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5)

#06

선아는 전혀 낯선 공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틀어 낯선 인물을 쳐다보았다. 반쯤 콧등에 걸친 선글라스를 벗으며, 선아는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누구……?”

“아! 맞아요? 그 유명한 채선아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게 맞나요? 이게 꿈이래, 생시래.”

도드라진 화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미인은 마치 오래전에 선아를 알았던 사람처럼 과하게 선아를 반겼다. 선아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저쪽에서는 자신을 일방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쪽에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저기…….”

“미안해요. 내가 너무 흥분해서.”

어느새 선아의 앞으로 성큼 다가선 여자는 너스레를 떨듯, 살며시 선아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선아마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면 선아가 유독 이런 미인형의 사람에게 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진을 대하는 것만 해도 그러했다. 머릿속으론 이미 한계치까지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내 그를 받아 주었다. 선아는 그때마다 제가 그렇게 시각에 약한 사람이었나, 회의 아닌 회의까지 들 정도였다.

“혹시 한우진이라고 알아요?”

“……제 남편이에요.”

낯선 여자의 입에서 제 남편의 이름이 나오자 선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도 남들에게 그를 제 남편이라 칭해도 되는지 헷갈렸다.

“남편? 걔랑 결혼했어요?”

미친 새끼. 진짜 난놈은 정말 난놈이야.

혼잣말에 가까운 말에 선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욕지거리를 뱉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글 웃어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 애써 들었던 그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아. 미안해요. 인사가 늦었네요. 정지아예요.”

“아……. 네.”

지아가 내민 매끈한 손을 마주 잡으며 선아는 고개를 끄덕여 간단히 묵례했다. 아직도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아를 내려다보며 지아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음……. 일단 한우진의 친구라고 해 두죠. 걔는 뭐 내키지 않아 할 것 같지만.”

일단? 선아는 그 단어가 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진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아무리 그의 아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어도 그의 사생활까지 건드릴 마음은 없었다. 결혼 전부터 결심했던 것이었다. 그의 태도에 변화가 있건 말건. 그건 선아가 지켜야 할 선이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나 봐요?”

이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매장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선아를 다시금 붙든 것은 지아였다.

“아……. 별일 아니에요. 그냥 다른 곳에서 사면 돼요.”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인데, 내가 선물할게요. 수고스럽게 다른 곳 들를 필요 없어요.”

지아는 선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딱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남들이 보았다면, 거부감이 들 행동을 여자는 자연스럽게, 아주 잘 어울리게 했다. 그것도 타인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그리고 조금 전에 선아가 가리켰던 가방을 가리키며 매장 직원에게 말했다.

“저것도 포장해 주세요.”

선아가 말리기도 전에 이미 직원이 제품을 꺼내어 포장하는 중이었다. 가방 하나를 포장하는 데 직원이 왜 셋씩이나 붙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선아는 금액을 듣지도 않고 카드부터 내미는 지아를 멀거니 보았다.

뒤늦게 제 카드를 꺼내려 했지만, 이미 결제를 한 뒤였다.

“자, 선물이에요.”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아가 제 앞으로 로고가 선명히 찍힌 두꺼운 쇼핑백을 내밀고 있었다. 선아가 주저하자, 지아는 손수 선아의 손가락에 쇼핑백의 끈을 걸어 주기까지 했다.

“내 명함도 여기에 넣었어요. 심심할 때 전화해요.”

“이러실 필요 없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엄청 심심했거든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받아 줘요.”

이쪽 방면에 영 문외한인 그녀조차 이게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런 물건을 선뜻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서.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것 같아요. 가방값은 제가 따로 보내 드릴게요.”

“뇌물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거든요.”

지아는 다시 제 손에 들린 선글라스를 꼈다. 그리고 일반적인 비서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큰 남자가 정중히 귀엣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까닥여 선아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이만 가 볼게요. 정 미안하면, 다음에 식사 한번 해요. 그 재수 없는 새끼는 빼고. 선아 씨만. 꼭 연락해 줘요.”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의문하는 선아에게 지아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약속을 잡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폭풍이라도 몰아친 것 같았다. 정신이 없었다. 조금 얼이 빠진 채로 매장 안에 남아 있던 선아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우진.

핸드폰에 떠 있는 그의 이름 석 자에 선아는 서둘러 전화를 받으며, 자신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매장의 직원에게 맞절하다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현관문의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가자마자, 멀거니 서 있던 우진과 마주쳤다. 정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우진이 부드럽게 선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선아는 별 거부감 없이 그에게 끌려갔다. 한우진이 커다란 몸을 굽혀 제 품에 반도 안 찰 것 같은 선아를 꽉 껴안았다.

그의 품에 갇힌 선아는 신발을 벗지도 못한 채로 제 머리 위에 턱을 기대어 오는 우진의 널따란 등을 어색하게 빈손으로 훑어 주었다.

뭔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혼자 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도록 주인에게 처연하게 구는 덩치가 큰 개 같았다. 선아는 자기 생각이 우스웠다. 처연이라니, 한우진과 그토록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같이 가지 그랬어요.”

선아는 우진이 자신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길게 쓸어내리자, 눈을 살며시 감았다. 두피 쪽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기분 좋았다. 버림받고 보호소에 있던 강아지들도 제 손길에 이런 느낌이었을까. 선아는 더욱 깊게 우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거부감 없이 당연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품에 선아의 입매가 절로 풀린다.

“바쁠 것 같아서요.”

