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교계가 제일 사랑하는 공작과 공작이 제일 사랑하는 공작 부인이 교외로 떠난지라, 이번 주 런던은 몹시도 조용했다.
본 필자는 나이젤 버브룩 씨가 페넬로페 페더링턴에게 댄스를 신청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의 지극한 간청 덕에 결국 요청을 수락하기는 했으나, 페넬로페 양은 썩 내켜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 누가 버브룩 씨나 페넬로페 양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할까?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자. 우린 여전히 공작과 공작 부인의 소식을 듣고 싶어한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사교계 소식, 1813년 5월 28일.
또다시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정원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다프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해꾼이 없겠지. 성난 오빠도, 들킬 염려도 없다. 남편과 아내, 열정에 대한 약속뿐이다.
사이먼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부드러웠지만 집요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의 혀가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 속에서 작은 경련을 느꼈다. 욕망의 작은 물결이 점점 더 크게 번져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가, 당신의 입술에 얼마나 매혹되어 있는지?"
그가 속삭였다.
"아......아뇨."
다프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내 입술을 관찰했었다니.
"숭배해 마지않소."
그리고는 그녀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따라가 혀끝으로 입가의 곡선을 어루만졌다.
간지러웠다. 다프네는 어느새 입을 크게 벌리고 미소짓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그녀가 킬킬댔다.
"절대 그럴 수 없지."
그는 한 걸음 물러서서 그녀의 얼굴을 양손에 감쌌다.
"내가 본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소."
"정말이오?"
"정말이지."
그는 그녀의 코끝에 키스했다.
"당신이 웃으면 얼굴 전체가 가득 차지."
"사이먼! 끔찍하게 들려요."
그녀가 외쳤다.
"매혹적이라니까."
"그건 괴물이죠."
"탐이 나."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동시에 웃어 버리는 묘기를 부렸다.
"정말이지, 당신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 없군요."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불행히도 이제 당신에겐 내 기준만이 적용된다오."
잠시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가 그에게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두 사람의 몸이 웃음으로 흔들렸다.
"오, 사이먼."
그녀가 헐떡였다.
"당신 너무 지독하게 말하는군요. 정말 멋질 만큼, 완벽하게, 말도 안 될 만큼 지독해요."
"말도 안 된다고?"
그가 중얼거렸다.
"나보고 지금 말도 안 된다고 했소?"
그녀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꼭 다물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가 투덜댔다.
"거의 고자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끔찍하군."
다프네는 즉각 진지해졌다.
"어머, 사이먼......제가 진심으로 그런 건......"
그녀는 설명하려다가 말고 말했다.
"그 점은 정말 죄송해요."
"그럴 필요 없소."
그가 선뜻 말했다.
"잘못한 사람은 당신 어머니지, 당신이 아니니까."
다프네의 입에서 결국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말았다.
"어머님은 정말 최선을 다하셨어요. 만일 당신 말 때문에 저만 헛갈리지 않았던들......"
"그래, 이젠 그게 내 잘못이다?"
그가 짐짓 화난 척을 했다. 표정이 갑자기 음흉하고 유혹적으로 바뀌었다. 그가 바짝 다가서는 바람에 그녀는 뒤로 몸을 젖혀야 했다.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을 두 배로 해야겠는걸."
그는 한 손을 그녀의 등에 가져간 뒤, 그녀를 천천히 침대 위로 눕혔다.
다프네는 그의 새파란 눈동자를 보며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누워 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어둡고 좀더 위험스러워 보였다. 사이먼이 그녀의 위로 몸을 굽히고 시야를 꽉 채우고 있었기에 더더욱 짜릿했다.
그 순간, 그는 천천히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그녀의 세계 전부가 되었다.
그의 키스는 더 이상 가볍지 않았다.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를 탐색했다. 그녀를 장난스레 괴롭히지 않았다. 그녀를 소유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 아래로 들어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오늘밤."
