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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서관의 주인은 마법사입니다-43화 (43/50)

00043  Chapter 8. 위기와 기회는 종이 한 장 차이  =========================================================================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은 살벌한 눈동자를 가진 무서운 맹수가, 내 친구의 탈을 쓰고 나를 케이지 밖으로 꾀어냈다. 그리고 제 꾀에 걸려 넘어간 사냥감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너무 쉽게 걸려서 오히려 당황한 거 알아?”

그녀는 여전히 내가 아는 아이데 언니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달라져버린 눈동자와 말투가 괴리감과 공포를 선사한다. 핏빛 눈동자가 내 눈 속의 무언가를 꿰뚫어보듯 날카롭게 빛난다. 앉아 있는 여자는 너무나도 작았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분위기는 너무나 거대했다. 그 기운에 잠식당한 몸에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렸다. 도망가야 하는데,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너를 이렇게 쉽게 내보낸 그 녀석은, 뭘 모르고 있는 걸까? 내가 그 해제의 마법사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내가 변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걸 모르는 걸까?”

주인, 주인 언니. 도와주세요. 나는 가까스로 눈동자만 굴려 그녀가 서 있던 카운터를 돌아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카운터 위에 쓰러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연인지 일부러 판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카페 안에는 그녀와 나 외에는 어떤 손님도 없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눈 돌려봐야 소용없어. 지금 여기에 널 도와줄 사람은 없거든.”

내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녀의 말. 그 사실을 직시하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만이 남았다. 공포에 완전히 잡아먹힌 내게 남은 딱 하나의 희망.

하지만, 그마저도 그녀의 한 마디에 퍼석퍼석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태에도 그 녀석이 안 나타나는 걸 보니, 아마 정말로 모르는 거 아닐까? 후후.”

그녀는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내 손등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소녀에게서 느껴졌던 그 냉기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살을 에듯 내 피부를 가르고 들어왔다. 분명 손등 위에서 그려지는 건데, 고통은 심장에서 느껴진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손대지 말라고 당차게 외치고 싶어도, 내 손등 위를 기어 다니는 저 손가락을 쳐내고 싶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다. 꽁꽁 얼어붙어 꿈쩍도 못하는 내 눈앞에, 친절한 그녀의 손이 들어찼다. 그 손에는 언젠가 라텐테가 주었던 종이가 빛을 잃은 채 걸려 있었다.

“일단 이 좆같은 방어마법은 해결했고.”

내 눈앞에서 그 종이를 좍 찢어버린 그녀가 손을 내리고 그 귀여운 얼굴을 그대로 한 채, 섬뜩한 눈동자의 빛이 묻혀 사라질 정도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식사준비를 해볼까?”

그 말에 나는 심장이 쿵,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어디 있어요, 라테. 근처에 있겠다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타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아니 그 이전에,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분명히 그랬잖아요.

하지만 라텐테는 지금 이곳에 없었고, 이미 일은 터진 뒤였다. 곱게 휘어져 있던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천천히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느낌상 아까보다 더 짙어진 듯한 그 완연한 핏빛이 다시금 내 얼굴을 고스란히 담았다. 손을 대고 있지 않는데, 그 눈빛만으로도 온몸에 냉기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삼 초만 세.”

그녀가 내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가져 왔다. 그리고,

“삼, 이, 일.”

입으로 숫자를 세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하나씩 접히고, 그녀의 손이 완전히 주먹을 쥐었을 때,

“잘 먹겠습니다?”

철컥, 하는 소리가, 아니 느낌이, 아니 봉인이,

완전히, 풀렸다.

*

“라, 라테…….”

언젠가, 혹시나 봉인이 풀리게 되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마법사가 된 것이지만 단지 그 마법이 봉인되어있기 때문에 마법을 못 쓰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안 나오네. 애간장이 타겠어.”

하지만 봉인이 풀려도,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것이 헛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데 언니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붉은 눈의 마법사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놓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천천히 여유롭게 했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궁금하지 않아도 친절하게 한 마디 한 마디 설명을 보태준다.

