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예쁜 아가씨와 개새끼
아, 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인가.
“애블랑 영애.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
레이첼은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빤질빤질 윤이 나는 구두 위로 쭉 뻗은 다리가 보였다. 거기서 시선을 좀 더 위로 하자 다림질한 셔츠가 빳빳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깨가 넓으시네. 내 취향인걸……. 그보다 여기 돌바닥이라 무릎 아픈데 계속 꿇고 있어야 하나?’
“영애. 지금 내 말을 무시하나?”
“아니, 아닙니다. 그보다 각하 이것 좀 풀어 주시면 감사하…….”
“그렇게는 안 되지. 풀어 줬더니 저번에 영애가 어떻게 했지? 꽁지 빠지게 도망치지 않았나. 그런데 또 풀어 달라고? 애블랑 인간들은 다 양심을 갖다 팔았나 보군.”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사내의 목소리에 레이첼이 울컥했다.
“그러는 각하는 어떻고요! 각하야말로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쓰레기! 사기꾼이시면서!”
“…….”
레이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침묵이 흘렀다. 망할……. 그녀는 도저히 앞을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욕하다니. 당연히 화가 날 일 아닌가.
“쓰레기라…….”
위에서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저희 애블랑 가문 사람들은 다들 진즉에 양심을 갖다 팔았습죠. 레이첼은 사내의 낮은 목소리에 당장에라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사내가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캑, 잘……못했…… 컥.”
숨이 꽉 막혀 왔다. 레이첼은 머리로 쏠리는 피에 강아지처럼 컹컹거렸다. 눈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녀는 항복 표시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리려 했지만 손은 단단히 묶여 있는 상태였다. 이런 미친 새끼! 적어도 의사를 표현할 방법은 주고 괴롭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잘못했다 빌 마음이 생기면 고개를 숙여.”
‘망할 놈! 쓰레기! 개새끼! 이렇게 줄을 당겨 놓고는 고개를 숙이라고? 어떻게? 네가 해 봐! 미친놈아!’
레이첼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내뱉었다. 물론 속으로만. 그녀의 고개는 부들거리면서도 내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존심 따위 개나 줘 버린 생존 본능에 자색 눈에 핑 눈물이 고였다.
“살, 살려…… 캑!”
다행히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줄이 느슨해졌다. 살았다. 레이첼은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 콧물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얼마나 우스운 꼴일까. 위에서 사내가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유명한 그대가 이런 꼴이라니. 다른 이들이 알면 기겁하겠어. 볼만하군.”
“각하께서 이런 성격인 걸 사람들이 알면 뭐라 할까요?”
레이첼은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위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제인 언니가 항상 입조심하라 그랬는데.’
그녀는 배움이라는 걸 모르는 자신을 욕했다. 사내의 손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각하!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레이첼은 최대한 비굴하게 용서를 빌며 사내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고 깜박였다. 이래 봬도 이런 표정에 안 넘어간 사내는 없었지. 오랜만에 본 그도 견디기 힘들리라.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잘 아는 그녀는 자신에 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순간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레이첼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상체를 더욱 그에게 붙였다.
“용서해 달라?”
“예. 각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세요.”
“그럼 빨아.”
“예?”
레이첼은 시선을 올려 사내를 바라봤다. 남자치곤 새빨간 입술이 길게 올라가 있었다.
“온갖 사내를 후리는 주제에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닐 테고…….”
사내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쥐었다.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가 잔인하게 빛났다.
“각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레이첼은 재빨리 그의 다리에서 떨어져 조신한 척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온몸으로 연기했다.
‘미친 새끼!’
연인인 아이작에게도 아직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는 구음을 연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하룻밤 상대도 못 될 개새끼에게, 이 오만한 쓰레기에게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럼 하는 수 없지.”
사내가 다시 줄을 잡아당겼다. 줄이 다시 팽팽하게 레이첼의 목을 조였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레이첼은 자신의 비굴함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녀는 흐려지는 앞을 애써 외면하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사내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에 레이첼은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운 거리에 사내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쓸었다. 다정한 손짓에 레이첼의 마음속에 혹시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우는 건 좀 있다. 난 내 밑에서 우는 게 좋아. 아, 그러고 보니 지금도 밑이긴 하군. 좋아. 울어 봐. 허락하지.”
‘닥쳐! 너 지금 이러는 거 범죄야!’
레이첼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은 길게 오래 살아 떠들고 싶었던 모양인지 조용히 마음을 숨겼다.
아까도 그러지 그랬니. 그럼 이런 상황도 없었을 텐데. 뒤늦은 후회에 레이첼이 한숨을 폭 쉬었다.
“뭐 해?”
레이첼이 한참을 멀뚱거리자 사내가 고갯짓을 했다. 그의 바지춤은 이미 어느 정도 부풀어 올라 있었다. 레이첼은 그 흉물스러운 자태를 보다 외면하듯 시선을 떨궜다.
“혹 손이 없어 못 하는 건가?”
레이첼은 사내의 말에 그제야 자신의 손이 결박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일까 고민하는 찰나 무언가 그녀의 시야를 막았다. 징그럽게 큰 그것은 그새 레이첼의 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됐지? 시작해.”
