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Chapter 1. 내일의 해는 서쪽에서 뜨나? =========================================================================
“응? 누가? 손님이?”
과연 남자는, 언제나와는 다른 나의 대꾸에 바로 반응했다. 남자의 새하얀 눈썹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올라갔다. 올 때마다 인사를 하긴 하지만, 매일 볼 일만 보고 나가는 터라 딱히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한 남자는 정말 어디 하늘에서 내려준 잘생김의 표본 같은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눈썹이 움직이는 것마저 잘생겨 보일까? 고작 눈썹이 움직이는 것뿐인데, 그 따위에 시선을 이렇게 모조리 빼앗기고 있었다.
아냐, 정신 차려, 클레이브. 넌 남자의 눈썹 따위를 감상하러 여기 온 게 아니잖아. 여기 온 진짜 목적을 잊지 마. 나는 애써 그 눈썹에서 눈을 떼고 남자의 눈동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오롯이 나를 향한 채로 끔뻑이고 있는 그 보랏빛 눈동자는 눈썹보다도 더 잘생겼다……아니, 잠깐, 이러면 내 눈은 어디 두고 얘기하라는 거야? 갈 곳을 잃은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네. 제가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개미 만하게 흘러나왔다. 안 돼,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인데! 난 분명 들어오기 전에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웠었는데! 우습게도 그 충만한 자신감을 와르르 무너뜨린 것은 독설도, 비난도 아닌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아아,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어……울적해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씩 웃는다. 응? 왜 웃는 거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은 공포감을 준다. 근데 그보다 더 웃긴 건, 저 웃는 얼굴은 무서운 와중에도 잘생겨서 눈이 안 떨어진다. 아, 뭐가 이런 게 다 있어.
“손님, 스물일곱 번째 골목에 있는 그 큰 출판사 다니지 않아?”
“으엑?”
속으로 실컷 불평하는 와중에도, 나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것도 완전 멋없게. 아, 진짜.
아니, 근데 그것보다 저 남자는 내가 거기 출판사 다니는 건 어떻게 알고 있어?
“그걸 관장님이 어떻게 알아요?”
나는 더 크게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부라리듯 쳐다보았다. 설명이 필요했다. 남자와 나는 여기서 관장과 손님, 출판사 직원과 고객의 정도의 관계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하루에 이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대부분은 책보다는 남자의 얼굴을 보러 오는 여자들이었지만―그 많은 사람 속에서 나를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남자를 심문하는 꼴이 됐다. 면접을 보러온 것은 나인데, 뭔가 입장이 뒤바뀐 것 같았지만 남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지 순순히 대꾸해 주었다.
“가끔 그 출판사 딱지 붙은 책들 납품하러 오잖아. 그거 말고도 책도 자주 빌리러 오고.”
하지만 답변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아니, 이 남자야. 내가 지금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잖아. 내가 여기 자주 온다는 건 나도 안다고.
내가 궁금한 건 네가 왜 날 기억하고 있냐는 거지. 여기에 드나드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인데? 아, 물론 내가 남들보다 좀 출중한 외모를 가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저렇게 생긴 남자에게는 나나 그 사람들이나 별로 다르지도 않을 텐데.
나는 내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남자를 위해, 친절하게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제 얼굴을 기억하세요?”
“응, 당연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손님만은 확실히 기억해. 눈에 띄거든.”
“콜록.”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바로 돌아오는 남자의 대답에, 나는 침을 삼키다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면접은 이제 그냥 말아먹었구나. 들어오자마자 몇 번째 하는 실수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수 안 할 수가 없잖아. 저 남자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지금 뭐라고…….”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충동적으로 다시 물으려고 했던 나는, 순간적으로 퍼뜩 드는 생각에 나오려던 말을 쏙 집어넣었다. 왠지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들으면 이미 날아간 자신감과 함께 이성도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면 아마 그 뒤부터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던 질질 끌려 다니게 될 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드니, 저런 식으로 홀린 뒤에 면접 안 보게 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려고 하는 고도의 계략일지도 몰라. 어림없는 소리 말라지. 어차피 떨어질 거라면, 할 말 다 하고 떨어질 것이다. 남자의 말에 홀려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붙잡기 위해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면접을 봐야 했다. 이 남자와 오래 잡담해서 나에게 이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손해만 늘면 늘었지. 말을 하다 끊었던 나는,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면접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남자가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며 손뼉을 딱 쳤다. 그 모습도 하나의 예술행위 같았다. 진짜 잘생겼다.
