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수오(2)
“공주마마. 상을 들일까요.”
문밖에서 궁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가 중천인데도 상을 물린지 벌써 세 번째였다. 나는 수오를 바라봤다. 그는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직 벌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 나중에요. 한 시진 뒤에…….”
궁녀는 머뭇거리다가 잠시 뒤 물러갔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느새 발기한 성기를 잡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코끝에 남성의 짙은 향기가 어른거렸다. 꿀꺽하고 침이 넘어간다. 추비관을 지키는 무관들에게 보석을 건네주고 그를 연궁에 들인 것도 벌써 이틀째였다. 그는 쌓인 폭정을 내게 풀었고, 그 방법은 체벌에 가까운 쾌락이었다.
“수, 수오. 밥은…….”
“그리 보채지 않으셔도 아기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입에 물려줄 겁니다.”
그는 자지 끝을 내 입술에 문질렀다. 그의 요도에서 흐르는 맑은 액이 입술을 전부 덮는다. 어느새 입술이 미끈거리는 그의 분신으로 엉망이 돼버렸다. 숨을 쉬기 위해 조금이라도 입을 벌렸다가는 금세 들어올 것 같은, 아찔한 시간이었다.
“잠깐만…….”
이미 어젯밤 그에게 입안을 농락당한 참이었다. 입안이 다 헐어 있었고, 그의 두꺼운 귀두가 지나다니느라 목구멍도 아팠다. 이대로 그의 자지를 받아 낸다면,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눈물로 그에게 애원하겠지. 제발, 그만두어 달라고. 그러면 그는 비웃을 것이다. 나를 원망하며, 짓이길 것이다.
“어제부터 내 말은 통 안 들으십니다.”
그의 눈썹이 와락 무너진다. 좋지 못한 신호였다.
“넌 그저 벌리라면 벌리고.”
“수, 수오…. 아……!”
“좆물 마시라면 마셔야지.”
그가 내 콧등을 아프도록 쥐더니, 숨구멍을 막아 버렸다. 순간 놀라 몸부림쳐 보지만, 그는 나를 벽 쪽으로 끌고 갔다. 도망갈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호흡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곧바로 그의 자지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하우웁……!”
“윽. 더 벌려. 더 깊게. 젠장.”
그는 내 머리카락을 쥐며 나를 더 앞으로 당겼다. 코에 그의 음모가 닿고, 호흡하지 못하는 지경이 될 때까지 그는 남근을 욱여넣었다. 미끈거리는 애액의 익숙한 맛이 났다.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숨을 토해내고 천천히 뿌리를 뽑아냈다.
“하아…. 혀로 귀두를 핥아. 그래, 그렇게.”
“우웁…아, 하아… 웁.”
그의 말대로 매끈한 첨단을 혀로 꼼꼼히 핥는다. 어느새 그의 성감대를 익힌 나는 예민한 살점만 노려 그를 희롱했다. 그는 강하게 쥐었던 내 머리카락을 놓고, 나를 쓰다듬었다. 마치 애무에 대한 포상인 것처럼 부드럽게 나를 억압했다.
“이제 목구멍 끝까지 들어갈 겁니다.”
“웁… 우우욱……!”
그의 귀두가 목울대를 넘어 안쪽까지 들어왔다. 이런 폭력적인 행위가 싫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보지가 달달 떨렸다. 뻐끔대며 우는 구멍에 채워 넣고 싶다. 그의 자지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벌은 끝나지 않았다.
“입보지 더 조이고.”
“하…욱, 우부붑!”
차가운 손이 내 목을 조여 왔다. 그는 목구멍 한가운데 튀어나와 있는 그의 귀두 모양을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내 목을 반죽하는 것처럼 한 손에 쥐고 주물럭거렸다. 그는 구멍 안에 들어차 있는 자신의 자지를 확인하며, 구멍을 조였다 풀었다.
“싫… 아욱!”
“참아. 이 정도도 참지 못하면서 어찌 부율과의 초야를 견디려 하십니까. 아기씨.”
그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내 목을 조이며 아랫도리를 움직였다. 벅벅 긁는 소리도 나는 것 같고 쩍쩍 대는 음탕한 소리도 나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나를 그의 욕받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걸까.
“하, 크흑.”
자지를 울퉁불퉁 감싸고 있는 핏대가 더 부풀어 오르고, 힘차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절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있는 힘껏 목구멍을 조이며 그의 정액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그는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으며, 빠르게 자지를 들락날락 움직였다.
“하아, 하아. 한 번에 삼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매를 들 겁니다.”
“우우우웁…! 아흐우웁!”
매라는 말에 붉어진 엉덩이가 다시 따끔거렸다. 그의 지독한 매질을 다시 경험할 수는 없었다. 나는 도리질을 하며 열심히 혀를 놀렸다. 그가 내 입에 쌀 수 있도록, 그의 정액이 튀지 않고 내 목구멍 깊숙이 담길 수 있도록.
“하아, 크윽!”
이윽고 그의 정액이 입안에서 발했다. 짙고 농축된 맛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전부 다 삼키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한 방울이라도 토해낼까 봐 목에 힘을 주고 정액을 꿀꺽 삼켰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자신의 충직한 노예를 보는 것처럼 음흉한 시선이었다.
“벽 보고 서.”
그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응…….”
몸을 일으키자 그가 재빨리 내 속곳을 끌어 내렸다. 헐벗은 내 몸을 그의 눈동자가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민망하여 가슴이라도 가리려는데, 그가 손등을 아프도록 내려쳤다. 나는 움찔하며 다시 차렷 자세로 돌아간다. 그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 한구석에서 회초리를 들었다. 본디 연궁에 있던 물건으로, 궁녀가 잘못했을 때 사용되는 도구였다.
“다리 벌려.”
나는 그가 당연히 엉덩이를 때리리라 생각하고 아주 작게 다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섰다. 열린 구멍 속으로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내가 부르르 떨며 긴장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회초리를 들어 올렸다.
쫘악.
“헉……!”
거친 숨소리가 불쑥 튀어나올 만큼의 충격이 음부에 가해졌다. 그는 그 날카로운 회초리의 끝으로 정확히 내 음핵이 있는 곳을 가격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허리를 말았다. 하지만 뒤이어 그가 맹렬한 어조로 나를 꾸짖었다.
“다시 일어서.”
“흐… 읏.”
나는 손바닥으로 벽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도저히 다시 다리를 벌릴 만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토록 강렬한 쾌감도 처음이었고, 짜릿한 고통도 처음이었다.
“또 쓰러지면 강도가 세질 겁니다. 차렷 자세로 벽 보고 서십시오. 벽에 이마가 닿아서도 안 돼.”
“제발… 거기 말고 다른 곳을…….”
나는 눈물을 내비치며 그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다시 회초리를 휘둘렀다.
“아흑!”
다시 보지 구멍 속으로 회초리가 깊게 박힌다. 허리가 찡 울리며 곧게 섰다. 반사적으로 벌려진 다리는 다시 오므라들었지만, 그는 다시 손을 올렸다.
