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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공작 돌아오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8월 6일.
집까지 천천히 말을 몰며 가는 동안 사이먼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다프네가 혼자 말을 타고 가는 데 아무 무리도 없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먼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암말의 고삐를 자신의 말안장에 묶은 뒤, 그는 다프네를 먼저 자신의 말에 태우고 그녀 뒤에 올라타더니 그로스베너 스퀘어를 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는 그녀를 안고 싶었다.
인생에 뭔가 마음을 지탱할 만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분노가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분노 대신 사랑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헤이스팅스 저택에 도달하자 마부가 뛰어나왔고, 사이먼과 다프네는 그에게 말을 맡긴 채 현관을 향해 갔다.
저택 안에 브리저튼 가의 세 남자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도대체 내 집안에서 뭣들 하고 있는 게야?"
사이먼이 물었다.
당장이라도 계단을 뛰어올라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는데 이 호전적인 트리오를 마주해야하다니.
그들은 똑같은 포즈로 서 있었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엉덩이에 양손을 얹고 턱을 내민 채로.
만일 여러 가지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않았던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재수가 좋으면 두 명까지.
하지만 세 명을 상대로는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네가 돌아왔단 말을 들었지."
앤소니가 말했다.
"그래, 돌아왔어."
사이먼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나가게."
"아직은 그럴 수 없습니다."
베네딕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이 중 누굴 먼저 쏴버릴까?"
그녀는 오빠들에게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별로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당신이 다프네를 데리고 살게 해주기 전에 몇 가지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콜린이 말했다.
"뭐라고?"
다프네가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내 아내야!"
사이먼이 외쳤다.
"네 아내이기 전에 우리 여동생이다."
앤소니도 지지 않았다.
"게다가 넌 그 애를 슬프게 만들었어."
"그건 오빠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다프네가 말했다.
"우린 참견해야겠어."
베네딕트가 말했다.
"다프네는 내가 알아서 해."
사이먼이 쏘아붙였다.
"그러니 이젠 내 집에서 썩 꺼져 버리시지."
"오빠들도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제게 조언을 하시죠."
다프네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전에는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꾹 참으시라고요."
"미안하다, 다프."
앤소니가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도 물러서지 않겠어."
"어떤 문제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오빠들에겐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건 오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콜린이 한 걸음 나섰다.
"그가 널 사랑한다는 걸 납득하기 전엔 떠날 수 없어."
다프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사이먼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그것을 보여 주긴 했어도 단 한 번도 그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가 참견쟁이 오빠들 덕분에 그 말을 억지로 입에 올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사이먼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기를 바랐다.
"이러지 마, 콜린 오빠."
그녀가 속삭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애원하듯이 들리는 게 싫었다.
"나 혼자 싸울 수 있게 내버려둬."
"다프......"
"제발."
그녀가 애원했다.
사이먼은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들었다.
"잠시 실례하겠소."
그는 콜린과 앤소니, 베네딕트 모두에게 말했다.
그는 두 사람이 조용히 말할 수 있는 복도 저편으로 다프네를 끌고 갔다.
아예 다른 방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지만, 그녀의 어리석은 오라비들이 따라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오빠들을 대신해 사과드려요."
다프네가 열에 들뜬 어조로 재빠르게 속삭였다.
"정말이지 바보 천치예요. 당신 집에 쳐들어올 권리가 조금도 없는데.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어요. 이런 꼴을 보고 말았으니, 당신이 절대 아이를 원치 않는다 해도 이상할 게......"
사이먼은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첫째, 이건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오. 그리고 당신 오빠들에 관해서라면......뭐, 날 끝없이 짜증스럽게 만들긴 하지만, 당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아주 살짝 숙였는데도 그의 숨결이 피부에 느껴졌다.
"누가 당신 오빠들을 탓할 수 있겠소?"
그가 중얼거렸다.
다프네의 심장이 멈춰 버렸다.
사이먼은 조금 더 다가왔다. 두 사람이 코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
"당신을 사랑하오, 다프."
