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23)

14 

헤이스팅스 공작과 브리저튼 양은 조촐하지만 멋진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히아신스 브리저튼(10살)은 펠리시티 페더링턴 양(역시 10살)에게 신랑 신부가 결혼식 도중 실제로 소리를 내어 웃었다는 말을 속삭였다. 펠리시티 양은 그 후 이 소식을 어머니인 페더링턴 부인에게 전했으며, 페더링턴 부인이 이 소식을 온 세상에 알렸다. 

본 필자는 결혼식에 초대되지 못했기에, 히아신스 양의 말을 믿는 도리밖에 없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5월 24일. 

신혼 여행은 특별히 가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신혼 여행을 계획할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대신, 사이먼은 바셋 가가 오래 전부터 소유해 왔던 클라이브던 성에서 몇 주 동안 지내기로 했다. 다프네는 좋은 생각이라 여겼다. 그녀 역시 런던과 사교계의 눈과 귀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게다가 사이먼이 자랐다는 곳을 무척 보고 싶었다. 

그가 어린 소년일 때는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교계 사람에게 보이는 절제된 매너를 가진 조용한 아이였을까? 

부부는 가족들의 축복 속에 브리저튼 저택을 떠났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마차에 태웠다. 아직 여름이었지만 꽤 쌀쌀했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다프네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좀 심하지 않아요? 당신 집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 텐데." 

그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클라이브던으로 가는 거요." 

"오늘밤에요?" 

그녀는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다음날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이브던 마을은 영국 남동부 해안가 끄트머리에 있는 헤이스팅스 영지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벌써 늦은 오후였다. 성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한밤중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프네가 상상했던 결혼 첫날밤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밤은 런던에서 묵고 내일 클라이브던으로 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채비는 이미 끝났소." 

그가 투덜댔다. 

"아......그렇군요." 

다프네는 실망감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녀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아무리 훌륭한 마차라도 바퀴 아래 울퉁불퉁한 자갈 때문에 덜컹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차가 하이드 파크를 돌 때 그녀가 물었다. 

"여관에 들를 건가요?" 

"물론이오. 저녁도 먹어야 하고. 결혼 첫날부터 당신을 굶길 수야 없지 않겠소?" 

"거기서 밤도 보내게 되나요?" 

다프네가 끈질기게 물었다. 

"아니, 우린......" 

사이먼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심장이 녹아 내릴 것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좀 딱딱거렸나?"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가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얼굴이 먼저 달아올랐다. 

"아뇨, 아뇨. 그저 저는 놀라서......" 

"당신 말이 맞아요. 우린 여관에서 밤을 보낼 거요. 가는 길 중간쯤에 괜찮은 여관을 하나 알고 있지. 헤어 앤 하운드라는 곳인데, 음식은 뜨겁고 침대는 깨끗하지." 

그는 그녀의 턱을 건드렸다. 

"쉬지도 않고 클라이브던까지 가는 강행군으로 당신을 괴롭혀서야 안 되지." 

"금세 나가떨어지는 약골은 아닌걸요." 

그녀는 그 다음 해야 할 말을 떠올리며 얼굴을 더더욱 붉혔다. 

"우리는 오늘 결혼했으니까, 만일 우리가 여관에 묵지 않는다면 밤이 왔을 때도 우린 마차에 있을 거고, 그러면......"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그가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다프네는 고맙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결혼 첫날밤의 일을 들먹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원래 아내가 아닌 남편들이 알아서 하는 문제였으니까. 게다가 그 문제에 관한 한 그녀보다도 사이먼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설마 나보다도 더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갖은 생색은 다 냈지만 결국 어머니가 말해 준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아, 물론 아기가 생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해 주었지만, 다프네는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다프네는 숨이 턱 막혔다. 만일 사이먼이 할 수 없다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아냐, 그녀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는 분명히 원하고 있을 거야. 아니, 그는 날 원하고 있어. 그날 밤 정원에서 그의 눈 속에 피어오르던 불꽃이나 마구 두근거리던 그의 심장은 그저 그녀의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다. 

그녀는 창 밖을 내다보며 어느새 바깥 경치가 시골 풍경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았다. 계속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하면 머리가 돌아 버릴 거야. 이만 잊어버리자. 이런 문제는 완전히, 영원히, 깨끗이 지워 버리는 게 좋아. 

