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도서관의 주인은 마법사입니다-42화 (42/50)

00042  Chapter 8. 위기와 기회는 종이 한 장 차이  =========================================================================

*

‘저 진짜 혼자 가도 되는 거예요?’

‘응. 괜찮다니까. 별 일 안 생겨. 그리고 멀리 안 있을 테니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갈게.’

약속 당일, 그러니까 토요일, 바로 오늘. 나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나는 연신 괜찮다고 말하던 라텐테의 말을 믿으면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케이지에서 주인이 주는 밥만 먹고 빈둥거리던 애완동물이 갑자기 숲속에 무방비상태로 덩그러니 버려지면 이런 기분일까. 고구마를 통째로 삼킨 듯한 답답증이 밀려왔다. 속이 꾹 막히는 느낌, 하지만 이미 약속한 것 무를 수도 없고, 그냥 그의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달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

언니와 내가 자주 가던 카페는, 이제는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내 이전 직장인 출판사의 건너편에 있었다. 예전에 워낙 자주 들렀던 탓에 가게 주인 언니와도 안면을 튼 사이였는데, 굉장히 오랜만이구나. 여전히 변한 것 없는 그곳에, 그래서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은 그곳에, 나는 천천히 발을 들였다.

“어서오세……어머, 이게 누구셔! 오랜만이에요!”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이 나를 보고 놀란다. 가게가 그대로인 것처럼, 가게 주인도 그대로였다. 나는 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싱긋 웃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매일 같이 오시던 분께서 오늘 오실 거라고 말씀하시던데……정말이었네요.”

“언니가 벌써 왔나요?”

“네. 십 분 정도 전에 오셨어요.”

벌써? 혹시 내가 늦은 건가? 그녀의 말에 카페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까지 십 분 정도 더 남아있었다. 다행히 늦은 것은 아니었다. 안도하며 다시 미소를 지으니, 주인이 다시 말을 건네 온다.

“항상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네. 그래주세요.”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익숙한 뒷모습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언니?”

내 부름에 언니가 홀짝이던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담자, 영롱하게 반짝였다.

“왔네! 빨리빨리 앉아! 하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아, 네.”

그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이 스르르 녹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잘 지냈어요, 언니? 이렇게 여기서 만나는 거 진짜 오랜만이죠?”

“그러게나 말이야. 두 달 전만 해도 너랑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은 진짜 생각도 못했는데.”

“저도 갑자기 해고당했을 때, 진짜 벼락 맞은 줄 알았어요.”

“그래도 지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그녀의 말에 나는 라텐테를 떠올리며 후후 웃었다. 괜찮죠, 아니, 괜찮다 못해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호사를 누리면서 살고 있답니다. 물론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몰라서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라텐테가 옆에 있으면 봄날 눈 녹듯 사라져 없어지고, 나는 거의 온종일 그와 붙어있으니 따져 보면 불안감도 딱히 느끼지 않는다.

“네. 엄청 잘 지내고 있어요.”

“흐응.”

행복감이 표정에 드러났나, 언니의 표정이 능글능글 흐물흐물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묘한 감탄사를 탄창 삼아, 속사포처럼 말을 다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인이 아주 말이야, 엉, 너 능력 좋다. 이번엔 얼굴값 하는 놈 아니지? 표정 보니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얼마나 됐어? 어디까지 갔어?”

“저, 언니, 하나씩 하면 안 될까요.”

결국 묻고 싶은 건 내 연애사였던 것이다. 아무튼 변한 게 없어, 나는 실없이 웃었다. 그녀도 저가 쏘아대듯 뱉어놓고는 웃겼는지 나와 함께 웃었다.

“얼굴은 뭐, 워낙 눈에 띄니 딱 보면 알겠더라. 도서관장이지? 서른 번째 골목?”

“맞아요. 그냥 뭐, 어쩌다 보니. 사람 일이야 모르는 거니까.”

“맞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웃고 있던 언니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 순간 주변 공기가 냉각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사라진 줄 알았던 불안감이 온몸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언니는 고개를 숙이고 쿡쿡, 아까와는 다른 낮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무서워.

“언니?”

“라텐테가 널 이렇게 쉽게 보내줄 줄은 몰랐어.”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던 컵과 고개를 함께 들어올렸다. 그녀는 얼음이 잔뜩 든 그 커피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후드득 부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뭐 이런 맛대가리도 없는 걸 처먹는 건지. 연기하느라 힘들었네.”

그녀의 물빛 눈동자가 어느새 핏빛으로 변해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알고 싶지 않아도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를 깨닫고야 말았다.

케이지를 나오자마자, 나를 호시탐탐 노리던 맹수에게 걸렸다.

============================ 작품 후기 ============================

끊긴 끊었지만 위기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없다고 합니다 '-'a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