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1. 과거 (수오)(외전) (15/18)

극락의 BL 소설 외전

Chapter 1. 과거 (수오)

나는 그 길로 문관으로 가, 부율과 사신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상세히 고했다. 그리고 황제의 의심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소집된 무관들은 사신들이 바칠 답례품 속에서 화승총을 찾아냈다. 아무도 공주의 말을 의심하거나 반박하지 못했다. 황제의 기세는 커져만 갔고, 그 입매에 흡족한 그림자가 졌다. 그날 밤, 정사(正使)와 그녀의 타각(打角)들 모두 목이 잘려 대궐에 걸렸다.

어쩔 수 없었다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달래 보아도, 절망이 진다. 돌이킬 수 없는데, 나는 초조하기만 했다.

황제는 부율을 살려 주겠다고 했다. 단지 그를 귀양 보내는 것이라고, 내게 약조했다. 바보같이도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다음 날 새벽이 오기도 전에, 황제가 부율과 그의 가문에게 사약을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네게 약조한 대로 피는 없을 것이다. 편히 죽을 것이야.”

황제는 영악한 얼굴로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비명이 나왔다.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리가 새하얘져 스스로 원망하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황제는 그런 내게 마지막 제안을 했다.

“떠나기 전 시간을 주겠다.”

황제는 그가 사약을 받는 미시(未時)가 오기 전, 내게 그와 작별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부율은 궁을 나가 본가에 감금되어 있었다. 무관들이 대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가족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방에 갇혀 있었다. 무서웠다. 순식간에 그를 잃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했다. 이건 내가 한 선택이 아니야. 이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다.

“…누룩.”

단 하루 만에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를 원망하고 분노할 그의 눈을 도저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마음속에 울분을 생각하면 그럴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멈춰지지 않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그런데, 부율이 내 앞에서 함께 무너진다. 그는 울음으로 인해 쉬어버린 내 목을 가볍게 쥐었다.

나는 체념을 한다. 그의 손에 죽을 수 있을까. 그가 차라리 나를 죽여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그 어떤 압박감 없이 그의 손이 내 턱으로 올라왔다. 온기가 따듯하다. 칼날처럼 내 목을 그을 줄만 알았던 그의 손길이 너무도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졌다.

“아…….”

어째서.

나는 그제야 감고 있던 눈을 떠 부율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의 눈가가 내게 말하고 있다. 그건 원망의 감정도, 분풀이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널 볼 수 있어… 참 다행이구나.”

우리의 마지막 순간, 그는 나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안았다. 그에게 매달렸다. 잘못했다고, 그에게 빌고 싶었다. 결과가 그의 죽음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흑…. 흐으윽……!”

싫다. 이 온기를 놓치기 싫어.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쉬이…. 괜찮다.”

그가 우는 나를 위로했다. 예전과 같이 다정한 목소리로 내 슬픔을 달랬다. 나는 그에게 고백해야만 했다. 황제가 내게 어떤 제안을 했고, 무엇을 약조했는지. 그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애원한다. 결코,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었노라고. 황제의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선택을…….

“내일이면 궁을 나가겠구나.”

내 말을 모두 들은 부율은 화를 내지도, 나를 탓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면 서현국으로 가, 수오를 만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부율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나를 떠나는 것이냐.”

담담했던 목소리가 조금씩 쓸쓸해진다. 나를 품은 그의 커다란 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이 가면 당분간 또 널 볼 수 없겠지…….”

그가 나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바닥에 닿은 등허리가 붉어질 정도로, 나를 품었다. 그런데도 허전하다. 닿지 않은 몸 구석이 조금도 없는데도, 전혀 만질 수 없는 것처럼 사이가 멀었다. 그와 내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다음에도 널 기억하고 있을까.”

그가 말하는 다음이라는 것은, 언제를 가리키는 것일까. 꿈에서처럼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현실이고 그저 끝이 나는 것일 뿐일까. 그는 알지 못했다. 나 역시 무너지는 그를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다.

“다음에도 내 꿈에 나와 주겠느냐.”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차라리 이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선택지가 있는 소설 속이었다면, 이보다는 더 나았을까.

“누룩.”

그는 젖은 뺨에 붙은 내 머리카락을 떼어 주며, 나를 불렀다. 은근한 목소리가 영원할 것처럼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죄를 지은 자만이 생을 떠돌아다닌다 하였다.”

그가 읊조리는 말이, 어째서인지 귀에 익었다. 이것 또한 전생의 기억일까.

“나는 꿈에서 내가 지은 죄를 보았다.”

부율은 자조했다. 공허한 눈에서는 후회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어떤 것을 보았는지 물을 수 없었다. 깊게 잠긴 슬픔에 곧장 질식해 버릴 것처럼 그 무게감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또 한 번 생을 살게 된 것이겠지.”

“…….”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그는 얼룩진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술로 옮겨 간다. 그의 향기가 간지러웠다. 애끓는 안타까움에 그의 소매를 붙잡아, 조금이라도 가두어 본다. 이 향기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렇게.

“너를 다시 만나 조금이라도 가져 보았으니, 그때 내가 한 실수는 실수가 아니었어.”

그는 자신의 꿈에서 본 죄를 실수라고 하였다. 하지만 두 눈에는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꿈은 곧 사라질 테니까. 이제 우리에게 영원이란 없으리라, 나는 우습게도 그리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으로 향했다.

“그러니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집념 어린 목소리가 그를 다시 생기있게 했다. 그는 나와는 다른 것을 믿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을 믿고 있다.

“아…….”

나는 홀린 듯 일어나 그가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어 손이 떨렸다.

“죄를 지을 것이다.”

그가 단검을 들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발을 움직여, 그의 앞으로 뛰었다. 그리고 그의 손목을 쥐고 애원했다.

“제발…….”

하지만 검을 든 그의 팔은 더욱 고집스레 굳어졌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움직였다.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축축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너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으면, 우린 죄를 짓게 될까.”

“부율…….”

그가 손잡이를 돌려 칼날이 그의 배 위에 닿게 하였다. 금방이라도 얄팍한 천을 뚫고 그의 살결을 갈가리 찢을 것 같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멈추어 달라고 빌었다.

어느새 벽에 등이 닿았다. 막다른 길이었다. 부율은 그때를 노려 내 손을 잡아 그의 품으로 이끌었다. 칼의 손잡이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는 내가 칼을 쥘 수 있도록 내 팔목을 아프도록 쥔다. 거칠고 강압적이었다.

“내게 다음 생이 주어질까.”

“싫어요. 제발……!”

“예전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치면, 칼끝이 그대로 그의 복부를 꿰뚫을 것 같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울고 소리치는 나를 보면서도 아무런 동요도 없이 너무도 확고했다. 내가 너무도 큰 잘못을 지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를 배신하고 말았다. 그래서 벌을 받는 걸까. 이토록 끔찍한 벌을?

“부율. 부율…….”

나는 연신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큰 소리로 불러도 안도할 수가 없다. 그가 곧장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울부짖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용서해 다오.”

어느새 내 양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내 손목을 감싸고 나를 강하게 품었다. 이윽고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습기가 어느새 방 안까지 스며든 걸까. 아니, 아니었다.

“아…….”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가 그대로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 커다란 몸을 지탱해 보려 애쓰지만, 너무도 쉽게 바닥에 가라앉는다. 나는 내 손에 묻은 그의 피를 바라봤다. 살점을 찌르던 칼날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았다.

“부, 부율… 님?”

황급히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의원을 불러오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그를 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그가 내 팔목을 끌어당겼다. 살아 있다. 숨을 쉬고 있는데, 호흡이 한없이 나약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누룩…….”

나는 눈물을 쏟으며 그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그가 나를 붙잡지 않아도, 내가 그를 살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헛된 희망을 품을 만큼 그를 원했다. 그가 내 곁에 살아 주길 바랐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나를 사랑했느냐.”

그를 사랑해.

“아… 으… 아으…….”

그러니까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 이렇게는 안 돼. 이렇게 잔인하게 이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꿔야 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하고 이전 생과 다르게 행복해야 했다.

“나는… 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목에서부터 가슴까지 어지러이 난잡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입술을 포개며 약한 그의 숨결을 느꼈다. 곧 멀어질 것처럼 아득하다. 너무도 여리다.

“다음 생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점차 얇아진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힘없이 나약하다. 주워 담기에도 너무 얄팍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사랑해다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맥박은 가늘게나마 뛰고 있었지만, 그에게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지금이 그와 나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들었을까. 이곳을 떠나기 전, 내가 그에게 고백한 말을 들었을까. 그에게 묻고 싶었다. 말없이 품고 있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껴주었느냐고. 아니면, 미처 사랑해 주지 못했던 과거의 흔적을 따라 아직도 슬퍼하고 있을까.

나는 피가 흥건한 바닥에 쓰러지며, 그의 차가운 손을 움켜잡았다.

죄를 지은 것은 누구였을까.

칼을 쥔 그였을까. 아니면 그를 배신한 나였을까. 혹은 이 모든 결과를 선택하게 한 수오였을까. 아니. 우리 전부가 죄인이었을까.

부율의 말대로 다음 이야기가 찾아오면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때는, 또 누가 죄인이 될까.

* * *

1년이 지났다. 서현국의 사신들과 유(柔)씨 세가를 몰살한 황제는 끝내 폐위되고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서현국은 그런 여국을 괘씸하게 여겼으나, 전쟁을 일으키진 않았다. 대신 춘왕이 직접 세자를 여국의 차기 임금으로 올렸고, 스스로 여국의 모국이 되었음을 선포했다. 힘과 황제를 모두 잃은 여국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모두가 선망하던 부율마저 잃었으니,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그렇게 대국이었던 여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1년 동안 나는 수오의 것이 되어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서현국의 가장 황폐한 마을에 정착하였고,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살길이 막막하여, 곧잘 유혹에 흔들리고는 하였다. 음지에서 돈을 들고 찾아오는 사내들. 수오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은 서현국에서도 꼬리표처럼 항시 붙어 다녔다. 돈을 버는 방법.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가 나를 철저히 소유할 수 있는, 최악의 수단.

그는 비역질을 일삼던 사내들을 모아 창관을 차렸고, 그들의 기부(妓夫)가 되었다.

“벌써 신초(申初)가 다 되었구나.”

