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9/23)

18 

이 사실을 눈치챈 것은 본 필자뿐인가, 아니면 사교계의 신사들이 최근 들어 술을 더욱 많이 마시게 된 것이 사실인가?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6월 4일. 

사이먼은 밖으로 나가 취해 버렸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특별히 즐기는 편도 아니었건만, 그는 술을 퍼마셨다. 

클라이브던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에 술집이 여럿 있었다. 그곳에는 싸움을 좋아하는 선원들도 많았다. 그중 두 명이 사이먼을 찾았다. 

그는 두 사람을 모두 짓밟아 버렸다. 

수년 동안 영혼 저 아래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마침내 표면으로 떠올랐고, 그 덕에 그는 가벼운 자극을 받고도 싸움을 벌였다. 

만취한 탓인지, 선원의 볕에 그은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그가 본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거만한 얼굴에 그는 주먹을 날렸다.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폭력적인 남자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다. 

사이먼이 그들을 바닥에 때려눕혔을 즈음에는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힘도 힘이거니와 그의 분노를 감지한 것이다. 분노가 더욱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사이먼은 먼동이 터오기 시작할 때까지 술집에 있었다. 그는 돈을 주고 산 술병을 연거푸 기울이다가 마침내 갈 시간이 되지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주머니에 술병을 우겨 넣고 집으로 향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계속 술을 마셨다. 싸구려 위스키가 내장을 태우는 듯했다. 그는 점점 더 취해갔고, 결국 몽롱한 의식 속에서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프네가 돌아왔으면. 

제기랄.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이젠 그녀가 자기 주위에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냥 갑자기 침실에서 나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를 되찾고 말리라. 그녀에게 구애해서 마음을 돌린 뒤...... 

사이먼은 듣기 싫게 큰 소리로 트림을 했다. 그냥 구애를 해서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데까지만 하기로 하자. 지금은 너무 취해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클라이브던 성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마침내 주정뱅이의 자기 합리화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다프네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죽은 사람도 깨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소리를 질렀다. 

"다프네에에에에에에에!" 

사이먼은 목소리에 희미하게 배어 있는 절박감을 감추려 애쓰며 외쳤다. 불쌍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면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문을 열어 줄지도 모르니까. 그는 몇 번 크게 코를 훌쩍인 뒤 다시 소리쳤다. 

"다프네에에에에!" 

2초가 지나도 다프네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묵직한 문에 몸을 기댔다. 위스키 덕에 균형 감각이 헤엄을 치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 다프네." 

그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문에 기댔다. 

"만일 당신이......" 

문이 열리는 바람에 사이먼은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그렇게......빠리 문을 열어야만......애써?" 

그가 웅얼댔다. 

잠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다프네는 바닥에 널브러진 인간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그 사람이 남편인 줄 알아보았다. 

"세상에, 사이먼. 도대체 무슨......" 

사이먼을 일으켜 세우려고 몸을 굽히다가 그가 입을 열어 숨을 내뿜자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취했잖아요!" 

그녀가 외쳤다. 

"그래." 

"어디 갔다 온 거예요?" 

그는 눈을 깜박이며 마치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 마셨지." 

그는 대답을 한 뒤 트림을 했다. 

"사이먼, 침대로 가서 누우셔야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좀더 흥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그래야지." 

그는 일어서려 했다. 간신히 무릎을 세우긴 했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카펫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흐으음." 

사이먼은 하반신을 쳐다보며 말했다. 

"흐으음. 거 참 이상하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잔뜩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프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 저기에 내 다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 

다프네는 눈을 굴렸다. 

사이먼은 다시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 팔다리가 이상해. 움직이지 않아." 

"당신 머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다프네가 외쳤다. 

"도대체 당신을 어쩌면 좋을지." 

사이먼은 그녀를 바라본 뒤 얼굴을 찌푸렸다. 

"날 사랑해 주면 되잖아?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건 무를 수 없는 거야." 

