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의 BL 소설 2
Chapter 5. 의혹(2)
“아…….”
선홍빛. 처음에는 시야가 단지 얼룩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발밑의 감각이 되살아나자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허락된 나의 자리에 속해 있지 않았다. 매끄러운 비단이 내 발목에 감기고, 사락 밝히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그 사이에서 신음을 질렀다.
“크윽…….”
피가, 남자의 어깨 뒤로 흘러내렸다. 나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날카로운 것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그 표면에는 똑같은 색의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네가…….”
슬픈 눈이 나를 좇아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한 짓을 나조차 믿을 수 없었으니까. 부율은 웃었다. 조금만 빗겨 갔다면 나는 남자의 목을 그었을 것이다. 남자는 어깨를 손으로 쥐며 나를 노려보았다.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고인 핏물이 보였다.
“누룩.”
신음을 질렀던 입으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는 흠칫 놀라며 결국 바닥에 주저앉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풀려난 수오 님 역시 당황한 눈초리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부율은 다시 한번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죄, 죄…….”
부율은 벗어 놓은 자신의 옷으로 피를 닦아내며 내 앞으로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드디어 거리가 충분히 좁혀졌을 때, 그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어딜 가려 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저는…….”
부율은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내 발을 잡아 이불 위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그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 버린다. 나는 몸을 말아 벌벌 떠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때, 수오 님이 급하게 내 어깨를 감쌌다. 순식간이었다. 부율의 눈이 붉어진 것은.
“아무래도 네 주인이 얼마나 더러운 창놈인지 보여줘야 하겠구나.”
그의 입술이 비틀어진다. 그 매서운 눈에서도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감추고, 뭉개고 있었다.
“…그래야만 내게 와 주겠느냐.”
그러나 그 새어 나온 한숨 같은 그의 마지막 말에는 미처 내비치지 못했던 진심이 있었다. 머리 위로 몰렸던 피가, 점점 부드러워진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그를 처음 보는 것이 맞는 걸까.
“장난은 그만두시지요. 상처도 깊어 보이지는 않으니 이쯤에서 그만…….”
“그 입술은 헛소리를 지껄이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
“좆을 핥고 빨고 정액을 삼키기 위해 뚫린 것이 아니었느냐.”
수오 님의 말을 가로챈 부율이 미소를 흘렸다. 그 가시 돋친 말에도 수오 님은 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점점 손을 아래로 뻗어, 내 등허리까지 매만지고 있었다. 그 기묘한 감각에 허벅다리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행각들이 머릿속에 차기 시작한다.
“아, 그렇지.”
부율이 짐짓 감탄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다시 내 발목을 붙잡고, 이번엔 내 바지를 아래로 내렸다. 나는 비명조차 지를 틈도 없이 그의 손에 의해 전라가 되어갔다. 손으로 가려도, 손가락 틈새로 수풀이 빠져나온다. 그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오 님조차, 다만 내 검붉은 속살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지도 잘 빨 것 같은데.”
부율이 내 팔을 붙잡고 귓속에 혀를 집어넣었다. 뜨거운 것이 촉수처럼 내 안에 스며든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그가 멈춰주길 바랐다. 그의 일부가 내 안을 파고드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괴상스러운 느낌은 어느새 자극되어 사타구니까지 간지럽혔다. 그러다가 한참 뒤, 그가 혀를 내빼고 젖은 내 귓속에 속삭였다.
“누룩, 너의 더러운 보지도 말이다.”
부율은 나를 붙잡은 채 그대로 수오 님의 곳으로 끌고 갔다. 정확히는 그의 얼굴이 있는 곳으로. 내 두 다리 사이에 그의 얼굴이 놓이게 자세를 잡고는, 잔인한 말을 뱉어냈다.
“앉아라.”
“시, 싫어요.”
“아니면 네 주인이 내 좆을 머금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수오 님을 두고, 안 될 상상을 하곤 했지만 이런 형태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나를 끌어 내리는 또 다른 손길이 있었다. 나는 그 힘으로 균형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구멍을 더 벌리거라.”
수오 님이었다.