수오는 장롱에서 가죽으로 된 정조대를 꺼냈다. 해가 노랗게 변하는 신초가 되면, 그는 언제나 정조대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기겁하며 그를 밀쳐 울며 애원하기도 했다. 음부에 쓸리는 가죽의 거친 촉감도 좋지 않았고, 그가 풀어 주기 전까지는 측간에도 가지 못한다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강제로 정조대를 찼던 첫날에는 결국 오줌을 질질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축축한 정조대를 찬 그대로 창관에서 음식을 날라야 했으며, 창부들을 꾸며야 했다. 내가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그토록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오는 나를 쳐다만 볼뿐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손님들을 맞이하고 그의 수하에 있는 창부들을 관리하기 바빴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이 오기 전에, 손님들이 이곳을 찾기 전에 내게 정조대를 채웠다. 질 속에 성기 모양으로 된 나무 조각을 박아 넣었고, 음부 전체를 가죽으로 꽉꽉 묶었다. 그는 내게 경고했다. 창관에 드나드는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눈길을 보내면, 평생 정조대를 풀어 주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평소 내지 않는 낮고 음침한 목소리. 무서운 눈빛. 손목을 짓누르는 힘. 어느 것 하나도 거짓인 것은 없었다. 나는 결국 그에게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오늘도 치마를 올렸다.

그는 능숙하게 마른 나무 조각에 기름을 바르고 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속곳을 입힌 후 가죽으로 싸맸다. 오늘도 이 정조대를 스스로 풀었다가는 그에게 어떻게 잔인하게 혼이 날지 모른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오늘은… 늦게 끝나?”

손님이 많은 초봄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새벽 즈음에는 방으로 돌아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늦게 끝날지도 몰랐다. 수오는 매듭을 철저히 한 뒤,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를 거스르지 않았을 때는 이토록 상냥한데, 조금이라도 사내들과 관련된 일에 얽혔다가는 금세 무서워졌다.

“누야.”

“…….”

그가 조용히 나를 훑는다. 때때로 그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곤 했다. 지금도 똑같았다. 마치 여전히 그의 한낱 시종인 것처럼 나를 바라본다. 부부가 된 초야 날에도 그는 사납게 이를 세웠고 나를 철저히 능욕했었다.

“이제 곧 사내들이 득실거릴 거다.”

“…응.”

“반드시 두 무릎을 붙이고 있어. 걸을 때도 보폭을 넓게 벌리지 마.”

나를 쏘아보는 수오의 눈길이 뜨겁다 못해 아렸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그의 명령에도 나는 반기를 들 수 없다. 그가 무서웠으니까. 그 끔찍한 형벌을 또다시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수오…….”

나는 그의 품에 스스로 기어가 안겼다. 잠시나마 그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가 나의 것이라고, 부드럽고 고운 얼굴과 단단한 몸이 전부 내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의 말 한마디에 어쩔 줄 몰라 초조해했다. 그는 나를 지배했고, 나는 그에게 복종했다. 그건 우리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수오는 나를 따스하게 품고, 속삭였다.

“손님을 상대하는 것은 다른 창부들이다.”

알고 있다. 그가 창관을 세우고 창부들을 모은 것은, 가정을 꾸리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돈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예전의 화향관에서처럼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주인으로서 이곳의 창부들을 관리할 뿐이다. 하지만 아는데도, 불안하다. 너무 어여뻐서 그가 나를 두고 다른 이를 사랑할 것만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너무 못나서…….

“내가 너를 떠날까 봐 무서운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그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어루만진다.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일그러진 것 같이 보인다면 내 착각일까. 기묘하리만큼 소름이 쫙 퍼져 나간다. 어째서일까.

“나도 너를 빼앗길까 무섭구나.”

“아…….”

그의 손이 내 입술로 넘어온다. 입을 맞추는가 싶었는데, 날 선 손톱이 통통한 아랫입술을 찍었다. 신음을 내며 얼굴을 찌푸려 보지만, 그는 묵묵부답하며 더욱 질기게 나를 아프게 했다.

“으… 아, 읏…….”

“다시는 네 몸이 다른 놈한테 넘어가지 않도록.”

“아… 수오…….”

“철저히 감시할 것이다.”

그는 내 입술에 작게 생채기를 남기고서야 날 놓아주었다. 이제는 그가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밖에서 문지방을 넘는 손님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울컥, 나쁜 마음이 돋아나다가도 스스로 가라앉혔다. 싫지만, 이 또한 그와 함께하기 위한 잠깐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아.”

그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 듯, 다시 날 향해 돌아본다.

“밖으로 나오려거든, 그 커다란 젖통은 단단히 묶고 나오거라.”

나는 말 없이 장롱에서 넓은 천을 꺼내 가슴에 둘렀다. 숨쉬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꽉 묶어야만, 그가 나를 밖으로 내보내 줄 것이다. 볼록 튀어나와 있던 가슴이 곧 평평하게 가라앉는다. 수오가 선명해진 미소로 나를 보았다. 이제야, 만족해 했다.

“잘하였다.”

그의 짧은 칭찬에도 머릿속이 엉망이 될 만큼 북받쳐 오른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음부와 가슴이 괴로운데도, 나는 환하게 웃었다. 중독되고 만다. 그의 아주 작은 친절에도, 큰 희망을 느끼면서.

“그럼 행동거지 잘하거라.”

이윽고 문이 열리고, 그가 뒷모습을 보였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를 한동안 바라보며 아픈 가슴을 달랬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슬픔은, 나를 쫓아다닌다. 떼어지지 않았고, 뱃속과 목구멍에 달라붙어 내게 속삭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행복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한 끔찍한 선택이 옳았다고 거짓으로 믿으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내가 사랑한 것이 수오 뿐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 * *

수오가 방으로 돌아온 것은 아주 늦은 밤중이었다. 그의 장포(長袍)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술 냄새로 그가 술잔에 입을 댔음을 알아챘다. 나는 괜히 울적해져 등을 돌려 몸을 말았다.

“누룩.”

그가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언제나처럼 마중 나가지 않았기 때문일까. 수오는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단숨에 끌어 내렸다.

“오늘은 밖을 나가지 않았더구나.”

“…….”

그의 말대로, 나는 줄곧 방 안에 있었다. 그의 일을 돕지도 않았으며, 손님들에게 술상을 나르지도 않았다. 그건 내 나름대로 반발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나는 어떤 울분을 쏟고 싶었던 걸까.

“헌데… 소윤이 이곳을 들렀다던데.”

“아…….”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소윤은 이곳에서 일하는 수(受) 창부였다. 아직 경험이 없어 잡일만 하는 아이로, 나를 곧잘 따르고는 하였다. 오늘은 방 안에만 있는 내가 걱정된다며 찾아왔다. 순수한 그의 마음을 알기에 거절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짧게나마 방 안에 들여 소담을 나눴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아이를 방으로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대체 수오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놈 자지가 탐스럽게 보이기라도 한 것이냐.”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그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올라갔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네 보지를 확인해 봐야겠다.”

“아……!”

그가 순식간에 내게 달려들었다. 꽉 묶여 있던 매듭을 풀고, 답답했던 가죽 천을 끌어 내렸다. 이윽고 속곳이 보이자 서둘러 그마저도 헤집고, 보지 속에 있던 나무 조각을 꺼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요의가 밀려오고, 숨이 풀어졌다. 소변을 참기 위해 그가 오기 전까지는 물 한 모금도 먹지 않았는데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수, 수오…….”

“젖어있구나.”

나는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 아니다. 흥분해서 나오는 애액이 아니라, 소변을 참기 위해 꽉 조이느라 나온 흔적일 뿐이다. 그에게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오는 내 목을 잡고 나를 바닥으로 쓰러트렸다.

“으윽……!”

“말해.”

금세 얼굴에 피가 몰려든다. 그의 표정은 먹잇감을 손에 쥔 듯 가볍기만 하다.

“그놈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낱낱이 고하거라.”

“윽… 아니야, 그런 게 아… 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나는 그의 아래에 깔려,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다. 같잖은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이런 자신은 싫었다. 그에게 한없이 나약해진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소, 소변이 마려워서… 아, 읏, 그래서 아래를 조여서…….”

“평소 같으면 물을 마시지 않았을 텐데?”

“아, 안 마셨어. 하, 읏…….”

그의 입매가 잔악하게도 구겨진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나를 깔고 군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저 얼굴을 알고 있을까.

그러나 허무하게도 나는 저 얼굴을 참 좋아하고 있다. 나를 가지고 싶어 안달 나 하는 저 고운 선들을 모조리 사랑하고 있었다.

“그럼 물을 마셔야겠구나.”

“으, 응… 아, 제발…….”

수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윽고 바지를 벗고, 곧게 선 자지를 흔들었다.

“마시거라. 어서.”

그는 완전히 내 위에 올라와, 내 입술에 대고 자지를 들이밀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목을 조였다.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순간, 그의 굵은 성기가 한꺼번에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우우욱! 아훕!”

“크윽. 더 깊게 삼켜. 숨 쉬려고 괜히 밀어내지 말고.”

수오는 바둥대는 내 두 손을 붙잡고 단단한 기둥을 목구멍까지 욱여넣었다. 구역질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그는 봐주지 않고 귀두를 움직였다. 한계까지 벌어진 턱이 뻐근하고 목구멍이 아팠다. 그런데도 그의 요도에서는 시큼한 물이 줄줄 흘러, 내 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마침 갈증이 났던 입술은 허겁지겁 그의 첨단을 쪽쪽 빨았다.

“아웁… 욱… 하욱……!”

“하아, 윽. 혀는 그 상태로 하고… 아, 끝까지 받아먹어. 더, 더 깊이…….”

“우우우웁! 아후으읍!”

난잡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창부들이 들을까 무서운데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계속 그의 자지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수오는 손을 뒤로 뻗어, 내 음모를 쓸었다. 그러자, 다리 결이 바싹 솟아오르며 참아 왔던 요의가 더 극심해졌다. 나는 몸을 떨며 약하게 저항했다.

“욱… 아, 안 돼… 우붑…….”

“가만히 있거라.”

찰싹. 그가 오므리는 내 허벅지를 약하게 때렸다. 놀란 다리가 힘을 풀자, 그의 손이 소음순으로 손쉽게 들어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곧바로 그의 손가락이 내 음핵을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하, 으… 끅.”

“쉬이…. 그리 마려웠다면서 어째서 참는 것이냐.”

성기가 입 밖을 빠져나갔다. 대신 그는 내 양 볼에 자지를 문지르며, 나를 재촉했다. 어서 그의 손길에 소변을 내길 바라면서, 나를 유혹했다.

“이곳에 손가락을 넣어 방광을 눌러야, 내 말을 듣겠느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그를 말렸다. 하지만 수오는 오히려 그런 내 반응에 흥분한 듯 손가락 하나를 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손가락… 세 번째 손가락마저 넣으며 방광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 흐으윽! 제발… 나올 것 같……!”

“하아. 혀 내밀어.”

그는 성기를 들더니 커다란 귀두로 내 뺨을 쳤다. 나는 억지로 혀를 내밀고 그의 요도에서 흐르는 자지 물을 핥았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손을 뻗어 보지를 건드렸다.

