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6. 방화 (6/18)

Chapter 6. 방화

부율의 고백 이후로 사나흘이 지났다. 기억은 여전히 되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그의 얼굴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다 알지 못했다. 그가 왜 수오 님이 아닌 내게 고백을 한 것인지, 왜 나를 품은 것인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혼란스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이토록 달라진 이야기에 안심하고 마는 스스로가 지독했다. 남자가 수오 님이 아닌 나를 안아서, 그가 더럽혀지지 않아서. 그래서 아직 소설이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기뻐하고 있었다.

재색의 하늘이 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부율의 발걸음 소리가 방앞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때에도 나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간밤에 수오 님 방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에 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나 때문에 깬 것이냐.”

방에서 나와 있는 나를 보고 그가 미간을 좁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은…….”

“어제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었다. 설마 나를 기다린 것이냐.”

남자의 눈이 빛났다. 들짐승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인말(寅末: 오전 다섯 시)인데도 그의 목소리만 유독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아차 싶어 남자를 올려다봤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아까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더니 금세 눈이 진지해져 있었다.

“처음 봤구나. 그렇게 웃는 건.”

“아…….”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더 자주 웃어다오.”

그가 내 허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그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남자는 내가 조금 전 취했던 미소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똑같은 웃음일 텐데 그의 눈동자가 좀 더 탁해 보이는 건 왜일까. 이윽고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얇은 저고리 매듭이 아슬아슬하게 풀려 있었다.

“춥겠구나.”

쌀쌀한 봄바람 때문인지 젖꼭지가 천 위로 바싹 솟아올라 있었다. 남자의 손끝이 매듭으로 향했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풀어내며 공기 중에 튀어나온 젖가슴을 감상했다.

“따듯하게 해줄 테니, 안기거라.”

“자, 잠시만요.”

그제야 남자가 하려는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남자는 단단했다. 뒤로 전혀 물러서는 기색 없이 그대로 내 젖꼭지를 한입에 물었다.

“아응!”

“가엾게도 찬 바람에 얼어 있었구나.”

그는 내 양 가슴을 붙잡은 채로 나를 서서히 뒤로 밀었다. 결국, 등 뒤로 창호 문이 맞닿는다.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남자의 앞에서 맨 가슴을 내보여야만 했다.

“맛있어 보이는구나. 과즙이라도 나올 듯이 젖꼭지가 부풀어 있어.”

남자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혹시나 모를 침입에 방어하기 위해 허벅지를 모았지만, 남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내 두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내 팔을 위로 올려 벽에 붙였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모두가 깨어날 거다.”

“…아!”

그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입술을 열었다. 다시 그 뜨거운 입김이 내 젖꼭지에 닿았다. 혀를 내밀어 붉게 서 있는 정점을 핥는다. 그렇게 몇 번을 뾰족한 혀끝으로 애무하다가, 안달 난 사람처럼 입안 가득 젖을 베어 물었다.

“읏……!”

남자의 입술 안이 유난히 뜨거웠다. 젖 빠는 소리는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아직 조용했지만, 곧 모두가 깨어날 시간이기도 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 와중에 남자는 내 양쪽 젖을 번갈아 빨아 대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얼마나 빨았는지 젖꼭지가 새빨개졌구나. 보나 마나 아래도 난리가 나 있겠어.”

“하… 응…….”

“치마를 들쳐 보아라.”

남자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고요히 내 귓가에 속삭일 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거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기다렸다. 팔을 강제하고 있던 힘을 풀어 놓은 채, 적당히 그의 우리 안에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바란 대로 치마를 위로 들어 올렸다.

“어여쁘다.”

그의 손이 예정된 순서였던 것처럼 음부로 향했다. 젖어 있는 문을 열고 그 사이로 중지를 집어넣었다. 아래에서 위로, 그의 손이 요란하게 들썩거렸다.

“아흐으… 응!”

“아래에서 쑤셔주니 손바닥 위로 보짓물을 흘리는구나. 얼마나 질질 쏟을 셈이냐, 응?”

그가 가볍게 내 귓불을 씹었다. 들켜선 안 될 행위를 하는 탓인지, 몸은 정말이지 금세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환희를 맛보기 위해 다리를 넓게 벌렸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더 밀어 넣었다.

“아으흑!”

“이 물보지가 제일 맛있구나.”

어느새 부율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수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낯간지러운 입김이 여린 살점을 스친다.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벌린 다리를 오므리려 발을 움직였다. 그때 부율의 고개가 내 허벅다리 사이에 들어왔다. 그는 커다랗게 성기를 세우고는, 그 상태로 벌려진 소음순을 남김없이 흡입했다.

“으으읏! 부, 하읏, 부율 님.”

그는 혀를 질 안에 넣고 붉은 살점에 맺혀 있는 애액까지 탐했다. 어떻게든 소리를 죽여 보려고 입을 막아 봤지만, 시선 아래로 펼쳐지는 음란한 광경에 자꾸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입가 주변에 묻어 있는 끈적한 애액이, 그리고 내 보지를 핥기 전부터 세워져 있던 우람한 그의 물건이, 견디기 힘들 만큼 음탕해 보였다.

“하, 읏…….”

“구멍이 벌름거리는 게 귀엽구나. 굵은 것을 꽂아달라는 듯 애원하고 있지 않으냐.”

구멍 밖으로 혀를 빼낸 그가 이번엔 혓바닥을 넓게 내밀어 음순부터 앞부분까지 살살 핥았다. 그러다가 두 손가락을 구멍 안에 넣고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흐으윽!”

앞부분은 그의 혀로 적셔져 가고 있었고, 뒤로는 그의 손가락으로 범해지고 있었다. 그는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의 품 안에서 언제 무너져 내릴지.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며 나의 감각을 시험하고 있었다. 점점 버티기 힘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쥐며 호소했다.

“흑… 제발.”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제발…….”

내가 원하는 것…. 시야에 그의 발기한 성체가 들어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저항도 없이 나는 손을 뻗어 그의 것을 어루만졌다. 그의 미간이 좁아지며,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찡그린 얼굴에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짜릿했고,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원해요…….”