아니요. 이딴 배려 필요 없는데요. 레이첼은 이딴 것이 제 입에 들이닥칠 걸 생각하며 또다시 한숨 쉬었다. 끔찍했다.
“하, 하지만…….”
그녀가 어리바리 뜸을 들이자 위에서 짜증 섞인 말이 들렸다.
“난 기다리는 걸 싫어해. 그러니 빨리 움직였으면 좋겠군.”
‘어련하시겠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멋대로인 건 똑같네.’
레이첼이 하는 수 없이 사내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딱딱한 물건이 보드라운 뺨에 닿음과 동시에 짙은 사내의 냄새가 났다. 그녀가 뺨을 찌르는 그것을 곁눈질로 힐끗 보다 혀를 내밀어 살살 핥기 시작했다.
“흐으…….”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이상한 쓴맛을 견디며 혀를 계속해서 할짝이자 한참 위에서 낮게 그릉대는 소리가 들렸다.
‘성격도 개같은 게 신음도 개같네. 개새끼.’
레이첼이 속으로 사내를 욕하며 입안으로 물건을 조금씩 삼켰다. 입술이 버겁게 벌려진다 싶더니 작은 입에 거대한 것이 앞부분만 겨우 들어찼다. 그녀는 그 상태에서 고개를 조금씩 앞뒤로 움직이며 혀로 살 기둥을 더듬거렸다.
“흠…… 생각보다 형편없는걸. 소문에 못 미쳐.”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네놈 상태가 너무 양심 없지 않니?’
떨어지는 핀잔에 레이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표정을 본 사내가 낮게 웃으며 환한 백금발 위로 손을 올렸다. 커다란 손이 머리 위를 쓰다듬자 레이첼은 개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개니깐 이를 좀 세워도 되지 않을까?’
레이첼은 실수인 척 살짝 사내의 것에 이를 대 봤다. 그러자 위에서 낮은 비명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사내의 단단한 허벅지가 크게 움찔거렸다. 눈을 슬쩍 들어 사내를 보니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쌤통이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바짝 당겨진 턱이 사내의 고통을 대변했다. 통쾌한 기분에 레이첼이 웃음을 흘렸다.
“혹시 일부러 그런 건가?”
사내가 레이첼의 웃음소리를 듣고 사납게 물어 왔다. 레이첼은 사내의 손에 돋아 있는 힘줄을 보다 최대한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물론 촉촉하게 눈을 적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이첼의 행동에 사내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다행히 넘어가는구나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그때 사내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흐읍!”
망했다는 생각도 잠시,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사내의 성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목구멍까지 들어찬 그것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레이첼은 숨을 쉬기 위해 버둥거리며 상체를 뒤로 젖혔지만 사내는 그런 그녀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손에 힘을 줬다.
“읍…… 읍…… 으읍.”
손이라도 자유로우면 밀어 내기라도 할 텐데. 레이첼은 속으로 묶인 손을 원망했다. 성기의 선단이 목젖을 건드릴 때마다 투명한 타액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사내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손을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
점점 숨 쉬기가 힘들어지며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레이첼은 차라리 빨리 끝내자는 마음으로 혀를 얽어 사내를 최대한 자극했다. 까슬한 혓바닥으로 핏줄 돋은 살 기둥을 문지르며 입술을 모으자 부피를 키운 그것이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흣…….”
위에서 긴 신음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레이첼이 힘껏 사내의 성기를 빨았다. 사내가 조급한 손길로 레이첼의 머리를 잡아 고정하더니 입안에 사정했다. 끈적거리는 불쾌한 감각에 그녀가 입을 열고 고개를 돌렸다.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연 씨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씨발.’
절로 욕이 나왔으나 레이첼은 입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캑캑거리며 입안 가득한 정액을 털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아까 한 말은 취소하지. 썩 괜찮은 솜씨였어. 아이작이 칭찬할 만하군.”
갑작스레 들려온 연인의 이름에 레이첼이 눈을 크게 치뜨고 사내를 바라봤다. 그녀의 멍청한 표정에 사내가 눈썹을 삐죽 올리더니 손을 뻗었다. 작은 입에 묻은 흔적을 꼼꼼히 닦아 내는 손길이 퍽 다정했다.
“아이작이 그랬어. 네 잠자리 솜씨가 제법 쓸 만하다고.”
사내의 목소리에는 이유 모를 노기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은 연인에 대한 배신감에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몸을 떨며 치를 떨었다. 그 얼굴로! 착한 눈으로! 내 뒤통수를 치고 있을 줄이야. 뒤에서 공공연하게 잠자리 상대를 말하는 사교계라지만 상대와의 잠자리에 대해 세세히 말하는 건 크나큰 모욕이었다.
“춥나?”
레이첼이 부들거리자 사내가 물었다.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였건만 레이첼은 눈을 세모꼴로 뜬 채 사내를 노려봤다. 그녀의 자색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블랑 영애?”
“왜요. 이 나쁜 놈아!”
