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각인
레인이 기억하는 한, 에이든이 침대 위에서 평범하게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몸 구석구석을 다정하게 애무해 준 건 4년 전 계약을 맺고 처음으로 했던 관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의 레인은 이성과 섹스를 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고, 어떻게 하는 건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늘 배를 굶주린 탓에 일상적으로 배고프단 말을 중얼거리는 빼빼 마른 소녀에 불과했다. 당연히 연애나 사랑 같은 것을 해 봤을 리 만무했고, 성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여유 또한 없었다.
그런 레인을 위해, 에이든은 계약을 맺자마자 계약에 없는 맛보기 같은 섹스를 했다.
그러니까 몸을 섞는다는 건 이런 것이고, 이것은 침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며, 오로지 에이든의 손에서만 가능한 쾌락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일종의 준비 단계였다.
그리고 레인의 첫 경험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준비 단계가 아니라, 홀린 듯이 빠져드는― 열락의 세계로 향하는 초입과 같았다.
에이든은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레인이 바라던 대로 깨끗하고 청결한 집과 맛있는 음식, 따뜻한 온수가 나오는 욕실과 새 옷을 안겨 주었다.
아무렇게나 잘라 질끈 묶고 다니던 머리칼은 사역마의 손길을 빌려 에이든의 취향에 맞게 간단히 다듬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것치고는 몸 상태는 아주 나쁘지 않아 에이든이 준 새 옷이 퍽 잘 어울렸다.
사역마의 손길을 순순히 받으면서도 단 한 번의 계약에 바뀌어 버린 환경에 레인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친척 집을 전전하기 이전에는 자그마한 시골의 남작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권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고, 그 허울 좋은 이름마저도 부서져 내린 지 오래였다.
넓고 깨끗한 저택도, 맛있고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음식도, 촉감이 부드러운 새 옷도 모두 그때와 비교해도 월등히 좋은 것들뿐이었다. 자신이 바란 소원이었지만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 건지, 혼자서 지낸 세월이 제법 길어서 그런 건지 시중을 드는 사역마들을 포함해 이 모든 것들이 영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레인의 가장 큰 고민은 다름 아닌 에이든, 그였다.
그녀가 받은 모든 것들은 그에게 정기를 바치기로 약속하고 받은 것들이었다. 레인은 그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할지, 자신이 받은 것만큼의 가치가 있는 정기를 대가로 줄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아 불안했다.
게다가 레인은 단 한 번도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면 그의 맘에 들도록 노력이라도 해 볼 텐데, 대체 남녀가 침대 위에서 뭘 하는지 모르니 노력해 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아는 것이라고는 어찌 됐든 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는 것 정도였는데, 정말이지 아나 마나 한 지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저토록 잘생긴 남자를 본 적도 처음인데, 그 남자의 마음에 들기 위한 시도도 할 수 없니. 레인으로서는 침울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욕재계를 마친 레인은 사역마의 안내를 받으며 에이든의 침실로 향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에 가장 큰 문이 있는데 그곳이 에이든의 침실이었다.
안내를 마친 사역마는 레인에게 가벼이 고개를 조아린 뒤 모습을 감추었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꼭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두어 번 심호흡을 내뱉은 레인은 떨리는 손으로 노크를 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미처 멎기도 전에 안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들어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방에, 커다란 방만큼이나 커다란 침대 위에 에이든이 앉아 있었다. 막 씻고 나왔는지 검은 머리칼이 물기에 젖어 있었고, 계약할 때 입고 있던 제복 대신에 샤워 가운만을 걸친 상태였다.
벌어진 앞섶 사이로 보이는 맨 가슴팍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레인은 저도 모르게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어째서인지 뺨이 달아오르고 귀 끝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계약을 맺었을 때 보았던 단정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화려한 모습도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장신구를 벗어 던진 자연스러운 모습 또한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짙고 굵은 눈썹과 단정하게 쭉 뻗은 콧날, 물기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과 짙게 쌍꺼풀이 진―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시선. 살짝 벌려져 있는 얇은 입술 위에 떠오른 옅은 미소.
저런 남자랑 몸을 섞는다니, 터무니없을 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방문 앞에 멍하니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 레인을 흘깃 쳐다본 에이든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히 끌어 올려 웃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레인의 코앞에까지 다가와서는 드문드문 켜둔 촛불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어루만졌다.
뺨에 닿는 온기에 레인이 문득 고개를 들어 에이든과 시선을 맞추면, 그는 아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기다란 속눈썹이 눈꺼풀의 움직임을 따라 위아래로 펄럭이는 것이 보일 만큼.
그러고는 깊게 잠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그런 눈으로 보면 곤란한데.”
“…네?”
“사실 지금도 답지 않게 많이 참고 있거든.”
“뭐를요?”
“뭐… 이런 거?”
순진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인의 입술에 에이든의 입술이 조금 거칠게 맞물렸다.
훅 들어온 축축하고 뜨거운 입술의 감촉도 잠시, 잇새를 가르고 들어오는 혀의 움직임에 레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생소한 느낌이었다. 한 번도 타인의 침입을 허락한 적이 없는 예민한 점막 곳곳에 에이든의 혀가 닿았다.
“흐으…….”
척추가 쭈뼛 서는 듯한 이상한 감각에 자꾸만 야릇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 흐, 잠시만, 흡.”
조금만, 조금만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해 에이든에게서 멀어지려 가슴팍을 밀쳐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깊숙이 입 안을 파고들어 와서는 도망치려는 레인의 혀를 붙잡아 진득하게 혀를 얽었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서로의 타액과 호흡이 오갔다. 에이든의 혀가 닿을 때마다 레인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몸을 떨었다. 이미 에이든의 팔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점차 숨이 막혀 오는 데다가 혀가 얽힐 때마다 전신을 저릿하게 맴도는 이상한 감각을 참을 수가 없어 꼭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레 뜨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에이든의 시선과 마주쳤다.
점차 검어지는 잿빛 눈동자 속에서 레인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을 욕망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욕망의 크기가 아주 크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내 거친 숨결과 함께 에이든의 입술이 떨어졌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가 가느다란 은사로 이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툭 끊겼다.
레인은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슬며시 에이든의 눈치를 살폈다. 키스를 하는 도중에 눈을 뜬 게 혹시 마음에 안 들었나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에이든은 타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끝으로 핥아 올리며 반쯤 열려 있던 문을 닫아걸어 잠갔다.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게 느껴졌다.
“…미치겠네, 정말.”
그 말 한마디를 짓씹듯이 내뱉은 에이든은 곧장 레인의 손목을 붙잡아 침대가 있는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러고는 반쯤 집어던지듯이 침대에 눕히고는 그 위에 거칠게 올라탔다. 마치 한 마리의 성난 짐승 같았다.
침대에 내던져진 충격에 아파할 새도 없이 에이든의 손길이 레인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가느다란 허리를 지분거렸다. 입고 있던 슈미즈 드레스는 그의 손길에 걷어 올라가 하체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허리께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이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에이든이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정기를 바치려면 그 욕정을 받아 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하려고 하니 익숙지 않은 감각에 발밑으로 스멀스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레인은 저도 모르게 애원하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에이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오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저…….”