다프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화를 내야만 했다. 망할, 그에게 화가 났단 말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도 처절하게 보여서 계속 노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오라비가 셋이나 되는지라, 그녀는 술 취한 머저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깨어나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플 것이다. 아파해도 싸지. 그리고는 분명 뭔가 시답잖은 음료를 마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걸 마시면 숙취가 완전히 풀릴 거라 진심으로 믿으면서 말이다. 

"사이먼?" 

그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얼마나 취한 거죠?" 

그는 헤벌레 웃음을 지었다. 

"많이.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몸을 구부려 양손을 그의 겨드랑이에 밀어 넣었다. 

"이제 일어나요. 당신을 침대에 눕혀야겠어요."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앉은 채로 무척이나 어리석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볼 뿐. 

"왜 내가 일어나야 한다는 거야아?" 

그가 웅얼댔다. 

"나랑 같이 앉으면 안 돼애?" 

사이먼은 그녀에게 팔을 두르고 끌어안았다. 

"나랑 앉자, 다프네." 

"사이먼!" 

그는 옆자리를 두드렸다. 

"이 아래 좋은데." 

"사이먼, 안 돼요. 당신과 앉을 수 없어요." 

그녀는 이를 갈며 말한 뒤 그의 무거운 팔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침대에 누워야 돼요." 

다프네는 다시 그를 움직이려 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하나님 맙소사." 

그녀는 낮게 읊조렸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거예요?" 

그가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아마 그녀의 말을 들은 듯 고개를 젖히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돌아왔으면 해서." 

그녀의 입술이 놀라서 벌어졌다. 그녀가 돌아오길 원한다면 그가 뭘 해야 할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프네는 그가 잔뜩 취했으니 그런 종류의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 문제는 내일 얘기해요, 사이먼." 

사이먼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벌써 내일인 것 같은데." 

그는 목을 이리저리 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이미 햇빛이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거 봐, 아침이잖아." 

그가 중얼거렸다. 

"저거 보여?" 

그는 팔로 창문을 가리켰다. 

"벌써 내일이야." 

"그럼 저녁에 얘기하기로 해요." 

다프네는 약간 절박한 어조로 말했다. 심장을 자근자근 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제발, 사이먼. 지금은 그냥 내 말 들어요." 

"문제는 말이지, 다프네에......" 

그는 개가 물을 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프네에."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다프네에. 다프네에."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뭐죠, 사이먼?" 

"문제는 말이야."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신이 이해를 못한다는 거야."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왜 할 수 없는지."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사이먼의 눈에 담겨 있는 끔찍한 어둠의 그림자에 다프네는 하마터면 몸을 움찔거릴 뻔했다. 

"당신을 아프게 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다프." 

그가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알지, 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사이먼." 

"잘됐네. 왜냐면 말이지......" 

사이먼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난 당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없거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평생." 

사이먼이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내 평생 그 인간이 이겼어. 그거 알았어? 항상 그 인간이 이겼다구. 이번에는 나도 이기고 싶어." 

그는 팔을 쭉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나, 나도 한 번쯤은 이기고 싶어." 

"오, 사이먼."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이 이미 오래 전에 이겼어요. 당신 아버지의 기대치를 뛰어넘은 순간 당신이 이긴 거예요. 당신이 친구를 사귈 때마다, 당신이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당신은 자신이 승자임을 증명한 거예요. 당신 아버지가 꿈도 꾸지 않았던 그 수많은 일들을 당신이 한 거라고요." 

그녀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꼭 쥐었다.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승자라구요. 왜 그걸 모르는 거예요?"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아버지가 바랬던 대로 되고 싶지 않아." 

그가 말했다. 

"내게선......" 

그는 딸꾹질을 했다. 

"내게선 그, 그걸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아버지가 워, 원했던 건 완벽한 아들이었어. 완벽한 고, 공작이 되어 완벽한 공작 부인과 겨, 결혼해 와, 완벽한 아이들을 낳는 그런 인간이었지." 

