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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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햄스테드 히스에서 열린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연중 행사인 무도회는 언제나 그러하듯 가십 시즌의 절정이었다. 

본 필자는 콜린 브리저튼이 페더링턴 가의 자매 세 명 모두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브리저튼 형제들 중 가장 눈부신 이 남자는 그 누구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게다가 나이젤 버브룩이 다프네 브리저튼 양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 구애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마침내 버브룩 씨도 그녀를 따라다녀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다프네 브리저튼 양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녀는 일찌감치 그곳을 떠났다. 

궁금해하는 주위사람들에게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머리가 아파서 돌아갔다고 말을 했지만. 

본 필자는 초저녁에 그녀가 미들토프 노공작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그때는 더할 나위 없이 멀쩡해 보였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3년 5월 17일. 

물론, 잠을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프네는 어린 시절부터 방안에 깔려 있던 푸른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카펫을 맨발로 밟으며 방안을 서성거렸다. 

머리 속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결투를 막아야만 한다. 

물론 결투를 막는 일이 쉬울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 명예가 걸린 일이라면 남자들은 고집불통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앤소니나 사이먼이 자신의 중재를 고맙게 받아들여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결투가 어디서 벌어질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정원에서 결투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 앤소니가 하인을 통해 사이먼에게 전갈을 보내겠지. 

어쩌면 결투 신청을 받은 사람은 사이먼이니까 그가 장소를 골라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프네는 결투에도 적절한 예법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다프네는 창가에 멈춰 서서 커튼을 들추고 밖을 내다보았다. 사교계 기준으로는 아직 이른 밤이었다. 

그녀와 앤소니가 파티장을 일찍 떠난 것이다. 베네딕트, 콜린 그리고 어머님은 아직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저택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좋은 징조라 생각되었다. 다프네와 앤소니가 집으로 돌아온 지는 벌써 2시간이 넘었으니 말이다. 

만일 누가 그녀와 사이먼의 행각을 목격했다면 그 순간은 무도회장 안에 소문이 쫙 퍼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창피해서라도 집으로 달려오셨을 테니까. 

어쩌면 오늘밤 갈기갈기 찢어진 건 그녀의 드레스 한 벌뿐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평판은 무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평판이 어떻게 되는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족들이 필요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혼자서는 이 결투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런던까지 말을 타고 가서 제정신이 아닌 두 남자를 설득하려는 것은 정신이 나간 짓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베네딕트 오빠는 당장 앤소니 오빠의 편을 들 것이다. 게다가 아예 앤소니 오빠의 결투 입회인 역할을 자청하고 나설 것이 뻔하다. 

하지만 콜린 오빠라면. 콜린 오빠라면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툴툴거리며 사이먼은 새벽에 총을 맞아 죽어도 싸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만일 애걸을 한다면 도와줄지도 모른다. 

이 결투는 막아야만 한다. 도대체 사이먼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 때문인지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마 아버지와 연관된 무엇이리라. 그가 마음속에 담아둔 뭔가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잘 숨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눈은 때때로 무척이나 공허해 보였다. 

종종 그가 침묵을 지키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완전히 긴장을 풀고 웃음과 농담을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자기 하나뿐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쩌면 앤소니 오빠도 거기에 포함될지도 모르지. 아,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앤소니 오빠로 정정하자. 

아무튼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정원에서 사이먼이 보인 숙명론자 같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마차 바퀴가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다프네는 얼른 창가로 뛰어 갔다. 

막 브리저튼 가의 마차가 집 뒤 마차고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손을 쥐어뜯으며, 그녀는 얼른 방안을 가로질러 문가에 귀를 가져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앤소니 오빠는 그녀가 잠들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니, 적어도 침대에 누워 오늘밤의 행동을 곱씹어보고 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오빠는 어머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어머님이 어디까지 아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님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 대한 쑥덕공론이 떠돌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무사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쑥덕거리게 마련. 언제나 쑥덕거린다. 

그리고 내버려두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거대하게 불어나고 만다. 

다프네도 결국에는 어머니를 마주해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만간 어머님은 뭔가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다프네는 그저 어머니가 거대한 가십의 공격을 받을 즈음에는 이미 자신이 공작과 결혼한 뒤가 되길 기도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공작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용서할 테니까. 

바로 그것이 사이먼의 목숨을 구하려는 다프네의 전술의 핵심이었다. 