사이먼이 속삭였다.
다프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것도 열렬히.
"정말이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코끝을 비볐다.
"나도 어쩔 수가 없었지."
그녀가 망설이듯 미소를 지었다.
"그건 별로 로맨틱하지 않군요."
"그게 진실이니까."
사이먼은 어깻짓을 해보였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원치 않았다는 건 그 누구보다 당신이 제일 잘 알겠지. 난 아내를 원치 않았고, 가족을 원치 않았고, 게다가 사랑에 빠지는 건 더욱더 원치 않았어."
그는 다프네의 입술을 자기 입술로 가볍게 쓸었다. 두 사람의 몸을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알아낸 것은......"
그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놀랍게도,"
그리고 또다시 닿았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였지."
다프네는 그의 품안에 녹아들었다.
"오, 사이먼."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사이먼의 입술이 그녀를 찾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키스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숭배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불속에도 뛰어들 수 있었다. 그녀......
여전히 그녀의 세 오라비가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천천히 입술을 떼며 사이먼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앤소니, 베네딕트, 콜린이 그대로 복도에 서 있었다.
앤소니는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베네딕트는 손톱을 들여다보는 척하고 있었으며, 콜린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안은 팔에 힘을 꼭 쥐며 노려보았다.
"자네들 세 명은 아직까지도 뭘 하고 있는 게야?"
당연하게도 세 명 모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가."
사이먼이 으르렁댔다.
"제발 나가 주세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다프네의 목소리는 조금도 공손하지 않았다.
"알았어."
앤소니는 콜린 뒤통수를 때리며 대답했다.
"우리 일은 여기서 끝난 것 같구나, 얘들아."
사이먼은 다프네를 계단 쪽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나가는 길을 자네들도 알고 있을 테지."
그가 어깨 너머로 말했다.
앤소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동생들을 문가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잘됐군."
사이먼이 딱딱하게 말했다.
"우린 지금 이층으로 가려는 참이니까."
"사이먼!"
다프네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알지도 못할텐데, 뭐."
사이먼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도요. 내 오빠들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사이먼과 다프네가 이층에 채 닿기도 전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큰소리로 야단치는 여자의 높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다프네는 목이 조이는 듯 말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아들들을 찾느라 바빴다.
"너희들이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그녀가 사뭇 꾸중하는 투로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고집세고......"
다프네는 어머니의 연설 뒷부분은 듣지 못했다.
사이먼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저 인간이 다프네를 슬프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베네딕트가 항변했다.
"다프네의 오리비로서, 이건 저희의 의무예요......"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믿어 줘야 하잖아?"
바이올렛이 외쳤다.
"게다가 보아하니 그렇게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래."
"그건 전부......"
"만일 그 이유가 너희 세 명이 얼간이 양떼처럼 다프네의 집에 들이닥친 덕분이라고 말할 작정이라면, 난 너희 셋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
세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바이올렛이 얼른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우리가 떠날 시간이 된 것 같구나, 그렇지?"
아들들이 꾸물대자 그녀는 손을 뻗어......
"제발, 어머니!"
콜린이 비명을 질렀다.
"제발, 거긴 안 돼요......"
그녀는 콜린의 귀를 비틀었다.
"귀만은."
그가 음울하게 말을 맺었다.
다프네는 사이먼의 팔을 잡았다.
어찌나 열심히 웃어대는지 자칫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였다.
바이올렛은 아들들을 현관으로 몰고 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행진!"
그리고는 계단 위에 서 있는 사이먼과 다프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런던으로 돌아와서 기쁘네, 헤이스팅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내 손으로 직접 자네를 끌고오려고 했지."
그리고는 바깥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사이먼은 다프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몸은 여전히 웃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방금 당신 어머님 맞지?"
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머님께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면이 많거든요."
"그런 것 같군."
다프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들이 억지를 부려서 그 말을 한 거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무리 당신 오라비들이라고 해도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감정을 말하게 하진 못했을 거요."
