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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초야 (13/18)

Chapter 13. 초야

한 시진 전.

부율은 누룩을 생각했다. 붉은 혼례복과 눈송이처럼 하얀 너울을 쓰고 자신을 맞이할 신부를. 황궁에서 혼례식이 거행될 때는 일반 백성들의 식과 다르게 초야 날까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혼례식 전에 잠깐의 틈이라도 그녀를 보지 못한다면 오늘 온종일 그녀를 놓치게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둘만의 초야 날 밤이어야 할 자정(子正)도 두 사람은 몸을 섞을 뿐 마음까지 섞지는 못한다.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양반들을 만족시켜야만 비로소 둘은 둘로써 남겨진다.

부율은 주먹을 쥐었다. 그녀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 매일 연모한다고 말해 주어도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한데, 오늘 같은 날을 마냥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안 된다며 말리는 환관들을 모조리 뿌리치고 연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멈칫하게 된 것은 비단 누룩의 신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

그는 창호지 너머로 남자의 인영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로소 조정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호령 공주에게 아끼는 노비가 생겼다는데.

매일 밤 노예를 들여 아랫도리를 삼키며 즐긴다는 소문이 있소.

분명 혼례를 치르고 첩으로 올릴 심산인 게지.

손이 뚝, 문고리로부터 달아난다. 다리가 떨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허리에 힘이 빠졌다.

그 노예가, 연회 날 공주를 모셨다던데. 옛 정인이라도 만난 듯이 둘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날카롭게 찌른다.

“누룩. 너무 보고 싶어 찾아왔다. 열어도 괜찮겠느냐.”

목소리가 떨렸다. 당장이라도 문을 젖히고 그녀가 혼자임을 확인하고 싶다. 저 검은 인영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하지만 커다란 등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숨소리가 불안정했다. 아무리 침착하려 노력해 보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읏.”

그녀의 신음이 부율의 귓속에 아프도록 자리 잡았다. 아니 된다. 아니라고 말해다오.

“…안에 있는 것이로구나.”

그녀는 결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처참한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깥이 잠잠하고 지나가는 궁인 한 명 없는 이곳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기쁨에 젖어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오직 부율만이 그녀의 변화를 눈치챘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온도와 목소리.

“열이 나서…! 으…읏.”

눈물이 그의 발등에 떨어지고 있을 때, 그녀로부터 형편없는 변명이 들려온다. 믿어주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고 그녀를 끌어내, 남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부율은 그러지 않았다.

“어의를 불러오길 바라느냐?”

물었다. 차라리 그녀가 낯선 노예에게 억지로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자신을 방안으로 불러 준다면 기꺼이 그녀를 용서하겠다고. 다시 그녀를 품고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풀어내리라고. 하지만 곧 얼마 가지 않아, 마지막 부율의 기대마저 잔악하게 밟혀버린다.

“어의를… 어의를 불러 주세요…. 아… 읏!”

부율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하고도 선명했다. 입술이 다른 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그때와 똑같았다. 과거 그의 꿈에서 나타난 또 다른 그녀가, 자신을 밀어냈던 그 날과.

그렇기에, 더욱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

* * *

청해궁.

혼례식에 참석한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먼 길에서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낯빛이 수상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입궁을 거부당한 자들이 있는 까닭일까. 경사로워야 할 자리임에도 익숙지 않은 긴장감이 흘렀다. 황제는 새로 앉힌 황후와 함께 행차했고 나인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황금색의 비단도 튀어나온 뱃가죽을 따라가 모습이 우스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웃는 자들은 없었다. 엄중하고 고귀해야 할 황궁의 혼례가 현악 소리와 함께 그 시작을 알린다.

곧이어 금색으로 수 놓인 적의를 차려입은 부율이 등장했다. 그는 팔을 감고 있는 순백의 천을 흩트리지 않게 쥐고,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공주마마 납시옵니다.”

태감의 커다란 호명 소리와 함께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아무도 모를 은밀한 치마 속에서 수오의 정액이 발목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간지러운 감각을 참아내느라 나도 모르게 입술을 물었다.

모두가 반푼이라고 소문이 난 호령 공주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부율도 명료한 눈빛으로 나를 좇았다. 순간 움찔하며 어깨가 굽어졌다.

기어이 어의를 불러 열병으로 꾸며 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몸을 펼 수 없었다.

“신랑은 공주마마의 개두(蓋頭)를 직접 거두십시오.”

서로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질 무렵, 나인들이 그에게 너울을 거둘 것을 청했다. 그제야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그의 표정이 살의로 가득하였다.

“아…….”

“…….”

그의 눈가가 시퍼렇게 젖어 있다. 날 향한 매서운 태도는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표정을 확인하니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그는 떨고 있는 내 손을 일부러인 듯 꽉 잡았다. 태감이 그에게 주의를 주고 나서야, 그가 내게서 멀어졌다.

“교배례(交拜禮)가 있겠사옵니다.”

태감의 말과 동시에 부율이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양팔을 앞으로 모으고, 이마가 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허리를 숙였다. 나 역시 그를 따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술을 따르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황제의 입에서 합근(合巹)의 허락이 나왔다. 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주마마를 모시던 궁녀들이 청주를 따랐고, 반대편에는 환관이 적주를 따랐다.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비소를 흘리며 나보다 먼저 적주를 입에 부었다.

“부율 님.”

공주보다 잔을 일찍 든 그를 질책하기라도 하는 듯, 이 연이 황급히 뒤에 선다. 그의 행동에 나머지 귀족들 역시 어리둥절할 뿐이다. 함께 들어야 할 잔을 신랑 혼자 연거푸 마시고 있으니. 하지만 부율은 잔에 담긴 술을 모조리 마신 다음에야, 잔을 툭 내려놓았다.

“다, 다시 따라 드리겠습니다.”

환관이 당황하며 다시 술을 잔에 따랐다. 하지만 부율은 그마저도 한입에 삼킨 뒤,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입가에 붉은 핏물처럼 적주가 흐른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술잔으로 옮겼다.

“공주마마.”

옆에서 부율의 행태를 보고 있던 궁녀가 능숙하게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더는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무언의 지적이었다. 나는 입술을 술잔에 묻고 조금씩 흘려 넣었다. 맑은 청주가 식도를 타고, 몸속 끝까지 내려갔다. 부율은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식후의례(式後儀禮)가 있겠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입술에 아직 술맛이 감돌고 있어서일까. 혹은 부율의 태도 때문에 불안해서였을까. 쓴맛이 오래도록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마도위에 오른 부율에게 다가간다. 환영처럼 느껴지는 순간조차 무서워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혼례는 간소하게 끝이 났다.

이윽고 초야의 밤이 다가왔다.

* * *

혜영전(惠永殿) 별궁.

혼례식이 끝난 뒤 별궁으로 이동해 목욕재계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속곳이라고는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로 붉고 얇은 비단옷을 걸쳤으며, 음모가 가려지지 않아 거무스레하게 드러났다. 이런 남사스러운 옷차림으로 이제 궁인들이 닦아 놓은 길을 걸어 나가야 했다. 행례(行禮)라는 이름을 붙여 황궁의 예절인 듯 취급하였지만, 실상은 귀족들의 눈요기를 위함이었다. 황제는 금지옥엽을 위해 이 같은 의식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그는 그보다 더 음탕한 광경을 원하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젖가슴을 강조한 허리끈을 본다. 황제가 직접 지시한 초야 복식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하는 나인들의 의견을 제치고 오직 그의 고집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질색하고 말았다. 이대로 모두의 앞에서 부율을 탐하게 된다.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도,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았다.

“공주마마.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아직 발을 내딛기도 전인데 문이 열렸다. 제각기 죽어 있던 눈을 반짝 빛내며 내 몸을 훑는다. 황제는 그 사이에서 나를 은밀히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흘러내릴 듯한 비단에 간신히 가려져 있는 젖가슴, 움직이며 교차하는 허벅지. 그 밑으로 덜덜 떨리는 발목까지. 시선들이 머물며 아랫도리를 세운다.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뒤로하고 결국 청해궁 앞까지 도착했다. 양쪽으로 커다란 문이 동시에 열렸다.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해 향을 피워내듯 이곳에도 고약한 향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궁인들은 침실이 있는 자리까지 나를 안내한 뒤,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사방문(四方門) 앞에 관료들과 황가가 나란히 착석한다.

그들의 눈초리가 침실 주변으로 둥글게 불 피워진 붉은 조명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등을 꺼주십시오.”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 조용해진 무렵이었다. 태감 채춘이 소등(消燈)을 알렸다. 그러자 서문에서 흑삼을 입은 부율이 나인들의 뒤로 입장했다. 그는 침실의 면사를 걷고 안으로 들어왔다. 근육이 붙은 몸이 붉은 등에 비춰 구릿빛처럼 농롱했다. 이윽고 초야의 합금을 지도할 태부(太傅) 근영이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 부마의 손목을 기둥에 묶으십시오.”

목조로 된 침상 가장자리에는 각각 기둥이 있었다. 나는 손에 잡힌 붉은 끈으로 부율의 손목을 조심스레 기둥에 묶었다. 그는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무런 요동도 없이 그저 뚜렷했다. 다시 태부 근영이 말을 이었다.

“이제 천천히 입을 맞추시고, 손을 뻗어 음경을 주물러 주십시오.”

심장이 뛰었다. 모두의 시선이 등불에 비치는 나체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그와 입술을 맞추었지만, 손을 아래로 내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주춤거리는 나를 눈치챈 태부 근영은 호령에 가까운 목소리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음경이 이미 단단하기에, 마마께서는 포피를 내려 귀두를 꺼내시면 되옵니다.”

태부 근영의 말대로 부율의 성기가 이미 발기해 있었다. 침이 꿀꺽 삼켜지는 소리가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 궁궐 안에 울려 퍼진다. 손으로 포피를 잡자 그의 귀두가 움찔하고 더욱 천장 위로 솟아오른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

“…….”

열에 사로잡혀 있다.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의 그는 처음이었다. 몸이 아는 걸까. 비뚤어진 성욕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여러 번 포피를 자극하자 어느새 귀두가 공기 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귀두 끝에 있는 것이 요도이옵니다. 물이 충분히 나오면 입술을 대고 핥아주십시오.”

마른 살결이 서서히 젖어 든다. 작은 자극에도 끝에서 자꾸 물이 뿜어져 나왔다. 손바닥은 온통 그의 액으로 가득해 끈적였고, 벌써 추잡한 냄새가 흐르는 듯하다. 모두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덜덜 떨리는 허리가 앞으로 고꾸라진다. 바로 눈앞에 번들거리며 빳빳이 솟은 귀두가 보였다. 나는 혀를 내밀어 그의 정수를 핥았다.

“윽…….”

드디어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자, 황가의 여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나는 귀두를 입안에 머금고 혀로 주변을 살살 핥았다. 그러자 그의 허리가 바싹 위로 섰다. 곧 씁쓸한 물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하, 윽…….”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난잡하게 들렸다. 부율은 괴로운 듯 발가락을 움직였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내 뒤통수를 붙잡고 억지로 목구멍 안쪽까지 집어넣었을 그였다. 하지만 그의 손이 묶여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았고, 천천히 그의 몸을 탐해도 좋았다.

“이제 혀로 음낭까지 구석구석 닦으십시오.”

입에서 기둥을 꺼내고, 그의 밑동까지 고개를 숙였다. 침으로 번지르르한 성기가 이마에 닿았다. 그의 맥박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깨끗이 정돈된 그의 음낭을 혀로 핥고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젠…, 큭.”

짧은 욕지거리조차 신음과 함께 사라졌다. 관료들과 황가의 사람들이 감탄하며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음낭은 성기와 다른 감촉이었다. 부드러웠고, 혀를 한 번씩 내돌릴 때마다 출렁였다. 그의 씨주머니를 여러 번 핥고 있을 때, 다시 태부 근영으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알 하나가 입안에 들어가게끔 삼키십시오. 꽉 물어서는 아니 되고, 입속에 잠시 머금는다는 느낌으로 하셔야 하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금껏 부율이 시키는 대로 몇 번이나 그의 성기를 삼키어 봤지만, 이토록 수치스러운 행위는 처음이었다. 내가 꾸물거리자 이번에는 황제로부터 엄한 재촉이 들려왔다.

“차라리 태부가 도와주는 건 어떠한가. 이리 느려서야. 쯧.”

초야 날은 태부를 제외한 다른 구경꾼들의 참견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 궁율(宮律)을 모를 리가 없는 황제였지만, 그는 일부러인 양 비릿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당황한 시선들은 금세 걷힌다. 적막 속에서 나는 입을 최대한 벌리고 부율의 고환을 무는 수밖에 없었다.

“웁…….”

이토록 그의 것이 커다랬던 걸까. 입에 삼키자마자 빈틈없이 가득 차올랐다. 소름이 돋았다. 혀를 내밀 수도 없는 부피감에 당장 뱉어내고 싶었지만, 태부 근영은 계속 나를 재촉했다.

“주머니 속에 있는 고환을 혀로 살살 굴리셔야 하옵니다.”

힘겹게 혀를 내밀어 그의 고환을 핥아보지만, 살덩이가 밀려드는 바람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절로 눈물이 배어 나왔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괴로워하자 태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결국, 그가 다른 지시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하.”