비록 사이먼이 자기 자신을 구하려 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녀는 구해 줄지도 모른다. 

콜린 브리저튼은 살금살금 복도를 걸었다. 어머니는 잠자리에 들었고, 베네딕트 형은 저택 안쪽 앤소니 형님의 서재로 불려간 뒤였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자 하는 사람은 다프네였다. 

그는 조심스레 다프네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초를 몇 자루 밝혀둔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무척 예민해서 촛불을 다 끄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에 불빛이 새어나온다는 것은 아직 깨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만일 다프네가 깨어 있다면 반드시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드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면서 다프네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조용히 손짓했다. 

"할 말이 있어." 

그녀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나도 할 말이 있다." 

다프네는 콜린을 방안으로 불러들인 뒤 재빨리 복도를 살피고 문을 닫았다. 

"나, 큰 사건에 휘말렸어." 

"알아."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알고 있어?" 

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리만큼 진지했다. 

"내 친구 맥클스필드 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클스필드라면 어머니가 2주 전에 억지로 소개하려던 젊은 백작이 아닌가. 

바로 그날 밤 그녀는 사이먼을 만났다. 

"맥클스필드 말이 네가 오늘밤 헤이스팅스와 함께 정원으로 사라졌다더구나." 

다프네는 갑자기 목이 꽉 죄면서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간신히 말했다. 

"그걸 봤대?" 

콜린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에겐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다. 내가 약속하지. 우린 어렸을 때부터 친구란다. 하지만 그가 널 봤다면 다른 사람들도 봤을 수 있어.

 맥클스필드가 자기가 본 걸 내게 말하는 도중에 레이디 댄버리께서 상당히 이상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시더구나." 

"레이디 댄버리도 보셨대?" 

다프네가 날카롭게 물었다.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는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건 그저......" 

콜린은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내 죄가 뭔지 다 알고 계시다는 시선으로 날 보셨다는 것뿐이야." 

다프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저 그분의 평상시의 모습일 뿐이야. 만일 뭔가 보셨다 하더라도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을 거야." 

"레이디 댄버리께서 말이냐?" 

콜린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분은 그래, 불을 뿜는 용이시지. 종종 날카로운 말씀을 하시지.

 하지만 그저 심심해서 누군가를 망쳐 놓으실 분은 아니야. 만일 뭔가를 보셨다면 내게 직접 말씀하셨을 거야." 

콜린은 여전히 의심이 가는 눈초리였다. 

다프네는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며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고민했다. 

"맥클스필드 백작이 본 게 정확하게 뭐래?" 

콜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야." 

다프네는 거의 쏘아붙이다시피 했다. 오늘 저녁 내내 그녀의 신경은 끊어질 만큼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다. 

"뭘 보았느냐고?" 

콜린은 등을 펴고 턱을 당겼다. 

"내가 한 말 그대로다." 

그 역시 퉁명스레 말했다. 

"네가 헤이스팅스와 함께 정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냐니?" 

그가 반복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가늘게 떴다. 

"도대체 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다프네는 소파 위로 쓰러지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오, 콜린 오빠. 난 정말 엉망이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눈가에 묻은 물기를 닦고 고개를 들었다. 

오빠가 그 어떤 때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넓게 벌린 채 떡 버티고 있었다. 

평소에는 장난기와 웃음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마치 에메랄드처럼 딱딱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이제 자기 연민에 젖는 것은 그만두고 너와 헤이스팅스가 레이디 트로우브리지의 정원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낱낱이 털어놓을 차례인 것 같구나." 

그가 날카롭게 말했다. 

"내게 그런 목소리로 말하지 마." 

다프네가 쏘아붙였다. 

"그리고 내가 언제 자기 연민에 젖었다고 그러는 거야? 생각을 좀 해보라고, 내일 한 남자가 목숨을 잃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내가 속상해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 

콜린은 다프네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그의 표정이 금세 걱정으로 누그러졌다. 

"내게 다 얘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 저녁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어느 정도까지 망신을 당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콜린까지 앤소니가 본 장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평판에 흠집이 날 만한 장면을 들켰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결투를 할 거고, 사이먼은 죽게 될 거란 말야!" 

그녀는 설명을 끝마쳤다. 

"그건 아직 모르는 거란다, 다프네." 

그녀는 비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이먼은 앤소니 오빠를 쏘지 않을 거야. 내 목숨을 걸 수도 있어. 그리고 앤소니 오빠는......" 

