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콜릿
아침부터 레인은 부산스럽게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목욕을 마치고서 화장은 옅게, 치장은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조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 레인의 조급한 마음을 대변하듯 곁에 붙어 있는 사역마가 셋이었다.
평소 무르핀 한 명만 불러 놓고서 화장대 뒤편의 침대에 누워 있는 에이든을 향해 이런저런 말을 재잘거리며 느긋하게 준비하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아카데미 졸업 논문을 낼 때도 저렇게 다급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반려가 된 이후로 보게 된 다양한 레인의 표정들이 퍽 신기하면서도 귀여워 말없이 웃고 있는 에이든을 향해 레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 벌써부터 줄 서진 않았겠죠?”
“지금 아침 여덟 시야. 네가 말한 가게는 열 시에 문을 열고.”
“그래도……. 인기가 많은 가게래요. 아홉 시부터 줄이 장사진이라 그랬다고요.”
레인은 두 시간이나 일찍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불안한지 양손을 손바닥이 마주하도록 해서 비볐다가 손가락을 힘주어 매만지는 등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레인이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륙에서는 제법 이름을 떨친 초콜릿 가게 르잘린이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찾아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실 가게라는 말에도 조금 어폐가 있긴 했다. 르잘린은 일정한 지역에 가게를 두지 않고 대륙 전체를 횡단하며 가판대를 세우고 물건을 파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마을을 도는 서커스단과 비슷한 영업 방식이었는데 처음에는 저런 걸로 장사가 되겠나 싶었으나 저렴하면서 맛있는 디저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더니 이제는 대륙의 명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르잘린에 대한 소식을 에밀리(도대체 이 여자하고는 왜 이토록 오래도록 연락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슬슬 연을 끊을 때도 된 것 같은데)로부터 전해 듣고서 이렇게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치장을 끝마친 레인에게 다가갔다.
새파란 강물처럼 굽이치는 머리칼은 가볍게 리본으로 묶어 정리했고, 얼굴에는 화장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옅은 분홍빛 입술이 생기를 더해 주고 있어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옷도 정강이께까지 오는 체크무늬 치마에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신고 있는 신발은 굽이 낮고 발목을 감싸 주는 레이스업 부츠였다. 화려한 장신구도 거의 하질 않아 이제 막 성인을 넘겼거나 성인을 앞두고 있는 소녀처럼 보였다.
“에이든 님도 어서…….”
갑작스레 뺨에 닿은 익숙한 감촉과 촉, 하는 촉촉한 소리에 레인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면서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은 에이든을 재촉하려던 말이 그대로 쏙 들어가 버렸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에이든을 올려다보자 그는 씨익,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좀 귀엽네, 레인.”
“…….”
“사랑스러워.”
나지막이 내뱉는 칭찬에 레인의 뺨뿐만 아니라 귀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쿵쿵 요란스레 뛰면서 시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더니 이내 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궜다.
자신은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레인의 반응을 볼 때마다 에이든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좀 더 부끄러워하는 레인의 모습을 잔뜩 눈에 담고 싶었다.
파르르 떨리는 하늘빛 속눈썹과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황금빛 눈동자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뜨거운 한숨. 가끔 하는 손부채질까지.
레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품에 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에이든은 허리를 숙여 레인을 자신의 품 안에 끌어안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준비하고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금방 올게.”
“아… 네, 네.”
그러고는 이번에는 귓불에 대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예민한 부위에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순간 레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에이든은 목덜미와 쇄골 사이로 흘러내린 레인의 머리칼을 귀 뒤로 정리해 주며 가깝게 붙였던 몸을 떨어트렸다.
그새 레인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어디 하나 붉어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고 있는 신발을 벗기면 그 발끝마저도 붉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발밑에 무릎 꿇고 앉아 발가락을 혀에 넣어 볼까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단순히 발을 핥는 것만으로 끝낼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되면 그토록 고대하던 르잘린의 초콜릿을 사지 못한 레인이 자신을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낼 것이 분명했기에.