그는 고개를 젖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구라도 들이댔으면 모를까."
다프네는 그의 어깨를 찰싹 쳤다.
사이먼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진심이었소."
그는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당신을 사랑하오. 그걸 깨달은 지도 꽤 되지만......"
"괜찮아요."
다프네는 그의 가슴에 뺨을 묻었다.
"설명할 필요 없어요."
"아니, 설명해야겠어."
그가 주장했다.
"난......"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큰 감정과 느낌이 그의 몸 속에서 파도쳤다.
"내가 보여 줄게."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직접 보여 줄 수 있게 해줘."
다프네는 고개를 젖혀 그의 키스를 받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사이먼은 굶주린 듯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리고 그녀가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두려운 듯 어깨를 꼭 움켜쥐었다.
"나와 함께 이층으로 갑시다."
그가 속삭였다.
"지금 함께 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기도 전에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아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층에 도달했을 무렵, 사이먼의 몸은 딱딱하게 경직되어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방을 쓰고 있었소?"
그가 허겁지겁 물었다.
"당신 방이오."
그녀는 그런 질문을 한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는 얼른 두 사람의 방을 향해 움직였다. 방안으로 들어간 뒤 발로 차 문을 닫았다.
"당신을 사랑해."
함께 침대 위로 무너지며 그가 말했다. 일단 한 번 말을 하고 나니 몸 속에서 그 말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듯했다.
그녀에게 꼭 말을 해야만 했다. 그녀가 알기를 바랐다.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가 이해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수천 번 똑같은 말을 해야 한대도 그는 상관없었다.
"사랑해."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드레스를 벗기며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알아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뒤 시선을 맞췄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그녀는 그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그 달콤하고 순수한 키스가 그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는 그녀의 입가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시 한 번 당신을 아프게 한다면, 반드시 날 죽여 주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녀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의 입술이 턱과 귓불이 시작하는 예민한 곳으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내 사지를 잘라 버리시오."
그가 중얼댔다.
"내 팔을 비틀고, 내 발목을 부러뜨려 버리시오."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말아요."
그녀는 그의 턱에 손을 얹어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당신은 날 아프게 하지 않을 거예요."
이 여인에 대한 사랑이 그를 채웠다. 그의 가슴에 흘러 넘쳐 손가락 끝의 감각을 잃게 했다. 그의 숨결을 앗아갔다. 그가 속삭였다.
"가끔은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겁이 날 정도요.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온 세상을 바치리란 거, 당신도 알고 있겠지?"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전부예요."
그녀가 속삭였다.
"온 세상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의 사랑이면 족해요.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부츠를 벗어 주면 더 고맙겠죠."
사이먼은 온 얼굴에 미소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아내는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감정이 복받쳐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에 다다르자 분위기를 바꿔 미소짓게 만든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굴려 거추장스런 부츠를 벗어버렸다.
부츠 한 짝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한 짝은 방 저편으로 날아갔다.
"또 다른 것이 필요하신가요, 공작 부인?"
그가 물었다.
다프네는 수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셔츠도 벗어 주었으면 좋겠군요."
마직 셔츠는 호롱불 갓 위로 날아갔다.
"그게 전부이신지요?"
"이것도."
그녀는 그의 바지 허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거슬리는군요."
"나도 그래."
그는 바지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다프네 위로 기어올라가 양손과 무릎으로 그녀를 가두었다.
"이젠 뭘 어찌할지?"
그녀는 숨이 막혔다.
"글쎄요, 당신은 벌거벗었군요."
"사실이오."
사이먼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 아니군요."
"그것 또한 사실이오."
그는 고양이처럼 미소지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소."
다프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일어나 앉아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한 순간 드레스는 머리 위로 벗겨지고 말았다.
"자."
사이먼은 거친 목소리로 말하며 굶주린 시선으로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훨씬 낫군."
두 사람은 기둥이 네 개 달린 거대한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마주보고 있었다.