다프네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가 다시 말을 더듬고 있다. 아마도 몹시 기분이 언짢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버지의 인정만을 바랐던 어린 소년에 대한 연민으로. 

사이먼은 고개를 젖히고 놀랍고도 또렷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 아버지도 당신이라면 인정했을 거야." 

"오." 

다프네는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깻짓을 하며 은밀하고 장난스런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난 당신과 결혼했잖아." 

사이먼이 너무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기에, 어린아이처럼 보였기에, 다프네는 그를 끌어안아 달래 주고 싶은 마음과 싸웠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깊건, 영혼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건, 그는 잘못된 방식을 선택했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커다란 복수는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리라.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주지 못했던 그 모든 영광과 행복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리라. 

다프네는 터져 나오는 탄식을 삼켰다. 죽은 남자에게 반항하는 것만을 인생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온 그가 도대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피곤했고, 그는 취해 있었다. 별로 좋은 시간이 아니다. 

"일단 당신을 침대에 눕혀야겠어요." 

다프네가 마침내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애원을 하는 듯했다. 

"날 떠나지 마." 

그가 속삭였다. 

"사이먼." 

다프네는 목이 메었다. 

"제발 그러지 마. 아버지는 날 떠났어. 모두가 날 떠났어. 그리고 나도 떠났어." 

사이먼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떠나지 마."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일어섰다. 

"당신, 내 침대에서 자도 돼요. 아침이 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예요." 

"당신도 나와 함께 있을 거야?" 

대답하면 안 된다. 그렇게 대답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프네는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신과 함께 있어줄게요." 

"잘됐다." 

사이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왜냐면 말이지, 난 말이야......난 정말이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서 고통스런 시선을 보냈다. 

"당신이 필요하거든." 

그녀는 사이먼을 침대로 데려갔다. 그가 매트리스로 쓰러지는 순간 하마터면 그와 함께 쓰러질 뻔했다. 

"가만히 있어요." 

다프네는 그렇게 말한 뒤 무릎을 꿇고 그의 부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오빠들을 시중들어 준 적이 있었기에, 남자의 부츠를 벗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발끝이 아니라 뒤꿈치 쪽을 붙잡고 벗겨야 한다는 것인데, 워낙 꼭 끼는 부츠였던지라, 마침내 부츠가 빠지는 순간 그녀는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세상에." 

그녀는 일어서서 다른 쪽 부츠를 벗기며 욾조렸다. 

"여자가 패션의 노예란 말을 누가 했더라." 

사이먼은 코를 고는 것과 흡사한 소리를 냈다. 

"당신, 자요?" 

다프네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녀는 다른 쪽 부츠를 잡아당겼다. 아까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벗겨졌다. 그리고는 몇 톤이나 되는 듯한 그의 다리를 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뺨 위에 내려앉은 검은 속눈썹 덕분에 그는 무척 어리고 평화로워 보였다. 다프네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잘 자요, 내 사랑." 

다프네가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가 움직이려는 순간, 사이먼의 팔이 뻗어나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나랑 있겠다고 했잖아." 

그가 비난하듯 말했다. 

"당신이 자는 줄 알았어요!" 

"그렇다고 약속을 깨도 된다는 건 아니야." 

그는 그녀의 팔을 계속 잡아당겼다. 다프네도 마침내 포기하고 그의 곁에 누웠다. 그는 따스했고, 그녀의 남자였다. 비록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근심이 남아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부드러운 포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프네는 잠이 깼다.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이먼은 여전히 그녀 곁에 누워 부드럽게 코를 골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옷을 입은 채였다. 그는 위스키 냄새에 절은 옷을, 그녀는 나이트가운을. 

천천히 그녀는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당신을 어쩌면 좋을까?"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건 당신도 알 테죠.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짓은 증오해." 

그녀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게도. 당신이 내게 하는 일을 증오해." 

그는 졸린 듯 몸을 뒤척였다. 한순간 그녀는 그가 잠이 깬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사이먼?" 