목소리가 갈라져서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앤소니 오빠는 너무 화가 났어. 금방 누그러지진 않을 거야." 

"뭘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 결투가 어디에서 벌어지는지조차 모른다고. 내가 아는 건 내가 그걸 막아야 한다는 것뿐이야!" 

콜린은 낮게 욕설을 내뱉은 뒤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그걸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다프네." 

"그래야만 해!" 

그녀가 외쳤다. 

"콜린 오빠, 난 여기 가만히 앉아서 사이먼이 죽는 동안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어."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해."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널 거절했는데도?" 

그녀는 낙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끔찍하게 바보 같은 멍청이라 해도 상관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난 여전히 그를 사랑해. 그 사람은 내가 필요해." 

콜린이 조용히 말했다. 

"만일 그 말이 진실이라면, 앤소니 형님이 요구했을 때 너와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뭔가가 있어. 설명을 하긴 어렵지만, 그의 일부분은 정말로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 

그녀는 다시 마음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숨결이 가빠지며 말이 흐느낌처럼 새어나왔지만,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모르겠어, 콜린 오빠. 하지만 오빠도 그 사람 얼굴을 보았다면 이해했을 거야. 그는 뭔가로부터 날 보호하려고 했어. 확신할 수 있어." 

"난 헤이스팅스를 앤소니 형님만큼 잘 알지는 못해. 너보다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에게 어두운 비밀이 있다는 소문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넌 정말 확신......" 

콜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양손에 잠시 머리를 파묻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슴이 저릴 정도로 다정했다. 

"혹시 그가 너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너 혼자만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니?" 

다프네는 그 말에 상처받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동화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그가 죽기를 원치 않아."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거야." 

콜린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다. 

"넌 그가 죽기를 원치 않는 거냐, 아니면 그가 너 때문에 죽는 걸 원치 않는 거냐?" 

다프네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오빠는 이만 나가 봐."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내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콜린은 떠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밀어 여동생의 손을 꼭 쥐었을 뿐. 

"널 도와주마, 다프. 내가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걸 알잖아." 

다프네는 그의 품안으로 뛰어들어 그동안 꼭꼭 눌러왔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30분 뒤 다프네의 눈은 말라 있었고, 머리 속은 깨끗했다. 울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속에 많은 것이 쌓여 있었다......너무나 많은 감정과 혼란, 상처, 그리고 분노. 

그것을 쏟아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시간이 아니다. 냉철한 이성을 갖고 목표에 집중해야만 한다. 

콜린은 앤소니와 베네딕트에게 질문을 하러 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앤소니의 서재에서 낮고 격렬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콜린은 앤소니가 베네딕트에게 결투 입회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다프네의 말에 동의했다. 

콜린의 임무는 결투가 어디서 벌어질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콜린이 임무를 완수하리라는 것을 다프네는 의심치 않았다. 콜린은 그 누구에게서라도 원하는 것을 캐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프네는 편안하고 익숙한 승마복을 입었다. 오늘 아침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레이스와 페티코트에 걸려 넘어지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문에서 짧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콜린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었다. 

"뭔가 알아낸 게 있어?" 

다프네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 없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거기에 도착하려는 거지?" 

"만일 사이먼이 앤소니 오빠보다 먼저 도착한다면 누군가가 총을 뽑기 전에 그를 결혼에 동의하게 할 수 있을 거야." 

콜린은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다프. 네가 성공하지 못할 때의 결과는 상상해 봤니?"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에 솜이 꽉 들어차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해." 

"하지만......" 

다프네는 그의 말을 잘랐다. 

"만일 그런 생각을 한다면 난 집중력을 잃을 거야. 용기를 잃을지도 몰라.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감당할 수가 없어.

 사이먼을 위해서라도 난 그럴 여유가 없어." 

"네가 얼마나 자기 생각을 해주는지 그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콜린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를 쏘아 버릴지도 모르니까." 

다프네가 말했다. 

"이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콜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사이먼은 브로드 워크를 따라 말을 몰았다. 리젠트 파크의 가장 후미지고 인적이 드문 구석으로 가는 중이었다. 

앤소니가 말했듯, 그리고 사이먼도 동의했듯, 결투는 메이페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이른 새벽녘이라 밖에 나와 있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굳이 하이드 파크에서 보란 듯이 결투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결투가 불법이라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법적 처벌을 받을 때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테니까. 