“아, 맞다. 손님으로 온 게 아니었지, 참. 요 근래에는 면접 보러 오는 사람이 잘 없어서. 딴 소리 하다가 까먹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갑자기 성큼성큼 발을 움직여 내 옆으로 다가왔다. 으악! 왜 다가오는 거야! 더 긴장되게! 남자와의 거리가 계속해서 좁혀지자, 내 어깨는 자동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점점 움츠러들었다. 발을 움직이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멀어져보려는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남자는 기어코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손만 슬쩍 움직여도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나는 눈만 슬쩍 돌려 남자를 흘끗 살폈다. 가까이서 보이는 남자의 옆선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심지어 키도 엄청 크다. 내가 여자 중에서도 조금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깨 까지도 안 오는 건 너무하잖아. 와, 진짜, 사람이 이렇게 생겨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비현실적일 정도로 완벽한 외모 때문에, 오히려 뭔가 이성적인 두근거림은 없었다. 단지 옆에 있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뭔가에 홀리는 느낌이 들 뿐이다. 뭐랄까,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 심각한 문제구나. 이성적인 두근거림이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뭔가에 홀리는 느낌이건, 어쨌든 내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 건 마찬가지네.
옆에 다가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을 잔뜩 하고 있던 내게, 남자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물음을 던져왔다.
“어디 앉을래? 마침 손님도 없는 시간이고, 앉을 자리는 천진데.”
그런데 그 미성과 중간 톤을 어우르는 목소리도 참 매력적이었다. 이 남자는 목소리마저도 잘생겼구나. 말을 하는데, 소리에서 꽃발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은 뭐지.
멀리 있을 땐 그래도 대꾸는 할 수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오니 그조차도 힘들었다. 아니, 그것보다 자리를 정하긴 뭘 정해? 당연히 어디 사무실 같은 곳에 들어가서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이것들은 다 속에서 하는 외침일 뿐, 겉으로 드러나는 난 그저 멀뚱하게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눈만 열심히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입 꾹 다물고 있으니, 기다려주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슬쩍 인상을 쓰며 다시 입을 열었다.
“편한 데 가서 앉으라고 선택권도 줬는데. 좋아, 네가 못 고르겠다면 내가 골라줄게. 저기, 저어기, 빨간 소파 있지? 여기 도서관에서 제일 좋은 거야. 엄청 푹신해.”
남자의 손끝에는 그의 말대로 보기에도 매우 푹신해 보이는 고급 소파가 걸려 있었다. 모양새가 딱 보아하니 그냥 편하게 앉아서 책 보라고 만든 곳인데……심지어 앞에 테이블도 없어……면접을 저런데 앉아서 본다고?
구인광고부터 범상치 않더니, 면접을 보는 것도 이상하다. 뭔가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 다 쓸모없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어쨌든 면접 본다잖아. 일단 지금에 집중해, 클레이브.
나는 남자의 말에 따라, 그가 가리킨 그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남자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그 소파는 여태껏 내가 앉아 봤던 의자들 중에서 가장 푹신했다. 얼마나 푹신한지 긴장감까지 스르르 녹아내려가……는데, 갑자기 내 옆자리가 푹 꺼진다. 응?
남자가 내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무릎에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면접을 이러고 본다고? 나도 모르게 김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에……?”
아, 실수 좀 그만하자고 마음먹은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또 실수다. 악! 너 이렇게 헤프지 않잖아! 오늘따라 왜 이런다니? 속으로 나 자신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대며 억지로 마음을 다잡던 나는, 결국 화살을 남자에게로 돌렸다. 다 저놈이 너무 쓸데없이 잘생겨서 그런 거라고.
아, 물론 속으로만.
물론 저 남자는 내가 대놓고 무슨 소리를 한다 해도 별로 신경을 쓸 것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이미 반쯤……아니, 거의 다 타버린 밥이긴 했지만 아직 희망은 있었으니까. 저 봐, 웃고 있잖아. 무슨 의미의 웃음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가짜 웃음은 아닌 것 같거든.