“아흐으으윽!”

“이제야 물이 나오는구나.”

찔끔찔끔 요도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흘러 수치감을 더해갔다. 그러나 어찌 된 것인지 그의 성기는 더 크고 단단해졌다. 아랫배까지 닿아 있는 그의 기둥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길어져 있다.

“하, 입 벌려.”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없었다. 어서 빨리 입을 벌려 그의 귀두를 빨아 먹길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거부하지 못하고 그의 명령대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가 귀두 끝을 내 입속에 조준하더니, 정액을 벌컥 뱉어 냈다.

“크윽!”

짙고 비릿한 향이 콧속을 찔렀다. 그가 낸 정액은 유독 점성이 짙고 농후했다. 그러나 지금은 맛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갈증이 났다. 나는 그가 낸 정액을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꿀꺽 삼켰다.

“…요강으로 가.”

그는 단숨에 내 팔을 부여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하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부끄럽고 처참한 기분인데도 나를 쏘는 따가운 시선에 어쩔 수 없이 발이 움직인다. 이윽고 요강 앞에 다다르자, 그가 내 두 다리를 벌려 세운다.

“안에다가 조준해서 제대로 싸.”

“흑…. 싫어…….”

나는 간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푸른 눈동자가 나를 엄하게 탓하고 있었다. 고개가 샐쭉 내려갔다.

“얼마나 내가 더 기다려야 되겠어.”

책망 어린 목소리가 내 뒷덜미에 쏘아붙여 진다. 그는 기다리다 지루했는지, 장식장 위에 남아 있던 술을 집어 들었다. 곧 그의 입술이 맑은 술을 탐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그가 흘리는 술을 쳐다봤다. 먹음직스러웠다.

“수오…….”

이미 나는 홀려 있는지도 모른다.

“읏…….”

그에게서 나는 술 냄새 때문일 것이다. 분명 그래서, 나는 취한 걸지도 모른다. 방광이 꽉 차 부풀어 오른 아랫배가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찌르르 울렸다. 나는 몸에 힘을 풀고, 무릎을 굽혔다. 곧 소변 줄기가 요강 안으로 흘러내려 갔다.

“흐으윽…. 흑…….”

수오는 흐느끼는 나를 소리 없이 지켜봤다. 그러다 요강 바닥을 치는 물소리가 멈추자 내게 다가왔다.

“손을 뒤로하여라.”

나는 그의 손바닥에 놓인 끈을 보았다. 아까 전 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그가 서랍에서 꺼낸 끄나풀이었다.

“아…….”

그는 나를 뒷짐 지게 하고, 그대로 두 손목을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어찌나 꽉 묶은 것인지 거친 줄에 쓸린 손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는 한쪽으로 다소곳해진 내 손목을 쥐고, 나를 벽으로 몰았다. 곧 차가운 벽에 가슴이 닿았다.

“사내한테 범해지지 않도록 몸조심하라고.”

“수, 수오야…….”

“분명 그리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혀가 농밀하게 귓속으로 들어와 나를 흠뻑 적신다.

“아기씨.”

울컥 눈물이 나왔다. 그리웠던 정인의 목소리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오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서로를 재곤 했다. 어느 날은 그 무렵 사춘기 아이처럼 사랑했고, 어떤 날은 서로를 지독히도 미워했다.

“…이리 와.”

그는 묶여 있는 나를 끌고 침상으로 쓰러트렸다. 거친 숨이 목선을 훑고 지나다닌다. 간지러워 몸을 꼬는데, 그가 내 엉덩이 살을 잡고 그 사이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

“하, 흐윽……!”

거칠다 못해, 강압적이었다. 하지만 손이 뒤로 묶여 있는 탓에 엎드린 채로 꾸역꾸역 남근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뒤에서 다시 내 목을 조였다. 처음에는 부드럽다가, 이내 흥분을 못 견디고 거세졌다.

“윽… 끄윽… 하, 응…….”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내 것뿐이다.”

그의 혀가 내 등에 내려앉는다. 발끝이 들리고 허리가 움찔거렸다. 그 작은 반응에 그가 욕지기하며 첨단을 꽂는다. 성기는 내 팔뚝보다 더 굵고 커져 있었다. 이런 아픈 성교가 싫어야 하는데, 거부해야 하는데, 나는 이 고통이 기억을 없애주리라 믿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온 그 슬픈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리라고.

“아, 으… 으……!”

“넌 나만 듣고, 나만 보고, 내 말만 따라.”

“으흐윽… 아아……!”

“내가 네 보지밖에 찾지 않는 것처럼.”

성기가 깊숙한 곳에 파고들었다. 이 느낌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감각이었고 내 모든 것이었다. 나는 쉽게 절정에 다다랐다. 이윽고 그의 몸이 내 등 위로 전부 포개어진다. 무게가 전부 내게로 실리자 마치 그에게 짓밟히는 것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그는 그 상태로 더 속도를 내, 동굴 속을 어지럽혔다. 내벽을 긁고 두꺼운 귀두 끝으로 상처를 냈다. 마치 갈고리처럼 내 안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그는 포효했다. 나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가 그를 강요했다. 이 미친 행위를 받아들이도록 나를 천천히 길들이고 있었다.

“누룩.”

그가 나를 부를 때, 나는 언제나 그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좀처럼 그 연하늘색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

‘누룩.’

나는 수오의 눈에서, 곧잘 다른 색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그건 평생 내가 그에게 숨겨야 할 유일한 것이었다.

“아… 욱, 하윽……!”

갑자기, 수오가 내 목덜미를 콱 깨문다. 금세 붉은 꽃이 피고 살점이 부어올랐다. 이윽고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몸이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기다려. 다시 정조대를 채워야겠구나.”

성기가 빠져나가자, 실처럼 정액이 쭉 늘어져 나왔다. 그는 웃으며 나무 조각을 보지 속에 처넣었다. 마치 그의 정액이 내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처럼.

“내일 다시 풀어 주마. 그때까지는…….”

그는 헐벗은 내 몸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다시 끈을 잡았다.

“조금도 움직이지 마. 다른 놈한테… 보일 순 없으니까.”

술에 취해 풀린 눈이 자칫 잘못하다간 광기에 휩싸여 버릴 것만 같다. 데일 듯, 홧홧하다. 나는 비로소 그가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을 인정했다. 그의 눈은 멀어있다. 어긋난 소유욕과 육욕이 그의 손을 속박하고 정신을 억압했다. 그는 두려워했다. 누구보다도 내게서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내가 다른 남자에게 속해지는 것을 역겨워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만이 너를 보호할 수 있어.”

“수오…….”

“누야. 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그 서글픈 말 속에서도, 나는 그의 품에 안겨 못 다 지른 숨을 내쉬었다. 끝나지 않는 악몽 속에서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정말이지 그의 말대로였다. 다리를 벌리고, 순응하며 사는 삶. 어떤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토록 편안한 삶인데 어찌 피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것이 되었다.

온전히.

* * *

오늘은 낮부터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마을에 잔치가 열리는 날인 만큼 손님들이 모여들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정조대를 차자마자 밖으로 나가 일을 돕기 시작했다. 상차림에 올릴 재료를 다듬고, 빈 병에 술을 채워 넣었다. 그 반복되는 일에도 지루할 틈은 없었다. 적어도 방에 갇혀서 종일 수오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비록 아까부터 속살을 헤집는 정조대가 불편했지만, 요의만 참을 수 있다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아, 누님. 오늘은 나오셨네요?”

수오가 그토록 싫어하던 소윤이었다. 간밤에 수오에게 당한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그는 내 반응이 서운한 듯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은 저도 지명을 받았어요.”

어린 소윤이 벌써 손님에게 지명을 받았다. 아찔해지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드디어 돈을 벌 수 있어요.”

“아…….”

소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앵벌이를 하며 자라 왔다고 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집이라고 정착한 곳이 바로 이 창관이었다. 그는 어쩌면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 고아로 자라 많은 선택지를 보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님이 생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이거.”

그때, 소윤이 깨끗한 유리 주자를 내게 건넸다. 그 안에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무엇일까 묻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물을 자주 안 드시잖아요. 혹시 그냥 물은 맛이 없는 건가 해서…. 꿀물이에요.”

그에게 정조대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저 수오가 정조대를 풀어 주기 전까지 갈증을 참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속곳에 싸버릴 게 분명하니까. 혹은 나도 모르게 정조대를 풀고 측간에 달려갈 게 뻔하다. 그러면… 그에게 벌을 받을 것이다. 그저 그 끔찍한 벌이 두려울 뿐이었다.

“아… 고마워요.”

소윤이 눈을 반짝이며 내 손에 든 유리 주자를 바라본다. 마음이 착잡했다. 입술은 해야 할 말을 망설이며 작게 오물거린다. 그러다, 갈증이나 혀를 내밀고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

그때, 소윤이 입을 작게 벌리더니 눈길을 돌렸다.

“왜 그래요?”

혹시 서운해하는 건가 해서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소윤은 긴장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만 있다. 나는 살며시 그의 소매를 잡았다. 딱 여기까지만. 내가 수오가 아닌 다른 사내한테 허용할 수 있는 거리는 이 정도뿐일 테니까.

“아, 누님…….”

소윤이 다시 나를 봤다. 눈가가 조금 붉어져 있는 채로. 설마 울고 싶은 걸까. 손님을 받게 된 것이 그렇게 기쁘기라도 한 걸까. 그런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결국 주자 속에 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갈증 난 목은 참지 못하고 꿀물을 더 갈구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절반이 사라졌다.

“맛있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라도 참으면 괜찮을 거야. 그리 위로하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소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순수한 반달 눈을 한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상차림을 준비했다.

그런데 한 시진이 지나자 우려한 대로, 요의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냐. 조금만 더 참자. 굳게 다독이며 도마를 쥐는데, 순식간에 머리가 핑 돌았다.

“아…….”

배출을, 하고 싶었다. 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아니었다. 수오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에게 사정하면,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걸을 때마다 방광이 수축하는 것 같아 괴로웠지만, 꾹 참고 견뎠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소윤이 부엌으로 돌아왔다.

“누님. 이걸 깜빡하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손에 네모나게 접힌 소지(小紙)가 있는 것을 보니, 향신료를 가져온 것 같았다. 아직 내 상태를 들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아… 그게, 나중에… 요.”

“네?”

말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걸까. 소윤이 머리를 긁적이며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위험했다. 이대로면 금방이라도 나와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간신히 그를 옆으로 피하며, 부엌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급해진 발목이 미처 앞에 있는 문지방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삐끗해 버렸다. 소윤이 놀라서 나를 잡았다.

“아, 위험해요!”

쿵.

분명 넘어지는 소리가 났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껄끄러운 돌바닥이 아닌 말캉한 것이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도 같다.