“쉬이.”
그는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레인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겠으니까.”
레인은 정말로 그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한 건지 알고 있는 건가,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니까, 뭔가 알 방법이 있겠지.
순순히 수긍을 하는 레인의 모습에 다시금 느리게 눈을 깜박인 에이든은 허리를 매만지던 손길을 아래로 가져가 허벅지 사이를 느릿하게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뼈까지 발라먹을 만큼 노골적인 손길이었으나 레인에게 맞춘 시선만큼은 좀 전과는 달리 제법 너그러운 빛을 띠었다.
“원래라면 짓밟고, 능욕하고, 울고불고 괴롭히는 게 취향이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까 봐 무서워진 레인이 바싹바싹 메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에이든의 짙은 눈썹이 일순 움찔거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늘은 평범하게 안을 거야. 다른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
“계약에 없는 관계지만, 쾌감을 알아야 정기를 바칠 수 있으니까. 쾌락이 뭔지 맛본다고 생각해. 물론 평범하게 안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국물도 없으니까.”
얼핏 들으면 귀찮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성가심이 느껴지는 말투였으나 레인은 그가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섹스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위해 본래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을 잠시 접어 두고, 무던하게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관계로 성적인 쾌감을 알려 주겠다는 말이었다.
생각지 못한 배려에 일순 긴장감이 확 풀린 레인이 에이든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왜?”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레인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이든은 순간 별 이상한 인간을 다 보네, 하는 표정으로 레인을 흘겨보면서도 예고했던 것처럼 레인을 그 혀끝으로, 달콤한 쾌락으로 천천히 녹여 먹었다.
* * *
지금, 레인이 느끼는 쾌락은 그때의 것과 닮아 있었다.
에이든은 작게 벌어진 레인의 잇새를 파고들어 거칠면서도 다정히 혀를 얽었다. 여린 점막을 슬슬 혀로 쓸어내리며 자신을 피해 안쪽으로 숨어드는 혀를 집요하게 감쳐 쥐었다. 그러자 레인의 입술 사이로 흐응, 하는 교태 섞인 비음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허리를 비틀었다.
에이든은 제 손으로 입혀 주었던 가운의 앞섶을 다급하게 풀어 젖혔다. 허리에 감은 끈을 끄르자 목욕으로 보송해진 나체가 드러났다. 손길이 닿는 대로 허벅지에서부터 허리를 지나 젖가슴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오는 체온이 뜨끈했다.
에이든의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이는지 레인의 몸이 흥분으로 가늘게 떨려 왔고, 그 떨림은 고스란히 에이든에게도 전해졌다.
잠시 물러서듯 천천히 입술을 뗀 에이든은 어딘지 모르게 취한 듯 나른해진 눈빛으로 레인을 내려다보았다.
레인은 에이든이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이 그런 에이든의 목에 팔을 감아 당길 줄은 스스로도 미처 몰랐다는 듯 놀란 기색이 선연한 눈빛으로 말없이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입을 맞추기 전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멎은 지 오래였고, 대신 눈물 자국이 선명한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입술이 타액에 젖어 반들반들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키스라서 그런지, 아니면 키스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탓인지 두 사람이 내뱉는 거친 호흡이 정적 속에서 조용히 뒤얽혔다.
한참을 말없이 레인을 내려다보던 에이든이 이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네.”
“…….”
“이렇게 내 구미를 잘 당기면서, 응?”
실망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뒤에 이어질 말을 속으로 삼키며 중얼거리듯 내뱉은 에이든의 목소리는 낮고 달았다. 그의 엄지손가락은 열이 오른 레인의 뺨 위로 선명하게 나 있는 눈물 자국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에이든은 붉은 혀를 내어 자신의 입술을 한 번 훑어 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레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젖어 있는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방금 전까지 부드럽고 매끄러운 입술이 맞닿아 있던 탓인지 그의 혀가 자신의 입술을 핥고 지나가는 순간, 레인의 심장이 아플 만큼 조이면서 조금씩 아래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퍼져가는 소름과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간지럼을 견딜 수 없어 저도 모르게 몸을 바르작거렸다.
“후우. 또 미치게 하지, 정말.”
훅 끼쳐오는―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강한 레인의 향취에 에이든이 한숨과 함께 짓씹듯이 내뱉으며 레인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낮고 음산한 에이든의 목소리에 조금 겁을 집어먹었는지 코끝에 닿은 레인의 목덜미와 어깻죽지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에 먹던 것과 느낌은 다르지만 확실히 이성을 잃을 만큼 다디단 정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레인에게서 맡아지는―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유혹적인 정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에이든은 레인의 가슴을 주물렀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손안에 가슴을 담아내듯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기분이 좋은 듯 레인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다정하게 애무를 해 준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조금 어색한 감은 있었으나 레인의 몸은 착실히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날들의 교육이 영 헛된 것은 아닌 듯했다.
제 마음껏 괴롭혀도, 괴롭히지 않아도 레인의 정기는 달콤했고, 어떤 경우에라도 에이든의 손길에 반응하여 흥분했다.
어느새 빳빳하게 선 유두를 에이든이 손끝으로 긁어내리자 교성과 함께 레인의 허리가 튕기듯이 튀어 올랐다.
레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있던 에이든이, 곧게 뻗은 목줄기를 따라 가볍게 입을 맞추며 올라갔다. 새벽 하늘빛을 띠는 푸른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귀는 이미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에이든은 레인의 귓가에 입술을 바싹 붙이고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흐으……. 네에, 읏!”
“내가 너한테 실망했을까 봐 무서워?”
“하……. 으응, 네, 네…….”
레인은 자신의 젖꼭지를 희롱당하면서 느끼는 쾌락에 우는 건지, 입에 차마 담고 싶지 않았던 제 심정을 다시금 짚어 가며 묻는 에이든의 취조 끝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두려워서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느새 에이든의 입은 레인의 귓바퀴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가까워져 있었다. 그가 호흡을 할 때마다 옅은 숨결이 레인의 여리고 민감한 귓가를 간질였다.
고막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숨결과 아래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저릿한 쾌감,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한 불안이 겹쳐져서 레인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혼란한 와중에 에이든은 레인의 고막에 자신의 목소리를 영원히 새기려는 듯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널 영원히, 내 먹이로서 살게 할 거야.”
“흐으……?”
제 귓가를 타고 간지럽게 흐르는 문장의 뜻이 제대로 이해가 되질 않아 레인은 신음을 흘리다 말고 슬쩍 시선을 돌려 에이든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동자를 굴려도 자신의 귓가에 바싹 붙어 있는 에이든의 표정은 눈에 담기지 않았다.
분명 선명하게 들려오는 호흡 사이로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영원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이 다급해진 레인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하려고 하면, 에이든은 그녀의 턱을 한 손으로 부여잡아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고는 다른 한쪽 손으로는 닫혀 있던 레인의 양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서 음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미 입구는 잔뜩 젖어 에이든의 손길이 닿자마자 기대감에 들뜬 듯 구멍이 움찔거렸다. 그동안 성실하게 해 온 교육의 효과였다. 그러나 그는 잔인하게도 입구 주변을 슬슬 어루만질 뿐, 둔덕을 가르고서 젖어 있는 입구에 손가락을 들이밀지는 않았다.
