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으어….”
마르크 헌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시체처럼 발작적으로 꿈틀거리기만 했다.
슐로이츠가 툭 마르크 헌트의 머리를 던지듯 놓았다.
“끌고 가. 재판에 회부해.”
뒤에 서 있던 준사관들이 서둘러 마르크 헌트를 끌고 갔다.
동시에 수습에 들어가는 기사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라파엘의 옷은 피로 가득 젖어 있었고, 다른 지휘관들도 멀쩡하진 못했다.
하기야 갑자기 30마리가 넘는 괴수가 출현했으니….
그나마 한 명도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슐로이츠의 오파츠는 멀쩡한가?’
갑작스러운 토벌 결정에, 나는 임시로 새 오파츠를 슐로이츠에게 주었다. 물론 가호도 내려 주었고.
그래 놓고 경황이 없어 슐로이츠 쪽은 쳐다도 못 봤다.
사실, 그 급박한 와중에 내 쪽까지 전부 확인한 슐로이츠가 사람이 아닌 거지….
어쨌든 한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난 이미 다른 지휘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슐로이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슐로이츠는 마르크가 날 붙잡아 던진 걸 언제 본 걸까? 라파엘은 그렇다 쳐도, 슐로이츠와 나는 거리가 제법 있었는데.
슐로이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데 불현듯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에 피가 얼마간 튀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피는 아닌 것 같은데. 아까 마르크 헌트의 턱을 박살 내면서 튄 피인가?
“프로키온 경.”
나는 슐로이츠에게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말을 하려고 했다.
순간.
“읍.”
갑자기 속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게 역류했다.
반사적으로 한쪽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기침을 하고 손바닥을 펴 보이자 붉은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동시에 머리가 휘청거리며 시야가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단단한 힘이 무너지는 내 몸을 붙잡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선을 옮겨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그대로 시야가 점멸했다.
***
“블란데아 르페브르는.”
군의관이 이마에 밴 땀을 닦으며 말했다.
“괜찮으십니다. 몸에 큰 충격이 쌓이면서, 속이 순간 뒤집히신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고 제1 지휘관님이 생각보다 몸이 약하시군요.”
“약해?”
슐로이츠가 희미하게 이마를 찌푸렸다.
“그럴 리가. 굉장히 잘 뛰던데.”
이 블란데아 르페브르는 입단하자마자 연무장부터 성실히 나갔다.
어쩌다 길을 잃은 듯 총사령관의 연무장까지 흘러들어 왔고.
혼자 열심히 달리고 있기에 가만 보고 있자니 한시도 쉬지 않고 뛰었다. 조금 신기할 정도였다. 뭐 저리 온종일 뛰나.
그 대가문의 공주님 아니던가.
“그게 좀 애매합니다, 총사령관님. 쉽게 설명을 해 드리자면…. 제1 지휘관님의 신체 능력은 태생부터 모래로 세운 성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중심에 내구성 좋은 기둥 하나를 아주 죽어라 세워 두셨습니다. 큰 문제나 사고가 없으면 아주 건강하게 사실 수 있는 몸이긴 한데 이게 좀… 재해에 취약한 몸이라고 할 수 있죠.”
“비유하고는.”
슐로이츠가 혀를 찼다.
“밖엔 함구해라. 르페브르의 직계니 건강 상태를 알려서 좋을 게 없지.”
“예, 총사령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외에 문제가 있는 곳은 없나?”
“아. 예. 없습니다. 그냥 좀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실려 오신 분들 중 제일 멀쩡하십니다.”
“그런데도 피를 토할 정도면 어지간히 부실하단 소리군.”
군의관은 동의하지 않고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기야, 그 정화의 이능 때문인지 몇몇 계열에 종사하는 이들은 르페브르의 직계를 유독 신성시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의료 계열이었다.
그러니 굳이 군의관이 블란데아 르페브르의 곁에 붙어서 온갖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비단 그녀의 가문을 생각해서만이 아니었다.
누구는, 그러니까 자신은 철저히 그녀의 가문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지.
슐로이츠는 커튼을 걷고 들어가 잠들어 있는 블란데아 르페브르를 내려다보았다.
그 무신경하고 괴팍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군의관이 나름대로 신경 써서 인견 이불을 덮어 준 흔적이 보였다. 그나마도 주르륵 흘러내린 상태지만.
와중에 준사관도 없어 이불 하나 똑바로 덮어 줄 인물도 없었던 모양이다.
라파엘을 보내자니 그놈은 지금 쓰러져 있고. 디오스도 별반 다르지 않고.
부상을 입고 귀환한 이들이 적잖아, 의무실은 제법 소란스러웠다.
최소한 그녀의 식사를 챙겨 오라고 지시해 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슐로이츠는 블란데아에게로 몸을 조금 굽혔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 올려놓다가 문득.
그녀의 파리한 뺨으로 시선이 움직인다. 입술엔 핏기도 없이 창백하기만 했다.
대체 뭘 하는 가문이기에 르페브르와 연결된 영애들은 이렇게 다 몸이 약하나?
블란데아 르페브르도.
엔리케 시에도도.
슐로이츠는 블란데아의 목 끝까지 이불을 올린 후,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