다프네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넓은 가슴이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들썩이는 것을 보자 맥박이 빨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그를 만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따스한 피부 위를 가볍게 쓸었다.
사이먼은 그녀의 검지가 가슴에 와닿자 호흡을 멈췄다.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감쌌다.
"당신을 원하오."
그녀는 아래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알아요."
"아니."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난 당신 마음속에 있고 싶소. 내가 원하는 건......"
두 사람의 피부가 맞닿는 순간 그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신 영혼 속으로 들어가고 싶소."
"오, 사이먼."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미 거기에 있어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오직 입술과 손과 서로의 살만이 존재할 뿐.
사이먼은 그가 아는 모든 방법으로 그녀를 숭배했다.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지고 무릎 뒤쪽에 키스했다.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배를 간질였다.
그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위치를 잡자, 그의 온몸이 평생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거대한 욕망에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경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당신을 사랑하오."
그가 속삭였다.
"내 평생 오직 당신뿐이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마침내 그녀의 몸 속에 완전히 자리잡은 순간 그는 집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붉게 물든 뺨을 입술로 애무했다.
"당신은 내가 본 그 무엇보다 아름답소."
그가 속삭였다.
"난 절대......난 더 이상......"
그녀는 대답으로 등을 활처럼 휘었다.
"그냥 날 사랑해 주세요."
그녀가 숨가쁘게 말했다.
"제발, 날 사랑해 줘요."
사이먼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엉덩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리듬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손가락을 그의 등에 가져다대고 그가 좀더 가까이 몸 안으로 돌진해 올 때마다 손톱을 그의 피부에 박아 넣었다.
다프네는 흐느끼고 신음했으며, 사이먼의 몸은 그녀가 열정에 들떠 내는 소리에 타올랐다.
그의 자제력이 달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경련을 일으키듯 움직였다.
"이젠 오래 참을 수가 없소."
사이먼이 숨가쁘게 말했다. 그녀를 위해 기다리고 싶었다. 자신이 해방감을 느끼기 전에 그녀가 먼저 절정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그 순간, 억제하려 애쓴 나머지 몸이 부서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다프네는 그의 몸 아래에서 몸을 비틀었다.
그녀의 가장 은밀한 근육이 그를 꽉 감싸며, 그녀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사이먼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그녀의 몸 안에 자신의 씨앗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느라 절정에 다다른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그녀의 우아한 목선이 그녀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때마다 경련을 일으켰다.
사이먼은 한 마디로 말을 잃었다.
"사랑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는 좀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리듬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자 다프네는 눈을 활짝 떴다.
"사이먼?"
그녀의 목소리에는 급박함이 묻어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두 사람 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나 때문에 이러는 건 원치 않아요. 당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싫어요."
그의 목구멍에 갑자기 기묘한 뭔가가 치밀었다. 말을 더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었다. 눈물이 그의 눈을 찔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 다프네 안에서 폭발했다. 기분이 좋았다.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평생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 있을까.
그의 팔이 마침내 풀리고 그는 그녀의 몸 위로 쓰러졌다. 방안에 들리는 소리는 그의 격한 숨소리뿐이었다.
다프네가 그의 앞이마에 쏟아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사랑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사이먼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그녀가 그를 감쌌다. 포근하게 감쌌다. 그는 완전함을 느꼈다.
몇 시간 뒤, 다프네는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 위로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며 커튼이 모두 내려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사이먼이 그런 모양이라고 하품을 하며 생각했다.
커튼 주위로 새어든 빛 때문에 방안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목을 풀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드레싱 룸으로 걸어갔다.
대낮에 잠을 자다니 자신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뭐, 하지만 어차피 평상시와는 다른 날이었으니까.
그녀는 로브를 입고 허리끈을 맸다. 사이먼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가 일어난 지 오래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의 품 안에 반쯤 잠이 든 채 누워 있던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주인 부부의 방은 총 다섯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개의 침실, 그리고 거기에 딸린 각각의 드레싱 룸, 두 방을 잇는 커다란 응접실. 응접실로 향한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마도 응접실 쪽의 커튼이 열려 있는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열린 문가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응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이먼이 창가에 서서 런던 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건디 새 가운을 걸치고 있었지만 발은 맨발이었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그의 눈은 약간 황량해 보였다.