그가 뜨거운 목소리로 거칠게 속삭였다.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겠어."
다프네는 점점 더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숨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렸다.
사이먼이 너무도 가깝게 다가서 있었다. 그의 온몸이 그녀의 몸에 밀착되어 있었다.
리젠트 파크에서 그녀와 결혼하겠노라 그가 말한 이후, 그녀는 오늘밤을 수천 번도 넘게 상상해 왔었다.
하지만 그의 몸무게만으로도 아찔한 환희를 느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크고 딱딱하고 근육질이었다.
스스로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어쩌면 이토록 즐거울까. 그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었다.
갑자기 사이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했지만, 그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다프네는 비로소 자신에게도 자신만의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너무도 그녀를 원한 나머지 숨조차 쉴 수가 없었고, 그녀가 너무도 필요한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힘을 만끽했다. 자신의 육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엉덩이를 들어 그에게 밀착시켰고, 그의 손이 치마를 밀어 올리기 시작하자 그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휘감아 그를 좀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나님, 다프네."
사이먼이 헐떡이며 팔꿈치로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
"난 당신을......이래선......"
다프네는 그의 등을 잡아 다시 자신에게 끌어당기려 했다. 그의 몸이 닿아 있던 곳에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천천히 할 수가 없소."
그가 투덜댔다.
"난 상관없어요."
"난 상관 있소."
그의 눈이 사악하게 빛났다.
"우린 항상 앞질러 가려고만 하는군."
다프네는 그를 바라보며 호흡을 고르려 했다. 그는 일어나 앉아 눈으로 다프네의 온몸을 훑으며 손으로는 다리를 훑어 자기 무릎에 올려놓았다.
"일단은 당신 옷을 좀 어떻게 해야겠군."
그가 일어나며 자신까지 일으키자, 다프네는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균형 감각은 어디에 갔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고는 속삭였다.
"누워 있으면 옷을 벗기기가 힘들거든."
그의 한 손이 그녀의 엉덩이의 곡선을 찾아내어 둥글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말이지."
그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드레스를 위로 잡아당기느냐, 아래로 끌어내리느냐 하는 거지."
다프네는 그가 자신에게서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기만을 빌었다. 이 순간엔 단 한 마디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천천히 드레스 보디스에 달린 리본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물었다.
"아니면 양쪽 다인가?"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는 드레스를 아래로 잡아당겨 버렸다. 다리가 드러났다. 얇은 슈미즈만 남기고는 모두 벗겨져 버렸다.
"이거 놀랍군."
사이먼이 실크 위로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지. 실크는 피부처럼 부드럽진 않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니까."
다프네는 사이먼이 슈미즈 위로 가슴을 문지르는 것을 보고 숨쉬는 것을 잊어 버렸다. 달콤한 마찰에 유두가 꼿꼿이 일어났다.
"전혀 몰랐네."
다프네가 속삭였다. 숨결이 바싹 마른 입술 위에 뜨겁게 느껴졌다.
사이먼이 그녀의 다른 쪽 가슴에 눈을 돌렸다.
"뭘 몰랐다는 거요?"
"당신이 이렇게나 나쁜 사람이라는 걸 말이에요."
그는 천천히 악마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로 다가와 속삭였다.
"당신은 내 제일 친한 친구의 여동생이었잖아. 완전히 접근 금지 구역이었지.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소?"
다프네는 욕망에 몸을 떨었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귀에 단지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슈미즈 끈 하나를 어깨 너머로 벗겨내며 말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 상상하는 것 말고는."
"내 생각을 했었나요?"
다프네가 속삭였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이걸 상상했었나요?"
그녀의 엉덩이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매 순간 상상했었소. 내 피부가 뜨거워지고 내 몸이 열에 들뜰 때까지."
다프네는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그녀를 붙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그는 그녀의 목으로 움직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키스처럼 느껴졌다.
"그때야말로 내가 진정 외설스러워지는 때였지."