갑자기 부율이 엉덩이를 들어 올리더니, 내 얼굴이 그의 음부에 파묻히도록 만들었다. 순식간에 숨이 막히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허리를 들썩였다.

“웁…, 흐웁…! 콜록……!”

“읏, 하아. 크윽.”

모두가 숨죽이며 공주와 부마가 내는 난잡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태부 근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는 노골적인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으니까.

괴로웠다. 쾌락에 취해있는 탓일까. 부마에게 미약을 먹인다는 궁인들의 잡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탓일까. 부율은 고압적인 태도로 나를 대했다.

침이 아래턱까지 질질 흐르자, 겨우 허리 짓이 멈췄다. 나는 그의 고환을 뱉어내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줄곧 내 얼굴에 닿았던 귀두 때문에 두 뺨 역시 질척였다.

“하아…. 하아…….”

“고, 공주마마. 이제…….”

태부의 긴장한 숨이 그대로 공중에 흩날렸다. 배운 대로, 정석대로 나에게 성교를 지시해야 하는 그의 머릿속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아랫도리가 팽창했고,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읏. 이제… 치마를 걷으시고.”

부율은 내 손을 주시했다. 손가락에 걸린 붉은 치맛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태부의 말대로 치마를 들어 올리고 뒤쪽으로 엉덩이를 내밀었다. 하필이면 방향이 태부가 바라보는 방향이었다. 그의 숨이 거칠어지는 게 느껴진다. 온몸이 엉망진창으로 뜨거웠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향초 때문일까. 음란해지고 싶은 마음이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분명 싫은데, 모두가 보고 있는 곳에서 나체를 드러내기 싫은데 감출 수가 없었다. 욕망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부마의 허리 위에 올라타신 뒤… 몸을 아래로 내려 주십시오.”

나는 부율의 몸 위를 점령하고 다리를 벌렸다. 구멍이 그의 귀두에 조준되어 있다. 묘한 흥분과 긴장으로 금방이라도 허벅다리가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자세를 간신히 지탱하고 기둥 쪽을 바라봤다. 귀족들의 얼굴이 검은 천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다음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읏… 흐읏.”

이제 소음순에 귀두가 닿았다. 반들반들하게 닦여진 귀두 때문에 조금만 스쳐도 꾸욱 구멍 안으로 들어와 버릴 것만 같았다.

“어서… 내려주십시오.”

태부 근영은 괜히 마른 입술을 축인다. 나는 눈을 감고 그대로 허리를 내렸다. 꽉 닫혔던 문이 커다란 그의 성기에 의해 좌우로 갈라졌다.

“아… 윽.”

“큭…….”

한번 귀두를 들인 속살은 계속 오물거리며 그의 밑동까지 집어삼켰다. 이윽고 엉덩이에 그의 음낭이 닿았다. 금세 접합부가 젖어 든다. 부율은 참지 못하고 먼저 허리를 들어 올렸다.

“아……!”

“젠장.”

꿀쩍거리는 물소리가 한창 궐 안을 울렸다. 태부 근영은 지시를 내려야 하는 것도 있고 단단해진 자신의 남근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숨이 처음보다 거칠었다. 궁 안을 뒤덮은 열기가 대단하여 환관들이 남문을 열어야 할 정도였다.

“아…, 우읏……!”

“…저, 절구를 찧듯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리다가 다시 쿵 찍어 내려 귀두를 삼키십시오.”

부율이 허리를 멈추고 나를 억누르듯 바라봤다. 내가 다가와 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빳빳이 선 귀두를 잡고 구멍에 조준한다. 나는 망설일 여유도 없이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의 것을 먹었다.

“아흑!”

그리고 허리를 돌려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태부가 입술을 씹었다. 왼편에는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농도 짙은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자세를 바꾸겠습니다. 공주마마.”

움직임이 멈췄다. 마치 예상된 일인 것처럼 부율의 눈이 휘어진다.

“부마의 손목을 풀어 주십시오. 마마.”

부마의 손을 푼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공주가 부마의 몸을 희롱하고, 씨물을 빼내 주는 것이 초야 날의 의식이었다. 당황해서 천막 끝을 바라보지만, 희열에 찬 얼굴로 낄낄 웃고 있는 황제가 보일 뿐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마마. 어서 끈을 푸십시오.”

강압적인 시선들이 오간다. 연극보다 사실적인 광경을 보고 싶은 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천막을 걷고 맨살을 보려는 자들이 늘어났다. 나는 울컥 치미는 수치심을 억누르기 위해 애써야 했다.

다시 ‘어서’라고, 호령이 들려왔다. 결국 손을 뻗어 부율의 손목에 감긴 끈을 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자유로워지면, 내게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해 주단을 요청했던 것처럼 배려해 줄까. 이내 그의 두 손에 감긴 속박이 풀렸다.

“부마는 공주마마의 옥체를…….”

태부 근영이 말을 끊고 헛기침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 보여 주십시오.”

지령이 끝나자마자 그가 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어 강한 힘으로 붙잡았다. 순간 놀라 발버둥 쳐보지만 단단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부율은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비단옷을 벗겨 냈다.

“아……!”

핏줄이 솟은 팔뚝에 허리가 너무도 쉽게 잡혀 버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커다란 방 안 한 가운데에 드러났다. 열린 남문으로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관들까지 궁 안을 흘깃흘깃 노려본다. 싫다. 이렇게 모두에게 몸을 보이기는 싫어. 하지만 부율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도 내 젖가슴을 쥐었다.

“아응……!”

젖꼭지가 차가운 손가락에 의해 무참한 모습으로 일그러진다. 꼿꼿이 섰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납작하게 짓눌리고 반죽처럼 늘어난다. 음탕한 시선들이 모두 나의 젖꼭지로 몰려들었다. 태부 근영이 분명한 목소리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부마는 공주마마의 음모를 헤집고, 모두에게 안쪽 옥문을 보여 주십시오.”

당혹과 경악으로 눈이 커다래졌다. 가슴뿐만 아니라 속살까지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거부하려고 팔을 휘둘러보는데, 그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째서. 그의 고집이 이해되지 않는다. 나를 숨겨 주겠다고, 초야 날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움직이지 말아라.”

차가운 음성이 귓전에서 울렸다.

“다칠 것이다.”

그는 두툼한 혀를 내 귓속에 들이밀며 미소 지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움직였다. 짙은 음모를 양쪽으로 가르고, 축축이 젖은 보짓살을 모두에게 드러냈다.

“싫어…. 흑…. 싫어요.”

“얌전히 있어.”

구멍을 가리고 있던 날개를 좌우로 벌리자 뻐끔거리고 있는 구멍이 나타났다. 부율은 상냥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손길로 곧장 손가락 하나를 질 속으로 집어넣었다.

“헉……!”

가운뎃손가락이 물이 가득한 보지 속을 돌아다닌다. 제정신으로 감당하기에 너무도 아찔한 쾌감이었다.

“마마. 가리시면 안 되옵니다. 아기 씨가 들어갈 옥문을 전부 다, 저희에게 보여 주시옵소서.”

“보여 주시옵소서. 마마.”

환관들의 질책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말도 안 되는 광경임에도 모두가 한패가 되어 방관하고 있다. 부율의 손가락은 어느새 세 개까지 늘어났다. 붉은 속살이 그의 손가락에 들러붙어 안쪽 살점까지 모두에게 보여 버린다.

“흑…. 이제 그만… 그만…….”

“쉬이. 누룩.”

천막 뒤에 가려진 인영에게는 결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 그 한숨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앉았다. 부율은 진정하라는 듯 나를 달랜다. 잔혹한 사실들로.

“괜찮다. 어차피 다 죽을 놈들이다.”

“읏…….”

“내 너의 몸을 그냥 보여 줄 리가 있겠느냐.”

그러나 그의 위로와는 달리 손은 난폭했다. 보지 속으로 들어오는 손가락은 엉망으로 속도를 높였고, 그는 나를 망가뜨리려는 것처럼 팔에 핏줄을 세웠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대로는 침을 질질 흘리며 그에게 매달릴 것만 같았다.

“마마의 옥문이 크게 열렸습니다. 손가락 세 마디를 전부 삼키시었고 계속해서 애액이 흘러넘치십니다. 더 큰 것으로 막지 않으면 아까운 물들을 다 담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마마.”

“으흐읏…! 아으으…….”

그의 손가락이 얼마 뒤 전부 빠져나갔다. 부율은 태부의 지시를 따를 생각인지 침상에 걸터앉고 나를 무릎 위에 앉혔다.

“다른 놈 것을 맛있게도 삼킨 모양이구나.”

그때, 부율의 귀두 끝이 보지를 밀고 들어왔다. 그는 웃었다. 광인처럼.

“아직도 보지에서 정액 냄새가 나는데, 저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가 내뱉은 날카로운 목소리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정말 들켰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속으로 자신을 안심시켜 보지만,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부율의 남근이 전부 다 들어왔다. 그는 내 허벅다리를 강하게 붙잡으며 모두에게 보지 구멍을 보여 주었다. 황제의 느슨해진 입가도, 관료들의 벌떡 선 자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추비관의 노예였느냐.”

부율이 내 귓불을 씹으며 작게 속삭였다. 모르는 척 눈을 피했지만, 그가 내 젖을 강하게 쥐는 바람에 다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놈인 줄 내 모를 줄 알았느냐.”

“아흐으윽……!”

느릿하게 움직이던 자지가 안쪽까지 콱 박혀 들어왔다. 태부는 지시를 내리는 것도 있고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었고, 귀족들 역시 가쁜 숨을 쉰다. 나는 새하얘진 얼굴로 부율을 쳐다봤다. 그가 알고 있다.

“수오라는 이름이 어디 흔하진 않지.”

“부, 부율 님…….”

“오늘 밤 노예들을 위한 검문이 있을 것이다.”

“아… 아흐으, 헉……!”

자지가 직선으로 보지 속에 쑥 들어온다. 아랫배가 퉁퉁 불고 내장이 뒤틀린다. 그의 허벅다리를 벗어나 어떻게든 바닥을 짚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발가락이 곧추서지 못하고 계속해서 쓰러진다. 그는 허우적대는 나를 단단히 붙잡은 뒤, 자지를 아래에서 위로 퍽퍽 쳐올렸다.

“아흑! 흐윽! 아아으응!”

“하하하. 하하…….”

부율의 헛웃음 소리가 궁중에 퍼진다. 실성 직전인 나를 본 태부가 깜짝 놀라 그제야 입을 놀렸다.

“오, 옥문이 충분히 넓어졌으니 부마는 이제 슬슬…….”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헉! 아흐으윽! 악! 아윽……!”

광분한 부율이 더 이상 봐주지 않고 몸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양쪽 볼기를 꽉 쥔다. 그리고는 쉴 틈 없이 자지를 박았다.

“용서… 흐윽, 용서해 주세요. 아아악……!”

부율은 내 간청에도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의 난폭한 태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

“아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호했다. 젖가슴을 세게 쥐어 동그란 형태가 엉망이 될 때까지 주물렀다. 모두가 침을 삼키고 몸을 비비 꼬고 있을 무렵, 황제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대기하고 있던 후궁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자지를 구멍 속에 파묻었다.

“부, 부마는 이제 공주마마를 편히 침실 위에 눕히시옵소서.”

보다 못한 태부가 분노로 날뛰는 부율을 저지했다. 이대로 가다간 부마가 공주를 강간했다는 소문이 나돌 것이다. 그것을 염려한 다른 환관들도 제각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부율의 머리도 이성을 되찾아갔다.

결국, 그는 나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내 두 다리를 모아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 위에 두 다리를 가지런히 들쳐 맨 뒤, 다시 구멍을 찾았다.

“다시는 네 몸을 아끼지 않으마.”

“으흐으윽…….”

“망가뜨리고, 철저히 능욕해 주마.”

이윽고 선액으로 질척한 자지가 보지 속에 깊게 꽂힌다. 그가 마침 이불 위에 놓인 끈을 발견하고 내 발목에 칭칭 감았다. 벌리려 해도 벌려지지 않았고, 움직여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 없었다. 그의 충동적인 행동에 태부는 황급히 황제의 눈치를 살폈지만, 황제는 도리어 웃음을 터트릴 뿐 마다하지 않았다.

초야를 위해 준비된 혜영전의 본궁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양반들의 난교로 들떠 있었다. 나 역시 짐승처럼 울부짖었고 부율이 이끄는 방향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능욕당했다.

“흑, 흐으윽! 아흐윽!”

“하아, 하아. 네년 보지가 꽤나 게걸스럽다는 것을 내 잊고 있었구나.”

“제발…! 부율 님……!”

“애지중지 다루었건만, 다른 새끼한테 보지를 턱턱 벌리니 기생년들 것과 무엇이 다르냐.”

가슴에 생채기가 퍼져 나간다. 그가 하는 말들을 반박할 수 없었다. 혼례가 있는 한 시진 전까지 나는 수오의 정액을 탐했고 이번에는 부율이었다. 자신에게 기가 막히면서도, 죄를 사면받길 원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도 선택할 수 없어. 누구의 곁에 머물 수도, 온전한 것을 내어줄 수도 없다.

“공주마마의 옥문이 말라 가고 있사옵니다. 부마는 공주마마의 유두를 핥아 애액이 나오도록 노력해 주시옵소서.”