“아흐으응!”
“자세 똑바로 잡아.”
어찌 이대로 버틸 수 있단 말일까. 그가 너무도 잔혹하게 느껴져 미움이 움튼다. 하지만 그는 지난날의 분노를 전부 다 풀어내려는 듯 작정하고 매를 들었다.
“벌써 물이 바닥에 뚝뚝 흐르는데. 회초리도 눅눅해졌습니다.”
“아… 웃! 아니야. 아니야… 아아!”
방 안이 비명과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찬다. 음부는 매질로 인해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다. 따끔거렸지만 금방이라도 오줌을 눌 것 같은 기묘한 쾌감에 휩싸였다. 그는 내게 다시 명령했다. 앞으로 다시 돌아, 그를 똑바로 쳐다볼 것을.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하며 자세를 바꾸자, 그가 잽싸게 다시 회초리를 들어 올렸다.
쫘악. 쫘악.
“아흐으윽! 아하아악!”
이번에 그가 노린 곳은 내 젖가슴이었다. 간밤에 종일 빨리고 핥아진 젖꼭지 주변으로 붉게 일자의 선이 생긴다. 기다란 회초리 자국이었다. 그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출렁이는 가슴에 다시 매질을 가했다. 회초리의 방향에 따라 왼쪽으로 찌그러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손짓에 통제당하는 내 젖을 유심히 지켜보며, 점차 아랫도리를 키워나갔다.
“…이제 다리 벌리고 누워.”
드디어 체벌이 끝난 것일까.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그의 말대로 이불 위에 누웠다. 그러자 그가 다시 눈짓으로 내 다리를 가리켰다. 나는 어젯밤 그가 내게 가르쳐준 자세를 기억해 낸다.
양손으로 허벅지를 잡고 보지 구멍을 넓히고 있는 자세. 내가 허벅지를 잡은 것을 보고 그가 곧장 음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으으응…!”
그의 혀가 예민한 살점을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있다. 구멍 밖으로 흘러나오는 애액을 단숨에 빨아 삼키고 질 안으로까지 혀를 집어넣었다. 충혈된 상처가 그의 침으로 아릿하기도 하다가, 가볍게 절정까지 다다랐다. 그렇게 계속되는 애무 속에 나는 거의 기절할 듯 쓰러졌고, 그는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내게 달려들어 커다래진 귀두를 박아 넣었다.
“아흑!”
“크윽…….”
그가 거칠게 입술을 부딪쳐 왔다. 그의 혀끝에 남은 애액이 입안으로 들어와 쓰고 신 맛이 났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추삽질.
뼈마디 하나하나조차 그와 함께 연결돼 퍽퍽 대는 마찰 소음이 커져만 갔다. 짐승처럼 빠져든다. 그와 나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수오. 수오……!”
“윽, 크윽. 보지 늘어나게 힘 빼. 다리 더 벌리고.”
나는 그의 말을 따랐다. 다시금 그의 계집종이 된 것처럼 그를 주인으로 모셨다. 난폭한 정사도, 그의 욕받이가 되는 것도 전부 좋았다. 그의 숨결이 내게 귀속된 것만으로 세상을 전부 다 가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귀두가 다시 부르르 떨며 발작한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리를 좌우로 쫙 벌렸다.
“하아, 윽!”
“아하아앙……!”
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자지를 밀어 넣으며, 정액을 토해냈다. 나 역시도 그와 함께 두 번째 절정에 다다르며 그의 등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는 아직 발딱 선 자지를 대음순에 비비며, 질척한 촉감을 즐겼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서로에게 얽혀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연인이었던, 함께 하는 나날들을 약조했던 그 날의 우리는 사라져 있었다. 욕정과 끓어오르는 감정만이 남아, 서로를 갉아 먹고 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추었다. 혀와 혀가 감싸 돌고, 달콤한 상상을 한다. 지금 이 순간, 그와 나. 오직 둘밖에 보이지 않는 좁은 세상 속에서는 현실이 없었다.
이것으로도 괜찮은 것일까. 땅거미에 갇힌 시야는 시간과 함께 저물어 간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또 다른 죄책감을 가진 내가 보였다. 그 입으로 자그맣게 탄식을 한다.
‘부율.’
머릿속이 두 갈래로 나뉜 것처럼, 지르르 울렸다.
* * *
귀족들의 입궁 금지령이 풀린 것은 자그마치 십사 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부율은 해금(解禁)일이 되자마자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했고, 이윽고 그의 간청이 이루어졌다. 금실로 엮은 학과 천운을 상징하는 호(虎)의 그림이 그려진 궁궐 문을 보자, 실감이 났다. 드디어 누룩을 볼 수 있다. 부율은 절로 올라가는 입매를 참아 내느라 억지로 인상을 써야 했다.
‘혼례 날을 묻고 바로 누룩에게 가야겠군.’
마음 같아선 곧장 연궁으로 달려가 누룩을 품 안에 넣고 싶었다. 그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고작 열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부율은 그녀가 처음부터 그리웠다. 그래서 깨달은 것도 있었다. 황좌에 올라 하늘도 무시할 수 없는 천자가 되어야 그녀를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고, 부율은 절감했다.
“이쪽입니다. 부율 님.”
나인이 이끄는 방향으로 발길을 틀자 황제의 중제연이 나왔다. 곧이어 그의 키의 두 배 만한 문이 열리고, 휘황찬란한 비단과 모포가 깔린 길이 펼쳐졌다. 그 길 끝에 황좌에 앉아 있는 지금의 황제 폐하가 있었다. 부율은 잠시 예를 다한 뒤, 환관이 가리킨 자리에 앉아 황제를 직시했다.
“유(柔)의 부율이 인사드리옵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격조하였구나.”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 간 뒤, 잠시 침묵이 남았다. 황제는 부율을 꼼꼼히 살폈다. 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금지령이 풀린 뒤 이리도 빨리 저를 찾아올지는 예상치 못했다. 황제는 부율의 심중이 궁금했다.
“혼례 일이 미루어진 일 때문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저 떠보기 위한 말이었지만, 부율의 대답이 빨랐다. 황제의 입가가 바싹 올라갔다. 그 아이에게 흐르는 색기 때문일까. 부율의 몸이 이리 달아 있을 줄은 몰랐다. 그도 자신과 같은 취향이었나. 황제는 의자 한쪽에 느슨히 기대어, 부율을 응시했다. 천의무봉(天衣無縫)하던 첫인상이 흥미롭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초야를 기대하는 것이라면 이왕 온 김에 미리 맛보아도 좋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환관들의 이마가 번뜩 들렸다. 금지옥엽 나라의 천자이신 공주마마를 한낱 기생처럼 대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어전에 질색한 얼굴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자들은 다만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허나 얼굴만 보고 돌아가는 것으로 신(臣) 부율, 만족하겠습니다.”
“…허락하겠다.”
제 도발에 넘어오지 않으니, 황제는 다시 시시해진 얼굴로 부율을 바라봤다. 한편, 부율의 주먹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저만의 누룩을 황제가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하루빨리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역모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부율의 마음이 들끓었다.
