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23)

13 

헤이스팅스 공작과 브리저튼 양이 결혼식을 올린다! 

본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일찍이 예견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바이다. 

본지의 칼럼을 통해 미혼 신사와 레이디의 만남이 보도되면 귀족 남성 클럽의 도박금 장부의 승률이 순식간에 바뀌게 되며, 

어느 경우에나 결혼 쪽의 확률에 거는 신사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본 필자의 귀에 들어왔다. 

비록 본 필자는 화이트 클럽에 출입할 수 없으나, 

공작과 브리저튼 양의 경우, 결혼 쪽에 돈을 건 사람의 수가 2대 1로 우세했다는 정보원의 말을 이곳에 옮기는 바이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5월 21일. 

한 주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다프네는 사이먼을 며칠 동안이나 보지 못했다. 

결혼식 진행 상황을 의논하기 위해 앤소니가 헤이스팅스 저택에 다녀왔다는 말만 듣지 못했어도 아마 사이먼이 런던을 떠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지경이었다. 

사이먼은 단 한 푼의 지참금조차 받는 것을 거절해 앤소니를 놀라게 했다. 

마침내 두 남자는 앤소니의 아버지가 다프네의 결혼을 위해 남겨둔 재산으로 다프네에게 신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신탁의 관리자는 앤소니가 될 것이며,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다프네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네가 원한다면 이 돈을 네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어." 

앤소니의 말에 다프네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런 말에 대한 대답은 미소나 울음 중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사이먼이 오후에 브리저튼 저택을 방문했다. 결혼식 이틀 전이었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험볼트에게 들은 뒤 다프네는 응접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소파 끝에 새초롬히 앉아 등을 곧게 펴고 양손을 모아 무릎에 얹은 것이 마치 영국 귀족 여성의 전형적인 본보기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불안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장의 안팎이 뒤집어져 신경이 모두 밖으로 솟구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프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초승달 같은 빨간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밖으로 솟구친 신경다발에 화살이 꽂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불붙은 화살이라는 게 더 정확하리라. 

자신이 제정신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사이먼을 만나는 것이 이토록 불안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우정을 나눌 때는 더없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가끔씩 이글거리는 열기를 가득 담은 시선으로 자신을 훔쳐보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도, 

자신의 눈 속에 똑같은 열망이 피어오르고 있으리라 확신했을 때도 그녀는 그가 편안하기만 했다. 

물론, 위가 뒤집히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건 욕망이라 불리는 것이지 불편함이 아니었다. 

사이먼은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을 때 느끼곤 했던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는 것을 이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편안한 동반자의 관계로 돌아가리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리젠트 파크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 뒤라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좋은 오후요, 다프네." 

사이먼이 문가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감으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사실 그의 존재감은 평소보다 조금 덜 강렬한 경향이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여전히 보라색 멍이 들어 있었고, 턱에 있는 멍은 벌써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총을 맞아 심장에 구멍이 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사이먼, 이렇게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어인 일로 브리저튼 저택을 방문해 주셨는지요?" 

그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약혼한 사이가 아니었소?"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네, 물론 그렇지요." 

"원래 남자들이란 자신의 약혼자를 방문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는 그녀 반대편에 앉았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잘 모르겠네요." 

다프네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 어머님이라면 분명히 하셨을 만한 말이로군요." 

두 사람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잠시 동안 다프네는 모든 것이 다 원래대로 잘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미소가 사라지자 불편한 침묵이 방안을 채웠다. 

"눈은 좀 나으셨나요?" 

그녀가 마침내 물었다. 

"이젠 붓기가 좀 빠진 것 같군요." 

"그런가?" 

사이먼은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거울로 얼굴을 돌렸다. 

"난 멍이 참 예쁘게 푸른색으로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보라색이에요." 

그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몸을 앞으로 숙였지만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럼 그냥 보라색이라고 해둡시다." 

"아픈가요?" 