다프네는 걱정이 되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방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가며 조용히 말했다.
"좋은 오후로군요."
그녀는 30센티미터 앞에 멈춰 섰다.
사이먼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그의 지친 얼굴이 그녀를 보는 순간 누그러졌다.
"좋은 오후로군."
그는 중얼거리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결국 그의 넓은 가슴에 등을 기댄 채 그로스베너 스퀘어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이먼은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댔다.
그녀는 한참만에 용기를 그러모아 그에게 물었다.
"후회하나요?"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고개를 젓느라 그의 뺨이 두피에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회는 없소. 그저......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뿐이오."
그의 목소리에 뭔가가 배어 있었다. 다프네는 그의 팔 안에서 몸을 비틀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이먼, 뭐가 문제죠?"
그녀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하지만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다프네는 그를 소파로 끌고 가 먼저 앉은 뒤 팔을 뻗어 그를 곁에 앉혔다.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녀가 속삭였다.
"괜찮아요."
"그게 아니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너무도 빨리 대답을 했다. 게다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목이 졸린 듯한 그의 목소리.
"난 기다려도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수줍게 덧붙였다.
"우리 두 사람만 시간을 좀더 보내는 것도 괜찮은걸요."
사이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고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한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질렀다.
공포의 파도가 다프네를 덮쳤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당장 아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난 그저......언젠가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게 전부예요. 당신도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면 했구요.
내가 기분이 상했던 것은 당신이 당신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아기를 낳지 않으려던 게 싫어서였을 뿐이에요. 그렇다고......"
사이먼은 그녀의 다리 위에 손을 얹었다.
"다프네, 그만해요, 제발."
그의 목소리에 배어 있는 고통에 그녀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그가 말할 차례다. 뭔가 크고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누르는 모양이었다.
만일 그가 설명을 하기 위해 적당한 단어 찾는 데 온종일이 걸린다 해도 기다리리라.
이 남자를 위해서라면 평생이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정말이지 퍽 기쁘다고는 할 수가 없소."
사이먼이 천천히 말했다.
그의 호흡이 조금 거칠었다. 그녀는 그를 위로하려고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는 이해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게 말이오, 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맹세를 너무도 오랫동안 해왔었소."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난 정말이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도 모, 모르겠단 말이오."
다프네는 그를 달래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곧 배우게 될 거예요."
그녀가 속삭였다.
"나도 당신과 함께 배우겠어요."
"그, 그게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초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그저......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내 삶은 낭비하고 싶진 않소."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또렷이 나타나 있는 그 순수한 감정에 다프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의 턱이 떨렸다. 뺨의 근육이 미친 듯이 꿈틀댔다. 그의 목에 가득한 긴장. 그의 모든 에너지 한 방울이 그 말을 하는 데 다 쏟아 부어진 듯했다.
다프네는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꼬마 소년을 달래주고 싶었다. 이마를 쓰다듬고 손을 꼭 쥐어주고 싶었다.
수백 가지도 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저 말없이 눈으로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당신 말이 맞았소."
그의 입에서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쭉 당신이 했던 말이 옳았소. 내 아버지에 대한 것. 내, 내가 아버지가 이기게 내버려두고 있다는 것도."
"오, 사이먼."
그녀가 중얼거렸다.
"하, 하지만 만일......"
강인함이 배어 있는 잘생긴 얼굴이, 언제나 단호하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만일......만일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는데, 그, 그, 그 아이가 나 같으면?"
잠시 다프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였다. 그녀는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충격으로 벌어진 입을 감추고 싶었다.
"만일 우리에게 말을 더듬는 아이가 생긴다면,"
다프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우린 그 아이를 사랑할 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를 도와줄 거예요. 그리고......"