부율이 성가시다는 듯 태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딱 돋아 오른 젖꼭지를 본 그의 입매가 곱게 올라갔다. 결국 부율이 입을 벌려 한 움큼 젖을 삼킨다. 그대로 쭉쭉 빠는데, 마치 유즙을 마시는 것처럼 그의 목울대가 내려갔다 올라왔다. 음란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는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있었다.

“이제 부마는 씨물을 내어도 되옵니다. 공주마마, 엉덩이를 들어 올려 남김없이 드시옵소서.”

몸을 멋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를 대신하여 부율이 손으로 내 엉덩이를 받치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퍽, 퍽. 악다구니처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혐오스럽다가도 쾌감에 의해 정신이 사로잡힌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가 사정하기 위해 내 엉덩이를 천장 위로 세우고 위에서 아래로 푹푹 찔러 넣었다.

“하아, 크윽.”

“하아읏, 아으으응…! 아아……!”

폭력에 가까운 추삽질에 의해 몸이 반쪽으로 눌리고, 그에게 완전히 잡아 먹혀버린다. 그는 그렇게 몇 번을 찧어 대다가 볼기를 꽉 붙잡고 정액을 쏟아부었다. 드디어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태부 역시 그리 생각하고 가팔라진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읏… 으윽.”

갑자기 얼굴에 튄 정액 때문에 눈이 질끈 감겼다. 그가 아직 씨물이 흐르고 있는 자지를 내 뺨에 문질렀다. 눈과 머리카락, 그리고 입술에까지 비릿한 정액 향이 났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축축한 액체가 뿌려졌다.

“큭, 하아…….”

내가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정복욕을 충족한 부율은 만족스럽게 미소했다.

“이제 곧 종이 울리겠구나.”

그가 내뱉은 말이 무슨 의미인 줄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여 상궁은 공주마마의 옥체를 닦아 드리게.”

태감의 말에 중년의 여인이 다가와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내 얼굴을 닦아 준다. 부율은 어느새 환관들에게 둘러싸여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주하게 자리를 정리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풀린 바지를 끌어 올리기 바빴다.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하늘이 온통 까맣게 변해가는 시간이었다.

그때, 회락루의 종이 울리고, 열린 남문으로 사헌부 소속의 무관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폐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노예들의 비명. 드디어 부율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도망 노비들을 발견했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막막하여 악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몸을 간신히 감싸고 있던 무명천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숨 막히는 바닥을 약한 다리로 짚어 본다. 부율은 굳이 앞으로 나가는 날 붙잡지 않았다.

“부율 님이 해주신 말이 맞았습니다.”

무관은 허리를 숙여 부마에게 예의를 표한다. 검은 장막이 걷히고, 황제가 등장하자 부율 역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웃었다. 음흉한 황제보다 더 환하고, 악랄하게. 그리고 말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로.

“투옥하라.”

발목이 미끄러지며 겨우 지탱할 수 있던 무게조차 떨어져 내린다. 수오의 말을 상기해 낸다. 오늘 밤, 도망을 가겠다던 그를 기억해 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에 가리어졌던 보름달이 다시 떠오르는 것처럼 환하게 궁궐을 비춘다. 우리의 죄를 낱낱이 들춰내는 것처럼 한층 더 가혹했다.

* * *

투옥된 노예들은 전원 추비관에서 빠져나온 자들이었다. 궁궐에 대해 무지하여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붙잡힌 자들. 게다가 재수가 없게도 그들이 가는 길에는 무장한 무관들이 즐비해 있었다. 전부 부율의 명령이었다. 오늘 밤, 추비관의 노예들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한 것이 바로 그였다.

“분부하신 노예는 독방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옥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관이 그곳을 찾은 부율에게 고개를 숙였다. 찝찝하고 습한 기운, 그리고 숨쉬기 어려울 만큼 바닥과 천장을 치는 먼지들. 고고하게 보였던 궁궐 안에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곤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궐 안에 있는 감옥은 과거 궁궐에 잠입한 역적들을 해치우기 위한 해옥서(害獄署)가 전부였다. 커다란 지하 공간에 28개의 방이 있었으며, 그중 단 두 곳만이 고문실과 독방으로 쓰였다.

수오는 무관의 말마따나 독방에 감금된 채로 있었다. 손과 발에는 무거운 쇠사슬을 달아 놓은 형구를 채웠으며, 그 앞에는 덩치가 커다란 무관 한 명이 날카로운 칼을 허리춤에 찬 채 감시하고 있었다. 이곳을 그냥 빠져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부율의 입매가 비열하리만큼 구부러진다. 이제 수오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으며 죽이거나 살리는 것도 전부 그의 선택이었다.

“안내하거라.”

무관은 묵묵히 부율을 독방으로 데려갔다. 관청에서 흔히 쓰는 나무 창살이 아닌 무거운 쇠로 만든 창살이다. 촘촘히 가지런한 틈새로 어두운 표정의 녀석이 보였다. 그는 풀어 헤친 머리로 부율을 노려봤다. 얼굴에는 관헌들에게 얻어맞은 듯한 흔적이 두드러기처럼 나 있었다. 썩 초췌한 몰골이었지만 비역하는 자가 본다면 이조차도 색스럽다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부율의 앞에 서 있는 무관이 그러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부율의 귀에까지 닿았다. 애석한 일이었다.

“너는 이만 물러가거라.”

“예.”

부율은 관헌들을 모두 물리고 창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몸에는 아직도 불길에 그을린 듯한 상처가 보였다. 후유증이 심해 보이는 면상에도, 수오는 독한 눈을 했다. 여전히 변함이 없다. 저의 이기적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을 그리워한다. 욕망하고, 간절하다. 부율은 입술을 짓이겼다.

“오랜만이구나.”

“…….”

수오는 답이 없었다. 대신 그의 몸을 감싸는 거적때기 같은 천들이 앞으로 나간다. 그가 창살을 붙잡았다. 눈이 서글프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읊을 수 없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너무도 같았다. 그래서 겹쳐지지 않는다. 이렇게 될 줄을 알았을까. 인연이 기구했다.

“…네놈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

잠 못 이루는 힘겨운 밤임에도 부율의 눈은 또렷했다. 오히려 데일 것처럼 날카로웠다. 처음에는 수오를 마냥 죽여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즉시 그를 자신의 발밑으로 끌고 와 숨이 멎을 때까지 밟아 주어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율은 방금 그것이 한없이 부족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아프길 바란다. 좀 더 처절하게, 그래서 그녀의 마음속이 텅 비어 버리도록. 그리하면 자신을 바라봐 줄까. 그 텅 빈 곳을 자신으로 채워줄까.

“그냥 죽이기에는 시시할 것 같단 말이지.”

“하하…….”

허탈한 웃음이 수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삶을 증오했다. 그래서 죽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단지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녀 때문에 바뀐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지 않다. 차라리 파묻혀 버리고 싶다. 그 작은 품에 안겨 향기에 삶이 휩쓸려 버릴 만큼, 그녀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일까.

“망가진 네놈을 보여 주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구나.”

부율의 어그러진 입매가 높이 올라간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지 못하고 있는 저놈의 의지를 꺾고 끝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시는 죽어서도 그녀를 원하지 못하게, 얼키설키 뒤얽힌 인연을 전부 다 끊어 놓고 싶었다. 부율의 주먹이 다시 쥐어진다.

“그때 그 화재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

“화재……?”

“놀라는 것을 보니 몰랐던 모양이구나.”

부율의 눈이 이죽거리며 휘어졌다.

“불은 내가 낸 것이다.”

창살을 붙들고 있던 수오의 손이 덜덜 떨렸다. 힘줄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끈 솟아올랐다.

그는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했다. 불을 지른 자가 누룩을 자신에게서 떼어 놓았다고. 그녀가 납치되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으리라고. 하지만 그녀가 부율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가 자신을 잊고 부율을 택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자신을 그 불구덩이 속에 놓고, 수도로 훌쩍 떠났다고.

그런데 설마 그녀가 불을 지른 자를, 자신의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놈을 선택한 줄은 몰랐다. 그 잔혹한 진실에 몸이 부스러질 듯했다. 수오의 정신이 점점 쇠약해져 갔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졸라, 숨을 앗아가고 싶다는 끔찍한 상상까지 한다.

그녀는 어찌하여 자신과 멀어지게 만든 부율을 택했는가. 어찌하여 그의 곁을 맴돌고 싶어 하는가. 수오의 눈가가 붉게 물든다. 눈물은 달리 갈 곳 없이 그저 뚝뚝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룩도… 누룩도 아는 것이냐.”

눈빛은 증오로 얼룩져 가는데, 다른 모든 것들이 그녀를 향해 뻗치고 있다. 최악의 감정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그녀를 그리워했다. 죽기 전에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번 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멋대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애처로웠다. 부율은 찝찝한 마음을 떼어 내고자 괜히 바닥의 흙을 짓밟는다.

“알고도 너를…….”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나약하다. 수오는 창살에 이마를 대고 작게 물었다. 사실은 울부짖고 싶었지만 그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또다시 무너져 버릴 것을 알고 있다. 목소리는 그의 마음처럼 억눌러져 나왔다.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냐.”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부율 그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게 된다. 그녀가 저 자신을 사랑하는가. 언제나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던 질문이었다. 답이 너무도 뻔했다. 그녀의 눈을 보면 저놈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로 그 마음을 돌려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저놈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

부율의 눈이 힘없이 수오에게 향한다. 그는 믿고 싶은 것을 말해야 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었다.

“영원히 옆에 있겠다고 내게 약조하였다.”

수오의 머릿속에 든 오해가 끝도 없이 파고드는 구덩이처럼 깊어져만 간다. 부율은 다시 무관들을 불러들였다.

“단근질을 시작하라.”

무관들이 좁은 창살을 가르는 빗장 쇠를 푼다. 그들의 손에 불에 달군 쇠막대가 있었다. 그날, 뿌옇게 노래졌던 하늘처럼 연기가 퀴퀴하다. 곧이어 비명이 천장까지 닿고, 해옥서의 방마다 구슬픈 울음소리가 퍼졌다. 타오르는 살점보다 더 간절한 마음이 가련하다. 수오는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누룩을 찾았다. 그날 화향관에서 홀로 그녀를 기다렸던 그때처럼.

하늘이 검게 짙어진다. 유독 새벽녘이 길다. 관헌들조차 눈을 찌푸리는 밤이었다. 그렇게 그날 밤, 노예의 광기처럼 그의 몸조차 괴물이 되어 갔다. 이제 누가 그를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끝내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할 때, 그녀는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

* * *

혜영전 본궁.

“공주마마.”

다음 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내게 궁녀 가령이 젖은 수건을 건넨다. 멍하게 수건을 받았지만, 몸을 닦을 기운이 없었다. 그저 멀뚱히 새하얀 벽을 바라만 보고 있자, 궁녀가 결국 직접 내 이마를 닦아주며 걱정스레 미간을 좁혔다.

“한 시진 후에 세신지례(洗身之禮)가 있을 예정입니다. 부마와 함께 참석하셔야 하옵니다. 마마.”

“…….”

그녀의 입에서 세신지례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부마와 함께 궁에서 살기 위해 첫날밤에 대한 흔적을 지우고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의식이라며. 그러나 그것이 끝난 뒤에 저녁까지 황가와 관료들이 참석하는 회좌(會座)가 있었다. 그 어떤 것도 부부를 위한 행사가 아니었고, 고위급 관료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의례였다. 그렇기에 중요치 않다. 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지금 내게 수오의 소식보다 더 궁금한 것은 없다.

“추비관의 노예들은…….”

“마마.”

이미 짐작하고 있던 가령이 서둘러 내 말을 끊는다. 그녀가 바깥을 휘휘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부율 님께서 감시역을 이곳 본궁에 분부하셨습니다.”

침묵이 감돈다. 그가 기어이 나를 가두어 둔다. 입궁하고도 줄곧 권력이 필요 이상으로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조정이 흉흉한 지금 그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저지하는 자가 없었으며, 책사들마저 그를 옹호하고 드니 황제 역시 월권하는 그를 마냥 막을 수가 없었다. 추비관의 도망 노예들에 대한 처분권도 직접 황제에게 하명 받아 부율이 쥐고 있었다. 그들을 죽일 것인지, 혹은 풀어줄 것인지에 대한 결정도 전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부율이 원한다면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도, 다리를 벌릴 수도 있다. 수오를 풀어 주기 위해서,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다. 그가 내 앞에 보이기만 한다면.

하지만 부율은 직접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며,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는 내가 절망에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벌하길 바라는 것이다.

“마마.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특히 폐하께서 예민하신 지금은…….”

“…….”

“어떤 것도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황제의 심기가 나날이 난폭해졌으며, 초야가 지난 후에도 궁녀를 잡아채 강간하였을 만큼 행동이 악독해져 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참았다. 다시 밤이 오고 모든 것들이 잠잠해지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수오를 찾아갈 수 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공주마마.”

가령이 떨고 있는 내 손등에 손을 겹치며,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연민인 것을 안다. 이미 궁에 널리 떠돌고 있는 소문을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타인의 배려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여러 번 말을 전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수면에 깊이 빠져들 것만 같은 균열이 있었다. 그 빈틈에 깊이 빠져들다 보면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허전함이 있다. 나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는다. 그렇게 밤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 * *

그날 밤, 자시(子時).