아, 적어도 오늘밤이 오기까지는 말이야. 

내 결혼 첫날밤.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사이먼은 다프네를 - 아니, 이젠 자신의 아내라고 스스로에게 일깨웠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 훑어보았다. 평생 아내를 얻지 않을 작정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내를 얻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다프네 브리저튼, 아니, 이제는 다프네 바셋과 함께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아니지, 이젠 헤이스팅스 공작 부인이라 부르는 게 옳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의 평생 헤이스팅스 공작 부인 자리는 비어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위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사이먼은 길게 숨을 내쉬며 다프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 춥소?" 

그가 물었다.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아니"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혀를 움직였다. 

"네, 네. 조금요. 걱정하실 필요는......" 

사이먼은 그녀의 몸에 담요를 더 꼭 둘러주며 도대체 왜 그런 사소한 일에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했다. 

"피곤한 하루였소." 

그가 중얼거렸다. 굳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런 순간에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옳을 듯했다. 

그녀를 달래고 위로하는 자상한 말을 여러 가지 생각해 두었다. 좋은 남편이 되도록 노력할 작정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의 배려는 받아 마땅한 여자니까. 다프네에게 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진실과 완전한 행복이 그것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녀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비교적 만족스럽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선택했다. 자식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를 선택했다. 그 보답으로 최소한 자상하고 충실한 남편은 되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즐거웠어요." 

다프네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눈을 깜박인 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했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충분히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다. 따스하고 장난스럽고 약간 짓궂은 미소. 갑자기 복부에서 욕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다. 

"피곤한 하루였다고 하셨잖아요. 전 즐거운 하루였다고요." 

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피곤한 하루였다고 했잖아요." 

다프네가 다시금 되풀이했다. 

"난 즐거웠다고 했고요." 

그래도 여전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네"와 "그렇지만"을 덧붙였더라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그렇지만 즐거웠어요"라고요." 

"그렇군." 

그는 최대한 진지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보는 건 많은데 반쯤은 그냥 무시해 버리는 사람인가 봐요."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고, 그녀는 또다시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이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여관에는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사이먼은 긴장을 누그러뜨리려고 일부러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나아질 것은 없었다. 신혼 첫날밤을 하루나 연기해 버렸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내일은 하루종일 욕망과 싸워야 할 테지. 그의 몸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청결하고 깔끔하다고 해도, 길가에 있는 여관에서 그녀를 안을 수는 없었다. 

다프네를 그렇게 대접해선 안 된다.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혼 첫날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프네는 주제가 갑자기 바뀌어서인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이군요." 

"어둠이 내린 뒤에 여행을 계속하는 건 안전하지가 않아서." 

원래는 밤새도록 길을 달려 클라이브던으로 가려던 계획이었다는 것은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요." 

그녀가 동의했다. 

"그리고 배도 고플 테고." 

"네." 

다프네는 그자 갑자기 반드시 여관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듯하자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사이먼이 말했다. 

"음식이 꽤 괜찮다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아까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는 헛기침을 했다. 

"난 이만 눈을 좀 붙여야겠소."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고 물었다. 

"지금 당장이오?" 

사이먼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친절하게도 지적해 주었다시피, 내가 계속 아까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피곤한 하루였잖소." 

"그렇지요." 

그녀는 그가 편하게 자세를 잡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물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정말 주무실 수 있어요?" 

그는 어깻짓을 했다. 

"난 자고 싶으면 언제든 잘 수 있소. 여행 도중에 익힌 버릇이지." 

"재능이군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꽤 쓸모가 있지."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눈을 감고 세 시간 동안이나 자는 척을 했다. 

다프네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가 일곱이나 되다 보니, 그녀는 세상에 알려진 모든 속임수를 다 꿰뚫고 있었다. 사이먼은 절대 잠자는 것이 아니다. 