사이먼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누가 눌러 볼 때만." 

"그렇다면 눌러 보지 말아야겠군요." 

그녀는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꼭 한 번 눌러 보고 싶지만, 참아야만겠죠." 

그는 완벽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소. 여자들은 나만 보면 언제나 내 눈 주위를 찔러 보고 싶어진다더군." 

다프네가 미소 짓자 그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곧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테지. 사이먼은 헛기침을 했다. 

"오늘 당신을 찾아온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소." 

다프네는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보석 상자를 내밀었다. 

"당신 거요." 

그녀는 조그만 벨벳 상자로 손을 내밀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에요?" 

"약손 반지라는 게 예식상 꼭 필요한 게 아니었던가?"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아. 전 참 어리석군요. 그게 약혼반지인 줄은......" 

"몰랐단 말이오? 그럼 뭐라고 생각했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그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뭔가를 주기에 너무 기뻐서 그가 자신에게 약혼반지를 주어야만 한다는 것조차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이먼이 이 반지를 고를 때 억지로, 의무감을 가지고 고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다프네는 간신히 미소를 쥐어짰다. 

"이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석인가요?" 

"아니오!" 

너무도 강하게 부정하는 통에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그렇군요." 

또 다른 어색한 침묵. 

그는 기침을 한 뒤 말했다. 

"난 당신이 당신만의 반지를 갖고 싶어할 것 같았소. 헤이스팅스 가의 보석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택된 것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건 당신을 위해 내가 고른 거요." 

다프네는 자신이 그 순간 녹아 내리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다정한 말이로군요."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사이먼은 어색한 듯 앉은 자세를 바꿨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남자들은 다정하다고 하면 싫어하는 법이니까. 

"열어보지 않을 거요?" 

그가 투덜거리며 물었다. 

"아, 네. 물론이지요." 

다프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참 어리석은가 봐요."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박인 뒤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하나님 맙소사"란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목소리보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상자에 곱게 놓인 백금 반지, 커다란 마르키 컷(사람 눈 모양의 세공)의 에메랄드 양쪽을 장식하는 완벽한 다이아몬드 두 개. 다프네가 평생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눈부시면서도 우아하고, 무척 값지면서도 천박하게 과시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아름다워요." 

그녀가 속삭였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이오?" 

사이먼은 장갑을 벗고 몸을 앞으로 숙여 상자에서 반지를 꺼냈다. 

"이걸 껴야 할 사람은 당신이니까, 내가 아닌 당신의 취향에 맞아야지." 

다프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우리 두 사람은 취향이 비슷한가 보군요." 

사이먼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 뒤 다프네의 손을 잡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그녀가 반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둘도 없는 친구였던 다프네 곁에 있는데 이토록 초조해지다니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것이 싫었다. 그녀 앞에서라면 말을 멈추고 단어를 고르거나 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더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뿐이었다. 

"끼워 줘도 될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장갑을 벗으려 했다. 

사이먼은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은 뒤 장갑을 벗기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을 살며시 잡아당긴 뒤, 천천히 손에서 장갑을 벗겼다. 그 행동이 너무도 에로틱했다. 지금 그가 하고 싶은 행동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천 조각을 모조리 벗겨내고 싶었다. 

다프네는 장갑 끝이 손가락을 스치자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가쁜 숨소리에 그는 더욱 그녀를 원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 주었다. 

"딱 맞아요." 

다프네는 손을 이쪽 저쪽으로 움직이며 보석이 불빛에 반사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이먼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피부가 그의 피부에 와닿았다. 그 따스함과 기묘한 편안함. 그는 그녀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 관절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기쁘오."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에게 어울리는군." 

그녀의 입술이 곡선을 그렸다. 금방이라도 그가 좋아하는 환한 미소를 띨 것처럼.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거라 얘기하듯. 

"내가 에메랄드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셨죠?" 

그녀가 물었다. 

"몰랐소." 

그가 고백했다. 