에이든의 애매모호한 행동에 레인은 여러모로 애가 타기 시작했다.
에이든이 자신의 귓가에 대고 한 말을 한 번 더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턱을 부여잡은 그의 행동은 그것을 명백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그런 데다가 이미 몸이 잔뜩 달아올라 그 근처를 스치기만 해도 입구가 움찔거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음핵을 툭툭 건드리거나 입구 주위를 맴도는 행동이 레인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자신의 몸에 폭 기대어 제 손아귀에 붙잡힌 채 반쯤 울상을 짓고 있는 레인의 얼굴을 보자 에이든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레인의 눈빛에 떠오른 감정이 너무나도 명확한 탓이었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너에게 실망을 해? 응?”
“…하으, 흑, 제발…….”
“영원히 내 먹이 해야겠네, 레인.”
참다못한 레인이 그의 팔뚝을 붙잡고 매달려 애원하자, 에이든은 그녀를 비웃는 척 레인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속삭여 주었다. 그러고는 바라던 대로 둔덕을 가르고서 삽입을 조르는 입구에다 곧장 손가락 두 개를 박아 넣었다.
“읏! 흐응… 하으…….”
이미 한껏 젖어 있던 레인의 내벽은 별다른 무리 없이, 오히려 기쁜 듯이 에이든의 손가락을 삼켰다. 그의 굵은 손가락은 이리저리 내벽을 휘저으며 희롱하면서도 정작 레인이 좋아하는 지점은 교묘하게 비켜 갔다.
레인은 본능적으로,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아랫입으로도 에이든을 조르기 시작했다. 허리를 비틀어 닿았으면 하는 지점으로 유도하거나, 더 깊숙한 곳으로 이끌기 위해 손가락을 조이듯 빨아들였다. 그러나 에이든이 그러한 레인의 수작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결국 에이든을 조르는 것에 실패한 레인은 자꾸만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는 쾌감과 해소되지 않는 욕구에 눈이 점차 풀리기 시작하면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비음 섞인 교성은 점차 짐승의 그것과 닮아 갔다.
손가락으로 쑤셔질 때마다 양쪽으로 벌린 허벅지가 잘게 떨리면서 애액이 넘치듯 흘렀다.
살결과 살결이 마찰하는 소리가 음란해지고 천박해질수록 레인은 괴로운 신음성과 함께 경박하게 허리를 비틀어 댔다.
참다못한 레인은 초점이 나간 눈동자로 에이든을 올려다보면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 아흑……. 제발, 더는 못 참겠, 흐윽!”
“부탁은 똑바로 해야 내가 들어주지.”
레인의 부탁을 들어 줄 생각도 없으면서 에이든은 상냥한 낯빛과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에이든의 아래는 이미 빳빳하게 선 지 오래였고, 뻐근하다 못해 아플 만큼 열이 몰려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꺼덕이고 있는 자신의 성기로 레인의 내벽을 단숨에 가르고 들어가 귀두가 가장 깊은 곳에 닿을 만큼 쾅쾅 박아 버렸을 테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본능을 견뎌 냈다.
지금 벌이고 있는 정사는 정기를 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게서 버려질까 두려움에 떠는 레인을 달래면서, 두 번 다시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길들여져 온 몸이 얼마나 음탕해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먹잇감으로서 구미를 당기게 하는지, 레인 또한 자신의 것에 얼마만큼 길들여졌는지.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깊이 새겨 줄 요량이었다.
“부탁은 위보다 아래가 훨씬 잘하는 것 같은데.”
“흐응! 힉, 하으…….”
“손가락을 씹어 삼키는 게 모자란다고 애원을 하네.”
“아, 안 돼……. 하앙!”
“자, 위로도 제대로 말을 해야지.”
절정에 달할 듯 달하지 않도록 잔인하리만큼 다감이 능욕해 대는 에이든의 손길에 울면서 도리질을 치는 레인을, 에이든은 다정하게 재촉했다. 어린 아이를 어르듯 여유롭고 느긋한 말투와 달리 레인의 아래를 쑤실 때마다 들려오는― 물이 찰박이는 듯한 소리는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다정한 재촉에도 레인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레인이 느끼는 지점만을 콱콱 문지르며 짓쑤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느끼는 지점을 교묘하게 비켜 가는 바람에 쾌감이 겹겹이 쌓여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이든이 자신이 느끼는 곳을 골라 손가락을 움직이자 지나친 쾌감에 레인의 가는 허리가 달달 떨렸다.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번져 에이든에게 버림받을까 불안해했던 것도 잊은 채 오로지 본능에 따라 더 큰 쾌락, 더 큰 환락만을 좇았다.
아래는 이미 에이든의 손가락 네 개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굵직한 남성의 손가락이 거칠게 안을 들쑤시고 있음에도 레인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크기의 것이 제 안을 무자비하게 들쑤셔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울고불고 애원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부를 쳐올리면서 꼬리뼈가 저릿해져 올 때까지 박아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에이든이 박아 주지 않는 것이 이렇게 괴로울 줄은 미처 몰라서, 본능에 져 버린 레인은 에이든의 옷자락을 양손에 쥐고서 애원했다.
“흡, 흐으, 제발, 박아 주세요. 손가락으로는 부족해요…….”
에이든이 말하는 대로 부탁했으니 레인은 당연히 그 부탁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레인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에이든은 애교 살이 두툼하게 올라올 만큼 산뜻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래, 손가락으로는 부족해?”
하고 레인의 상태를 확인하듯 다시 물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레인의 애액으로 흠뻑 젖은 손을 열심히 놀리며 쾌락으로 벌벌 떠는 허벅지 안쪽을 달래듯이 손바닥으로 슬슬 쓸어내릴 따름이었다.
절정에 가고 싶은데, 에이든의 손가락만으로는 갈 수 없어 애가 탄 레인은 에이든에게 잘못을 빌며 울기 시작했다.
“잘못, 흑, 했어요, 아흣! 흐응……. 뭐든 할 테니까 제발 가게 해 주세요. 부, 부탁, 흐으, 드려요.”
“음… 뭐든?”
레인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던 말이 흘러나오자 에이든은 슬며시 끌어당겨지는 입꼬리를 숨기고서 조금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레인은 에이든의 마음이 바뀔 새라 그의 팔뚝을 붙잡고서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뭐든지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흘러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에 에이든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아래를 쑤시던― 애액으로 푹 절여진 손가락을 빼내어 가만히 레인의 입술을 매만졌다. 레인은 반사적으로 혀를 내어 아양을 떨듯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에이든은 그런 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레인에게 한 가지 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해 줄래?”
퍽 상냥하게 물어 오는 에이든의 음성에 레인은 대답 대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이든의 입가에 덫에 걸린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깊은 욕망에 젖은 미소가 걸렸다.
“좋아. 잘하면 물이 안 나올 때까지 박아 줄 테니까.”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음산했으나 정신이 반쯤 나간 레인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다만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쾌락에 빠져 에이든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입 밖으로 내뱉었으나 무엇을 부탁해 올지 레인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렇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봐서는 그의 부탁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며, 아마도 언제나 하던― 맛있는 정기를 취하기 위한 각종 변태 같은 짓 중의 하나일 거라고 짐작해 볼 따름이었다.