그녀의 입술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잔뜩 억눌린, 분간하기 힘든, 그리고 욕망으로 가득 찬 신음.
나머지 슈미즈 끈이 흘러내리자 사이먼의 입술이 가슴 사이의 골짜기를 찾았다.
"하지만 오늘밤......"
그는 한쪽 가슴을 드러나게 속옷을 밀어내며 속삭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가슴도 드러냈다.
"오늘밤은 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날이오."
그의 입술이 딱딱해진 유두 위에 내려앉자 다프네는 간신히 숨을 헐떡거릴 뿐이었다.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정원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이거였소. 당신은 알고 있었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를 잡아 몸을 지탱했다. 온몸이 옆으로 흔들리고 있어서 머리를 똑바로 세우기도 힘들었다.
순수한 감정의 경련이 몸을 휩쓸며 숨결과 균형감각, 심지어 생각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래, 그럴 리가 없겠지."
그가 중얼댔다.
"당신은 너무도 순수하니까."
기민하고 경험 많은 손가락으로 사이먼은 다프네의 나머지 옷을 벗겨내었다.
이제 그녀는 그의 품안에서 완전한 나신이 되었다. 그녀가 흥분한 만큼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자신의 옷을 벗는 그의 몸짓은 거칠었다. 피부가 불에 타는 듯했고, 온몸이 욕망으로 타올랐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다프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평생 처음 느낀 유혹이었다. 그녀의 피부가 흔들리는 촛불 아래 복숭아 껍질처럼 매끈하게 빛났고, 이미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다프네의 옷을 놀랄 만한 속도로 벗겨내었던 손가락이 이젠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져, 그는 단추를 풀며 계속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손이 바지로 갈 때 다프네가 몸 위로 시트를 잡아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러지 말아요."
그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내가 당신의 이불이 되어 주겠소."
그는 나머지 옷을 벗은 뒤, 그녀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침대로 다가가 자신의 몸으로 그녀의 몸을 덮었다.
그의 촉감에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몸이 살짝 굳었다.
"쉿."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목을 코로 비볐다. 한 손으로는 그녀를 달래듯 허벅지 위를 문질렀다.
"날 믿어요."
"당신을 믿어요."
다프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그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로 올라갔다.
"그저 뭐란 거요?"
그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사이먼의 가슴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만해요."
그녀는 그의 어깨를 찰싹 때리며 불평했다.
"당신을 비웃는 게 아니오."
사이먼이 우겼다.
"하지만 웃고 있었잖아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웃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아요. 변명해 봤자 소용없어요."
"웃고 있었소."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며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낮춰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깃털처럼 가볍게 쓸었다.
"당신을 만진 유일한 남자가 나라서 영광이오."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도 순수한 감정으로 반짝이는 바람에 사이먼은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정말이에요?"
그녀가 속삭였다.
"정말이오."
목소리가 너무 쉬어 있어서 그도 놀랄 지경이었다.
"영광스런 감정은 사실 절반밖에 안 되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을 곁눈질하는 남자가 있으면 죽여 버리겠소."
그가 투덜거렸다.
놀랍게도 다프네는 소리내어 웃었다.
"오, 사이먼."
그녀가 헐떡였다.
"그렇게 비이성적인 질투의 대상이 되다니 완벽할 정도로 멋진 기분이 들어요.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하게 될 거요."
사이먼이 선언했다.
다프네는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까지 유혹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혹적으로 눈을 빛냈다.
"어쩌면 당신도 내게 고마워할지 모르죠."
사이먼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허벅지가 스르르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남성이 그녀의 배에 닿았다.
"이미 고마워하고 있소."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내 말을 믿어요.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수년 간 훈련해 온 자제력이 이토록 고맙게 느껴지기도 처음이었다.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진실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온몸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두 사람의 신혼 첫날밤인 오늘밤은 다프네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그녀의 첫 번째 연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연인이었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원초적인 소유욕을 느꼈다. 그러므로 오늘밤 그녀에게 쾌락만을 선사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다프네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은 고르지 않았고 눈동자는 욕망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다.