“아…! 싫……!”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수오 님은 내 허벅지를 붙잡고 천장을 보고 누웠다. 엉거주춤한 자세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결국 그의 위로 풀썩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내 아래에 있었다. 수오 님의 아름다운 얼굴이 내 보지 밑에 깔렸다. 죄악감이 몸을 뜨겁게 매듭지어 온다. 싫다. 싫어. 그런데 왜 나는 다리를 오므리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의 입술이 벌써 내 애액으로 엉망이 되어있는 걸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수오 님은 망설임 없이 혀를 내밀어 위로 솟은 삼각의 살점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흐읏……!”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누군가 세차게 발길질하는 것처럼, 찰박이는 소리가 수풀 아래에서 진해져 가고 있었다. 그 낯뜨거운 장면을 보던 부율의 앞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경멸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더러운 소리에 감탄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아득한 쾌감 속에서 부율의 목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어느새 내 코앞까지 그의 발기한 성체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내 입술에 흘러나오는 그의 정수를 묻혔다.
“입, 벌려야지.”
그의 성기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당장이라도 구멍을 뚫고 정액을 쏟아부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커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억지로 내 입술에 가져다 대며, 난폭하게 밀어붙였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턱을 늘어뜨려야만, 그의 것을 담을 수 있었다.
“아… 욱……!”
내가 부율의 남근을 받아들인 그 순간, 수오 님의 혀가 아랫구멍을 뚫고 몸 안으로 들어왔다. 촘촘한 주름을 밀어내고 매끄러운 혀가 내 안을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잔뜩 고여있는 애액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는 쉴 틈 없이 목울대를 움직이며 갈증 난 목을 적셨다. 소리에 자극받은 부율은 다시 힘차게 내 목구멍 안으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
“하… 아아. 으읏…….”
그의 귀두가 기도 어디쯤 와 있는지 느껴질 만큼이나 사실적이었다. 콧구멍을 열어야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입은 더 이상 호흡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단지 남자의 좆을 기쁘게 할 구멍에 불과했다.
“더 크게… 하, 큿… 벌려.”
“아… 으, 그욱……!”
부율은 도망가는 내 뒤통수를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한껏 잡아당겼다. 침이 입 밖으로 줄줄 새어 나온다. 그 거친 성애에도 쾌락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움직이며 수오 님의 코끝으로 발기한 정점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 아흐… 읏!”
나는 수오 님을 숨 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의 호흡을 앗아가며, 나의 냄새로 그를 칠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더럽히고 있었다.
“아, 하으으으읏!”
그건 내게 가장 필요했던 죄악이었다.
“하, 으윽. 깊이 빨아. 좀 더 안으로. 옳지. 젠장.”
부율은 여전히 부족한 듯 커다란 자신의 성기를 꾸역꾸역 내 기도 끝까지 처넣었다. 더는 들어가지 않는데도, 무언가 불만인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탐하고 있었다. 완전히 나를 제압하고, 흐느끼는 나를 조종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제기랄. 크흑!”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단말마 같은 신음과 함께 그의 정액이 내 얼굴에 튀었다. 미처 제때 빼지 못한 흔적은 아직 혓바닥에 남아 있었다. 코끝에도 그의 정액이 매달려 있었고, 두 뺨에도 질척한 그의 물이 죽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씁쓸한 끝물을 맛보아야 했고, 역한 냄새도 맡아야 했다. 하지만 부율은 아직 만족하지 못한 사람처럼 늘어진 성기로 내 뺨을 문질렀다.
“하…….”
몇 번을 그렇게 문지르고 나자, 다시 그의 성기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시선은 내 머리 위를 지나 수오 님이 누워있는 곳까지 떨어졌다. 그가 웃기 시작했다.
“창것은 창것인가 보구나. 고작 보지를 빤 것뿐인데 제법 올곧게 세우지 않았더냐.”
부율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수오 님의 침은 내 사타구니까지 연결돼 길게 늘어지다가, 결국 끊어졌다. 찬 공기를 맞은 아랫도리가 허했다. 그것을 알아챈 부율이 재빨리 손가락을 세워 보지 안에 쑤셔 넣었다.
“아흐으윽!”
“자, 내 무릎에 앉아라.”