“폐하. 조정에 혼례가 취소되었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역모를 꾀했던 서 철휘가 사라졌으니, 이제 혼례를 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잠잠했던 부율의 이마에 날이 선 것을 알아차린다. 혼례가 미뤄진 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당연한 반응일까. 저의 가문이 입궁할 명분이 아직 제대로 서지 않아서? 그렇지 않으면 부율이라는 자가 이리도 부마 자리에 관심이 많았던가. 술원성이 매번 아들놈 때문에 끙끙대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심이 가는 태도였다.
“아직 전부 다 해결되지는 않았네.”
“…계획을 여쭈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부율은 초조해졌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황제는 모든 패를 보여주지 않았다. 누룩의 자살 소동으로 인해 관료들의 말들이 어쭙잖게 떠도는 것일까. 그 모든 수를 가늠해 보지만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그의 이성이 욕망으로 덮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추분이 지나기 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보름 안으로 술원성을 불러 날짜를 잡을 것 같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추분이라면 이십 일도 남지 않았다. 부율은 긴장했던 가슴을 쓸어 넘겼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민심이 힘겨워지는 동절기가 찾아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정 마저 일면 나라가 위태해지고 이웃 오랑캐가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례에 대한 황제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선정은 혼례를 노리는 일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부마도위가 입궁의 유일한 명분이라는 것에는 동의한 바였다. 입궁 후 다시 내전에 침입하기 위해 황제가 방심한 틈을 노려야 한다. 부율은 뒷덜미에 흐르는 땀을 애써 무시하며, 황제의 눈초리를 견뎌냈다.
“그럼 쉬다 가게. 내관을 시켜 연궁으로 안내하도록 하지.”
“유(柔)의 부율이 황제 폐하의 보호 아래에 태평성대를 기원하겠나이다.”
태평성대. 부율은 두 팔을 곱게 접고 황제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황제가 이룰 수 없는 태평성대는 그가 승기를 잡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백성들은 더는 가난에 고립되지 않을 것이며, 관료들의 부정부패 역시 바로 잡을 것이다. 딱 거기까지만.
부율이 생각하는 황제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기본적인 것에 멈추어 있었다. 그는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여인. 그의 아이를 품고 천자를 탄생시킬 유일한 여인인, 누룩에게로.
중제연을 나서는 부율의 발걸음이 더욱이 가벼워진다. 이제 곧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 *
“공주마마. 부율 님께서 접견을 바라시나이다.”
여느 때처럼 수오와 후희를 즐기고 있던 한낮 오후였다. 갑작스레 들려 오는 궁녀의 청에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다. 분명 부율이라고 했다.
“자, 잠시만요.”
가쁜 숨을 모으고 간신히 말이 튀어나왔다. 수오는 내 옆얼굴을 빤히 보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재촉하여 장롱 뒤로 숨을 것을 간청했지만, 그는 벽에 기대어 창가를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난감했다.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허둥대고 만다. 그럴수록 수오는 쓴웃음을 삼켰다.
“…수오. 제발…….”
이기적이라는 것을 안다. 두 사람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 끌자, 드디어 그가 바닥을 짚고 섰다. 잠깐이면 될 것이다. 입궁 금지령이 제아무리 오늘 일자로 풀어졌다고 해도 오래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수오에게 간청했다. 아주 잠깐일 뿐이라고.
“놓으십시오. 차라리 나갈 겁니다.”
그는 정말 나가기라도 할 것인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는 서둘러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대로 추비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율이라도 마주친다면…….
“내가 빌게. 제발 여기 있어…….”
“…너는.”
매듭을 쥔 그의 손이 뚝 멈추었다. 눈길이 차갑다. 나는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가슴 속까지 시릴 만큼 쓸쓸한 눈빛이었다.
“여전히 참 잔인하다.”
어느새 그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나는 비로소 그를 외면했다. 그의 발걸음이 내가 이끌고 간 공간 뒤에 선다. 죄를 짓게 되리라는 무거운 책임은 반 시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을까. 애써 침착한 척 연기해 보지만, 내가 그를 상처 주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공주마마. 유(柔)의 부율이 감히 마마를 만나 뵙기 청 드리옵니다.”
부율의 목소리였다. 빠른 걸음으로 연궁 앞까지 달려온 것인지 그의 숨소리는 다소 거친 면이 있었다. 나는 방을 마지막으로 정리한 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궁녀의 손에 의해 문이 열렸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공주마마.”
부율은 버선발로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궁녀는 그대로 문을 닫고, 뒤로 물러갔다. 세 사람만이 남은 공간. 귓속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누룩.”
웅장하게 울리는 부율의 목소리가 잠들었던 현실을 깨운다. 이윽고 그가 손을 뻗어 내 턱을 끌어당겼다. 마른 입술이 촉촉이 젖어 든다. 우리의 입맞춤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내 손에는 어느덧 땀이 배어 있었다. 수오 님도 소리를 들었을까. 부율을 밀쳐 내지도, 이 상황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제 처지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내가 널 많이 보고 싶었다.”
“아…….”
“너도 날 조금은 그리워해 주었느냐.”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곤란했다. 부율을 오랜만에 본 소감은 놀랄 만큼 평온했지만, 나는 대답을 회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율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를 걱정했을 뿐이었다.
“…폐하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의도적인 질문에 부율의 곧은 눈썹이 수그러진다. 그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내 손을 마구잡이로 붙잡고, 벽으로 몰아넣었다.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두 발치 옆에 장롱이 놓인 곳에서, 부율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대답하거라. 누룩.”
금방이라도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을 것처럼, 그의 몸이 나와 겹쳐졌다. 이대론 안 되었다. 수오 님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와 몸을 나눌 수는 없었다.
“그 날, 네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냐.”
“…….”
수오를 봤다는 말을 부율에게 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거짓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 입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런 나를 눈치챈 부율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볼 자신이…….”
그래. 거짓말을 하자. 연궁의 노비들과 관료들이 그의 손에 의해 죽어나는 모습을 보기에 끔찍했다고 말하자. 피를 보기에 무서워, 반정을 멈추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겁이 났다. 들키는 것이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그의 눈을 바라본다. 호박색의 아름다운 눈이 어떤 원망도 소리도 없이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품 안에 안긴다.
“무서웠어요.”
부율이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내 등을 토닥인다. 예상 밖의 따듯한 목소리는 오히려 나를 더 당혹스럽게 했다.
“괜찮다. 이제 네게 피를 보일 일은 없을 거야.”
이게 맞는 걸까. 그의 말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는 내 거짓을 그대로 믿어 준 걸까. 혹은 믿고 싶어 하는 걸까. 그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두려움과 간곡함. 또다시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를 떠날까 무서워하는 어린아이 같은 눈빛. 그는 전과 같은 슬픈 눈으로 나를 줄곧 살피고 있었다.
“너는 그저… 아름다운 것만 보아라.”
“부율…….”
“내가 반드시 그리 만들어 줄 것이다. 너를 위해.”