“어…….”

눈을 떠 아래를 보자, 소윤이 내 허리를 잡고 날 대신해서 쓰러져 있었다. 내가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 누님.”

머리를 다친 것인지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힘이 풀려서였을까. 아랫배가 다시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서, 정조대를 풀어야만 했다.

“어디 다쳤어요?”

“읏…….”

소윤을 어서 부엌 밖으로 보내고 이걸 풀어야 할 텐데.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그는 상냥하게 내 팔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동그란 눈동자가 어떤 의심도 없이 나를 좇아왔다. 나는 그의 손길을 거부했어야 했다. 수오에게 받을 벌을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야가 노래질 만큼 힘에 겨웠다. 눈물이 나왔다. 수치스럽고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나는 결국, 소윤의 어깨를 붙잡고 그에게 간청했다.

“제발… 풀어 줘요.”

질긴 가죽끈은 손으로는 절대 풀어지지 않는다. 부엌에 있는 무딘 과도도 사실, 어려울 것이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소윤뿐이었다. 평소 남동생처럼 나를 잘 따라 주었던 아이. 그런 그에게 지금 정조대를 풀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부끄러움에 치맛자락을 올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다신 그와 친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얼마나 경멸할까.

“흑…. 이거… 제발…….”

“아…. 설마.”

처음에는 놀란 눈으로 정조대를 보던 그의 눈이 어느새 풀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매듭진 부분을 가리켰다.

“주인님께서… 누님께 정조대를…….”

그는 작게 입을 벌려 감탄했다. 이미 몇몇 창부들은 수오가 나를 끔찍이도 아낀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소윤은 신경 쓰지 않는 무리 중 하나였지만, 차라리 알고 있었다면 덜 수치스러웠을까.

“아, 그, 그…. 잠시만요.”

소윤은 바닥에 부딪힌 허리를 받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품 안에 있던 은장도를 꺼냈다. 창부라면 누구나 손님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지고 다니는 호신용 칼이었다.

“치, 치마 더 올려 보실래요?”

내가 그의 말대로 치마를 올리자, 그가 냉큼 정조대에 손을 댔다.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그의 숨결이 허벅다리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읏… 제발 어서…….”

“누님…….”

소윤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그가 여자의 몸에 동하지 않는 남색이라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칼끝이 두껍게 묶인 매듭에 닿았다. 조금씩, 끝을 살살 갉아 먹는다. 하지만 차가운 칼날이 여과 없이 여린 피부에 맞부딪혀 왔다.

“아… 아, 잠깐만요. 아…….”

당황스러웠다. 아직 매듭은 반도 잘리지 않았는데, 요도 구멍이 활짝 풀어질 것 같았다. 소윤을 의식해서였을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 누님…….”

소윤이 칼질을 멈추고 내 허벅지에 손을 댔다. 그 손길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만 속곳이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보지 마요, 아… 흐윽.”

속곳만 적시던 물줄기가 어느새 사타구니에까지 흘러내렸다. 뒤늦게 소윤을 밀쳐내 보지만, 치마폭 속에 있던 그를 완전히 내쫓기는 힘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뚝뚝 떨어지는 물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참아 왔다는 듯이 숨을 빠르게 내쉬었다.

“하…….”

좀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졌던 터라, 움직일 수 없었던 발목이 그제야 놀라 허공에 떴다. 나는 소윤을 밀쳐내고 부엌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제 더는 소윤을 볼 낯짝이 없었다. 그도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창관 한쪽에 마련돼 있던 욕탕을 찾고 나서야 숨이 쉬어졌다. 갈라졌던 가죽 매듭이 그제야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수오에게 해야 할 변명을 생각하며 눈물을 닦았다. 내가 정조대를 탓할 수 있을까.

결국, 질질 새어 나온 물을 견디지 못하고 사내 앞에서 보여 버린 것은 나인데. 이런 바보스러운 나를 수오가… 용서해 줄까.

* * *

그날 밤, 수오는 어찌 된 일인지 일찍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는 척 이불 속에 꼭꼭 숨어 숨조차 함부로 내지 않았다. 차라리 그가 모른 척 넘어가 주었으면. 혹시나 그가 다시 방 밖으로 나가진 않을까 기대를 하며 더운 습기를 참았다.

“…….”

방 안은 사뭇 조용했다. 그가 윗옷을 벗고 침의를 걸치는 동안에도 적막이 흘렀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자고 있는 날 멀리서 지켜봤다. 그래서 안심됐다.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안전할 수도 있다. 오늘은 벌을 받지 않아도 될까. 나는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을 감추기 위해 이불 끝을 더욱 꽉 끌어당겼다.

“…자는 척을 하면 내가 널 봐줄 줄 알았더냐.”

섬뜩한 목소리가 내 등 뒤를 깊이 찔러 들어왔다. 이불이 빠르게 걷히고, 곧이어 달빛에 칠해진 그의 섬섬옥수가 보였다. 그의 손가락에 걸린 억센 밧줄도 눈동자에 비친다. 그제야 기겁해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가 내 손목을 줄로 묶어 구속했다.

“아, 제발……!”

“입 다물어.”

그를 설득해 보려는 시도가 한 번에 뭉그러지고 말았다. 손목을 이리저리 묶은 그가, 이번에는 젖가슴을 본다. 커다란 손이 무심하게 몽우리를 쥐다가, 이내 밧줄로 허리를 묶었다.

“으흑!”

강한 압박감에 몸을 꿈틀거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끈을 잡아당겨 튀어나온 젖가슴을 함께 묶었다. 살점에 피가 몰리더니 피부색이 새빨개져 갔다. 나는 울먹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를 봐 달라고 애원했으며 비겁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것 하나 귀담아듣지 않고 내 발목마저 끌어 잡았다.

“아흐윽!”

“아무 데서나 질질 싸는 암캐 년이.”

“아……!”

“뭘 잘했다고 반항을 하느냐.”

그는 내 두 발목을 한꺼번에 잡아 밧줄로 칭칭 묶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온몸이 거친 끈으로 묶여 숨을 크게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수오는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을 전부 끌어 내려, 알몸인 나를 감상했다.

“내가 널 감시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았어야지.”

“으흑… 흑… 수오야.”

“이제 다신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일까. 그가 나지막이 읊조린 말에 입가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빳빳이 굳어, 얼굴에 흐르는 눈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피부가 말라간다.

“수오야… 용서해줘. 흑…….”

그러나 그는 좀처럼 나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차가워진 그의 등만 멀찍이 바라보며 아픈 몸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그때, 창호지에 낯익은 인영이 섰다. 얼마 안 가서 나뭇결을 통통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소윤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발 열지 말라고, 안 된다고 비음을 질렀다. 하지만 영락없이 문은, 너무도 가벼이 열리고 만다. 소윤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후더분한 공기를 깨달았을 때쯤, 어린 소년의 눈이 나신인 채로 묶여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순식간에 호흡이 멈추고 그의 어깨가 뒤로 밀려났다.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수오가 소윤을 이곳으로 불렀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수오의 표정이 맑았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나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거기 앉아라.”

“주, 주인님. 어째서…….”

소윤의 얼굴에 당황한 그림자가 졌지만, 발길을 돌리거나 감히 문을 열지는 못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두 뺨이 붉기만 하다. 수오는 무릎에 앉은 내 다리를 높이 올리더니, 보지를 그에게 보였다. 나는 옴짝달싹 못 하고, 체념했다.

“오줌을 질질 흘렸던 보지다.”

“아…….”

“네놈 탓으로 더러워졌어.”

발목이 묶여 다리를 벌리지 못하는 탓으로, 보지 구멍은 오동통하게 오른 살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실처럼 길게 그어져 있는 선이 매우 음탕했다. 소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날 보던 초롱초롱한 눈빛은 어디 가고 사내처럼 그윽하게 보짓살을 응시하고 있다. 초조했다. 그가 여색을 탐하는 일반 사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불안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핥아 먹거라.”

“…예?”

수오의 명령에 소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하, 하지만 누님은 주인님의…….”

“내 것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우물쭈물 망설이던 소윤이 보지 앞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과 요동치는 두 눈이. 소윤은 내게 말을 거는 대신 바닥에 넙죽 엎드려 혀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깨끗하게 해… 해드리겠습니다.”

그를 말릴 새도 없이 뜨거운 혀가 아직 갈라지지 않은 그곳을 밀고 들어왔다. 그는 아직 건조한 그곳을 위아래로 슥슥 핥았다. 우연인지 그렇지 않으면 의도한 것인지 부드러운 혀끝이 곧 음핵에 닿는다. 나는 신음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흑. 흐윽! 싫어, 제발 그만… 아, 흐으읏……!”

“으음… 아, 음…….”

보지가 습하게 촉촉해진다. 타액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속살은 본능적으로 물을 뿜었다. 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때, 소윤이 양옆 살을 손으로 쫙 벌렸다. 붉은 내벽이 그의 앞에 드러났다.

“냄새가…….”

그는 코끝을 질척한 애액이 있는 곳으로 들이밀었다. 뜨거운 콧김이 내벽을 간질였다.

“엄청나요.”

수치스러웠다.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수오는 소윤의 감탄 어린 말에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안쪽까지 구석구석 닦아.”

“네, 주인님…….”

소윤은 작정하고 혀를 질 속으로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좌우로 휘둘러 구멍을 넓게 벌렸다. 나는 묶인 손으로 간신히 그의 어깨를 밀쳐내 본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내 엉덩이를 강하게 쥘 뿐이었다.

“가만… 음, 가만히 좀 계세요. 누님.”

“하지 마… 하읏, 제발……!”

소윤은 이미 물에 흠뻑 젖은 구멍에 매료되어 있었다. 갈증을 풀기 위해 우물을 파는 사람처럼 쉴새 없이 내 동굴 속을 탐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오를 올려다봤다. 이제 그만하라고, 용서해 달라고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의 눈이 매정하리만큼 날카롭다. 무엇이 불쾌한 것인지, 살의마저 느껴질 만큼.

곧 수오가 내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턱을 높이 들게 했다. 시선은 몸 선을 따라 쭉 내려왔다. 수오가 내 젖가슴을 바득 쥐며 낮게 읊조렸다.

“물보지를 맛본 어린 애가, 앞으로 뒷구멍을 열 수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만 들릴 만큼, 무섭게 내 귓가에 속삭인다.

“이제 사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오는 미쳐있다. 발정 난 어린아이를 이용해 나를 벌 줄 만큼, 그는 비뚤어져 있다. 그러나 소윤은 처음 맛보는 여인의 맛에 강렬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자신이 남색인지도 확신하지 못할 만큼 경험이 없는 아이가, 이제는 보지를 탐하고 있다. 겁이 났다. 청초하던 소년의 얼굴이 나로 인해 음침해져 갔다. 여색에 광분하고, 성기를 빳빳이 세웠다.