단조로운 한 마디에도 부율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나를 들어 올렸다. 그의 품 안에, 작은 몸이 한 번에 담긴다. 그는 문을 열어 나를 방 안에 밀어 넣었고,

이내 문이 닫혔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불 위로 그가 나를 이끈다. 내 발목을 붙잡아 천장 위로 올리며, 그의 맨 성기를 꺼내었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그가 내게 속삭였다.

“가져다주겠다.”

나는 내 안에 들어오는 그의 물건을 느꼈다. 그의 것은 괴물처럼 질 안을 돌아다니며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나를 미치게 했다. 부율이 내게 주는 쾌락은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나는 남자의 몸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그 시간들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부율이 아니었다. 창백해 보일 만큼 새하얀 피부, 가느다란 손,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목소리, 나의 아래를 핥으며 자위하던 몸짓.

나는 부율을 안으며 수오 님을 상상했다. 그의 자위를. 내 밑에서 흘리던 그의 신음을 상상했다. 그렇게 머지않아 절정에 다다를 수 있었다.

* * *

나는 바닥에 누워 옆으로 길게 뻗은 검은 머리카락을 본다. 내리쬐는 아침 해를 맞아 연분홍색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의 색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기이했다. 몸도, 더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부율의 사정을 받아내며 환희를 지르던 것이 정말 나였을까. 나는 정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불을 보며 습관적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감각은 위에서 저 밑까지 떨어져 갔다.

“…처음 꿈을 꾼 것은 열두 살 때였다.”

그는 내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포단을 몸 위로 덮었다. 남자는 여전히 천장 위를 보고 있었다.

“매번 똑같은 내용이었어. 바꾸어 보려고 해도 시간이 멈춰있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

그가 이불 안에 있던 내 손을 잡았다.

“꿈속의 나는 언제나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어조로 말했지. 매번 등장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했었다.”

“…….”

“그런데도 버려질 것 같았지.”

부율이 허탈하게 웃었다. 꿈속의 자신을 책망하듯이. 막연한 것들을 좇았던 자신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는 무엇을 안타까워하는 걸까.

그의 꿈속…. 나는 그에게 묻기보다 내가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도 비슷한 것들을 본 걸까. 과거의 것들. 혹은 간절히 바라던 것의 실체를.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그가 옆으로 돌았다.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마치 그의 꿈 이야기에 담긴 것이 나인 것 같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어.”

젖어 있는 목소리 때문일까. 그의 눈이 쓸쓸하게 보였다. 그 속에 내 얼굴이 꽉 차 있어도, 그는 여전히 혼자인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다가 나의 맨살을 끌어안았다. 그 따듯한 온도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나는 그를 경청했다.

“누룩…. 내가 너를 연모하는 것은 네가 그 꿈속의 여자와 닮았기 때문이 아니다.”

“…….”

어깨가 한순간에 뜨거워졌다. 어깨에 동그랗게 그의 흔적들이 떨어진다. 그의 눈가 역시 똑같은 온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꿈을 꾸고, 괴로워했으니까. 그리고 매번 그 기억을 잃고 말았으니까. 사라지는 자신의 기억을 좇고 싶은 마음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었어.”

일순 눈이 커다래졌다. 부율은 내가 그를 예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난폭한 성정과 생김새. 그 차가운 말투까지도. 나는 그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묘사된 전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그는 손으로 내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성교로 엉망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볼품없는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겼다.

“네가 나를 믿어주리라는 것을.”

“…….”

“누룩. 너는 나를 믿어줄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부율을 믿고 있었다. 그를 믿지 않으면, 내 세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 세계에서 수오 님과 함께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과연 그가 말한 것과 같은 믿음일까.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부율 님.”

나는 천천히 그를 밀어냈다. 까슬까슬한 면모에 맨피부가 쓸리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들렸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지금… 말이냐.”

“수오 님이 저를 기다리실 거예요.”

부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너는 여길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냐.”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바닥을 짚은 손 위로 부율의 체온이 덮쳐온다. 내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그놈 옆을 그리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냐.”

“…….”

거칠게 내뱉은 말과는 달리 부율은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의 눈동자가 바삐 흔들렸다. 나는 그의 손을 놓으며 그의 눈 아래를 응시했다.

나와는 다른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율은 내 작은 시선에도 동요했으며 다시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차분하게 입술을 열었다.

“단 한 번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부율이 이곳에 등장하기 이전에도, 나는 이곳이 내 세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깨어나 보니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던 공간.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수오 님과, 눈앞에 있는 부율이 주인공인 세계관 안에서 나는 도망칠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결국 정해진 이야기대로 서로를 만났다. 그러니까, 앞으로 소설 내용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떠날 수 있는 걸까. 눈을 가리고, 보지 못한 척하며 무의미한 역할로 숨을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있고 싶어요.”

적어도, 그가 나를 완전히 외면할 때까지. 그가 부율을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 두 사람이 이어지기 전까지만이라도, 나는 이곳에 남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역할이더라도, 볼품없는 시종으로서 맴돌아야 하더라도 그 뒷모습이라도 좇고 싶었다. 그의 행복을 빌어 주고 싶었다.

“…….”

잠시 머무는 침묵 속에서 부율의 숨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분노하고 있는 걸까. 분명, 한순간의 감정일 것이다. 나는 그리 믿고 싶었다. 그가 내게 품은 감정들, 어느 것 하나 진심인 것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게 네 마음이구나.”

드디어 열린 그의 입에서 무거운 한마디가 떨어졌다. 마치 둔탁한 소리로 쓰러져가는 것처럼 그의 얼어붙은 어깨가 꺼져간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더는 그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감정이 내 위로 떨어져, 함께 바닥으로 추락해버릴 것 같았다.

“…가보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갖춰 입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뒤돌아 다시 그를 보기에는 마음이 다급했다. 남자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걸로 끝난 것일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별채에서 멀어져 화향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문득 가슴이 저미어졌다. 잊고 온 것이 있는 것처럼 발길이 느렸다.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 아무도 없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우리가 함께 있었던 때처럼 내 뒤에 서 있지 않았다. 그의 인영은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다시 앞으로 돌았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듯이, 수오 님이 있는 화향관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 *

밤이 들고, 화향관은 주객들이 제각기 든 술잔과 함께 분주해졌다. 하지만 그 수많은 소란 속에서도 부율의 인기척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오늘 밤도 화향관을 찾아오지 않았다. 셋이서 밤을 보낸 그 날 이후로, 그는 따로 수오 님을 부른 적도, 품은 적도 없다. 나는 부율의 행방을 외면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럴수록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누룩. 얘.”

