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의 BL 소설 3
Chapter 10. 계획(2)
“준비 다 되셨습니까.”
이 연의 눈이 텅 빈 방을 향한다. 가마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대로 가마에 올라탔다. 밤하늘에 난 별들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가마 안에서, 작게 난 창마저 닫히는 걸 보고 나서야 내가 이곳을 떠난다는 게 실감 났다.
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연도 출발하는 가마 옆에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
작게 숨이 새어 나온다.
나는 놓고 온 물건이 무엇인 줄 알고 있었다. 일부러 두고 왔다고 하면 너무 못난 마음일까. 그리움이 겹겹이 쌓여 원망과 미움이 되고, 다시 사라지길 여러 번. 숨을 오래도록 참는 것처럼 벅차오르다가도, 꺼져 갔다. 언제나 그 경계선에서 나는 그가 준 선물을 놓지 못했는데.
“멈춰요.”
두고 온 것이 잔인해서 그러하다. 분명 그뿐일 것이다.
“어디 불편하신 것이라도 계신 겁니까.”
“놓고 온 물건이 있어요.”
“하명하시면 제가 가져오겠…….”
“아뇨. 잠시면 돼요. 제가 직접 갈게요.”
이 연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마에서 내려 집까지 뛰었다. 그리곤 신을 벗지도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 경대 밑 서랍을 열었다. 나는 그 안에서 가락지를 찾아 그대로 품속에 넣었다.
“찾으셨습니까.”
이 연이 방 앞에 도착한 것은 내가 경대 서랍을 닫고 난 뒤였다.
“네. 이제 괜찮아요.”
이제 괜찮다. 나는 방을 나가 다시 가마 위로 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가마 안이 좀 더 편안해졌다.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새벽길, 가마는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가마가 멈춰 선 것은 푸르스름한 볕이 안개처럼 돌 무렵이었다. 나는 눈꺼풀을 살살 비비며 시야가 깨끗해지길 기다렸다. 창을 열어 확인해 보니 수도는 아니고, 강가를 따라 지어진 마을이었다.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북적거린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사람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제법 큰 도시인 것 같았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려 합니다.”
이 연이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밤새 내 곁을 지키느라 불면한 까닭이었다.
“가마에서 나가도 되나요?”
“얼굴은 가리셔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몽수(蒙首)를 썼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아예 얼굴까지 가리기 때문에 시야가 흐릿했다. 이 정도로는 사람의 형태만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황궁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가짜 공주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들켜선 안 되었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이 연의 신호에 갑갑한 가마 밖으로 나오자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하필 노예 시장이 열린 것 같습니다.”
“노예… 시장이요?”
“예. 황궁에서 온 자들도 모인 걸 보아하니, 연회를 위한 노예도 경매에 오를 모양입니다.”
움찔하는 내 어깨를 본 이 연이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말했다.
“구경 나온 규수들도 많으니 수상하게 보이진 않을 겁니다.”
이 연의 말대로 시장은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들로 북적거렸다. 연은 주변 마을 여염집 여식이 유람하러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나는 시장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나는 옅은 피비린내 냄새가 역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부축하는 이 연을 거절하고 가마로 다시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남창 것들이 한데 모였다지?”
“어떤 놈은 웬만한 기생보다 어여쁘다던데.”
“기생이 뭐야, 궁녀보다 더 요염하댔어. 머리카락이 은처럼 반짝인대.”
“그럼 뭐해. 먹지도 못할 감인 것을.”
은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저 지나가는 여인들의 대화일 뿐인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가마를 잡았던 손이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룩 님?”
“…아.”
“가마에서 쉬시겠습니까?”
이것도 분명 거짓일 것이다. 오랫동안 꾸지 않은 악몽이 재현되는 것뿐이다. 왜 하필 지금인 건지, 한 해가 지난 오늘인지는 알지 못한다. 반드시 우연일 뿐이었다.
“…잠시 보고 와도 될까요?”
“노예 시장 말입니까?”
거의 홀린 듯 뱉은 질문에 연이 놀라서 물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나가는 대화에서 떠올려서는 안 될 것을 또 떠올리고 말았다. 품에 있는 가락지가 피부에 가깝게 닿는다. 그 생생한 감각에 가슴이 다시 저릿해졌다.
“부탁할게요.”
이 연이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혼자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연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이 연의 대답이 뭉그러진다.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얼마 안 가 이 연이 가마를 뒤로하고 내 앞에 섰다.
“제 뒤에만 계십시오.”
“네. 그럴게요.”
나는 연을 따라 시장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은 죄다 커다란 천막으로 만들어진 가게에 가 있었다. 노예 거래가 이루어지는 암시장이었다.
“…경매는 밤이 되어서야 열릴 겁니다. 지금은 구경만 가능하고요.”
“미리 경매에 오를 노예를 전부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일부 노예들은 따로 거래소가 있는 거로 알아요.”
연의 눈썹이 의미심장하게 휘어졌다. 그가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지 안다.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마땅히 변명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나조차도 내가 이러는 이유를 몰랐으니까. 희망은 이미 버린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묻어 놓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왜 다시 숨이 턱 막히는 걸까. 그를 잃었을 때처럼, 딱 그 절박한 마음만큼이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부율 님께 보고해야 합니까.”