예를 들면 에이든의 것을 본떠서 만든 딜도를 안에 품고서 간단한 심부름을 시킨다든가, 하루 종일 젖꼭지에 집게를 집은 채 생활하게 한다거나 저택 안에 사역마들을 모두 풀어놓고 누구든 마주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다리를 벌리는 등의 일들을 하리라고.
일전에도 해 본 적이 있는 것들이기도 했고, 무척이나 커다란 체력 소모를 요하는 것이었지만 성실히 에이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박아 주겠노라 약속했으니 몸이 달아오를 대로 오른 레인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열심히 해서 얼른 에이든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기를, 그 뭉툭한 성기를 사정없이 밀어 넣어 박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쾌락을 좇는 본능으로 가득 찬 레인에게 에이든은 잠시 자신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더니 이 옷을 입어 줬으면 한다며 투명하게 비치는 망사 옷과 함께 속옷을 건넸다. 손에 닿는 옷의 감촉이 얄팍한 것이 아무리 봐도 옷이 아니라 천 조각에 가까웠다.
게다가 속옷은 은밀한 부위만을 겨우 가릴 만큼 작은데다 선명한 붉은 레이스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반면에 속옷 위에 걸치는 원피스처럼 보이는 옷은 엉덩이를 겨우 덮을 만큼 짧은 기장에 살갗이 모두 비치는 검은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입어 볼 필요도 없이 속옷이 모두 비쳐 보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옷을 입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옷이었다.
레인은 거울 앞에 서서 에이든에게서 건네받은 옷으로 갈아입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아.”
어떤 식으로든 음란한 짓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가 건넨 옷은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딜 보나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오래전에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던― 변태적 취향을 가진 귀족의 애첩이나.
애첩은 맞긴 맞지. 일단 악마의 먹잇감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차림은 좀처럼 익숙하지가 않았다. 레인은 여태껏 그가 건넨 여러 옷을 입어 왔지만 그의 취향과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은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는 좀 더 은밀하게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쪽을 선호했지, 이렇게 그 의도가 노골적인 옷을 입히지는 않았다.
살갗이 모두 비치는 망사 원피스 사이로 드러나는 새빨간 속옷은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든 팔로 가려 볼까도 싶었지만 가리면 가릴수록 이상하게 천박해 보이기만 했다.
가슴을 가리면 음부가 도드라져 보였고, 사타구니를 가리면 가슴이 도드라져 보였다. 위아래를 모두 가리면 팔 사이로 드러난 가느다란 허리와 새빨간 끈이 골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엉덩이가 한없이 음탕해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음란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레인은 도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구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옷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가게가 따로 있나?’
이런 의구심이 들 만큼 에이든이 제게 건넨 옷은 변태적이기 그지없었다.
어딜 가려도 천박해 보이는 탓에 몸을 가리기를 포기한 레인은 다시금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가림막을 걷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에이든 앞에 다가섰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수치스러움에 차마 눈을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은 아래로 떨군 채였다.
에이든의 짙은 잿빛 시선이 레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시선이 닿는 자리마다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레인은 몸을 움찔거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에이든은 좀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하더니 이내 제 무릎을 툭툭 두들겼다. 무릎 위에 앉으라는 말이었다.
레인은 시키는 대로 그에게 다가가 무릎 위에 살며시 앉았다.
레인이 무릎 위에 앉자마자 한쪽 팔로 허리를 감아 안고는 젖가슴을 주물렀다. 방금 전까지 달아올라 있던 레인의 몸은 에이든의 손길에 금방 흥분하기 시작했다.
에이든은 레인의 귓가에 대고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척 잘 어울려, 레인.”
“아흐, 감사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컸는데, 에이든의 칭찬에 레인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에이든의 마음에 들었다면 레인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에이든의 것이었으니까.
옷을 갈아입느라 잠시 잊고 있던 흥분감이 되살아나면서 레인은 에이든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거렸다. 그러나 에이든은 레인이 칭얼거리기가 무섭게 가슴에서 손을 떼고서 무언가를 찾듯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뭘 찾는지 모르겠어서 의아한 얼굴을 하고서 올려다보면, 에이든이 물었다.
“망사로 된 끈이 같이 있었을 텐데, 그건 어디다 뒀어?”
“아, 혹시 이거 말하는 거예요?”
그렇게 대답하며 레인이 한쪽 팔을 들어 보였다. 희고 가는 손목에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끈이 리본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옷이랑 함께 들어 있긴 했는데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어 대충 손목에다 묶고 나온 것이었다.
그걸 본 에이든은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걸 왜 손목에 차고 있어?”
“아니, 그… 어디다가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많이 이상해요?”
“됐어.”
짧게 대꾸한 에이든은 원래의 용도를 알려 주려는 듯 레인의 손목에 감긴 끈을 풀어서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레인의 눈에다 감고서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묶었다.
“이건 이렇게 쓰는 거야.”
다가오는 손길에 감고 있던 눈을 뜨니 기분이 이상했다. 망사를 눈에다가 쓰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몰라도 세상이 조금 까맣게 비치는 것이,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을 자신의 눈에다가 들이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 이러면 안대를 씌우는 의미가 없지 않나, 싶었지만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생소한 감각에 레인이 주위를 어수선하게 살피며 눈을 지나치게 깜박이자, 에이든은 안심시키려는 듯 레인의 입술과 뺨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잘 어울려.”
“감사합니다.”
“외출복 다 입었으니 이제 나가볼까?”
“아, 네.”
“그 전에 잠깐만.”
이제 나가려나 보다 싶어서 에이든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레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에이든은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레인의 허리를 붙들어 앉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그의 손에 어느새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새까만 가죽으로 만들어진 초커였다.
하지만 초커치고는 가죽이 두툼하게 여러 겹으로 덧대어져 있었고, 목둘레에 맞게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벨트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기에 동그랗게 고리가 달려 있는 초커는 어딜 보나 완벽한― 고급스런 개 목걸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레인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에이든을 올려다보면, 그는 눈꼬리를 흐드러지게 접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조각상의 그것처럼 완벽한 미소였으나 레인에게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먹이는 먹이답게 하고 가야지.”
그렇게 말한 에이든은 레인의 가는 목에 맞추어 꼼꼼하게 목걸이를 채웠다.
오랜만에 차보는 개 목걸이에 레인은 새삼스런 기분으로 어루만졌다. 목에 착 감기는 감촉이 부들부들한 것이 좋은 가죽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안감이 부드러운 것에 비해 표면은 무척이나 단단해서 손톱으로 긁어내려도 목걸이가 뜯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고안되어 있었다.
목걸이에 달려 있는 고리에 줄까지 걸고 나서야 외출 준비가 모두 끝났다.
레인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네발로 기었다. 에이든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내려다보며 개에게 상을 줄 때면 으레 그러하듯 레인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어 주었다.
“자, 그럼 이제 밖으로 나가볼까?”