손님들이 모여 있는 전각으로 술을 나르기 위해 몸을 움직이던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니 나와 같이 창부를 모시는 여종이 서 있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수오 님한테 손님 오신 거 모르니?”

“네?”

주변 소음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내 물음이 반박처럼 들린 것인지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부율 님 떠나고 빈 시각에 다른 손님 접대하라고 주인님께서 넣으셨어. 몰랐니?”

“…아.”

“네가 모셔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녀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듣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해할 방법은 없었다. 소설 속에서도, 수는 공이 오지 않은 시간에 다른 손님을 맞아들였다. 그걸 알게 된 부율이 잔혹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술병을 그녀에게 맡기고 수오 님 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가 다른 사람과 밤을 보내는 것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방에 다다라서야 내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투였다.

“…수오 님.”

나는 문 앞에서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손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고, 그를 먼저 부른 것은 추한 고집 때문이었다. 내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들라.

안에서 들린 희미한 그의 목소리에 맥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문을 열고 곧바로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오… 늘 어르신을 모시게 된 종입니다.”

“창놈들 한눈팔지 말라고 계집종을 구해놨다더니 사실이었군.”

나는 입술을 물었다. 남자는 내게서 흥미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다시 수오 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입술 벌리거라.”

남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정확히 두 사람이 있는 곳 중앙에 모였다. 수오 님은 주저 없이 입술을 벌리고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어깨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비단옷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 모습조차 아름다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남자가 불측한 표정으로 수오 님의 턱을 매만졌다.

“너는 남자를 애타게 하는 법을 제법 아는 창놈이로구나.”

그의 시선이 반쯤 비쳐 보이는 수오 님의 젖꼭지로 향했다.

“좋아. 입술부터 잔뜩 희롱해주마.”

남자는 수오 님의 턱을 아래로 끌어당겨, 자신의 입술을 내밀었다. 수오 님은 잠깐 미간을 좁혔을 뿐 남자의 손길에 눈을 감았다. 나는 손톱 밑의 애꿎은 살점만 뜯으며,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수오 님처럼 눈을 감을 수도 있었지만, 눈을 감으면 두 사람의 신음이 더 크게 들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하며 구석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몸 안쪽에서는 깊은 곳까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손을 아래로. 옳지. 그래.”

남자는 수오 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밑동으로 끌어당겼다. 더러운 살점을 내리자 이끼가 가득한 남자의 귀두가 보인다. 우리 둘 중 아무도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돼지 같은 몸을 한 남자만이 헉헉댈 뿐이었다.

“내 좆… 크흑, 맛있어 보이지?”

그는 이마 아래로 땀을 흘리며 굳이 수오 님에게 물었다. 역겨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남자의 두툼한 목을 조르고 땀 나는 얼굴을 밟아 주고 싶었다. 수오 님은 매번 이런 남자들을 상대해왔던 걸까. 나는 그동안 내 눈을 가리고 자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의 깨끗한 손길을 상상하며, 더러운 내 몸 위에 앉은 그를 상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어땠을까.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수오 님의 세계를 이해한 적이 있었을까.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본 주제에.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질문한 적이 없었다.

“더는 못 참겠군. 엎드려.”

남자는 턱까지 흘린 자신의 땀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수오 님의 어깨를 뒤로 밀었다. 그때, 그가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다. 이상한 세계에서 우리 둘만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어서 엎드리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그새를 못 참고 남자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그대로 표출했다. 남자의 뭉툭한 성기 끝이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는 구멍을 찾고 있었다.

“…….”

“…….”

시간은 조금 더 흘렀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치는 것은 성욕밖에 없던 공허한 눈이 나를 향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의 달아오른 몸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도에서 나온 이물질로 허벅지가 젖어 있었고, 입술은 흘린 침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여전히 수오 님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무릎을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욱!”

구역질이 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간신히 입을 틀어막고 문을 열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온몸이 저려 시간이 걸렸다. 뒤에서 남자의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세 방 안에 소란이 일었다. 나는 방을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화향관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남자의 더러운 몸뚱어리만 머릿속에서 떠오를 뿐이었다.

“읏…. 흑…….”

호흡이 엉망이 될 때까지 달리고 달려, 드디어 대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화향관으로 새로 들어오는 주객들을 피해 산턱으로 향하자,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다시 구역질이 시작됐다.

“우우욱!”

수오 님을 감싸던 남자의 손. 그가 수오 님을 보며 내뱉던 공기. 남자의 신음밖에 들리지 않던 답답한 공간. 성교를 위해 깔려 있던 이불. 그 몸짓. 발기된 남자의 물건.

“하아, 하아. 우우욱!”

역겨운 것들이 떠올랐다. 부율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루어져야 할 이야기들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만했다. 이제야 내가 위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나는…….

“하, 하아…. 흑… 흐윽.”

단지 내 마음을 숨기기 위해, 수오 님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담긴 아픔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남자들을 받아내기 위해 억지로 몸을 열고 있다는 것도, 그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그 공간에서조차 나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제야 그가 내게 한숨처럼 내뱉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너는 내게 묻지 않는구나.

나는 수오 님에게 질문한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을 물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가 부율 님을 만나 이 더러운 공간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때가 되면. 그래, 그가 내 곁을 떠나 소설의 완성이 되면.

그때는 그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리라고.

단 한 번이라도 내가 그를 보호했던 적이 있을까. 나는 수오 님의 등 뒤에 숨어 관찰자처럼 그를 묘사했을 뿐이다. 그를 눈에 담아 상상 속에서 마음대로 휘둘렀을 뿐, 그를 위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은 없었다.

내가 만약 그에게 묻는 것이 가능했다면…….

“…읏, 수오 님…….”

그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물었을 텐데. 같이 화향관을 나가, 어디로든 떠나자고. 그가 내게 떠난다고 말하기 전에, 함께 있자고 물었을 텐데.

그래. 마치 소설 속에서 부율이 수오 님에게 함께 수도로 떠나자고 말했을 때처럼. 그때 그 고백처럼, 나 역시 수오 님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을 텐데.