“하아…. 맛있어요. 맛있어…….”

“으흑… 으흐으윽… 아앙……!”

“아, 더 벌려요. 아까운 물이 다 바닥에 떨어지잖아…….”

소윤의 불평 어린 목소리에 수오가 손을 높이 들어 올린다. 찰싹. 앙칼진 소리가 여러 번 뒹굴었다. 그가 때린 젖가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수오는 그것이 사랑스러운 듯 정성껏 젖꼭지를 빨아먹었다.

“아읏! 아, 아흐으으……!”

결국, 절정을 견디지 못하고 진한 물을 뿜어냈다. 음부에 입술을 박고 있던 소윤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오줌…처럼 나오네요.”

“흑, 흐윽. 말하지… 마, 아흑!”

수오가 다시 한번 젖 몽우리를 내리쳤다. 눈이 핑 돌고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나는 실성한 것처럼 혀를 내밀고 미처 못 쉰 숨을 몰아쉬었다. 수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혀를 삼켰다. 눈을 뜨면, 그 시퍼런 눈동자가 나를 줄곧 응시하고 있다. 차라리 정신마저 망가져 버리길 바라야 할까.

“아직 어려 좆은 작겠지만.”

“으… 으으…….”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누야.”

수오는 소윤을 흘겼다. 그 냉랭한 눈이 뜨거워진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외간 사내를 노려본다. 소윤은 홀린 듯 바지를 벗고,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귀두 끝에서는 희묽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 안 돼. 수오야. 제발……!”

“네년이 얼마나 남자를 미치게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될 거다.”

“안 돼… 아, 헉……!”

그 순간, 욕구를 참지 못한 소윤의 자지가 구멍 속으로 수욱 들어왔다. 줄곧 남동생처럼 대했던 아이의 성기가 내 안을 마구 휘저었다. 수오는 잠시 벌어진 내 보지를 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내게서 멀어졌다. 소윤은 기뻐하며 내 두 다리를 움켜쥐고 천장 위로 높이 들었다.

“아, 하으, 헉, 헉…….”

“흐윽… 제발 빼줘. 제발…….”

“손님들이 구멍을 찾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아요. 누님. 아, 젠장.”

수오는 우리 둘을 지켜보며 술잔을 들었다. 난잡한 성교가 이뤄지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행동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눈앞에는 헐떡대는 소윤이 있었다. 나를 깔아뭉개고, 거칠게 속을 파고들었다.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물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크고 굵직한 자지가 구멍을 빼앗는다. 남편이 지켜보고 있는 신방(新房)에서 갓 혼례를 올린 여자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헉, 헉…. 이렇게 좋은 걸 여태 몰랐어요. 아… 누님. 끊어질 것 같아요.”

“소윤아. 윽, 제발. 하으윽. 빼줘. 빼줘……!”

“안 돼요. 아, 가만히 있어. 젠장. 빠지잖아!”

거센 손이 엉덩이를 몇 번이고 혼낸다. 그는 어느새 폭력적으로 변해 있었다. 성욕에 미친 사내처럼 나를 난폭하게 대했다. 충격으로 내가 눈물을 뚝뚝 흘리자, 그 역시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다. 그러나 붉어진 눈 밑은 더욱 피폐해지기만 하다. 아픈 허리 짓이 계속됐다.

“하, 내가 왜 이러지는 모르겠… 아, 미안해요. 미안해요.”

“빼줘…. 아, 흐… 하으응……!”

이런 상황에서도 엉덩이 밑은 애액으로 흥건했다. 수오는 그런 날 보며 비소를 금치 못했다. 아니야. 아니다. 이건 전부 그가 나쁜 것일 뿐이다. 자지가 여린 살을 자꾸만 건드려서 그런 것이라고. 내 의지가 아니었음을.

그러나 두 남자는 헐떡이는 나를 얕보고 경멸했다. 암캐를 다루는 듯이 거친 손길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토록 쉽게 먹을 수 있는 우물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수오가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천한 것이라고. 그래서 나를 감시하고 가두고 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헉, 허으… 아, 헉…. 물이 많아서 자꾸 빠져. 아, 씨발. 엎드려.”

“아악……!”

소윤이 나를 뒤집어, 그대로 뒤에서 덮쳐왔다. 온통 묶여 있는 나는 그를 피할 수도 밀쳐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이윽고 엉덩이 살을 가르고 성난 자지가 쑥쑥 들어왔다. 그는 그 쫄깃함에 감탄하며 연신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철썩. 철썩. 손바닥 모양의 붉은 생채기가 피부에 넓게 새겨졌다.

“윽, 크윽… 이런 보지인줄 알았으면 젠장, 처음부터 따먹고 강간했어야…….”

“흑, 흐윽… 그만, 아파… 아흐윽……!”

“입 다물어. 좆 먹는 암캐 주제에… 아, 씨발. 맛있어요…….”

절망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지가 빠르게 드나들어 구멍이 너덜너덜해져 갔다. 소윤은 움찔거리는 나를 벌레처럼 취급하며 허리에 묶여 있는 끈을 잡아당겼다. 일순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자, 그가 희열에 차 웃었다.

“아, 나온다……!”

“제발, 아. 안돼. 흐으으읏……!”

몽글몽글 덩어리진 정액이 순식간에 보지 속에서 흐물거렸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직 진정되지 않는 자지를 연신 안쪽까지 쑤셔 넣었다. 다시금 어린 자지가 내 안에서 커지고 있다. 나는 기겁하며 수오를 불렀다. 그가 도와주길 간절히 빌었다. 제발 이제는 그만두어 주길. 이 벌을 끝내주길. 날 용서해 주길.

“수오야… 흑, 흐윽… 잘못했어. 잘못했어.”

“…….”

드디어 그가 침상으로 다가왔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강한 술 냄새와 함께, 수오가 내게 가까워졌다.

“이제 알겠느냐.”

“흑, 흐… 아으…….”

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어떤 말이든 그의 명령이라면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암캐 같은 몸에 홀린 놈들이 하나 같이 널 강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수오야, 수오…….”

“난 그런 널 보호해야 해.”

그때, 수오가 소윤의 목을 쥐어 들어 올렸다. 한순간에 어린아이가 끅끅대며 바동댔다. 그런 아이를 수오는 싸늘하게 훑을 뿐이다.

“그리도 맛이 좋았더냐.”

“아, 으윽……….”

“네 작은 좆도 꾸역꾸역 삼키는 보지 맛이 기가 막혔겠지.”

“죄, 죄송합… 아……욱!”

수오의 손등에 핏줄이 굵어진다. 동시에, 소윤의 목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 잔혹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두려워 숨을 뿐이다. 수오에게 맞설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가 또 언제 괴물이 될지 모르니까.

“…썩 꺼지거라.”

“헉, 허억, 헉…….”

수오는 위험한 순간, 소윤의 목을 놨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난 그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커다랗던 자지는 어느 순간 손마디보다도 작게 쭈그러져 있었다. 얼마 안 가 그가 황급히 옷가지들을 챙겨 문밖으로 뛰쳐 갔다. 이제 둘만 남은 방 안에서, 수오가 침상 위로 들어왔다. 그의 몸이 뜨겁다. 소윤의 두 배만 한 성기는 이미 아랫배에 닿을 정도로 발기해 있는 상태였다.

“약을 먹어야겠구나.”

“아…….”

그가 말하는 약이란 건, 애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 주는 약이었다. 수오와 나 사이에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 지난날 독약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윤은 다르다. 자궁에 그의 씨가 남아 있으면 임신이 될지도 모른다.

“입 벌리고… 삼키거라.”

나는 그가 준 검붉은 정제를 물 없이 삼켰다. 어떤 의심도 없이 약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곧 졸음이 쏟아졌다. 수오는 그의 품에 쓰러지는 나를 안고,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아늑하다. 그의 옷에 배인 진한 술 향도 나쁘지 않았다.

“넌 내가 지켜줘야 해.”

그는 몇 번이고 내게 속삭였다. 강박처럼 좀처럼 차분해지지 못했다. 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막 의식 속에서, 그가 내게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널… 내가 가두어야 해.”

검다. 참으로 무겁다. 우리는 악을 쓰며 일상 속에서도 더러운 것을 좇으며, 중독되어 갔다.

수오는 잠에 빠진 나를 집요하게 쓰다듬었다. 그가 바라는 만큼의 오랜 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 * *

“아… 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눈 아래에서 피로가 몰려와 금방이라도 다시 눈꺼풀이 감길 듯이 불쾌하다. 그러나 눈을 떠도,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둡고, 습하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는데 그 외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텅 빈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오…….”

나는 본능적으로 그를 찾았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서늘한 곳에서도 몸이 뜨거웠다. 그제야 내가 헐벗은 채로 천장 위에 매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발가락은 간신히 바닥에 닿아 있지만, 뒤꿈치는 공중에 떠 있어 도무지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도와줘… 아.”

갈증이 났다.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나오는 것을 보니, 며칠간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것 같았다. 윗배가 홀쭉한데도 속은 거북하다. 먹은 것이 없어 쓰리고 괴로웠다. 얼마나 이곳에 있었던 걸까.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나는 밧줄을 풀기 위해 아등바등 움직였다. 그러나 매듭은 움직일 때마다 날 더 조여올 뿐이었다.

“…얌전히 있거라. 걱정하지 말고.”

청량한 맑은 음성에 눈이 번쩍 뜨였다. 수오의 목소리였다. 나는 뒤로 묶여 있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풀어지지 않아도, 어쩌면 그가 날 가엽게 여겨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희망을 품은 마음이 금세 좌절되고 만다. 그의 입에서 비소가 새어 나온다.

“이곳에 있는 게 익숙해질 때쯤 풀어줄 것이다.”

익숙해질 때쯤……?

마치 그 말이, 내가 이곳을 나갈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려 초조해졌다. 그때, 멀리 있던 등불 하나가 켜진다. 수오의 얼굴이 흐릿하게나마 시야 속에 들어왔다.

“구석에 있던 낡은 축사를 기억하고 있느냐.”

“축사…….”

나는 우리가 이곳에 정착했을 때 발견한 작은 축사를 기억해 냈다. 땅이 비스듬히 경사져 있어 마치 땅굴 속에 지어진 듯한 허름한 판잣집. 도무지 쓸 곳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방치했던 공간이었다.

“색기가 흘러넘치는 여자를 부인으로 두었으니…….”

“수, 수오…….”

“그 벌렁거리는 보지가 함부로 열리지 않도록 완전히 길들여야지.”

수오가 등불 아래에서, 환하게 미소한다.

“그때까진 여길 나갈 수 없다.”