의미 없는 덕담과 가식의 시간이 지나고, 부율과 둘만 있게 된 시간에서도 그는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단조로웠다. 순순히 나를 혜영전으로 보내 주었고, 나를 뒤따르기는커녕 별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합궁하지 않은 부부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은 아직 없었다. 이것이 설령 덫일지라도 나는 오늘 밤을 놓칠 수 없었다. 수오를 만나러 가야 한다.

“공주마마. 이쪽입니다.”

궁녀 가령이 손을 뻗어 방향을 가리켰다. 밤중이라 지나다니는 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었다. 나는 쓰개치마를 부여잡고 그녀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해옥서는 편전과 가장 멀리 떨어진 동문(東門)에 있었다. 삼십 분을 더 걸었을까. 횃불로 밝힌 길목이 세로로 길게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이 길이 감옥으로 가는 길임을 알아차렸다. 가령의 말대로라면 무관들이 아직 망을 보고 서 있을 시간이었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길목에는 인영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마.”

가령이 내 손을 놓는다. 이 앞에서부터는 나 혼자 가야 했다. 무관들에게 뇌물로 줄 보석을 주머니 속에서 찾는다. 가능한 일일까. 이제 와 불안에 떨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몇 걸음 더 나아가자, 해옥서의 문이 보였다. 그러나 이 앞에도 나를 막는 무관들은 보이지 않는다.

“…….”

잎새가 바람에 스쳐 이슬이 남발하는 맑은소리가 들린다. 태풍이 오려 하는 걸까. 나는 깜깜한 시야를 밝히려 눈을 여러 번 깜빡이고는 해옥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이윽고 완전히 암흑이 되는 때에, 멀리서 희미한 등불이 보였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동도 없이 등불 아래에 쓰러진 채 가는 숨을 쉬고 있는 남자는, 수오였다.

“수오……!”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뛰는 발걸음이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발목이 흔들렸다. 제대로 땅을 짚지를 못한다. 이윽고 그가 갇혀 있는 쇠창살에 손이 닿고 나서야, 주저 없이 바닥에 넘어졌다.

“수…….”

온몸이 떨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눈앞에 있는 그가 정말 내가 아는 그가 맞을까. 보랏빛 머리카락이 처량하게 바닥에 바싹 달라붙어 있다. 주변이 피로 가득했다. 그의 몸은 말라 버린 핏자국투성이였고, 이미 있던 화상 자국 위에 알 수 없는 검은 자국들이 촘촘했다. 신체가 전부 불길에 타버린 것 같은 끔찍한 형상이었다. 나는 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

맥박은, 아직 희미하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를 잃어버릴 것만 같이 연약하다. 몸에서는 더 이상 그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죽음의 냄새가 났다.

“수오……!”

결국, 오열한다. 등이 납작하게 구부러지고 이마가 땅에 닿았다. 저 위의 높은 천장이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마치 죽은 것처럼 숨이 토해지지 않는다. 모든 게 나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연궁으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내가 그를 원했기 때문에.

“으흐윽…! 으…….”

화상 자국 위에 선명히 덧칠해져 있는 까만 상처들. 어떻게 해야 그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그를 처음부터 미워하고 멀리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애꿎은 만약의 일을 떠올리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잃을 수는 없다.

“수오…. 수오…….”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해 불러 본다. 그의 응답을 바라며 창살 사이로 그의 손을 매만져 본다.

“읏…….”

그때, 그에게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그는 괴로운 듯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손등 위에 얹어진 타인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

나인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의 몸이 빠르게 경직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듣는다. 흐느끼는 사람의 목소리. 그것이 나임을 깨닫는다.

“…하.”

숨을 토해내기도 벅찬 몸에서 비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가 고개를 들고 날 바라본다. 하지만 소스라치게 선 눈빛에는 온기가 보이지 않았다.

“꺼지거라.”

그가 내 손을 쳐냈다. 손가락들이 쇠붙이에 부딪히며 창살 밖으로 튕겨 나온다. 아픈 손을 당길 겨를도 없이 풍경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가 낯설게 보였다.

“…수오?”

그는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마른기침을 했다. 그리고 피를 토해낸다. 오랜 시간 구타를 당한 것인지 뱃가죽이 부어 있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아픈 것이 나였으면. 더럽혀지고 짓밟힌 저 몸이 차라리 나의 것이었으면.

“…가.”

가슴팍의 상처가 괴롭기라도 한 지 그가 몸을 재차 웅크린다. 내가 그를 따라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이렇게 두도록 내버려 뒀기 때문에? 달라진 그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이 딱딱히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그의 손을 붙잡아 볼 수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 그를 위로해 줄 수도 없다. 그의 아픔은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보다 안타까운 것이 또 있을까. 이보다 아릿한 것이 더 있을까.

“수오…. 제발…….”

나를 봐줘. 다시 그때처럼, 따듯하게. 우리가 좋았을 때처럼 손을 잡아줘.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의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나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다. 손은 서로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처연하다. 우리는 닿지 못하는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읏…….”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보호하고 싶다. 그의 아픔을 달래 주고 싶었고, 그가 나를 바라봐줄 때까지 하염없이 곁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내 욕심이라는 것을, 다시금 그의 상처들을 보고 깨닫는다. 화재 속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렸을 그의 모습이, 그가 나를 원망하는 모든 일이… 결국 내가 그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를 안아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전부 내가 아니었다.

“…조금만 참아줘. 금방… 나갈 수 있게 도와줄게.”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져, 앞으로 나아가는 발길을 붙잡지만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그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누야.

환청일까. 그렇지 않다고 믿기엔 너무도 다정한 울림에, 일순 걸음이 멈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달빛이 도는 어렴풋한 새벽녘뿐이라.

계속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 * *

이튿날, 편전.

공주의 혼례가 황명으로 인정되고, 초야까지 보내니 남은 과제는 궁율(宮律)에 따른 인친(姻親)들의 입궁 순서였다. 유(柔)의 가문이 가장 먼저 서문 당월전(黨月殿)에 들었으며, 이제 금(金)의 선정과 그의 아내가 신방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열백궁(熱白宮)에 들 차례였다. 그 전에 황제는 선정을 그의 편전으로 불렀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선정.”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부인이 산달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들었네만.”

황제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선정을 바라봤다. 항간에 씨가 없기로 유명한 선정의 아내가 아이를 배었다고. 그 아이가 선정의 아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아니한가. 부인의 바람기를 보고도 기어이 입궁까지 시킨 선정의 사정을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소문에는 작년에 다른 놈의 아이를 유산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사돈 가문의 재산으로 이제껏 수월하게 살아온 그였으니, 이제 와 부인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황제의 장난기 어린 수작에도 선정은 미소만 그을 뿐, 동요하지 않았다.

“예. 여아일지 남아일지 참으로 기대가 되나이다.”

“진짜 자식을 가지게 된 걸 축하드리네.”

“…….”

껄껄 웃는 황제의 앞에서 선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불쾌해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한 황제는 앞으로 더 나아가, 선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호령 공주는 놔주어야지. 애초에 내 딸이었으니 말이야.”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리 대답하는 것 치고는 선정의 어깨가 경직된 채로 올라가 있다. 황제의 힘도 선정을 굽히게 할 수는 없었다. 무관으로 이름을 날린 그가 딸을 키우기 위해 관직에서 선뜻 내려왔지만 강직한 신체는 여전했다.

“내 경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황제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턱을 괴고 선정을 내려다봤다. 선정은 눈치 빠르게 곧장 한쪽 무릎을 꿇으며, 어명을 기다렸다.

“분부하십시오.”

“부율을 감시하게.”

“…부마를 말씀입니까.”

“그래.”

황제가 부마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조정 내 모든 이가 알 정도였다. 그에게 도망 노비에 대한 처분권을 준 것으로도 모자라 해옥서를 개방하도록 허했다. 노예 같은 자잘한 놈들이야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리면 되는 것을, 굳이 투옥하여 조사하도록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부마가 월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황제가 드디어 제 속내를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자가 서 철휘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해.”

“…부마가 서 철휘와 말입니까.”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질문이 던져졌다. 우물쭈물 대답을 회피하다가는, 황제의 덫에 걸려들 것이 뻔하다. 이것도 시험일까. 선정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입궁한 이상,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폐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것이 정답이겠지요.”

“여전하군. 자네 충정은 내 높이 사.”

황제의 입술이 미끄러지듯이 비틀린다. 그 작은 변화를 어찌 모르겠는가. 황제는 선정을 완벽히 믿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자만큼 척박하고 고고한 위치도 없을 것이다. 선정은 황제가 그를 죄어 올수록, 뚜렷하게 등을 펴고 황제를 직시했다. 그 한결같은 충심 가득한 눈빛이 어찌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단지, 선정의 머릿속이 음흉하기 짝이 없는 것을.

“그가 반정을 꾸몄다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대사헌 자리를 제게 주신다면, 말입니다.”

황제는 잠시 침묵했다. 호령 공주가 알고 있는 반역자가 사실은 선정, 저 자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 그녀와 밀착했던 것이 부율과 그의 수하인 이 연이라는 자였지만, 선정 역시 공주를 키워내지 않았던가. 1년이라는 공백이 있을지언정,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자임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황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무엇보다 저는 폐하의 비밀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충신이지 않사옵니까.”

선정은 황제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채고, 교활한 입을 제 마음대로 풀기 시작했다. 황제의 비밀. 자신은 그 누구보다 황제의 치명적인 욕구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자신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치부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오늘부터 경을 대사헌에 임명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선정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숙인 고개 아래로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경은 짐을 절대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즉시 천혼(天閽)이 열렸다. 나인들이 편전으로 들어와 선정을 안내한다. 선정은 묵묵히 바깥으로 나가, 열백궁으로 향했다. 그러나 황제를 등지자마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이제 호령 공주는 저를 찾아올 것이다. 아버지이자 대사헌에 오른 저 자신에게, 누구보다 의지할 것이 아닌가.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그의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축 늘어져 있는 자지가 발딱 서려고 했다.

* * *

혜영전 본궁.

아버지가 입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율의 가문인 자들이 어떤 벼슬도 없이 인친의 자격으로 입궁한 것에 반해,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의 이름을 부여받아 새로이 관직에 섰다. 이미 나를 황제에게 넘겨주면서 예정되어 있던 것인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대사헌 정 충의 자리를 빼앗고 갑작스레 거론된 인사였기에 다소 소란은 일었지만, 그것도 힘이 있는 일부의 불만일 뿐이었다. 대다수의 힘 없는 관료들은 황제의 뜻을 따라 새로운 대사헌을 맞이했다.

이제 해옥서에 대한 권한도 부율에서 대사헌인 아버지에게로 옮겨갔다.

“공주마마. 열백궁으로 향하시겠습니까.”

“네.”

아버지가 있는 열백궁에 방문할 명분은 없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그와 부녀지간이 아니었으니까. 가례를 올린 공주가 갓 입궁을 마친 젊은 남자의 처소에 드나든다는 것도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수오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사헌부의 최고 관직에 오른 이상, 마지막 기회는 오직 아버지에게 달려 있으니까.

“문전까지 동행하겠습니다. 마마.”

“고마워요.”

문을 열자, 나인들 몇 명이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이것으로 의심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백궁의 문이 보였다. 내 뒤를 따르던 궁인들의 발걸음이 멈추고 곱게 등을 굽히고 선다. 나는 더 걸어 나가, 아버지를 찾았다.

그때 마당에서 궐문을 바라보고 있는 그와 마주쳤다. 그의 입꼬리가 순수하게 위로 올라간다. 딸을 만났다는 즐거움으로 그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공주마마.”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음에도, 그가 나를 딸로 불렀던 그때와 같은 울림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다. 그의 발걸음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산책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신이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안쪽에 다듬어져 있는 정원을 함께 걸었다. 아무도 없는 길. 높이 지어진 넝쿨로 우리의 몸은 완연히 가리어진다.

“많이 그리웠습니다.”

해가 짧아져 신초(申初)에도 하늘에 불그스름한 빛이 돌았다. 그는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나를 품 안으로 이끌었다. 노을이 얇은 소매에 스며들었기 때문일까. 따듯했다.

“따님.”

그의 숨결이 머릿결에 닿는다. 보드랍고 간지러운 느낌. 나는 순간 놀라 뒷걸음쳤지만, 그는 다시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바뀐 관계 속에서 그는 나를 찬찬히 바라본다. 얼굴에 떠 있는 것이 그저 남들과 같은 눈코입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게 향한 눈이 열렬하다.

“따님도 이 아비가 보고 싶으셨습니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그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다.

“…따님은 제게 전부입니다.”

“아버지…….”

“언제나, 늘 그러했습니다.”

항상 커다랗게만 보였던 그가 작게 떨린다. 머릿속에는 수오만이 자리하고 있어, 그의 의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그의 입에서는 그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뒷걸음질 쳐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서먹하고 언제나 어색했던 관계로 되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해옥서의 노예가 걱정돼서 오신 겁니까.”

“그것이…….”

그는 나를 꿰뚫고 있었다. 이미 들켜버린 이상,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이 주저 없다. 한쪽 발이 들리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의 시선이 내 발목에 닿는다.

“알아보니, 따님을 납치하여 창부 노릇으로 도망 자금을 벌려고 했더군요.”

“…….”

“하품 중에도 하품이라, 따님이 그놈을 감싸는 이유를 이 아비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수오는…….”

“우연히 궁 안에서 마주치기는 하였으나, 출신부터 천한 자입니다. 곱상한 얼굴 때문입니까.”