다시 입술이 부딪힌다. 농밀한 접촉은 더욱 깊어져, 서로의 혀를 정신없이 탐하게 되고 만다. 그는 나를 끝내 원망하지도 질책하지도 않았다. 그의 광기는 일상처럼 습관이 되어 얼마나 썩어 들어가고 있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애정이 사실이 된다. 현실이 거짓이 된다. 우리는 함께 갇혀 있었다. 그의 미친 공간 속에서 녹아들 듯 스며들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빨랐다. 입을 떼어내고 그의 눈동자를 다시 바라보는데, 어느새 해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세 사람의 숨소리가 났다. 둘은 사랑을 탐하는 소리가 제법 거칠었고, 한 명은 가슴으로 울음을 삼키느라 호흡이 느려졌다. 죄를 범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실감한다.
괜찮다. 이곳은 철창 속보다 더 자욱한 어두움이니까. 나의 죄는 끝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게 될 것을, 은밀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호령 공주가 들인 노예가 다시 추비관으로 돌아온 것은 자그마치 보름이 지난 뒤였다. 그동안 노예의 안색은 밝은 상아색으로 돌아왔으며 두 뺨에도 홍조가 졌다. 궁 사람 누구나 떠들썩하게 말하는 것이 있었다. 아랫도리가 실하니, 색에 미친 공주가 밤새도록 예뻐해 주었다며.
“공주마마의 젖가슴은 어떤 느낌이디?”
“금실로 매일 젖을 묶어 관리한다던데. 실제로는 어떻든?”
여기저기 관료들에게 귀염을 받아 살을 찌운 다른 노예들도 공주의 치마폭 사정을 퍽 궁금해했다. 하지만 수오는 그들을 무시하고 구석에 앉았다. 사람들은 다시 수군댔다. 공주가 부율과의 혼례를 앞두고 노예를 연궁에서 쫓아냈다는 소문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
황제가 이 일을 알까 두려웠던 걸까. 그래서 이제 이 노예를 돌보지 않겠다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수오 역시 다른 노예들의 팔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림받고 떠돌이 개처럼 방황하고, 제 목숨줄을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비슷한 처지였다.
“우린 언제쯤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적막한 방 안에서 탄식의 의문이 터진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 혼례식에는 연회가 배제되었다. 자신들은 하등 쓸모없는 신세였다. 밤마다 음흉한 관료들이 찾는 노리개. 그저 그뿐인 것이라.
“도망갑시다.”
한 노예가 제안한다. 혼례 준비로 바쁜 틈을 타 황궁을 탈출하자고. 그러나 연회가 열려 궁궐 문이 활짝 열렸던 그 날이면 몰라도, 경비가 삼엄한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노예들이 입막음을 위해 살처분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차라리 자신들의 명이 죽음뿐이라면, 도망을 가다 잡혀 목숨을 잃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절망에 가려진 희망이 제각기 반짝인다. 하지만 그 어떤 눈도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초야 날이라면…….”
연회는 없지만, 커다란 행사라면 초야 날도 있었다. 노예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신분이 제아무리 비천하다 하여도, 초야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국(麗國)에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습.
바로 황제의 적자인 공주는 초야 날 부마도위에 오를 신랑의 몸을 묶어 두고 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황궁 안의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제 남자라고 낙인찍는 의례가 있었다. 전대 황제인 명황에게는 적자인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그 같은 의례가 행해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호령 공주가 있지 않은가. 모두가 음탕한 눈을 하고 초야 방에 몰려들게 불 보듯 뻔했다. 노예들은 마른 침을 입술에 묻히며 닷새 후 있을 초야를 상상했다.
“…그렇다면 기회는 그날 하루뿐이야.”
주동자가 된 노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수오의 눈도 그의 부리부리한 생김새를 따라간다. 공주가 부율과 잠자리를 한다. 그걸 모두가 아랫도리를 세운 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수오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처지가 안타깝기는 하나, 분노는 다른 이에게 향한다.
누룩.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린 그 음탕한 여자에게로.
* * *
연궁.
“공주마마. 초야 날이 정해졌사옵니다.”
“네…….”
수오를 다시 추비관으로 보낸 후로, 마음이 온종일 갑갑했다. 더는 감싸줄 수 없다고 성화하는 환관의 등쌀에 밀려, 반강제적으로 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신경은 온통 그에게 가 있다.
황제의 입으로 혼례가 재차 공언된 지도 이틀이었다. 게다가 초야 날까지 정해지니, 공주의 비밀스러운 정사를 숨기기 급급한 나인들은 수오의 입을 막고 추비관으로 추방했다. 궁중의 노예들이 혼례가 끝난 뒤 어떻게 처리될지는 누구도 입을 여는 자가 없다. 이대로 혼례가 시작되어 부율이 입궁하는 날에는, 어차피 수오와의 연도 끝이 난다.
견딜 수 있을까. 그러나 참담함 속에서 나는 미련한 손만 움직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역(無射) 망월(望月)이옵니다. 가장 커다랗고 둥근 달이 뜨는 밤, 청해궁(靑海宮)의 대문을 활짝 열고 정사를 시작하시면 되옵니다.”
이곳의 초야는 궁궐 안 사주(四柱)에 몸이 묶인 상대를 간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황제가 황후가 아닌 빈첩과 초야를 보낼 때도 비슷한 의식이 있었다. 공주는 반대로 부마의 수족을 묶어 남근을 직접 음문에 문질러 넣는다. 모두의 앞에서 외간 사내였던 자를 황가로 인정하겠다는 맹세이자 딸만 열둘이었던 초대 황제의 변태적인 취미였다.
“…부율 님도 아시나요?”
그도 이러한 행사를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모두의 앞에서 능욕을 당한다는 것은, 줄곧 귀족 신분으로 자란 그에게도 힘겨운 일이 될 터. 정말 괜찮은 걸까. 조심스레 환관에 묻자, 그가 작게 대답했다.
“예. 사실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부율 님께서 주단(綢緞)을 요청하시어 공주마마의 옥체를 가리어 달라고 폐하께 상서를 올리셨습니다.”
그가 내 몸을 가릴 비단 천을 황제에게 청했다. 환관은 몹시 난감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부마 위에 오르지도 않은 귀족이 제 아내가 될 자를 위해 황제에게 간곡히 말씀을 올린 것은, 제법 드문 일이다. 그만큼, 황제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마마께서도 결국은 부마 님께 마음을 여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추비관의 노예를 불러, 이곳에서 추삽질을 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환관은 언제나 부율을 염려했다. 당분간 홀로 입궁하여 공주밖에는 기댈 곳이 없을 그의 처지를 연민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닥친 현실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수오와 함께 하는 나날들이 달콤해서였을까. 이미 따먹은 과실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러했다. 어떤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황제 폐하 납시옵니다!”
갑자기 바깥에서 나인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황제가 직접 연궁을 방문했다. 처음 겪는 일에 눈앞에 있는 환관 역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
그렇게 허둥지둥 방을 빠져나가려는 환관의 머리 위로 황제의 커다란 옥체가 바로 섰다. 위협적인 눈매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너는 이만 나가보거라.”