“…아뇨. 아니에요.”
그런데 부율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차가운 물을 끼얹은 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잊어야 했다. 하지만 고개가 자꾸 천막 쪽으로 기웃거렸다. 연이 그 모습을 보고 낮게 한숨 했다.
“좋습니다. 대신, 잠깐만입니다.”
그에게 짧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됐다. 그저 확인뿐이다. 실망이라든지 절망 같은 감정을 느낄 리가 없다. 이미 몇 번이고 나락으로 떨어진 마음이 되살아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억눌러야 발이 움직여졌다.
이윽고 연이 내 앞에서 먼저 천막을 거두었다. 그가 만든 틈으로 들어가 발을 내딛자마자 콧속으로 악취가 들어왔다. 구역질이 일 것 같은 냄새였다. 나는 몇 번 콜록거리다가, 빛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끔찍하군요.”
이 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옷도 제대로 입혀 놓지 않고… 이게 가축우리가 아니면 무어란 말입니까.”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의 낄낄 웃는 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어조였다.
그때, 답답한 몽수 안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보라색이 눈에 띄었다. 긴장한 탓으로 손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그 순간, 몽수가 미끄러지듯이 내 손을 떠났다.
“수…….”
수오.
“아.”
하지만 선명해진 시야 속에 잡힌 것은 보랏빛 머리카락이 아니라 남자가 두르고 있던 거적때기에 불과했다.
“안 됩니다.”
이 연이 나를 제지한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몽수를 주워 다시 내 얼굴을 가렸다.
“이제 나가죠.”
아주 잠깐의 빈틈. 어두워져 가는 눈동자에 제대로 비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수오는 없다. 내가 줄곧 기다리던 그 사람은 없었다. 확인하고 나서도, 다시 절망이 찾아들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가슴이 툭 하고 무겁게 떨어져 내린다. 눈물이 흘렀다.
“…읏.”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나았을까. 그가 지닌 색채를 기억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밖을 나와서도 한참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고 싶어도 연이 내 뒤를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
“그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때, 우연히도 천막 뒤에 감춰진 어둠을 깨닫는다. 그 안에, 작게 난 다른 공간이 있었다. 확인해 볼 수도 있었다. 들어가, 다시 그가 있는지 기대해볼 수 있었다.
“…갈게요.”
하지만 나는 끝내 발길을 돌렸다. 다시 희망을 품기에는, 더는 아프기 싫었다. 기대하지 않으면 절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 믿고 연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둠이 그대로 나를 좇아오는 것 같았다. 나를 조여와 질식시킬 것 같았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식지 않은 그리움이 계속 한쪽 구석에 남아 있다는 것을.
* * *
“아이고, 나으리! 오셨습니까. 아주 잘 찾아와 주셨사옵니다!”
천막 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상인 한 명이 버선발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몇 번이고 굽신거리는 남자 앞으로 금색 삼(衫)을 입은 자들이 딱 둘 있었다. 남자들은 홱홱 고개를 젖히며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번뜩 선 네 개의 눈이 물건을 확인하기 바빴다.
“연회가 열린다고요! 이게 몇 년 만의 황궁…….”
“그 입 닥치거라. 아직은 비밀인 것을.”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만 들떠 버렸지 뭡니까. 저 같은 상것이 나랏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지요. 암요.”
남자들의 앞에는 헐벗은 자들이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대부분 여인이었지만 간혹 사내도 껴 있었다. 조용히 인원을 확인하던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상인을 호령했다.
“예! 나으리.”
“한 명이 비는데.”
남자가 턱으로 가리킨 자리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만 있을 뿐 인적이 없었다. 상인이 당황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 그것이… 한 년이 도망을 가버리는 바람에…….”
“스물이라 하지 않았더냐. 한 명이 비면 채워야 할 것 아니냐!”
“사, 사죄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한 명 더 대령하겠습니다.”
상인이 줄행랑을 치듯 바깥으로 뛰어갔다. 남자들이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상인은 경매가 열리는 천막 안에서 쥐잡듯 노예들을 살폈다. 이미 어둑해진 새벽이었다. 여인들은 귀족들에 모조리 낙찰되었고, 남창들만 남았다. 상인이 난처해하면서 개중 가장 어리고 고운 것을 잡아끌고 들어왔다.
“이, 이놈은 어떠십니까. 나으리.”
“사내냐?”
남자의 눈이 싸구려 무명천에 감싸져 있는 남창에게로 향했다. 비단 노예들이란 높은 것들을 보면 벌벌 떨기 십상인데 이놈은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날 선 눈빛으로 째려보니,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음에는 들었는데, 사내놈이라는 것이 유일하게 걸렸다. 남색 하는 자들이 궁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수는 현저히 적었다.
“계집은 없느냐.”
“주, 죽여주시옵소서.”
남자의 이마가 잠시 주름졌지만, 남창을 보자 다시 덤덤해졌다. 과연 미색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무릎을 꿇고 있는 계집 중에도 이자보다 어여쁜 자가 없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연보라색 머리칼이며, 다홍색 입술이라. 가슴만 있다면 여염집 여인이라 해도 믿을 외모였다. 몸에 단단히 붙어 있는 근육은 거슬렸지만, 조금 굶으면 문제없이 빠질 것이다. 남자가 눈을 빛내며 상인에게 고갯짓했다.
