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했다던 신관들은 다행히 무사했다.
한 명만 빼고.
“블란데아 사령관님. 시체 상태가 너무 끔찍합니다.”
“원한 범죄 쪽으로 가닥을 잡고 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군부 내 수색으로 종결을 지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며….”
기사들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옮겼다.
검은색 천이 머리끝까지 덮여 있는 시체 한 구가 눈에 들어온다.
천을 내려 보기 위해 손을 뻗어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슐로이츠의 손이 허공에서 내 손을 붙잡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블란데아.”
슐로이츠의 무표정한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을 굳이 봐야겠나?”
“아는 얼굴인가 싶어서요.”
“봐도 모를 테니 보지 마.”
슐로이츠의 말을 들으니 천 아래에 있을 얼굴이 상상이 갔다. 직접 보아도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렇게나 심한가요?”
“불길이 집요하게 얼굴만 훼손시켰던데.”
“…그런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신관들이 기사들에게서 오래 분리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불가능하지.”
슐로이츠의 서늘한 눈빛은 단단한 반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흑마법이라면 가능할 거고.”
나는 그 반석을 딛고 선 사람처럼 안정감을 느끼고.
“…그렇겠네요.”
왕국에서는 흑마법을 금기시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 역시 르페브르 저택과 성에서 지낼 때는 흑마법이란 단어를 잘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 낯설고 불편한 단어가 슐로이츠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니….
이 남자는 무섭거나 두려운 게 있기는 할까?
어릴 적의 슐로이츠는 내게서 버림받는 걸 극도로 무서워했지만, 훌륭한 남자로 성장해 버린 지금의 슐로이츠는 너무나 강건한 총사령관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상 그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았다.
조금 후, 기사에게서 보고서도 받아 읽어 본 나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신관들을 보러 갔다.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네.”
신관들은 애도하는 듯 조용한 기색이었으나 침울해 보이진 않았다.
“저희는 이별이 익숙하니까요.”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기도 하는 거야?”
나를 보자 기쁜 듯, 반사적으로 웃고 있던 신관들의 미소가 천천히 사그라졌다.
그들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페니에게 받아 왔던 흰색 꽃을 그들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왕실일까?”
신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아무리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해도 이 사건은 충격이겠지. 함께 지내던 사람이 불에 타 죽었으니까.
“사실 신관을 환대해 주는 곳이 드문 편입니다. 아가씨.”
“그러니 정확히 어떤 곳이 저희를 노려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이 지켜 주지 않아 괴수들에게서 가족들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신관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우습게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자신들이 괴수를 만들고 통제하지 못해 대륙이 이 모양이 되었다는 듯 죄책감을 가득 담아서.
“남들 앞에서 그런 표정 짓지 말아 줄래? 그러니까 몇백 년이나 박해를 받지.”
“…예. 아가씨.”
신전의 권력이 쇠퇴하고 신관들의 숫자가 급감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해결할 수 없는 공포의 실재란 이래서 무서운 법이다. 특정 집단이나 대상에게 분노와 절망을 풀어낼 당위성을 부여하기도 했으니까.
“그렇다면 아가씨. 역시 다른 세력이 저희를 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세력?”
나는 빙긋 웃었다.
“웃기지 마. 누가 봐도 왕실 같으니까.”
***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군부의 심장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이야?”
라파엘은 한숨을 뻑뻑 내쉬었다.
신관 살해로 인해 군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왕국의 귀족들은 언제나 군부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관심이 많으니 이 일은 금세 왕국 전역에 퍼지게 될 것이다.
책임은 당연히 물을 거고.
그 전에 해결을 해야 하는데….
라파엘은 블란데아를 찾아갔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블란데아 사령관님은?”
페니가 뻐근한 두 팔을 빙빙 휘두르며 대답했다.
“각하의. 집무실에 끌려… 아니 집무실에 함께 가셨다.”
‘끌려가? 각하가 블란데아 사령관님을 끌고 가셨다고?’
라파엘이 이제껏 봐 온 것들을 종합하자면 슐로이츠 프로키온은 블란데아에 한해서는 그다지 이성적이질 못했다.
또 블란데아를 데리고 프로키온 성에 처박혀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걱정이시면 그냥 블란데아 사령관님을 업고 다니면 안 되나?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머릿속을 채운 라파엘의 궁금증은 금세 끊겼다.
“블란데아 사령관님이. 신관들과 무슨 대화를. 하시는 것 같던데.”
“무슨 대화?”
“난 못 들었다. 오라버니.”
“그럼 각하께서는 들으셨다는 거야?”
페니가 여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라파엘은 한층 더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블란데아 사령관님이 신관들과 무슨 대화를 하셨다고…?”