다프네는 뜨거운 것을 삼켰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그리고 난 당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말을 더듬는 것을 극복한 장본인이니까."
그는 얼른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내 아이가 나처럼 고생하는 걸 바라지 않아."
다프네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져 나갔다.
마치 그녀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그녀의 몸이 먼저 깨달은 듯이.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고생하지 않을 걸요. 당신이 그 애의 아버지니까."
사이먼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어쩌면 희망을 담은 듯 빛났다.
"당신이라면 말을 더듬는다고 아이를 모른 척하겠어요?"
다프네가 나직하게 물었다.
사이먼의 대답은 강렬하고 단호했다. 말끝에 욕설까지 따라붙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렇다면 난 내 아이들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을 거예요."
사이먼은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격렬한 몸짓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목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을 사랑하오."
그는 목이 메인 듯 말했다.
"너무도 사랑하오."
마침내 다프네는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몇 시간 뒤에도 다프네와 사이먼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후 내내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태양이 빛났고, 새가 지저귀었고, 두 사람은 함께였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다프네의 머리 저편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시선이 책상에 닿았을 때에야 그녀는 간신히 기억을 해냈다.
사이먼의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그걸 사이먼에게 전달할 용기를 내야만했다. 미들토프 공작이 말했었다.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할 때 그가 그랬다.
그녀라면 언제 그에게 편지를 전달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사이먼의 무거운 팔에서 몸을 떼고 침실로 걸어갔다.
"어딜 가는 거요?"
사이먼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따스한 오후의 태양 아래 졸고 있었다.
"나, 난 뭘 좀 가지러 가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머뭇거림을 눈치챘는지, 그는 눈을 뜨고 고개를 빼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가지러 가야 하는데?"
그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다프네는 옆방으로 가며 질문을 회피했다.
"금방 돌아올게요."
그녀가 외쳤다.
그녀는 편지를 헤이스팅스 가를 상징하는 색인 붉은 색과 금색 리본으로 한데 묶어 책상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런던으로 돌아온 첫 주에는 편지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 편지는 브리저튼 저택에 있는 그녀의 옛 침실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그녀는 우연히 그 편지들을 발견했다.
바이올렛이 이층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가라고 해서 향수병이며, 자신이 열 살 때 직접 만든 베갯잇들을 챙기다가 그것들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몇 번이고 그녀를 편지를 뜯어볼까 말까 고민했다.
남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봉투에 밀랍 봉인만 되어 있지 않았던들 그녀는 양심을 어깨 너머로 던져 버리고 그것들을 읽었을 것이다.
그녀는 편지 뭉치를 들고 천천히 응접실로 다가갔다.
사이먼은 여전히 소파 위에 있었지만 잠에서 완전히 깬 채 그녀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건 당신 거예요."
그녀는 편지뭉치를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게 뭐요?"
그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신 아버지한테서 온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미들토프 공작님께서 제게 주셨어요. 기억하시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 편지를 불사르라고 말씀드린 것도 기억나는군."
다프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으셨나 봐요."
사이먼은 뭉치를 바라보고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군."
그가 몹시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앉았다.
"읽어 보시겠어요?"
사이먼은 어떻게 대답할까 몇 초를 망설이더니, 마침내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다.
"나도 모르겠소."
"당신 아버지를 완전히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어쩌면 더 악화시킬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죠."
그녀가 동의했다.
그는 편지를 바라보았다. 리본에 묶여 아내의 손에 놓여 있는 편지.
원한을 느껴야 하는 걸까? 분노를 느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의 눈앞에 아버지가 직접 쓴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불에 집어던지거나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동시에 읽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기다리기로 하지."
사이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프네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읽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태워 버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는 어깻짓을 했다.
"별로."
그녀는 편지를 바라본 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럼 이걸 어쩌실 거예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요?"
그가 씩 웃었다.
"그렇게 말했소."
"오."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내 책상 속에 그냥 집어넣길 바라세요?"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그 안에 그냥 내버려둬요?"