둔탁한 발소리가 빠르게 내 등 뒤로 다가왔다. 그는 장포(長袍)를 걷고 자지를 꺼냈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기만 한데, 그는 서슴없이 뒤에서 내 젖가슴을 쥐어짰다.

“금방 끝나지는 않을 거야.”

“아, 아흐윽!”

갑작스러운 삽입에 음부가 찢길 듯 고통스러웠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의 발기한 남근은 이미 완벽히 우람해져 있었다. 언제부터 흥분해 있던 것일까. 나를 은밀히 지켜보고 있던 때부터 그는 내 속을 파고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걸까.

“헐거워진 보지 제대로 조여.”

“흐윽! 아, 아흐윽……!”

그는 손바닥을 펼쳐 출렁이는 젖가슴을 때렸다. 새빨갛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내 허리를 가득 안았다. 그대로 힘을 더해 내 윗배를 압박했다. 답답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불평할 수 없었다. 그는 웃었다. 정신이 까마득해져,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나를 거칠게 껴안으며 몇 번이고 미소를 흘렸다.

“널 아끼는 건 이제 나뿐이야.”

“으, 끄… 아, 읏…….”

“너에게는 나밖에 남지 않았어. 누야.”

까무룩 다시 의식을 잃어간다. 그는 축 늘어진 내 몸을 끌어 올려, 성기를 박아댔다. 어디까지가 지옥일까. 어디까지가, 그가 내게 보여주는 악몽의 마지막일까. 몸은 그에게 완전히 귀속되어 망가지고 부서진다. 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고통은 비로소 쾌락에 옅어져만 갔다.

그의 아름다움을 내가 소유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 어떤 짓을 당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악귀가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아. 마침내 나는 사로잡혔다. 어둠이 우리를 크게 집어삼키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시간 속에 스며들고 만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 *

축사에 감금된 지 일삭(一朔)이 지났다. 그는 내게 밧줄을 풀어 주는 대신,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목에 구속구를 채웠다. 철로 된 것이라, 날붙이로도 끊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어 어떤 좌절감도 들지 않았다. 나는 수오의 말을 따라야 하니까. 그의 말대로, 나는 사내들을 끊임없이 유인하는 암캐에 불과하니까. 그에게 길들기 전에는 이곳을 나가서는 안 된다.

“식사를 가져왔단다.”

“수오…….”

나는 아이가 되어 그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가 오늘 들고 온 것은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반기(飯器)였다. 식찬 역시 보이지 않았다.

“물… 물은?”

사실 어젯밤부터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식수를 주지 않았다. 내가 괴로워서 엉엉 울고 나서야, 내 몸에 물을 뿌려주곤 했다. 그래도 하루를 넘긴 적은 없었다. 나는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런 나를 보고 그가 흡족하게 웃었다.

“가엾게도 힘들어 보이는구나.”

그는 야윈 내 뺨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평소와 달리 물병이 없었다. 곧 그가 나를 떼어 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불뚝 솟은 성기를 꺼냈다.

“입 벌리거라.”

“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액이라면 어제도 몇 번이고 꿀떡 삼켰을 텐데. 그걸로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나는 그의 허벅지를 밀어내며 거부했다. 목이 바싹 말라 어서 물을 마셔야 했다.

“부탁이야. 수오야. 물을…….”

“요강에 넣어 주어야 마실 테냐. 그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게 무슨… 아……!”

그가 매서운 손길로 내 턱을 잡고 입을 벌리게 했다. 곧 커다란 살덩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첨단에 정액이 묻어 있어 씁쓸한 맛이 맴돌았다. 그는 나를 벽으로 몰고, 내 뒤통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쥐었다.

“웁… 욱!”

“전부 다 마셔야지.”

갑자기 입안으로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짜고 자극적인 맛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젖히지만, 다시금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삼키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억지로 넘겨 보지만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갈증이 났던 목은 어느새 물기로 가득 차, 생생해진다. 그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내 입안에 털고는 그제야 자지를 빼주었다.

“하아, 하아… 우욱!”

가슴을 쳐내며 헛구역질을 해보지만 이미 삼켜버린 물은 도로 나오지 않았다. 눈물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수오는 괴로워하는 내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잘하였다.”

“하, 으… 도대체 왜…….”

그의 미소가 어쩐지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음산했다. 그런데도 바보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린다. 더러운 그의 물줄기조차 잊혀질 만큼 새하얀 얼굴이 해사하기 그지없다.

“이제 밥 먹어야지. 누야.”

다시 소름이 끼치는 미소였다. 나는 슬그머니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내 목덜미를 낚아채고 나를 끌어당겼다.

“다시 아, 입 벌리고.”

“싫… 우웁!”

아직 역한 냄새가 묻어 있는 자지가 다시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허벅지를 할퀴면서까지 반항해봐도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수오는 아예 양손으로 나를 붙잡고 강제로 입을 벌리게 했다. 그리고는 뜨겁게 젖어 있는 귀두 끝을 혓바닥에 문질렀다.

“하아, 조금만 더…. 윽…….”

“우으웁! 하우우웁!”

벌어진 입 사이로 자지가 여러 번 들어오고 나갔다. 너무 커다래서 나도 모르게 이를 세웠다. 하지만 수오는 거칠게 신음할 뿐 대수롭지 않아 했다. 더는 턱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성기는 더욱 크기를 더해가기만 했다. 좌우로 불쑥 밀고 들어와, 볼 안쪽을 긁기도 했으며 목 안쪽까지 귀두를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굵게 선 혈관이 불끈거렸다. 그는 빠르게 귀두를 밖으로 빼내 가져온 그릇에 정액을 쏟았다.

“하아, 크윽……!”

어찌나 양이 많은지 그릇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정액이 높이 쌓였다. 물보다는 죽같이 몽글몽글해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수오는 겁을 먹은 나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 턱을 바락 쥐었다.

“암캐처럼 혀 내밀고 핥아 먹어야지. 누야.”

그리고는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정액 냄새가 진하다. 평소처럼 입안에 머금고 불시에 삼키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처럼 그릇 안에 있다는 것이 모멸적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의 명령을 듣고 마리라는 것을 안다.

“하윽!”

찰싹. 그가 여린 엉덩이 살점에 손바닥을 내리친다. 흐느끼는 내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손길이 포악하기만 하다. 오래 버텨보았자 끝내 그의 매질에 포기하게 될 것이다. 나는 쓰라린 엉덩이를 움직여 그릇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굴욕스럽게 그의 무릎 아래 엎드려 입을 벌렸다.

“남김없이 비우거라.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텐데.”

혀끝에 닿은 정액 맛은 비릿하기만 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지 오래되어 이성이 듣질 않았다. 음식처럼, 그의 것을 남김없이 핥아 먹는다. 더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나는 완전히 그의 소유물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다만 그 방식이 잔인할 뿐이었다.

“다 먹었으면 이제 일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잡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수오는 이렇게 나를 자신의 품에 가둬두고 뒤에서 박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가 엉덩이를 세게 주물렀다. 그리고 천장 위로 솟은 귀두를 구멍에 조준한다.

“흐… 윽!”

뜨겁고 격렬했다. 나는 추잡해져 갔다. 그가 주는 쾌락이 해로운지도 모르고 물을 흘리며 절정에 다다랐다. 이런 일상이 이제는 익숙했다. 그와 이렇게 둘만 남을 수 있다면, 그가 주는 고통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결국 추악한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나는 깨달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두운 광기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 * *

“수오야…. 나, 나 이제는 나가고 싶어…….”

매일같이 지른 신음으로 목 상태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몇 번이나 기침을 해보지만, 예전만큼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물도 마시고, 밥도 제때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바깥세상을 갈구하게 된다. 햇빛을 보고 싶었고, 사람들 소리도 듣고 싶었다. 어떤 시시콜콜한 것이라도 좋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알고 싶었다. 수오는 내 부탁을 빤히 듣다가, 몸을 일으켰다.

“바깥이 안전한지 시험해 보아야겠구나.”

그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내 머릿결을 모아, 부드럽게 쓸었다. 감촉이 뭉근하여 절로 눈이 감겼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감각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버틸 수 있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나가 다시 평범한 생활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가 나를 얼마든지 시험해도 괜찮다. 나는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그에게 길들여졌고, 난폭한 행위도 익숙해졌다.

“오늘 밤이다.”

수오는 내게 입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오늘 밤만 지나면 이곳을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믿고 그에게 미소 지었다. 그는 그의 말을 맹종하는 나를 흡족해했다. 낮 동안에도 우리는 사랑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찾아왔다.

수오는 그제야 윗옷을 걸치고 밖으로 향했다. 그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발소리가 문턱을 넘었다. 나는 수오를 맞이하기 위해 이불을 걷고 자세를 다소곳이 했다. 그런데,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수오만이 아니었다.

“아…….”

다른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오 뒤를 따라 사뿐히 안쪽으로 들어왔다. 모두 합해서 세 명. 그들은 여느 창부들과 다름없이, 얇고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고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여인처럼 곱고, 사대부보다 고고하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수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넓은 가슴에 매달렸다. 그러나 수오는 달래기는커녕 나를 조금씩 떼어 놓았다.

“창관에 새로 들인 창부들이다.”

나는 수오의 품에 숨어, 창부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사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길 정도로 커다란 몸이었다. 어린 수(受) 창부들과는 달리 손목과 발목도 굵었다. 그가 가게에 공(攻) 창부를 들이기라도 한 걸까. 그래도 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풀어져 있던 매듭을 단단히 여미고, 살결이 비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수오가 그런 내 모습에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비역질을 감당할 수 있는 놈들인지 궁금해서 데려왔다.”

“하지만 나는…….”

“사내가 아니지.”

수오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불안해하는지도. 이윽고 그가 내게만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게 흥분하지만 않는다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

“하지만 저번 그놈처럼 네게 달려든다면…….”

그때, 수오가 내 귓속에 혀를 집어넣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을 지르자, 뒤에 있던 창부들의 어깨가 움찔 움직였다. 이제 나도 그가 하려는 말을 예감할 수 있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어지러운 눈으로 사내들을 훔쳤다. 다른 창부들처럼 사내를 홀릴 듯한 그윽한 미소와 눈동자가 눈에 띈다. 이런 자들이 내게 달려들 리가 없었다. 여인의 육체에 관심을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오가 내게 잔인한 명령을 시작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절망이 든다.

“벗거라.”

수오의 말에 사내들이 걸치고 있던 윗옷을 벗고, 나신이 되었다. 단단한 근육과 몸 선이 아름답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깨끗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하반신에 달린 것이 흉측해 보였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두꺼운 포피가 온통 기둥을 감싸고 있었으며, 아직 발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귀두가 커다랬다.