욕망의 가쁜 숨이 몰아 나오는 반쯤 벌어진 그 입술을 볼 때마다 그녀의 몸 안으로 돌진하고 싶은 욕구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이먼은 그 대신 다프네에게 키스했다. 그녀의 온몸에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그녀가 헐떡이거나 신음 소리를 내뱉는 것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대는 것을 무시했다.
마침내 그녀가 몸을 비틀며 신음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프네가 준비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한 손을 그녀의 다리 사이에 집어넣어 그녀를 만졌다.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그녀의 이름뿐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신음처럼 나왔다.
그녀는 그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뜨거웠고 젖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어쩌면 자기 자신을 좀더 고문하고 싶은 기묘한 충동에 -그는 손가락 하나를 그녀 안에 넣어 그녀의 따스함을 가늠하며 그녀를 간질였다.
"사이먼!"
다프네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 아래에서 전신을 비틀었다. 그녀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가 거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항의하듯 흐느끼는 것도 무시한 채 갑자기 손을 치웠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로 그녀의 몸을 연 뒤 떨리는 신음을 내며 그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
그가 허스키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다, 당신에게 약속해......"
"그만."
다프네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신음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말이 아니었다. 사이먼은 단 한 번의 강렬한 돌진으로 그녀의 몸 안으로 완전하게 들어갔다.
그녀의 처녀성이 잠시 저항을 했지만, 그녀는 움찔거리지 않았다.
"괜찮소?"
사이먼이 신음하듯 물었다. 다프네 안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애쓴 나머지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그녀는 낮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이상한 느낌이에요."
"나쁘진 않소?"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도 절박하게 들려 창피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고 여성스런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전혀 나쁘지 않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하지만......아까 당신이......당신이 손가락으로......"
어두운 촛불 아래에서도 다프네의 뺨이 물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이걸 원하는 거요?"
사이먼은 속삭이며 그녀에게서 반쯤 몸을 뺐다.
"아뇨!"
그녀가 외쳤다.
"그럼 이걸 원하는 거로군."
그는 다시 그녀에게 몸을 묻었다.
다프네가 헐떡였다.
"네. 아니오. 둘 다요."
사이먼은 그녀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천천히 고르게 움직이려 애썼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입술에서 탄성이 새어나왔고, 그녀가 한 번 신음할 때마다 그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그녀의 신음이 거의 비명으로 바뀌었을 때, 그녀의 탄성이 흐느낌으로 바뀌었을 때, 그는 그녀가 절정에 다가갔음을 느꼈다.
그는 좀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완전한 절정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자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비명과 함께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꼭 붙잡고 그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엉덩이를 침대 위에서 치켜들었다.
마침내 격하게 몸을 떤 뒤, 그녀는 그 아래서 무너져 내렸다. 절정의 강렬한 힘 외에는 모든 것을 망각해 버렸다.
사이먼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깊숙이 몸을 묻은 뒤 달콤한 따스함을 음미했다.
그리고는 뜨겁고 격정적인 키스로 다프네의 입술을 훔치며 사이먼은 몸을 빼 그녀 옆 시트 위에 자신을 쏟아냈다.
그것은 그 후로 이어진 수많은 열정의 밤의 시작일 뿐이었다.
신혼 부부는 클라이브던으로 간 뒤 거의 일주일 동안 신방에서 틀어박혀 있었다.
다프네는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신방에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 정도로 창피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신방에서 나온 날, 다프네는 클라이브던 성 전체를 구경했다.
사실 그곳에 도착한 이래 두 사람은 현관에서 공작의 침실로 직행했기에, 다른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후에는 몇 시간에 걸쳐 시종장 및 집사 등 직위가 높은 하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처음 도착했을 때 하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소개를 하기는 했으나, 다프네는 하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사이먼이 클라이브던 성에 살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기에, 새로 들어온 많은 하인들이 그를 잘 몰랐다.
