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하네.’
당연히 고아원 아이들이 쓰는 침대는 아니었다. 이미 자리도 없었던 데다가, 기사들도 날 그런 곳에 재울 바에는 차라리 마차에서 주무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 권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이 고아원에서 가장 좋은 자리. 그러니까 질질 끌려 나간 원장의 침대였다. 매트리스의 푹신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간 르페브르 가문의 후원금이 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잘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아가씨.”
내 뒤를 따라다니며 아까 그놈들과의 일 처리를 대강 설명해 주고 있던 비너스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으응.”
“지금 누워 계신 침대 밑에 시체가 은닉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당탕탕.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한 나를 비너스가 달랑 낚아채 들어 올렸다. 두 다리로 똑바로 선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며 비너스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무슨… 무슨 말이… 야?”
비너스가 입을 열었다.
“인공적인 향을 가득 피워 가려 놓긴 했지만, 그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아무리 봐도 침대 밑 말고는 시체가 있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아니….”
나는 아직 감각이 타인과 비교해 완벽하지 않은 상태다. 그냥 눕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생각만 했는데.
설마 했다. 하지만 비너스가 침대를 들어 올리자 바닥재의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고, 그 밑에 있는 건 정말로 시체였다.
심지어 어린애 시체…. 나는 말문을 잃었다.
“이게… 뭔데…?”
“어딜 가든 똑똑한 아이는 있잖습니까, 아가씨.”
“…….”
내가 고아원을 잠깐 떠나 있는 사이에 기사들과 회계 감찰관들은 은닉한 서류를 전부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명부에 기록된 이름과 실제로 고아원에 머무는 아이들의 대조도 끝냈고. 그런데 이상하게 기록된 이름 중 몇 명은 실재하다가 최근에 실종되었다고 했다.
“아직은 감찰관들 쪽 추측이긴 하지만 원장의 비리 증거를 수집하다가 들켜 살해당한 아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비너스의 말에 나는 입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애를 아예 죽인 후 침대 밑에 묻었다고.
어린아이의 시체 위에 잠시나마 누웠다는 사실에 손이 가볍게 떨렸다.
“왜… 이제 말해….”
“저도 방에 들어선 순간 확신했습니다.”
“그럼… 눕기… 전에… 말…! 하라고…!”
더 심하게 말하고 싶은데 너무 놀라서 혀가 굳었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그도 오래 가지 못했다.
“시체가… 더 있을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고아원은 자기 손바닥 안이니 여기저기에 숨겨 두었을 거고요.”
“…….”
가난한 곳일수록 살아남기 위해 똑똑한 아이들도 많아지는 법이라지. 처음엔 시체를 보고 기절할 뻔했는데 이젠 착잡해졌다. 내가 손을 꼬물거리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자 비너스가 의아한 낯을 했다.
“아가씨?”
“이거… 덮어 주고… 싶어….”
“…예. 아가씨.”
비너스가 내 손수건을 가져가 시체의 얼굴에 덮어 주었다. 나는 작은 두 손을 꼭 쥔 채 고개를 숙여 짧게 묵념했다. 슐로이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였는데, 와 봐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고아원… 다 뒤집어 볼래….”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가씨.”
“응….”
새삼 깨달았다. 여기 정말로 피폐물 아포칼립스 세계관 맞구나. 나는 그동안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서 제대로 실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기야 위험하긴 하지. 도처에 널린 괴수에게서 왕국을 지키느라 매번 엄청난 예산이 군부로 흘러가는 곳이었다.
‘슐로이츠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대.’
슐로이츠는 남자 주인공도 아니다. 그저 인기가 많고 비중만 좀 있던 조연이지. 그런 애의 회상으로만 나오는 곳도 이렇게 위험이 깔려 있는데…. 앞으로 슐로이츠가 얼마나 더 많은 위험을 헤쳐 나가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슐로이츠한테 해독제를 먹이고…. 밥도 좀 먹여야지. 많이 먹이고 가야지.’
이 계획은 바로 다음 날 산산이 부서졌다.
***
“해독제를 안 먹겠다고 완강히 거부하던데요, 아가씨.”
“…….”
슐로이츠가 약을 안 먹을 줄이야. 의사들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영양제라고 속이고 먹이려고 했는데도 거부하더군요.”
“하여간… 어린 게… 의심은 많아서…!”
의사들은 딱 봐도 네가 더 어리다,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알 바 아니었다.
‘해독제라고 말하고 입에 밀어 넣을 수도 없고.’
당연한 일이었다.
슐로이츠가 먹은 거라고는 그 ‘마님’이 가져왔다던 음식밖에 없었다. 그 음식에 독이 들어 있었을 테니, 이 해독제를 먹으라고 말을 한다면 당연히 계모가 자신에게 독을 먹이려고 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슐로이츠는 눈치가 굉장히 빨랐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이 덕분에 괴수와의 전쟁에서 몇 번이나 살아남는다.
‘지금도 눈치 하난 엄청나 보이고.’
어쩌면 슐로이츠 자신이 능력을 개화하지 못하는 것도 친부의 수작임을 짐작해 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능력을 개화하지 못해, 가문에서 쫓겨난 소년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독약을 먹인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물론 내가 슐로이츠를 너무 좋게 평가하는 걸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모르는 게 좋았다.