“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환관은 그대로 허겁지겁 방을 나갔다. 황제는 포진으로 바싹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내가 황급히 팔을 접고 절을 하자, 그가 앞에서 비소했다.
“벌거벗고 씹질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제법 공주 티가 나지 않으냐. 장하다고 칭찬을 해주어야 하겠구나.”
“서, 서, 성은이…….”
“그날 손목을 그은 것은 내 대충 어의를 통해 설명을 들었지만 말이다.”
날렵하게 씩 그어진 입매가 불쾌했다. 한 나라의 황제답지 않게 저열한 말투도 한몫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눈빛이 무서웠다. 부율과 아버지가 꾸미고 있는 은밀한 모반 역시 이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만 했다. 그는 떨고 있는 내 어깨를 잠시 노려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도 혼례가 싫었더냐?”
“그것이 아니오라…….”
“허면 부율만으로 부족했더냐.”
황제의 음해한 시선이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는다. 비로소 황제가 이곳에 찾은 이유를 깨닫는다.
“내 너를 이곳에서 범한다면, 소리를 지를 것이냐?”
황제의 몸이 내 몸 위로 쓰러진다 하여, 반항할 재간이 있을까. 울먹이는 눈을 보는 황제의 아랫도리가 바싹 선다. 그는 내 가느다란 손등을 우악스럽게 쥐고, 점점 더 경계선을 침범해왔다.
“초야 전에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공주.”
“싫어……!”
날카로운 비음이 천장을 찌른다. 황제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폭삭 가라앉았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벗어나고자, 몸을 뒤로 움직였다. 그때 그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쫘악.
“흐윽!”
고개가 바닥에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진다. 황제는 내 머리를 잡고 손바닥으로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귀가 먹먹히 울렸다. 바깥에서 궁녀들이 숨을 죽이며 내는 소란 역시 잘 들리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계집년아.”
“아아악!”
“부율이 네년을 위해 초야 문을 닫길 청하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 네년이 진짜 공주라도 된 것 같으냐.”
쫘악. 쫘악. 황제의 손아귀 아래 종이쪽처럼 얼굴이 흔들렸다. 뺨은 부어서 새빨개졌고, 비단옷은 찢어진 지 오래였다. 도움을 구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 황제의 분노한 표정이 보인다. 바지 매듭을 풀고, 그 안에 성이 나 있는 성기가 그의 손에 잡힌다. 싫어. 싫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보아도,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흩날렸다.
“내 네년을 여기서 강제로 범할 수도 있겠지.”
“으… 읏.”
귀두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허연 액체가 보인다. 그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기둥을 잡고 문질렀다. 다문 구멍을 억지로 열어 그 두껍고 흉측한 것을 끼워 넣을 심산이다.
“어디 빌어 보아라. 혹시 아느냐. 몸을 넙죽이 숙여 엉덩이를 들고 용서해 달라고 빌면 오늘은 그만둬 줄지.”
“폐, 폐하.”
서둘러 바닥에 가슴이 닿을 정도로 몸을 웅크리고 그에게 매달렸다. 빌어야 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다만 살기 위해 몸이 제멋대로 하는 신호일 뿐이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 흉한 자지를 도로 바지 안에 집어넣고, 매듭을 느슨히 묶는다. 그는 튀어나온 음모마저 정돈한 뒤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머리 위를 두들겼다.
“알겠느냐. 공주?”
눈이 땅에 닿아,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욕정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나의 몸을 구석구석 먹어 치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초야 날까지는 내 참아 보겠다. 공주의 성의를 봐서.”
“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그가 뒤를 돌면서 황룡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끝난 걸까. 고작 초야 날이라는 시한부 같은 짧은 신세에 먹먹해지지만, 그 또한 잠시겠지.
부율과 아버지가 반정을 꾀한다는 사실이 이토록 평안해질 줄이야.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엎드린 몸을 그만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황제의 서늘한 눈빛이 바로 내 앞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너. 무언갈 알고 있구나.”
“예……?”
당황한 내 표정을 포착한 황제의 입매가 드높아진다. 마냥 사슴인 줄만 알고 쉬이 잡았건만, 호랑이를 잡은 격이었다. 그가 그 미세한 순간을 놓칠 리 없다. 나를 관철하는 눈매가 더욱 표독스러워진다.
“설마.”
그가 악착같이 내 머리카락을 위로 잡아당겼다. 그대로 천장 아래에서 그득그득 잡힌 머리털이 뽑힐 듯 아슬아슬했다. 그가 내 귓가에 커다랗고 악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날 죽일 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게냐.”
황제의 머릿속에 즐거운 것이 생각났다. 재미있다는 듯 끌끌 웃어대는 뱃가죽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 * *
황제의 지밀(至密).
정복이 바닥에 치이고, 여인이 대자로 그 위에 드러누워 있다. 황제는 여자의 풍만한 가슴을 두 손으로 꽉 쥐며 공주를 상상했다. 쥐어도 다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가슴, 가느다란 허리, 그 바들바들 떨리던 가련한 입술까지. 지금껏 어떤 궁녀보다도 색기가 흘러넘쳤다. 게다가 그 외모. 제 딸인 진짜 호령 공주를 쏙 빼닮은 고귀한 외모가 무엇보다 황제의 마음에 들었다. 그년을 부서지도록 거칠게 박은 다음, 고통으로 울부짖게 해주고 싶었다.
“하앙…! 아하아앙…! 폐하, 폐하……!”
“하, 하아. 하아, 이 씹년. 네년 보지 냄새가 감히 나를…….”
궁에 나뒹굴어 다니는 아무 궁녀를 낚아채 무작정 지밀에 밀어 넣고 보지에 박았건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아까 전 당황한 그년의 표정. 숨기는 것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더 흥분되었다.
“치마폭 밖에서도 보지 냄새가… 씨발. 감히……!”
“아아아앙! 폐하, 너무 빠르셔요. 아하아응……!”
황제가 눈을 뒤집어 까며 제 욕정을 채우기 급급할 때, 궁녀도 단꿈을 꾸고 있었다. 황제의 승은을 입어 후궁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면. 그녀는 더욱더 황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거짓 신음을 자아냈다. 황궁의 법도가 그녀를 황제의 옆자리로 이끌었다면 마땅히 그 자리에 서겠노라고, 그녀는 역겨운 황제의 몸 아래에서 눈을 빛냈다.
“하, 크으윽! 나온다!”
“하으으응! 아아… 폐하!”
황제가 궁녀의 안에 파정한 순간, 그녀 역시 느꼈다. 어쩌면 황제의 씨를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공주밖에 없는 황제에게, 황자를 손에 쥐여줄 수 있다면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것도 허무맹랑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궁녀는 자신의 품에 쓰러진 황제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며, 꺄르르 웃었다. 이제 황궁이 그녀의 것이었다. 그런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때 황제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당황한 궁녀가 재빨리 손을 떼지만, 황제는 그녀의 손목을 빠르게 낚아챘다.