아니다. 그의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다웠을 뿐으로, 아주 사소한 곳을 보아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을 뿐이었다.

“해옥서에 들어가 그자를 관찰하니, 몸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몸으로는 앞으로 창부 짓을 못 할 것입니다. 유일한 살길이 막혔으니, 따님에게 집착하는 것뿐입니다.”

“…설령 그런 것이라고 해도.”

우물쭈물 말하지 못했던 입술이 열리고, 꽤 싸늘한 목소리가 나온다. 수오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그러했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다. 연민도 아니었다.

“수오를… 놓지 못해요. 아니, 놓지 않을 겁니다.”

“…….”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선이 콕콕 쑤시는 듯하다. 날카롭지도 차갑지도 않은 눈빛이건만, 나를 모조리 삼킬 듯한 불쾌감. 물러서지 않고 맞서보지만, 팔다리가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럼 내게 찾아온 이유가.”

“그건…….”

“그자 때문이었군요.”

아버지의 속눈썹이 길게 떨어지며, 눈가에 그림자가 진다. 노을이 가장 붉게 산 등을 넘어가고 있다. 실망한 것처럼 아버지의 등이 굽어지며, 그의 어깨너머로 적색의 산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붉다. 너무 붉었다. 수오를 향한 연정으로 멀어 버린 눈과 귀가 온통 물들어 버릴 만큼.

“수오를 풀어 주세요. 아버지.”

애타게 애원한다. 처음으로 먼저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마지막 부탁이에요.”

수오가 내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으면 될 것을, 더는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있으면 괴로워지는 연을 타고 태어나, 서로를 괴롭게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놓아주고 싶었다. 이 마음속에서부터, 그리고 이 끔찍한 궁궐에서부터. 다시 그의 자유를 찾아주고 싶다. 화향관에서 은밀히 소망했던 꿈처럼, 나는 그가 스스로 행복하길 바란다.

“따님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

멈칫하는 내 턱을 아버지가 들어 올린다.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오늘 밤, 그 대가를 받아야겠습니다.”

* * *

단단히 잠겨있던 해옥서의 문은 그날 밤 자정이 되자, 대사헌 선정의 손에 너무도 쉽게 열려버렸다. 권력이란 이 궁 안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구였다. 선정은 입맛을 다셨다.

순진해 빠진 딸에게 소량의 독을 먹여 제 몸을 가눌 수 없도록 했다. 내일이면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자신에게 유린당하고 짓밟히겠지. 거기에 더해, 제 연인에게 그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쾌락에 빠진 연인은 어떤 모습을 할까. 선정은 독점욕에 몸을 끓다가도, 그녀의 절망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벌써 그의 아랫도리가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곧 해옥서의 벽마다 초가 밝혀졌다. 사람의 테두리만 간신히 보일 만한 그 빛 아래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의 발걸음이 유독 불안하다. 뒤로 모여 있는 손목은 남자에 의해 강하게 포박되어 있다. 체향은 지독한 냄새에 의해 가려져 있다. 최음제로 만들어진 향초 때문이었다.

“윽…….”

독방에 갇혀 있는 수오의 입에서 신음이 나온다. 온통 정신이 흐릿하고 몸이 나른했다. 피곤한 몸에 고열이 올라왔다.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등을 휘며 손톱을 바닥에 긁는다. 그런데도 간지러운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살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정이 미소를 지었다. 독방 근처에만 초를 켜놔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효과가 들고 있다.

철컥.

선정은 독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누룩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어깨가 잠시 벽에 부딪히다가 이내 가련하게 쓰러졌다. 내성이 없는 자들은 모두 이 향기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의식이 엉망이 되어 오로지 본능적인 것밖에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녀도 예외 없이 이성을 차리지 못하고 엉덩이를 바닥에 비비고 있다.

뒤이어, 선정도 옥중으로 들어가 매듭을 느슨히 풀었다.

“오늘은 내게 어떤 즐거움을 주실 겁니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올려 든다. 하지만 텅 빈 눈에는 어떤 의미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단지 반사적인 움직임에 불과하다. 선정은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그녀를 가질 수 있을까. 겉으로는 상냥한 아버지를 가장하면서 그녀가 모르는 사이 딸을 겁간하는 불한당이 되어 버리는 것이, 너무 즐겁지 않은가.

“……아.”

그녀가 입을 벌렸다. 목소리가 퍽 나긋하다. 선정은 달아오르는 신체 일부를 느끼며 독방을 살폈다. 낙형(烙刑)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불로 살을 지진 냄새가 가득하였다. 쓰러져 있는 놈의 몸은 타버린 산허리의 잔재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저 지쳐버린 몸도 향에 반응하고 만다. 허리 아래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흉물은 말할 것도 없이 여자의 구멍을 원하고 있었다.

“대가가 무엇인지…….”

“…….”

“말해… 주세요.”

남아 있는 이성으로 간신히 이 모든 것의 목적을 묻는 그녀를, 선정은 배려해 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대답 대신 저 입술을 비집고 성기를 찔러 넣을까. 혹은 벌려져 있는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비명이 나올 때까지 박아 줄까. 선정은 잠시 욕망에 치우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꾹 참았다.

대신 그의 흥미는 수오에게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눈빛에 원망이 가득 담겨 딸을 바라보고 있다. 죽이고 싶다는 듯이, 선명하다. 그에 반해, 그녀는 티 없이 맑은 눈으로 그 원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꾸물대지도, 반항하지도 않고 얌전하게. 그녀는 그녀가 할 도리를 다하고 있다. 그게 선정의 가학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우선 혀를 내미세요.”

누룩은 순순히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선정은 그녀와 키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턱을 잡아당겼다. 이윽고 시선이 같아진다. 그는 주저 없이 그녀의 혀를 삼켰다.

“우… 으응…….”

부드럽고, 촉촉하다. 이보다 극상의 맛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침이 자신과 섞여들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자지는 이미 천을 뚫을 듯이 솟구쳤고, 심장 고동이 빨라진다. 한편, 두 사람의 소리를 들은 수오 역시 숨이 가팔라졌다. 다른 의미로, 몸이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누… 야.”

손이 얼어붙는다. 분노와 혐오로 몸이 잠식된다. 수오의 이마에 핏대가 시퍼렇게 섰다.

“아.”

그런 정인의 반응을 눈치챈 그녀가 결국 선정을 밀쳐냈다. 선정은 불쾌한 기색 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원하는 광경을, 수오 저자가 알아채고 보여 줄까. 짐승처럼 그녀를 학대하고 소유하려 드는 욕망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선정은 그 한계를 원했다. 자신의 딸이 믿었던 남자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아비를 찾길 원했다. 그 희열을 느끼고 싶다.

“이제 다리를 벌리세요.”

선정의 목소리에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순순히 다리를 벌린다. 선정은 아예 그녀의 허리를 안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놈이 지켜보고 있었다. 상처가 가득한 몸 때문에 민첩하게 움직이기 힘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만 있을까. 아니면, 고통을 무릅쓰고 발기한 제 물건을 넣으려 애쓸까.

“그만둬…….”

놈의 처량한 눈길이 누룩의 허벅지 안쪽에 닿았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녀의 몸이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런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에 감긴 쇠사슬 때문이었다. 선정은 기대에 찬 눈을 하고선 딸의 음모를 헤집었다.

“으…. 싫어요.”

“쉬이. 내게는 부끄러운 부분까지 전부 드러내셔야 합니다.”

“아… 으!”

선정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음핵에 닿았다. 누룩은 손을 뻗어 선정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의문이 든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줄곧 아비라고 생각한 그가, 자신을 여자로서 대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찝찝하고 음탕한 감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욕구는 이성을 짓이겨가고 있었다.

“큭……!”

그때, 수오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손길이 그녀에게까지 닿을 리가 없었다.

“이리 맛있는 구멍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누룩을 놓아… 젠… 장.”

“참으로 억울하겠구나. 수오.”

수오는 선정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모시던 가주. 변함없이 능글맞은 얼굴이 자신을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애정에 가득 찬 시선을 왜 몰랐겠는가. 딸을 바라보는 아비의 눈빛이 아니었음을, 이미 그를 모시던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 아흐으읏……!”

선정이 기어이 구멍 속에 가운뎃손가락을 넣자, 누룩의 허리가 바들바들 튕긴다. 고작 한 개의 손가락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니, 두 손가락은 어떠할까. 선정이 검지까지 집어넣자, 보지 속에 담긴 물이 출렁거렸다. 구멍은 두 마디도 모자라 세 마디까지 먹음직스럽게 삼켰다.

“보십시오. 이렇게 젖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이가 이리 음란해지다니. 착잡한 내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싫어… 보지 마… 으응…….”

“이런, 다리를 오므리면 벌을 내릴 겁니다.”

부드러웠던 미소가 순식간에 엄해졌다.

“흥분한 짐승을 풀어 주는 것만큼 위험한 놀이는 없을 겁니다.”

선정은 품속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수오의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구르던 열쇠가 멈춘다.

“발에 감긴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다. 어디 열심히 노력해 보아라.”

선정은 바지를 풀고 거대해진 귀두를 꺼내었다. 그리고 열려 있는 딸의 보지를 아래로 조준했다. 제 몸을 가눌 정신이 남아 있지 않은 딸은 허덕거리며 선정에게 무자비로 다루어질 뿐이다. 이윽고 구멍과 귀두 끝이 맞닿았다. 선정은 몸을 부르르 떨며 환희에 차 신음했다. 딸의 보지였다.

“으흑……! 싫어요……!”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제, 제발… 허억……!”

양기가 가득한 두꺼운 살덩이가 좁은 보지 문을 뚫고 들어갔다. 누룩은 발가락을 세우며 금세 절정에 다다랐다. 그녀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나온다. 몸이 다디달아, 그녀의 눈이 천장 위로 향했다.

“아! 아아아아……!”

“하하하. 하하하하…….”

이제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누룩은 제 보지를 쑤시고 있는 것이 선정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스스로 허리를 움직였다. 푹, 푹. 자지가 제법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그녀의 다리가 좌우로 벌려지며 선정의 체모가 그녀의 음핵을 간지럽혔다.

“아, 아으으응…! 더…! 더……!”

“입 벌리고 내게 입을 맞추십시오.”

“우… 우우응…….”

누룩은 필사적으로 모이를 구하는 아기 새처럼 선정의 혀를 빨아들였다. 추잡한 침 소리가 옥내에 가득 퍼졌다.

수오의 팔에도 핏줄이 솟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팔을 뻗으면 열쇠에 닿을 수 있다. 그는 성욕으로 두툼해진 아랫도리와 분노로 새하얘진 머릿속으로 엉망이었다. 수오는 마른 침을 애써 넘기며 손가락을 달달 떨었다.

“크윽…….”

다행히도 얼마 안 가, 열쇠가 수오의 손안에 들어왔다. 그는 긴장한 채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의 발을 속박하고 있던 형구가 풀렸다.

“더, 더 주세요. 아아응……!”

수오는 발기한 성체를 바닥에 문지르며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 더러운 욕망을 풀어야 함은 분명했다. 이상한 향내 때문에 그의 인내심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누룩…. 아기씨…….”

그의 시점은 어디를 향해 있는 걸까. 그녀를 향한 호칭이 뒤죽박죽되었다. 선정은 입맛을 다셨다.

“이제 앞을 보고 입을 벌릴 시간입니다.”

“네…….”

누룩은 선정의 말을 따라 입을 벌렸다. 작고 귀여운 윗보지가 열렸다. 언제든 새로운 좆이 들어와도 이상할 리 없는 순간, 드디어 수오의 성기가 바지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뭘 망설이는 것이냐.”

어리석은 놈이 차려진 밥상을 주워 먹지도 못한다. 벌려져 있는 구멍 사이로 좆을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을, 수오는 앞에서 꾸물거리고 있다.

“…아기씨.”

독초가 그의 머릿속을 파헤쳐 놓은 것이 분명했다. 정직한 것은 그의 하반신뿐이었다. 놈의 두 눈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초점이 없었고 고독해 보였다. 수오를 눈치챈 누룩도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아…….”

어째서 항상 휘둘려야 할까. 이리도 엇갈려, 서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수오는 직선으로 뻗은 자지의 기둥을 잡는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그들이 꿈꾸던 낙원은 사라졌고, 함께 도망갈 기회조차 없다. 단지 짐승처럼 포효하고 성애를 나누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절망이 그에게 속삭였다.

아끼는 마음 없이 소유하는 것이 무어 나쁘겠냐며. 그녀를 욕망하라고 명령한다.

“젠장. 젠장…. 아기씨…….”

귀두 끝에 흐르는 씁쓸한 꿀물이 그녀의 입술을 더럽혔다. 수오는 그렇게 자지를 그녀의 입 구멍에 털어 넣었다. 울컥하고 정액같이 농후한 액체가 그녀의 혓바닥 위에 쏟아졌다. 절정이 아님에도 물이 나왔다. 누룩은 힘겹게 그 끈적한 선액을 삼키며 열심히 입안을 조였다.

“우욱… 우우웁… 커헉…….”

“하, 윽, 하… 크윽!”

목구멍 안까지 깊이 들어온 자지에 누룩은 숨조차 쉬기 버거웠다. 더구나 선정 역시 흥분한 상태로 양물을 끝까지 삽입했다. 두꺼운 기둥 두 개가 그녀의 얇은 살점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도 몸이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있어, 허리가 배배 꼬인다.