끌려간 곳은 부율의 품 안이었다. 나는 수오 님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무르팍에 앉아야 했다. 그는 내 다리를 벌렸고, 그 벌어진 틈 안으로 세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구멍이 오물거리며 물을 쏟아냈다. 수오 님의 침이었는지, 애액이었는지 모를 것들이 이부자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수오 님은 입술에 묻은 내 애액을 닦아내며 우리 둘을 소리 없이 지켜봤다.
“너는 자위라도 하는 게 어떠하냐.”
부율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그의 눈초리가 수오 님을 향해 있었다.
“…제가 못 할 것 같습니까.”
수오 님의 한쪽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라갔다. 부율의 미간이 좁혀졌다. 동시에 보지에 박히는 손가락질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아흐, 으흐응…! 아… 앗!”
수오 님은 거추장스러운 매듭을 풀고 새하얀 속곳을 내렸다. 그리곤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나의 벌어진 두 다리 사이를 응시했다. 부율의 손가락들이 좁다란 구멍 사이로 지나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하아…….”
수오 님의 두 눈은 풀어진 지 오래였다.
“읏…….”
눈물이 나와, 결국 입 밖으로 애처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부율의 말대로 제대로 발기해 있었으며, 요도로 정수를 흘리고 있었다. 기둥에 끈적한 것들을 잔뜩 묻혀 가며 기다란 손가락으로 포피를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적나라한 행위를 보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슴이 울었다. 내가 범해지는 것을, 그는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혹은.
놀이였을까. 나는 그에게.
“제발… 그만…….”
부율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을까. 이 끔찍한 광경을 멈춰주기를 간절히 원해보지만, 부율의 눈은 단호했다. 그는 오히려 내 젖가슴마저 침범하며 꼭지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누룩. 말하거라. 네 구멍이 누구에 의해 넓혀져 가고 있는지.”
“으흑…. 그만해주세요. 제발…….”
“네 보지가 지금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알고 하는 말이냐.”
부율이 싸늘하게 웃음 지었다.
“붉은 살점이 저놈에게 보일만큼이나 넓어져 있구나. 이리 굵은 손가락이 세 개나 들어가 있는데 아파하지도 않다니. 그새 커다란 좆에 익숙해져 버렸구나. 가엾게도.”
“으… 으…… 흑.”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그가 내게 주는 쾌락 때문일까. 혹은 열에 띤 신음을 내는 수오 님 때문일까. 그 자지에 묻은 투명한 이슬이 온전히 나의 것일 수만 있다면. 나와 그의 시간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남자의 손에 매달려 젖은 신음이나 내는 신세에 불과했다. 이윽고 절정이 다가오고 말았을 때는, 그만 부딪혀 오는 그의 입술을 그대로 삼켜버리는 잔혹한 것에 불과했다.
“…아, 으응.”
“하아. 이제 자지를 끼워야지.”
부율이 내 허리를 잡고 엉덩이를 공중에 뜨게 만들었다. 벌떡 선 성기가 구멍이 있는 곳에 조준된다. 그는 그대로 내 허리를 놓았고, 이내 성기가 질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
“큭…….”
남자는 다급하게 내 젖을 찾았다. 그리하여 딱딱해진 젖꼭지를 손에 넣고 나서야,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가슴은 이미 흥분으로 부풀어 오를 대로 통통해져 있었다. 풍성하게, 그를 향해 젖이 솟아 있었다. 삼키어 달라는 듯이. 그만 입안에 넣고 혀를 굴려달라는 듯이.
수오 님의 빳빳한 성기를 향해 떨리고 있었다.
“누룩. 들어라.”
“하… 으응…….”
젖은 몸을 연신 비비적대며 쾌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남자가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는 수오 님을 흘깃 보며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네 콩알을 살살 핥아줄 개가 필요하지 않으냐.”
부율이 손을 튕겨 수오 님의 시선을 불러들였다.
“핥아라.”
남자가 내 넓적다리를 더욱 크게 벌리며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보지를 앞세웠다. 수오 님은 여전히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물이 잔뜩 든 구멍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남자의 기둥이 반쯤 빠져나왔을 때,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 오 님…….”
“…….”
남자와 내 앞으로 다가온 그가 무릎을 꿇고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그런 다음, 음모를 헤집고 튀어나온 앞부분을 빨아 삼켰다.
