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Chatper 7. 변화는 한 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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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한 것, 취소다. 나는 됐다는 나를 한사코 붙잡고 상의를 벗겨내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소녀에게 아까부터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저기, 지금 나한테 급한 건 치료가 아니고…….”
“안 돼요. 이렇게 피가 많이 나면 죽는다고 그랬어요.”
누가 여기서 더 공격하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니, 설령 피가 많이 나서 죽을 상처라 쳐도 붕대를 싸매는 건지, 그냥 돌돌 마는 건지 모를 엉성한 손놀림을 하고 있으면서 누굴 살린대, 이 꼬마가. 이렇게 감으면 감으나 마나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 안 죽는다니까……음.”
뭔가 끙끙대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런 말을 하기가 뭣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지, 이 붕대로 내 상처를 다 가리기 전까지는 도저히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으니.
“줘봐. 내가 할게.”
“앗!”
나는 그 조그마한 손에서 붕대를 뺏어들었다. 몸을 움직이니 상처가 벌어지는 느낌에 욱신욱신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 고통을 감수해도 저 소녀보다는 내가 더 응급처치를 잘할 것이라 자신했다. 나는 신음을 삼키며 다친 가슴팍과 몸에 꽁꽁 붕대를 싸맸다. 싸매는 중에도 피가 계속 새어나와서 그런지, 붕대는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확실히 저런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하는 것보다, 다친 내가 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나는 붕대를 다 감고 난 뒤 고통 때문에 삼켰던 숨을 한 번에 토하며 입을 열었다.
“후우, 이제 됐지? 이제 진짜 들어줘, 진짜, 진짜 급한 일이야.”
“에…….”
그녀의 입장에선 황당한 상황이었을 지도 모른다.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넋 놓지 말고, 제발, 빨리.”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언제 그놈들이 내 냄새를 맡을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날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는 동아줄을 바로 앞에 두고 발목이 붙잡혀 있는 지금 같은 상황은,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제야 내 간절함이 닿은 건지, 소녀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다행이다.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해야 하니 과연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간을 번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나저나, 뭐부터 말해야하나. 마음은 급한데 설명할 것은 많으니, 도통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입이 제멋대로 열려버렸다.
“그러니까……네 몸을 좀 빌려줘.”
그리고 내가 내뱉은 말에 흠칫했다. 아니, 하필 나온 말이 왜 이따위야? 당황했다. 누가 봐도 해명이 필요할 만한 말이었다. 나는 재빨리 그 말을 무마하려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이 말이…….”
“네. 그렇게 해요.”
……어, 방금 대답을 한 것 같은데. 잘못 들었나?
“……응?”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허를 찔렸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녀는 잘못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 사살했다. 그녀는 도리어 내 반응이 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급한 일이라면서요. 그렇게 피 철철 흘리면서 부탁하는 거라면, 안 도와주면 죽는 거 아니에요?”
“아니, 맞아, 전부 맞는데…….”
“그럼 당연히 도와줘야겠네요. 그렇게 급한 일이라고 해서 도와준다는데 왜 그래요?”
그리고 그녀의 그 반응에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네 몸을 빌린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알고 그렇게 쉽게 대답해?”
“뭔들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는데.”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내 목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대충 어떤 상태인지는 짐작이 갔다. 확실히 내 상태가 지금 말이 아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수긍하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도와달라고 해놓고 무슨 웃기지도 않는 생각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고를 가진 이들이라면 다들 그럴 것이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다짜고짜 다른 것도 아니고 몸을 빌려달라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너무 궁금했다. 급해서 시간을 최대한 벌어야한다고 생각한 지가 바로 몇 초 전이었는데, 그 귀한 시간을 버리는 질문을 나는 결국 던지고야 말았다.
“몸을 빌려준다는 게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한다는 걸지는 어떻게 알고?”
“무슨 나쁜 짓요? 전 그런 건 몰라요. 그냥 일단 당신을 안 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건 맞아, 맞는데…….”
아무리 물어도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물어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물어서는 평생 해답을 얻을 수가 없을 판국이었다. 이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도저히 이 의문의 해답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정말 그 이유 하나에 앞뒤 안 따지고 그렇게 쉽게 허락해 준다고?”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해요?
“아니, 그렇게 물으면…….”
그리고 이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정말, 고마워.”
그녀는 날 구하기 위해 나타난 천사라고. 그래서 이토록 순수하고 착하며,
“빨리 해요. 급하다면서요.
아름다운 것이라고.
============================ 작품 후기 ============================
음 'ㅁ'; 역시나 짧고...제대로 쓴 건지 모르겠고 ㅠㅠ 일어나서 확인해야게씁니당
전편도 부분부분 빠진 거 있어서 수정해야하는뎁 'ㅁ'... 8ㅁ8...
선추코 감사합니다! 다들 응원해주셔서 그래도 꾸역꾸역 쓰네엽.
이번 편은 일단 좀 읽어보고 완전 뜯어고쳐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 좀 해봐야게씁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