“네 윗구멍에 발기할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해지는구나.”

“수, 수오. 나는 싫…….”

“이곳을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이냐.”

뒤로 물러나는 나를, 수오가 거친 힘으로 붙잡아 세웠다. 그리고는 질질 끌고 가 기어이 사내들의 앞에 무릎을 꿇렸다. 머리 위로 힘없이 축 처져있는 성기가 세 개나 되었다. 그 끝 구멍에서 진동하는 남성의 향이 노골적으로 콧속에 들어왔다. 싫다. 싫은데, 수오의 눈이 무서웠다. 이것도 그가 내리는 벌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따라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내 아내를 사용해 발기해 보아라.”

수오의 맹렬한 말에 사내들이 제각기 기둥을 잡고 내 입가에 가져다 댔다. 수오가 사내들에게는 다른 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 이곳에 일하기 위해서, 내게 말한 것과는 다른 조건들을 내세운 것이 확실했다. 이윽고 아직 마른 귀두 끝이 내 입술에 닿았다. 그러나 포피가 두꺼워 매끄러운 귀두가 전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입, 벌리십시오.”

사내 한 명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를 보챘다. 나는 계속 수오의 눈치만 볼 뿐이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내 고개를 강제로 벌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의 굵직한 살덩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우우웁……!”

아직 발기 전인 성기는 살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혓바닥에 닿는 감촉도 부드러웠다. 그러나 혀로 핥거나, 빨아 삼키거나 하는 시도들이 두렵게만 다가왔다. 수오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내들의 것을 애무한다는 것이 거북했다. 하지만 사내들의 생각은 달랐는지, 내 뒤통수를 꽉 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후으… 우부븝!”

성기는 조금도 커지지 않았다. 다만 침이 줄줄 흘러 성기가 입 구멍에 들어가기 쉽게 미끄러워졌을 뿐이었다. 곧 다른 자지도 내 뺨을 스쳤다. 남자는 스스로 자위하며 잠깐씩 내 뺨에 귀두를 문질렀다.

“…하아, 여인으로는 잘 서지 않습니다.”

남자는 불평 어린 목소리로 자신의 귀두를 살살 어루만졌다. 수오는 멀리서 팔짱을 낀 채 내 모습을 감상했다. 이내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으로 다른 자지들도 만져 주어야지 않겠느냐.”

나는 움찔하며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축 늘어져 있는 두 성기를 조심스레 쥐어 올렸다. 그제야 남자 둘이 신음을 내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입안에 있던 살덩이도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하…. 잠깐…. 읏……!”

내 입속에 자지를 집어넣고 있던 남자가 당황하며 내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두꺼웠던 포피가 벗겨지고 동그랗고 매끈거리는 귀두가 나왔다. 그 첨단은 맑은 선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또다시 갈증이 났던 걸까. 나도 모르게 그 앞부분을 게걸스럽게 빨았다.

“허, 으윽……!”

또렷하던 남자의 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연기처럼 눈동자 심이 흐릿해졌다. 처음으로 맛본 여자의 입 구멍에 남자는 충격받은 듯 한동안 욕지거리를 쏟았다.

“젠장…. 무슨 혀가 이렇게…….”

남자의 감탄사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사내가 내 머리카락을 바락 쥐어 든다. 그리고는 곧장 자신의 성기를 들이밀었다.

“우부브웁……!”

“아, 큭…. 말도 안 돼…….”

점점 숨이 부족해져 가고 있다. 코로 숨 쉬는 것도 사내들의 체모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럴수록 자지가 입안에서 부풀어 갔다.

“하, 아…. 더 끝까지. 거기, 아, 읏……!”

“우우욱! 아흐… 웁!”

이제는 손길이 강압적이기까지 하다. 양손 가득 쥔 살덩이도 점점 굵어지더니 이윽고 손으로 쥘 수 없으리만큼 커져 버렸다. 두 남자도 참을 수 없다는 듯, 급기야 내 두 뺨에 귀두를 문질러 댔다.

“젠장. 며칠을 쌓았더니…….”

이제 남자들 눈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수오의 존재는 잊혀진 지 오래였다. 그저 눈앞에 성기를 쥐고 흔들고 있는 내게 온통 관심이 쏠려있었다.

“입 구멍이 뜨거워요. 하아… 꽉 조이는 게 어떤 구멍보다도 맛있습니다… 크윽!”

내 입안에서 성기를 흔들고 있던 남자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바둥대며 남자를 밀어냈지만, 그는 잠깐씩 귀두를 움찔할 뿐 날 놓아주지 않았다. 더욱더 깊은 곳까지 성기를 밀어 넣는다. 이내 목 중앙이 남자의 귀두 모양만큼 볼록 튀어나왔다.

“아, 크흑. 나올 것… 아, 큭!”

농밀한 정액이 목 깊은 곳으로 발해져 나왔다.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진득하고 끈적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처참한 내 모습을 본 다른 사내들도 흥분을 못 이기고 내 손바닥에 사정하고 말았다. 비릿한 향이 축사 안을 가득 메웠다. 멀리서 들리는 수오의 호흡도 가빠졌다.

“컥… 콜록… 하, 욱!”

나는 목구멍 안에 가득 싸진 정액을 뱉어 내기 위해 여러 번 기침해야 했다. 그래도 도저히 토해낼 수 없어 쓴맛을 견디고 꿀꺽 삼켰다. 아직 비릿한 향이 입안에 남아 괴로웠다.

“흑. 흐윽… 싫어. 제발…….”

눈물을 닦아 내고 싶어도 손바닥이 온통 정액이라, 흐르는 것들을 그저 묵묵히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비정상적이다.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발정한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자지 세 개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빳빳하기만 하다. 오히려 조금 전 사정으로 더 흥분한 것만 같이.

“수오야… 수오야…….”

나는 애타게 정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남자들이 내게 발기한 것을 알았으니, 나를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는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를 지켜보고 있기만 하다. 어째서. 어째서냐고 울부짖으며 묻고 싶었다. 그때, 한 사내가 내 발목을 끌어당겼다.

“아……!”

그는 나를 질질 끌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에 내던졌다. 어느새 남자 둘 역시 그 옆에서 성기를 잡았다.

“보지 맛은 처음인데… 젠장.”

남자는 자리에 누워 우왕좌왕하는 나를 배 위에 올렸다. 엉덩이 부근이 남자의 기둥으로 인해 뜨거웠다. 남자는 자세를 이리저리 쟤더니 곧 질 속에 두꺼운 귀두를 밀어 넣었다.

“아, 아흐으윽!”

“아, 무슨 보지가 이렇게… 하, 큭!”

남자가 내 허리를 껴안더니 사정없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 탓으로 귀두뿐 아니라 기둥뿌리까지 전부 다 내 안에 들어오고 말았다. 힘이 풀린 나는 그대로 남자의 가슴에 엎드렸다. 수오는 자지에 의해 넓어지는 보지를 응시했다. 앞섶을 크게 부풀어진 채로, 나를 남김없이 살폈다.

“뒷구멍은 더 쫄깃해 보이는데…….”

뒤편에 있던 다른 창부가 슬그머니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움찔하며, 내가 등을 세우자 그가 성가시다는 듯이 내 어깨를 밀어 엎어지게 만든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혀 뒷구멍에 첨단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흑! 그만… 아파요. 제발 그만… 헉!”

아무리 거부해 봐도 남자의 굵은 성기 때문에 점점 뒷문이 벌어져갔다. 남자가 귀두로 좁은 틈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자 구멍이 좌우로 크게 벌어지며 남자의 기둥을 한꺼번에 삼켰다.

“사내놈 뒷구멍보다 작고 오물거려서… 아, 큭. 좆이 잡아 먹히는 것 같…….”

“흑, 아흐으윽!”

사내 둘이 정신없이 여체를 탐하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울긋불긋한 얼굴로 제 성기를 위로하기 바빴다. 비명과 거친 신음이 난무했다. 정액 냄새와 애액이 뒤섞여 시큼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열심히 좆을 만지던 남자도 결국 치미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내 머리를 붙잡는다.

“빠십시오.”

남자에게 내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젓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세게 제 쪽으로 당겼다. 입술이 강제로 열렸고, 이윽고 물이 흥건한 귀두가 입속에 들어왔다. 나는 울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굴복한 나를 바라봤다.

“기생년도 이렇게는 못 빨 텐데… 얼마나 주인한테 길들여졌길래… 하아.”

“하우, 웁…! 하… 우우욱!”

축사는 짐승 우리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보지 속에 가득 찬 남자의 성기는, 뒷구멍에 들어간 다른 성기와 번갈아 가며 꿈틀대고 있다. 아랫배 속에 꽉 차 방광을 누르며 쿵쿵 찧었다. 나는 요의를 참지 못하고 물을 질질 쌌다. 이윽고 찰박찰박 비천한 소리가 나며 두 구멍이 비명을 질렀다.

“아흑! 윽! 아으윽! 아, 흐으윽! 아아!”

“엄청 쪼입니다. 아… 엉덩이 더 드십시오. 좆도 삼키고.”

더는 하복부에 감각이 없었다. 두 자지가 문지르는 마찰이 너무 심해, 남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음부가 얼얼했다. 이대로 헐어버릴 것만 같다. 구멍을 조이는 힘도 약해져 갔고,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남자 셋이 마음껏 휘두르는 거친 움직임에 나는 무력해져 갔다.

“아, 큭. 안에다 싸드리겠습니다.”

“나도 곧 나올 것 같… 크흑!”

이윽고 질과 뒷구멍에 남자의 정액이 흩뿌려졌다. 그러나 귀두는 계속해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마치 안쪽 끝까지 제 것을 채워 넣겠다며 고집스레 끝물까지 쏟았다. 내가 침을 흘리며 정신을 잃어갈 때쯤, 내 입속에 든 남자의 성기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 힘차게 정액을 쏟아부었다.

“크윽!”

남자의 신음은 단말마같이 짧고 낮았다. 목구멍에 깊이 뿌렸기 때문에 맛을 느끼기도 전에 식도를 타고 정액이 내려간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미처 쉬지 못했던 숨을 토해냈다. 곧 끊어질 듯이 위태롭다. 수오는 그제야 내게 다가와 주었다.

“…….”

싸늘한 눈이 외간 사내의 정액받이가 된 몸을 훑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힘을 넣어 내 목을 쥐었다. 증오가 깊어 삐뚤어진 손길은 잘못된 선택을 종용한다. 그러나 끝내 힘을 풀었다.

“누야.”

기괴하고 섬뜩한 손길은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다. 그는 내 몸을 미약하게나마 쓸어,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사내들은 모두 너를 탐하려 하는구나.”

“…….”