죽는 방법치고는 몹시 비참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이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결혼할 수도 없는 귀족 가의 영양을 더럽혔으며,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이다. 

맨 처음 그녀에게 키스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결투 장소에 다다르자 앤소니와 베네딕트가 말에서 내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밤색 머리카락이 미풍에 나부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사이먼의 심장처럼 말이다. 

그는 브리저튼 형제들 몇 미터 앞에서 말을 세우고 내렸다. 

"입회인은 어디 있습니까?" 

베네딕트가 고함쳐 물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네." 

사이먼이 대답했다. 

"하지만 입회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입회인이 없는 결투는 결투가 아닙니다." 

사이먼이 어깻짓을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권총을 가져왔지. 난 자네를 믿네." 

앤소니가 그에게 다가왔다. 

"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아." 

그가 말했다. 

"자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하지만 자네에겐 있잖아." 

앤소니가 조급하게 말했다. 

"다프네와 결혼해 버리면 되는 거야. 그 애를 사랑하지는 않겠지만, 자네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왜 결혼을 하지 않는 거지?" 

사이먼은 잠깐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아내를 맞지 않으려는 것인지, 왜 자기가 가문의 대를 끊으려는 것인지 그 모든 이유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란 것이 즐겁고 진실하고 친절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브리저튼 가의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 

잔인한 말, 산산조각이 나버린 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거부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절대 알지 못한다. 

그 다음에는 뭔가 잔인한 말을 해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앤소니와 베네딕트가 이 조롱 같은 결투를 좀더 빨리 끝내 버릴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프네를 헐뜯어야 한다. 그런 일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가 한 일은 그저 앤소니 브리저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친구였던 남자. 사이먼이 말했다. 

"그저 다프네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주게. 자네 여동생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훌륭한 여성일세." 

그리고 앤소니와 베네딕트에게 고갯짓을 해보인 뒤, 베네딕트가 바닥에 내려놓은 상자에 든 권총 두 정 중 하나를 집어들고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기이다아려어요오!" 

사이먼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돌아섰다. 맙소사, 다프네였다! 

그녀는 자세를 잔뜩 낮추고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동안 사이먼은 말안장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멋진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결투를 방해하는 그녀에게 화를 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다프네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사이먼 바로 앞에 말을 세우자 그도 비로소 있는 대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고나 있는 거요?" 

그가 물었다. 

"당신의 비참한 삶을 구하려는 거죠!" 

다프네 역시 눈에서 불을 뿜었다. 그녀가 이토록 화가 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사이먼만큼이나 화가 난 듯했다. 

"다프네, 이 바보. 당신이 지금 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나 있는 거요?"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당신을 쏘았을지도 몰라!" 

"말도 안 돼요."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아직까지 결투 위치에 가지도 못했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혼자서 이런 시간에 말을 타고 여기까지 오다니!" 

그가 외쳤다. 

"정신이 있는 거요?" 

"그 정도 정신은 나도 있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콜린 오빠가 여기까지 에스코트해 주셨어요." 

"콜린이라고?" 

사이먼이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막내 오빠를 찾았다. 

"그 자식,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앤소니 오빠가 당신 심장에 구멍을 뚫어 놓기 전에 말인가요, 아니면 그 후에 말인가요?" 

"아, 물론 그 전이지." 

사이먼이 으르렁댔다. 

"어디 있는 거야? 브리저튼!" 

그가 외쳤다. 

세 명의 밤색 머리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이먼은 풀밭을 가로질렀다.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바보 같은 브리저튼 녀석 말이야." 

앤소니는 턱짓으로 콜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듣자 하니, 널 얘기하는 것 같군." 

콜린은 큰형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난 다프네가 가만히 집에 앉아서 눈이 빠져라 울어대는 걸 보고만 있었어야 했단 말입니까?" 

"그래!" 

세 남자가 동시에 외쳤다. 

"사이먼!" 

다프네가 그를 따라가며 외쳤다. 

"이리로 썩 돌아와요!" 

사이먼은 베네딕트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빨리 끌어내게." 

베네딕트는 어쩔 줄 몰라했다. 

"끌어내라니까." 

앤소니가 명령했다. 

베네딕트는 여전히 가만히 서서 자신의 형제들과 여동생, 그리고 그녀에게 수모를 안겨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서!" 

앤소니가 외쳤다. 