“아으으읏! 하읏! 아……!”
꽉 찬 구멍에, 발기한 정점마저 범해지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금세 절정에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수오 님은 쉬지 않고 충혈된 그곳을 흡입했다. 부율은 자신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오 님을 만족스러워하며 성기를 움직였다.
“하윽! 하아으읏!”
“실망스러우냐. 네 주인이 이리도 더러운 창부여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모순이 되는 것은 뱃속이 뜨겁게 들끓을 정도로 가시지 않은 흥분이었다. 나는 수오 님의 입술을 더럽히고 있으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 부율은 그런 나를 눈치챈 것인지 두 손으로 내 젖꼭지를 아프도록 비틀었다.
“네 주인의 머리털이라도 붙잡고 마음대로 흔들어보는 것은 어떠하냐. 분명 익숙해 있을 게다.”
“흑… 아, 으으흣….”
언제나처럼 햇빛에 청청했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던 그 고운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죄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추악한 시선으로 수오 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 이젠 정말…….”
나는 수오 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밀어냈다. 부율은 흥미가 가셨다는 듯 혀를 찼지만, 나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얌전히 있거라.”
수오 님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경멸도, 수치도 없었다. 단지 날 것의 본능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젖은 보지를 핥으며 성기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한계에 달한 그의 시선은 꽉 막힌 구멍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그는 기어이 손가락 하나를 구멍 안으로 집어넣고 말았다.
“아악! 흐아아윽……!”
이미 부율의 기둥으로 빈틈없이 막혀 있던 구멍에, 수오 님의 검지가 들어왔다. 그 참을 수 없는 이물감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뒤에서 나를 안고 있던 부율 역시 눈가를 찌푸렸다.
“젠장. 이게 뭐 하는 짓……!”
“이런 놀이를 원하셨던 것 아니셨습니까.”
수오 님이 미소를 흘리며 부율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 뻑뻑하지만, 애도 나오는 곳이 아닙니까. 곧 주먹도 들어갈 것입니다.”
“아으윽!”
질 속에 물이 점차 말라 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양 팔목과 발목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공포는 그렇게 나를 지배해 가고 있었다.
“분명 아시게 될 겁니다.”
움틀 거리며 나를 괴롭히던 손가락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이 아이의 보지가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수오 님의 손가락은 내가 싸지른 애액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부율의 눈이 날카롭게 그어졌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어가고 있었다.
“입 닥치거라.”
“아……!”
남자가 자세를 바꾸었다. 그는 나를 개처럼 엎드리게 한 뒤 무자비하게 두 엉덩이를 쥐었다. 한쪽 뺨이 찬 바닥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더는 수오 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흐…! 아. 하읏……!”
그는 말없이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엉덩이가 푹푹 내려앉을 지경으로 격렬하게 나를 짓눌러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소리는 뒤처지지 않고 계속해서 귓가를 좇아왔다. 수오 님의 가팔라지는 숨소리. 내가 뒤로 범해지는 장면을 보며 자위를 하는 적나라한 신음이었다.
“하, 크흑!”
부율이 두 번째 사정을 끝내고 내 젖꼭지를 바락 쥐어짤 때쯤이었다. 사타구니로 흐르는 정액은 확실히 생생한 감각이었지만 그보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내 이마로 흐르는 뿌연 점액질.
수오 님이 내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리고, 부율이 뿌린 정액 위로 재차 자신의 흔적을 새긴 것이다. 쓴맛이 났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상황을 정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떤 이도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떨어질 수 없었다.
“누야.”
수오 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섬세한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기까지 하였다.
“…모르겠구나.”
그는 쓰러진 내 귓가에, 부율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점차 깊은 잠에 빠져가고 있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함께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아.”
수오 님의 목소리는 거기에서 그쳤다. 부율은 쓰러진 나를 안아 올렸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 필요가 있었을까. 발악할 공간도 없는 이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바닥에 놓인 시든 꽃에 불과했다. 되살아날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 * *
더 아래로.
이러면 안 돼. 알잖아.
괜찮아.
이건 아니야. 네가 더 잘 알잖아.
부탁이야.