“우우우욱… 아욱… 자지, 더…….”

“하아, 속살이 뜨겁고 축축합니다. 깊고 미끈거리는 것이……. 하아, 크흑!”

선정은 누룩의 허리를 붙잡고 허리를 튕겨 올렸다. 선단이 안쪽에 걸리는 느낌이 나는 듯하다. 그녀의 질이 선정의 기다란 성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부하고 나섰다. 선정은 오기가 생겨 그녀의 아랫배를 눌렀다. 누룩이 입에 문 자지를 토해내며 윽 소리를 질렀다.

“더 머금으십시오. 전부다.”

“아, 흐으윽!”

발기한 기둥이 꿈틀대며 질 속에서 헤맨다. 아주 작게 난 돌기가 껌뻑 고개를 숙이며 끝내 커다란 귀두를 받아들였다. 선정은 기뻐하며 귀두를 세차게 진입시켰다.

“하하, 하아. 하하하하……!”

“아으으읏! 아, 으응! 하으으윽!”

자궁문 앞까지 다다른 것 같아 성기가 더욱 빳빳이 섰다. 씨가 있다면 이대로 그녀를 임신시켜 손자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정은 자신의 처지를 노여워하며 눈앞의 수오를 노려보았다.

“입을… 벌려…….”

“우브으붑!”

아랫배에 족히 닿을 듯한 거대한 성기가 재차 그녀의 입으로 들어간다. 수오는 참지 못하고 정액을 냈다. 하지만 그 양이 평소보다 많았다. 그녀는 벌컥 쏟아지는 정액을 어떻게든 입에 담아보지만, 결국 입 밖으로 주르륵 흘러나온다. 수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쓰다듬었다.

“하하……. 끝까지 삼키셔야죠. 아기씨.”

“우우욱… 욱.”

비릿하고 역한 액체가 끊임없이 그녀의 입안으로 쏟아졌다. 어찌나 점성이 짙은지 정액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결국, 그를 밀어내고 일부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수오는 그녀가 콜록거리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침 선정이 재미있는 것이 떠올랐다는 듯 누룩의 허벅다리를 잡고 더 크게 벌려 세웠다.

“나는 이 보지가 얼마나 늘어날지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아…….”

“자아, 보여 주십시오.”

선정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수오는 자지를 물고 움찔거리는 보지를 관찰한다. 하나로는 부족해 보였다. 자지 두 개도 거뜬히 들어갈 것처럼 보이지 아니한가. 이윽고 수오의 손이 그녀의 음핵으로 향했다. 잘 달래 주어야, 그녀의 좁은 보지가 아프지 않을 테니까.

“아… 으으응!”

누룩은 수오의 손이 닿자마자 반응했다. 금방 절정에 다다르기도 했다. 구멍이란 구멍이 전부 다 가려웠다. 누군가 아프도록 긁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못된 상상까지 한다. 선정은 뒤에서 천천히 아랫도리를 움직였다. 질 안에 고여 있던 애액이 쩍쩍 밀려 나온다. 수오는 그 물을 넓게 퍼 발라 그녀의 소음순과 음핵을 어루만졌다.

“아… 응, 하으으응…….”

선정은 덩달아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누룩의 눈이 거의 기절할 듯 새하얗다. 수오는 만족하며 귀두 끝을 질척해진 보지에 조준했다.

“하…….”

절정을 만끽하고 있던 그녀가 일순 놀라서 발버둥 쳤지만, 뒤에 있던 선정이 금세 붙잡았다. 수오는 어떻게든 그녀의 엉덩이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애를 썼다. 두 남자의 몸짓이 치열하게 격동했다. 그녀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은 이기심이 그녀를 괴롭게만 한다. 하지만 욕망은 그보다 우선한다. 누룩 역시 더욱 다리를 벌리고 수오의 양물을 가득 받아들였다.

“아아아아……!”

“크으윽!”

빽빽이 좁은 틈새로 성기를 욱여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수오의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크윽! 더 넓혀… 누룩. 하, 큭.”

“아으윽…! 안 들어가요, 안 들어… 가…….”

선정은 그녀의 젖꼭지를 아프게 잡아당겼다. 반항하는 누룩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구멍에 힘을 빼십시오. 옳지, 그렇게요.”

“제발… 도와줘… 요. 으흐읏.”

“어리광은 그만 부리고, 견뎌내셔야지요.”

선정은 보지 속에 자리를 견고히 하기 위해 뿌리 끝까지 집어넣었다. 수오가 힘겹게 귀두밖에 집어넣지 못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선정이 코웃음을 친다. 소유욕에 눈이 먼 수오가 그녀의 젖가슴을 냉큼 잡아당긴다. 그녀가 아프다고 울자, 수오가 그 틈으로 자지를 전부 박아 버렸다.

“헉…! 아흐윽!”

“하하하하하…….”

수오의 눈빛이 광인처럼 더욱 푸르스름해졌다. 하나의 구멍에 두 개의 좆이 박혀, 더욱 그녀를 괴롭게 했다. 때마침 두 자지가 껄떡대며 다량의 액체를 분출해냈다. 그녀의 붉은 속살이 어느새 두 남자의 양물에 가득 취해가고 있었다.

“아, 아아아… 수오, 아으응…….”

“하아, 하아. 아기씨…….”

두 사람의 의식이 성인이 되기 전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수오는 아기씨를 범하고 있었고, 그녀는 노비의 자지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선정은 감탄했다. 자지 두 개로 가득 차 상상 이상으로 조이는 그녀의 보지가 이토록 맛있다니. 비틀린 애정이 더욱 검게 물들어 간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젖꼭지가 읏…. 누구든… 제발……!”

그녀의 애원에 수오가 덥석 그녀의 젖을 물었다. 선정은 그녀의 귓불을 애무하며 그녀의 몸을 달래 주었다. 누룩은 몇 번인지도 모를 절정에 다시 한번 오른다. 오줌이 마려운 개처럼 한쪽 다리가 천장 위로 높이 들렸다.

“하아, 하아…. 으흑…….”

허무했다. 텅 비어 버린 감정을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한다. 단지 몸만 오갈 뿐이었다. 선정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탐한다. 사랑이 존재한다면 이토록 자극적인 맛일까. 선정의 아랫배에 전율이 올랐다.

“이제 내겠습니다.”

교차하는 두 자지 중 선정의 것이 격하게 불끈댔다. 이윽고 정액이 요도에서 벌컥벌컥 발사되어 나왔다. 선정은 곧바로 자지를 빼내어 솟구치는 정액을 그녀의 아랫배에 문질렀다.

“하아…. 여기 음모까지 내 정액으로 흥건해졌습니다.”

“흐윽, 으윽…….”

쾌락에 절인 몸이 억울해서 우는 걸까. 혹은 아버지에게 능욕당한 몸이 불쌍해서 그리 구슬피 우는 걸까. 선정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다시 성기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오 역시 혀로 그녀의 젖을 정성껏 빨며 정액을 짜내었다.

“크윽!”

두 번째 사정으로 다량의 씨물이 구멍 밖으로 질질 흘러나왔다. 누룩은 그것이 아깝기라도 하듯 반사적으로 보지를 꽉 조인다. 수오는 가장 깊은 곳에 말랑해진 자지를 파묻으며, 끝물을 내보냈다. 그렇게 오래도록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의 딱딱했던 자지가 흐물거리며 힘을 잃을 때까지.

“대가는 잘 받았습니다.”

선정이 그녀에게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어느새 촛대까지 녹아 버린 초의 향도 잠잠해지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모든 일이 몽정으로 느껴질 것이다. 다만 앞으로 그녀가 자신을 볼 때마다 보지가 저릿하겠지. 선정이 웃었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자신의 자지를 꽂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녀가 죄악감에 빠질 정도로 깊숙이, 그녀를 범할 것이다.

“헌데…….”

선정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땀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애석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그녀의 암컷 냄새를 깊이 흡입했다.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까먹고 말았습니다.”

선정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갈까. 이미 맥을 잃고 쓰러진 그녀에게 말해 보았자, 흩어져 버릴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선정은 그녀의 귓불을 씹으며 젖가슴을 쥐어짰다. 앞에 있던 수오도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보짓살을 주물렀다.

“그래도 나를 따르셔야 합니다.”

“으응… 아…….”

“천하가 곧 나의 것이 될 거니까.”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에 간신히 살아 있던 초마저 훅 꺼졌다. 어둑해진 독방에 광인들의 신음이 재차 울려 퍼진다. 언제쯤 멈추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 *

제2궁 중제연.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수라의 은수저가 부딪치는 소리도 이만큼 요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황제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것을 참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는 관료들을 노려보았다. 서현국(西賢國)의 사신들에게 줄 선물 따위에 예의를 들먹이며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자들. 한때 속국이었던 서현국에게 이제는 공물 따위를 받쳐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서현국이 국혼을 축하하기 위해 창과 활을 바치겠다고 하였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난 40년간 서현국은 어떤 변방 오랑캐들보다 철공 기술이 우수하여…….”

“그래서 곧 소설(小雪)임에도 곡식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표면상으로는 동등한 위치나, 몇 년 뒤에는 여국이 서현국의…….”

“속국이 된다?”

말을 꺼낸 재상 문익이 황제의 물음에 기겁하며 두 무릎을 꿇었다. 두렵고 떨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만도 없었다. 천하에 어찌 두 명의 천자가 있을까. 지금껏 여국이 세상을 평정하고 소국들의 부모 노릇을 해왔지만, 서현국의 등장으로 그 위치가 위태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외교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능한 황제가 그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관직에 선 자들 모두의 소망이었다.

“폐, 폐하. 대등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서현국에 상응하는 것을 선사하시어 태평성대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대등한 자리를 보전해? 무엇이 대등하다는 말이냐. 속국이었던 서현 그놈들에게 머리라도 조아리라는 것이냐?”

불통의 황제는 아예 귀를 막아 버리는 길을 택했다. 그는 일어서서 재상 문익의 굽어진 등을 퍽 걷어찼다. 일순 놀란 눈들이 일제히 황제를 주시했지만, 황제의 번뜩 선 눈빛에 도로 감겨버렸다. 미약한 목숨들은 제각기 자신을 지키기에 분주했다.

“향리들에게 사흘 내로 서곡을 진상하도록 하라.”

“폐,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쌀도 아니고 잡곡을 준비하라는 황제의 명에 관료들이 식겁을 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더구나 수도의 곡창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굶어가는 지방의 곡간을 털라는 말은, 백성들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

“퇴청하라.”

엄령(嚴令)이 내렸다. 빌빌대던 양반 무리 또한 소리를 높여 반대해 보지만, 황제는 귓등으로 듣고 훌쩍 넘겨 버렸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라는 것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관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지금의 황제가 여국을 대국으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다. 중제연을 떠나는 신하들의 발소리가 유독 무거웠다.

황제가 반정이 일어남을 극도로 염려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언젠가는, 조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그의 말도 안 되는 폭정으로 인해 백성들부터 들고일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 * *

신하들이 물러간 자리에 황제의 애첩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쾌락에 몸을 맡겨 불쾌한 기분을 떨쳐 내려 노력해 보지만, 맴도는 것이 있었다. 서 철휘 사건 이후 반역에 대한 언급이 지나치리만큼 없었다. 고요하고 한편으로는 상관없는 소란들로 떠들썩했다. 가령, 추비관의 도망 노비들이 그랬다. 시전의 노예 시장에서 들여온 것들이 그런 역모에 가담하고 있을 리야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목숨줄을 픽 끊어내면 될 일이었다.

“폐하. 이쪽을 보시어요.”

아무리 빨고 만져봐도 황제의 고간이 서지 않자, 지친 애첩들이 그의 관심을 애걸했다. 황제는 계집들의 머리카락을 쥐고 삐죽 나온 입술을 게걸스레 핥았다. 그런데도 발기가 되지 않았다. 분이 날 대로 난 황제가 결국 여자들을 내동댕이쳤다.

“꺄아악!”

황제는 일어서서 검을 빼 들었다. 그의 눈이 시뻘겠다. 불안과 초조로 밤을 지새운 탓이었을까. 어젯밤까지 아꼈던 애첩들이 죄다 푸줏간의 돼지들처럼 보였다. 검을 쥔 손이 매우 들썩거렸다.

“폐, 폐하. 진정하시옵소서.”

“폐하…. 어, 어찌.”

검 끝에 핏물이 든다. 이성을 차리고 눈을 뜬 황제의 발밑에 숨이 끊긴 애첩들이 눈꺼풀이 까뒤집힌 상태로 있었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며칠 뒤, 황제가 미쳤다는 소문이 궐문을 넘어 민가에까지 퍼져 나갔다.

* * *

부율은 이 연이 들고 온 서한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곡창의 곡식들을 전부 도둑맞아 백성들이 굶어 죽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도둑의 정체가 확실치는 않았으나, 그의 행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웃 나라인 서현국의 상인들에게 여국의 곡식을 비싼 값에 팔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현국의 인구가 비상하리만큼 늘어나고 있었다. 소국들을 흡수하고 인재들을 자유로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지만 산간지대인 서현국에 고운 쌀이 날 리가 만무하니 시시때때로 여국의 땅을 노렸다. 백성들의 두려움이 날로 커져만 갔다.

‘이런 시국에 황제가 서현국에 서곡을 내놓길 명했으니…….’

