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20/23)

19 

새 헤이스팅스 공작 부인이 오늘 메이페어 부근에서 목격되었다. 필리파 페더링턴은 근처를 산책하던 중 바람을 쐬고 있는 전 브리저튼 양을 발견했다. 페더링턴 양은 그녀를 불렀지만, 공작 부인은 듣지 못한 채했다. 

우리 모두는 공작 부인이 못 들은 척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페더링턴 양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귀가 먹은 사람일 테니까.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6월 9일. 

마음의 병이란 낫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프네는 알게 되었다. 그저 고통의 날이 무뎌질 뿐.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던 날카롭고 찌르는 듯한 통증은 둔한 고통으로 바뀐다. 그러나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끊임없는 통증인 것이다. 

그녀는 사이먼이 떠난 다음 날 클라이브던 성을 떠나 런던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브리저튼 저택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왠지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그녀는 마부에게 헤이스팅스 저택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언제든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거리도 가까웠고, 이젠 유부녀이니 자신의 집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새 하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들은 두말 않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물론 상당히 호기심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녀는 곧 버림받은 아내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 

제일 먼저 그녀를 방문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 누구에게도 런던에 돌아온 것을 알리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찾아오셔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어디 있지?" 

바이올렛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 남편 말씀이신가요?" 

바이올렛이 잡아먹을 듯 말했다. 

"그래, 당연히 네 남편 말이다." 

다프네는 어머니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마 지방에 있는 영지 한 곳에 일이 생겼다나 봐요." 

"아마?" 

"아, 제가 알기로 말이죠." 

다프네는 정정했다. 

"네가 왜 네 남편과 함께 가지 못했는지도 알고 있니?" 

다프네는 잠시 거짓말을 할까 고민했다. 영지 관리인이나 소작인에게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다거나, 가축들이 질병을 앓는다거나 뭔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도 한 번 말해 볼까 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입술은 떨리기 시작했고,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절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겠죠." 

바이올렛은 딸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 다프. 무슨 일이 생긴 거니?" 

다프네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어머니를 끌어당겼다. 

"너무 심각한 일이라 설명하기가 힘드네요." 

"한 번 설명해 보련?"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까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비밀을 숨긴 적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얘기하지 못할 일이라곤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이 일이 있기 전의 일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두드렸다. 

"전 괜찮아요." 

바이올렛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정말이냐?" 

"아뇨." 

다프네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어야 할 것 같아요." 

바이올렛은 떠났고, 다프네는 손을 배 위에 얹고 기도했다. 

그 다음에 다프네를 방문한 사람은 콜린이었다. 다프네가 공원을 잠시 산책하고 돌아와 보니 오빠가 응접실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다프네는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콜린은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어머니의 말솜씨를 물려받지 못한 모양이라고 다프네는 생각했다. 그가 외쳤다. 

"말해 보란 말야!"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며칠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두통을 어떻게든 좀 가라앉혀 보려고 했다. 자신의 고통을 콜린 오빠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말한 것 이상의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콜린도 대강 얘기는 들었을 것이다. 브리저튼 저택에서는 언제나 소문이 빨리 도는 편이었으니까. 

도대체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일단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어깨를 곧추세우고 눈썹을 치켜올린 뒤 말했다. 

"그 말의 뜻은......?" 

콜린이 으르렁댔다. 

"그 말의 뜻은, 네 남편이 어디에 있느냔 말이다." 

"그 사람 바빠." 

다프네가 대답했다. "그는 날 버리고 떠났어"란 말보다는 훨씬 더 낫게 들렸으니까. 

"다프네." 

콜린의 목소리에 담긴 경고는 끝도 없었다. 

"혼자 온 거야?" 

그녀는 오빠의 어조를 무시하며 물었다. 

"앤소니 형님과 베네딕트 형님은 이번 달 내내 지방에 가 계신다, 묻는 게 그거라면." 

콜린이 말했다. 

다프네는 하마터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다. 큰오빠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사이먼의 목숨을 한 번은 구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콜린이 말했다. 

"다프네, 지금 당장 그 개자식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털어놔." 

다프네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비록 남편을 욕할지언정 오빠에게 남편 욕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그 개자식"이란 내 남편을 일컫는 것일 테지?" 

"당연하지, 난......" 

"이만 내 집에서 나가란 말을 해야겠군." 

콜린은 갑자기 뿔이라도 솟은 듯한 표정으로 다프네를 보았다. 

"뭐라고?" 

"오빠와는 내 결혼에 대해 상의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빠 혼자만의 의견을 표하는 걸 그만두든가, 아니면 나가줘." 

"나보고 나가라고 말할 수는 없어." 

그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다프네는 팔짱을 꼈다. 

"여긴 내 집이야." 

