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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8화 (18/200)

18화 열병 (1)

일주일이 지났다.

아델라인은 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집사의 가르침과 나이아의 수업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워 나갔다. 집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무적인 가르침을 주었고, 나이아는 그걸 왜 배워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할 일이 많네…….”

가문의 방계를 돌보고 영지를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가문의 자산으로 투자와 회수를 반복해 돈을 불리며, 마지막으로…….

“올해까지는 로피츠 공작님께서 의회의 의장이세요. 당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중도적인 입장을 내비치신 분이니까 연임될 가능성도 있고요. 아직 꽤 남았지만, 이 부분도 공부하셔야 해요.”

“중도적인 입장?”

“뭐,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귀족 의원이 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런가…….”

“자, 그럼 수업을 계속하죠. 의회의…….”

그렇게 말하며 나이아가 칠판으로 몸을 돌리자, 아델라인은 푹푹 한숨을 쉬면서도 펜을 잡고 필기를 시작했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나이아가 말하자, 문이 열리고 한 시녀가 들어와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라이플여단 파견 중대 중대장 알렉스 매닝햄 대위가 공녀님을 만나고 싶다 하셨습니다. 사정 청취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시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응접실로 모셔. 나도 곧 갈게.”

“알겠습니다, 공녀님.”

시녀가 나가자, 아델라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수업은 중지해야겠네. 내 방에 가면 매닝햄 대위의 코트가 있는데 그것 좀 챙겨와 줄 수 있어? 난 먼저 응접실로 갈게.”

“알겠습니다.”

나이아는 코트를 가지러 아델라인의 방으로 향했다. 아델라인은 필기하던 노트를 덮은 뒤, 응접실로 향했다.

그녀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제복을 입은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알렉스가 항상 입고 다니던 녹색 제복이 아니었지만, 특유의 검은 머리나 뒷모습만으로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아델라인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며 안부를 물었다.

“매닝햄 대위, 일주일 만이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러나 아델라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천천히 그의 뒤로 다가갔다.

“……!”

그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에는 찻잔이 달랑달랑 걸려 있었고, 그 찻잔에서 쏟아진 홍차가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어깨를 살짝 흔들어 봤다. 그러자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쿠당탕.

“꺄악!”

바닥에 쓰러진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걸 보고 터져 나온 아델라인의 비명 때문이었을까.

다행히도 알렉스는 잠에서 깨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잠들어 버렸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에게 외쳤다.

“놀랐잖… 놀랐잖아요!”

그러나 그녀의 심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알렉스는 눈을 비비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저도 모르게 자 버린 모양입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알렉스의 눈에는 실핏줄이 튀어나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눈가는 거뭇거뭇했다.

“일주일 동안 얼마나 잔 거예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태연하게 답했다.

“매일 잤습니다, 매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매일 잤다는 말을 믿기에는 그의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였다.

“6시간 이상 잔 날은요?”

“…….”

방금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그의 말문이 막혔다. 아델라인이 그를 바라보자, 알렉스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목을 잡았다.

“따라와요.”

그러자 자신보다 덩치가 큰 그는 순순히 그녀에게 잡힌 채로 따라갔다. 알렉스가 자신을 따라오는 걸 보며, 아델라인이 물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들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지만.”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답했다.

“의회와 군부에서 합동조사단을 결성해 파견했습니다. 황태자의 친위대에 대한 전반적인 감사와 이번 사태에 대한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속 도운 건가요?”

“파견 중대는 사건의 핵심에 있었으니까,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지요. 뭐, 이 일도 오늘로 공녀님의 진술을 들으면 끝이지만.”

어느새 그들은 건물을 나와 정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소는 딱히 상관이 없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바람이라도 쐬면서 해요. 많이 힘드실 텐데.”

아델라인은 정원의 한 벤치의 가장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몇 번이고 정원을 산책할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기에 너무 좋은 자리여서 자주 찾는 곳이었다.

“자, 여기 앉아요.”

그녀가 자신의 옆을 가리키며 말하자, 알렉스는 잠시 주춤하다가 반대쪽 가장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자, 그러면 간략하게 질문 몇 가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네.”

아델라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매닝햄은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어쩌다가 2층에 계시게 되었죠?”

“무도회를 즐기다가 바람을 쐬러 갔습니다.”

“좋습니다. 2층에서 어떤 사내를 만났을 텐데,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델라인은 그거 당신 부하 아니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습니다.”

그는 수첩에 몇 마디를 끄적인 뒤, 그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분명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 안 그런가요?”

“…질문하면, 대답해 주나요?”

그러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려 줄 수 있는 건 알려 드려야죠. 이번 일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인데.”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가 내민 손을 황후가 쳐내는 장면. 대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꾸 질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함부로 질문하기는 힘들었다. 아직은.

“…스워포드 상병은 어떻게 안에 있었던 거예요? 초대장 위조?”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진짜 초대장 받아서 들어간 겁니다. 물론 자신의 앞으로 온 건 아니지만.”