“벗겨 보아라.”
“아, 저, 그, 그것이…….”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상인은 주저하며 발만 동동 굴렸다. 제 앞에서 형편없이 쭈그러진 놈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남자는 인내심이 없었다. 남창을 가로막고 서 있는 상인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창놈 것의 깃을 쥐어 잡고 나서야, 좁혀진 미간이 풀어졌다. 남자는 남창의 새하얀 목덜미를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과연 입맛을 돋게 했다.
“아래가 더 궁금해지는군.”
남자는 그의 몸에 걸쳐져 있는 넝마를 있는 힘껏 아래로 끌어 내렸다. 순간 헉하는 상인의 신음이 들려 왔지만, 남자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남창의 허리를 손으로 쥐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남자의 이마에 늙은 주름이 진다. 마치 벌레를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재빨리 남창을 바닥으로 밀쳐 냈다.
“이 더러운 것은 무엇이냐!”
칼처럼 깎아진 돌부리들에 긁힌 남창의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신음 하나 내지 않고 묵묵히 참을 뿐이었다.
“그, 그것이 불이 났던 마을에서 데려온 아이라…….”
상인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남자를 향해 바싹 엎드렸다. 창고에 있는 것 중 미색으로 따지자면 최상품인 놈이 팔리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가슴 아래부터 시작해 옆구리까지 흉측한 화상 자국이 있었다. 피부가 완전히 재생하지 못해 붉고 푸른 혈관이 징그럽게 살 위로 비쳐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만지면 흡사 바싹 탄 시체를 만지는 것처럼 차갑고 끔찍했다. 곱고 부드러운 다른 피부 결들과는 달리 상처 부위만 죽어 있는 것 같았다. 한없이 공허해 보이는 눈처럼, 마치 몸조차 절반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당장 치우거라! 빌어먹을.”
“나, 나리.”
상인의 입술이 곤란하다는 듯 쭈그러든다. 이보다 나은 것을 찾기란 어려웠다. 이미 시간이 다 지나, 남아 있는 노예들도 얼마 없는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묘수를 떠올렸다. 결국 이놈을 팔아야, 이놈 배에 들어가는 애꿎은 밥값도 아낄 수 있지 않겠는가.
“야, 약속해 주신 값의 절반만 받겠습니다! 나리!”
“…절반?”
마른 손을 털어 내느라 바빴던 남자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의 귀가 쫑긋 서 있는 것을 상인이 눈치챘다.
“예! 그러겠사옵니다! 윗분들에게는 정(定) 값에 받았다고 하시고 나리 두 분께서 나눠 가지시지요.”
상인의 묘수가 척 맞아떨어져, 두 차비(差備)의 눈썹이 곧장 휘어졌다.
“벗기지만 아니하면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구, 구멍이라면 입도 있지 않습니까! 제법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황해서 어떤 말이 새어 나가는지도 모르고 상인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정답이었던 걸까. 남자의 시선이 다시 반라의 남창에게로 향한다. 피로 얼룩져 있는 상반신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옷만 그럴싸하게 입혀 놓으면, 하자가 있다는 걸 감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금화의 절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좋다. 전부 다 궤에 처넣어.”
남자의 명령에 상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노예들의 몸 구석구석에 연결된 끈을 거칠게 끌어당겨 커다란 궤에 한꺼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쓰러져 있는 남창의 몸을 일으켜 세워 빗장 안에 넣었다.
“딱 절반이다.”
남자가 바닥에 몇 안 되는 금화를 내던지며 침을 뱉었다.
“입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널 죽이러 올 것이니.”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나리.”
상인은 남자의 가래침이 묻은 전(錢)을 마른 바지에 닦으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본래부터 두 배의 가격을 불렀었으니, 제값에 주고 판 꼴이었다. 남자가 관에 있느라 시장 가격을 몰랐기에 다행이었다. 상인은 괜히 오싹한 마음이 들어 제 목을 한 번 긁적였다.
“이제 황궁으로 출발하지.”
두 차비의 눈짓에 상인이 눈치껏 길을 비켜나며 허리를 숙였다. 세 필의 말이 발을 내딛자 바퀴가 달린 궤짝이 서서히 움직였다. 바깥은 아직 새벽빛도 밝아 오지 않은 컴컴한 어둠뿐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예들의 눈빛이 조용하게 사그라든다. 여정은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 * *
호연에 다다른 것은 출발한 지 사흘째가 되는 밤이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아버지의 집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괜히 울컥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이 연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어떤 것이라도 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마당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내일 밤, 황궁에 들어가실 겁니다.”
“…….”
피로에 잠긴 연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거칠었다.
“말을 삼가시고, 어떤 행동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작게 끄덕이며 어두움 속에 더 검게 칠해진 연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저의 제자를 향한 충정. 그러나 그런 제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나를 향한 혐오도 비쳐 보였다. 주눅이 든다. 반정은 성공할까. 그것 역시 내 행동에 달려 있다는 것이, 서늘하다.
“혼례는… 언제인가요?”
“보름이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저는.”