“폐, 폐하……?”
“그년이 손목을 그은 것이 아무래도 수상해.”
“그것이 무슨…….”
황제가 자리에서 홱 일어났다. 궁녀는 어리둥절한 채로 황제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위험했다. 그의 눈은 이미 산 자의 상식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기이해져 있었다. 그때, 황제가 다리를 들어 올려 궁녀의 배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크흐으윽!”
“반역에 가담하는 쪽일까.”
그녀의 목구멍 앞까지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지만, 황제가 급소를 꾹꾹 눌러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벌거벗겨진 나신으로 투박한 발바닥에 깔려 생명을 빼앗기고 있었다. 황제는 그런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해서 혼잣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알고도 헛짓을 했단 말인가.”
“아끄으으윽! 폐……!”
“연궁에서의 일만 없었어도 서 철휘의 칼에 내가 데일 수도 있었는데?”
이제 슬슬 싫증이 났다. 황제는 그 거친 발로 궁녀의 목을 여러 번 짓밟았다. 숨이 막히는 듯 헉헉대는 돼지 울음 같은 소리가 나다가 곧 뼈가 으스러지며 생명이 꺼지는 잔혹한 소리가 들렸다. 황제는 웃었다. 재미있었다.
“…분명 그년이 알고서 그런 것이야.”
타인의 죽음이 제 처소에 들이닥친 순간에서도, 황제는 공주를 생각했다. 그저 탐하고 먹어 치울 생각만 했던 년이 저의 목숨줄을 지켜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공주의 입을 열게 해 누가 자신을 배반할지 불게 할 수도 있었다. 그년의 아비인 선정일까. 부율일까. 혹은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는 궁녀이고 내관들일까.
“내 절대 이대로 무너지지 않아.”
조정에서도 날로 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는 지금, 제 목을 조여 오는 모든 것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다. 황제의 너털웃음이 죽음과 가까워져 가고 있다. 그조차 느끼고 있는, 애써 부정하고 싶을 만큼 사실적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 자신이 만든 황궁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년과 그년이 감싸고 도는 모든 자를. 혹은 그 반대의 자들을. 황제의 죽어 있는 남근이 다시 꼿꼿이 선다. 마지막 발악처럼 그의 자지 구멍에서 희멀건 점액이 질질 흘렀다.
* * *
혼례 날이 다가왔다. 달빛처럼 은은한 적의, 금색 실로 수놓은 하피(霞帔)를 걸쳐, 붉은 너울을 씌운다. 궁녀가 치장한 의복은 유독 독한 향이 감돌았다. 초야 날을 위한 미약의 냄새가 난다.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던 식은 초대 수를 절반가량 줄여 간소하게 이뤄질 예정이었다. 황제는 귀족들을 한 대열에 세워 검문했고, 귀족들은 불쾌한 기색으로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부율 역시 그 검문을 피해 갈 수 없었고, 먼저 공주를 보러 가서도 안 되었다. 그나마 이 연이 연궁으로 잠시 들러, 부율의 전언을 들려주었으며 초야 날에 대해서도 일러 주었다.
오늘 밤 자정이 되면 황제를 포함한 관료와 나인 54명이 초야 방에 들어온다. 부율의 팔과 다리를 얇은 끈으로 느슨하게 묶어, 그의 성기를 적신 뒤 두 다리를 벌려 남근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부율의 고집으로 비단 천이 내 몸을 감싸고 있을 것이며, 거짓으로 하는 시늉만 하게 될 것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보다 더 명백한 것이 지금 이 순간, 또 어디 있을까.
“공주마마. 청하신 노예가 왔습니다.”
아직 혼례까지 두 시진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궁녀가 문을 열자, 청아한 차림의 수오가 바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맞아들이며 문을 닫는다. 그는 내 방이 익숙해졌다는 듯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그의 곁에 따라 앉으며, 눈물을 견뎠다.
마지막일까. 우리는, 정말?
대답을 바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옆얼굴을 쳐다본다. 다시 깊게 빠진다. 일렁이는 호숫가에 담긴 발목처럼 수면 위에서 살점이 왜곡된다. 마치 이 관계처럼.
“오늘 이곳을 나갈 계획입니다.”
처음 떨어진 그의 말에 일순 당황해 버린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 버린다. 그가 떠난다. 내 옆을 떠날 것이다.
“초야 밤 경계가 느슨해질 무렵, 이곳을 탈출할 겁니다.”
“…아.”
추비관의 노예들에 대한 핍박은 혼례 준비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들의 쓸모가 조정에서 논의되고 있던 참이었다. 연회가 사라졌으니 이곳에 있을 필요도 없었고, 역모에 대한 수색이 종료되었으니 그 처지가 애매했다. 입막음을 위해 살처분 당할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혼례가 끝이 나면 그만이라도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그럴 결심으로 그를 마지막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먼저 내 곁에서 떠날 결심을 한다. 가슴이 쿵쿵 뛰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아팠다.
“그럼 이제…….”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에서는 아는 질문이 가슴에서 턱 하고 막혀 버린다.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야 할 곳을 몰라 여기저기 떠돌았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무엇을 미워해야 할까.
“오늘로써 부율의 것이 되겠군요.”
담담한 어조. 체념한 입술. 나는 그런 수오의 얼굴에 그만 숨어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나는 힘없게 말을 꺼냈다. 입천장에 닿는 혀끝이 까칠했고 입안은 바싹바싹 말라 갔다. 그를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호수에 가라앉고 마는 돌덩이처럼 저 모랫바닥까지 추락한다. 그를 놓칠까 불안한 마음이 그득하게 내 등허리를 덮쳐 오고 만다. 차라리 이대로 전부 무너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수오의 눈이 커진다. 놀랐다기보다 슬픔에 잠겨 애써 억누르고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이었다.
“…누룩.”
그가 지은 나의 이름을, 부른다.
“널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그 뒤, 다시 한번 꽉. 안타까운 마음이 모자람 하나 없이 흘러넘친다. 목소리는 분명하고도 선명하다. 그는 나를 쓰러뜨리고 바라본다. 두 눈이 같은 운명을 직감하듯 동시에 흔들렸다.
“나와 함께 가자.”
그의 눈이 애절해진다. 어느새 고인 눈물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
내가 또 그 사람 앞에서 사라지게 되면, 그는 더는 버틸 수 없을 텐데. 그 쓰러진 등이 아른거리는 듯하여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나를 붙잡는 소리. 처절하게 애걸하던 그 목소리.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처럼 유독 내 앞에서만 작아지는 사람. 내가 수오와 함께 황궁을 떠나면 홀로 남겨지게 될 부율,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계획된 반정은.
무엇보다 나를 의심하는 황제가 그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같이 갈 생각이 없는 것이냐.”
이미 내 표정에서 대답을 읽어냈다는 듯 체념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수오의 손을 맞잡을 수 없었다. 이윽고 떨어지는 손. 그는 다시 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놈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그의 눈동자가 나를 책망했다.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수오, 한 사람뿐인데. 하지만 그는 나를 믿지 않았다. 나를 탓하는 시선이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곧 혼례식이겠구나.”
