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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고 있나요-(1) (45/190)

05.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고 있나요

마르크 헌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기야, 내가 꼭 르페브르의 직계이자 상관이 아니더라도 무거운 벌을 피할 수 없는 사항이긴 했다.

군부에서 동료를 괴수 앞에 던지는 미친 짓을 저질렀으니.

물론 마르크 헌트는 날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마르크 헌트의 재판에 다녀왔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놈의 모습이 정말로 걸레짝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날 그냥 죽었으면 명예로운 전사자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을 텐데….

설령 그게 아니어도 슐로이츠를 좀 믿어 보지 그랬나.

난 슐로이츠가 작중에서 몇백 번이나 목숨을 구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마르크 헌트는 나름대로 군부 생활을 한 시간이 기니 슐로이츠와 토벌에 여러 번 참여했을 텐데도 그를 전혀 믿지 못했다.

아집인 건지, 아니면 자신은 여전히 매드로스 공의 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건지.

어찌 되었든 군부는 여러 의미로 혼란스러웠다.

자고 일어나면 몇몇 사람이 없어져 있었고, 몇몇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와중에 좀 소름이 돋았던 건, 내 숙소의 1층 출납을 담당하던 기사도 교체되었다는 거였다.

세상에, 그쪽까지 매드로스 공의 연일 줄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새삼 매드로스 공이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여기저기 심어 두었구나.

‘진짜 매드로스 공의 줄들을 다 자르나 보네.’

이렇게 한 번에 말이야.

나는 얼떨떨했지만, 슐로이츠가 그날 몹시 심기가 상했다는 사실 정도는 추론할 수 있었다.

“블란데아 경. 앞으로 3급 이하의 전투에서는 전부 배제될 겁니다.”

라파엘의 보고에 나는 뺨을 가볍게 긁적였다.

언뜻 듣기엔 내가 무슨 벌을 받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제가 경 대신 참전하겠다고 총사령관님께 말씀드렸고, 허락도 받았습니다.”

라파엘은 아주 큰 결심을 한 듯했다. 목소리가 다소 엄숙하게까지 들렸으니까.

물론 누가 나 대신 일 다 해 줄 테니 넌 편하게 쉬라고 말해 주면 너무 좋겠지만….

“괜찮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난 엔리코르 대신 왔으니 적어도 원작에서 엔리코르가 활약하는 만큼은 해내야 했다. 안 그래도 이 세계는 멸망 루트 확정이란 말이야.

라파엘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저 되게 큰마음 먹고 말씀드리러 온 건데요.”

“알아. 맨날 과로하잖아. 거기에 또 과로를 하겠다니, 미친 거지.”

“블란데아 경…. 네?”

감동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던 라파엘이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픽 웃었다.

“고마운데 진짜 괜찮다고.”

결국 라파엘이 머쓱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그리고 르페브르 경. 그날 절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파엘의 귓가가 불그스름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그때 주마등이 스쳤거든요? 분명히 죽음을 직감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글쎄, 살아 있더군요. 블란데아 경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너 진짜 죽는 날 맞았거든?

다년간의 시한부 생활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쨘 하고 거울을 보여 주었다. 라파엘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으, 치워 주십시오. 저 진짜 이렇게까지 어깨가 박살이 난 줄 몰랐단 말이에요.”

“나는 경의 정신력이 아주 강한 줄 알았지. 아니었구나.”

“제가 총사령관님도 아니고 그렇게까지는 좀…. 그땐 그 새끼… 죄송합니다. 마르크 헌트가 지껄이는 말에 눈이 좀 돌았던 겁니다.”

라파엘은 붕대로 상체를 거의 전부 휘감고 있었다. 거기에다 토벌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뒤통수도 심하게 찢긴 탓에 머리에도 붕대를 감고 있었다.

“라파엘 경.”

“예?”

“만약에 내가 그날 마르크 헌트 곁에 없었으면, 누가 괴수 앞에 던져졌을 거라고 생각해?”

“…저였겠죠?”

“잘 아네. 더구나 오파츠까지 없었으면 경은 아주 높은 확률로 죽었을 거야.”

“…….”

라파엘은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본인도 주마등 얘기를 하는 걸 보니, 그날 죽는다는 걸 확실히 예감한 게 틀림없었다.

‘나중에 은혜 한 번은 갚겠다고 하겠지.’

그렇다고 내가 큰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라파엘은 슐로이츠의 직속 부관이긴 했지만, 이번에 제법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마르크 헌트에게 바락바락 욕을 지껄인 게 문제였다.

“제2 지휘관에게 하극상을 벌였으니…. 어쩔 수 없죠.”

“진급에 문제 있지 않아?”

“그렇겠지만…. 괜찮습니다. 좀 아쉽긴 해도 총사령관님 부관에서 잘린 것도 아니고요.”

뭐, 본인이 괜찮다면야.

마르크 헌트에게 욕을 한 걸 후회도 안 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얘도 내내 참았을 테니까. 한 번 지른 값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건 그렇고요, 블란데아 경. 임시로 임무를 하나 맡게 되셨는데요.”

“임무?”

나는 귀가 쫑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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