그렇게 두 사람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에이든이 레인을 이끌고서 향한 곳은 저택 정원 구석에 마련된 허름한 지하 창고였다. 저택 내에 있는 지하실에는 벌이라는 이름으로 이따금씩 가곤 했으나 정원에 따로 지하 창고가 마련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이든이 목줄을 당겨 이끄는 대로 레인은 네발로 얌전히 기었다. 그의 걸음이 저택을 나와서 정원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레인은 여전히 네발이었다.
그는 가끔 걷다 말고 중간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곤 했다. 네 다리로 엉금엉금 제게로 기어 오는 레인을 눈에 담기 위함이었다.
정말이지 기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옷과 중요 부위에 시선을 머물게 하는 강렬한 속옷이 그녀의 움직임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조심스레 팔을 뻗어 바닥을 짚는 손바닥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함께 나가는 무릎, 그로 인해 엉덩이가 솟아오르면서 탐스럽게 움직였다. 풍성한 가슴 또한 잔뜩 괴롭혀 주고 싶을 만큼 음탕하게 출렁거렸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내어 입술을 핥으려는 것을 어금니를 깨물며 참아 낸 에이든은 레인을 재촉하듯 목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레인의 턱이 들리면서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걸음이 빨라졌다.
다급하게 뒤뚱뒤뚱 기어 오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에이든이 입을 열었다.
“아주 박아 달라고 사정을 하며 걸어오네, 레인은.”
갑작스레 내뱉은 에이든의 저속한 말에 깜짝 놀란 레인은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서 얼굴을 붉혔다. 기다란 푸른빛의 머리칼이 앞으로 쏠리면서 바닥에 쓸렸다.
그러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에이든을 향해 기어가면서 질척이는 아래를 박아 줬으면 좋겠다고 순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레인의 모습을 말없이 감상하던 에이든은 이내 다시 걸음을 뗐다. 레인도 그의 보조를 맞추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저택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하 창고였다. 정원 바닥에 웬 영문을 알 수 없는 손잡이가 달려 있나 싶었더니 알고 보니 지하로 가는 입구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더러운 것에 나름 면역이 있고, 여기까지 기어서 왔는데 계단이라고 두 발로 걸어가게 해 줄 것 같지 않아 레인이 서슴없이 계단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금세 에이든에게 제지당했다.
“쉬이. 우리 음란한 레인은 얌전히 안겨서 가자.”
그러면서 바닥에 네 발로 서 있던 레인을 한 팔로 번쩍 품에 안아 들고는 성큼성큼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떨어질까 무서웠던 레인은 온몸에 힘을 잔뜩 주어 균형을 잡고 앉아 에이든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두려움에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손끝에 점차 힘이 들어가는 것이 제법 귀여워서 에이든은 소리 없이 웃었다.
돌을 깎아서 만든 계단은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공간을 밝히는 촛불이 하나도 없어 내려가면 갈수록 발밑이 새까만 어둠 속에 묻혀 사라졌다. 아마 자신이 기어서 내려갔다면 계단을 헛디뎌 다쳤을 것이 틀림없을 만큼 사방이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이든은 마치 앞이 훤히 보이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어둠 속을 걸어 내려갔다. 악마는 빛이 없어도 앞을 볼 수 있는 건가, 별안간 궁금해져서 에이든의 눈동자를 살피려 했지만 그 또한 짙은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속해서 아래를 향해 내려가던 에이든의 걸음이 별안간 멎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쭉쭉 시원하게 나아가는가 싶더니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사물이 분간이 되지 않아서 대강 짐작하기로는) 문 비슷한 것을 열고 들어섰다.
에이든이 공간에 들어서자 사방이 갑자기 밝아져 오면서 빛이 쏟아 들었다. 환한 태양의 빛은 아니었다. 벽에 걸린 횃불이 이 공간에 들어온 두 사람을 맞이하듯 기세 좋게 타오르며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그제야 에이든은 레인을 자신의 품에 내려 주었다.
레인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곧장 네발로 바닥을 디뎠다. 그러고는 낯선 공간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벽면에 다양한 사이즈의 딜도와 바이브레이터가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케인, 패들, 채찍 따위가 가지런히 걸려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도 해괴망측한 고문 기구가 늘어서 있는 저택의 지하실과는 대조적으로 지하 창고는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성인 남성 하나가 눕기에 딱 적당한 직사각형의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주위로는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 찬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데에 필요한 듯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약초들과 이상한 모양의 식물들이 잔뜩 깔려 있었는데, 생전 맡아보지 못한 희한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 댔다.
그 외에는 공간을 밝히는 횃불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출하다 못해 휑하기까지 한 이 공간의 용도를 좀처럼 알 수가 없어서 레인은 불안에 젖은 눈길로 에이든의 뒷모습과 눈앞에 놓인 마법진을 곁눈질했다.
레인을 바닥에 내려 준 에이든은 구석에 위치한 자그마한 선반에서 무언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등 뒤로 꽂히는 시선을 느꼈는지 에이든이 문득 레인에게 물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겠어?”
“아니요. 모르겠어요.”
곧바로 돌아온 레인의 대답에 에이든은 레인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깊은 잿빛으로 잠겨 있던 눈동자가 어느새 붉게 변해 레인을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피를 잔뜩 머금은 루비를 눈에다가 박아 놓은 것처럼 아주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 만들기에 충분하리만큼 위협적인 눈동자였다.
레인은 붉은 눈을 한 에이든은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4년 전, 마구간 한구석에 짚을 깔아놓고 먹고 자던 평범한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에 따라 에이든을 불러내 계약을 했던 그때.
자신의 소환에 응해 모습을 드러낸 에이든의 눈동자는 분명 붉은색이었다.
평소와 달리 낯선 에이든의 모습에 레인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방 온도가 낮아진 기분이었다.
겁을 먹고 움츠러든 레인을 보며 에이든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자신과 그렇게 오랜 시간 살갗을 맞대고 지냈으면서 이제 와 보이는 새삼스런 반응이, 조금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인에게 가까이 다가간 에이든은 파르르 떨어 대는 그녀의 살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왜 몸을 떨지? 내가 무서워?”
“아뇨, 그건 아닌데…….”
에이든이 미소와 함께 허리를 숙여 시선을 맞추자 레인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다 이내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검정 망사에 가려진 황금빛 시선이 불안히 일렁이는 모습에 에이든은 레인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몸에 나쁜 건 아니니까.”
“…하지만,”
“가게만 해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잖아. 아니면, 더 이상 안 박아 줘도 되는 건가?”
여전히 망설임이 느껴지는 레인의 대답에 에이든은 위압적으로 을러대며 손끝으로는 그새 잔뜩 젖어 있는 질구를 툭툭 건드렸다.
그저 그의 손길이 닿았을 뿐인데 아래가 기대감과 허전함으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레인은 입 밖으로 내려던 불안을 꾹 눌러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만족스런 반응을 얻어낸 에이든은 레인을 품에 안아 들어 마법진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단상 위로 옮겼다. 그러고는 레인을 똑바로 눕힌 뒤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압력 같은 것이 레인의 팔다리를 낚아채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제단 위에 고정되었다. 마치 나비 표본을 만들 때처럼 양팔과 다리를 벌린 채였다.