근데 진짜 왜 저렇게 방실방실 웃고 있는 거지……잘생기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잘생겼구나 하고 감상할 수는 없었다. 저 웃음의 의미가 대체 뭘까. 보고 있으면 알까 싶어 내가 그 조각 같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남자가 말을 건네 온다.
“근데 그거 뭐야? 아까부터 무지 궁금했는데. 그 안에서 막 투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아.”
“아?”
그는 내 품에 안겨 있는 서류봉투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맞다. 하도 신경 쓰이는 것이 많다 보니 잊을 뻔했다. 나는 그것을 남자에게 건네주며 정중하게 말했다.
“정식 인사가 좀 늦은 감이 있네요. 클레이브 폰 셀라에요. 이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그것을 건네받은 남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읊조렸다.
“이력서? 포트폴리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나의 뇌리에서 한 마디를 던졌다.
야, 너 헛다리 제대로 짚었구나.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시종일관 발랄함을 풍기던 남자가 당황한 듯 입매를 일그러뜨리고 볼을 긁적이며 그 서류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내 정성이 가득 들어간 포트폴리오를 한 번 촤르륵 넘겨보더니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것도 가지고 오라고 써 붙여놨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옛날에 붙여놔서 까먹은 건가?”
“아뇨, 적혀있지는 않았어요. 그냥 보통 다른 곳에서는 다……아니, 제가 그냥……쓸데없는 짓 했네요.”
“그래? 뭐, 괜찮아. 이게 뭐 날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정말 그 서류를 한 번 넘겨본 남자는, 다 봤는지 안 봤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딱 그렇게 한 번만 훑고 다시 그것을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것을 보니 정말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싶었다. 대체 사흘 전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근거 없는 생각을 마구 밀어붙였다니?
멍청한 클레이브, 시간만 실컷 버렸구나. 여태까지 잔뜩 실수하고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이유의 칠 할은 이것 때문이었는데, 이게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으니 남아있던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역시, 남들도 안 되는 게 나라고 될 리가 없지. 한숨이 푹 쏟아졌다.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기분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데, 서류봉투를 옆자리에 치운 남자가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네?”
“클레이브, 당신은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냐고.”
잘못 들었나 싶어서 재차 물었는데, 내가 들은 것이 맞았다. 질문이 너무 뜬금없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었지만, 아마 지금 표정은 꽤나 볼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화장 예쁘게 하고, 표정관리를 못하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나, 지금은 도저히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어째 하는 말이 하나같이 예상 안에서 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이미 망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이 편하게 술술 흘러나왔다.
“원래 면접은 관장님이 제게 질문하는 게 맞지 않는가요?”
그런데 이번에는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한다. 아니, 왜? 난 맞는 말 했는데? 내가 당당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남자가 옆에 놓인 서류봉투를 내 눈앞에 흔들며 대꾸했다.
“이거 줬잖아. 여기에 물어볼만한 건 당연지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될 것까지 잔뜩 다 적혀있는데, 내가 뭘 더 물어봐?”
“……네? 하지만 보통…….”
보통 회사들은 그거 다 보고 거기서 물어보던데요, 라고 말하려 했던 나는, 그 순간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사실에 경악해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경악했다. 잠깐만, 저 인간, 저걸 그냥 촤르륵 훑기만 했는데 그걸 다 읽었다고?
내가 속으로 한 질문을 듣기라도 한 건지, 남자의 입에서 줄줄 내 신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름, 클레이브 폰 셀라, 나이 스물넷, 가족은 없고, 집은 열네 번 째 골목 삼 번지, 전엔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했고. 말고도…….”
그의 입에서는 한참동안 내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정말 그렇게 훑어만 보고 그 많은 내용을 다 읽었다는 거야? 내가 경악에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사이, 내 신상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그 서류봉투를 다시 옆에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다 적혀 있잖아. 물어볼 게 없어.”
“아니, 그러니까 지금…….”
내 눈이 남자와 그에게 반쯤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서류봉투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너무 놀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내가 어버버하고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손뼉을 딱 치더니 내게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맞다! 나 궁금한 거 있어!”
“악! 뭐, 뭐, 뭐요!……히끅.”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정말 심장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 갑자기 얼굴은 왜 들이대는 건데? 이번엔 경악이 아니라 정말로 그냥 깜짝 놀란 것이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딸꾹질이 다 나오느냔 말이야. 히끅거리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한껏 지은 채로 남자를 흘겨보는데, 남자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나는 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혹시 애인 있어?”