솔직히 너무 잔인한 일이니까. 다 큰 어른이면 모르겠는데, 아직은 열 살짜리 어린애였다. 나는 슐로이츠가 받을 충격이 아직은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도 혼외자라는 누명을 쓰고 빈민가로 내쫓겨 독이 든 음식이나 먹고 있는 처지지만….
‘아 좀 너무하네.’
이렇게까지 굴러야 하나? 슐로이츠가? 나는 그냥 확 슐로이츠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 되는 일이다. 따라오지도 않을 거다.
슐로이츠는 네가 가문의 후계자며 누명을 쓴 거라는 어머니의 말을 세뇌처럼 들었으니까.
‘실제로 원작에서도 다시 돌아가잖아.’
슐로이츠는 자신의 가문을 남에게 넘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기어이 살아남아 군부로 들어가고, 구국 영웅이 되어 가문을 마침내 다시 손에 움켜쥔다.
‘그래, 그걸 방해하면 안 되지.’
“아가씨?”
의사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먹이지 말까요?”
“아니.”
“그러시면…?”
“몰래… 먹여.”
“…예?”
“눈치 못 채게… 먹여.”
“…….”
나중에야 의사들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엔리코르 도련님이 아가씨에게 이상한 걸 가르치시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으냐 하며 하소연했다는 걸 알았다.
***
얼마 후.
“아가씨. 아무래도 고아원을 아예 무너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기사와 회계관들과 바쁘게 토의하는 것 같던 비너스가 와서 알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해.”
“그럼 오늘 아가씨가 하루 주무실 곳이 애매해지는데요.”
“괜찮아.”
“그럼 오늘만 마차에서 주무시고, 내일부터 묵을 숙소를 수배해 놓겠습니다.”
“응.”
“이불은 최소 세 개는 덮으셔야 합니다.”
“으응.”
꼬박꼬박 대답해 주자 비너스가 갑자기 웃음을 감추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왜 웃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웬 회계관이 비너스를 급하게 찾아왔다.
“비너스 경. 잠시만….”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던 난 눈을 깜빡였다.
‘어?’
“…딜런?”
회계 감찰관 중 하나로, 왕도에서부터 따라온 남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가씨? 제 이름을 아십니까?”
“알지… 그럼.”
눈꼬리가 올라가, 기본적으로 냉철한 인상의 딜런은 조금이지만 당황한 듯했다. 자기 이름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이다. 하기야 왕도에서 함께 내려온 회계 감찰관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어린애가 이름까지는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도 당연했다.
물론 나도 남들은 모른다. 딜런 얘만 알지.
‘원작에서 나오잖아. 엔리코르 따까리로.’
지금은 회계 감찰관이지만, 원작에는 엔리코르의 부관으로 잠깐 몇 마디 하는 역할로 나왔었다. 이런 걸 왜 기억하고 있냐면, 얘가 엔리코르와 함께 나오는 삽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도 반응이 아주 괜찮았다.
- 냉미남 부관?
- 제목값 미쳤음
- 아니 설마 작가님이 아무리 그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설마 저거 나오고 죽을 엑스트라 삽화를 저렇게 넣어 주셨을 리가 없고 쟤는 사는 거다. 아무튼 사는 거임. 이거 떡밥임. 산다는 떡밥임.
- 근데 솔직히 나오는 애들이 다 예뻐서 저 정도 갖곤 쫌; 걍 죽을 것 같은데.
몇몇 소수의 의견이 틀리지 않았다. 딜런은 엔리코르와 함께 죽는다. 그날 댓글 창이 폭발했지….
‘원래 감찰관 출신이었구나?’
내가 빤히 쳐다보자 딜런은 눈동자를 조금 굴렸다가, 아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죄송하지만 비너스 경? 잠시….”
내게 양해를 구한 두 남자가 휙 나가 버렸다. 정중한 인사는 덤이긴 했지만.
‘바빠 보이네.’
그래 어디든 일하는 건 실무진이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남는 기사 한 명과 함께 슐로이츠의 집으로 향했다. 해독제를 안 먹는다니 해결 방안도 궁리해야 했고, 슐로이츠가 밥 먹는 모습도 솔직히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궁금했다.
‘낮에는 제법 활발하네.’
아무리 암흑 구역이라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걸을 때마다 흘긋흘긋 쏟아지는 눈길은 당연해서 별생각 없었다. 내 눈은 오직 슐로이츠의 집에 꽂혀 있었다.
슐로이츠의 집 앞에는 기사가 이미 지키고 있었다. 어제 그놈들이 와서 보복을 하려고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보고 돌아갔을 터.
문 앞에 앉아 있던 기사는 나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난 손을 흔들어 주며 목을 쭉 뺐다. 커튼이 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너덜너덜해서, 쉽게 안쪽을 기웃거릴 수 있었다. 쇠창살이 달린 두꺼운 유리창을 보니 그래도 슐로이츠의 외조모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을지 짐작이 갔다.
‘밥 먹고 있구나.’
창문 안으로 슐로이츠가 보였다. 그는 스푼으로 스튜를 엄청 크게 떠서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