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우진이 출장이 가 있는 동안 선아의 삶은 쳇바퀴를 돌듯 하루하루가 같았다. 보호소 봉사 활동이 끝나면, 늦저녁에 걸려 온 우진의 전화를 받으며 잠자리에 들고. 그녀의 기상 시간에 맞춰 걸려 온 우진의 전화에 깨는 나날들로.
오늘도 어제와 같았다. 선아는 피곤한 몸으로 겨우 샤워를 마치고 샤워 가운만 몸에 걸친 채로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다면, 선아는 그대로 잠자리에 들 뻔했다.
액정 위에 뜬 이름에 선아의 입꼬리가 유순하게 올라갔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대자 들리는 낮은 목소리가 선아의 발가락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나직하게 물어 오는 말에 대답하며 선아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우진이 통화를 끝내기 위해 운을 뗐을 때였다.
“보고 싶어요.”
선아의 입에서는 그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내 생각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와서, 선아는 스스로 무슨 얘기를 꺼낸 것인지도 잘 인식이 안 되었다.
[…….]
뭐라 답변이 있어야 할 우진이 아무 말이 없다는 걸 깨달은 선아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실수였다고 변명하기에도 늦은 것 같았다. 그에게 원치 않는 부담만 준 것 같았다.
[샤워했어요?]
“네.”
꽤 오래 걸린 침묵 뒤에 우진이 물었다. 선아는 화제를 바꾸고자 하는 그의 노력에 맞춰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불안감에 심장이 기분이 나쁘도록 뛰는 소리가 선명했다.
[혹시 침대 위예요?]
“네. 이제 자려고요.”
그새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가 제 말에 불편했을까. 선아는 언젠가부터 우진의 것이 된 베개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는 그의 냄새까지 희미해져 버려 선아의 기분은 조금 더 울적해졌다.
[선아 씨는 내 생각 하면서, 자위해 봤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에 선아는 그에게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느껴질 리가 없는데, 수화기 너머의 그의 숨이 뜨거울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뱉는 그의 낮은 목소리에 선아는 침대 시트를 저도 모르게 꽉 그러쥐었다.
[날마다 선아 씨 생각만 해요.]
“…….”
[선아 씨 전화를 끊으면 발정이 난 개새끼처럼…….]
그는 잠시 숨을 죽였다. 그리고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어 냈다. 목이 잠시 졸렸던 사람처럼.
“…….”
[선아 씨 생각을 하면서 발정 난 내 좆을 흔들어요.]
어지럽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져서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고작. 고작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은 반응하고 있었다. 속옷의 밑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선아 씨는 내 생각 하면서, 밑에 손가락 넣어 봤어요?]
“……아니요.”
목소리가 뜨겁다. 목구멍에 막힌 숨이 억지로 내뱉어지는 느낌이었다. 숨이 거친 것이 그에게까지 들리지 않도록 선아는 잠시 숨을 죽였다.
[그럼…….]
뜸을 들이는 그의 목소리에 선아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남의 심장은 잔뜩 쪼그라트려 놓고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톤이 조금 낮다는 것 빼고는 태연스럽게 들렸다.
[지금 해 볼래요?]
대수롭지 않은 것을 부탁하는 양 여상한 태도였다. 안부라도 묻듯이 잔잔한 목소리였다. 사근사근하게 들리기도 했다.
[들려줘요. 선아 씨가 내 생각 하면서, 자위하는 거 듣고 싶어요.]
“…….”
[나도 선아 씨에게 들려줄게요. 내가 선아 씨 생각하면서, 얼마나 미친 듯이 잡고 흔드는지.]
“…….”
[내가 당신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개새끼처럼 헐떡이는지.]
전부 다.
나직하게 유혹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낮아서, 선아를 정신 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아는 그대로 몸이 꺼져 버릴 것 같은,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함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다리 벌렸어요?]