당황한 레인이 몸을 바르작거리며 보이지 않는 압력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무쇠로 만들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지금 뭔가, 이상……. 흐읏!”
뒤늦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레인이 에이든을 다급하게 찾는 순간, 활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무언가가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느껴져 황급히 숨을 삼켰다.
아래를 볼 수 없지만 꿈틀거리는 움직임으로 봐서는 뱀이나 벌레 같은 종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치고 크기가 너무 컸다.
질구에 입구를 들이민 정체불명의 물체는 이내 꾸물꾸물 레인의 젖은 입구를 가르고서 내부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벽이 벌어지는 느낌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상한 물체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재차 바르작거리며 안간힘을 써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것은 바득바득 레인의 내부로 기어들어 와, 속살을 부지런히 압박했다. 조금 전까지 달아올라 있던 탓인지 정체도 알 수 없는 물체에 범해지면서 쾌감에 젖어 울었다.
“히익! 하응! 이, 이상해……. 이상한 게, 흐읍!”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체불명의 물체와 비슷한 무언가가 벌어진 구멍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두 개의 길고 두터운 것을 받은 레인의 음부가 파르르 경련을 하듯 떨리더니 이내 허리를 연신 튕기며 주르륵 애액을 뱉어 냈다. 절정에 간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에이든은 예민한 레인의 반응이 무척이나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네. 속살이 아주 내 권속들을 씹어 삼키고 있어.”
“흐으, 싫, 어……. 하읏, 흐, 느낌이, 흐윽, 이상해요…….”
“그런 것치고는 아주 기뻐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탐욕스럽게 삼키는 것 좀 봐. 젖꼭지도 발딱 세워서는.”
음탕하고 천박한 레인의 몸을 비웃는 것처럼 에이든은 빳빳해진 레인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고통과 쾌감이 섞인 신음이 다물리지 않는 레인의 입술 사이로 흘렀다.
레인이 제 안을 파고드는 물체에 정신이 팔린 사이, 에이든은 제단에서 두어 발자국 물러서서는 새까만 단검을 손에 쥐고서 자신의 손목을 거침없이 그었다. 그러고는 팔뚝을 타고 흐르는 피를 마법진에다가 흘려 넣었다.
마법진에 에이든의 피가 닿는 순간 피는 거대한 불꽃으로 바뀌어 제단을 감싸며 불타올랐다. 마법진 주위에 두른― 마계에서 가져온 약초들과 식물들이 비명을 지르듯 불꽃에 집어삼켜졌다.
자신이 누워있는 제단 주변이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레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이상한 물체에 범해지며 연신 허리를 흔들어 댔다. 에이든은 레인을 더욱 깊은 열락에 빠트리기 위해 자신의 권속을 모두 풀어 레인이 누워있는 제단으로 보냈다.
길고 축축한 것이 여러 마리가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선연한 감각에 레인은 몸을 비틀었다. 분명 저것들을 다 받아 내다가는 구멍이 망가질 것이 분명했으나 사지가 묶인 몸은 저항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레인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들 중 일부는 레인의 음부로 향했고, 어떤 것들은 젖가슴을 꽉 쥐며 빳빳하게 서 있는 유두를 물었다. 또 어떤 것은 레인의 입술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어떤 것도 형체가 불분명했으나 부피감과 질량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자신이 입구를 뻐끔거릴 때마다 교묘하게 틈을 찾아내어 머리를 들이밀었으며, 순식간에 속살을 가르고 들어와 내부를 농락하듯 쑤셔 대며 축축한 액체로 적셨다.
입 안과 자궁에 번갈아 가며 쏟아지는 끈적끈적한 액체의 감촉에 레인은 교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교성 또한 자신의 입을 쑤시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물체로 인해 가로 막혀,
“흐, 으읍, 흑, 흐읏!”
같은 소리만이 흘렀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기분 나쁜 감촉에 눈물을 그렁대며 반항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레인의 움직임은 평소와 같이 자연스러운 음란함으로 넘치게 되었다.
이상한 물체가 음부에 삽입될 때마다 기쁜 듯이 조여 대며 허리를 흔들었고, 때로는 좀 더 쑤셔 달라 애원하듯 입구를 오물거리기도 했다. 젖가슴과 유두를 좀 더 희롱해 달라 조르듯 허리를 젖혀 서슴없이 가슴을 들이밀기도 했다.
레인의 적극적인 반응에 힘입어 에이든의 권속들은 그녀가 바라던 대로 사정을 하듯 끈적끈적한 액체를 레인의 온몸에 흩뿌렸다. 레인이 입고 있던 망사 재질의 옷과 속옷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고, 제단은 레인이 흘린 애액과 끈적끈적한 정체 모를 액체가 한데 뒤섞여 흠뻑 젖어 있었다.
어느새 레인의 사지를 구속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사라졌음에도 레인은 제단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물밀듯이 치밀어 오르는 쾌락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따름이었다.
자신이 무엇에게 범해지는지 레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제단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제 안에 쏟아지는 액체를 받는 것과 그동안 에이든에게 받은 교육대로 본능과 쾌락에 충실하게 몸을 움직일 따름이었다.
에이든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난잡하고 문란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런 몸을 하고도 자신에게 버려질까, 실망할까 걱정하는 레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먹이이자 계약자인 레인이 불안해한다면, 주인 된 자로서 그 불안을 덜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에이든은 이곳으로 레인을 데려왔다.
영원히, 자신의 먹이임을 그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정기를 바치는 것을 대가로 해 온 계약은 여태까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계약자들 중 이곳에 직접 제 손으로 데려온 것은 레인이 유일했다.
마녀들이 악마를 모시기 위해 쓰는 이 제단에.
“후우.”
에이든은 점차 뻑적지근해져 오는 아랫도리를 애써 무시한 채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마력으로 의상을 바꾸어 인간들이 입는 옷이 아닌, 마계에서의 지위를 나타내는 제복으로 갖추어 입었다.
새까만 망토를 두르고, 금색과 붉은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제복을 입은 에이든이 입을 열어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제단 주위를 일렁이던 사나운 불길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하응! 흐으, 좀 더……. 흐응?”
좀 더 자신을 거칠게 범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정체 모를 물체들에 애원하던 레인은, 자신의 온몸을 휘감고 있던 것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좀 전까지 자신의 사지를 구속하고 있던 압력도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레인이 의아하여 끈적끈적하게 흐르는 액체로 범벅이 된 몸을 겨우 일으켰다. 배가 빵빵해질 만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자 허전한 듯 아랫도리가 꿈틀거렸으나 애써 무시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액체로 범벅이 된 눈을 문질러 닦자, 시야에 에이든의 모습이 들어왔다. 망사로 된 안대 너머였지만 좀 전에 입고 있던 것과는 다른 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며 활짝 양쪽 입꼬리를 모두 끌어당겨 웃고 있는 모습 또한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레인은 좀처럼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려고 하던 찰나였다.
레인에게 다가선 그가 불쑥 팔을 뻗는가 싶더니 엉망으로 젖어 있는 레인의 원피스를 들추고는 허리를 지분거렸다. 그러고는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아주 잘 새겨졌군.”