* * *

수오 님의 얼굴에 생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된 것은 다음 날 그의 방에 갔을 때였다. 그는 내 인기척을 알아채고 오랫동안 누워 있던 요에서 일어났다. 땀에 젖어 있는 어깨에 그의 머리카락이 답답하게 붙어 있었다. 밤새 앓아누운 사람처럼 나를 보는 눈에 그늘이 지어 있다.

“왔구나.”

그는 나를 보고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의 앞에서 함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좀 더 가까이 오거라.”

나는 그의 앞까지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와 나 사이에 경계선이 있었다. 그가 누워 있던 공간과 내가 앉아 있는 사각형의 공간. 수오 님은 떨어져 있는 그 사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힘들었던 것이냐. 어제는.”

나는 그의 눈을 피해 애꿎은 바닥만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오 님…….”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의 생각이 오고 갔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그의 손가락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번을 물어뜯은 것 같은 손톱 끝. 거칠어진 손톱 아래 살점들이 그의 상태가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럴수록 욕망은 커져갔다. 그를 안고 싶었고, 그를 감싸고 싶었다.

“상처…….”

작게 내뱉은 나의 한마디에 그가 손을 가렸다. 숨기고 싶었던 걸까. 묻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다시 눈에 담았다. 새하얀 피부 위에 그어진 흉이 진 자국이 유난히 더 쓰라렸다. 용기는 없었지만 그 상처만큼은, 적어도 그 나쁜 흔적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내가 그의 공간 안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아서 그에게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이 그의 피부 위에 닿는다. 그는 흠칫 놀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어긋났던 눈동자가 마주쳤다.

“어젯밤은…… 죄송합니다.”

내 말에 그의 눈이 더 어두워졌다. 나는 그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애써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꾹 물었다. 내가 그리 도망간 후, 화가 난 남자에게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끔찍한 죄책감이 등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줄곧 따라다녔다.

“아침 식사는…….”

“…….”

“제대로 하고 온 것이냐.”

점점 무너져 가는 내 얼굴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그는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일상적인 것을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도 거짓말이었다. 그 역시 이런 내 거짓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누야.”

“네. 수오 님…….”

“후회하고 있단다.”

수오 님이 쓰게 미소 지었다.

“너를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그의 말에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그에게까지 들린 건 아닐지 혼란스러웠다. 크게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부서져서, 그 안을 채우지 못해 나는 공허한 소리.

“네게 내 세계를 보이는 게 아니었어.”

“……읏.”

눈물이 나왔다. 뚝뚝 그저 조심스레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점점 큰 줄기가 되어 누렇게 변색이 된 치마저고리를 적신다. 눈물 자국은 검게 탄 자국처럼 어두운색을 하고 있었다.

“너도 내가 더러웠던 것이지. 누야. 이런 내가…….”

수오 님의 숨이 가빠졌다.

“네 눈에도 역겨워 보이더냐.”

그의 눈가에 슬픔이 고인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닿은 내 손을 끌어내리며, 가는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짓이 어느 때보다도 더 가녀리게 느껴졌다.

“너와 함께 할 방법은 많지 않았어. 변명이겠지만… 나는…….”

“수오 님…….”

“어떤 방법도 두렵지 않았단다.”

그가 내 손을 놓았다. 허공에서 다시 혼자가 된 손이 방향을 잃고, 공중에 매달린다. 가까스로 무릎까지 되돌렸지만, 그의 피부가 주던 감각을 잊지 못했다.

“…이만 가보거라. 누야.”

“하지만…….”

“아직… 더 자고 싶구나.”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도, 매정하지도 않았다. 외로워 보였다. 그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쓸쓸해 보였다. 그 뒷모습을 안아줄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런 생각도 찰나였을 뿐 다시 들려오는 그의 한마디에 철저히 부서지고 말았다.

“오늘 밤은 찾아오지 말거라.”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규칙적으로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말할 수 없었다. 묻지 못했고, 간청할 수 없었다.

나는 어두운 길목에서 괴물과 마주했다. 괴물은 내게 익숙한 삶을 제안했다. 작은 희망을 대가로 내놓으면, 평생의 즐거움을 주겠다고 한다. 편안하고,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 권력. 순종하기만 하면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 괴물의 얼굴을 하고 나는 말했다. 어긋나지 않으면, 이야기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죄책감도, 열정도, 누군가를 향한 애타는 감정도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순간일 뿐일 거라고.

그리고 저녁이 됐다. 어두운 길목은 더는 어두워지지 못하고, 주변과 조화로워진다. 그림자는 사라지고 온통 검은 바닥이 된다.

나는 내내 방에 있다가, 밤이 된 것을 알고 밖으로 나갔다. 괴물이 나를 붙잡았다. 애절한 목소리를 하고 내게 속삭였다. 내가 나의 중심이 된다는 것.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

끔찍하지 않아?

“…….”

불안했다. 아슬아슬한 기로 위에서 나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괴물은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않았다. 나 역시 더는 괴물이 아니었다.

나는 화향관으로 향해 수오 님이 있는 방문 앞까지 뛰었다.

“수오 님.”

안에서 들린 그의 잠긴 목소리에 나는 단숨에 방문을 열었다. 내가 온 것에 놀란 것일까. 이제 막 몸을 씻을 준비를 하고 있던 그의 손이 굳어져 있었다.

“준비… 시켜 드릴게요.”

나는 욕탕으로 가서 마른 수건을 한 켠에 놓은 뒤 물을 받기 시작했다. 수오 님은 아직 방 안에서 옷을 벗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얇은 소의로 갈아입은 뒤 작게 마련된 욕탕으로 들어왔다.

통에 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나는 준비해 온 향을 물에 넣고 손으로 저었다. 수오 님은 이윽고 소의 마저 벗은 뒤 욕통에 몸을 담갔다.

“색이 예쁘구나.”

그의 몸이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가까운 연보랏빛으로 에워싸였다. 아름답다. 그 외에 다른 표현이 있을까. 나는 감탄을 숨기며 젖은 수건으로 그의 목선을 따라 닦기 시작했다. 그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의 몸에 감히 손을 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그의 몸이 전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목에 있는 낯선 사내의 입술 자국도 그 사랑스러운 감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만큼.