콜린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방을 둘러보았다. 헤이스팅스 공작 부인의 응접실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다프네를 돌아보았다. 항상 자신의 분신 정도로만 여겨 왔던 여동생이 이젠 한 사람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쥐었다. 

"다프."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혼자서 하도록 내버려두마." 

"고마워." 

"당분간만 말이야." 

그가 덧붙였다. 

"내가 언제까지나 팔짱만 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마." 

콜린이 집을 떠난 지 반 시간쯤 뒤, 어차피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다프네는 생각했다. 이 상황이 끝없이 계속되진 않을 테니까. 2주 안에 그녀도 알게 될 테니까. 

매일 아침 다프네는 아침에 눈을 뜨며 숨을 참았다. 달거리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작게 기도를 한 뒤 이불을 젖히고 혈흔을 찾았다. 

매일 아침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하얀 시트뿐이었다. 

달거리 예정일에서 일주일이나 지난 뒤, 그녀는 처음으로 조그만 희망을 품었다. 그녀의 달거리는 언제나 정확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언제든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늦어진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한 주가 또 지났다. 이젠 아침마다 미소를 지었다. 보물을 품고 있듯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했다. 아직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도, 오빠도, 심지어는 사이먼에게조차도. 

사이먼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의 씨앗을 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녀의 완벽한 즐거움을 그의 분노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집사에게 편지를 보내 사이먼의 새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3주 뒤, 그녀의 양심이 이겼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운이 나쁘게도, 편지의 봉인이 채 마르기도 않았는데 막 지방에서 돌아온 앤소니 오빠가 그녀의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다프네는 이층 침실에 있었고, 원래 침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그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하인들을 짓밟고 올라온 것인지는 아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했다. 오빠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래 큰오빠는 언제나 그녀의 냉소적인 면을 자극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물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올라오신 거죠? 내게도 집사라는 것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집사라는 것이 있었지." 

그가 으르렁댔다. 

"오, 이런." 

"그 자식은 어디에 있지?" 

"여기엔 없는 게 분명한 것 같군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척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자식을 죽여 버릴 테야." 

다프네는 일어서서 눈을 번득였다. 

"아뇨.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엉덩이에 손을 얹고 있던 앤소니는 몸을 구부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난 헤이스팅스가 너와 결혼하기 전에 맹세를 했다. 알고 있었느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 자식이 네 평판에 흠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식을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만일 네 영혼에 상처를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그이는 내 영혼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어요, 앤소니 오빠." 

그녀의 손이 어느 샌가 배 근처로 갔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요." 

그 말을 앤소니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오빠의 눈은 어느새 책상 위에 놓인 물건에 못박혀 있었으므로. 그가 물었다. 

"저건 뭐지?" 

다프네는 그의 시선을 좇아 사이먼에게 쓰려다가 망쳐서 구겨놓은 편지더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손을 뻗어 증거물을 감추며 말했다. 

"그 자식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구나, 그렇지?" 

안 그래도 먹구름에 낀 듯한 앤소니의 표정은 이제 아예 천둥번개를 동반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맨 위에 그 자식 이름이 쓰여 있는 걸 봤단 말이다." 

다프네는 종이를 구겨서 책상 아래 놓인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오빠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앤소니는 금방이라도 책상으로 뛰어가 쓰레기통이라도 뒤질 기세였다. 마침내 그는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어." 

"앤소니 오빠, 이건 오빠가 상관하실 일이 아니에요." 

"그 자식을 찾아내고 말 테다. 찾아서 그 자식을 죽여......" 

"아, 제발!" 

다프네도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이건 내 결혼이에요, 앤소니 오빠. 오빠 결혼이 아니라구요. 내 일에 자꾸 참견하면 나도 죽을 때까지 절대로 오빠와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고, 어조는 단호했다. 앤소니도 그녀의 말에 조금은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좋아, 죽이지는 않으마." 

"고마워요." 

다프네가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자식을 찾겠다." 

앤소니가 선언했다. 

"내가 이 사태를 그냥 두고보지는 않을 거라고 밝힐 테다." 

다프네는 오빠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이 진심임을 알았다. 

"좋아요." 

그녀는 책상 서랍 안에 집어넣었던 완성된 편지를 꺼냈다. 

"그럼 오빠가 이걸 직접 전해 주세요." 

"그러지." 

그는 봉투를 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다프네는 얼른 편지를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치웠다. 

"하지만 먼저 두 가지 약속을 하셔야 해요." 

"어떤 약속......?" 

"첫째, 이걸 읽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하세요." 

그는 그녀가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란 표정 따위는 짓지 마세요." 

다프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오빠를 알아요, 앤소니 브리저튼. 오빠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분명히 이걸 읽어 보실 걸요." 