입에서 나온 말이 완성되지 않은 채 끊겼다. 이 연이 떨고 있는 내 손을 눈치챈 것인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감기다가, 다시 차가운 말이 쏟아졌다.
“도망가진 않으시겠지요.”
나를 의심하고 있는, 혹은 책망하는 어조였다. 이제는 도망가지 않는다. 죽기 위해, 혹은 그리운 것을 좇기 위해 부율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조금이라도 계획과 다른 행동을 하신다면 부율 님이 위험해집니다. 아마 살아남지 못하실 겁니다.”
“…알고 있어요.”
나는 달포 전 이 연에게 들었던 계획을 떠올렸다. 혼례식 전날 밤, 황궁에서 큰 연회가 열릴 것이다. 모두가 술과 미약에 취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때쯤, 내전에서 잠이 든 황제를 친다. 연회가 무르익고 해가 뜰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시진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부율이 황좌(皇座)를 차지해야 했다.
“연회는 회락루(會樂樓), 오율궁(娛率宮), 그리고 누룩 님이 계실 연궁(蓮宮)에서 열릴 것입니다. 그중 연궁이 가장 내전과 가까우니 제일 먼저 통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모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연궁의 사람들은 바깥으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 안에 있던 귀족들은 물론이고, 연회를 돕는 궁녀들과 노비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사살된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 그를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은 간단했다. 침묵이었다.
“죄 없는 것들의 죽음이라 슬프실 수도 있겠지만, 필연적인 겁니다. 부율 님이 선택하신 이상,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연의 어깨 역시 떨리고 있었다. 분명 살생을 가르치지 않았을 스승이었으나, 옛 제자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가까이하겠다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무서웠다. 가문을 위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믿고 투자한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연궁을 장악한 뒤에는 바로 내전으로 들어갈 겁니다. 반정이 성공하면 회락루에 있는 종이 울릴 거고요. 그때가 되면…….”
“…….”
“옷을 갈아입으신 뒤 부율 님이 계신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공주는 연궁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죽었다고 선언될 겁니다.”
공주는 죽는다. 가짜 공주가 아닌, 누룩이라는 이름 그대로 부율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아버지가 황후의 친정 가문으로서 입궁하기 위함이었다.
“은장도입니다. 궁에 계실 때는 제가 지켜 드릴 수 없으니 항상 소지해 주십시오.”
나는 이 연이 내민 은장도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날붙이는 부율에 의해 모조리 금지당했을 터인데, 이제는 안전을 위해 가지고 있으라 한다. 황궁으로 떠난다는 것이 문득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연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날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네.”
건조한 대답에 더 이상 다른 대화는 없었다. 이 연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천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에 고개가 위로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부율 님 곁을… 지켜주십시오.”
이 연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등을 돌려,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가슴에 먹먹함이 드리워진다. 울음소리 하나 나지 않아도 창호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위로된다.
부율을 떠나지 않는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수오를 잊었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나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여 수오를 찾고 있는 걸까. 자꾸만 그의 그림자를 좇고, 그가 준 선물을 놓지 못한다. 나는 품 안에 든 작은 가락지를 꺼냈다. 이것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그저 가슴 안쪽에 넣어 두고 있었다.
잊어야 한다. 잊을 수 있다. 결심에 금이 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눈을 감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흘렀다. 향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쯤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내게 나타나 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만일 그의 얼굴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내 안에서 이제는 흐릿해진 그의 환한 미소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나는 다른 것을 결심할 수 있을까. 떠다니는 마음을 이제 하나로 붙잡을 수 있을까. 밤이 깊어진다. 그리움처럼.
* * *
추비관(醜卑館).
비천하고 추한 것들이 모였다는 의미의 행랑채는 황궁에 기거하며 궁녀들과 관료들의 잡일과 시중을 드는 관노비들을 위한 곳이었다. 황제의 명으로 연회가 열릴 동안 비워진 이곳은 당분간 성노예들로 채워질 것이다. 차비 두 명이 외곽의 노예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명의 노예들도 오늘부터 이곳에 기거할 예정이었다.
“연궁에 넣을 노예들은 어찌 뽑으실 겁니까?”
“흠…….”
내관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연궁은 공주마마를 위해 준비될 것이다. 10년이 넘게 병약했던 공주가 처음으로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니, 최대한 폐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해선 안 됐다. 그래서 애초부터 학식만 탐하여 얌전한 양반들로만 초대해둔 터인데, 성노예랍시고 데려온 이것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내관은 어젯밤에 들어와 단장을 끝낸 노예들을 다시 찬찬히 훑었다.
“점잖은 여인들을 연궁에 넣거라. 소란을 만들어선 아니 된다.”
“헌데… 여인의 수가 부족합니다. 폐하께서 따로 빼놓으라던 여인들이 많아…….”
방의 한쪽 구석에 폐하께서 점찍은 여인들이 한 데 줄을 이루고 있었다. 내관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진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미색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폐하의 눈이 너무 정확했다는 것이 문제였을까. 내관은 다시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놈은 무엇이냐.”