그러나 내 손이 그의 가슴팍에 닿았을 즈음,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 한편에, 얼굴에 있는 상처와 같은 생채기가 있었다. 더 아래로, 복부 위쪽에도 숨겨져 있던 생채기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던 손을 멈추었다. 수오 님은 그런 나를 눈치채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는 애써 입가를 올린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거라.”

쓸데없는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그를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죄책감. 후회. 어느 것 하나도 쓸모없지 않았다. 전부 다, 이렇게 흘러넘칠 것만 같은데. 울컥하며 감정이 앞으로 나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갇혀 있었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망설이고 짓이겨지며 얌전했던 입술이 드디어, 진심을 찾아간다.

“…좋아해요.”

그 순간 첨벙, 물길이 요동쳤다. 그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손끝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가슴이 뛰고 있다는 것을. 어째서 지금껏 나는 외면하고만 있었던 걸까.

“줄곧… 사랑하고 있었어요.”

나는 젖은 수건을 내려놓고 그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나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짧은, 어린아이 장난 같은 입맞춤.

“아름다워요. 수오 님의 모든 게….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의 눈이 커다래진다. 나는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매만지다가,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에게 속삭였다.

“우리… 같이 떠나요.”

입술이 잠시 멀어져 있던 그때, 그가 내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다시 서로의 입술이 부딪힌다.

“아… 응…….”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했다. 보잘것없는 무색의 소매가 물에 젖어 보랏빛이 되어 가는 동안, 시간이 잠시 멈추었다. 그와 나의 시간. 우리는 서로를 거의 동시에 당겼으며, 나는 그의 공간 안에 들어가 옷을 적셨다.

“수오 님…….”

그가 상기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젖은 상의를 벗고 그의 손을 가슴으로 이끌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가슴을 덥석 쥐며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 안 가 그의 입술이 열렸다.

“너를 품지 않은 날이 없었어.”

“수오 님…….”

“내 상상 속에서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마침내 그의 입술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환희를 뱉으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것 같은 고백은 물소리와 함께 대담해져 갔다. 그는 내 젖가슴을 희롱하던 손으로 숲을 파헤쳤다.

“하읏…….”

“다리를 더 벌리거라. 누야.”

그의 말대로 다리를 벌리자 벌어진 구멍으로 그의 손가락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욕조의 물이 찰박거렸다. 가빠져 가는 호흡만큼이나 그의 남근 역시 점점 더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성기를 손으로 잡고 끝을 살살 달랬다. 그러자 그의 기둥이 딱딱해지면서 요도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

“하아…. 크읏…….”

뜨거운 물 때문인지, 몸에서 나는 열기 때문인지 그의 창백했던 몸이 열을 띄며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그의 요도 주변을 살살 만지며 그의 입안으로 혀를 넣었다. 그는 내 혀를 기쁘게 맞아들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 아… 하읏!”

그는 집요하게 내가 느끼는 부분을 찾아 그곳을 꾹꾹 눌렀다. 그의 손가락들이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물이 앞부분을 자극했다. 나 역시 그의 몸을 만지고 싶었다.

서투른 손길로 그의 귀두에 답답하게 붙어 있는 껍질을 벗겨냈다. 매끄럽게 드러난 그의 귀두는 이미 흐르는 정수로 인해 엉망이었다. 나는 입술을 떼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 탓에 그의 손가락이 질 안을 빠져나갔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일종의 반항이었다.

“넣어주세요. 제발…….”

그는 말없이 내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비명이 나올 정도로 세게 비틀고 뭉갰다.

“보지를 내게 가져다 대야 넣어줄 것이 아니냐.”

그는 짓궂게 입꼬리를 올리며 내 가슴을 손에 쥐고 양껏 주물렀다. 나는 풀어진 눈으로 그의 무릎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리고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귀두 끝에 구멍을 가져다 댔다. 그의 것으로 음부를 문지르며 자극하니 그제야 질이 넓어지며 그의 귀두를 받아들였다. 그는 거친 신음을 뱉으며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하, 크윽……!”

순간 욕통의 물이 거세게 바깥으로 튀었다. 그는 애타는 숨을 뱉고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나를 더 괴롭히고 싶은 건지 도드라진 내 젖꼭지를 이로 씹었다.

“아하아응……!”

“영원히…… 내 것이다.”

“수…… 하읏, 수오 님……!”

“네 몸 전부가.”

난폭해진 그의 신음 만큼이나 목소리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엉망이 되어 가는 내 몸을 바라봤다. 그가 질리도록 빤 젖꼭지가 심하게 빨개져 있어 스칠 때마다 비명이 나왔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윽고 그의 물건이 내 안에서 불끈거리며 여러 번 경련했다. 곧 정액이 쏟아졌다. 하지만 수오 님은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흥분한 듯이 폭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나를 품 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말하거라.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거라고.”

“하으…… 흐읏. 영원히 수오 님의 옆에 있을게요. 하, 아으응……!”

수오 님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숨을 들이켰다.

“누룩…….”

그때, 그가 나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수면 위에 간신히 떠 있던 몸이 점점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는 내 목덜미를 잡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도망갈 시도조차…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읍……!”

그가 나를 완전히 물속으로 이끌었다. 수면 아래로 귀가 잠기고 이윽고 호흡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나를 더 깊은 물 속으로 잠기게 했다. 그는 수면 위에서 미소 지었다.

“웃… 아… 욱……!”

산소가 부족해 시야가 점점 새하얘져 갔다. 반대로 수오 님은 황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성기가 질 안에서 더욱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

“우웁…! 하… 으…….”

물속에서 감각은 더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흥분한 구멍이 그의 것을 더 조이고, 애액을 왈칵 쏟는다. 그는 그런 나를 잠시 더 바라보다가 물속에서 끌어 올려 주었다.

“푸하, 하아……!”

“…….”

그가 내 창백해진 목덜미에 입술을 얹고 혀로 애무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허리를 움직였다. 퍽, 퍽. 아픈 움직임에 저절로 온몸이 굳어갔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내 젖가슴을 쥔 채 부푼 성기로 질 속을 긁었다.

“으, 하응! 하읏!”

“윽…! 하, 윽!”