아쉽지만 이쯤 하기로 한 에이든은 멍하니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어 있는 레인을 깨우듯 어깨를 토닥인 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레인은 온몸에 들어찬 긴장과 흥분을 빼내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잔뜩 달아올라 터지기 직전이나 다름없는 뺨에 연신 손을 가져다 대며 열을 식히기 위해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것이 된 에이든은 너무나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르잘린의 인기는 에이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미리 불러 둔 마차를 타 시내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가게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각을 확인해 보니 아직 9시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초콜릿 하나가 뭐라고 벌써부터 줄을 서 대는지 에이든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차라리 마법으로 물건을 훔쳐 오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에이든은 레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레인은 (인간의 기준으로) 비도덕적인 일을 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 했고, 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아 다행이라며 조잘거리는 입술이 예뻤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입술에 꽂히는 에이든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인은 에이든의 곁에 꼭 붙어 서서는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에요. 에밀리 말로는 자기는 세 번이나 줄 섰는데 두 번을 허탕을 쳤다 마지막에 겨우 샀다고 했거든요.”
“아, 그래?”
“초콜릿은 어떤 걸로 사는 게 좋을까요? 음, 종류가 다양해서 고르기 어려운데……. 혹시 좋아하는 맛, 따로 있으세요?”
“글쎄. 딱히 아무거나 상관없을 것 같은데.”
“……?”
“네가 먹는 걸 같이 먹으면 되니까.”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며 내뱉는 에이든의 말에 레인은 그 자리에 굳어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속눈썹만을 깜박거렸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 버린 탓이었다.
초콜릿을 자신과 함께 나눠 먹을 속셈이었다. 분명 평범한 방법은 아닐 테고, 입술에 내리꽂히는 시선으로 봐서는 초콜릿을 사자마자 입 안에 넣고서 입술을 진하게 맞붙이고 있을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남사스럽기 짝이 없는 말을 들은 레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뻐금거렸다.
남이 들으면 어떡하려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고, 에이든이 내뱉는 이런 종류의 부끄러운 말에는 면역이 전혀 없어 차라리 침대 위에서 음담패설을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에이든은 쿡쿡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레인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뚝딱거리는 레인의 귀여운 모습을 남에게 함부로 보일 수는 없었다.
아직도 떨린 가슴이 진정이 안 되는지 정신없이 팔락이는 레인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에이든이 물었다.
“르잘린에서는 위스키봉봉 같은 것도 파나?”
“…위스키봉봉이요? 음, 소량으로 만든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저희 순서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정 안 되면 만들면 되니까, 상관없으려나.”
레인의 말에 그렇게 중얼거린 에이든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수를 눈대중으로 가늠해 보았다.
대략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기다린 지 30분이 넘었으니 곧 가게 문이 열릴 것이고, 초콜릿을 산 뒤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저택으로 돌아가면 티타임을 가지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 된다.
에이든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레인을 안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레인의 옅은 신음이 들려왔다. 손에 힘을 풀자 레인이 슬금슬금 자신의 눈치를 보며 허리에 팔을 감으며 물어 왔다.
“혹시… 기분 안 좋으세요?”
“왜?”
“아니, 너무 아침 일찍부터 줄 서서 피곤하신가 싶어서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초콜릿을 살 수 있을지나 고민해. 이렇게 나왔는데 못 사고 돌아가면 억울하잖아.”
에이든의 다정한 말에 레인은 굳어 있던 표정을 금세 풀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꼭 구매에 성공해서 에밀리에게 자랑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에이든은 그런 레인의 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목 끝까지 차오르는 기갈을 참아 내고는 말없이 미소 지어 보였다.
부산을 떤 덕분인지 레인은 르잘린의 초콜릿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위스키봉봉은 없었으나 우유를 넣어 부드러운 풍미의 밀크초콜릿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각을 맞추어 포장된 봉투를 손에 든 레인은 무척이나 들떠서는 어린 아이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초콜릿을 살 수 있을지 몰랐거든요.”
“한 시간도 더 일찍 가서 기다렸는데 손에 못 넣는 게 이상하지.”
“그렇지만 에밀리는 두 시간 전에도 줄을 섰다고 했단 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어요. 위스키봉봉이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종알거리던 레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가 먹고 싶다고 했던 초콜릿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어차피 에이든에게 인간의 음식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정기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는 영양분을 보급하는 데에 초콜릿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위스키봉봉이든 밀크초콜릿이든 에이든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생각하는 레인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의 육체를 완전히 자신에게 맞게 길들여 정기를 취했을 때만큼이나.