환각이었다. 내가 보는 것이 거짓임을 아는데도, 나는 속절없이 속아버린다. 자살하기 직전의 삶. 나는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금세 까먹고 만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너… 너 진심이었어?
누군가 묻고 있었다. 모든 것을 저지르고 난 뒤의 질문은 퍽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는 궁금해했다. 하지만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눈을 감아 버렸다. 정적만이 흘렀다.
대답해. 대답해줘.
처절한 절규. 혼자만 지르는 울분에도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점차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디엔가 누워 있었다. 편안했고 따듯하기도 했다. 그래. 마치…….
환각 속의 침실에 누워있는 여자처럼. 남자의 절규에도 끝내 외면하는 저 여자는 나를 닮아 있었다. 과연 죄를 저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누룩.”
눈을 떠 마주한 현실 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 새벽임에도 방 안의 공기는 더웠다. 그는 반라의 모습으로 내 옆에 누워 있었다.
“…아.”
그를 본 내 얼굴에 비친 당혹감을 들키기라도 한 걸까. 그는 내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 위를 덮쳐왔다.
“의원을 찾아가 네 상태를 물어보았다.”
부율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를 걱정스레 내려 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얼굴을 봐도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열병을 앓은 자가 기억을 잃는 경우가 있다더구나.”
“…기억?”
그렇다면 얼마 전 열병의 탓이었던 걸까. 내가 지난 며칠 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했다.”
부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내 그가 등허리를 굽히고 내 품으로 왈칵 쏟아졌다. 묵직한 그의 무게가 나의 전체를 감싸 안았다.
“내가 너에게 몹쓸 짓을 했다.”
유독 그가 파묻힌 어깨가 뜨거웠다. 그러다 그의 흐느끼는 소리에 그것이 눈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너를 떠나게 만든 거야.”
“부, 부율 님.”
“내가 이래서 네가 나를 떠났던 거였어.”
그는 착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죄를 고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엉성하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올렸다.
“저는…….”
남청색의 머리카락이 새벽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수오 님의 짝이 될 그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떠나지 않아요.”
부율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가는 내 예상대로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동시에 기쁜 눈동자에 내 얼굴이 있었다. 그는 내 말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다시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지 못한다. 나는 갇혀 있는 신세였다. 아무것도 아닌 역할에다가, 더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시종이었다.
“…내가 누룩, 너를.”
남자는 지치지 않고 입술을 움직였다. 그의 눈에 더는 지난밤과 같은 결기는 없었다. 무너져내린 것일까. 다만 나를 보는 눈빛에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보일 뿐이었다.
“너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겠다.”
“…네?”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도록. 그리 만들어 주마.”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자는 내 반응에 미소를 그으며 내 두 손을 풀어 주었다.
“너를 수도로 데려갈 것이다.”
“자, 잠시만요.”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삐끗거렸다. 이런 전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나는 남자가 풀어진 틈으로 재빨리 자리에 일어섰다.
“어째서…….”
“기억하지 못하니 내 직접 네게 고백하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진다. 나를 보는 그의 눈은 새벽빛보다 따듯했다. 그는 일어선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들어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남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네……?”
처음 듣는 부율의 사정. 그가 이곳에 온 과정에 숨겨진 이유. 소설 속에서 미처 읽어 내리지 못했던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가 수오 님이 아닌 내게, 그 이유를 말해 주려 하고 있다.
“혼약을 깨기 위해 온 것이지. 비역이 취미라는 헛소리로 도망쳐 나온 것뿐이다.”
“헛소리라 하시면…….”
“창부를 품은 적이 없다. 물론 청루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이야기는 바뀌어 있었다. 창부를 품은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 소설 속과는 다른 설명이었다. 나는 굳어진 얼굴로 그의 어깨너머를 응시했다. 소설과 같은 대사들, 같은 장면들은 그동안 여러 번 등장했을 터였다. 지난밤, 그가 수오 님에게 했던 대사. 수오 님이 그에게 했던 대사들처럼.
하지만 부율이 지난 그의 시간 속에서 소설과 다른 선택을 해왔다는 것은 어떤 것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러니 내 곁에 있거라.”