그의 뿌리 부근이 급격히 단단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귀두 끝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져 나왔다. 너덜너덜해진 구멍이 뻐끔거리며 입을 벌렸다. 그는 내 엉덩이를 붙잡고 자지를 빼내었다. 줄곧 굵은 것을 머금고 있던 질은 좁아질 줄 모르고 그가 뿌린 정액을 뿜어냈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그의 씨물이 쏟아졌다.

“으, 하응…….”

“이제 일어서거라.”

수오 님은 지친 기색 없이 내 팔을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욕통을 두 손으로 잡게 시켰다. 곧 그가 내 뒤에 서서 움찔거리는 내 항문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하읏, 싫……!”

“쉬이…. 아프지 않게 길들이려는 것뿐이야.”

수오 님은 지저분하게 분출돼있는 정액을 손가락에 적신 후 내 항문에 넓게 펴 발랐다. 빳빳했던 입구가 금세 그를 향해 오물거렸다. 처음에는 검지로 구멍을 살살 달래더니, 이내 그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첫 마디를 집어넣었다.

“아으윽! 싫어요……!”

“익숙해질 거다.”

이물질이 내장을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멈추지 않고 수오 님은 기어이 손가락 하나를 전부 다 밀어 넣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꽉 조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 으읏… 제발 부탁이에요.”

“쉬이…. 곧 괜찮아질 거다.”

그가 위로하듯 내게 속삭였지만, 어느새 그의 성기는 다시 두꺼워져 내 엉덩이에까지 맞닿았다. 스스로가 짐승이 된 것 같았다. 그의 앞에서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게만 느껴진다. 구멍으로 수컷의 자지를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열고 있는 암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힘을 빼거라.”

그가 내 엉덩이를 가볍게 매질하며 재촉한다. 급기야는 그의 성난 성기를 내 음부에 들이밀며 내게 속삭였다.

“네 뒷문에 바로 쑤셔 넣고 싶구나.”

내가 힘을 뺀 틈에 그가 중지마저 내 항문으로 힘겹게 밀어 넣었다. 발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고통스러웠다. 직장에 불편한 것이 가득 찬 느낌에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흑… 아흑…….”

그는 내가 눈물을 흘리자 흥분한 남근을 입구에 가져다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을 세워 뒷문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조금씩 입을 벌리는 것이… 하아, 손가락 세 개도 들어가겠어.”

“싫…! 아악……!”

내 싫다는 짧은 반항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듯 땅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주저 없이 약지마저 항문에 쑤셔 넣었다. 세 개의 손가락이 직장 내를 돌아다녔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졸도할 듯이 숨을 헐떡거리며 간신히 욕통을 붙잡았다.

“아, 으윽… 아, 아흐으윽!”

그때, 갑자기 그의 커다란 성기가 질 속으로 들어왔다. 충격으로 다리를 달달 떨자 수오 님은 그런 내 모습까지 만족스럽다는 듯이 훑었다.

“색스럽기 그지없구나. 눈을 뒤집을 만큼 자지가 그리 좋더냐.”

“아, 으으으윽! 하윽! 아악!”

그는 굵은 귀두로 내벽을 긁으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두 개의 구멍 안에 수오 님의 것이 빈틈없이 들어왔다. 고통스러웠다. 몸이 두 개로 쪼개질 것 같은 아픔 속에서 나는 그의 작은 움직임에도 신음을 내질렀다. 몸이 이상해졌다.

“아아아으…… 하으…… 아아!”

“엉덩이를, 옳지, 좀 더 높게 세우거라.”

그는 질 안에 성기를 박아 넣은 채로, 항문을 넓히기 위해 세 손가락을 동시에 움직였다. 푹, 푹 그 두꺼운 손가락이 내 안에 박힐 때마다 나는 내장이 망가지는 충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한 번씩 그의 귀두가 움찔거릴 때마다, 직장까지 전해지는 압박감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수오… 님……!”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애원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려 분비물이 쏟아지는 뒷구멍을 지켜보며 혀를 두를 뿐이었다.

“항문 안쪽을 쑤실 때마다 보지 안이 경련하는구나. 좀 더 익숙해지면 뒷문으로 쑤셔도 보지로 느끼겠어.”

그가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최대한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복부가 불편한 느낌만큼은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직장도 함께 그의 손가락을 따라 늘어나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싫었다. 하지만 그의 성기는 아직도 우람하게 서 있다.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긴 아무도 들어간 적 없는 구멍이구나.”

“흑. 아흑…….”

“내가 널… 처음으로 범할 수 있겠어.”

그때, 질 속에 있던 그의 성기가 쑥하고 빠져나왔다. 애액으로 범벅이 된 그의 것이 다시 소음순 사이로 파묻혔다. 그는 그렇게 음부 주변을 성기로 슥슥 문질러 대다가, 결국 항문 근처까지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세 손가락을 항문 밖으로 꺼냈다.

“아……!”

커다란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항문 속이 텅 빈 것처럼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알아차린 것인지 짧게 미소했다.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다. 이제 와서 그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완전히 소유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그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이 죄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프면 울어도 좋다. 누야. 조금만 더. 아, 크윽…….”

그는 서늘한 말을 남기고 곧장 두툼한 머리끝을 항문에 밀어붙였다. 아주 조그맣던 구멍이 그의 막무가내로 인해 조금씩 입을 벌렸다.

“아아악! 하으윽!”

처음인 곳을 침범당하는 충격에 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겨우 머리만 들어갔는데도 견디기 힘들었다.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오 님은 아직 만족하지 않은 듯 낮은 신음을 뱉었다.

“더 깊숙이. 더 네 안에 들어갈 거야…….”

그는 내 귓가에 잔인한 말들을 속삭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제발 더는…….

“아아으흑! 하아읏……!”

“하, 크흑!”

두꺼운 기둥이 점점 더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좁았던 구멍이 한계까지 찢어지며 그의 성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넓어졌다. 기어이 그의 기둥 반이 항문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등 뒤에 흐르는 내 땀을 혀로 핥으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내가 너를… 가졌구나.”

그가 웃었다. 등 뒤에 앙상하게 돋아있는 내 뼈마디를 훑으며, 가장 수려한 미소를 보인다.

“네가 내 것이 되었어.”

더 커질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그의 성기가 뿌리부터 더욱 단단해졌다. 흠칫 놀라 허리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가 눈치챘는지 허리를 단단히 가둔 채 내 젖을 아프도록 쥐어짰다.

