는 꽂을대로 화약을 다지던 걸 잠시 멈추고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잠시 아델라인을 응시한 알렉스는 다시 그의 라이플로 시선을 옮기며 꽂을대로 탄약을 다졌다.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알렉스다운 대답. 비록 확신 따위는 없는 답이었지만, 오히려 아델라인은 그 답에 약간의 안도를 느꼈다. 일부러 꾸며 낸 답이 아니어서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요. 그거면 충분해요, 알렉스.”

아델라인은 지도를 착! 접은 뒤 알렉스에게 건넸다.

“저도 준비되었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지도를 받아들고 크로스백을 맨 뒤 새로 채운 물통을 허리띠에 매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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