에이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장미의 빛깔이 그대로 옮겨와 물든 것처럼 붉은 레인의 뺨을 쓸었다. 뺨에 닿는 다스한 온기에 레인이 문득 고개를 들어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황금빛 눈동자를 부드럽게 접으며 웃어 보였다. 싱그러운 햇살을 머금은 것처럼 레인의 미소가 빛났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레인의 해맑은 물음에 에이든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레인에게 차갑게 대꾸하고 싶지 않은데, 가슴 깊이 욕망이 끓어오르면 오를수록 목소리가 낮아지고 또 차가워졌다. 그렇다고 순간적으로 당장 입을 맞추고 옷을 벗겨 범하고 싶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아무리 악마에 이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레인을 먹어 치웠다고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는 정도의 예의는 차릴 줄 알았다.
레인이 자꾸만 그 예의와 인내를 시험해서 그렇지.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렇게 자꾸 사랑스럽게 웃어.”
에이든은 약간의 짜증과 불안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놈에게 순순히 넘어갈 레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빼앗길까 봐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전처럼 웃어 주면 어느 누가 넘어가지 않겠는가.
레인은 그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한차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에이든이 그러하듯 손을 뻗어 그의 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에이든 님은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렇게 잘생기셨어요. 딴 여자에게 뺏길 것 같잖아요.”
“…그럴 일은 없어.”
“저도 그럴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참지도 마시고요.”
에이든의 뺨을 감싸던 손을 거두며 내뱉은― 레인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예상 밖의 말에 에이든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아침 식사를 거른 탓일까. 뭘 알고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평소와 다름없는― 자각 없는 배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레인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끝이 조금 떨려 왔다.
악마답지 못하게도.
“내가… 뭘 참아?”
“어……. 방금 전에요. 뭔가 하고 싶으셨던 거 있지 않으셨어요?”
에이든의 물음에 레인은 조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에이든 님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시면 두 눈이 조금 짙게 가라앉거든요.”
“…….”
“앗, 지금처럼요! 지금처럼 눈빛이 검게…….”
문장은 미처 이어지지 못한 채 에이든의 입술에 가로막혔다. 예상 밖의 행동에 놀란 레인은 몸에 힘이 풀리면서 들고 있던 초콜릿 봉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가게 주인의 꼼꼼한 포장 덕분인지 봉투 밖으로 내용물이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힌 이상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곳이 시내의 거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에이든은 정신없이 레인의 입술을, 당황한 듯 뻣뻣하게 굳어 있는 혀를 탐하며 입고 있는 블라우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에이든이 돌연 입을 맞췄을 때보다 배로 놀란 레인은 에이든의 가슴팍을 밀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레인은 고개를 비틀어 끈질기게 따라붙는 에이든의 입술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잠시만요. 지금 집 아니고, 밖이에요…….”
“…제길.”
그는 한차례 욕지거리하더니 이내 레인의 손목을 붙잡고는 골목 안쪽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인은 그의 손에 이끌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걷기 편한 신발을 신고 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의 보폭을 쫓아가다 중간에 넘어졌을 것이 분명할 만큼 다급한 발걸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가게 뒤편의 좁은 골목에 닿자마자 에이든은 레인을 벽 쪽에 조심스레 밀치고는 거칠게 입술을 붙였다. 그러고는 하던 것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블라우스를 들추고는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풍만한 가슴을 손아귀에 잔뜩 쥐어 주물렀다. 맞붙인 입술 사이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응… 흐읏……!”
“이젠 아주, 하아, 날 갖고 놀아, 응?”
“아, 그런 거… 하으,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하게 올려다보면 내가 안 미치고 배기겠어?”
“그건……. 아흑!”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같은 거친 숨결이 섞인 목소리로 내뱉는 에이든의 말에 레인은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에이든이 괘씸하다는 듯 목덜미를 이를 세워 물어 오는 통에 모든 문장은 고통에 새하얗게 지워졌다.
새하얀 목덜미에 난 붉은 잇자국을 혀를 넓게 내어 핥던 에이든은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 텔레포트를 이용해 저택의 침실로 곧장 이동했다. 그러고는 레인을 침대 위로 쓰러트렸다.
에이든은 완전히 색이 짙어져 검은색에 가까워진 눈동자로 레인의 모습을 훑었다. 그새 매듭이 헐렁해졌는지 하나로 질끈 묶었던 레인의 풍성한 머리칼이 침구 위에 어지러이 흩날렸으며, 입고 있는 옷도 자신의 거친 손길에 잔뜩 흐트러져 레인이 손에 넣고 기뻐했던 르잘린의 초콜릿보다도 먹음직스러웠다.