“…….”
“이로써 넌 영원히 내 곁을 떠날 수 없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살피던 레인은 깜짝 놀랐다. 에이든의 손길이 닿은 곳에 전에는 없었던 붉은 표식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두로 지진 것도 아니고, 아픈 느낌도 전혀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대체 이게…….”
“나를 모시는 자, 그러니까 마녀의 표식이다. 영원히 내게만 다리를 벌리고, 내게만 정기를 바치는 몸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영원히…요?”
“그래. 넌 영원히 내 먹잇감으로 살게 될 거야. 죽어도 벗어날 수 없어.”
“아…….”
자신에게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던 레인이 이 사실을 알면 분명 좋아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시들한 반응에 에이든은 일부러 요한의 이름을 들먹이며 레인을 떠보았다.
“왜? 영원히 꼼짝없이 내게 묶여 다리를 벌릴 생각을 하니 끔찍해졌나?”
“…….”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네가 좋아하는 요한의 곁으로 보내 줄 수도 있어. 물론 이 표식과 함께. 악마에게 정기를 바치는 음탕한 여자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 궁금하군.”
에이든의 겁박과도 같은 말에도 레인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몸에 새겨진 표식을 찬찬히 어루만질 따름이었다.
마법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허투루 한 것은 아니라 이 표식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동그란 원 안에 그려진 육망성. 날개가 달린 그리핀의 몸에 뱀이 휘감고 있는 문양은 아무리 봐도 이단의 그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마 이 표식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순간, 고문 끝에 사형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레인의 입가에는 점차 은은한 미소가 번져 갔다.
왜냐하면 이로써 자신은 오롯이 에이든의 것이 되었으니까. 몸에 새겨진 이 표식이야말로 자신의 그의 것이라는 완벽한 증거였다.
애초에 레인의 모든 것은 에이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도 에이든으로 인한 것이었고, 바깥세상에서 봐도 자신의 후견인이자 먼 친척으로 호적에 올라와 있는 사람 또한 에이든이었다. 레인의 곁에 남아 있는, 아니 자신의 곁에 남아 준 유일한 사람은 오직 에이든뿐이었다.
레인의 모든 것은 그로 인한 것이었고, 그래서 레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에이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을 사랑스레 여겨 줄곧 곁에 두기를 바랐다.
그가 실망할 것에 대한 불안, 언제든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모두 이러한 감정에 기인했다.
에이든이 자신을 달래며 해 준 말들은 그런 불안을 얼마간 불식시켜 주었다.
영원, 이라는 말이 귓가를 타고 들려올 때마다 레인의 가슴 밑바닥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현재를 모면하기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뿐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어찌 되었든 에이든은 악마였으니까. 악마는 사람을, 인간을 기만하는 종족이었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몸에 새겨진 표식으로 인하여 자신은 빼도 박도 못하게 완벽히 에이든의 것이 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해 준 말이 그저 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자 레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제 정기가 나중에 맛이 없어져도, 버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
“뭔가 막 크게 실수를 해도 버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
“그럼 잘못 해도 안 혼나요?”
“그건 혼나야지.”
정말로 요한에게 가려나 싶어 혼자서 속을 끓이던 에이든은 이어지는 레인의 질문에 점차 마음이 풀리면서 이윽고 마지막에 던진 천진한 질문에는 씨익 웃으며 대꾸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인의 허리를 지분거리던 그의 손길은 어느새 권속들이 사정한 액체로 엉겨 붙은 하늘빛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정리해 주고 있었다.
“왜? 혼나고 싶어서 일부러 잘못이라도 하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런 짓 안 해도 혼나고 싶다고 말하면, 위아래로 물을 쏙 빼 줄 수도 있어.”
“저……. 그러면 저 혼내 주시면 안 돼요?”
에이든의 말에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우물쭈물 입을 열어 부탁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고는 레인은 다리를 양옆으로 벌려 자신의 음란한 모습을 에이든에게 모두 보였다. 말아 올라간 원피스 사이로 보이는 마녀의 표식과, 활짝 벌린 다리 사이로 꿀렁꿀렁 넘쳐흐르는 끈적끈적한 액체는 레인을 좀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에이든의 것을 조르듯 뻐끔거리는 아랫입과 그 가운데를 정확히 가르는 선명한 붉은 끈의 속옷은 에이든의 성욕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레인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듯 허리를 비틀며 재촉했다.
“여기, 물이 안 나올 만큼 혼내 주세요. 네?”
“하하, 정말 돌겠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레인의 부탁에 에이든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갑고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멎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레인을 제단 위로 넘어트려 눕힌 뒤, 그녀를 덮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둘이 서로 몸을 엉긴 채 흘레붙고 있던 제단은 어느새 레인이 흘려 대는 애액과 타액, 그리고 미처 담기지 못한 정액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갔는지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도 없이 절정에 달한 레인은 눈이 몽롱하게 풀린 채 제단 위에 엎드려 엉덩이만을 겨우 치켜들고서 에이든의 허릿짓에 맞추어 비실비실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흐으……. 흐응, 하, 아읏…….”
사실 레인은 허리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고, 엉덩이를 치켜들 힘도 없었다.
지금 레인을 범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에이든의 몫이었다.
레인의 구멍에 허리를 움직여 성기를 박아 대고 있는 것도, 레인의 허리가 아래로 꺼지지 않도록 아랫배를 받쳐 들고 있는 것도, 자꾸만 고꾸라지려는 골반을 붙잡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에이든이었다.
그는 레인이 자신의 음란한 구멍을 혼내 달라고 조르자마자 꺼덕이고 있던 음경으로 레인의 내벽을 가르고 들어가 순식간에 가장 깊은 곳까지 쳐올렸다.
흉포하기 짝이 없는 크기의 것으로 단숨에 꿰뚫리는 감각에 레인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흘렀으나 에이든은 가볍게 무시한 채 거칠게 허리를 움직여 댔다.
오늘 아침 식사가 부실한 탓도 있었고, 혼내 달라며 조르는 레인이 지나치게 매혹적인 탓도 있었다. 자꾸만 허기가 지고 기갈이 나던 찰나에 레인이 자신에게 도발을 해 왔고, 에이든은 그에 보란 듯이 응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취하면 취할수록 레인의 정기는 더욱 깊고 풍부해졌으며 혀끝이 아릴 만큼 치명적으로 달아졌다.
그 맛에 취한 에이든은 정신없이 레인을 집어삼켰다.
그의 아래에서 맥없이 신음을 내뱉던 레인은, 그의 귀두가 레인이 좋아하는 지점을 문지르며 비비듯 쑤시는 순간 다시금 절정을 맞았다.
온몸이 가늘게 경련을 하는가 싶더니 달달 떨리는 허벅지 사이로 투명하고 점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수축하는 내벽에 에이든 또한 파정을 맞았다.
몇 번이나 제 안에 사정을 해 놓고도 도대체 지치지도 않는지 에이든의 것이 슬금슬금 크기를 키우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퍽퍽, 소리가 날 만큼 박아 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쾌감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길어지는 정사에 괴로운 듯 제단 바닥에다가 머리를 비비던 레인은 이 이상은 버틸 수 없어 자신의 골반을 붙잡고 있는 에이든의 손을 힘없이 밀어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하으, 못 해요……. 그만…….”