그러나 사이먼이 어릴 때부터 클라이브던에서 살아 왔던 사람들은 적어도 다프네의 눈에는 거의 광적으로 사이먼에게 충성했다.
단둘이 정원을 거닐 때 그녀가 웃으며 사이먼에게 그 얘기를 하자 사이먼은 무표정한 반응을 보였다.
"난 이튼으로 가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소."
그게 그가 말한 전부였다. 마치 그 말이면 모든 설명이 다 끝난다는 듯.
다프네는 너무도 심드렁한 그의 목소리에 금세 불편함을 느꼈다.
"런던까지 여행하신 적은 없어요? 왜, 어릴 때는 곧잘......"
"난 이곳에서만 살았소."
그의 목소리는 그가 대화를 끝내고 싶어한다고, 아니 끝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듯했지만, 다프네는 그걸 무시해 버리고 계속 말했다.
"정말 귀여운 아기였을 것 같아요."
그녀는 일부러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무척이나 장난스런 아이였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다들 당신을 돌봐줘야만 한다는 충성심에 불타는 것일지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프네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 오빠, 그러니까 콜린 오빠도 그런 식이었죠. 어릴 때는 그런 악마가 없었다니까요. 하지만 너무도 귀여워서 모든 하인들이 오빠를 사랑했죠. 왜, 한 번은......"
그녀는 당황해 말을 멈췄다.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사이먼은 이미 돌아서서 떠나 버렸으니까.
그는 장미에 관심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제비꽃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사이먼은 나무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마치 원예사로 직업을 바꾸려고 심각하게 고려하기라도 하는 양,
클라이브던 성이 자랑하는 정원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 다프네의 질문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증오했다. 그걸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다. 클라이브던 성에 머무르는 것도 사실 편하지 않았다.
그가 다프네를 어린 시절의 집으로 데려온 유일한 이유는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의 영지 중에 즉시 공작 부부를 맞을 준비가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사이먼은 어린 소년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보냈던 수많은 편지들과 답장을 기다렸던 헛된 시간을 떠올리기 싫었다.
하인들의 친절한 미소와 거기에 동반되는 연민의 시선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그의 아버지를 증오했다. 왠지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버지가 그리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피함이라든가 불편함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혹은 수치심일지도 모른다.
그는 존경받기를 원했지 동정받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혼자서 이튼으로 간 것이 그가 처음 거둔 성공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물론 그 어느 것도 다프네의 탓은 아니다. 그에게 어린 시절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에게 별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그가 말을 할 때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도 모른다. 그녀에게 그걸 감추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으니까.
아니다. 사이먼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프네 앞에서는 그걸 감추려고 노력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녀 곁에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자유롭게 했다. 최근에는 말을 더듬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화가 나거나 압박감을 느낄 때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의 인생이 어땠었건, 다프네와 함께 있을 때만은 분노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울타리에 몸을 기댔다. 죄책감이 들어 몸을 웅크렸다. 그녀에게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이다. 어째서 그녀에겐 계속 잘못을 저지르는 걸까.
"사이먼?"
사이먼은 다프네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뒤에서 다가왔다. 소리가 나지 않았어도 그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희미한 향수 냄새가 느껴졌고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군요."
다프네가 말했다. 자신을 달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에 비해 퍽 현명했고, 비록 틈만 나면 그에게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 남자들과 그들의 어리석은 성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적어도 오늘만큼은.
"어머니께서 심으셨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가 대답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훨씬 더 퉁명스럽게 튀어나왔지만, 사실은 화해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주기만을 바랐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머님은 날 낳으시다 돌아가셨소."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어요. 참 가슴 아픈 일이에요."
사이먼은 어깻짓을 했다.
"난 그분을 알지 못하오."