혀를 내어 요사스럽게 입술을 핥아 올린 에이든은 마법으로 방 안의 커튼을 모두 쳤다. 정오의 맑은 햇살이 모두 커튼에 막히자 방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에이든이 한차례 손가락을 튕기자 커튼 아래에 그림자처럼 맺혀 있던 눈부신 햇빛 또한 완전히 사라져 캄캄한 밤이나 다름없었다.
어둠에 잠긴 방 안, 에이든이 한 마리의 짐승처럼 레인의 몸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오늘 아침은 초콜릿으로 하지.”
“…….”
“레인이 만들어 줄 위스키봉봉이랑.”
씨익, 양 입꼬리를 당겨 웃는 그의 미소가 악마의 그것처럼 진심으로 사악하고 또 기뻐 보였다.
분명히 길바닥에 떨어트린 것으로 기억하는 르잘린의 초콜릿은 어째서인지 에이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정성스런 포장을 끄르자 안의 내용물이 부서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모든 초콜릿이 장식이 떨어져 나가고 표면이 갈라져 부서지지는 않았다. 비교적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많이 있어서 그것은 따로 빼 두고, 부서진 초콜릿의 잔해를 손바닥에 쥐었다 폈다.
무른 초콜릿은 에이든의 손바닥 안에서 쉬이 뭉개졌으며 이윽고 중탕을 한 것처럼 액체의 형상으로 녹아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마법 같아서 레인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시선에 에이든은 살포시 미소 지으며 나체가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레인의 몸에 초콜릿을 펴 바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뜨끈한 액체가 피부에 닿는 생소한 감각에 레인이 몸을 잘게 떨며 말했다.
“아, 몸에 바르려고 산 거 아닌데…….”
“괜찮아. 먹을 거니까.”
“먹는다고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의아한 눈길로 에이든을 쳐다보며 되묻자 에이든은 초콜릿을 다시금 손에 머금고는 딱딱하게 서 있는 젖꼭지에다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장 입에 담았다. 예민한 부위에 닿는 에이든의 축축하고 단단한 혀의 감촉에 레인은 몸을 바르작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하읏, 흐… 으. 갑자기… 그러시면, 아……!”
“…맛있어.”
“흐읍…….”
“무척이나 달고 감미로워. 네 정기처럼.”
자신의 온몸을 핥아 올리며 자신과 시선을 맞추고서 똑똑히 내뱉는 말들에 레인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욕망에 잠겨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짙어지다 못해 검어진 눈동자로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이는데 얼굴도, 몸도 달아오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차마 두 눈 뜨고 바라볼 수 없는 광경에 레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사이, 에이든은 초콜릿이 발라진 레인의 몸에 시럽과 위스키를 차례로 부었다. 침대 시트가 더러워지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끈적끈적한 시럽과 부드럽고 따끈한 액체가 된 초콜릿, 물처럼 몸을 타고 흐르는 위스키가 레인의 몸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에이든은 말없이 레인의 몸 위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봉봉을 감상하다 이내 입에 담았다. 인간의 음식은 (와인을 포함한 술 종류 외에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레인의 몸에 담아 먹으니 무척이나 달고 맛있어서 끝없이 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쇄골에 고인 위스키를 소리 내어 마시고는 밑으로 내려가 가슴팍에 매달린 시럽을 입에 담았으며 피부에 어린 초콜릿을 핥아 올렸다.
위스키 때문인지 레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기 때문인지 레인을 탐하면 탐할수록 정신이 몽롱해졌다. 점차 레인에 취해 가는 기분이었다.
“맛있어서 미칠 것 같아, 레인.”
“에이든 님…….”
“더 먹고 싶어.”
그러고는 레인의 음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온몸을 훑고 지나간 에이든의 애무에 레인은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는지 다리 사이가 애액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완전히 젖어서 번들거리는 질구를 문지르자 자신의 것을 조르듯 입구를 뻐끔거리며 울컥 애액을 뱉어 냈다. 순간 정수리께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어쩌자고 이렇게 야해 빠졌는지.