“분명 아래위로 물을 쏙 뺄 만큼 혼내 달라고 졸랐잖아.”
“으읏!”
“그런데 이것 봐. 아직 덜 혼났는지 계속해서 물을 질질 싸지르고. 이런 칠칠치 못한 구멍은 더 혼나야겠지, 응? 레인?”
“흐으, 싫어어……. 잘못했어요, 그만, 흐윽! 그만……!”
레인이 애걸복걸하며 그만해 달라는 부탁을 깨끗하게 무시한 에이든은 재차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망 어린 외침에도 불구하고 에이든의 성기는 무자비하게 레인을 범했다.
입고 있던 망사 옷은 이미 찢긴 지 오래였고, 딱딱한 제단 바닥에 짓눌린 젖가슴은 에이든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마찰하여 쓸리는 바람에 유륜과 유두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끊임없이 제 안을 드나드는― 잔뜩 벌어진 구멍 또한 다물리지 않을 것처럼 한계까지 늘어나, 이어지는 정사에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레인의 의문은 시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쉴 새 없이 절정에 달했음에도 어째서 자신의 몸은 자꾸만 쾌감으로 달아오르고 자신의 아래는 끊임없이 애액을 뱉어 내는 것인가 하는 점에 있었다.
게다가 하면 할수록 실금을 하듯 투명한 액체가 후두둑 쏟아지는데, 에이든이 제 깊숙한 곳을 쳐올릴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이런 반응이었다. 허리 움직일 힘 하나 없음에도 내벽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에이든의 것을 게걸스레 집어삼켜 댔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정사에 레인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다시는 혼내 달라고 조르지 말아야겠다고, 의미 없는 다짐을 하며 에이든에게 연신 용서를 구했다.
“흐응… 하, 그만……. 으읏! 잘못, 했어요……. 다시는, 하윽!”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하으, 용서, 용서해 주세요.”
“뭘 안 그러겠다는 얘긴지 모르겠네. 넌 지금 내 먹이로서 매우 충실한데, 나 몰래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천연덕스럽게 되물은 에이든이 레인의 등에 차분히 몸을 겹치며 가죽 목걸이 사이로 보이는― 가죽에 쓸려 붉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혀로 핥아 올렸다.
그러자 레인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움찔거리며 허리를 바르르 떨어 댔다.
레인의 신음은 흐느낌이 되어 에이든이 한 번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제 자궁마저도 침범하려는 듯 가장 깊은 곳을 귀두 끝으로 쳐올릴 때마다 애액 대신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흐윽, 으, 저 죽어요……. 더 못 해요, 흐읍……. 흐어엉.”
“뚝, 울지 말고. 착하지, 레인. 조금만 더 혼나자.”
펑펑 눈물을 흘리는 레인의 모습에 에이든은 다정하면서도 잔인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아래로는 뭉근하게 허리를 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퍽퍽 소리가 제단 주위를 올릴 만큼 거칠었던 허릿짓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으나 움직임을 멈출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든은 우는 레인을 달래듯 귓바퀴에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레인의 턱을 감싸듯 고개를 들게 했다. 엉망으로 젖어 있는 레인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아 올릴 때마다 하늘빛의 기다란 속눈썹이 애처롭게 떨렸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레인은 눈물로 아롱진 황금빛 눈동자로 서글프게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제 고개를 가누고 있는 에이든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못하겠으니 멈춰달라는 신호였으나 그것은 도리어 에이든의 가학심을 자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뭉근했던 허릿짓이 다시금 거세지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레인은 더 이상 애원할 힘도, 울 힘도, 신음을 흘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단 위에 널브러진 레인의 몸뚱이는 에이든의 움직임을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후우, 정말이지 날 미치게 잘 만들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짓씹듯이 내뱉은 에이든은 이내 레인의 질 안에 사정했다. 정액이 꿀렁이면서 레인의 내부로 밀려들었으나 이미 정액으로 가득 차 있던 레인의 아랫배는 더 이상 에이든의 정액을 받아 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사타구니를 타고 다리 아래로 주르륵 흘렀다.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성기를 빼내자 안에 품고 있던 정액이 재차 레인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다리를 타고 흐르는 감각에 레인의 허벅지가 잘게 떨렸으나 그 반응은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골반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선명하게 남은 손자국이 드러나면서 그와 동시에 레인의 허리가 무너졌다. 에이든이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으나 움찔거리는 반응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에이든이 레인의 상태를 살폈다. 레인은 이미 의식을 잃었는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않았다.
에이든은 명색이 악마인데 인간의 정기에 눈이 돌아 너무 거칠게 몰아붙였나 싶어 민망한 기분에 쩝쩝 입맛을 다셨다.
제단 주위는 연이은 섹스로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제단 위에 누워있는 레인의 몰골 또한 말이 아니었다.
깨끗했던 하늘빛 머리칼은 땀인지 정액인지 모를 액체로 엉망이었고, 몸에는 자신이 남긴 손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몰아치는 쾌감에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어떤 것은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그중에 가장 처참한 곳은 레인의 음부였다. 아침부터 혹사당하기 시작해 몇 시간이 내도록 제 성기를 물고 있던 그곳은 빠끔히 벌어져 다물릴 생각을 하질 않았다. 물론 벌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붉은 속살을 감상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마력으로 되돌릴 수 있는 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에이든은 아무 데나 벗어 두었던 제복의 망토를 집어 들어 레인의 몸을 감싼 뒤, 품에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사역마에게 제단의 뒤처리를 부탁한 뒤 지하 창고를 빠져나왔다.
이미 해는 중천에 걸려 있어 맑은 햇살이 정원에 한가득 내리쬐고 있었다. 에이든은 마법으로 곧장 레인의 방으로 이동했다.
레인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침대에 눕힌 에이든은 예의 무르핀을 그림자에서 불러냈다.
“지금 시각이?”
“오후 2시가 다 되어갑니다.”
자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시간이 많이 지나 있어 놀랐으나 에이든은 내색하지 않은 채 레인의 시중을 맡겼다.
“일단 더러우니 목욕을 먼저 시켜. 푹 재우고 나서 일어나거든 밥 먹이고.”
“아침 식사랑 점심 식사를 같이 낼까요?”
“아직 아침을 안 먹였나?”
“주인님께서 신호가 없으셔서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아, 그랬지.”
신호를 하면 식사를 들이라던 자신의 명령을 뒤늦게 기억해 낸 에이든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마른세수를 했다. 어쩐지 몸이 쾌락에 무너지는 게 평소보다 빠르다 싶었더니 밥을 먹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레인의 정기를 취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는 자신의 식사는 그렇게 신명 나게 해 놓고 정작 먹이의 식사를 챙겨 주지 않은 자신의 한심함을 속으로 한탄했다.
“둘 다 먹여. 식사가 끝나면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하게 해 주고. 저녁까지 먹이고 밤이 깊으면 그때 내 침실로 올려 보내.”
“네, 알겠습니다.”
에이든의 명을 받은 무르핀이 고개를 숙였고, 에이든은 곧장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