그의 눈에 띈 것은 남들과 달리 다소 두껍게 옷을 챙겨 입은 사내였다. 여인이 아니라 사내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연궁에는 공주를 비롯해 초대받은 여식들도 참석할 것이기에 남자 몇 명쯤 들인다고 하여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게다가 남색을 즐기는 양반 한두 명을 넣으면 수도 제법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남창 노릇을 하던 놈이라고 합니다.”
“좋다. 이놈을 포함해 옆에 있는 남자 둘도 연궁에 넣거라.”
“예. 그러겠습니다.”
은처럼 빛이 나는 머릿결에 여인보다 곱상하게 생긴 미모라. 내관들의 눈동자가 사내에게서 쉬이 떼어지지 못하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내관 한 명이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이름을 물었으나,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게 눈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바다색처럼 푸른 눈동자임에도 그 속에서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
“폐하께서 남색을 하셨다면 귀비가 될 상이로다.”
“…….”
“이번 연회에서 잘만 하면 양반 한두 놈은 꾈 수 있을 텐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달콤한 말을 흘려 보지만 남자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다 죽어 가는 눈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면 귀족들에게 실례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주 옆에 앉히는 것이 나을까. 어차피 아무 힘도 없이 단지 혼례를 위해 움직이는 수(蒐)에 불과하니 별문제 없을 것이다.
“이 녀석은 공주마마 옆에 모시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공주라는 말에도 사내는 난색을 보이지도, 미간을 좁히지도 않았다. 무색무취의 표정. 그러나 다 꺼져 가는 빛이라도 여전히 사내의 얼굴은 눈이 부셨다. 내관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추비관을 돌아보다가 밖으로 나섰다. 관료들이 나간 추비관 안에서 노예들 사이로 작게 말소리가 오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내는 지그시 눈을 감을 뿐,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 * *
중제연(中諸演).
황제는 문호를 열고 들어오는 나인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가장 끝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계집을 발견하자, 허리가 절로 움직여지더니 금세 자리를 박차고 우뚝이 섰다. 그토록 기다렸던 계집이었다. 부율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고 자신의 밑에 영원히 박아 놓게 할 애지중지. 과거 제 딸의 마지막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고아. 그 얼굴을 목도 하니 과연 이제껏 봐왔던 기생년들과는 다른 기품이 있었다.
“폐하. 공주마마이십니다.”
계집 양옆으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던 나인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계집도 조금 느릿하긴 했지만 어색하게나마 자신에게 허리를 굽힌다. 황제는 당장에 황당(皇堂)에서 내려와 조금이라도 계집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칠한 것이냐? 얼굴이 고와 보이는구나.”
“황송하오나 폐하, 공주님께서는 아직 세신밖에 하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궁녀들의 시중을 받아 나신인 채로 몸을 닦았을 계집을 상상하니 아랫도리가 벌떡 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딸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예전에 고문을 받아 울며 비명을 질렀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역시 제법이었다. 황제는 선정의 지극한 충정에 그제야 감탄했다. 이 정도로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으니, 그에게는 마땅히 원하는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네 이름은 알고 있느냐?”
황제는 앙증맞게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계집을 향해 질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서운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두려운 것인지 자신의 시선을 감히 받들지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평소 다른 궁녀가 저의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말수가 없는 모습도 순종적인 쥐새끼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퍽 느슨해졌다.
“호수 호(湖)에 옥 소리 령(玲)이라. 너는 호령 공주다.”
“…….”
자신의 곁에서 빌빌대던 전(前) 황후가 하사한 죽은 공주의 이름이었다. 고아인 주제에 뜻 좋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꼬. 황제는 멋대로 생각한 제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면 계집의 입가는 여전히 굳어 있어 옆에 있던 나인들마저 당혹스럽게 했다.
“폐하. 공주마마께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않으시어…….”
우스운 소리였다. 저들도 어렴풋이 계집이 가짜 공주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혹여 진정 짜놓은 이야기를 믿고 있다고 한다 해도, 다홍색으로 밝게 달아오른 계집의 두 뺨을 보고 그 누구도 병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계집이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으니까.
“일순(一旬) 뒤 너와 부율의 혼례식이 있을 것이다.”
“…….”
“초야를 치를 준비를 해두거라.”
황제의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서 빨리 신방에 들어가 두 사람이 치를 정사를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질척한 교합을 생각하니 개구리 배마냥 튀어나온 뱃살 아래로 자지가 껄떡거렸다. 나인들이 그를 눈치채고 하나같이 시선을 돌리는데, 황제는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여전히 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예법이란 예법은 죄다 까먹은 모양이구나.”
“마, 망극하나이다. 폐하.”
“나인들이 망극할 필요가 있나. 어디 읍례(揖禮)부터 다시 가르치시게나.”
황제는 손짓으로 나인들과 계집을 물리도록 하곤 널찍한 보료에 누워 밖으로 나가는 계집의 엉덩이를 지그시 노려봤다. 군침이 돌았다. 어느덧 황제의 머릿속에는 제 딸을 닮은 저 계집을 어떻게 겁탈할까 하는 궁리만이 맴돌았다.