쌀을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신흥국의 서현국이 어찌 받아들일지 뻔하기 그지없다. 자칫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현국은 곡창은 풍요롭지 않으나 철강이 발달한 나라였다. 여국은 결코 서현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황제를 바라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이 연의 말에 부율이 서한을 잘게 찢는다. 이곳 황궁에서는 귀가 밝은 자들이 많았다. 무엇 하나도 조심해야 할 때였다.

“선정, 그자를 통하지 않고도 역모를 도와줄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기회가 가까워져 오고 있구나.”

부율은 확신했다. 황제는 제 발로 자멸할 것이다. 기다리면, 분명 누구든 들고 일어서는 자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이 황궁에서 누구를 믿어 일을 꾸밀 것인가.

“그런데, 황제가 아직 그놈을 신뢰하고 있다.”

“승선까지는 예상했지만, 과연 대사헌으로 보(補)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부율은 손에 든 종이쪽들을 짓누른다. 단순한 상황만은 아니었다. 선정이 역모죄로 몰려서도, 그렇다고 황제의 편에 완전히 서서도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그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었다. 혹은…….

“서현국의 사신 중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자가 있겠느냐.”

“그 말씀은…….”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최악이 될 것도 아니다.

“필요하다면 내 기꺼이 오랑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겠다.”

부율의 눈은 확고하다. 애석한 자존심을 내세워 역사를 읽지 못할 바에, 그는 기꺼이 두 무릎을 꿇고 새로운 대국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안타깝게도 정치에 있지 않았다. 오직 누룩을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완전히 소유할 생각으로 아득했다.

* * *

혜영전.

며칠씩이나 고열이 계속됐다. 어의가 수시로 드나들며 진맥을 잡았으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혹여 음식에 독이 들어가 이런 것일지라도, 이미 몸속에 스며든 기운을 들쑤셔 확인할 수 없으니 알 방도가 없었다. 벌써 이틀째 계속되는 몸살에 가슴이 먹먹했다.

무엇보다도 기억이 흐릿했다. 그리고 꿈에서 보았던 그 기이한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감각만큼은 생생하게 남아 있어, 아버지를 만나기 꺼림칙했다.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아니다. 꿈이어야만 했다. 그런… 짓을 아버지가 내게 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불쾌한 생각들을 애써 지운 채, 내 몸 상태를 살피는 어의를 재촉했다. 수오에게 줄 약을 구해야 했다. 상반신에 넓게 퍼져 있는 그 화상 자국들과 구타의 흔적들을 내가 조금이라도 지워줄 수 있을까. 그를 치료할 수 있을까. 애가 탔다.

어의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손궤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잠시 보다가, 이내 입술을 열었다.

“화상을 치료하는 약재 말씀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행히 그는 더 묻지 않고 작은 통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당귀 풀을 졸여 만든 도약(塗藥)이었다.

나는 어의가 나가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곧 해가 질 것이니 어렵지 않게 모습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부율이 마음에 걸렸지만, 마침 입궁한 이 연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안다. 아직도 대화 중이라면 부마를 호위하는 무관들 역시 나를 마냥 감시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해가 완전히 잠잠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읏…….”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제야 옷을 얇게 입은 것을 알아채지만,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갈수록 싸늘해지는 체온을 무시하고 그대로 신을 신고 걸었다. 아직 다 내리지 않은 열 때문인지 눈앞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몸을 가누기 무겁고, 손발도 자유로이 나아가지 않았다. 그저 수오를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꿋꿋이 해옥서를 찾아갔다.

마침내 다다른 옥문(獄門)에는 허허벌판처럼 지키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은 언제나 이러했다. 노예들이 단단히 잠긴 쇠창살을 뚫고 나올 재간이 없을 터이니, 무관들은 보통 저녁이 지나면 대마를 태우거나 궁녀와 배를 맞추느라 자리를 비웠다.

수오는 무릎을 끌어안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숨소리가 규칙적인 것을 보니 선잠을 자는 듯했다. 혹여 그가 깨기라도 할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떤 소리도 그를 깨우지 않았으면. 그를 쉬게 해주었으면…. 나는 입술을 꽉 깨문다. 울컥하는 이 감정을 들킬까 두렵다.

“하… 윽…….”

그때, 수오가 아픈 신음을 뱉는다. 그의 이마 살결로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놀라서 그의 곁으로 뛰어갔다. 고요가 깨지고 서투른 발소리가 난잡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눈 밑이 그의 눈 색처럼 새파랬다. 입술은 창백했고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다. 가슴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아기씨…….”

나를 향했던 원망이 그가 꾸던 꿈과 함께 씻겨 내려간 것일까. 나를 보는 눈동자에 어두움보다 간절함이 비친다. 그는 쇠창살 사이로 손가락을 뻗었다.

“수오…….”

나는 피부 결이 온통 갈라져 있는 그의 손등을 붙잡는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범람한다. 애틋하고, 원통하다.

“보고 싶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손톱이 박힌다. 서로의 살결이 고작 이만큼밖에 닿지 못하는데도, 전부를 가진 것처럼 벅차오른다. 나는 그의 손바닥을 더 끌어안았다. 서로의 살결이 손가락 틈 사이로 꽉 들어차, 맥박까지 같아진다. 우리는 악몽을 꾼 뒤에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서로를 갈구했다. 이토록 나쁜 것인데도 나는 어찌, 그리고 그는 어찌하여 이토록 서로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

그는 내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상처 난 무릎을 움직였다. 살결이 다 끌리는 데도, 창살에 바싹 닿을 때까지 몸을 기울인다.

“너를 증오하지 않아.”

“수오…….”

“나는…….”

끓어오르는 눈물은, 그의 말을 짓궂게 막아 버린다. 나는 그의 흐르는 눈물을 반대편 손끝으로 훔쳤다.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내 손을 더 절절히 끌어 잡는다.

“네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아…….”

미소를 짓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그가, 간신히 입꼬리를 올린다. 희미하고 여리다. 그의 몸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들고 있는 도약(塗藥)뿐이라, 마음이 쓰라렸다.

그는 알까. 그가 살아 있어 어느 때보다 살고 싶어진 것은 바로 나였다고. 그의 몸에 난 화상 자국에도, 그가 그 불길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마음 아프기보다, 그저 내 앞에 나타나 주어 다행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고. 이런 못된 마음을, 그는 알까.

“부율 그자를 사랑하는 것이냐.”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비통한 마음을 숨길 길이 없어 어깨가 가장 먼저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도 그는 좁은 창살 사이로 최대한 손을 뻗어, 내 팔목을 쥔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같이 힘이 약해져 있었다.

“…누야.”

“수오…….”

“아니라고 말해다오.”

간단한 일이었다. 나의 정인에게 부율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속삭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눈물이 나온다. 수오를 잃었으면서 부율을 놓지 못하고 있던 이유. 나의 수오를 다치게 한 자로, 증오해야 마땅한 그자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

“…그를 사랑하지 않아.”

입안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텁텁하다. 정답을 말했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상처가 남는다. 수오와 맞잡은 두 손이 더욱 강한 힘으로 서로를 옭아맨다. 나는 눈앞의 이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 순간 죄를 지은 것처럼 초조했다.

“…그 말이 진실이었으면 좋겠구나.”

서로의 이마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옅게 닿는다. 그의 숨결이 콧잔등에 느껴지고, 마치 서로를 충분히 안고 있다는 상상을 품게 한다. 쓰다. 서로를 이토록 간절히 원함에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음을 실감한다. 어긋나고 다시 서로를 찾아 되돌아온다.

“차라리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수오는 눈을 감고, 얕은 잠에 빠져갔다. 지친 몸이 완전히 쓰러지기 전, 그는 한숨처럼 내게 애원한다.

“네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없도록… 이대로…….”

“…….”

“영영 깨어나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은 내게 깊숙이 들어와 이미 난 상처를 짓누른다. 그런데도 그의 손을 놓지 못한다. 여전히,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이곳이 막다른 길인지도 모르게, 우리의 눈을 포악하게 가리고 있다.

* * *

해옥서를 나온 것은 그에게 약을 건네주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수오의 손을 놓는 것이 좀처럼 어려워, 등을 돌렸다가도 다시 그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을 그의 곁으로 되돌아갔다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즈음이 되어서야 발길을 뗄 수 있었다. 하늘이 벌써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그의 온기에 그리움이 사무치는데, 갑자기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보초를 서는 무관일까 조마조마하여 고개를 돌리는데,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폐, 폐하…….”

나를 보며 조소를 띄우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황제였다.

“그간 재미있었느냐.”

그가 이를 까닥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무릎조차 꿇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해옥서에 시선이 간다. 황제는 어디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이제 확실해졌구나.”

발걸음 소리가 커지며 거리가 좁혀졌다. 나는 그제야 황급히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무엇을 보았던, 부정해야만 한다.

“소녀, 잠이 오지 않아 산…….”

“궁 안에서 정인을 만났으니. 이런 잔인한 운명이 더 어디 있겠는고.”

그가 이미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황제는 크게 웃었다.

“이제 내게 말해 보아라.”

그는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조밀하게 뜯어 살폈다. 눈가는 서글서글 하나 검은자위가 오싹하리만큼 매서웠다. 그러다, 내게로 손을 뻗어 온다. 투박하고 커다란 손이 한 줌 크게 내 머리카락을 끌어당겼다.

“아악……!”

그가 놓은 덫에 잡힌 짐승처럼, 비명이 나온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내 머리채를 좀 더 위로 당겼다. 그러다 눈이 마주칠 만큼 그와 시선이 같아졌다. 그 순간 황제가 눈을 부릅뜨며 내게 말했다.

“지금 역모를 계획하고 있는 자가 누구지?”

까드득. 황제는 이죽거리며 이를 갈았다.

“네 정인을 질투하는 남편이냐.”

나는 대답을 삼킨다. 하지만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니면, 네 아비냐.”

“읏…….”

들켰다는 절망보다, 수오를 지켜야 한다는 열망이 더 컸다. 황제도 그것을 아는지 거칠게 숨을 뱉는다. 그러다 다시 깔깔 웃는다. 이윽고 그가 나를 흙바닥으로 밀치고 어깨를 크게 폈다.

“네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네 정인에게 태형을 내릴 것이다.”

황제는 쓰러져 있는 내 앞에 앉아, 손으로 흙더미를 쥔다. 뜨는 태양 빛에 흙더미가 제법 맑고 강렬하다. 그 거친 알알이 내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벌써 하루가 지났으니, 오늘 그자에게 벌을 내려야겠다.”

* * *

그날 정오였다. 유독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 황제는 추비관의 노예들을 모아두고, 직접 태형을 지시했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노예들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올 때까지 고문이 계속됐다. 관료들은 황제의 미친 성정이 드디어 극치에 올랐다고 하소연하였으며, 지나가는 나인들마저 노예들의 끔찍한 몰골에 고개를 돌렸다.

수오는 그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의 무릎이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멍들어 있었고, 손과 발이 찢어진 헝겊처럼 찬 바람에 쉬이 쓰러졌다. 말리는 사람 없이, 그만둘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황제가 알고 있습니다.”

“…….”

관망하고 있던 이 연이 부율을 찾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곱이 되어 터지고 있었다. 지금껏 누룩을 무시하고 있던 황제가 어찌 된 일인지 그녀에게 독한 관심을 퍼붓고 있었다. 게다가 누룩이 해옥서를 드나든다는 사실로 추비관의 노예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고문하고 있지 않은가. 누룩을 죄어서 이득을 얻는 것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정보.

황제가 기어이 연회 날 그녀가 팔을 그었던 이유를, 알아내고 만 것이다.

“누룩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

이 연의 계속되는 재촉에도 부율은 침묵했다. 자신의 목숨이 누룩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 이리 태평히 관조하고 있지만은 않을 텐데. 이 연의 가슴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포기하셔야 합니다. 부율 님.”

“…무엇을 말이냐.”

이 연의 열 띤 어조에도 부율의 목소리는 깊이 가라앉아 있다. 여러 번 지친 사람처럼 피폐해져 있는 부율의 모습에, 차마 이 연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해야 하는 것을. 잔혹한 말일지언정, 그는 자신의 제자를 살려야만 했다.

“흔적이 남지 않는 약이 있습니다. 고통은 없을 겁니다.”

“네 지금…….”

부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의 눈이 이 연을 죽일 듯이 쏘았다.

“누룩을 해칠 생각을 한단 말이냐.”

“부율 님.”

부율의 커다란 몸에서 살의를 느낀 이 연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부율 혼자만의 생명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멸족을 담보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킬 수 있는가. 답은 너무도 뻔하지 아니한가. 그가 전부를 저버릴 수는 없다. 그만큼 불합리한 선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서현국의 사신들이 오면 전세는 역전될 것입니다. 그전까지 버티기 위해선 그녀를 버리셔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

부율은 확고했다. 그 마음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여태껏 이 연은 부율이 누룩의 삶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절감한다. 누룩, 그 여자가 부율의 삶에 너무 깊게 관여하고 있어, 그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게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부율을 미치게 했다.

“그럼 누룩이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으시는 겁니까.”

이 연은 물었다. 부율이 그녀를 믿는 것이라면, 간신히 그를 이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래서 그녀를 우리 편으로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불확실성에 걸어야 하는 목숨이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그것밖에 답이 없다고 한다면 이 연도 부율을 마지막으로 따를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하지만 다음 순간, 부율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이 연을 얼어붙게 했다.