“도망가게 두지 않을 것이라, 내 네게 단단히 일렀을 텐데.”

“제, 제발…… 아, 아흐으윽!”

그가 괘씸하다는 듯 억지로 내 다리를 벌리고 굵은 심지를 안쪽까지 욱여넣었다.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아픔에 반항할 기력조차 사라졌다. 그는 얌전해진 나를 흡족해하며 조금씩 자지를 넣었다 뺐다 하며 움직였다.

“아, 으으…….”

“보지보다 좁아서 기분이 좋구나. 뻑뻑한 것이 흠이지만 좀 더 길들이면 자지 모양에 맞춰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물도 수월하게 나오겠지.”

그는 두 손으로 양젖을 잡고 젖꼭지를 아래로 쭉쭉 잡아당겼다. 눈물이 소리 없이 뚝뚝 욕통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하, 큭… 네 젖통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도 보고 싶구나.”

그가 음탕한 말들을 내 귓가에 속삭이며 기둥을 밀어 넣었다. 그의 요도에서 나오는 물들 때문일까. 어느새 축축해진 뒷구멍이 그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고통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고, 그의 움직임에 더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됐다. 수오 님은 내 젖꼭지를 손톱으로 쥐며 허리를 조금씩 빨리했다. 그 박자에 의해 젖가슴이 출렁거리며 흔들거렸다.

“좀 더, 하아, 다리를 좀 더 벌리거라.”

나는 그의 명령대로 다리를 벌리고 최대한 힘을 뺐다. 곧 항문을 드나드는 그의 귀두에서 정액과 비슷한 하얀 액체들이 흘러나왔다. 그는 몇 번이나 절정을 맛보고 있었다. 정복감에 가까운 쾌락이었다.

“누야, 크흑…….”

그가 연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입술을 물었다.

“네 보지도… 뒷구멍도 전부 다 내 것이다. 함부로… 큭, 다른 사내한테 내어 주지 않는다고 약속하거라.”

“약속해요. 아, 흐윽……!”

“다시 제대로 말하거라. 똑바로. 어서.”

“흐윽… 수오 님한테만… 벌릴게요. 하윽, 보지도 뒷구멍도 전부… 아으으윽!”

내 말이 전부 다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내 목을 한 손으로 쥐었다. 고통이 익숙해질 때쯤 그는 내 의식마저 앗아가려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마음만큼은 편하게 그에게 귀속되었다.

“난 너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다. 누야.”

“아… 으……!”

이윽고 그가 내 항문에 뿌리마저 전부 다 집어넣은 후, 정액이 분출될 때까지 기다렸다. 곧 그의 뿌연 정수가 항문 안에 뿌려졌다.

“아… 읏, 끅……!”

“하아, 하아. 큭!”

수오 님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내 안에 전부 내뿌린 뒤, 겨우 내 목을 놓아주었다. 그제야 숨이 쉬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의 성기도 내 안을 빠져나갔다.

“하아, 흑…….”

수오 님은 쓰러진 내 허리를 강하게 붙잡으며 아직 건재하게 서 있는 성기를 엉덩이 밑으로 문질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와 나는 다시 물속에 잠긴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재차 커다란 성기를 삽입해 나를 괴롭혔다. 정사는 그렇게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오랜 정사 후 나는 수오 님의 방에서 잠을 청했다. 원래였다면 손님이 누웠어야 할 자리. 그러나 수오 님은 처음으로 손님을 거부하고 나를 곁에 두었다. 후희는 짧았지만 달콤했다. 나는 그의 팔을 가슴에 안고 그의 체취를 맡았다. 수오 님은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드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턱에서부터 뺨이 있는 곳까지. 그러다 콧등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곱구나. 누야.”

수면으로 떨어지는 즈음 그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가 미소하고 있었다. 새벽빛을 받아 더욱 청초한 그의 얼굴에 새삼스레 놀랐다. 이런 그가 나의 곁에 있어 주어서, 나를 선택해 주어서 가슴이 벅차오를 뿐이다.

“연모한다. 누야.”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 나는 그의 손을 찾아, 깍지를 끼고 절대 놔주지 않을 것처럼 소중히 어루만졌다. 처음으로 이곳이 소설 속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날 사랑해주는 한, 이곳은 절대 이야기일 수 없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해. 나는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수오 님…….”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더욱 꽉 잡아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왜 그러느냐.”

그가 청청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우리는 마치 부부가 된 것처럼 한 이불에서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야가 촉촉해질 것 같았지만, 금세 감정을 다스리고 입을 열었다.

“수오 님은 언제부터 저를…….”

그의 모든 신경이 나 한 사람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좋아하셨나요…….”

그는 작게 웃으며, 내게 짧은 입맞춤을 해주었다.

“말을 하면 놀랄 텐데.”

“네?”

“나중에 다 말해주마.”

조금은 치사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를 좋아한 것은 거의 그를 본 처음 순간이었는데. 하지만 더는 그를 보채고 싶지 않았다. 설령 내가 그를 더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당연하다고 느낄 뿐 부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오 님으로 충분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도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누야.”

하지만 조금 토라져 있던 게 얼굴에 드러나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그가 애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읊조렸다.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를 올리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곳을 떠나 나와 함께 살겠느냐.”

수오 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창부 짓은 곧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누룩, 너와…….”

그가 내 턱을 쓸어 만졌다. 공기 중에 차게 식은 그의 손이 기분 좋게 체온에 닿았다.

“혼례를 올리고 싶구나.”

꿈 같은 그의 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결국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만다. 그는 손가락으로 눈가에 묻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내가 너를 취하는 것을 허락해다오.”

“수오 님…….”

“그리고 용서해다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감히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죄를 보고도 못 본 척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 죄인이 누구인지 모를 만큼, 나는 그를 보며 모든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제 지아비가 되어 주세요. 수오 님…….”

그의 숨이 일순 멈췄다.

“그리고 절대 떨어지지 말아요.”

나는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 눈물을 쏟았다. 나의 스무 살을 함께 했던 그. 어느새 1년이 지나 다시 봄이 되었지만 그를 향한 내 감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소설 속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겠다고 여겨왔던 믿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고집만이 남았다. 그를 위해 살고 싶었고 그를 따르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바치고 싶었다.

