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 입단-(3) (33/190)

사실 배정된 계급을 듣고서는 속으로 좀 놀랐다.

군부에서 오파츠에 관심이 많다더니, 정말로 그렇게 계급을 올려놓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군부에서 오파츠에 관심이 많다는 건 총사령관인 슐로이츠가 오파츠에 관심이 많다는 소리였다.

엔리코르가 이마를 찌푸렸다.

“제1 지휘관도, 제7 지휘관도 둘 다 명예직이지만….”

“응.”

“그래 뭐. 같은 명예직이어도 천차만별이긴 하지. 제7 지휘관은 정말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제1 지휘관은 같은 지휘관들에게도 인정받는 명예직이니까. 평소엔 공석일 때가 더 많고.”

엔리코르의 말대로, 원래 제1 지휘관은 비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은 자리였다. 제7 지휘관의 자리처럼 명예직이었지만, 급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르페브르 가문의 직계면 제7 지휘관으로 임명받는 게 전부다.

이 말인즉슨 르페브르 수준의 신분에 충분한 재능과 다른 공로가 복합적으로 적용되어야 제1 지휘관으로 임명받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재능은 내 것이지만 공로는 엔리코르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엔리코르 것은 내 것이니 별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빙긋 웃었다.

“덕분에 총사령관 직속 부관한테도 말 막 놓을 수 있더라.”

“마음 편해서 좋겠다, 정말.”

엔리코르가 한숨을 내쉬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매번 잘라서 실험에 쓰느라 짧았는데도, 타고난 미모는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나와 꼭 닮은 금빛 머리카락이 햇빛 아래 반짝였다.

“엔리, 이제 말 다 했어?”

“그래. 다 했어.”

“그럼 하던 말마저 해 줘. 프로키온 경이 어떻다고?”

나는 일단 엔리코르가 여기까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서, 얌전히 그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었지만 실은 손이 차갑게 식고 있었다.

“가호가 맞지 않는 사람이 산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내가 사흘 전에 겨우 알았거든. 총사령관한테 연락도 왔고.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고. 그날 좀, 아니 많이, 아니 심하게 아프기도 했을 거야.”

말을 이어가던 엔리코르가 돌연 이마를 찌푸렸다.

“블란아. 너 얼굴색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 넘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부작용? 있을 수 있지. 나타날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슐로이츠한테 나타났을까. 그렇지 않아도 슐로이츠는 아팠다는 얘기를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부관이 어련히 알아서 챙겨줬겠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냥 속이 좀 상했다.

“그럼 프로키온 경한테는 가호 내리지 마?”

하지만 그러면 오파츠를 쓸 수 없을 텐데. 가호를 받지 못하고, 그러니까 엔리코르의 초기 오파츠는 사용하면 피를 토했다고 했다.

갑작스레 괴수를 만나 오파츠를 긴급히 사용해 보았다던 비너스한테 물어보니까.

“내장이 자근자근 으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가씨.”

…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지.

“아니. 다른 방법을 구현해 왔어.”

“뭔데?”

“머리카락이랑 더 가까운 부근에 가호를 내리면 되더라.”

“어디? 이마?”

“그쪽으로 끌어 올리고 싶었는데 내가 능력이 좀 부족했어.”

“…응?”

엔리코르가 검지로 제 뺨을 톡톡 두드렸다.

“뺨에.”

“미쳤어?”

***

그래 뭐.

사실 귀족 사회에서는 가벼운 스킨십이 인사처럼 통용된다.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뺨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흔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사실 내 반응이 과한 게 맞았다. 하지만 이미 비너스나 다른 르페브르의 학자들에게 ‘슐로이츠 프로키온 총사령관’의 차가운 성격에 대해 많이 들은 것 같은 엔리코르는 별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그를 많이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을 텐데.

‘내 심장… 터지면 누가 보상해 주지?’

아무도 보상 안 해 주겠지.

‘그나마 입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다.’

어릴 적에 슐로이츠에게 입을 맞췄던 기억 때문일까. 왠지 또 그의 입술에 입을 갖다 댔다간 어릴 적의 나라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슐로이츠에게 새 가호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어찌 되었든 이건 르페브르라는 거대한 가문과 군부와의 계약이었고, 나는 내 감정 때문에 엔리코르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영애, 오셨습니까? 아니지. 블란데아 르페브르 경.”

분홍머리 부관이 웃으면서 반겼다.

“경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시지요?”

“응. 보통은 영애라고 부르니까.”

사실 나는 기사 작위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발록 경이 한참 나를 훈련 지옥에 빠뜨렸다가, 이쯤이면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서 시험에 응해 보았고 합격했다.

‘연금도 나온다니까.’

그 말에 살짝 혹했다. 물론 기사 연금이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는 않지만, 받을 수 있는 돈은 다 받아 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해서 나를 ‘블란데아 경’이라고 부르는 귀족은 없었다. ‘공’으로 호칭하는 한 가문의 직계 자식들은 성별에 따라 영애 또는 공자라고 불리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래서 낯선 기분이 들었다.