"다프네도 여기에 있을 권리가 있어." 

베네딕트는 그렇게 선언하고 팔짱을 끼어 버렸다. 

"너희 둘 다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앤소니는 두 남동생을 노려보며 외쳤다. 

"사이먼." 

다프네는 그의 뒤를 따라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그녀가 소맷자락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무시하려 했다. 

"다프네, 단념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소." 

다프네는 오빠들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콜린과 베네딕트는 그녀를 딱하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앤소니는 여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인 것 같았다. 

마침내 다프네는 결투를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써버렸다. 주먹을 날려 사이먼을 때린 것이다. 

그것도 성한 쪽 눈을 말이다. 

사이먼은 예상치도 못했던 충격에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쓰러져요, 이 바보!" 

다프네가 쇳소리를 냈다. 만일 사이먼이 바닥에 쓰러지면 앤소니도 그를 쏘지 못할 테니까. 

"절대로 쓰러지지 않겠소!" 

그는 눈을 움켜쥐고 내뱉었다. 

"제기랄. 여자에게 맞아서 넘어지다니, 참을 수가 없어." 

"남자들이란 결국 모두 바보들이야." 

다프네가 투덜댔다. 

그녀는 입을 딱 벌리고 똑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들을 쳐다보았다. 

"뭘 보는 거예요!" 

그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콜린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앤소니는 콜린의 어깨를 퍽 쳤다. 

"제가 공작 각하와 딱 1분 동안 짧은 시간을 가져도 될는지요?" 

그녀는 거의 이를 갈 듯 말했다. 

콜린과 베네딕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비켰다. 앤소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프네는 그를 노려보았다. 

"오빠도 때릴 거야." 

베네딕트가 되돌아와 앤소니의 팔이 빠질 정도로 세게 그를 끌고 가지만 않았어도 정말 큰오빠까지 때릴 작정이었다. 

그녀는 사이먼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썹 근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어떻게든 통증을 덜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당신이 날 때리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녀는 오빠들이 엿듣지 못할 정도로 멀찌감치 떨어진 걸 확인한 뒤 말했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았어요." 

"당신이 뭘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군." 

"그건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일 아니에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무척이나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당신에게 이미 말했잖소, 당신과 결혼할 수 없다고." 

"그렇게 해야만 해요." 

너무도 다급하고 강력한 말투에 그는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남들 눈에 띄었다는 뜻이죠." 

"누구에게?" 

"맥클스필드 백작이오." 

그는 눈에 띌 정도로 안심을 했다. 

"그는 말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구요!" 

다프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아마 있었을 거야. 아니, 틀림없이 있었을 거야. 

"누구 말이오?" 

"모르겠어요." 

그녀가 인정했다. 

"하지만 난 여기저기에서 소문을 들었어요. 내일쯤이면 온 런던에 다 퍼질 거예요." 

사이먼이 너무도 심하게 욕을 내뱉는 바람에 다프네는 문자 그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난 파멸이에요." 

"그건 사실이 아니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란 건 당신도 알잖아요." 

그녀는 가까스로 그에게 시선을 맞췄다. 그녀의 미래가, 그리고 그의 목숨이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었다. 여기서 흔들릴 수는 없다. 

"누구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예요. 난 어딘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시골구석으로 보내지겠죠......" 

"당신 어머님이 당신을 절대 보내지 않으리란 것을 당신도 잘 알잖소." 

"하지만 난 절대 결혼을 할 수 없겠죠. 그건 당신도 아실 테죠."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서며 그를 압박했다. 

"난 영원히 중고품이란 낙인이 찍힐 테죠. 난 절대 남편도 가지지 못할 거고, 절대 아이도 갖지......" 

"그만!" 

사이먼은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제발, 그만 멈춰요." 

앤소니, 베네딕트, 콜린이 그의 외침을 듣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다프네는 미친 듯 고개를 저어 다가오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왜 나와 결혼할 수 없는 거죠?" 

그녀가 낮게 물었다. 

"당신이 날 좋아한다는 건 알아요. 왜죠?" 

사이먼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열심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제기랄, 두통이 생길 것 같아. 그리고 다프네......제기랄, 그녀는 점점 더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그 다음에는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는 강하지 않았다. 하나님, 더 이상 강한 척을 할 수 없었다. 

"사이먼." 

그녀가 애원했다. 

"날 구해 줘요." 

그리고 그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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