그는 그녀의 로브 허리끈을 잡고 그녀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응."
"하지만......"
그녀가 침을 튀기며 뜻 모를 말을 했다.
"하지만......하지만......"
"한 번만 더 "하지만"이라고 해봐. 점점 더 날 닮아가는군."
그가 장난스레 말했다.
다프네는 입을 딱 벌렸다. 사이먼은 그녀의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결점을 농담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평생 처음이었다.
"편지는 나중에 봐도 괜찮소."
편지가 그녀의 무릎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이제야 간신히......당신 덕분에......아버지를 내 삶에서 영원히 몰아낼 수 있었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편지를 읽어 봐야 다시 불러들이는 것밖에 안 돼."
"하지만 당신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끈질기게 물었다.
"어쩌면 사과를 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당신 발 아래 무릎을 꿇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몸을 숙여 편지를 주우려 했지만 사이먼이 얼른 그녀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손이 닿지 않았다.
"사이먼!"
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불렀소?"
"뭘 하시는 거예요?"
"당신을 유혹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성과가 있는 것 같소?"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 물들었다.
"조금은요."
"고작 "조금은요" 라고? 제기랄, 실력이 준 모양이군."
그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그녀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당신 솜씨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녀가 얼른 말했다.
"고작 괜찮은 게 전부라고?"
그는 얼굴을 장난스레 찌푸렸다.
"괜찮다는 건 너무 약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너무 효력이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말을 잘못한 모양이군요."
사이먼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미소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미소가 입가에까지 번지자 그는 일어서서 아내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프네."
그는 짐짓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하려 했다.
"제안할 것이 있소."
"제안이라고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었다.
"부탁."
그가 정정했다.
"부탁할 것이 있소."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미소를 지었다.
"어떤 부탁이지요?"
그는 그녀를 침실 안쪽으로 밀었다.
"사실 두 가지가 필요한 일이지."
"흥미롭군요."
"맨 처음에 필요한 것은 당신, 나, 그리고......"
그는 그녀를 들어 침대에 집어던지며 쿡쿡 웃어댔다.
"튼튼한 골동품 침대."
"튼튼한?"
그는 그녀 옆으로 기어올라가며 얼굴을 찌푸렸다.
"튼튼해야만 하오."
다프네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에서 몸을 비틀어 뺐다.
"튼튼한 것 같네요. 두 번째 부탁은요?"
"그건 말이지, 안 됐지만 당신이 시간을 좀 내줘야 하는 거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사이먼은 간단하게 그녀를 매트리스 위에 고정시켰다.
"한 아홉 달 정도."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진심이에요?"
"아홉 달이 걸린다는 것 말이오?"
그가 씩 웃었다.
"난 항상 그렇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다프네의 눈에는 더 이상 장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물은 게 그게 아니란 건 알고 있잖아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알고 있소."
사이먼 역시 진지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대답은 그렇소, 진심이오. 난 겁이 나 죽을 것만 같아. 동시에 뼛속까지 흥분돼. 당신을 만나기 전엔 내 스스로에게 금지했던 수백 가지 다른 감정이 들어."
눈물 때문에 눈이 따끔거렸다.
"그건 당신이 내게 한 말 가운데 가장 달콤한 말이군요."
"그게 진실이오."
그가 선언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난 절반밖에 살아 있지 않았소."
"지금은요?"
그녀가 속삭였다.
"지금은 어떠냐고?"
그가 반복했다.
"지금이란 말은 행복, 즐거움, 그리고 내가 숭배해 마지않는 아내란 뜻이지. 하지만 그거 알고 있소?"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감정이 북받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몸을 구부려 그녀에게 키스했다.
"지금은 내일과 비교할 수도 없지. 내일은 그 다음날과 경쟁할 수도 없고, 지금 이 순간 너무도 완벽한 느낌이지만, 내일은 더 좋을 거요. 아, 다프."
그가 그녀에게 입술을 가져가며 속삭였다.
"날마다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해 주겠소. 약속하지. 날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