"그렇다고 그게 슬프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사이먼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어머니라고 해서 자신의 문제에 연민을 느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요."
그가 중얼거렸다.
"아마 그런 것 같소."
그날 오후 사이먼은 영지의 장부를 정리하느라 바빴고, 다프네는 이 기회에 하녀장인 콜슨 부인과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어디에서 살게 될 것인지 사이먼과 의논하지 않았지만, 사이먼이 어릴 때 자란 클라이브던 성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프네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레이디란 하녀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슨 부인과 친해지지 못하리라는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사이먼이 하인들에게 그녀를 소개할 때 콜슨 부인과 잠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한눈에도 친절하고 말이 많은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프네는 차를 마시기 조금 전에 주방 옆에 있는 콜슨 부인의 조그만 사무실에 들렀다.
오십 줄에 들어선 하녀장은 책상 위에 몸을 굽히고 이번 주의 식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다프네는 열린 문을 두드렸다.
"콜슨 부인?""
콜슨 부인은 고개를 들었다가 당장 일어섰다.
"공작 부인."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냥 저를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다프네는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귀족 가의 아가씨에서 공작 부인으로 승격한 것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냥 여기저기 구경을 하던 중이었어요. 잠시 시간을 내주면 좋겠군요.
부인은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고, 나 역시 앞으로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으니 서로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해서요."
콜슨 부인은 다프네의 따뜻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공작 부인. 특별히 제게 묻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지요?"
"별로요. 하지만 영지를 관리하려면 클라이브던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둬야 할 것 같아요.
노란 방에서 함께 차를 들겠어요? 그 방 장식이 마음에 들어요. 따스하고 햇살이 가득한 느낌이라서. 그곳을 내 개인 응접실로 쓰고 싶군요."
콜슨 부인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 공작 부인께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셨죠."
"오."
그 말에 불편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제가 몇 년 동안 그 방을 특별히 관리해 왔지요."
콜슨 부인이 말을 이었다.
"남향이라 해가 잘 드는 편이죠. 3년 전에 가구의 커버를 새로 씌웠답니다."
그녀는 자랑스레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똑같은 천을 구하려고 런던까지 갔다 왔었죠."
"그렇군요."
다프네는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서며 대답했다.
"먼젓번 공작님께서도 아내를 몹시 사랑하셨나 보군요. 그분께서 좋아하시던 방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공을 들이신 걸 보니."
콜슨 부인은 다프네의 눈을 피했다.
"저 혼자만의 결정이었답니다."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공작님께서는 집을 관리하라고 일정한 금액을 제게 주셨지요. 돈을 어디에 쓰는가는 주로 제가 결정했답니다."
다프네는 하녀장이 하녀를 불러 홍차를 부탁하는 동안 기다렸다.
"아름다운 방이에요."
함께 부엌을 나서며 그녀가 말했다.
"비록 현 공작께선 어머님을 모르시지만,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방을 보존하기 위해 부인이 특별히 노력했다는 것을 아시면 상당히 기뻐하실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인 걸요."
콜슨 부인은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전 원래 바셋 가를 모신 게 아니었답니다."
"그래요?"
다프네가 호기심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원래 지위가 높은 하인들의 충성심은 악명이 높을 정도라, 대부분 한 가문을 대를 이어 모신다.
"전 원래 공작 부인의 전속 시녀였답니다."
콜슨 부인은 노란 방의 문가에 서서 다프네가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전에는 공작 부인의 말벗이었고요. 제 어머니가 그분의 유모였기 때문이었죠.
공작 부인의 가족들은 친절하게도 제가 그분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상당히 가까웠겠군요."
다프네가 중얼거렸다. 콜슨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부인께서 돌아가신 뒤, 저는 이곳 클라이브던 성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다가 결국 하녀장이 되었답니다."
"그랬군요."
다프네는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앉아요."
그녀는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콜슨 부인은 약간 망설이다가 결국은 자리에 앉았다.