다프네가 속삭였다. 그가 대답을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에게 들려줄 준비가 되지 않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새하얀 배게 위의 사이먼은 너무도 순진해 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 앞에서라면 마음 깊숙이 들어 있는 생각을 말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오, 사이먼."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꼭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일어나야겠다. 이젠 일어나서 그가 쉬게 내버려두자. 그가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 왜 그토록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했지만, 동의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가 깨어나 그녀가 자신의 품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는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천천히, 내키지 않는 몸짓으로 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 나오려 했다. 그러나 사이먼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그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사이먼, 난......" 

사이먼은 좀더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다프네는 그의 몸이 완전히 흥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먼?" 

그녀가 속삭였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다. 

"당신 아직 자고 있는 거죠?" 

그는 또다시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아무런 유혹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좀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다프네는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남자가 잠을 자면서도 여자를 원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젖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작게 소리를 냈다. 그 허스키하고 깊은 소리가 호기심에 더더욱 불을 붙였다. 천천히 그녀는 그의 셔츠 단추를 푼 뒤 복부를 손가락으로 간질였다. 

사이먼이 몸을 뒤척이자 그녀는 숨막힐 듯 강렬한 힘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었고, 여전히 취한 상태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니 여전히 잠든 것이 분명했다. 다프네는 얼른 그의 바지를 벗겼다. 그 아래 있는 그의 몸은 여전히 흥분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손으로 그의 남성을 감싸자 맥박이 힘차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프네." 

그는 신음하며 눈을 활짝 떴다. 그리고는 갈라진 목소리로 내뱉었다. 

"세상에. 느낌이 너무 좋소." 

"쉿." 

그녀는 실크 가운을 벗으며 그를 달랬다. 

"내게 모든 걸 맡겨요." 

다프네가 그를 쓰다듬는 동안 그는 가만히 누워서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2주일 동안의 짧은 결혼 생활이지만, 그가 그녀를 잘 가르쳤기에 그는 금세 욕망에 뒤척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사이먼을 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과시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한다는 사실이 강력한 최음제로 작용했다. 위장이 꿈틀거리며 꽉 죄어왔다. 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원했다. 몸 속을 그가 채워 주었으면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길 바랐다. 

"오, 다프네." 

그가 마구 도리질을 하며 신음했다. 

"당신이 필요해. 지금 당장 당신이 필요해." 

다프네는 그의 몸 위로 올라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는 한 손을 이용해 그를 이미 욕망으로 젖은 자신의 입구에 가져갔다. 

사이먼이 아래서 몸부림쳤다. 그녀는 천천히 그가 자신 속에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몸을 낮췄다. 

"좀더." 

그가 허덕였다. 

"지금." 

다프네는 마침내 그가 자신의 몸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순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어깨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순수한 쾌락의 열락 속에 그녀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자란 것을 이토록 강렬하고도 완벽하게 자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무릎으로 몸을 지탱하고 그의 육체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락에 몸을 비틀며 등을 한껏 뒤로 젖혔다.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얹고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사이먼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신음했다. 그녀를 눈으로 훑으며 벌려진 입술 새로 뜨겁고 무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오, 하나님." 

그가 거친 목소리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물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요? 도대체......" 

그녀가 이번에는 유두를 건드리자 그의 온몸이 위로 솟구쳤다. 

"어디서 그런 걸 배운 거요?" 

다프네는 그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모르겠어요." 

사이먼이 신음했다. 

"좀더 당신을 보고 싶소." 

다프네는 무엇을 하며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본능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등을 뒤로 한껏 젖혀 가슴을 앞으로 내민 뒤 엉덩이를 돌렸다. 그녀는 양손으로 가슴을 살짝 쥐며 손가락 사이에서 유두를 희롱했다. 단 한번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사이먼의 엉덩이가 불규칙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침대 시트를 미친 듯이 움켜쥐었다. 다프네는 그가 거의 절정에 도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까지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쾌락을 주려고 노력했기에, 그녀가 먼저 절정에 도달한 뒤에야 자신도 절정에 도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먼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녀도 절정에 가까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맙소사!" 