“…….”
“오늘 밤, 네 뱃속에 그놈 씨물이 가득 들어차겠지. 그자는 몇 번이고 너를 안을 테니까.”
“수…….”
“그전에 내게 마지막으로 안기거라.”
그의 무표정이 욕정과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지를 끌어 내리고, 축 처진 성기를 꺼냈다. 아집일까. 슬픔에 일지 않는 욕구를 억지로 쏟아부으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말입니다.”
“수오…….”
그를 안타까워한다. 끌어안아, 그의 향기가 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어 사랑을 나누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안다. 끝내 고통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얼마나 달콤할지를 안다. 그래서 괴로웠다. 먹물이 새하얀 붓에 치밀 듯 순수하던 마음에 상처가 든다. 시선은 교차하고,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빠져든다. 다시 그 깊은 어둠 속으로.
“누야.”
그는 내 작은 손을 그의 성기로 이끌었다. 검붉은 색의 귀두가 연한 포피에 싸여 있다. 나는 그의 시중을 들었을 때를 상기해 낸다. 어떻게 하면 그를 기쁘게 만들 수 있을지 알고 있다. 조심스레 기둥 밑을 잡고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귀두 끝이 포피를 밀어내고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읏…….”
“수오…….”
그의 눈에 고인 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입술로 그를 위로한다. 손길은 미끄러지듯 유연히도 그의 기둥을 어루만졌다.
“더 빨리…… 하아.”
어느새 손등에 맑은 물이 튀고 있었다. 흐르는 이상으로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잡으며 애걸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포피를 한계까지 끌어내렸다. 그가 신음한다. 어느새 그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리며,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하고 있다.
“아… 윽. 하아……!”
기둥을 쥔 손바닥이 끈적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야한 물소리가 났다. 이윽고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둥글게 말린 손바닥 안으로 스스로 자지를 밀어 넣으며, 느끼기 시작했다.
“하, 윽. 누룩…. 아, 읏.”
나는 입을 벌리고 그가 자위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렇게 커다란 기둥이 그동안 내 안을 배회하고 있었던 걸까. 자극적이다. 이미 속곳은 축축이 젖어 들어 붉은 비단에까지 미친다. 혼례를 위한 하피는 바닥에 끌린 정도로 느슨히 내려간다. 노출된 어깨에 그의 눈이 머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 어깨를 베어 물었다.
“아……!”
“더… 더 아래로…….”
그의 자지를 자극하느라 생긴 손바닥의 열이 뜨거웠다. 마찰이 빨라지자 이따금 아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내 손을 더욱 끌어 잡아, 위아래로 움직이게 시켰다. 점점 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간다. 이윽고 윗가슴에 닿았을 때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이대로 멈추지 않는다면 혼례 때 보일 의복이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황급히 손을 떼고, 그를 밀어냈다. 그는 웃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의 몸이 어느새 욕구에 절어 있었다.
“적의가 썩 잘 어울리는구나.”
“아…….”
“헌데 그 커다란 가슴을 끈 하나로 지탱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밑가슴을 바치고 있던 끈이 그의 손에 의해 풀렸다. 답답했던 가슴이 열리고 새살 돋아나듯 젖꼭지가 튕겨 나왔다. 그는 손가락 두 개로 끝부분을 살살 비비다가 끝내 입으로 덥석 물었다.
“아아흐……!”
그에게 젖이 쭉쭉 빨아 삼켜진다. 나는 허벅지를 열어 그를 서둘러 재촉했다. 그는 젖꼭지를 쥐고 있던 왼손을 놓고 내 치마 속을 더듬었다. 붉은 비단에 묻어 있는 진한 꽃내음이 그의 몸에 옮겨난다. 옅어진다. 죄의식과 현실감이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할 여유가 없다.
“하, 으… 손가락을, 제발…….”
그에게 간곡했다. 아래가 녹아 버릴 것 같아 애가 탔다. 굵고 단단한 것이 동굴 속을 마음껏 헤집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서, 빨리. 하지만 그는 음모를 간지럽힐 뿐 안쪽까지 다가와 주지 않았다. 이제 초조해지는 건 나였다.
“제발, 제발……!”
“어디 스스로 넣어 보아라.”
그의 입매가 올라간다. 젖꼭지는 여전히 그의 손에 의해 희롱당하고 있는 채다. 자극에 휩쓸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손이 본능적으로 대음순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다. 한바탕 물이라도 쏟아버린 것처럼 구멍 주변이 축축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더 젖어 있다는 걸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만 손을 주저해 버린다.
“멈추지 말고 움직여.”
그는 단호했다. 내 태도가 불만스러운 것인지 더 세게 젖꼭지를 꼬집는다. 입술을 물어 쾌감을 참아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음순을 맴돌던 손가락이 결국 구멍에 꾹 들어갔다. 동시에 그의 손가락이 내 손을 비집고 질 속을 파고들어 왔다.
“아… 읏!”
“이걸로 손가락이 두 개가 됐어.”
그는 더 깊은 곳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비소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깊은 곳을 농락당한다. 두 사람의 손가락으로 인해 구멍은 더욱 넓어져 갔고, 그는 기어이 손가락을 세 개로 늘렸다. 아랫배가 꽉 차는 느낌에 속이 더부룩했다. 하지만 이 아찔한 감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그를 받아들였다.
“아, 흐으응! 아흐으윽……!”
“끝까지 닿게 해줄 테니 엉덩이를 더 들어 올려. 옳지. 그래.”
“하으, 제발…! 아아…… 응!”
자세를 고쳐 잡자마자 그의 손가락이 질 가장 안쪽에 닿는다. 비명을 지르려는 나를, 그가 입술로 막았다. 호흡을 할 수 없어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밖으로 빼내며 내 입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우응… 아웁…….”
“힘을… 빼.”
그가 푹 젖은 손으로 내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뜨겁고 불쾌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리고 만다. 그러다가, 그의 열기가 이번에는 내 뺨에 닿았다. 눈을 떠보니, 그의 검붉은 귀두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짐승의 노골적인 냄새가, 곧바로 콧속에 뻗친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두 뺨이 붉어진 것이 볼기처럼 보여 제법 꼴리는구나.”
“아읏… 싫어요…….”
“더 새빨갛게 만들어 주마.”
딱딱하게 발기한 그의 끝이 내 뺨을 세게 스쳤다. 순간 알싸한 통증에 눈물이 고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편 뺨을 그의 자지로 후려쳤다.
“아흑!”
“입 벌려.”
자지 구멍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득한 물이 아랫입술에 묻는다. 기어이 그는 내 입가 전체에 그의 흔적을 펴 발랐다. 비릿한 향기가 감돈다. 혀를 내밀지 않아도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욱……!”
“하아, 더 벌려. 더, 젠장.”