“너를 떠나는 일은 결코 없어.”

그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어떤 과일보다 달콤했으며, 어떤 소란들보다 풍성했다. 서로를 껴안고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잠이 든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수오 님과 내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지도 벌써 일주일. 그는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고, 화향관으로부터 멀어질 준비를 했다. 주인과 몇 번이나 별채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다른 시종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제법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는 낮의 한가로운 마당을 내다보며 대청에 걸터앉았다.

“…….”

분명 모든 것이 물 흐르듯 나의 행복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마음속 언저리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누룩. 너는 나를 믿어줄 유일한 사람이다.

부율이었다. 대뜸 중저음의 맑은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이다. 그가 화향관을 떠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소식을 아는 자는 없었다. 모두들 떠났다고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데도, 그가 내게 한 말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와 내가 수오 님의 방 앞에서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그와 멀어져 방 밖으로 나왔던 그때, 왜 내 가슴이… 미어졌던 것일까. 그때 느꼈던 통증이 아직도 생생하게만 느껴졌다.

“그거 들었어?”

멀리서 시종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시종 아이 세 명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규수가 오신다잖아.”

“그것도 여럿.”

“사내가 아니고 계집이라고?”

제각기 알고 있는 정보들을 꺼내 동그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화향관에 여인이 손님으로 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양반 집 마나님들이 심심풀이로 가끔 남창 마을을 찾아오기도 했다. 규수가 온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부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드문 일이기는 했다. 수도에 있는 명망 있는 가문의 여식이 먼 길을 찾아올 리는 만무했고, 분명 지방 가문의 여식들일 것이다.

“십만 전을 냈다지.”

“그렇게나 많이?”

아이들로부터 경악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십만 전이면 금화를 여럿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석 달을 굶지 않아도 되고, 몇 날 며칠 거나하게 취해도 넉넉할 정도의 돈.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재화였다.

“여태 십만 전을 한꺼번에 낸 건 부율 님 정도였는데…….”

“그만한 거물이란 말이야?”

시종들의 눈이 시샘으로 가득 찬다. 나는 입술을 물었다. 갑자기 그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일이나 하자. 시간 됐어.”

“치…….”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신분의 차이에,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나 역시 잠시 일그러진 모래더미를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자시(子時)가 되자 화향관의 등불이 환하게 켜졌다. 화향관의 별채 한 곳을 전부 차지한 규수들은 전각에 둘러앉아 창부 네다섯을 불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재미가 사라지면 창부들을 시켜 입을 맞추게 하였으며, 서로의 성기를 희롱하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 남녀 간의 교합이 일어나지 않는 마을에서, 그들 역시 창부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잔치는 축시(丑時)까지 계속됐다. 그러다 서서히 잠잠해졌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 방 안에 들어가 성교를 하거나,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전각에 마지막 술을 가져다 나른 뒤에야 수오 님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큰 잔치가 있는 오늘도 방 안을 지켰고,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붕 뜨기 시작한다. 그를 보며 오늘 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일까.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빠른 발걸음만큼이나 가슴이 뛰었다.

“하아, 하아.”

이윽고 그의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오 님은 이미 진작부터 마루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가 미소 짓는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그에게 걸어갔다. 내가 그의 앞에 서자, 수오 님은 주저 없이 내 손목을 잡고 그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못 참겠구나.”

나는 그의 다리 사이에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아랫도리를 눈치챘다. 나 역시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방으로 데려가 주세요…….”

대담한 내 말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방 안에 밀어 넣었다.

긴 밤의 끝에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나누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상념 또한 없었다. 나는 어제와 같이 그의 품에서 잠이 든다. 똑같이 찾아온 행복.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꿈속의 검은 공간….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소음은 더 들리지 않고, 귓가에 들리던 수오 님의 숨소리조차 희미해졌다.

* * *

아직 새벽일까. 피로는 풀리지 않았는데, 곧 눈이 떠질 것 같았다. 몸이 뜨거웠다. 나는 꿈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온몸을 적시고 지나갈 듯 요란스러운 바람. 그 바람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네가 그리웠다.

꿈속에서 너는 나를 매번 떠났었다. 그저 말없이 나를 버려두고 갔었지.

“읏…….”

붉은색. 노랑 아지랑이. 다시 붉은색으로 물든다. 그러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진다. 검은 세상이… 다시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여자의 목소리. 바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언뜻 내 목소리 같기도 했다. 몸이 뜨거웠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숨이 내쉬어지지 않았다. 눈을 떠야 했다. 더는, 이 공간에 있을 수 없어. 잠에서 깨야 했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 윽…….”

그때, 차가운 손길이 내 몸을 잡아 이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몸에 기대어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바람 소리가 잦아들었다. 꿈에서 깨어난 걸까. 나는 있는 힘껏 눈을 떴다.

“하아…….”

숨이 다시 쉬어진다. 시야는 여전히 검고, 흐릿했다. 보이지 않는 시야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서서히 나타났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들었던 수오 님일까.

“…용서해달란 말은 하지 않으마.”

“부… 율…….”

수오 님이 아니야. 흐린 시야로 손등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두 뺨은 뜨거웠고, 공기 역시 답답했다.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불이야!”

“아아아아악!”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붉고, 노란 아지랑이들이 화향관을 잠식시켜 갔다. 그제야 내가 꿈에서 본 것들이 불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황급히 부율을 밀쳐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부율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수오 님! 수오 님을……!”

“미안하구나.”

“안돼. 아직 안에 있을 거예요. 제발!”

나는 부율에게 애원했다. 내가 어떻게 방에서 나오게 된 건지, 어떻게 저 불길에서 무사할 수 있었는지, 그는 왜 내 옆에 있는 건지 그 어떤 것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타오르며 위로 솟는 회색 연기를 보고 오열할 뿐이었다.

“제발……!”

부율은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불길에 대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와 함께 하자꾸나.”

그가 함께하자 말하며 내 입을 틀어막는다. 그의 손에서 독한 향기가 났다. 그가 내게 주었던 꽃처럼, 이상한 향이었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눈물에 얼룩진 시야 끝에 불타오르는 수오 님의 방이 보였다.

“수… 오…….”

나는 다시 깊은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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