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형님이 사병을 몰래 키웠다니!”
슐로이츠의 숙부이자 프로키온 가주의 동생인 티모테 프로키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성이 온통 뒤집어지고 있었다. 왕실에서 급파된 근위대들은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가주의 내밀한 서랍과 금고, 창고까지 탈탈 털었다.
혹여 값나가는 물건을 몰래 챙기는 놈이 있을까 봐 눈에 불을 켜고 근위대들 사이를 뛰어다니던 티모테가 소리를 지르듯 물었다.
“그럼 가문은! 가문은 어떻게 된단 말이오!”
“국왕 전하께서 결정하실 것이오.”
“…….”
티모테 프로키온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반역에도 급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라자크 왕국은 왕권과 귀족들의 권한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나라였다.
왕실은 대대로 성검을 통해서 권력을 다졌으나, 성검은 ‘탑의 가문’의 피를 이은 귀족이라면 누구나 휘두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성검을 내주지 않았다가는 들끓는 괴수로 인해 왕실도 함께 몰락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역사 속의, 황권이 유달리 탄탄한 제국들과는 달리 왕국은 사정이 좀 더 복잡했다. 다시 말해 한 가문 몰살은 아주 드문 일이라는 소리였다.
아마도 프로키온 가주, 그리고 자식들이 연루되어 형장의 이슬은 되겠지만….
‘아니다. 슐로이츠 그 녀석은 오히려 살아남을 거야.’
그가 혼외자라며 내쫓겼다는 건 세상이 다 아니까. 게다가 그 깐깐한 왕비조차, 그렇게 내쫓긴 슐로이츠를 어느 정도 동정한다는 말도 사교계엔 은근히 돌았었다.
정계와 사교계는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사교계의 평판이 좋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있었고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니 프로키온 가주 부부와 그들의 멍청하고 능력 없는 아들은 죽겠지만 슐로이츠는 오히려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컸다.
‘그러면 그 녀석이 커서 가문을 차지할 수도 있겠군.’
그럼 안 되지.
이번 일을 이유로 가문의 상당 부분을 왕실에 빼앗기겠지만, 그럼에도 프로키온은 명문가였다. 남는 것들도 상당히 있을 것이며, 또 둘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분가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자신이 가주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녀석…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지.’
형의 명령을 받아 가문으로 데려올 때를 천천히 반추해 보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슐로이츠 그 녀석이 마치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는 기억은 났다. 짐을 싸라고 하루나 시간을 주었는데도 들고 온 것도 없었다.
‘쓸데없이 꽃 한 송이였던가. 그게 들고 온 전부였던 것 같은데.’
기가 차서 꾸짖었지만 슐로이츠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나서 새삼 기분이 나빠졌다. 그때 자신은 슐로이츠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이었으니까. 어차피 친부에게 버려진 놈이니 군부나 떠돌다가 일찍 목숨을 잃겠지. 다만 그 녀석이 순간 무생물로 느껴질 정도로 굳어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천천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직 죽었다는 소식은 못 받았지.’
슐로이츠가 군부로 떠나고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데뷔연을 치를 나이는 지났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데뷔연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여러 모로 미성숙할 녀석이니 가서 적당히 겁을 주면 충분히 가문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4, 5년만 발로 뛰면, 마치 왕실 창고에 던져진 낡은 보검 같은 프로키온 가문은 제 수중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티모테 프로키온은 곧장 몸을 일으켜 제 멍청한 조카가 머물고 있을 군부로 향했다.
“슐로이츠 경은 좀 있으면 오실 겁니다.”
안내를 받은 티모테 프로키온은 앉는 순간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군부는 왕도와 멀어서 조금 독립된 느낌이 강했다. 이쪽 생태계는 바깥과는 조금씩 다르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프로키온 가문이 멸망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왜 저렇게 정중하게 슐로이츠 녀석을 불러오겠다는 거지?’
묘한 뻑적지근함이 티모테 프로키온을 휩쌌다. 심지어 금방 올 줄 알았던 슐로이츠 프로키온은 오지도 않았다.
“왜 데려오지 않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갑자기 괴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비상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무슨! 슐로이츠 이 녀석은 숙부가 왔다는데 뭘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야! 어디야? 내가 직접 가겠….”
“숙부님.”
순간 등골이 쭈뼛 섰다. 건조한 목소리. 입 안에 모래를 한 움큼 쑤셔 넣은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티모테 프로키온의 코끝을 찌르는 묘한 피 냄새. 괴수의 흔적이었다. 티모테 역시 프로키온의 직계였던지라 이 짙은 피 냄새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티모테는 뒤를 돌아보았고,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
슐로이츠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괴수를 처리하고 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제복을 입은 어깨 위는 분명히 젖어 있었다. 병사가 서둘러 들고 온 마른 수건을 성의 없이 받아 들면서도, 슐로이츠의 싸늘한 두 눈은 티모테에게 꽂혀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을 피우시는지.”
“뭐… 뭐?”
“여기가 어디라고.”
“…….”
“소란을 피우는 거냐 물었습니다.”
“…….”
티모테 프로키온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슐로이츠 프로키온, 그 버림받았던 놈이 맞나? 사람이 바뀐 게 아니고? 그런 멍청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슐로이츠의 눈동자는 무기질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