"당신 눈을 연상시키기에." 

"내 눈......"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젖히고 꾸중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이먼, 내 눈동자는 갈색이에요." 

"대부분 그렇지." 

그가 정정했다. 

그녀는 사이먼이 아까 멍을 비춰 보던 거울을 바라보고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아니에요." 

그녀는 마치 지능이 모자란 사람에게 말하듯 천천히 말했다. 

"내 눈은 갈색이에요." 

그는 몸을 굽혀 한 손가락을 그녀의 눈 아래 가져다 댔다. 그녀의 섬세한 속눈썹이 나비가 입맞추듯 그의 피부를 간질였다. 

"테두리 쪽은 그렇지 않소." 

  그녀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은 뒤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엔 믿을 수 없어요." 

사이먼은 다프네가 일어서서 거울로 다가가 얼굴을 바짝 들이미는 모습을 유쾌하게 지켜보았다. 그녀는 몇 번 눈을 깜박거리더니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몇 번 깜박였다. 

"어머, 세상에!" 

그녀가 외쳤다.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사이먼은 일어서서 다프네 곁으로 다가가 그녀와 함께 거울 앞의 마호가니 탁자에 몸을 기댔다. 

"내 말은 항상 옳다는 것을 당신도 곧 배우게 될 거요." 

그녀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런 건 어떻게 아셨죠?" 

그는 어깻짓을 했다. 

"난 아주 자세히 들여다봤거든." 

"당신은......"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탁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눈을 크게 뜬 뒤 눈동자를 관찰했다. 

"참 멋지군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내 눈이 초록색이었네." 

"어이, 나라면 그 정도까지 말하진......" 

"오늘은 말이죠." 

그녀가 그의 말을 잘랐다. 

"오늘만은 내 눈이 초록색이라고 믿고 싶어요." 

사이먼이 미소지었다. 

"당신 마음대로."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난 언제나 콜린 오빠를 질투했었는데. 그렇게 예쁜 눈을 남자가 갖다니 아깝지 뭐예요." 

"물론 콜린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많은 레이디들은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을 거요." 

다프네가 히죽 웃었다. 

"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중요한 게 아니죠." 

사이먼은 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당신도 곧 배우게 될 거예요." 

그녀가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내 말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이번에는 그도 웃고 말았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프네는 소리내어 웃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웃음을 멈췄다. 그녀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듯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좋았어요." 

그녀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예전과 거의 비슷하군요, 그렇죠?"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뒤집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죠?" 

그녀의 눈에 희미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예전처럼 돌아갈 거예요, 그렇죠? 모든 게 전과 다름없을 거예요." 

"그렇소." 

그게 진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함께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로 전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다행이에요." 

사이먼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몇 분 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날 저녁이었다. 다프네에겐 브리저튼 양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맞는 날이었다. 바이올렛이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다프네는 침대에 앉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잡동사니들을 늘어놓고 바라보다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바이올렛은 고개를 빠끔히 들이밀었다. 어색한 미소가 얼굴에 번져 있었다. 

"다프네." 

그녀가 불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잠시 얘기를 해도 될까?" 

다프네는 걱정스런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물론이에요." 

그녀는 일어서서 어머니가 방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의 안색은 입고 있는 노란색 드레스만큼이나 노랗게 질려 있었다. 

"괜찮으세요, 어머니? 혈색이 무척 안 좋으세요." 

"난 괜찮다. 난 그저......" 

바이올렛은 헛기침을 한 뒤 어깨를 곧추세웠다. 

"얘기를 좀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오오." 

다프네는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결혼식 전날 밤 어머니가 결혼의 모든 비밀을 설명해 주신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에 처녀는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될 그 사악하고도 달콤한 비밀들을 알려주신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유부녀였던 친구 하나가 있었고, 다프네와 친구들은 그녀를 괴롭혀 미리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저 킥킥 웃으며 "너희들도 곧 알게 될 거야"라는 말밖에는 해주지를 않았다. 