그윽한 목소리는 실제로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살대는 것 같았다. 선아는 그가 시키는 대로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대고 무릎을 세운 채로 다리를 벌렸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화장대 거울에 선명히 비치는 제 모습에 선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외설적이었다.
설마 우진이 그것까지 계산하고서 제게 이쪽으로 가서 앉으라고는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고.
[그냥 넣으면 상처 나니까 입구만 조금씩 문질러 봐요.]
그의 탁한 목소리가 서슴없이 그런 선아의 잡생각을 단절에 끊어 버렸다. 선아는 입술을 말아 넣으며, 속옷 위로 자신의 손가락을 문댔다. 자신의 몸인데도, 직접 만지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리고 우진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만졌는지 상기하며 위아래로 문질렀다. 점점 더 세게 문질렀다.
[선아 씨, 다리 더 벌려요.]
거칠게 마찰되는 감각에 선아는 자신도 모르게 붙이려는 무릎을 움찔댔다. 마치 그가 제 모습을 직접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벌려요, 더.]
낮은 목소리는 어딘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신음도 참지 말고요. 나한테 다 들려줘요.]
목 안쪽을 기묘하게 긁어내리며 읊조리는 목소리가 자꾸 선아의 귀 안쪽의 깊은 데를 간질이는 것 같았다. 마치 꼭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한우진이 그런 목소리로 속살거리면…….
[선아 씨.]
“흐읏…….”
[젖었어요?]
선아가 분명히 젖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사람처럼.
[젖었으면 구멍 안으로 천천히 손가락 밀어 넣어 봐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도록 진지했다. 선아는 어쩐지 그의 그 목소리 때문에 더욱 등허리가 찌릿하게 울리는 듯싶었다. 그녀는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한껏 다리를 벌려 봐도 긴장한 탓인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선아는 한쪽 눈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 안으로 한우진은 굵기도 굵기거니와 마디가 툭툭 튀어나와서 언뜻 보면 울퉁불퉁해 보이는 손가락을 그렇게 요령껏 잘 넣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어떨 때는 단박에 세 개까지 선아의 안쪽에 쳐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선아의 밑은 한우진의 거대한 것까지 끝도 없이 먹어 치웠다. 고작 제 손가락 두 개가 왜 안 들어가는지. 뻑뻑하고 아파서 결국엔 포기했다.
[넣었어요?]
“자, 잘 안 들어가요.”
성마른 재촉에 선아는 더듬대며 대답했다. 목 안까지 열기가 차오른 탓에 목소리가 잔뜩 갈라진 것 같았다.
[몇 개 넣으려 했는데요?]
“두 개요.”
그것까지 그에게 상세하게 보고를 해야 하나 싶어 선아는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에는 조금 볼멘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듯 대답했다.
[내가 있었으면 핥아 줄 텐데. 선아 씨 구멍 혀로 문대 주면 더 벌어지거든요.]
그는 정말 안타까운 듯 탄식처럼 말을 내뱉어 냈다. 선아는 이제는 귀 끝까지 다 발갛게 열이 올랐다. 손가락 끝에 묻어 나오는 미끈한 음액이 어쩐지 더 부끄러워지는 까닭이었다. 이것을 한우진은 거리낌 없이 집어삼켰다. 집어삼키다 못해 선아의 구멍 안으로 혀를 밀어 넣고는 더 제 입 안으로 뱉어 달라 재촉까지 했었다.
할딱이는 선아의 몸 아래에 낮게 엎드린 채 제 입술이 한껏 뭉개지도록 그녀의 밑에 대고, 선아에게도 들릴 정도로 꿀꺽꿀꺽 잘도 삼켜 댔었다. 그럴 때의 한우진의 세밀한 등 근육은 잔 움직임에 반응하여 크게 꿈틀거리기도 했다.
이게 그렇게 맛있는 걸까.
선아는 제 몸에서 나온 것임에도 잘 모르겠다. 약간 비릿한 내음이 나는 이것을 그렇게 미친 듯이 빨아서 먹을 정도인가 싶다.
[선아 씨.]