가슴이 놀랄 만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숨소리도 고르게 났다. 하지만 다프네는 속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이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숨을 좀 크게 쉴 때마다 그의 턱이 움찔거렸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분명히 그랬다. 그녀가 하품을 하거나 낮게 졸린 듯한 소리를 낼 때마다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놀라운 것은 두 시간이 넘도록 여전히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프네였다면 20분 이상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자는 척을 하고 싶은 거라면 그냥 내버려두리라 마음먹었다. 그의 놀라운 연기를 망쳐 놓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려고 마지막으로 커다랗게 하품을 한 뒤, 그녀는 두꺼운 벨벳 커튼을 젖히고 마차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하늘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3분의 1은 이미 서쪽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 버린 상태였다. 

사이먼의 얘기가 맞다면 클라이브던까지 반 정도 온 것 같았다. 헤어 앤 하운드 여관이 가깝다는 얘기이다. 

그 말은 결국 그녀의 신혼 첫날밤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세상에. 이런 생각은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 점점 더 이상한 쪽으로만 생각이 치닫는다. 

"사이먼?"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사이먼?" 

이번에는 좀더 크게 불렀다. 

그의 입가가 살짝 실룩거리며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다프네의 목소리가 그를 깨우기에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계속 자는 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이먼!" 

그녀는 그를 찔렀다. 오른쪽 겨드랑이를 세게 찔렀다. 설마 그런 상황에서도 잠을 계속 자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사이먼도 생각할 테지.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는 기묘한 숨소리를 냈다. 마치 잠에서 막 깨어나는 사람처럼. 

정말 잘하는데. 

"다프?"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 왔나요?" 

그는 짐짓 졸린 척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뭐라고 했소?" 

"다 왔느냐고요?" 

"어......" 

그는 마차 안을 둘러봤다. 

"마차가 아직 굴러가고 있잖소?" 

"그래요. 하지만 거의 다 온 거죠?" 

사이먼은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아, 바로 저 앞이로군." 

마차가 멈춰 섰고, 사이먼이 먼저 뛰어내렸다. 그는 마부와 몇 마디 말을 나눴다. 아마도 계획이 바뀌어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간다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프네의 손을 잡아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마음에 드오?" 

그가 여관 쪽을 눈짓하며 물었다. 

여관 안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다프네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사이먼은 그녀를 여관 안으로 데리고 가 문가에 세워두고 여관 주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다프네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여관 안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식당으로 안내되고 있었고, 한 여자가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사이먼은 여관 주인과 뭔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큰 키에 마른 체구의 신사 하나가 벽에......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사이먼이 여관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고? 왜 그래야 하지? 그녀는 시선을 집중시켰다. 두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사이먼은 뭔가 불만스러워하는 듯했다. 여관 주인은 헤이스팅스 공작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워 금방이라도 혀를 물고 자결이라도 할 기색이었다. 

다프네는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내가 끼여들어야 하는 건가? 

그녀는 두 사람이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몇 분 동안 지켜보았다. 그런 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프네는 남편의 곁에 다가섰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그녀가 정중하게 물었다. 

사이먼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문가에서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랬지요."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였답니다." 

사이먼은 얼굴을 찌푸리며 여관 주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프네는 그가 돌아봐 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작게 기침을 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시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사이먼?" 

그녀는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사이먼?" 

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다프네는 여전히 순진한 척 미소를 지었다. 

"문제가 뭐죠?" 

여관 주인은 손을 번쩍 치켜들며 사이먼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방이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는 사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 각하께서 저희 여관을 찾아 주시는 영광을 베풀어 주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마지막 방을 웨더비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내주지 않았을 텐데요." 

여관주인은 다프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웨더비 부인이란 여자가 방금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간 사람인가요?"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넷만 아니었더라도......" 

다프네는 더 이상 이 야밤에 불쌍한 여자를 쫓아내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가 듣기 싫어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방 하나에서 밤을 보낸다고 안 될 것도 없죠. 우리는 그 정도로 까다롭지 않아요." 

옆에서 사이먼이 그녀에게 들리도록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는 방 두 개를 원했다. 

여관 주인은 사이먼을 바라보며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사이먼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관 주인은 기뻐서 박수를 쳤다. 어쩌면 안도감일지도 모른다. 

공작이 자신의 여관에서 분노를 터뜨려 봐야 장사에 보탬이 될 것은 없으니까. 그는 열쇠를 움켜쥐고 얼른 책상 뒤에서 달려나왔다. 