그 "곧"이 "지금"이 된 것이다. 다프네는 차마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반면 바이올렛은 지금이라도 뱃속의 내용물을 밖으로 꺼내 볼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프네는 침대 옆을 두드렸다. 

"여기 좀 앉으시겠어요, 어머니?" 

바이올렛은 멍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래, 그래.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녀는 엉덩이를 반쯤 걸치다시피 해서 침대에 앉았다. 별로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다프네는 어머니를 안됐다고 생각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결혼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죠?" 

바이올렛은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프네는 지나치게 흥분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결혼 첫날밤?" 

이번에는 바이올렛도 턱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어떤 식으로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워낙 외설적인 말이라서." 

다프네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려 했다. 어머니도 결국 하고자 하는 말씀을 하실 테니까. 

"있잖니." 

바이올렛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단다. 내일 저녁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말이야. 네 남편과......" 

그녀는 기침을 했다. 

"관련된 일이란다." 

바이올렛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바이올렛은 다프네가 지나친 흥미를 나타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뒤로 몸을 젖혔다. 

"그러니까 말이다, 네 남편이......그러니까 사이먼 말이다, 그가 네 남편이 될 테니까......" 

바이올렛이 그 주제를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다프네가 중얼거렸다. 

"네, 사이먼이 제 남편이 되겠지요." 

바이올렛은 신음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다프네의 얼굴을 피한 채 계속 딴 곳만 바라보았다. 

"굉장히 어렵구나." 

"그런 것 같네요." 

다프네가 내뱉었다. 

바이올렛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는 티가 역력히 났다. 

"네 결혼식 첫날밤에 말이다, 네 남편은 네가 결혼의 의무를 다하길 바랄게다." 

그것은 이미 다프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첫날밤을 치러야 한단다." 

"물론이겠지요." 

다프네가 중얼거렸다. 

"네 남편이 너와 함께 잘 거란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네 남편이 특별한......" 

바이올렛은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고 애쓰며 손짓을 했다. 

"친밀감을 네게 나타낼 거야." 

다프네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방안에는 그녀의 짧은 숨소리만이 들렸다. 드디어 흥미로워지는군. 바이올렛이 깔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줄 말은, 결혼의 의무가 그리 기분 나쁜 경험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 결혼의 의무라는 게 도대체 뭐라는 걸까? 

바이올렛의 뺨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떤 여자들은 그, 음, 행동을 혐오한다는 걸 알지만......" 

다프네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하녀들이 하인들과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는 거죠?" 

바이올렛은 갑자기 고용주다운 태도를 보였다. 

"어떤 하녀가 그렇다는 게지?" 

"주제를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다프네가 경고했다. 

"전 이번 주 내내 오늘을 기다렸다고요." 

갑자기 어머니에게서 긴장감이 조금 사라졌다. 

"그랬니?" 

다프네는 "도대체 뭘 바란 거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바이올렛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결혼의 의무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여자들도 있다고요." 

"그랬지. 음." 

다프네는 어머니가 손수건을 거의 쥐어뜯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이올렛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순간을 끝마치고 싶다는 듯 서둘러 말했다. 

"내가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은, 꼭 불유쾌한 경험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면......난 공작님이 널 무척 사랑하신다고 생각한다만......" 

"저도 마찬가지고요." 

다프네가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 너도 알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때, 그건 몹시도 아름답고 특별한 순간이 될 거란다." 

바이올렛은 엷은 노란색 실크 스커트의 주름을 펴기 시작했다. 

"긴장할 필요는 없단다. 공작님께선 아주 부드럽게 대해 주실 거야." 

다프네는 사이먼의 불타는 듯한 키스를 떠올렸다. 부드럽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끝. 잘 자라. 내가 여기 온 건 그 말을 해주려고 온 거란다." 

"그게 전부예요?" 

바이올렛은 얼른 문으로 다가갔다. 