그가 갑자기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이었다. 

"난 더 이상......난 이제......" 

그는 기묘한 애원을 담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몸을 빼려고 했다. 

다프네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눌렀다. 

그는 그녀 안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절정의 힘에 그의 엉덩이는 침대에서 들렸고, 그녀까지 한꺼번에 들리고 말았다. 그녀는 양손을 그의 몸 아래 가져다 대고 온 힘을 다해 그를 붙들었다. 이번에는 그를 놓치지 않으리라.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사이먼은 절정에 도달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이제는 절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만일 자신이 위에 있었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몸을 뺐을 테지만, 그녀 아래 누워서 그녀가 스스로의 몸을 자극해 욕망을 일깨우는 모습을 본지라 강렬한 욕구를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다프네의 작은 손이 자기 몸 아래로 들어와 자신의 몸을 그녀의 자궁으로 더더욱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서 완벽한 절정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다프네가 고의로 한 짓임을. 이것이 그녀의 계획이었음을. 

다프네는 잠을 자고 있는 그를 흥분시켜서 약간의 취기가 남아 있는 그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의 몸 안에 자신의 씨앗을 붓는 동안 그를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사이먼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가 속삭였다. 

다프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바뀌는 것으로 보아 그의 말을 들은 것에 틀림없었다. 

사이먼은 그녀의 근육이 경직되는 순간 그녀의 몸을 밀어냈다. 방금 자신이 맛본 절정을 그녀에게서 빼앗아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그가 되풀이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잖아. 당신은 내, 내가 아, 아이를......" 

다프네는 아무 말도 않고 몸을 웅크렸다. 그를 단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다는 듯 무릎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사이먼은 거칠게 욕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그녀에게 욕을 해주려고 입을 벌렸다. 자신을 배신한 그녀를 벌하고 싶었다. 자신을 이용한 그녀를 탓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이 꽉 죄어오기 시작했다. 혀가 부풀어올랐다. 단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 다, 당신......" 

그가 간신히 말했다. 

다프네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사이먼?" 

그녀가 속삭였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무슨 괴물 보듯 보길 바란 게 아니었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 다시 일곱 살이 된 것 같았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다프네의 얼굴이 근심으로 가득 찼다. 그가 절대 원치 않았던 연민과 근심으로. 

"괜찮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숨 쉴 수 있어요?" 

"나, 나, 나, 나......" 

"날 동정하지 마"란 말은 그렇게밖에 나와 주질 않았다. 아버지가 조롱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무덤에서 기어나와 그의 목을 잡고 혀를 잡아 빼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이먼?" 

다프네가 얼른 곁으로 달려오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두려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사이먼,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다프네는 손을 뻗어 사이먼의 팔을 만지려 했지만, 그가 뿌리쳤다. 

"날 건드리지 마!" 

그가 폭발했다. 

다프네는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있었군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서글프게 말했다. 

사이먼은 스스로가 증오스러웠다. 자신을 버린 목소리가 증오스러웠고, 자제력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아내가 증오스러웠다. 말을 완전히 할 수 없다는 느낌, 숨막히고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 이 기분을 다시 느끼지 않으려고 평생 동안 노력을 해왔는데, 그녀가 단숨에 되살려놓은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 예전의 자신으로 돌려놓게 할 수 없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다프네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자기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내게 가, 가까이 다, 다가오지 마." 

그는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바지를 집어들었다. 

"다, 다, 다,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어!" 

"뭘 말이에요?" 

다프네는 시트로 몸을 감싸며 외쳤다. 

"사이먼, 이러지 말아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죠? 당신은 날 원했어요. 당신이 날 원했다는 건 당신도 알잖아요." 

"이, 이, 이거 말야!" 

그는 자신의 목을 가리켜 보이며 버럭 외쳤다. 그리고는 그녀의 하복부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저, 저것."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는 방안에서 뛰쳐나갔다. 