“……네?”
애인? 웬 애인? 내가 아는 애인은 ‘사랑하는 사람’ 뿐인데, 애인에 혹시 다른 뜻이 있나? 면접하다 말고 갑자기 웬 얼어 죽을 애인이야? 도서관 일하는데 애인의 여부가 무슨 상관인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수십 가지의 의문이 떠올랐으나, 어쨌든 그녀는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었고, 그러면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아무렴 나더러 질문을 하나는 것보다는 수백 배는 나았다. 별로 의미 있는 질문도 아니고. 나는 잠시 머리를 내밀었던 당혹감을 집어넣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아뇨, 없는데요.”
“그래? 그럼 나 어때?”
“……네?”
하지만 또 이어진 그의 질문에, 나는 마음을 추스른 게 얼마나 쓸모없는 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집어 쳐 넣으면 뭐하냐고, 다시 또 불쑥 튀어나오게 만드는데. 나보고 애인 없냐고 묻고 그 다음 질문으로 내가 어떠냐고 묻는 건, 내 상식으로는 빼도 박도 못할 고백인데. 면접 보러 와서 순 이상한 대화만 하고 있다.
하지만 대답은 해야겠지……나는 최대한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정말 ‘사실’ 그 자체만을 말했다.
“제가 여태까지 본 어떤 사람들보다도 잘생기셨어요.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죠. 근데 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저, 관장님이랑 소개팅 하러 온 거 아닌데. 면접 보러 왔다고요.”
대꾸는 딱딱하게, 하지만 뒤의 말은 이제 그만 나를 놔 줘, 라는 뉘앙스를 풀풀 풍기는 어투로 내뱉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어차피 안 될 거, 여기서 이렇게 더 기운을 빼고 싶지 않았다. 자꾸 당혹하니 평소보다 기운이 몇 배는 더 빨리 빠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기운 빠져 지치는데, 이어진 남자의 말은 여태까지 했던 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면접은 끝이야. 넌 합격. 내일부터 출근해. 일 가르쳐줄 테니까. 아, 근데 내가 시급은 얼마라고 적어놨더라? 봐야겠다.”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긁적이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저 남자가, 분명 합격이라고 했나? 합격? 합격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반문했다. 목소리가 덜덜 떨려 나왔다.
“하, 합격이요?”
“응. 이미 여기 앉을 때부터 합격이었어.”
망설임 없이 흘러나오는 그의 확인사살에, 나는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일단 합격했다니 좋긴 좋았다. 고작 아르바이트 주제에 웬만한 직장보다 급여가 더 많고, 조건도 별로 없어 준비할 것도 그리 많지 않았던―물론 나는 사서 고생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꿀 직장에 합격한 거니까.
하지만……그보다도 날 더 크게 감싼 감정은 다른 것이었다. 아니, 대체 왜 붙었는데? 그것도, 몇 년 동안 아무도 붙지 못해서 입소문까지 자자했던 곳에, 이렇게 쉽게? 내가 뭘 했다고? 내가 여기에 와서 한 것은, 기억나는 것으로만 따져보면 실수에, 실수에, 실수를 거듭한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나는 허허 웃었다.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남자는 그 충격 받은 내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이름 말했잖아?”
그러나 그의 대꾸는 내 의문을 해결해주기는커녕, 더 나를 궁금하게 만들 뿐이었다. 뭔 소리야, 이름을 말한 거랑 합격한 거랑 뭔 상관인데? 여태까지 여기 지원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름은 다 말했을 거 아냐, 이 속 모를 도서관장아?
“이름만 듣고 합격이라고요?”
내 말투와 표정이 더 기괴하게 비틀리자, 남자는 아침 일찍 내리쬐는 맑은 햇살보다 더 맑고 투명한, 짙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화사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답했다.
“응. 내 마음에 드니까 합격.”
그리고 그 순간의 내 심정은 딱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헐.
============================ 작품 후기 ============================
오늘은 너무 졸려서 후기 못쓰겠당 @ㅅ@...빨리 올리고 자야게써요...수정도 ㅏ나중에...
선추코 감사합니다아아 많이주세요오오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