"어, 그래." 

그녀의 눈동자가 죄책감에 흔들렸다. 

"뭔가 좀 다른 걸 기대하고 있었니?" 

"네!" 

다프네는 얼른 문가로 뛰어가 어머니가 도망치지 못하게 몸을 던져 문을 가로막았다. 

"그것만 말해 주고 가실 순 없어요!" 

바이올렛은 자못 아쉬운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다프네는 자신의 방이 이층이란 사실이 고마웠다. 일층이었다면 어머니는 다프네를 피해 그리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다프네." 

바이올렛이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남편이 알아서 할 게다." 

바이올렛이 새초롬하게 말했다. 

"전 바보짓을 하고 싶진 않아요, 어머니." 

바이올렛은 신음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내 말을 믿어라. 남자들은......" 

다프네는 반쯤 끝내다 만 말을 붙잡고 늘어졌다. 

"남자들이 어떻다구요? 뭔가요,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던 거죠?" 

이제는 바이올렛의 얼굴 전체가 아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목과 귀도 분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웅얼거렸다. 

"남자들은 쉽게 만족한단다. 공작님도 별로 실망하지 않으실 게야." 

"하지만......" 

"이제 그만!" 

바이올렛이 마침내 엄하게 말했다. 

"나는 네게 내가 어머님한테 들은 걸 전부 다 말했다. 괜히 겁쟁이처럼 굴지 말아라. 그저 아이를 낳을 만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게다." 

다프네는 입을 딱 벌렸다. 

"뭐라고요?" 

바이올렛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내가 아기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 걸 잊었던가?" 

"어머니!" 

"알았어. 결혼의 의무란......저, 그러니까 첫날밤을 보낸다는 것 말이다......아기를 갖는 것과 관련이 있단다." 

다프네는 놀라서 벽에 딱 붙어 버렸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그럼 어머님은 그걸 여덟 번 하신 건가요?" 

"아니야!" 

다프네는 혼란스러워져서 눈을 깜박였다. 어머니의 설명이 워낙 모호해서 여전히 결혼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여덟 번을 하셨어야 맞는 말이 아닌가요?" 

바이올렛은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아냐! 다프네,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란다." 

"하지만 어떻게 자식을 여덟 명이나 낳으셨죠? 만일......" 

"여덟 번보다 훨씬 더 많이 했단다." 

바이올렛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온몸이 벽으로 녹아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다프네는 불신이 가득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세요?" 

"가끔은 말이다." 

바이올렛은 시선을 바닥의 한 점에 고정시킨 채 뻣뻣하게 말했다. 

"그저 하고 싶어서 할 때도 있는 법이란다." 

다프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요?" 

그녀가 헐떡였다. 

"어, 그래." 

"그러니까 남자랑 여자가 키스하는 것처럼요?" 

"그래, 바로 그거다." 

바이올렛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것과 몹시 비슷한......" 

그녀는 눈을 흘겼다. 

"다프네." 

목소리가 몹시도 엄격해졌다. 

"너 공작님과 키스했니?" 

다프네는 자신의 얼굴도 어머니 못지않게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했을지도 모르죠." 

바이올렛은 손가락을 흔들었다. 

"다프네 브리저튼, 네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구나. 남자들에게 그런 자유를 주면 어떻게 된다고 누누이 경고했었지!" 

"우리가 결혼하는 마당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바이올렛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만두자. 네 말이 맞다. 중요한 게 아니지. 넌 결혼할 거고......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공작님과......그러니까 공작님이 네게 키스했다면, 글쎄, 그 정도는 예상했었어야지." 

다프네는 믿어지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것은 어머니의 평상시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자." 

바이올렛이 선언하듯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난 이만 가겠다. 넌......" 

그녀는 다프네가 늘어놓은 잡다한 물건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하던 일이나 마저 하거라." 

"하지만 전 아직 질문이 많다고요!" 