방에서 나가듯 스스로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 시간 뒤, 다프네는 다음과 같은 쪽지를 발견했다. 

다른 영지에 긴급한 일이 발생했소. 만일 당신의 노력이 성공했다면 내게 알려줄 것이라 믿소. 

필요하다면 집사가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것이오. 

사이먼. 

종이가 다프네의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목구멍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몸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폭풍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듯이. 

사이먼은 그녀를 떠났다. 말 그대로 그녀를 떠난 것이다.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용서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가 방에서 걸어나간 그 순간에도 그녀는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고, 그의 마음을 완전하게 해줄 수 있다고 어리석게도 자기 멋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끝없이 투명하고 눈부신 사랑 덕에 사이먼이 수년간 그를 지탱해 온 원동력이었던 분노와 고통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혼자서 꿈을 꾸고 있던 것이다. 너무도 어리석었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이 있다. 온실 속에서만 살았기에,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세상을 금쟁반에 담아 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남에게 진심으로 잘하면 언제든 그 보답을 받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사이먼은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노란 방으로 내려가며, 다프네는 집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것을 깨달았다. 하인들 모두 남편이 떠난 것을 알고 혹시 그녀를 피하는 것은 아닌지. 어젯밤 두 사람의 싸움에 대해 조금씩은 들은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한숨을 쉬었다. 슬픈 기색을 나타내지 않기란 힘들었다. 그녀는 초인종 줄을 잡아당겼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인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등뒤에서 수군거리며 그녀를 동정할 테지. 

전에는 한 번도 하인들의 수군거림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으며 괴로운 신음소리를 냈다. 혼자란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마님?" 

다프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젊은 하녀 하나가 문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절을 한 뒤 다프네의 명령을 기다렸다. 

"홍차 부탁해요." 

다프네가 조용히 말했다. 

"비스킷은 필요 없으니 홍차만." 

하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종종 걸음을 쳐 사라졌다. 

하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프네는 배에 손을 얹고 경건한 시선으로 자기 몸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제발, 하나님, 제발. 그녀는 애원했다. 아기가 생기게 해주세요. 

그녀에게 두 번의 기회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할 테지만, 그녀는 부끄럽지 않았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잠이 든 사이먼을 보며, "그는 아직 취해 있을 거야. 그와 사랑을 나누고 그의 씨앗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모를 거야"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프네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몸 위에 있었고, 이번에는 그도 때맞춰 몸을 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거기에 약간 도움을...... 

다프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이용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를 이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사이먼의 말더듬는 버릇, 아기에 대한 갈망, 아버지에 대한 사이먼의 증오......그 모든 것이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한데 뒤엉켜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확실하게 짚어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외로웠다. 

문가에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아까 왔던 수줍은 하녀 대신 콜슨 부인이 직접 쟁반에 차를 받쳐들고 왔다. 그녀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었으며, 눈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다프네는 콜슨 부인에게 가냘픈 미소를 보냈다. 

"하녀가 올 줄 알았는데." 

"옆방에 할 일이 있어서 제가 차를 내오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콜슨 부인이 대답했다. 

다프네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 말로는 비스킷은 필요 없다고 하셨다는데, 아침식사도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냥 가져왔답니다." 

"마음써 줘서 고마워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도 낯설게 들렸다. 마치 타인의 것마냥 담담하기만 했다. 

"별 인도 아닌데요, 뭘." 

하녀장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은 단념하고 몸을 폈다. 

"이거면 되시겠어요?"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콜슨 부인은 문가로 걸어갔다. 잠시 다프네는 그녀를 부를까 망설였다. 와서 함께 차를 들자고 말할 뻔했다. 그랬더라면 자신의 비밀과 수치심을 털어놓았을 테지. 아마 눈물도 쏟았을 테지. 

하녀장과 특별히 친해서가 아니라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리라. 

그녀는 부르지 않았고, 콜슨 부인은 방을 나갔다. 

다프네는 비스킷을 집어들어 베어 물었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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