에이든은 목 끝까지 치미는 욕지거리를 눌러 삼키고는 레인의 양 허벅다리를 벌리고서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자신의 질척해진 아래가 에이든에게 훤히 보일 거라 생각하니 창피해진 레인이 황급히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이미 에이든의 몸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에이든은 허벅지 안쪽을 혀로 가볍게 쓸어 올리고는 자그마한 자극에도 빠끔거리는 구멍에다 손가락 두 개를 한 번에 삽입했다. 순간 레인의 허리가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더니 손가락을 기쁜 듯이 조이기 시작했다. 이내 물이 찰박이는 듯한 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레인의 신음이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동안 받아오던 사이즈가 있어서 그런지 도통 만족을 모르는 아랫입은 금세 다른 것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하읏, 으… 흐응! 에…이든 님, 흣.”
“레인이 왜 자꾸 날 부를까, 응?”
“이거, 흐윽, 말고요…….”
“이거 말고, 뭐?”
“저도 에이든 님 거, 아흑, 먹고 싶어요.”
레인은 황금빛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에이든을 쳐다보았다. 정말 제 것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지 애원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흥분하여 속살이 콰득콰득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댔다.
에이든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레인의 한마디에 뒷골이 당기는 것은 물론이고, 분신은 이미 빳빳하게 서다 못해 아프기까지 했다.
자신의 먹이로 있을 적에는 유달리 수줍음이 많아서 윗입으로 매번 싫다는 소리만 내뱉기에 하루 날을 잡아 지하실로 데려가 교육을 시켜야겠다 생각했던 과거의 다짐이 우습게 느껴졌다.
반려가 된 레인은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만큼 쑥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에이든은 가면 갈수록 솔직해지고 음란해지는 자신의 반려를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완전히 레인에게 미쳐 버릴 것만 같았기에.
에이든은 레인이 바라던 대로 레인의 내벽을 희롱하던 손길을 거두고는 바지를 끄르고 아랫배에 올라붙은 성기를 문지른 뒤 그대로 단숨에 내벽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몇 배로 커진 부피감과 온통 내벽을 짓이기듯 파고드는 압박감에 레인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벅차오르는 쾌감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레인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에이든을 찾았다. 에이든은 허공을 맴도는 레인의 손을 낚아채 깍지를 끼고는 아래를 뭉근하게 쳐올렸다. 그러고는 아직 레인의 상체에 남아 있는 초콜릿의 흔적을 혀로 핥으며 물었다.
“맛있어, 레인?”
“흐응, 흑, 네, 하으… 좋아요.”
“나도, 하아… 좋아, 레인.”
침대 위에서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밀려오는 열락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며 짐승처럼 울며 신음하는 것뿐이었다.
* * *
화끈하면서도 달콤했던 아침 식사가 끝나자 레인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온몸에 초콜릿과 시럽, 위스키를 부어 대 끈적끈적했으나 에이든이 혀로 부지런히 핥아 먹은 덕분인지 남아 있는 흔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저기 깨물린 붉은 잇자국과 아랫배에 가득 차 있는 정액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에이든이 사역마들을 시켜 더러워진 침대 시트와 침구를 갈고, 한밤중처럼 방 안을 어둡게 만들었던 커튼과 마법을 걷을 동안 레인은 침대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물거리는 눈동자가 이미 수마에 사로잡혀 있어 언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색색 숨을 몰아쉬는 레인의 곁에 다가간 에이든은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어루만지며 물었다.
“다시 커튼 쳐 줄까?”
에이든의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던 레인은 잠기운이 느껴지는 몸짓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자그마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기에 잠도 안 자고 고집을 부리나 싶어 에이든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왜. 아니면 목욕부터 할래?”
레인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듯 몇 차례 입술을 달싹이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초콜릿 남아 있어요?”
“먹고 싶어?”
“네…….”
레인의 대답에 그제야 에이든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정신없이 몸을 섞으면서 르잘린의 초콜릿을 맛보았지만 정작 기대했던 레인은 초콜릿을 단 한 점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교적 상태가 멀쩡한 초콜릿을 따로 빼 두길 다행이었다.
에이든은 레인과 함께 줄을 서가며 산 초콜릿을 접시에 담아 앞에다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침대 위에 흐물흐물 녹아 있던 레인이 힘겹게 잠기운을 떨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하얀 접시에 담긴 동그란 모양의 초콜릿을 말없이 바라보던 레인은 조심스레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입 안으로 퍼져가는 달짝지근한 맛에 레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는 모양이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 레인을 바라보던 에이든이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
“네……. 진짜 맛있어요.”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레인의 표정에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에이든은 레인의 곁에 바싹 다가가 붙어 앉고는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손끝으로 훔치며 캐묻기 시작했다.