조금이나마 틈새가 벌어지자, 그 두꺼운 살덩어리가 덜컥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숨이 다시 막히기 시작한다. 코끝에는 그의 옅은 음모가 느껴지고, 혀로는 자지에서 흐르는 비릿한 물이 감돌았다. 그는 이미 여러 번의 침입으로 헐어버린 내 입안을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웃는다. 그 잔인한 미소마저 벅차올라 스스로가 암담했다.
“하아…. 이리 눕히고 입속에 자지를 박으니 오싹해져. 너를 구속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우우웁…! 하욱……!”
“팔다리를 전부 잘라 가둬 두고 뚫린 구멍은 정액받이로 쓸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를…….”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참을 수 없을 만큼 더 깊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순간적인 구역질에 그를 잽싸게 밀어내 보지만, 그가 내 두 팔목을 모조리 잡으며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의 고환은 크게 부풀어 올라 어느새 내 피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둘 수만 있다면…….”
“하우우웁… 우우욱!”
“참… 좋을 겁니다.”
그는 힘겨운 얼굴로 억지로 그의 물건을 물고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지그시 나를 압박하며, 맑게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이 광분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다가도, 간절하다. 나는 그런 그가 사랑스럽다. 나를 있는 힘껏 갈구하는 그가 내게는 완벽해 보였다.
“크윽… 어느 구멍에 흘려주길 바랍니까. 입보지에 넣어 줄까, 그렇지 않으면 뒷구멍에 넣을까.”
“흐욱… 아!”
곧 있으면 벌컥 쏟아 낼 것처럼 부풀어 오른 귀두가 입속을 빠져나간다. 침으로 번지르르한 기둥을 보자 곧장 보지 속에 꽂아 주었으면 했다. 그의 정액을 자궁으로 받아 내고 싶었다. 내 깊고 은밀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도록 그가 내게 와 주었으면 바랐다. 나는 그의 앞에 허벅지를 내어 구멍을 뻐끔 움직여 보인다. 그의 눈이 크게 벌려진 보지에 가 닿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의 열기가 하나가 됐다.
“하으윽! 수오……!”
“크윽. 조이는 연습이라도 한 것이냐. 제법… 뒷구멍처럼, 윽. 좁아졌어.”
그의 눈이 충혈된 것처럼 번뜩거렸다. 성욕에 지배당한 몸은 어느새 거칠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나를 깔아뭉갤 듯이 가둬 두고는, 자신의 범위 안에서 나를 능욕했다. 가쁜 숨이 엇박자로 어긋난다. 팔뚝만 한 성기가 계속해서 보지를 들락날락하고 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방 안 공기가 탁해져 갔다.
“아, 욱…! 헉…… 아아!”
예고도 없이 절정에 달아오른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구멍이 빠르게 수축했다. 그런데도 그는 잠깐 인상을 찌푸릴 뿐 계속해서 성기를 움직였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는 실신 직전의 나를 끝까지 붙들고 작은 구멍에 굵은 귀두를 넣었다 빼내었다.
“윽, 하으으응……!”
밖은 한창 혼례 준비로 떠들썩해 있는 참이었다. 궁녀들은 궁중 음식들을 나르고 있었고, 환관들은 누각 위에 악사를 재편하는 등 분주했다. 소리를 지르고 신음해도 저 먼 곳까지 들릴 리가 없다. 그리 생각하고 내 안의 연인을 꽉 끌어안았다. 마지막이 아니라고 믿으며 그의 분신을 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창호지에 낯익은 그림자가 보였다.
“…아…….”
모든 것이 느린 속도로 일변한다. 몸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온도로 식어갔다. 나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수오의 무게를 견뎌냈다. 더 움직이면, 들키게 된다.
“안에 있느냐.”
낮은 목소리가 어슴푸레하게 문을 넘어 들어온다. 수오도 눈치를 챈 것인지 삽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겹쳐진 인영이 아직 부율의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그는 문 앞에 서 있을 뿐 열지 않았다.
“누룩. 너무 보고 싶어 찾아왔다. 열어도 괜찮겠느냐.”
그는 연궁에 찾아와선 안 되었다. 혼례식 때도 너울을 뒤집어쓰고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초야 날 서로의 몸이 처음으로 설키게 되는 때, 비로소 하나 됨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연궁을 찾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오…….”
나는 그의 귓가에 바싹 다가가 그에게 속삭였다. 이 놀이는 끝나야 한다. 부율이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나아가 나와 몸을 섞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수오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 버린다.
“…….”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아니, 오히려 더 대담해져만 간다.
“열병이 났다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는 무심하게 다시 허리를 움직이며 내게 속삭였다. 몸이 위로 밀려 올라간다. 그는 출렁이는 내 젖가슴에 손을 얹고는 자지를 좌우로 움직였다.
“보지가 이리 뜨거우니, 열이 난 게 아니고서야 무엇이겠습니까.”
“하…읏, 안 돼…….”
이러면 안 돼. 문 앞에 서성이는 부율을 보고서도 바짝 선 그의 아랫도리를 느끼고 있노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게 돼 버린다. 이대로 절정에 오르고 싶다. 하얀 점액질이 내 몸을 칠할 때까지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다시 나를 부르는 부율의 음성에 나는 까맣게 질려 버렸다.
“안에 있는 것이로구나.”
미처 막지 못한 신음이 부율에까지 닿았다. 수오는 작정이라도 한 것인지 입으로 젖꼭지를 잘근잘근 물었다. 순간 허리가 휘어지고 커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부율의 손도 문고리에 머물렀다.
“열이 나서…! 으…읏.”
그가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겁이 나 수오가 알려준 대답이 나가 버린다. 부율은 소리를 죽이고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두 손으로 서둘러 입을 막았다. 하필 바깥이 조용했다. 그가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어의를 불러오길 바라느냐?”
부율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수오는 혀를 내밀어 우뚝 선 젖꼭지를 정성껏 핥았다. 질척이는 추삽질 소리와 젖을 빠는 음란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워갔다. 부율이 눈치채기 전에 수오를 절정까지 보내야 했다. 나는 최대한 다리를 벌려 그의 것을 담았다가,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아 자지를 짜내었다. 그의 눈이 찡그려지면서 맑은 즙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직 정액을 쭉 내기는 부족한 기교였다.
“누룩. 말하거라. 걱정되지 않느냐.”
“흐읍……!”
자지 때문에 부어오를 대로 부어버린 음부가 오물거리며 기둥 포피에 착 달라붙는다. 나름대로 참아 보려 구멍을 벌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제 곧 절정에 달할 것이며, 음모와 소음순에 온통 그의 정액이 뿌려질 것이다. 수오는 아예 내 허벅지를 들어 올리고 퍽퍽 박아대기 시작했다.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정신이 한계에 도달했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어의를… 어의를 불러 주세요…. 아… 읏!”
퍽, 퍽.
살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방을 울린다. 하지만 부율이 이미 대청에서 멀어진 뒤였다. 그는 내 다급한 소리에 뛰었고, 어의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이 있었다.
나는 화사한 마음으로 수오를 끌어안았다. 절정에 오른다. 그 역시 내 안에 정액을 내며 미소 지었다. 우리는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들키지 않았다.
그러니까 죄를 지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