* * *
중제연을 나와 시중을 드는 궁녀와 단둘이 되자,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1년간 이 순간을 위해 이 연과 몇 번이고 함께 연습했건만 막상 현실에 닥치자 입조차 열리지 않았다. 커다란 궁이 몇 채씩이나 가로 세로로 즐비해 있는 풍경을 보니 자연스레 어깨가 짓눌린다.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위압감이 든다. 비틀거리는 형색을 눈치챈 것인지 궁녀가 내 팔을 부축한다. 바닥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공주마마.”
나지막한 궁녀의 목소리에도 도움을 구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 궁에서 누가 나의 편이고 적인지 알 수 없었다. 부율과 아버지의 계획은 아직 전부 내게 전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답답했다.
“연궁에 가시기 전에 예당(禮當)에 들릴 것인데, 괜찮겠사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 느렸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조금이라도 황제에게서 멀어질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사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니, 점점 뚜렷해졌다.
“추비관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내 걸음이 유난히 느려졌다는 걸 알아차린 궁녀가 소리가 나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연회 노예들을 교육하는 중일 겁니다. 연궁에 들어올 노예들도 있을 텐데,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연궁에 있는 노예들과 양반들은 모두 무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이유도 없이 단지 입막음을 위해 사라질 생명이었다. 나는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고 발길을 돌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죄책감이 돋아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겁쟁이처럼 뒤를 도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시 예당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황궁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 * *
누룩을 궁으로 보내고 난 뒤 부율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못했다. 걱정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혹여나 불충한 황제가 그녀에게 일찍이 손을 댈까 두려웠으며 그녀가 홀로 외로움을 느낄까 봐 조급했다. 들려 오는 소식으로 그녀가 예당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궁하여 그녀의 안위를 직접 확인해야 안심될 것 같았다. 이 연은 그런 부율에게 자칫 말실수라도 할까 싶어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자신들이 세운 ‘그 계획’에 달려 있다.
“훈묵에게는 제대로 전달하였느냐.”
이 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사 훈묵이 고용한 궁녀가 황제의 술잔에 마비산을 떨어뜨릴 것이다. 향기가 없으니 들킬 염려는 없었다. 그 뒤 내전으로 황제를 데려가 마지막으로 부율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황실 친위 부대인 용장군의 서 철휘가 제 편에서 도울 것이다. 그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내전으로 향하는 길은 열려 있을 것이고 부율은 무리 없이 잠이 든 황제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율은 서 철휘를 믿지 않았다. 선정의 수하인 그를, 과연 마음 편히 믿을 수 있을까. 이 연 역시 부율과 같은 생각이었다.
“서 철휘는 어찌하실 겁니까.”
“아마, 약속대로 내전으로 가는 길은 그자가 정리해둘 것이다.”
“믿으시는 겁니까.”
“아니. 믿지 않아. 하지만.”
부율의 입술이 비소로 으끄러졌다.
“나를 배신할 요량이라면 당연히 사람이 없는 내전으로 유인하겠지.”
부율은 일찌감치 선정이 섭외한 자를 믿지 않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선정의 꿍꿍이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온전히 황제 위(位)로 올릴 리가 없었다. 그래서 반년 전부터는 선정을 뒤로하고 또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폐하는 내전에서 자신의 손에 끔찍하게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전에,
“서 철휘부터 죽일 것이다.”
이 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부율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서 철휘 그자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고개를 젓는 이 연을 보며 부율이 계속 말을 이었다.
“자기 부하랑 바람이 난 부인이지.”
“예? 정말입니까?”
“그래. 재가(再嫁)하고 싶어 하기에, 반년 전부터 치독(置毒)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하!”
어이가 없어진 이 연이 할 말을 잃고 그대로 혀를 둘렀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제 부인에게 당할 줄이야. 치독이라면 어떤 독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슬슬 몸 안에 쌓인 것이 폭발할 때였다. 설마 날짜 계산까지 하면서 계획했을까. 부율의 정보력에 감탄하면서도 이 연의 등 뒤가 사뭇 으슬으슬해졌다.
“칼 한 번 찔러 보지 못하고 내게 목이 베일 것이야.”
부율의 입가가 으쓱 올라갔다. 서 철휘가 내전을 안내할 때 가장 먼저 그의 목을 베고, 폐하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율의 계획이었다. 본래 같았으면 군장인 그를 이기지 못할 터. 하지만 치독을 당한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이 연. 너는 반드시 누룩을 지키거라.”
“예. 말씀하신 바대로 연궁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여전히 걱정을 떨쳐 내지 못하는 부율에게 이 연이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연회가 시작하고 한 시진 후에 반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 시간 전후로 이 연은 누룩 곁을 지키면서 반정을 지휘해야 한다.
“…날이 밝으면 폐제(廢帝)를 알리고 어극(御極) 1년임을 언표하는 종을 칠 것이다.”
아직 피도 마르지 않는 시체. 피 웅덩이. 죄 없는 자들의 억울한 죽음. 어전을 때리는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겠지만 부율의 시선은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이유는 누룩이었다. 자신이 황제 위에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를 황후에 올리고 자신의 아내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소자(小子)는 반드시 성군이 되실 겁니다.”
부율은 이 연의 말에 눈을 감았다. 안개 핀 풍경 속에서 누룩이 자신을 부르는 율조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웠다. 그래서 더 그녀를 잡아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는 자신을 떠날 수 없도록. 이번 생이 계속되는 한, 영원히.