앤소니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게 하나 더 있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게 약속을 하신다면 절대 그걸 깨뜨리지 않으리란 걸. 그러니까 오빠의 약속이 필요해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다프." 

"약속해요!" 

그녀가 명령했다. 

"아, 알겠다. 약속하마." 

그가 투덜거렸다. 

"좋아요." 

그녀는 편지를 건넸다.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다프네가 큰 소리로 말해 앤소니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이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아, 잠깐, 그건 좀 기다려 봐, 다프네." 

앤소니가 버럭 외쳤다.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구나."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편지 다시 돌려주세요." 

그는 편지를 등뒤로 감췄다. 

"벌써 내게 줬잖니."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주소는 아직 안 드렸어요." 

"그 자식 주소는 내가 알아낼 수 있어." 

그가 반박했다. 

"아뇨, 그러실 수 없으리란 건 오빠도 잘 알고 계세요." 

다프네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 사람이 가진 영지는 끝도 없어요. 도대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아내는 데만 해도 몇 주가 걸릴 걸요?" 

"아하!" 

앤소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자식이 지금 영지 중 한 곳에 있다는 거지. 넌 말이지, 지금 아주 중요한 단서를 흘린 거란다." 

"지금 장난을 하자는 건가요?" 

다프네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 그냥 말해 다오." 

"오빠가 먼저 약속하시기 전엔 안 돼요. 폭력은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오빠." 

그녀는 팔짱을 꼈다. 

"나도 진심이에요." 

"좋아." 

그가 웅얼거렸다. 

"말씀하세요." 

"너 참 끈질기구나, 다프네 브리저튼." 

"이젠 다프네 바셋이에요. 난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배웠다구요." 

"약속하마."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게다가 그리 명확하지도 않았다. 

"그걸로는 모자라요. 나는 네 남편을......" 

"나는 망할 머저리 같은 네 남편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앤소니가 내뱉었다. 

"자, 이제 만족하니?" 

"물론이죠." 

그녀는 서랍에서 일주일 전 집사가 사이먼의 행방에 대해 알려 온 편지를 꺼냈다. 

"여기 있어요." 

앤소니는 거칠게 그것을 낚아챘다. 그는 편지를 읽은 뒤 말했다. 

"나흘 후에 돌아오겠다." 

"오늘 떠나실 거예요?" 

다프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폭력을 쓰지 않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그런다." 

그가 으르렁댔다. 

"그렇다면 당장 떠나세요." 

다프네가 말했다. 

그리고 앤소니는 떠났다. 

"내가 자네 입으로 내장을 잡아 빼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단 한 가지만이라도 대보란 말이야." 

사이먼은 책상에서 고개를 들어 서재 앞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몰골로 소리를 지르는 앤소니 브리저튼을 바라보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나도 자넬 봐서 반갑네, 앤소니." 

앤소니는 무서운 기세로 방안으로 들어와 사이먼의 책상에 양손을 짚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몸을 앞으로 굽혔다. 

"내 동생은 런던에서 매일 밤 울고 있는데 자네는 도대체 왜 여기에 처박혀 있는 건지 말해볼 텐가?" 

그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월셔." 

사이먼이 대답했다. 

"그래, 왜 월셔에서 시사한 일이나 보고 있는 건지 말해 보라구." 

"다프네가 런던에 있나?" 

"난 또 자네가 남편이니 자네는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앤소니가 으르렁댔다. 

"자네야 원래 아는 척하길 좋아하는 인간이니까." 

사이먼이 내뱉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자네가 틀리지." 

클라이브던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다. 다프네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게 벌써 2개월 전이다. 2개월가느이 완전한 공허. 

다프네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이 진실로 놀라웠다. 비록 호전적인 큰오빠에게 그 일을 맡겼더라도 말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더 일찍 연락을 취할 거라 생각했었다. 기분이 나쁘다고 혼자 조용히 끙끙거리는 여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녀가 어떻게든 자신을 찾아와 그가 진짜 머저리인 여섯 가지 이유를 설명할 거란 상상까지 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약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는 그녀가 그래 주길 반쯤은 바라고 있었다. 

"정말이지 자네 머리를 잘라 버리고 싶어." 

앤소니가 사이먼의 백일몽을 산산조각냈다. 

"자네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다프네에게 약속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리 쉽게 한 약속은 아니었겠군." 

사이먼이 말했다. 

앤소니는 팔짱을 끼며 사이먼의 얼굴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지키기도 쉽지 않아." 

사이먼은 어떻게 물어야 그리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게 다프네에 대해 물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녀가 그리웠다. 자신이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가 그리웠다. 그녀의 웃음이, 그녀의 체취가 그리웠고, 밤마다 다리로 그의 다리를 옭아매던 그녀가 그리웠다. 