"따라오십시오." 

사이먼은 턱짓으로 다프네보고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프네는 여관 주인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몇 번 모퉁이를 돈 뒤, 마을의 광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가구가 편안하게 배치되어 있는 방에 다다랐다. 

"괜찮군요." 

다프네는 여관 주인이 나가자마자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사이먼은 끙 소리를 낼 뿐이었다. 

"표현을 상당히 정확하게 하시는군요."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옷을 갈아입는 칸막이 뒤로 들어갔다. 

사이먼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깨달았다. 

"다프네?" 

그는 잔뜩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지금 옷을 갈아입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아뇨, 그냥 둘러보는 중이에요." 

그의 심장이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가 내뱉었다. 

"다행이군. 아래층에 곧 저녁 식사가 준비될 거요." 

"네."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의 눈에는 짜증스러울 정도로 자신 만만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로 비쳤다. 

"배고프세요?" 

"무척." 

그의 딱딱한 말투에 그녀의 미소가 흔들렸다. 사이먼은 스스로를 꾸짖었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못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녀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당신은?"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칸막이 뒤에서 나와 침대 끝으로 걸어갔다. 

"조금이요." 

그녀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뭘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여기서 식사를 했을 때 음식이 아주 훌륭했소. 분명 당신도......" 

"음식의 질을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녀가 끼여들었다. 

"너무 긴장해서 그래요."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이먼." 

그녀는 초조함을 감추려 애썼다. 그래도 사이먼의 눈에는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우린 오늘 아침에 결혼했어요." 

마침내 그도 깨달았다. 

"다프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걱정할 일은 없을 거요."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없다고요?" 

그녀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남편의 역할을 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클라이브던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기서 신방을 차릴 거요." 

"그래요?" 

사이먼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실망한 것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당신을 길거리에 있는 여관에서 안을 생각을 없소. 그러기엔 당신을 너무 존중하고 있소." 

"안 그러실 거라고요? 그래요?" 

그는 숨을 멈췄다. 정말 실망한 목소리였다. 

"어, 그렇소." 

그녀는 앞으로 다가왔다. 

"왜요?" 

사이먼은 잠시 다프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랗고 짙은 눈동자 속에 그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부드러움과 호기심과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입술을 핥았다. 

분명히 초조해서 한 행동일 테지만,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사이먼의 육체는 그 유혹적인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녀는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아요." 

사이먼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육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를 넘어뜨려! 그녀를 침대로 끌고 가! 무슨 짓을 해서든 그녀를 네 아래 눕혀 버려! 

급박함이 그의 명예를 찍어누르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괴로운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벌떡 일어나 손으로 입을 막고 등을 돌렸다. 

그녀를 잡아당기려고 팔을 허공으로 뻗고 있던 사이먼은 그 순간 균형을 잃고 침대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다프네?" 

그는 매트리스에 대고 웅얼거렸다.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녀가 흐느꼈다. 

"정말 미안해요." 

뭐가 미안하다고? 사이먼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흐느끼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다프네가 흐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고통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리 갑작스레 기분이 상한 것일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겠지. 

"다프네?" 

그는 억지로 부드럽게 물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소?" 

그녀는 침대 반대편에 앉아 그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속삭였다. 

"내가 너무 둔했어요.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뭘 알아차렸어야 했다는 거요?" 

그는 이를 갈며 물었다. 

그녀는 손을 치웠다. 

"그러니까 당신은 할 수 없다는 걸......그러니까 당신은......" 

"뭘 할 수 없다는 거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을 미친 듯이 쥐어뜯고 있었다. 

"제발 내가 그 말을 입에 올리게 하지 말아요." 

"이래서 남자들이 결혼을 꺼려하는 거로군." 

그건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그 말을 들어버렸고, 그녀의 입술에선 또 다른 연민의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가 마침내 물었다. 

"당신은 첫날밤을 보낼 수 없잖아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얼어붙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아니,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좋은 아내가 될게요.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더듬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어린 시절 이래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지금 내가 고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왜, 왜?" 

지금 나는 말을 더듬는 건가, 아니면 그저 충격 때문인가? 아마도 충격 때문일 것이다. 머리 속에 그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남자들이 그 문제에 관해서는 몹시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다프네가 조용히 말했다. 