바이올렛은 이미 그녀의 방을 탈출해 버린 상태였다. 

결혼의 의무에 어떤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지 죽도록 알고 싶은 다프네였지만, 어머니 뒤를 쫓아가 그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가족과 하인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야단법석을 떨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한 말 때문에 더더욱 커다란 걱정이 생겼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 일은 아이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했다. 만일 사이먼이 자식을 가질 수 없다면, 그 말은 곧 사이먼이 어머니가 언급한 친밀감을 나타내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아, 망할. 도대체 그 친밀함을 나타내는 행동이란 게 뭐지? 다프네는 그것이 키스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사교계에서는 젊은 레이디들의 입술을 고결하게 지키는 것에 호들갑을 떨어대니 말이다. 갑자기 정원에서 사이먼과 키스하던 일이 떠올라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어쩌면 여자의 가슴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프네는 신음했다. 어머님은 긴장하지 말라고 거의 명령하시다시피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긴장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자신이 어떻게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의무를 다하라는 것인지. 

게다가 또 사이먼은 어떤가? 만일 그가 신혼 첫날밤을 보낼 수 없다면, 그걸 완전한 결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새 신부를 걱정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결국 다프네가 기억하는 결혼식 장면은 이렇다.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결국엔 어머니의 얼굴로 전부 흘러내렸다), 그녀를 사이먼에게 인도하는 앤소니 오빠의 목소리는 기묘하게 쉬어 있었다. 히아신스는 장미꽃잎을 너무 빨리 뿌려 버렸고, 그래서 결혼식 제단 앞에 도달했을 즈음에는 남아 있는 꽃잎이 하나도 없었다. 그레고리는 두 사람이 결혼 서약을 하는 도중 세 번이나 재채기를 했다. 

결혼 서약을 하는 사이먼의 얼굴을 자못 진지했다. 한 음절 한 음절 몹시도 천천히, 조심스레 발음했다. 그의 눈은 격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목소리는 낮지만 진실했다. 다프네는 주교 앞에서 주고받은 그 언약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진지하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저렇게 진지하게 결혼 서약을 하는 남자라면 결혼을 그저 편의에 의한 의식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해.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며, 살아 있는 인간은 그것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다프네는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잠시 휘청거렸다. 이제 난 죽을 때까지 이 남자의 것이 되는 거야. 

사이먼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소?"라고 그의 눈이 묻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안도감일까? 

이제 두 사람은...... 

그레고리가 네 번째로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주교의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한다"란 말은 재채기 소리에 가려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다프네는 갑자기 웃음이 발작적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결혼이란 진지한 것이지 농담처럼 생각해선 안 되는 거니까. 

그녀는 사이먼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기묘한 표정을 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은 그녀의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입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웃음의 거품이 점점 더 높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신부에게 키스하도록. 

사이먼은 거의 절망적이다시피 한 몸짓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 열렬함엔 하객들조차 동시에 숨을 들이마실 지경이었다. 

그리고 신랑의 입술과 신부의 입술이 얽힌 상태에서 그대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바이올렛 브리저튼은 훗날 그 키스는 자신이 본 것 중 가장 기묘한 키스였노라고 회상했다. 

그레고리 브리저튼은 재채기를 끝낸 후 끔찍했다고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주교조차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고작 열 살이어서 키스에 대해서는 그 중 제일 아는 바가 없는 히아신스 브리저튼은 진지하게 눈을 깜박인 뒤 말했다. 

"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두 사람이 지금 웃는다면, 아마 평생 웃을 테니까요." 

그녀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건 좋은 일 맞지요?" 

바이올렛은 막내딸의 손을 꼭 잡았다. 

"웃음은 언제나 좋은 거란다, 히아신스. 그 점을 일깨워 줘서 고맙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기를 헤이스팅스 공작 부처는 무척이나 행복해하며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이나 서로에게 충실할 거라고 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만큼 웃음으로 가득한 결혼식은 여태껏 유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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