우진의 부름에 선아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묻어 있는 음액을 입가에 가져다 대려는 것을 멈추었다. 그제야 제 행동을 인식한 선아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우진 탓이었다. 우진의 목을 긁는 묘한 음색이. 우진의 저 말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우진의 모든 것들이. 선아를 자꾸 이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명백했다.
[선아 씨. 우선 손가락 하나만 넣어 볼래요?]
권유하는 말씨가 아주 부드러웠다. 듣고 있는 선아의 귀가 녹을 만큼.
설사 누군가 들었더라도 한우진이 제 아내에게 음란한 짓을 요구하는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으리라. 아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불과 몇 달 전의 선아도 고고하다 못해 고상한 한우진이 이런 발칙한 요구를 하는 것을 직접 들었더라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
잠시 망설이던 선아는 입 안에 고인 침을 크게 삼키며, 손가락을 밑으로 밀어 넣었다. 검지 정도는 작은 구멍이 음액을 흘린 덕에 부드럽게 들어갔다. 손가락을 다 넣었는데도 뭔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에 선아가 조금 앓는 소리를 낼 정도로.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 봐요.]
선아는 우진의 말에 따라 제 밑에 쑤셔 넣고 있는 검지를 천천히 움직이며 드나들었다. 찌걱찌걱. 소리가 제 밑에서 선명히 울렸다.
꽉 다물고 있던 턱이 점점 벌어지는 걸 선아가 막을 수 없었다. 귀에 꼭 대고 있는 핸드폰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제 입 속에서 나오는 신음을 우진이 듣고 있다는 사실조차 선아는 인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아의 신음을 들으며, 한우진이 제 바지춤을 끌어 내리고 제 성기를 맞잡고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선아는 홀로 하는 그 행위에 흠뻑 빠져 있었다. 흥분을 달구는 한우진의 낮은 목소리가 선아를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선아가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방만하게 벌어진 다리를 스스로 양옆으로 쫙 벌린 선아는 더욱 안쪽까지 쑤시고 싶은 욕심에 제 손가락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우진이 성기를 우악스럽게 쿵쿵 내리찧는 곳에 닿기에는 선아의 손가락이 턱없이 짧았다.
하아. 목 안쪽에서 깊은 신음 소리를 내던 우진도 뭔가 어그러진 듯, 턱을 악다문 채로 선아에게 속삭였다.
[핸드폰 조금 밑에 대고 구멍 좀 쑤셔 볼래요? 선아 씨가 없으니까 싸지도 못하겠어요.]
“우, 우진 씨 목소리 듣고 싶어요. 그러면 우진 씨 목소리 내가 못 듣잖아요.”
[…….]
선아의 말에 잠시 그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스피커로 돌려놓고 하자니, 이 방 안에 그들의 은밀한 밀어가 다 울릴 것 같아서. 선아는 그것은 못 하겠다고 했다.
영상통화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만 듣고, 자위하는 것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데. 직접 보여 주는 것만은 못 할 짓 같았다.
몇 발이나 물러선 한우진은 드디어 선아가 최대로 이해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럼 다 나한테 말해 봐요. 얼마큼 넣었는지. 어디를 문지르고 있는지. 어디가 기분이 좋은지. 몇 번 싸고 있는지. 모두 다.]
선아는 그에게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손가락은 제 밑에서 빠져나온 채였다. 그런데도 손끝에 맺힌 음액이 뚝뚝 흐를 정도였다. 음부는 이미 음액으로 푹 젖어 있었다.
이 정도면 두 개도 충분하지 않을까. 밑에서 새어 나오는 음액을 두 손가락에 묻혔다. 그러고는 우진이 제게 성기를 삽입하기 전에 했듯 본능적으로 톡 나온 음핵까지도 손가락으로 지분댔다.
“흐읏.”
새된 소리를 그대로 토해 내곤 음핵을 문지르면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우진은 항상 이렇게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엄지로 짓이기듯 선아의 음핵을 문지르며, 뻐끔 스스로 벌려 오는 곳에 제 성기를 빠듯이 욱여넣었다. 보기만 해도 조금 질릴 정도로 큰 우진의 것도 받아들이던 공간이었다.