"특히 그게 사실이 아닐 때는 더더욱 그렇겠지!" 

사이먼이 버럭 외쳤다. 

다프네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실이 아니에요?"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오빠가 그 말을 해주던가?" 

"아니에요!" 

그녀는 그를 외면했다. 

"어머니께서." 

"당신 어머니가?" 

사이먼은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결혼 첫날밤부터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 신랑은 아마 세상에 다시 없으리라. 

"당신 어머니가 내가 고자라고 말씀하셨단 말이오?" 

"그게 정확한 단어인가요?" 

다프네는 궁금한 듯 묻고는 그의 노한 시선에 얼른 덧붙였다. 

"아뇨, 아뇨. 그렇게 딱 한 단어로 말씀하시진 않았어요." 

사이먼은 한 음절씩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그럼 도대체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소?" 

"글쎄요, 별로 많이 말씀하시진 않았어요." 

다프네가 인정했다. 

"그래도 결국 결혼의 의무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셨고......" 

"의무라고 말씀하셨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그는 넘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셨소?" 

"어머니께선 그러니까, 아, 당신이 그걸 뭐라고 부르시건 간에......" 

사이먼은 이 순간에도 위트를 잊지 않는 다프네를 높이 샀다. 

"그게 자식을 낳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사이먼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아, 네." 

다프네는 얼굴을 찌푸렸다. 

"자세한 설명은 해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런 것 같군." 

"최선을 다하시긴 했어요." 

다프네는 적어도 어머니의 변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부끄러워하셨어요."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지." 

그가 내뱉었다. 

"그렇지 않은 모양이에요."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이......" 

그녀는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의무란 단어말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냥 넘어갑시다." 

그는 기묘하게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짓을 했다. 

다프네는 걱정스레 눈을 깜박였다. 

"당신, 괜찮은가요?" 

"아주 좋소." 

그는 헛기침까지 했다. 

"별로 괜찮은 것 같지 않은데요." 

그는 손짓을 더 했다.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천천히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의무를 여덟 번 치르셨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몹시 부끄러워하시면서......" 

"어머니께 그렇게 물었다고?" 

사이먼의 입에서 단어가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아, 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웃고 계시는 건가요?" 

"아니." 

그가 헐떡였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였다. 

"웃고 계신 것 같은데요." 

사이먼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다프네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내 질문이 충분히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자식을 여덟 명이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내게......" 

사이먼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이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제발 말하지 말아요. 부탁이오." 

"오." 

다프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무릎 위에 양손을 포개고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사이먼이 길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를 후회할 게 뻔하지만, 아니, 벌써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도대체 왜 내가......" 

그는 몸을 떨었다.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잖아요." 

"다프네,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거요." 

다프네는 이를 갈았다. 그녀가 내뱉었다. 

"제 자신이 얼마나 바보스런 기분이 드는지, 정말 싫어요."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인 뒤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프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거요?" 

"전혀 몰라요."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빠가 셋이나 되니까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하시겠죠. 저만 해도 어젯밤 어머니가 들어오셨을 때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겠구나 생각......"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그가 기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 한 마디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 

"하지만......" 

그는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동안 다프네는 그가 우는 거라 생각했다. 

첫날밤부터 남편을 울게 만든 자신을 마구 꾸짖고 있는 차에, 그녀는 그의 어깨가 웃음으로 들썩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절 비웃는 건가요?" 

그녀가 으르렁댔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웃고 계시는 거죠?" 

"오, 다프네." 

그가 헐떡였다. 

"당신은 배울 게 무척 많아."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토를 달지 않겠어요." 

그녀가 투덜거렸다. 

사람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결혼의 진실에 대해 그토록 꼭꼭 숨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가르쳐 주겠소." 

그가 속삭였다. 

다프네의 위가 갑자기 꿈틀거렸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사이먼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가져갔다. 

"당신에게 보장하지." 

그는 그녀의 가운데 손가락을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난 당신을 침대에서 만족시켜 줄 능력을 가지고 있다오." 

다프네는 갑자기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언제부터 방안이 이렇게 더웠지? 

"나,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그녀를 품안에 끌어당겼다. 

"알게 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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