굳어진 내 얼굴을 감싸는 그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빠르게 흘러가던 전개가 갑자기 멈추어진 것처럼,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나는 그제야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혼란 속에 유일하게 소설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의 표정이었다.
수에게 처음으로 그의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의 두 뺨이 꽃의 색으로 묘사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영산홍 색.
“나는 너와 함께 죽어도 좋을 만큼.”
“…….”
“너를 연모하고 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드디어 그 꽃잎의 색을 상상할 수 있었다.
* * *
십여 년을 지켜 봐온 제자의 불충은 이미 충분히 인지하였고, 뒤따라오는 그의 고집 또한 어찌어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의 걱정은 수도에 당도한 순간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청자색 용마루. 대문을 밀고 흑색의 돌담에 발을 디디자 자신의 처지를 여느 때보다 절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한숨을 쉬고 햇빛을 피해 눈을 뜨자, 짙은 청삼(靑衫)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아직 청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중년의 남자는 부율의 아비, 술원성(戌圓成)이었다. 연은 회랑에 나와 있는 그를 보고 멀리서부터 허리를 숙였다.
“늦었구나.”
연을 보는 눈초리가 못마땅한 듯 가늘어진다.
“그놈과 함께 음풍농월이라도 하고 온 게냐.”
“가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연은 고개를 저으면서까지 술원성의 말을 부정했다. 애초에 제자는 용색(用色)이나 하자고 창관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과 시를 지을 때도 술을 마다하던 녀석이었다. 술원성이 그걸 모를 리가 없는 걸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제 아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달포 후면 황궁으로부터 소식이 있을 것이다.”
“…부율 님께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좋든 싫든 부마도위에 올라야 할 것이다.”
“…….”
앞으로 달포. 그것이 부율에게 허락된 방황의 시간이었다. 연의 입가가 굳어진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스승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부율이 가여웠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든 것이었을까. 술원성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연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공주께서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신지 10년입니다.”
황가의 가족들이 거의 평생을 궁에서 지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공주는 유독 심했다. 매년 열리는 제사 의식에서조차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며, 궁 관료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본 자가 없었다. 연이 부율의 말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뒷소문 역시 그의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현 상황에 답이 되는 것은 없었다.
정말 그녀는 실존하는 것일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혼약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게냐.”
술원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연은 그제야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주제넘은 관심이었습니다.”
“…….”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애초에 정해져 있던 선은 아슬아슬한 위치만큼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혼인은 정해진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술원성의 입은 확고했다. 황가를 향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공주는 문제가 아니니까.”
자신의 가문과 황궁을 이어줄 동아. 공주는 단지 그 매듭을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소문은 아무래도 좋았다. 설사 공주가 죽었다고 해도, 언약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황제 역시 자신의 힘이 필요함을 술원성은 확신하고 있었다. 남겨진 과제는 단 하나였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 모두가 믿을 법한 완벽한 혼례. 그러나 황제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이 술원성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녀석은 아직도 헛것을 좇고 있더냐. 아니면 정말 사내가 좋아지기라도 한 것이냐.”
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조차 자신의 제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단언할 수 없었다. 차라리 어렸을 때처럼 짓궂은 장난을 일삼았다면 나았을까.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변해버린 부율은 언뜻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집착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도, 연은 확신할 수 없었다.
“비역질을 하는 거라면 사내를 첩으로 삼아도 되는 것을.”
“부율 님께서는…….”
연은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가 꾸고 있는 꿈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걸까. 어렸을 때 보았던 악몽을 현재까지도 보고 있다고.
“잠시 잊으신 것뿐입니다.”
하지만 연은 사실을 고하는 것 대신 거짓을 선택했다. 옛 제자를 향한 은정(恩情)이기라도 한 걸까. 연은 그의 한쪽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를 믿어 주지 못한 죄책감이 아직도 이리 남아 있었단 말인가.
“…결국은 돌아오실 겁니다.”
연은 자신의 대답에 자신할 수 없었다. 그저 소망할 뿐이었다. 제자가 믿는 숙세(宿世)가 하루빨리 무너지기를. 그래서 그의 정신을 앗아가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지만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부율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하지만 연은 가슴 속의 들끓는 의혹을 혼자 조용히 묻었다. 부율을 제외한 모두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