***
‘슐로이츠가 밖에 있는 줄 몰랐는데.’
나는 앉은 채로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가는 중이었다.
이곳은 총사령관의 안쪽 집무실.
슐로이츠가 공적인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집무실이 아니라, 총사령관의 관저에 딸려 있는 아주 개인적인 장소 중 하나였다.
내가 이곳에 끌려온 건 10여 분 전이었다.
“블란데아 르페브르.”
슐로이츠가 내 손을 가볍게 틀어쥐었다. 땀으로 젖어 있는 건 아랑곳하지도 않는 태도였다.
“왕실이 왜 신관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거지?”
“…….”
“차라리 르페브르의 배반자들이 신관들을 죽여 그 책임을 물으려고 했다는 쪽이 더 이해가 가겠군.”
르페브르는 정화라는 정결한 이능 덕분에 배반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아니 아예 없다시피 한 가문이었다.
세간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었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설명해, 블란데아.”
“…….”
“블란? 대답해야지.”
엔리코르가 나를 ‘블란’으로 부르는 걸 알고 난 후 슐로이츠는 가끔 이렇게 나를 ‘블란’이라 부르곤 했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버티고 있을 때 특히.
군부에 속한 영토는 슐로이츠의 손안에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한 번도 내가 있는 곳을 감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나를 데리러 왔을 줄은 몰랐다. 신관들과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바깥에 서 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고.
왕실 얘기를 다 들었다니….
“…잡아가기라도 하게?”
마냥 버티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두를 떼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런 헛소리부터 지껄였다.
“잡아가?”
슐로이츠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졌다.
“아. 왕실에 너를 반역자로 넘기기라도 하겠냐는 질문인가?”
“장난이야. 화난 것처럼 보여서.”
“블란데아 르페브르.”
슐로이츠의 차가운 눈동자가 웃음기도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자, 심장이 얼음 송곳니에 물린 것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위험하잖아.”
“…….”
그의 대답은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내가 알고 있어야 너를 지킬 수 있을 것 아니야. 블란데아.”
“…….”
어쩐지 말문이 막히고 만다.
“슐츠.”
“…그래. 블란데아.”
나는 일평생 고대하던 성전을 앞두고 한숨을 돌리려는 순례자처럼, 질리도록 봐 왔던 집무실을 잠시 둘러보았다.
어두운 빛깔의 나무로 만든 책상 위에는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굳이 그 서류 뭉치를 감추지도 않았고, 덕분에 나는 흘긋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왕실에 대한 서류였다.
군부와 왕실은 밀접하다지만 이 정도 서류는 진실로 군부의 총사령관 정도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여야만 모을 수 있는 자료일 터였다.
그는 언제부터 왕실을 의심하고 있었을까?
슐로이츠는 나를 기다리려는 것처럼, 더 이상 어떤 추궁이나 재촉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응시했다. 내 입은 내내 다물어져 있었기에, 우리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만 내 손이 움찔거릴 때마다 슐로이츠의 손목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갔다.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덕분에 나는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야 했다.
“슐츠.”
붙잡힌 손을 보며 물었다.
“왜 그동안 캐묻지 않고 기다려 준 거야?”
이제까지, 슐로이츠는 ‘돌아가면’ 항상 숨기고 있던 것들을 털어놔야 할 거라고 단단히 으름장을 놓곤 했지만, 정작 날 붙잡고 캐물은 적이 없었다.
오늘까지는 말이다.
“내가 망설여서 그래?”
그런데 그런 걸 기다려 주는 성격은 아니질 않았나.
슐로이츠는 빈정거리는 미소를 띠며 되물었다.
“내가 그런 성격으로 보이나?”
“아니.”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에 슐로이츠가 픽 웃었다.
어쩐지 기가 막혀 하는 기색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그러니까, 아직도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종종 꿈을 꾸는 것 같은 깊은 감정이다.
“네가 내게서 도망치려고 하는 게 문제인 거지.”
“…….”
“그 외엔 아무 상관도 없어. 기다리라면 평생 기다릴 수도 있지.”
“내가 도망만 가지 않으면?”
내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질문이었다.
언뜻 듣기에는 말꼬리를 잡아 끄는 것처럼 들릴 법한 질문이었는데도 슐로이츠는 그저 짧게만 대답했다.
“그래.”
다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점에서 나를 조금 더 술렁이게 만들고 만다. 돌이켜 보자면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오늘도, 전에도, 아주 어릴 때도, 이전의 삶에서 내가 읽었던 글자 속에서도….
“들으면 후회할 수도 있어.”
“그건 내가 판단한 일이고, 블란데아.”
슐로이츠의 두 눈은 여전히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리 말해 주자면 후회할 생각도 없어.”
“…….”
“그러니 대답해. 난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