그러자 아델라인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요? 분명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는데…….”

“나중에 직접 물어보십쇼, 제가 말하는 건 조금 그러니까.”

알렉스가 나른한 목소리로 답했다. 점점 그가 조는 듯 마는 듯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제복도 멋지네요, 평소에는 그런 제복 안 입는 거예요?”

평소에 입던 진녹색 제복 대신 붉은 바탕에 여러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달려 있으니 꽤 멋있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자신의 가슴에 달려 있는 훈장 하나를 슬쩍 들어 보인 다음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아, 이거 말입니까. 그냥… 옷이 없어서 입은 겁니다.”

“꾸미고 나온 건 아니고요?”

아델라인이 툭 던지듯 묻자, 알렉스는 눈을 번뜩 뜨더니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평소 목소리에 힘은 넣을지언정 언성은 높아지지 않았던 알렉스가 소리치자, 아델라인도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알렉스도 자신의 행동이 이상했다는 걸 알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닌데.”

그의 귀가 살짝 붉게 물들었다. 놀림당했다고 생각한 걸까? 아델라인은 살짝 미안함을 느끼며 조금 옆으로 다가가 그를 향해 말했다.

“알아요, 알아. 바빴으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녀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귀는 원래 색깔로 반쯤 돌아왔지만, 아직 얼굴 전체에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알렉스의 눈을 바라보자, 그의 눈이 자꾸 초점을 잃었다가 되찾는 게 보였다. 아델라인은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알렉스의 반응은 한 박자 느렸다.

“…지금 무슨.”

알렉스가 그녀의 손을 이마에서 치우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이마 위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펄펄 끓는데요?!”

그러나 알렉스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냥 피곤해서… 피곤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몸은 빠르게 처지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그들을 배려해 자리를 피해 준 건지, 정원에는 오직 둘밖에 없었다.

결국, 아델라인은 그의 팔을 어깨에 걸쳤다.

“다리에는 힘 줄 수 있죠?”

“다칩니다, 그러다가…….”

“다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꿈쩍도 안 했지만, 이내 그의 몸이 아델라인의 뜻대로 가눠졌다.

“…그러면, 조금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래요, 맘대로 해요.”

그렇게 그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고 아직 저택은 저 멀리 있었지만, 벌써부터 아델라인의 몸은 지쳐 갔다.

만약 상태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알렉스가 의식을 잃는다면, 여기에 꼼짝없이 발이 묶일 것이었다.

“이봐요, 매닝햄… 아니, 알렉스!”

아직 자신의 이름에 반응할 수는 있는지,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부름에 답했다.

“네…….”

“뭐든지 알려 주겠다고 했죠!”

“그렇죠…….”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그러자 알렉스는 눈이 감겨 오는 와중에도 아델라인을 살짝 본 뒤,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궁금하십니까.”

“뭐라도 말 좀 해 봐요, 의식 잃은 사람 짊어지고 다닐 정도로 힘이 넘쳐나진 않으니까!”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어느새 턱에 맺혀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크림수프도 좋아하고. 버터를 바른 빵도 좋아하고…….”

뭔가 고급 요리가 나올 것 같았던 그의 입에서 소박한 음식 목록이 나오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소박하네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맞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요?”

“뭐… 비슷하지요. 훈련, 근무, 보고. 가끔 식사 당번이면 요리도 하고.”

점점 더 처지는 알렉스의 발걸음에, 아델라인은 더욱더 그의 대답을 재촉하듯 물었다.

“요리? 뭐 할 줄 알아요?”

“파스타, 수프, 스튜, 가끔 찐빵도 만들고… 미트로프도 만들고…….”

“찐빵이요? 나 찐빵 좋아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자, 알렉스는 피식 웃음을 뱉었다. 공작가에서도 찐빵을 만들겠지만, 그들이 야전에서 오븐 없이 만드는 빵하고는 다를 것이었다.

“그렇게 고급지지는 않은데, 애초에 돈 없어서 과일잼 대신 팥이나 싸구려 고기 넣어서 만듭니다. 그것도 없을 때가 종종 있고.”

“누가 찐빵에 과일을 넣어요?”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동안 사교계에서 적지 않은 소문을 흘리고 다니던 아델라인은 어디로 가고, 지금 제 옆에서 같이 보조를 맞춰 주는 아델라인이 있는 걸까.

“…그건, 그렇네요.”

그때, 저 멀리서 옆구리에 종이로 감싼 보따리를 끼운 나이아가 둘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왔다. 잔뜩 혼탁해진 알렉스의 머리로는 그녀들이 뭐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쪽 팔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 얹힌다는 걸 느끼자, 알렉스의 마음도 약간 바뀌었다.

“고맙…습니다.”

간신히 힘을 짜내어 입을 연 알렉스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의 의식은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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