“…그녀가 떠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알고 있었어.”

부율이 그녀를 꿈꾸었을 때부터 줄곧.

“상관없어.”

황망하게 떠나보낸 그녀의 손길이 아직도 부율의 기억 속에 선명했다. 그녀가 저를 불렀을 때의 목소리가 어떠했는지, 그녀가 거짓말을 할 때의 몸짓이 어떠한지 부율은 전부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이번 생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상관없다. 그녀를 자신의 손에서 잃었을 때의 감각. 그 끔찍했던 과거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었다. 고작 지금의 삶이 사라져가는 것일 뿐이라면, 상관없다.

“…이 연. 너는 황궁을 나가 있거라.”

“…….”

이 연은 원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자신의 목숨보다 여인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그다음이 스승인 저 자신의 목숨이라면, 이보다 어리석은 생각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부율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 설득해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 연은 눈을 감았다.

“…보위하겠나이다.”

이 연은 누룩이라는 여인을 믿지 않았다. 제자의 꿈속에서처럼 또다시 그를 버릴 것만 같아, 위태롭고 한없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부율이 그녀를 따르는 것이라면, 그 역시 누룩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자멸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시간 동안,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기만 한다면 반정은 성공할 것이다. 적어도, 황제가 부마인 부율을 쉬이 노릴 수 없게 된다.

“천하가 부율 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될 수만 있다면, 누룩이 제 손에 들어올까. 그녀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외로움이 부율의 가슴에 끈질기게 붙어 있어, 떼어지지 않는다. 주먹으로 몇 번을 쳐봐도 고독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잔상이 줄곧 맴돈다. 누룩이 저를 보고 웃어주는 그 아름다운 잔상이, 줄곧 그의 가슴에 남아 한없이 밝게 빛이 난다.

* * *

제2궁 중제연.

“지금 내 궁 안에 역적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찌 경들은 그리도 모르는가!”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추비관의 노예들을 고문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황제 앞으로 상소문이 도착했다. 안 그래도 여국의 황제가 미쳤다는 소문이 주변국에도 파다하게 퍼졌는데, 그가 애꿎은 노예들을 죽이지도 않고 고문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니 책사들의 염려가 심히 깊어졌다.

궁녀들마저 툭 하면 목을 끊고 성고문을 해대니, 민가에서도 황제를 불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벌써 남쪽 지방에서는 농민 봉기가 시작됐다. 백성들이 각기 초라한 무기를 들고 일어난다고 하여, 무엇이 무섭냐고 한들 그것들이 뭉쳐 서면 큰일이 되기 십상이었다. 일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호족들은 벌써 몸을 사리고 있다. 그 반향으로 황제에 대한 원성은 드높기만 하다.

“부율, 그놈일까? 아니면 그놈 아비인 술원성일까? 응? 경들이 말해보아라!”

“폐하……!”

태사는 황제의 앞에 급히 두 무릎을 꿇어 몸이 절반이 되도록 허리를 숙였다. 안 그래도 신임이 높던 부율이 부마가 된 것에 불만을 품는 양반들이 많았다. 관직에 설 수 없도록 막아 버린 황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런 부율을, 역적으로 의심하고 내몰게 된다면 그를 지지하는 양반들이 들고 일어설지도 모른다. 심증으로만 그를 내치기에는 위험이 너무도 컸다.

“어찌 소리를 높이는가! 짐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아무리 황제라도 관료들이 모두 반대하고 나선다면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황제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칼을 빼 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이 마구잡이로 관료들에게 향했다. 순식간에 중제연에 소란이 일었다. 결국 용장군의 무관 하나가 실례를 무릅쓰고 황제의 칼을 빼앗아 들었다. 황제가 씩씩 콧숨을 내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기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거셌다.

“이놈을 당장 투옥하라!”

황제는 목소리가 갈라져 나올 때까지도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누구 한 명도 황제의 명을 따르는 자가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윽고 간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나 공포에 질린 눈이 아니었다. 확신에 찬 눈이 황제를 똑바로 응시한다.

“폐하. 십사문책(十四問責)을 허하소서.”

십사문책. 십사일 간 문관(文官)에서 시국과 정책을 논하고 최악의 경우 대탄(臺彈)을 의결하는 법제였다. 겉으로는 간청으로 보이나, 실상은 황제에 대한 탄압이고 상소(上疏)나 다름없다. 황제의 눈이 뒤집혔다.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무반들이 황제의 어깨를 잡았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이를 가는 황제 앞으로 관료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는다. 엄중하고 경건한 차림새였지만, 흡사 마지막 인사치레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등을 돌린 중추관(中樞官)의 관료들이 허리를 깊숙이 숙여 황제를 예우했다. 황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십사문책이 시작됐다. 그의 권력이 다 쓰러져 가는 나무처럼 허무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심증이 아닌 물증이었다. 황제의 영악한 얼굴이 더 거무스름해져 갔다.

* * *

사뭇 추워진 날씨였다. 잎새가 남아 있는 나뭇가지들이 보이지 않았고, 배심(背心)을 껴입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정오가 지나자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쌓이는 눈은 금세 얼음이 될 듯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이었다.

“공주마마. 이제 들어가시지요.”

“…….”

재촉하는 나인들에게 고개를 휘휘 저었다. 눈이 수북해지기 전에 수오를 실내로 들여야 한다. 그런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발은 점점 거세져 갔다. 눈이 부실만큼 환한 송이들이 원망스럽다.

수오를 비롯한 노비들은 다 풀어진 멍석 위에서 삼 일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쓰러져 있다. 황제에 대한 책문이 시작된 어젯밤, 드디어 태형은 거두어졌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없었다. 추비관을 찾아가 윤간을 일삼던 관료들마저 저 자신의 죄가 알려질까 두려워 그들을 살피지 않았다.

아버지를 찾아 간절히 청해보아도, 더는 어렵다는 대답밖에는 들을 수 없다. 노예들의 몸이 고열로 펄펄 끓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인 중 그 누구도 음식을 나르는 자가 없다. 삭막한 궁궐 속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억울함이 한데 뭉쳐 돌이 된 듯 가슴에 박힌다. 무력한 스스로가 한탄스러웠다.

“공주마마.”

그때, 환관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같이 추위를 견디고 있던 궁녀들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황급히 숙인 그의 어깻죽지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폐, 폐하께서 공주마마를 찾으시옵니다.”

“…….”

십사문책으로 한동안 지밀에만 있을 황제가 나를 찾는다. 궁녀들이 당황하며 내 반응을 살폈다.

“…내전으로 안내하세요.”

황제가 수오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줄까. 기어이 그의 손을 잡아야만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모시겠습니다. 공주마마.”

환관을 따라 걷는 길에서, 유난히 발이 무거워진다. 마침내 눈이 처마 끝에 수북이 쌓이고 만다. 툭 하고 떨어져 바닥을 어지럽힐 만큼이나, 널찍하다. 발이 얼어붙어서일까. 걸음이 자꾸만 멈추고, 걷는 걸음마다 가시가 그득하다. 문득 한 남자를 생각했다.

본궁에서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부율, 그 남자를.

* * *

도착한 황제의 지밀은 대마 향으로 가득했다. 겨우 입과 코를 소매로 막고 들어가는데 황제가 이미 이쪽을 내다보고 있다. 눈알에는 힘이 없었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눈 밑이 거무스름하다. 그의 곁에도 이미 향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인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얼마 동안 정사를 지속한 것인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날카로이 찔러왔다.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참고 고개를 올리자, 황제가 붉은 천막을 걷었다. 그는 느릿하게 쓰러져 있는 여자 중 한 명을 잡아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 살을 갈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황제의 빈약한 좆대가 여인의 뒷구멍에 꽂힌다.

“아… 으…….”

“하아, 크윽! 헉, 허윽……!”

황제의 눈초리가 섬뜩하게, 내게 향했다. 여인의 머리칼을 꽉 부여잡고, 엉덩이를 몇 차례 갈기면서도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아. 늦었구나. 공주.”

“…송구하옵니다.”

그가 사정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여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더니, 금세 엉덩이가 움찔 움직였다. 그는 정액이 흘러나오는 좆대를 뽑아내고 여인을 바닥으로 내쳤다. 그리곤 얇은 포(袍)를 걸치고 용상 위에서 내려왔다. 다시 눈초리가 나를 좇는다.

“네놈들은 모두 물러가라.”

황제는 약에 취한 여인을 제외한 나인들을 모두 지밀에서 내쫓았다. 잠시 뒤, 내전에 두 사람만이 남았다. 더욱 좁아진 거리에서 그의 눈썹이 미심쩍다는 듯이 이마 위로 솟는다.

“네년 입이 보짓살처럼 쫙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

“내 아무래도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의 입매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열흘 뒤면 서현국의 내방이 있을 것이다. 우방에 대한 예우로 내 친히 사람 몇을 하사할 수도 있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다른 시험일까. 협박이고, 강제일까. 하지만 이어지는 황제의 말에 삽시간에 혼동이 일고 만다.

“내 너와 너의 정인을 서현국에 보내주마.”

“어찌…….”

“원한다면 패물도 함께.”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황제가 나와 수오를 직접 놓아주겠다고. 덜컥 박동수가 빨라진다. 꿈도 꾸지 못했던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단, 너는.”

황제가 앞으로 가슴을 밀고,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두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들여다본다. 고개를 이리저리 까닥이기도 하고, 애꿎은 머리카락을 뒤집어 보기도 하며 희롱한다. 그러다가,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침이 고인 목소리가 소름이 끼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간원들에 고하라. 호령 공주 네년이 부마 부율이 반정을 도모하는 것을 들었다고.”

“…….”

“그리하면 내 너와 그놈을 서현국으로 보내 주겠다. 친히 여국의 하사품으로.”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위장이 모두 뒤틀린 것처럼 속이 쓰렸다. 황제가 웃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뜻대로 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부율을 배반할 것이라고. 황제에게 진실 따위는 상관없었다. 부율이 역적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내몰고 싶은 것뿐이다. 모두의 신임을 얻고 있는, 부마도위의 부율을.

“썩 좋은 거래가 아니더냐.”

“폐하, 저는…….”

입이 바싹 마르고 공포로 몸이 떨렸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공주.”

“폐하…….”

“네년이 그 노비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을 텐데.”

가학적인 웃음이, 일그러지며 왜곡된다. 진실이 거짓처럼 보이는 것이, 오로지 내 욕심뿐이라는 것을 안다. 밟히는 것이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다면 왜 손끝이 희망을 좇고 있을까. 당장이라도 수오를 이 품에 안아, 보듬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뻗쳐 오는데.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것일까.

“부율이 네년의 첩을 인정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수오의 목숨이 황제의 손아귀뿐 아니라, 부율의 작은 명령에도 달려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부율 그놈이 권력을 쥐어도, 네 정인은 어차피 죽는 것을.”

“…읏.”

“허나 내 약속하마.”

그때, 황제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네가 부율을 고발해도, 그놈 피는 보지 않으리라고.”

황제의 눈이 어느 때보다 뚜렷하고 활기에 차 있다. 정적이 들어갈 틈도 없이, 그의 입술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간악한 뱀 모양을 하고 있어, 마음이 어질했다.

“그저 잠시 그놈을 귀양보낼 뿐이다.”

“…….”

“네년은 진실만 말하면 돼.”

부율을 귀양 보내는 대신, 나와 수오를 함께 서현국으로 보내주겠다는 달콤한 말이 귓가에 아지랑이처럼 퍼진다. 수오에게 평생의 자유를 줄 수 있다. 처음으로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황제의 말을 전부 신뢰할 수 있을까. 이죽거리는 그의 태도에 희망보다는 불안한 감정이 샘솟는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황제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친다.

“그놈을 먼저 보내 주면 내 말을 믿겠느냐.”

당당하던 황제의 기세가 한풀 꺾여 눈초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사신 놈들이 오면 내 기꺼이 그놈부터 꺼내주지. 그러니 증거를 가져오거라.”

“폐하…….”

“그럼 네년도 그 노예가 있는 곳으로 함께 보내 주겠다.”

조급한 어조. 재빠른 목소리가 나를 재촉한다. 부율을 등지는 대신, 수오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간사한 생각들이 뿌리를 길게 뽑아, 발목을 얽맨다. 넝쿨처럼 온몸을 감겨오는 것은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부율을 떠올렸다. 그의 미소, 나와 함께 있을 때 내는 목소리를. 그러나 한층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다 보면 나는 언제나 수오를 찾았다.

“열흘이다. 공주.”

황제가 자리에 일어서 굳어 있는 나를 쭉 훑는다. 몸이 갑갑하리만큼 시선이 지독하다. 그러나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황제가 아니다.

“영리한 공주는 옳은 선택을 하겠지.”

두 갈래로 갈라진 마음이 소리 없이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한다. 비겁하지 않은 선택을 하라고. 좋은 선택, 옳은 선택. 무엇보다도, 이번만큼은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라고 외친다.

이곳에서만큼은 제발 행복해지라고, 악에 받친 소리를 한다. 그러나 그 울림이 오는 곳이 어디인지 찾을 길이 없어, 결심이 흐려진다.

수오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그 남자가 내 안에서 떠나는 것을 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 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책임지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손목에 그어진 선명한 흉터는, 전생의 선택과 닮았다. 그 붉은 멍울 자국이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죄를 짓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은 없으리라고, 나지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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