선아는 문득 제 안을 가득 채우던 우진의 성기를 떠올렸다. 귀두가 큼직하고 흥분할 때면 위로 치솟으며 휘어지는 길고 굵은 몸통에는 푸른 맥박이 선명할 정도로 튀어나와 있다. 조금 징그러우면서도 방망이처럼 커다란 그게 어떻게 다리 사이에 달려 있을까, 의아감마저 절로 들 정도였다.
선아의 눈에는 우진의 다리가 세 개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게 얌전히 바지 속에 있는 것일까.
선아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혹시 저것 때문에 우진이 기성복이 아닌, 맞춤으로밖에 슈트를 입을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도 들 정도였다.
그 크고 긴 성기에 튀어나온 혈관이 연약한 속살을 여지없이 긁어 올리며, 선아의 구불한 질 안을 제 성기로 쭉 뚫어 버릴 달려들곤 했다.
“지, 지금 문지르면서 손가락 넣고 있어요.”
[거기 선아 씨 성감대이니까 조금 더 아프게 문질러도 돼요. 부풀어 올랐을 때, 손톱으로 상처 안 나게 살짝 긁어도 좋아하잖아요.]
제 성감대를 훤히 꿴 듯 줄줄 읊는 우진의 낮은 목소리에 선아는 다시금 귀밑머리가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 질벽을 문대면 선아가 자지러지는지. 큼직한 귀두가 자궁구를 짓쳐 올릴 때마다 선아가 얼마나 온몸을 뒤틀며 몸을 떨어 대는지. 침대 위에서 자신이 선아의 머리카락 한 올, 손가락 하나까지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구석구석에 있는 선아의 살갗을 어떤 방식으로 제 혓바닥으로 훑고 빨아 당기고 깨무는지.
상세하게 하나하나를 제 입으로 선아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목 안쪽에 울리는 신음도 그 목소리를 타고 간혹 탄성처럼 터지고는 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선아의 시선이 맞은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선아는 다리를 활짝 벌린 채로 정신없이 스스로 구멍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쑤시고 있는 제 모습이 우진의 눈에도 이토록 외설적으로 보였나 싶었다. 우진의 아래에서 자신은 이런 얼굴로 헐떡였을까. 입을 벌린 채로 헐떡이는 제 모습을 보며, 한우진은.
[그럴 때 선아 씨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다 씹어 먹고 싶을 정도예요. 남김없이 다 내 입 속으로 처넣어서, 조금씩 조금씩 녹여 먹고 싶은 기분이에요, 선아 씨.
선아의 다리가 이불을 차듯 움직였다. 쾌락을 안겨 줄 지점까지 손가락이 닿지 않아서 애가 단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우진이 짓쳐 올릴 때와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제 손가락을 끝까지 밀어 넣어도, 오므라들려는 다리를 아무리 활짝 벌려 봐도. 닿지 않는 지점에 선아는 하릴없이 우진의 이름만 불러 댔다.
선아와 마찬가지로 홀로 척척한 소리를 내던 우진도 대답이라도 하듯 선아의 이름을 낮게 작게 속살댔다.
아쉬운 대로 선아의 밑은 우진의 목소리를 위로 삼아서, 선아의 손가락이라도 우물대듯 씹어 댔다. 그리고 표피가 벗겨질 정도로 짓이겨 댄 덕분에 선아는 절정에 도달했다. 파드득 홀로 몸이 뒤틀린다.
경련하듯 덜덜 떠는 아래는 이미 선아의 손가락을 내팽개친 뒤였다. 그래도 입구를 빠듯하게 벌리고 들어와 가득 채우는 것이 없어서, 아쉬움에 제 입구만 벌름벌름 다물었다가 벌리기를 홀로 반복했다.