사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레이첼을 불렀다. 레이첼은 사내가 저를 부르기 무섭게 대성통곡을 했다.
“흐아아아앙.”
사내는 레이첼이 방이 떠나가라 울어 젖히자 벌떡 일어섰다. 방금 사정했음에도 꼿꼿한 물건이 덜렁거리며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레이첼? 왜, 어디 아픈가?”
‘……징그러워, 이 새끼야. 바지부터 올려.’
사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가 바지를 대강 추스르더니 재빨리 레이첼의 뒤로 가 허둥거리며 줄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터진 울음을 멈추기란 역부족이었다. 레이첼은 풀린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원래 달래 주는 이가 있으면 더 서러운 법이었다.
“레이첼. 제발 그쳐.”
사내의 큰 손이 레이첼을 만지지도 못한 채 주변을 맴돌았다. 오만한 얼굴에는 어느새 걱정만이 가득했다.
“흑…… 정말…… 정말 백작님이…… 저에 대해…… 저와의 잠자리에 대해 각하께 말했어요?”
레이첼은 질질 짜며 사내에게 물었다. 아이작 이 개새끼. 지옥에 떨어질 새끼. 그녀는 속으로 연인에게 온갖 욕을 하며 사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문제였나?”
뭔가 이상했다. 고개를 드니 그는 언제 당황했느냐는 듯 레이첼을 노려보고 있었다. 뼛속까지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눈에 레이첼은 울음을 멈췄다.
어, 이게 아닌데? 갑자기 왜 이래? 나 달래 주던 거 아니었어?
긴장으로 히끅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사내가 레이첼의 뒤로 소리 나게 밧줄을 던졌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밧줄이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레이첼이 몸을 굳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살려 달라 해야 하나?’
“그럼. 아이작이 한낱 자작 영애와의 잠자리 이야기를 안 할 줄 알았나? 뭘 믿고? 네가 그의 정혼자라도 돼?”
“…….”
“기껏 해 봤자 아이작의 침대를 데우는 주제에!”
레이첼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아이작이 그녀를 연인이다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아이작의 침대에 기어 올라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면전에 대고 저따위 말이라니. 맞는 말이라도 저건 모욕이었다.
“게다가 이 사내 저 사내 다 물고 다녔으면 그 정도 말은 들을 각오를 해야지. 뭐가 그리 깨끗하다고 내 앞에서 어리광이야. 내가 네 부모야?”
‘아니, 부모는 자식한테 이런 짓 안 하지. 게다가 내가 언제 그렇게 몸을 굴렸다고…….’
레이첼은 억울했다. 사교계 생활 어언 몇 년…….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사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입맞춤한 사내는 또 모를까.
‘다섯……? 아니 여섯인가?’
레이첼은 제 외모와 명성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야 적은 수라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이 사내와 비교한다면 적은 수였다. 아직 열은 넘어가지 않았으니.
“각하야말로 사교계 영애란 영애, 아니 부인들도 포함인가. 여하튼 사교계 여인은 다 넘어뜨리고 다니시면서 저한테 그리 말씀하실 자격이 있으세요?”
“내가 너와 같아? 난 후작이야! 그리고 나는 넘어뜨린 적 없어. 그들이 먼저 다가온 거지.”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식상하게 하세요! 그럼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좀 예뻐요? 좀 인기가 많아요? 신사분들이 저를 놔두지 않는 걸 왜 제 탓을 하세요!”
“이…… 이 발칙한!”
“왜! 한 대 치시게요?”
흥분한 레이첼은 지지 않고 사내에게 덤볐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의자를 걷어찼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레이첼의 옆으로 넘어졌다.
‘가정 교육 시급한 새끼!’
거친 소리에 심장이 좀 놀라긴 했으나 레이첼은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핥아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차라리 치세요! 한 대 쳐! 그러면 적어도 빵빵하게 위로금을 받아 낼 게 아니야! 아악! 마음대로 해! 쳐! 쳐 보라고! 미친놈아!”
레이첼이 방방 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겁을 상실한 레이첼의 모습에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더니 휙 하고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개새끼!”
레이첼은 사내가 사라지자 일어서 드레스를 바로 했다. 팡팡하는 소리와 함께 한바탕 욕이 방 안 전체에 울렸다.
그래. 가라, 가! 그리고 다신 보지 말자. 레이첼은 걸음을 옮겨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안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는 거지꼴에 드레스는 일부러 구겨 입어도 이럴 수 없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세상에.”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거울을 보며 몸을 정돈했다. 어째 저 사내와 만날 때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로잘린. 이 미친년! 저 미친놈을 버리고 도망을 왜 쳐?”
레이첼은 사내를 만나게끔 사고를 친 옛 친구를 욕했다. 망할 년! 나쁜 년! 못된 년! 결국 이럴 거면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욕이 아주 차지게 나왔다.
‘……그런데 집으로는 어떻게 가지?’
한참 로잘린을 욕하며 발을 구르던 레이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 맙소사! 그러고 보니 올 때도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에단 마일런!!!”
레이첼이 사내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납치해 왔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레이첼은 제멋대로인 사내를 욕하며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