* * *
삼하(三夏)의 마지막 달, 황실의 가취지례(嫁娶之禮)를 기념하는 연회가 시작되었다. 연궁에서도 아침부터 공주의 단장을 위한 준비로 어수선한 행렬이 계속되었다. 면약(面藥)을 바르고, 눈썹은 버들잎처럼 부드럽게 칠한다. 홍조가 오른 두 뺨은 복사처럼 옅은 빛으로 반짝이도록 곱게 빻은 분대를 발랐다. 복장도 연회에 맞춰 지금껏 입어 왔던 복식과는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궁녀들의 차림처럼 가슴을 드러내되, 화려한 무늬는 피하고 안개처럼 옅은 비단을 걸쳐야 했다. 또, 황족의 품귀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적색의 요대(腰帶)를 두른다. 삼의 자락이 바닥을 끌 정도로 풍성하고 길었으나, 궁녀들의 도움으로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거울 속에는 어느새 완전히 다른 내가 비추었다.
“공주마마. 초야 전 마지막 밤이니 원하시는 것이 계시면 명하여 주시옵소서.”
“…원하는 것이요.”
“금은으로 만든 영락도 좋고, 밤에 부릴 노예도 괜찮습니다.”
초야 전 마지막 밤. 신부가 될 공주는 다른 규수들과 다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남자와의 합방이어도, 황실의 영(令)으로 배려되었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평범하게 요구해야 했지만, 어떤 욕구도 일지 않았다. 그저 손에 쥐고 긴장을 풀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을 것 같았다.
“…얼음을 가져다주세요.”
궁녀가 알겠다고 짧게 대답한 뒤 물러갔다. 단지 차가운 얼음을 만지는 것으로 식은땀이 가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겨우 혼자 남게 되자 아까 전 챙긴 은장도를 확인한다. 속적삼에 감춰 넣고 끈으로 고정해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곤 사용할 기회가 없으리라 빌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부율이 선물한 반지를 경대에서 꺼냈다. 내일 있을 혼례는 취소되겠지만, 그가 황좌에 오르면 평생을 익숙한 듯 끼우고 있어야 할 보석.
그리고 내 반대쪽 손바닥 안에는 그보다 가벼운 옥가락지가 있었다.
“…….”
나는 열린 경대 밑으로 부율과의 약속이 담긴 반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황금색으로 펄럭이는 비단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옥가락지를 오른손에 끼웠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싶었다. 소유하지 못한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수오를.
“공주마마. 들어가겠사옵니다.”
어느새 궁녀가 얼음이 담긴 주머니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내방을 허하자 차가운 얼음이 손에 잡혔다. 동시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그의 흔적이 낮은 온도로 내려간다. 시원한 기운이 온몸에 잡힌 땀을 사그라들게 해주었다.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 * *
추비관.
“연궁으로 가는 노예들은 공주마마를 가까이서 모시게 될 것이다. 눈을 절대 마주치지 말고, 요구가 있을 시에만 고개를 들어야 할 것이다. 또, 악대는 수시로 소제와 관약을 풀거라.”
연궁의 연회를 장관 하게 될 주내관과 나인들의 긴장한 목소리가 주벽(主壁)까지 뻗쳤다. 시전(市典)을 뒹굴던 노예들의 몸뚱이가 깨끗이 단장되어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고운 얼굴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멀리서 지켜보는 내신들의 목구멍에도 침이 고였다. 연회를 찾는 양반들의 아랫도리가 부러워지면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공주마마가 원할 시 너희들은 바지를 벗고 열심히 시양해야 함을 기억하거라.”
곧, 주내관의 시선이 남창들에게 옮겨진다. 배정한 세 명의 사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창놈이었다. 투명한 비단결로 비치는 뽀얀 어깨에 눈과 입술이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괜히 남부끄러워진 주내관이 서둘러 눈을 돌렸다.
“한 시진 후에 이동할 터이니 준비하고 있거라.”
노예들에게 마지막 남은 휴식 시간이었다. 내관들과 나인들이 흩어진 곳에 드디어 노예들과 악대들만 남았다.
“저기.”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남자 노예 하나가 자신과 같이 들어갈 연궁의 노예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까지 주내관이 힐끗힐끗 탐을 내던 남자였다. 무슨 사연이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아름다웠다.
“너도 공주마마 옆으로 가지? 여자는 오랜만이라 긴장되네.”
“…….”
본디 사내들을 상대하는 남창 것들이란 엉덩이를 내밀어야 했다. 좀처럼 성기를 사용할 일이 적은 그로서는 여자들이 껄끄러웠다. 어떻게 상대해야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는데 상대가 공주마마였다. 고작 연회 하룻밤을 위해 끌려온 노예 입장이더라도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을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근데 어디서 왔니? 남자를 상대하는 창관이 몇 없을 텐데 넌 처음 봤다.”
아무리 주절거려 보아도 반응이 오지 않기에 다른 질문을 던져 봤지만, 여전히 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마음이 열릴까 싶다가 일전에 지나가던 나인들이 속삭이던 말이 떠올라 무심코 입 밖에 냈다.
“연회 다음 날이 공주마마 혼례라던데…. 상대가 사도 가의 부율이라고 했나.”