“나랑 이 초콜릿이랑 어느 쪽이 더 좋아?”
“네? 갑자기요?”
“…좀 전까지만 해도 좋다며 울어 놓고는 그렇게 놀랄 일이야?”
“에이든 님, 혹시 초콜릿한테도 질투하세요?”
“…됐어.”
그저 레인을 조금 놀리려던 것뿐인데 도리어 마음이 상해 버린 에이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화들짝 놀랐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자신을 하찮은 초콜릿에 질투하는 남자로 만드니 마음이 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단단히 삐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에이든의 뒷모습에 레인은 저도 모르게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 반려가 된 사람이 토라진 게 그렇게도 재미있나 싶어 짜증 섞인 몸짓으로 뒤로 돌아보자 레인이 자신의 허리를 팔로 감아 폭, 하고 안겨 왔다.
느닷없이 레인을 품에 안게 된 에이든은 보기 드물게 당황한 듯 양손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정쩡히 허공에 두었다.
한참을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던 레인이 이내 고개를 들어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잠기운이 싹 달아났는지 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저한텐 에이든 님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
“맨날 에이든 님이 저 놀리시니까, 저도 한번 놀리고 싶어서 그랬어요.”
“…아, 그래?”
“화 덜 풀리셨어요?”
“그래.”
단답형으로 내뱉는 에이든의 무성의한 대답에 레인은 어쩔 수 없나, 하고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며 허리께에 감았던 팔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침대로 되돌아가 초콜릿 하나를 집더니 다시 에이든 앞에 섰다.
대체 뭘 하려나 싶어 가만히 레인을 지켜보고 있던 에이든은 초콜릿과 함께 돌아온 레인을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레인은 그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고는 초콜릿을 입에 물더니 양손으로 에이든의 얼굴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레인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속절없이 따라간 에이든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통해 초콜릿을 건네받았다. 입술에 어린 단 맛이 레인의 혀끝을 타고 들어와 순식간에 입 안 가득히 퍼져 나갔다.
동그란 초콜릿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혀를 얽는데, 혀끝에 은은하게 맴도는 초콜릿 맛과 입술에 닿는 레인의 부드러운 온기가 한데 섞여 좀 전까지 기분이 상했다는 것도 잊고 레인의 뒷목과 허리를 받쳐 들었다.
커다란 사탕 크기의 초콜릿이 손가락 한마디 반 정도로 작아졌을 무렵, 레인이 천천히 입술을 떼며 물었다.
“…지금은 화 풀리셨어요?”
“하아.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 온 거야?”
화가 풀린 건 둘째 치고 에이든에게는 레인이 이런 앙큼한 행동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가 더 중요했다. 분명 자신과 계약했을 적에는 처녀라고 했고, 자신이 아는 한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와 희희덕댄 적도 없을 텐데 자꾸만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듯 어디서 이런 깜찍한 발상이 나오는 건지 의문스럽기 짝이 없었다.
레인은 자신의 이런 당돌한 행동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골치가 아파서 죽겠다는 듯한 표정의 에이든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당연히 에이든 님한테 배웠죠.”
“나한테……?”
“네. 에이든 님이 절 이렇게 만드셨잖아요.”
“…….”
레인의 기가 막힌 대답에 에이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반려가 되기 이전에는 자신의 사랑스런 먹잇감이었고, 자신 이외에 다른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는데 누굴 보고 배웠나 물으면 당연히 그 대답은 에이든,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못 하는 순진해 빠진 성격은 바뀌지도 않으면서 이런 쪽으로는 저를 빼다 박은 것이 참 희한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레인이 에이든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며 물었다.
“혹시 이런 저한테 실망하셨어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저…….”
“그저……?”
“너 이상으로 널 가져야겠다 싶어서.”
“부디 가져 주세요, 저 이상으로.”
그의 단호한 대답에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대답할까 봐 약간 마음 졸인 듯 긴장으로 굳어 있던 레인의 표정이 확 풀어졌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금 맞붙었다.
초콜릿만큼이나 달콤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악마의 먹잇감은 사랑스럽다』 외전 완결
그 악마의 먹잇감은 사랑스럽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