파드득, 전신이 떨리는 경련에 선아는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억눌린 신음이 앓는 것처럼 새어 나왔다. 이미 핸드폰은 손의 힘이 풀려 선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침대 위에 홀로 나뒹굴었다. 선아는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온몸을 펄떡대고 있었다.
무게감 있는 몸이 평소와 같이 내리누르지 않아서, 선아의 몸뚱이가 들썩거렸다. 제아무리 조르듯 엉덩이를 높게 추어올려도 깊은 곳을 쾅쾅 내리찍던 두툼한 것이 없었다. 선아가 한계에 다다라 숨을 할딱일 때마다 제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밀어 넣어서, 선아의 숨통을 죄듯 물어뜯는 행위도 없었다.
쾅쾅 찍던 것을 잠깐 멈추고 느릿하게 허리를 돌려서 그녀의 깊은 곳에 제 두툼한 귀두를 짓뭉개 대는 통에, 허벅지 안쪽의 살이 당길 정도로 힘을 주던 선아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다시금 선아의 안달에 맞춰 엇박자로 짓쑤셔 주던 것이 없었다.
흥분에 겨워 종내에는 눈물까지 훌쩍이는 선아의 눈 밑을 살뜰히 핥아 주던 한우진이 지금 제 곁에 없었다. 선아는 소변이라도 본 듯 척척한 시트를 젖히고 이제야 진정이 된 몸을 가늘게 떨며 민달팽이처럼 제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학학. 내뱉는 숨에도 뭔가가 부족했다. 선아가 아는 절정은 벗은 몸에 한기가 오를 정도로 헛헛한 것이 아니었다.
시야에 핸드폰이 들어왔지만, 선아는 손을 뻗는 것도 지쳤다. 비어 버린 등허리를 뒤쪽에서 끌어안던 우진의 커다란 품이 내심 그리웠다. 고작 겨우 며칠뿐인데.
그가 보고 싶었다. 저를 매만지던 그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그 모든 것들을 원했다. 받아도 받아도 부족했다. 욕심이 많았다. 나쁜 년이라며, 욕심이 목구멍까지 찬 년이라고. 저를 비난하던 모친의 말이 썩 틀린 것은 아니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리고 넘치는 제 생각과는 별개로 해일처럼 잠이 선아를 덮쳐 왔다.
선아는 맨몸으로 둥글게 만 자세 그대로 잠에 빠졌다. 가장 여리고 약한 동물처럼. 오직 제 온기만으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보호하는 유약한 생명체처럼.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오는 우진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채로.
***
내일이면 우진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드물게 콧노래까지 부르는 선아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소장이 툭 밀었다.
“선아 씨. 오늘 좋은 일 있나 봐?”
선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이라도 만나?”
장난스럽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선아는 조금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단계를 뛰어넘고 부부라는 이름부터 시작해서일까. 남의 입에서 나오는 우진과의 관계에 새삼스럽게 정말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까 싶어서였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남녀 관계처럼. 서로 아껴 주고 사랑하는 사이처럼.
부끄러움에 선아는 제 손에 닿는 강아지들의 머리통만을 말없이 문지르고 있었다. 그런 선아의 옆에 소장이 같이 무릎을 굽혀 앉았다.
“선아 씨. 요즘 예뻐진 거 알아? 정말이야. 여자는 사랑을 받으면 예뻐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 없다니까.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아.”
선아는 익숙지 않은 제 칭찬에 자꾸만 고개가 숙어지려도 했다. 뭔가 쑥스러웠던 탓도 크지만. 발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캉캉 짖으며 작은 머리통을 선아의 손 밑에 불쑥불쑥 대는 강아지에게 선아는 금세 시선을 빼앗겼다.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애써 만지지 않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한번 만지기 시작하니, 그동안 왜 자신이 망설였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내가 참 주선을 잘한 것 같아.”
선아는 소장의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온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애인이 잘해 줘?”
“네. 잘해 줘요.”
그 말에만 겨우 쑥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다.
