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4 Chapter 4. 불행에는 항상 전조가 있다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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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람이 적은 오전 시간 간간이 오는 손님들을 받으며 라텐테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가까이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나 때문에 평소에는 서재 높은 곳에 올라가서 책을 읽거나 정리하거나 무언가를 쓰는 그였지만, 오늘은 내 옆에서 의자 대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다. 스킨십을 허락했다고 찰싹 들러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에비, 나는 슬금슬금 들러붙는 그를 슬금슬금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만 달라붙고 얘기해 준다는 거나 해줘요.”
“어? 무슨 얘기……아.”
저를 밀어내며 들어오는 내 물음에, 라텐테가 잠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해하다가 이내 무얼 말하는지 깨닫고는 슬금슬금 다가오던 것을 멈췄다. 잠시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한 번 움찔했다.
“아, 맞다. 내가 녹스 이놈을……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 했는데.”
“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의미심장한 말에 또 한 번 움찔했다. 녹스? 뭘 건드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라테, 뭔가 알고 있죠? 녹스는 또 누군데요?”
“마법사들이 널 노려.”
그러나 놀라는 나와 다르게 대답하는 라텐테의 태도나 목소리는 담담했다. 얼핏 들으면 별거 아니라는 투였지만, 언제나 한 단계 들떠 있는 듯한―나에게 제 마음을 표현할 때는 빼고―태도만을 보아왔던 나였기에 그 지나칠 정도의 덤덤함이 더 생소했다. 게다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생소함을 한층 더 두텁게 만들었다.
“네? 마법사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 마법사라는 단어. 존재 자체도 두루뭉술한 그것이 날 노리고 있다는 말을 듣는 기분은 굉장히 이상했다. 뭔가 내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닌 것 같은……표현하자면 제3자가 되어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당사자들을 구경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라텐테의 얼음장 같은 표정이, 이 상황이 그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으니까.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담, 불길함이 스물스물 소름 돋아나듯 피부를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라텐테의 입에서 ‘마법사’라는 단어보다도 더 생소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너한테 걸려 있던 봉인 하나가 풀려버렸거든. 식당에서 네가 외운 게 해제 주문이었던 거야. 그 단어들 내뱉으면서 이상한 기분 들지 않았어? 뭔가 툭 끊어진다거나.”
뜨끔, 내가 되어 본 것도 아닌 라텐테가 너무도 간결하고 정확하게 그때의 내 느낌을 표현하니 괜스레 몸이 움찔했다. 그때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얼떨떨한 기분을 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 말에 라텐테는 확신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네. 그랬었는데……봉인이요?”
“전부 다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길고 쓸데없는 이야기라서. 한마디로 하면 그냥 네가 안에 꽁꽁 숨기고 있던 암호 하나가 풀렸다는 거야. 그걸 노리고 있던 마법사가 냄새를 맡았고 그 마법사가 녹스야.”
……뭐, 뭐라고? 어디 소설책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라텐테의 말에 내 얼굴이 점점 이상하게 일그러져 간다. 진짜 책이라도 읽고 있나 싶어 그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것은 나와 금박 장부, 그리고 펜뿐이었다. 그럼 저 말이 정말로 실제 상황이라는 말인가.
뭐? 내 안에 뭐가 꽁꽁 숨겨져 있다고? 암호가 풀렸다고? 그 냄새를 맡은 녹스라는 마법사가 날 노려?
분명 알아듣지 못할 말은 아닌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 내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 떠있지 않을까? 나는 이상하게 인상을 구긴 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째 들어도 들어도 의문만 더 쌓이는 것 같지만, 이미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 해답이 나오는 것까지 만이라도 끝장을 봐야 했다.
“……뭐가 봉인돼 있다는 거예요, 제 안에?”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여태껏 무서울 정도로 덤덤했던 그가 움찔했다. 답지 않게 당황한 그가 우물쭈물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도대체 뭐길래? 찜찜하고 궁금한 마음에 독촉하려 입을 열려는 순간, 라텐테의 입에서 먼저 대답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남아있는……마법사들 모두가 원하는 힘. 물론 아직 봉인이 덜 풀려서 당장 널 잡아먹으려 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행방이 묘연했던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약간이나마 단서를 찾은 상황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 봉인부터 풀려고 하겠지.”
“자, 잡아먹는다고요? 우리가 가축 잡아먹듯이?”
“조금 다르긴 한데……비슷해.”
사람이 사람을 동물 잡아먹듯이 잡아먹는다고?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름끼치는 그림에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깐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한 장면일 뿐이고……그 다음으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채로 나가지 않는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마법사, 마법사라면…….
슬쩍 떨리는 내 시선이 라텐테를 향했다. 그 또한 분명 제 입으로 마법사라고 말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내 몸을 원했던 그 남자처럼, 라텐테도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뭔지 모를 모든 마법사들이 원하는 힘이라는 걸 원해서……불안감이 다시금 스물스물 머리를 내밀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흠칫, 생각하기 무섭게 단호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 순간, 생각이 아니라 말로 했나 놀랐지만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아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 표정을 보고 때려 맞춘 모양이었다.