“나는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

둥근 눈에 새겨져 있는 유려한 얼굴이, 쓰러져 간다. 나는 그에게 닿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살결에 닿기도 전에 그에게 손목이 붙잡힌다. 가슴이 이토록 아픈 것은 그가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독한 질투심조차 우리를 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악한 마음이 쌓여 숨조차 쉴 수 없어.”

“수오…….”

“그러니 넌 나를 용서해야 한다. 누야.”

뻗어도 닿지 못하는 마음. 불러도 돌아보지 못하는 연심. 먹으로 칠해진 부분은 영원히 깨끗해지지 않는다. 물로도 지워지지 않고,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저 쌓인 어둠이 질척하고 무거울 뿐이다.

“…….”

서글펐다. 먹물에 종이가 울 듯 그를 향한 마음이 구깃구깃해진다. 오히려 찢어지지 않는 것이 가련하다. 나도 그에게 묻고 싶었다. 어찌해야 다시 순수해질 수 있을까. 시선 속의 그는 그때와 똑같이 깨끗한데, 나를 향한 마음이 날카롭다.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서웠다. 혹여 나를 떠날까 봐서. 그가 문득 이 진창 속을 빠져나갈 것 같아서 먹먹한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기다려라.”

수오는 내 몸을 겉옷으로 가리어 주며,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자들은 후희에 빠져 수오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넋을 놓고 있었다. 나 역시 몸을 가누기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수오의 손에 들린 날붙이를.

“아…….”

남자들이 그제야 주춤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나 수오의 손이 훨씬 빨랐다. 살결이 너무도 쑥쑥, 베어간다. 수오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남자들의 목을 깊게 그었다. 곧 피가 천장까지 솟구치며 두 명이 쓰러졌다.

“이,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옆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문을 열고 도망가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단단히 잠긴 문은 삐걱대는 소리만 낼뿐 결코 바깥세상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

수오는 남자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냘프게 쓰러지는 남자의 성기를 짓밟는다. 의식이 남아 있는 남자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하하…….”

수오는 분명히 그때, 웃고 있었다.

“수, 수…….”

그를 부르려고 노력해 봐도, 입 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몸이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했다. 그득한 피 냄새에 겁에 질려 도망가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무엇을 결정하기도 전에 수오가 뒤를 돌아본다. 그의 무표정이 나를 찾았다. 시선이 마주친다.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된다.”

“아… 아…….”

“넌 안전해.”

드디어 문이 열렸다.

* * *

이곳은 꿈속이다.

붉은 피. 손가락에 묻은 피비린내. 마룻바닥을 온통 다 적신 불쾌한 습기. 땀에 절어 머리카락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괴물을 만났던 걸까. 혹은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했던 걸까. 문득 새벽에 일어나 보니 문밖의 달은 너무나 달고 밝았다. 눈살을 찌푸려 빛을 막아 보려 해도, 달빛은 자꾸만 얇은 천막을 뚫고 바닥에 스며들었다.

“…….”

피가 엉덩이 밑에 넓게 퍼져 있다. 이곳도 지옥일까 싶어, 밝은 달빛에 의지해 손을 더듬어 본다. 손가락 끝에 아직 미적지근한 핏물이 묻어났다. 그제야 아버지가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여자아이의 몸은 신비로워서, 연심을 품을 나이가 되면 뱃속에서 피가 고이게 될 것이라고. 무겁게 쌓이고 쌓여,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면 피가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아…….”

아침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밤 무렵이었다. 그래서 공포는 아무것도 모르는 몸에 철썩 달라붙는다.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일하게 떠오르는 피난처는 수오 뿐이었다. 사춘기 시기에 각인된 소년이, 소녀였던 시절 내가 맹목적으로 따랐던 단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수오. 수오…….”

수오는 이곳에 없다. 시종들이 모인 허름한 방에서 자고 있을 것이 뻔한데도, 나는 빈방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시간이 이르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무작정 문을 열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고 또 뛰어서, 그가 있는 노쇠한 별채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달빛이 지고 있다. 이 짙은 새벽에, 나는 그의 문밖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서늘하고 쌀쌀하다.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까. 어렴풋이 해가 구름을 가르며 머리를 드러냈다. 수오는 시종들 가운데 가장 먼저 베갯잇을 정리하고, 얇은 창호지 문을 열었다. 그의 맑고 커다란 두 눈에 추위에 새파랗게 변한 내 입술이 비추어진다. 수오는 화들짝 놀라며, 맨발로 흙바닥을 짚었다.

“아기씨!”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어깨를 잡았다. 따듯하기도 하고, 뜨겁게도 느껴지는 온도였다. 무심결에 닿은 피부에 당황한다. 수오는 붉어진 얼굴로 한 걸음 내게서 멀어졌다.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아니…….”

눈가에 고인 눈물이 그를 보자마자 뚝뚝 떨어졌다. 슬프기보다, 안심됐다. 나는 그의 소매 끝을 간신히 붙잡고 치마를 가리켰다.

“흑, 흐윽…….”

“어…….”

그제야 침의에 얼룩덜룩 묻어 있는 핏자국을 본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 아기씨. 피가…….”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핏물을 본 그는 충격에 휩싸여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마치 나를 금방이라도 잃을 것처럼 아연실색해서는, 입술을 꾹 물었다. 시리고, 추워서였을까. 나는 그런 그의 품에 폭삭 안겨,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무서워……!”

겁이 났다. 악몽에서 두려웠던 존재가 나와서였을까.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피를 보아서였을까.

“아기씨. 아기씨.”

그는 날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 등을 가득 끌어안아, 그에게 더욱 깊게 물들이게끔 했다. 이제 해는 우리의 발끝에 닿아 있다. 길어지고, 밝아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침보다도 눈부신 존재였다.

“어, 어디서 나오는 피예요? 다, 다치신 거예요? 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교활하게도, 그의 걱정을 즐겼다. 조금만 더… 더 내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그러면 내가 그를 독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나오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동안에도, 해는 계속해서 가까워져 왔다.

“…밑에서.”

나는 쑥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더는 그에게 안겨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 살짝 밀어내기도 했다. 순간 그가 내 손목을 잡았지만 이내 놔주었다.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밑이라면… 어…….”

어버버 거리던 입이 무언가를 눈치챈 듯 굳어졌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호수에 비친 달덩이처럼 커졌다. 잔물결처럼 흔들리기도, 바람처럼 홱홱 돌아가기도 한다. 그 모습이 참 어여뻤던 것일까. 나는 미소를 그으며 그를 온통 바라보기만 한다.

“아기씨. 그, 그건 그러니까 아마도…….”

“수오야.”

내가 그를 바라볼 때 느끼는 이 감정.

그래. 아마도…….

“…….”

연심일 것이다.

“아기씨…….”

그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피가 묻어난, 몹쓸 손가락. 그러나 그는 기꺼이 손바닥을 맞댄다.

“나는 너를…….”

달거리를 시작한 날, 나는 그의 앞에서 항상 수줍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버지가 내게 말해 주었듯, 내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여인이 되었다.

“괜찮아요. 아기씨.”

수오는 내 손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내 고백을 알아차린 것인지 그의 귀 끝이 붉다. 그는 언제나 나를 멀리하고, 피했는데. 가슴이 쓰라렸다. 언제쯤 그가 나를 친근하게 불러줄까. 기다리던 시간이 너무도 길어, 영원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어질 수 있을까. 이토록 멀리 있는데.

“하나도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그는 부엌에 들어가 헝겊을 꺼냈다. 그리고는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다가와, 손수 내 허리에 둘러 주었다.

“아기씨는 이제…….”

말을 하던 그의 입술이 금세 다물어진다. 손끝이 초조하게 꼼지락댔고, 발이 언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수오는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촉촉이 젖은 눈이 슬퍼 보이기도 했다.

“여인이 될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나를 깊이 바라만 보고 있다. 닿지 않아, 애틋하다. 내 마음을 언제쯤 전할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내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아버지가 해준 말씀처럼, 나 역시 곧 여인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그 상대가 수오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에게 전하고 싶었다.

너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져, 매일 괴로웠노라고.

“응….”

하지만 나는 이내 그 마음을 조용히 억누른다. 우리는 아직 이르다. 서툴고, 어긋난 방향으로 방황하기만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는 우리가 함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연정을 품을 수 있을까…….”

그 누군가가, 수오가 되길 바라는데 그는 내 마음을 모른다. 피하는 것인지 내 고백을 능숙하게 돌린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는 드물게 그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쓸쓸했다는 것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네…. 그러실 거예요…….”

훌쩍 어른이 된 것처럼 목소리가 낮다. 그러나 내가 바뀐 분위기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수오는 등을 돌렸다. 가느다란 손을 뻗어 그를 불러 세워보지만, 수오는 고집스레 다른 여종을 찾았다. 이윽고 수오가 완전히 멀어졌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우리의 마음이 같았다는 것을. 그 어린 몸으로도 지독한 연정을 품고 있었음을. 서로의 유일한 연인이 되고 싶어 치열하게 살아왔었다는 것을.

“…수오.”

꿈은 단지 꿈일 뿐이다. 사라져 없어질 환영이 아니라, 현실의 것을 좇아야 했다. 그래서 더 소중히 여겼어야 했던 것을 나는 놓치고 말았다. 수오가 삐뚤어져 가고, 망가져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을 놓고 있었다. 그를 상처 내고, 그 상처를 비집어 왈칵 감정들을 쏟았다.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거칠게 그를 소유하려고 하기만 했다.

다시 밤이 됐다. 그리웠던 과거는 이제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그때의 달은 더는 환하게 빛나지 않았다. 어둡고, 차갑기 그지없다. 해가 뜰 때면 살을 태우는 고통이 가득하다.

“읏… 하아…….”

아름답던 기억도 이제는 악몽이 된다.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있었다.

“수오…….”

어른이 된 나는 그를 불렀다. 빈방이었던 곳은 어느새 두 사람의 방이 되어 있었고 홀로이지 않았다. 옆에 누워 있던 수오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얽혀왔다. 커다란 손이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이냐.”

그는 품속에 나를 안고, 땀에 젖어있는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에게 귀속되어 끔찍한 것들을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현실을 깨달을 때면 몸을 떨곤 하였다. 어떤 것이 악몽인지 더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쉬이…. 눈을 감거라.”

어둠이 다가오면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 기억보다 더 가까운 과거도 볼 수 있었다. 나쁜 것은 내가 속한 세계다. 눈앞에 있는 현실이 잔혹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몰래 눈을 감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부율을 생각했다.

못다 이룬 사랑이 가슴 속에 아찔하게 남아 있다. 그를 꿈속에서 볼 수 있을까. 해가 오기 전까지 이 짧은 시간 동안, 못다 한 고백을 속삭여 줄 수 있을까.

혹은 차라리 다음 생이 주어질까. 예전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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