***
한번 습관이 되니, 계속해서 보호소 근처의 호텔에서 씻는 게 선아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하나의 의례가 되었다. 호텔이라고 칭하기에는 뭣한 비즈니스호텔이어서, 별 부담감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대로 버스를 타서, 남들에게 괜히 제 몸에서 묻어 나오는 냄새로 불쾌감을 줄 생각도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아는 그곳에서 씻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날도 별다른 바 없었다. 샤워를 마친 선아가 계산대에 키를 다시 돌려주러 가고 있었다.
헤어드라이어를 쓰지 않는 탓에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미처 말리지 못해 새어 나오는 물기로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낯이 익은 인물에 선아는 주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려다 아차 싶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남자의 옆에 일행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마주치는 게 영 껄끄러울 것 같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조차.
“여기서 다 뵙네요.”
“아……. 네.”
선아는 어정쩡하게 상대방에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했다. 하얗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꽤 껄끄러운 상대였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서슴없이 구는 게 선아가 더욱 벽을 세우는 이유가 되는 것을 모르는지. 그는 끊임없이 선아에게 말을 걸었고, 항상 제 옆에 알짱거리며 붙어 있었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양. 그런 쪽으로 눈치가 둔한 선아조차 제 자의식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민…….”
“민호예요, 김민호. 흔한 이름이라서, 잘 기억을 못 하시나 봐요.”
우물대며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선아가 어색하지 않도록 민호는 서글서글하니 웃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아의 말을 얌전히 기다린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선아도 안다. 하지만 거리감을 점차 줄이려는 남자가 어쩐지 껄끄럽게만 느껴졌다.
“소장님께 제가 사정이 있어서 말은 못 했는데, 나 사실은 결혼했어요.”
제 말에 놀람이라든가, 무슨 반응이라도 있어야 할 민호가 그 낯 그대로이자, 반대로 당혹스러워진 것은 선아였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말에 선아의 얼굴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태연하게 답하는 이 남자애의 반응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헷갈렸다.
“반지.”
이내 남자애는 제 왼손을 들어 보이며, 제 약지를 다른 손가락으로 콕콕 가리켰다. 선아의 시선이 절로 제 왼손에 끼워진 반지로 향했다. 작은 큐빅 같은 게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반지가 제 몸의 일부처럼 익숙했다.
“다이아몬드 같은데. 커플링은 아닌 것 같고. 못해도 약혼반지라고 생각했어요.”
“아…….”
새삼스럽게 선아는 제 반지를 내려다봤다. 캐럿이 큰 예식 반지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아에게 세컨드로 한우진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지조차 다이아몬드라는 것을 이제야 선아는 눈치를 챘다.
선물한 우진이 아무 말이 없었고, 선아가 이 반지를 끼고 뭘 하든 별말이 없어서 이게 다이아몬드인 줄도 몰랐었다. 누구 하나 선아에게 귀띔으로조차 알려 주지도 않아서, 선아는 싸구려는 아니라도 그래도 꽤 금액을 지불한 큐빅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 만날 일이 없을 거예요.”
“…….”
“이제 마무리됐거든요.”
의미 모를 말만 남기고 먼저 훌쩍 내린 남자애는 선아가 내릴 때까지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차 가지고 왔는데, 모셔다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잘됐네요. 저도 들를 데가 있어서. 그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뜻 모를 인사를 건넨 남자애는 별안간 한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선아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꽃다발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안 그러면 손을 내민 채로 선아가 받아 줄 때까지 있을 것 같아서.
“소장님한테 들었어요. 재스민 좋아하신다면서요?”
“이걸 왜…….”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
“…….”
“작은 위로금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남자는 얄궂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여 선아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선아가 피할 새도 없었다. 뻔뻔스럽도록 방긋 웃으며, 남자애는 넋이 빠진 선아를 홀로 내버려 두고 빠른 걸음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선아는 손등으로 입술이 닿았던 뺨을 문질렀다.
가벼운 인사라고 생각하기도 싫은 불쾌한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