또 내 표정이 보란 듯이 안 좋아졌구나. 어느새 내 표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걸 읽은 라텐테의 보라색 눈동자가 다시금 굳어졌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 내 반응이 이럴 것이란 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도 마법사는 맞지만……내가 그런 의도였다면 네게 이런 말은 안 하지 않았을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긋했지만, 그 속의 의미는 명확했다.
내가 네게 원하는 건 그게 아냐.
너무나 단단하고 확고한 그 목소리에, 다시 그날과 지금을 비교하며 불안해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긴,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다면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멍청하게 그런 불순한 목적을 본인에게 직접 말한단 말인가. 나 같으면 절대로 안 그럴 것이다.
하지만……이미 믿음에 배신당한 적 있었던 마음은 그렇게 호락호락 열리지 않았다. 자기는 아닌 것처럼 말하고 믿게 한 뒤에 나중에 뒤통수를 칠 수도 있잖아? 사라지지 않은 의심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 섞여 눈도, 몸도, 마음도 속절없이 떨린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이런 사라지지 않는 의심 또한 예상했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네가 의심해도 이해해.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많은 정황이 날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지. 내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네게 없으니까. 그래도 한 번 믿어줄 수 없을까?”
그의 크고 따뜻한 손이 내 머리 위로 올라와, 부드럽게 내 머리칼을 한 번 쓸어내렸다. 애정이 듬뿍 담긴 듯한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하지만 예전 그 남자 또한 나를 품기 직전에 이런 식으로 내게 믿음을 줬었다는 걸 상기해낸 나는, 그 순간 그 따뜻한 손길이 무서워져서 몸을 움츠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게로 기울어버린 내 마음 한편이, 그는 다르다고, 믿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라텐테와 그 남자는 겹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다른 부분도 많았다고. 세상에 사람을 만나면서 이미지가 겹치는 일은 흔한 일, 하지만 그들 모두가 같지는 않잖아? 라텐테는 그 남자와 다를 거야.
“……라테는, 그 남자와 다르다고 했죠?”
흘러나오는 말만으로 그 속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 그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두려움이 잔뜩 깃든 그 어조에, 그는 티 없는 미소와 함께 내가 원하던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내 말에 대답했다.
“말했잖아. 너한테 상처 안 준다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네게 하는 말은 다 진심이야. 누가 네게 어떤 식의 배신으로 어떤 상처를 줬길래 네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난 널 배신하지 않아. 약속할게.”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엄지와 새끼를 뺀 나머지 손가락을 접어 내 손 앞에 내밀었다. 약속의 제스처였다. 내가 얼떨결에 그 모양을 따라하며 내 새끼를 그의 새끼에 가져다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 손가락을 휙 낚아채며 엄지를 내 엄지에 꾹 눌렀다. 그리고 그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더하며, 천천히 얼굴을 내게로 가져왔다.
샴푸 향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조금만 더 다가오면 코끝이 닿을 것만 같았지만, 그의 숨 막히게 잘생긴 얼굴이 주는 위압감에 나는 물러서는 것도 잊고 숨을 멈춘 채 넋을 놓고 말았다. 그는 깜빡이지도 않고 커다랗게 뜨인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난 널 노리는 마법사가 녹스 하나든, 그 이상이든 그들에게서 널 지켜. 내가 네게 원하는 건 힘이 아냐.”
그가 이마를 내게 살짝 부딪혔다. 그리고는 그 거리에서, 사람을 홀리는 매혹적인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네 마음을 원해. 네가 좋아. 이 마음을 믿어줘.”
거기에 진실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내 마음은 완전히 그를 믿는 쪽으로 기울어버리고 말았다.
바보 같은 년, 또 저번처럼 되면 어떡하려고. 마음 구석에 남은 아주 작은 의심이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크게 기울어버린 마음은 그 작은 목소리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이미 내 마음은 그를 믿게 되어 버렸는 걸, 나는 그와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넋을 놓은 채 그대로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나의 그 긍정에, 돌연 그가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기쁘다는 듯 다시 높아진 목소리로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마워.”
넓고 따뜻한, 좋은 냄새가 나는 품, 그 품에 안기니 이제는 불안감보다 설렘이 앞선다. 아무래도 이제는 그를 향한 내 마음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된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그를 많이 좋아하게 됐나 보다.
그 포근한 품에 안겨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한참 만끽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적막 가득했던 데스크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어, 음. 책 빌리러 왔는데……혹시 제가 방해가 됐나요?”
============================ 작품 후기 ============================
1.
으앙으악! 이번 편도 즐감해주시길...? 혹시 너무 지루하나요()...ㅠ^ㅠ
전 이런 달달달달달이 너무 좋...은데... 흑흐극()
아마 조만간 라테를 2d 그림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두근두근 +_+
선추코 감사합니다 ㅠ_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정합니다 독자님들 ♥
unica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8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