"그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전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다프네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괜찮으실지."
"물론이에요."
다프네가 얼른 말했다. 다프네는 사이먼의 어린 시절이 몹시 궁금했다. 그는 말수가 매우 적은 편이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다.
"더 말해 줘요. 그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콜슨 부인의 눈에 안개가 꼈다.
"그분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따스한 분이셨어요. 그분과 공작님은......뭐, 사랑으로 결합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두 분은 잘 지내셨어요.
나름대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셨죠."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두 분께선 공작과 공작 부인으로서 해내야 할 의무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계셨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의무를 몹시 심각하게 받아들이셨죠."
다프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부인께선 아들을 낳으시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하셨죠. 나중에 의사들이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에도 단념하지 않으셨어요.
그분께선 매달 달거리를 하실 때마다 제 품에 안겨 우셨답니다."
다프네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굳어진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괴로웠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테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리라.
모두들 그녀에게 물으리라. 조심스럽게, 그러나 딱하다는 투로 물어올 것이다.
다행히 콜슨 부인은 다프네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분은 늘 공작님께 아들을 낳아드리지 못하면 당신께선 공작 부인의 자격이 없다고 하셨죠. 제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다달이 그랬었죠."
다프네는 자신의 마음도 그렇게 매달 찢어지리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사이먼의 어머니는 아마 4주에 한 번씩 희망이 송두리째 뽑히는 기분을 맛보았을 테지.
"게다가 모두들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것이 공작 부인의 탓인 양 수군거렸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항상 여자가 불임인 건 아니니까요. 종종 남자의 탓일 때도 있답니다."
다프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항상 그분께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그래도 죄책감을 느끼셨지요. 전 그분께 말씀드렸어요......"
하녀장의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요."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제 어미가 제게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해 드렸지요. 자궁은 건강하고 튼튼한 씨앗이 없으면 살아나지 않는다고요."
다프네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이먼 도련님을 얻으셨지요."
콜슨 부인은 엄마처럼 한숨을 내쉰 뒤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실례했습니다, 마님."
그녀가 얼른 말했다.
"그분을 그렇게 불러선 안 되겠지요. 이제는 공작님이시니까요."
"굳이 신경 쓰지 말아요."
다프네는 미소를 지었다.
"제 나이가 되면 뭔가를 바꾼다는 게 참 어렵지요."
콜슨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 일부분은 언제나 그분을 불쌍하고 딱한 소년으로 기억할 테지요."
그녀는 다프네를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
"공작 부인께서 살아 계셨다면 훨씬 더 편하게 지내셨을 텐데."
"훨씬 더 편하게 지내다뇨?"
다프네는 콜슨 부인이 더 설명해 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물었다.
"공작님께선 절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셨지요."
콜슨 부인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공작님께선 그분을 바보라고 부르고......"
다프네는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공작님께서 사이먼이 바보인 줄 아셨다고요?"
그녀가 끼여들었다. 말도 안 된다. 사이먼은 그녀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던가.
한 번은 그에게 옥스퍼드에서 무엇을 공부했느냐는 질문을 했다가, 그가 공부한 수학은 숫자조차 쓰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공작님께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셨지요."
콜슨 부인은 코웃음을 쳤다.
"공작님은 그분께 단 한 번도 기회를 주시지 않았어요."
다프네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공작은 사이먼에게 무슨 짓을 했을까? 그래서 아버지를 입에 올릴 때마다 사이먼이 그렇게 냉정한 얼음장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콜슨 부인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찍었다.
"그분께서 얼마나 노력을 하셨는지, 마님께서도 보실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가슴이 아팠죠. 정말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다프네는 소파를 움켜쥐었다. 도대체 언제쯤 본론으로 들어갈 참이지?
"하지만 그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공작님 마음에 차질 않았어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일 뿐이지만......"
그 순간 하녀가 홍차를 들고 들어왔다. 다프네는 화가 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찻잔을 내려놓고 차를 따르는 데 거의 2분이 걸렸다.