“참, 블란데아 경. 닭고기 양파 스튜는 어떻던가요?”

“맛있었어.”

“다행입니다. 사실 그쪽 시가지에 훌륭한 식당들이 제법 있습니다. 3달 후면 휴가를 받으실 건데, 그때….”

처음 만남 때도 서글서글했던 부관은 한층 더 친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본격적으로 지휘관으로 여기는 게 티가 났다.

그래. 기왕 지휘관도 됐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슐로이츠를 돕고, 나중에는 무사히 가족들에게 돌아가…. 편안한 여생을 보내야지.

오파츠가 있고 슐로이츠의 건강이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든다면 미친 피폐물 흐름도 어느 정도 잦아들 거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나를 총사령관실까지 데려 온 부관이 문을 똑똑 두드렸다.

“총사령관님. 접니다. 블란데아 르페브르 제1 지휘관도 함께 왔습니다.”

***

조금 전.

슐로이츠에게 편지가 한 통 왔다.

가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부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르페브르에서 보완 방법을 개발했으니, 혹여라도 부작용을 경험한 검파자들의 명단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가호를 내리는 방식이 바뀔 것입니다.

엔리코르 르페브르 배상.

엔리코르는 이 편지를 군부로 보내고, 몇 시간 후 우연찮게 블란데아가 군부로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허겁지겁 일을 제쳐 두고 군부로 내려왔다.

덕분에 엔리코르의 편지와 엔리코르가 이 군부 특별 자치령에 도착한 건 거의 동시에 있었던 일이었다.

슐로이츠는 부서진 오파츠를 내려다보았다.

약 일주일 전, 르페브르의 직계에게 가호를 받은 그날.

온몸에 피가 기이할 정도로 식어 버리는 기분이더니, 그날 슐로이츠는 오랜만에 제법 심한 고열을 앓았다. 하지만 슐로이츠에게 그 정도 고열은 별것 아닌 문제였다.

어릴 적 군부로 처음 왔을 때. 숙부가 쓰레기를 옮기듯 자신을 군부로 던져 놓고 가 버린 직후.

그때 슐로이츠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끓어올랐다. 군의들은 열 살짜리 꼬맹이가 다 죽어 가는 것에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외상도 내상도 아니라 어린 몸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생긴 심한 열병이었다. 그런 것에 군부의 군의들이 익숙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때 머릿속을 메운 목소리가어떤 식으로 뚝뚝 끊겼더라.

그 소녀가.

네가.

슐로이츠는 오래 생각을 끌고 가지는 않았다. 가호의 유효 기간이 일주일이라니 다음 날 바로 순찰을 나가 보았다. 며칠 만에 만나게 된 괴수 앞에 오파츠는 확실히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잠깐의 방어 막을 형성시킨 후 깨져 버렸지만 잠깐의 방심으로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그 상황에 오파츠가 벌어다 주는 십여 초는 충분하다 못해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손이 뻣뻣해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함께 괴수를 처리한 다른 지휘관들은 신의 은총을 목도한 신도처럼 감격해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슐로이츠의 몸에만 부작용이 있는 모양이었다.

감당할 만한 것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총사령관님, 접니다. 블란데아 르페브르 제1 지휘관도 함께 왔습니다.”

***

슐로이츠의 집무실은 언제나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원작에서도 그런 습관이 있다고 했지.’

귀여워라. 사소한 거긴 한데 슐로이츠의 습관이라고 하니까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주 예의 바른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로키온 경.”

르페브르 가문은 여러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입단을 한 이후에도 총사령관에게 ‘경’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르페브르의 직계를 보통 기사들과 구분시켜 주기 위한 행동 같았다.

다행히도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제 오빠의 편지를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호에 사소한 부작용이 있었고, 오늘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법을 전달받았습니다.”

엔리코르 녀석이 직접 와서 직접 전해 줬지.

“새 오파츠도 가져왔으니 확인해 보세요.”

나는 슐로이츠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두 손으로 아주 비굴히… 아니 공손히 오파츠를 내밀었다. 확실히, 오파츠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 맞긴 했다. 슐로이츠는 오파츠를 잡더니 살펴보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순식간에 성큼성큼 걸어 내 앞으로 왔다. 진짜 키가 많이 자랐구나. 첫날에는 너무 떨려서 혹시 실수할까 봐 제대로 살펴볼 겨를도 없었는데.

“가호를 내리는 방식이 바뀌었다던데.”

“네, 전부 바뀐 건 아니고 부작용이 있었던 검파자들에게 한해서만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슐로이츠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물 한 잔만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제가 겪기로는 프로키온 경 외에는 다른 부작용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그래.”

슐로이츠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 외에는 부작용자가 없더군.”

“그럼….”

“우연인가? 왜 하필 내게만 부작용이 있었을까.”

슐로이츠의 시선은 내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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