혼자 있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이 정도의 고독에는 익숙지 않았다. 

"다프네가 날 잡아오라고 자네를 보내던가?" 

그가 마침내 물었다. 

"아니." 

앤소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조그만 상아색 봉투를 꺼내 소리나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네에게 이걸 보내려고 전령을 부르는 순간 내가 잡았지." 

사이먼은 점점 더 커져 가는 공포로 봉투를 바라보았다. 이건 오직 단 한 가지 뜻일 수밖에 없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목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내가 대신 자네에게 편지를 가져다주겠다고 했지." 

앤소니는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 

사이먼은 그를 무시하고 봉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는 것을 앤소니가 모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앤소니는 보았다. 

"도대체 자네 무슨 일이야?" 

그가 갑작스레 물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사이먼은 편지 봉투를 잡아챘다. 

"자네를 보면 언제나 즐거우니까." 

그가 가까스로 말했다. 

앤소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분노와 걱정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놀랍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아픈 게야?" 

"물론 아닐세." 

앤소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럼 다프네가 아픈 건가?" 

사이먼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왜? 아파 보이던가? 혹시......" 

"아니, 멀쩡해 보였어." 

앤소니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말했다. 

"사이먼.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자네가 다프네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것 같은데.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애도 자넬 사랑하는 것 같던데." 

사이먼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요사이 그를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지긋지긋한 두통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자네가 모르는 일도 있는 법이야." 

그는 피곤한 어조로 말했다. 앤소니에게 자신의 고통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자네는 절대 이해 못할 그런 일들 말일세." 

앤소니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막 사이먼이 눈을 떴을 때 앤소니는 벌써 문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네를 런던으로 끌고 가진 않겠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게 마땅할 테지만 그러지 않겠어. 다프네도 내가 자네 등에 총구를 들이밀어 끌고 온 게 아니라 자네가 자기 발로 오길 바랄 테니까." 

사이먼은 자신의 결혼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지적할 뻔했으나 곧 혀를 깨물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조금도 사실이 아니었다. 만일 다른 상황에서 다프네를 만났더라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했을 테니까. 

"이거 한 가지는 알아두게." 

앤소니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곧 떠들어대기 시작할 것이란 사실을. 다프네는 결혼식을 올린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혼자서 런던으로 돌아왔어.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누가 대놓고 그녀에게 모욕을 준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나 동정을 받는 걸 참아내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그 망할 휘슬다운이란 여자가 그 애에 대한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고." 

사이먼은 얼굴을 찌푸렸다. 영국에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레이디 휘슬다운이란 가공의 인물이 그들을 상당히 괴롭히고 성가시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앤소니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가서 의사를 좀 만나보게, 헤이스팅스. 그리고 아내한테 돌아가라고."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방을 나섰다. 

사이먼은 손에 든 봉투를 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몇 분 동안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앤소니를 만난 것은 충격적이었다. 앤소니가 얼마 전 다프네를 만나고 왔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렸다. 

제기랄. 그녀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화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가 주고 싶지 않았던 뭔가를 그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는 아이를 원치 않는다.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 점을 알고 한 결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녀는 그를 속였다. 

과연 그랬던 것일까? 그는 손으로 눈을 문지르며 그 운명의 아침에 벌어진 일을 정확하게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분명 관계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다프네였지만, 계속하라고 자신이 그녀를 부추겼던 것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녀를 부추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마 임신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딱 한 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 그의 어머니도 10년도 넘도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밤에 혼자 침대에 누워 있으며 그는 진실을 더 이상 속일 수 없었다. 다프네가 자신의 말을 거역했다거나,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달아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달아난 이유는 그날 아침에 보인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어린 시절의 말더듬이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그를 벙어리로 만들고 그 끔찍한 숨막히는 기분을 맛보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의 공포감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던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거라면 차마 그녀와 같이 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의 가짜 연애 기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편했던가, 그녀와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던가. 하지만 그 모든 추억이 다프네의 침실 사건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연거푸 말을 더듬으며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맛보았던 그날 아침. 

그런 자신의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다른 영지로 도망가고 만 것이다. 그는 공작이었으므로, 영지는 수도 없이 많았다. 월셔도 클라이브던에서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열심히 달리면 하루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달아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젠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며 사이먼은 편지 봉투를 찢는 칼을 집어들어 봉투를 열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이먼. 

제 노력은,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서 가까운 런던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당신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당신의 다프네. 

사이먼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크림빛 종이 한 장을 손가락에 걸친 채. 

마침내 산들바람이 그에게 불어닥쳤다. 무엇인가가 그를 몽상에서 깨웠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복도로 달려나가 집사를 불렀다. 

"내 마차를 준비하거라." 

집사가 나타나자 그가 외쳤다. 

"런던으로 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