그 와중에 콜슨 부인은 비스킷이 이러니 저러니 수다를 늘어놓으며 설탕을 몇 스푼 넣느냐는 둥 질문을 해댔다.
다프네는 콜슨 부인이 원래대로 복원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는 소파에 구멍을 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소파에서 손을 뗐다.
마침내 하녀가 나가자, 콜슨 부인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아, 어디까지 얘기했었지요?"
"공작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다프네가 얼른 말했다.
"전 공작님 말이에요. 무얼 하건 전 공작님의 눈에 차지 않았고, 콜슨 부인의 생각은......"
"어머, 제 얘기를 정말 듣고 계셨군요."
콜슨 부인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하려던 말이......"
다프네가 채근했다.
"아, 네. 그렇지요. 전 그저 공작님께서 아드님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말씀을 드리려던 것이었어요."
"하지만 콜슨 부인."
다프네가 나직하게 말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아요."
"물론이에요. 하지만......"
하녀장은 전 공작을 떠올리며 혐오감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만일 마님께서도 전 공작님을 아셨다면 제 말을 이해하셨을 거예요. 공작님은 무척이나 오랫동안 아드님을 기다리셨죠.
게다가 그분께 바셋이란 이름은 완벽함과 동일한 뜻이었어요."
"그런데 그이는 그분이 원하던 아들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다프네가 물었다.
"그분은 아들을 원한 게 아니에요. 당신을 그대로 빼다 박은 복제품을 원하셨던 거죠."
다프네는 더 이상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사이먼이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콜슨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어머, 모르셨군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연히 모르셨겠지요."
"뭐라고요?"
다프네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뭐라고 했나요?"
"말을 못하셨어요. 네 살이 될 때까지요. 그리고 그 때에도 말을 더듬으셨지요. 그분이 입을 여실 때마다 전 가슴이 아팠어요.
전 그분 안에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단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말을 하잖아요."
다프네는 놀라서 방어조로 말했다.
"난 그분이 말을 더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봤다고 하더라도 나, 난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 이봐요! 나도 방금 말을 더듬었잖아요.
누구나 감정이 격해지면 말을 더듬는 거라구요."
"도련님께선 그걸 고치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쓰셨어요. 제 기억이 맞다면 7년이 걸렸을 거예요. 7년 동안 그분은 유모와 함께 말하는 법만 연습하셨답니다."
콜슨 부인의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가만있자. 그 여자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홉킨스 유모. 그 사람은 천사였어요.
마치 자기 자식 대하듯 도련님께 헌신했죠. 그 당시에 전 하녀장 보조였지만, 가끔 그분의 말 연습을 도울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힘이 들었나요?"
다프네가 속삭였다.
"어떤 때는 좌절감 때문에 그분이 산산조각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답니다. 하지만 그분은 무척이나 완고하셨죠.
정말 고집이 세셨답니다. 그렇게 한결 같은 분은 처음 봤어요."
콜슨 부인은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분 아버님은 그분을 거부하셨지요. 정말이지 전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겠죠."
다프네가 대신 말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예요."
콜슨 부인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길고 불편한 침묵이 뒤따랐다.
"함께 차를 마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작 부인."
그리고 다프네의 침묵을 언짢아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말했다.
"공작 부인께서 미천한 제게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주시다니, 몹시......"
다프네는 부인이 적당한 단어를 찾느라 뜸을 들이자 고개를 들었다.
"친절하십니다."
하녀장이 마침내 말했다.
"몹시 친절한 배려이셨습니다."
"고마워요."
다프네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오, 클라이브던에 대한 공작 부인의 질문에 대답도 못해 드렸군요."
콜슨 부인이 갑자기 말했다.
다프네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다음 번에 하도록 하지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콜슨 부인은 고용주가 혼자 있길 원한다는 눈치를 채고 일어서서 절을 한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