그것은 마치 천천히, 앞으로 네게 생길 일을 미리 듣고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두려움에 잡아먹혀 아무것도 못하고 덜덜 떠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배고픈 사자 같은 욕망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서도, 입가에는 여유로움이 가득 찬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얼굴에 마법이라도 한 방 날려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왜, 왜 나는 이렇게 덜덜 떠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걸까.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대체 왜.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내 볼을 쓸어내리고 턱을 치켜 올렸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 눈동자에 담긴 새카만 욕망과, 온몸이 얼어버릴 듯한 시린 냉기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결국 눈가가 뜨거워지고 말았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라, 라테…….”

“아직도 그 녀석을 떠올릴 만한 정신이 남아있어?”

그러나 그 인영은, 내 턱을 치켜 올리고 있던 차가운 손끝이 내 눈시울을 가린 장막을 걷어내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환상을 날려 보낸 내 눈앞에는 다시 현실이 보인다.

넘어진 테이블을 옆으로 제쳐두고 내 앞에 쪼그려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방금 내 눈물을 닦은 손을 걷어내는 아이데 언니의 모습을 한 마법사의 모습이.

슬로모션이라도 걸어놓은 듯 느려터진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공포는 나눠서 느낀다고 그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느끼면 오래 느낄수록 그 몸집을 계속해서 불려나갈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공포는 극한에 달해서, 기절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눈을 감고 싶었다.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이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흐윽, 라테……어디 있어요……살려줘…….”

“흐음, 참, 쓸데없는 데에 희망을 걸고 있구나.”

그녀가 우습다는 듯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붉은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슥 훑었다.

“뭐, 그 편이 더 재미있긴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이 상황이 되도록 안 나타난다는 건…….”

그녀의 몸이 갑자기 하얀 빛 무리에 휩싸이더니, 머리부터 서서히 바뀌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 무리 속에서 찰랑이는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칼에 길쭉한 눈매를 가진 검은 눈까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네가 이런 상황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너를 완벽히 아는 지인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럴 만하지 않아? 나름 철저히 준비했거든.”

나는 한 줄기 남아있던 희망의 자락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네 모습을 하고 일주일이나 너에 대해 알아보려고 돌아다녔지. 다 네가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빛 무리를 완전히 걷어내고 내 앞에 나타난 인영은,

“특히 네가 두려워할 만한 거에 좀 심혈을 기울여 봤어.”

아모르 덴 이스프렌. 나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선사해준 다시는 상종하기 싫은 그 남자였다.

그녀, 아니 이제 그가 된 마법사가 그 끔찍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뒷머리를 낚아채 제 얼굴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그와 나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난 이 모습으로 지금부터 너를 잡아먹을 거야. 아, 정말…….”

호선을 그리고 있던 그의 눈이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재밌겠다, 그치?”

그의 입가가 귀에 걸릴 듯 길게 찢어졌다. 그의 다른 손이 내 목을 천천히 움켜잡았다. 느껴지는 냉기가 전에 손등이나 얼굴에 닿았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서서히 조여 오는 손아귀가 점점 내 숨통을 막아왔다.

“헉…….”

그리고 숨이 막혀 호흡이 가빠질 때쯤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놓고 현실을 직시했다.

아, 나 죽는 거구나.

점점 힘들어지는 호흡과 함께, 시야가 흐려진다. 흐려지는 시야와 함께 과거들이 스쳐지나…….

“재밌긴 개뿔이. 씨발, 그 손 놔라.”

―가려던 차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림과 동시에 막혀 있던 숨통이 탁 트였다. 쿠당탕, 테이블들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흐려진 눈으로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는 나를 구해주러 나타난 사람은…….

“……이 정도 하게 해줬으면, 죽어도 정당방위겠지. 개새끼야.”

반짝이는 은발이 흐릿하게 보인다. 어제 나와 함께 가서 산 옷을 걸친 채로, 테이블을 무너뜨리고 바닥을 구른 검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라테…….”

왜 이제야,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만이 온몸을 가득 채웠고,

그와 함께 내 세상은 새까맣게 암전되었다.

============================ 작품 후기 ============================

:3 뿅

hyokee님 애초에 라테와 레이가 만난 언니가 저너미 변신한 겁니다아 ^0^

이대로 가서 이번주 안에 완결이 나면...조으련만....

선추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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