그때, 처음으로 남자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날 선 눈빛만 노예에게 향한다. 푸른 눈동자, 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이 깊었다.
“어… 부율 님이라고.”
노예의 재언에 남자의 눈이 커진다. 아무 감정이 없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도 같았다.
“…….”
그러나 잠시 뒤, 남자의 시선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뜨거웠던 눈이 다시 식는다. 차가웠다.
“부마는 생기시겠지만, 공주마마께서 혹시 첩이라도 받아 주실지도 모르지.”
노예는 그것이 실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저 실망이었다면 어찌 눈이 저리도 메말라 있을까.
남자의 마음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옛 정인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애타는 죄책감. 그녀가 불길과 함께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부율의 혼인은 우스운 것이었다.
‘결국… 공주였군.’
자신에게서 그녀를 빼앗으려 했던 남자가 선택한 길이,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천박했다. 1년 동안, 자신이 그녀를 찾아다녔던 그 절박함이 그놈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이제는 죽어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그에게, 부율의 혼인은 잠시 남아 있던 희망마저 꺼트렸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부율이 과연 부마도위에 오를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까,
절망 속에서 가슴이 절절해진다.
* * *
해시(亥時)였다. 초대받은 궁으로 향하는 양반들의 생김새는 퍽 상이하다. 음탕한 놀음을 하러 온 자들은 황제가 있는 오율궁으로 향했으며, 자격에서 밀려난 자들은 회락루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황제의 명으로 연궁에 초대받은 귀족들도 있었다. 병상에서 회복한 다음 날 정해진 혼약자와 백년가약을 맺는 호령 공주를 보겠다고 문무반을 가리지 않고 수도와 지방에서 올라왔다. 그들은 공주가 고아였다는 사실을 알까. 사실은 창관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모반에 가담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을.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난잡한 이곳에서, 맑은 수룡음이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공주마마께서 납시옵니다.”
바닥에 끌리는 비단 자락을 궁녀들이 한 손씩 잡고 문을 열었다. 얼굴을 가린 새하얀 너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포진(鋪陳)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무동들의 춤사위가 시작됐다. 앉아 있는 양반들 옆으로 기녀들이 자리해 몸을 가지런히 했다.
“경하드리옵니다. 공주마마.”
양반들이 예를 다해 무릎을 굽히고 가슴을 바닥까지 내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도 입술을 물고 조용히 관망했다. 술잔들이 어지러이 깔리고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 기녀들의 음색한 차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도록 환한 이곳은 곧 비명으로 가득 찰 것이다. 끔찍한 상상 속에서도 관조하는 스스로가 소름 끼쳤다. 피할 수 없으니, 죄악을 느낄 겨를도 없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술잔을 들어 화응(和應) 하셔야 하옵니다. 공주마마.”
옆에서 궁녀 한 명이 속닥인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붉은 술잔을 응시했다. 이제 한 시진쯤 남았을까. 양반들이 석 잔의 술을 기울이기도 전에, 그 잔 속으로 피가 고일 것이다. 시야가 아득해진다. 마른 긴장을 억지로 삼키기 위해서라도 술을 마셔야 했다.
“…….”
술은 달았다. 조당을 넣어 쓴맛을 감춘 것인지 모르겠지만, 입술 끝에 닿은 붉은 맛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양반들은 하나둘 기녀들의 치마 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직 술에 취하지도 않았을 텐데, 저들 눈에 폐하보다 어렵지 않은 공주가 있으니 손짓이 가벼이 날아다녔다.
“공주마마. 추비관에서 온 노예들을 들이겠사옵니다.”
궁녀들의 손짓에 장지가 열리고 노예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중 대다수는 양반들의 무릎에 앉았고, 몇 명은 내가 있는 포진까지 걸어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간악한 죄책감에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아, 그들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웠다. 타의로 끌려와 아무것도 모른 채 반역에 엮여 들어야 하는 처지가 자신의 처지인 것처럼 아려왔다.
“공주마마. 모시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세 명의 사내 중 한 명이 술병을 들어 비어 있는 잔에 적주(赤酒)를 따랐다. 사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가련한 몸짓이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이 하는 목소리가 나를 비겁하다고 두들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손을 뻗어, 잔을 든다. 입술에 가져다 대고, 향기가 나는 술을 삼켰다. 감은 눈꺼풀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고, 소리만 크게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떤 손길이 급하게 내 손을 잡았다. 흔들리는 시야에 처음으로 사람이 선명히 비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색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 좀 더 야윈 몸. 이윽고 남자의 손이 내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옥가락지에 닿았다. 날 붙잡고 있는 그 고운 손목에서 익숙한 향기가 흩날린다.
“아…….”
거짓말이다. 그가 내 눈앞에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있던 너울을 벗겼다. 순전히 남자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위해. 그 보랏빛은 몹쓸 천에 불과할까. 색을 착각한 걸까. 바보 같은 행동이었을까. 하지만, 열린 시야에 담긴 것은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오의 얼굴이었다.
“어찌 네가…….”
그의 눈이 붉어진다. 시간이 멈춘 듯 서로 아무 말도 함부로 읊을 수 없었다. 그때, 자시(子時)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반정이 예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