그는 유난히도 자신의 머리카락 끝을 검지와 엄지의 끝으로 지분댔다. 마치 걸리는 뭔가라도 발견한 것처럼. 선아가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우진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대신에 그 손으로 선아의 볼을 감싸 쥐며 저를 올려다보게 했다.

입술이 짧게 닿는다. 선아는 간지러운 감촉에 입꼬리를 올렸다. 한우진은 그 입꼬리에도 제 입술을 쪽쪽 맞췄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선아의 입술 사이를 가볍게 핥았다.

“난 여기서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서로 부리를 비비적대는 것처럼 가벼웠던 입맞춤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공기와 함께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오래 그의 입술이 닿았다. 깊게 눌린다. 꾹 맞닿는 입술을 벌리며 자신의 입술을 물어 대자, 선아의 입술 사이가 절로 벌어졌다.

손가락에 들려 있던 쇼핑백이 툭 소리를 내며 현관 타일 바닥에 떨어졌다. 우진의 혓바닥이 선아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다. 구석구석을 핥아 올린다. 선아가 숨을 들이켜면 그는 그 작은 숨결도 빼앗길세라, 제 입 속으로 그악스럽게 들이켰다. 자신에게 쏠리는 그의 무게에 잠시 선아는 뒷걸음을 쳤다.

선아의 겨드랑이 쪽에 손을 집어넣은 우진이 그녀의 몸을 덥석 들어 올려 선아의 허리쯤 오던 장식장 위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허공에 선아의 발이 들렸다. 그다지 높지도 않지만, 허공에 발이 들린 것만으로도 조금 아찔해진다. 우진의 입맞춤 탓에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진의 손이 워낙 큰 탓에 선아의 한쪽 뺨과 귀밑머리까지 그의 손으로 다 감싸고도 남을 정도였다. 드디어 입술을 떼어 낸 그가 고개를 숙이자, 얼추 맞는 시선에 선아는 그의 아름다운 속눈썹 하나하나까지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아의 무릎을 둥글게 굴린 손이 서서히 선아의 허벅지 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의 입술이 선아의 입술에 살근거렸다. 선아의 단정한 치마는 이미 그의 손에 허벅지의 반까지 말려 올라갔다. 그가 손톱을 세워 선아의 허벅다리를 살며시 긁는다. 금세라도 그녀의 스타킹을 찢어 버릴 것 같았다.

짧게 짧게 닿는 입맞춤은 쪽쪽대는 간지러운 소리를 냈다. 입을 벌려 선아의 입술을 빨아 대는 소리도 선아의 뒷덜미를 간질거리게 한다. 그의 손은 이미 선아의 깊은 안쪽 허벅지까지 살뜰히 쓰다듬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뻗으면…….

그의 손은 거기서 배회만 할 뿐 더 이상의 진입은 없었다. 쪽쪽 닿는 소리만 긴장감이 팽배한 공기 속에 달게 울릴 뿐이었다. 선아는 손을 뻗었다. 기꺼이 제 목을 선아에게 내주는 한우진의 단단한 허리가 선아의 다리 사이로 들어온다.

다시금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혀뿌리까지 뽑힐 것같이 얼얼한 입맞춤이었다. 서로의 입술이 빈틈이 없이 꽉 맞물렸다. 그 상태에서 거칠게 비벼지는 감촉이 뜨거웠다. 선아는 아릿함에 절로 앓는 신음을 흘렸다. 그 신음조차 욕심이 많은 한우진은 제 목 너머로 그대로 삼켜 냈다.

선아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이 스타킹의 밴드 윗부분을 속옷과 함께 잡아 내린다. 선아는 그의 목에 매달린 채로 엉덩이를 살짝 들어 그를 도왔다. 커다란 손이 틈새로 유려하게 들어온다.

“하아.”

숨은 동시에 터졌다. 그는 만족스러움에 축축한 신음을 내었고, 선아는 단숨에 제 축축한 안쪽으로 파고든 손가락에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입술이 떼어졌다. 하지만 한우진은 그녀의 코앞에서 가볍게 제 콧등에 닿는 선아의 콧방울을 살짝 비벼 댔다.

선아는 그 간지러운 감촉을 즐길 새도 없었다. 파고든 손가락이 내벽을 꾹꾹 밀어내며 선아의 깊숙이까지 들어오려 용을 썼다. 선아의 몸이 절로 뒤쪽으로 휘어진다. 한우진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스타킹과 속옷을 마저 내렸다. 그래 봤자 그녀의 오금 정도에 걸쳐졌을 뿐이었다.

어느새 선아의 구불구불한 안쪽에 처박힌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났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왕복운동을 한다. 선아는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그의 목에 매달렸다. 한우진은 지겹지도 않은지, 그런 선아의 볼에 마구잡이로 제 입술을 맞추다가 그녀의 귀때기를 제 이로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축축하게 질컥거리는 소리가 난잡한 와중에도 정확히 그녀가 느끼는 지점을 쑤셔 댔다. 선아는 아득함에 숨을 헐떡였다. 그런 제 숨도 결국에는 한우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정한 속도로 쑤셔 대면서 다른 손은 바삐 선아의 윗옷을 밀어 올렸다.

가슴을 움켜쥔 손에 선아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피해 고개를 비틀었다. 순순히 놓아준 게 이상할 정도로 우진의 입술이 선아의 목덜미를 꾹꾹 눌러 댔다. 그리고 속옷을 밀어 올린다. 볼품없이 한쪽만 쭉 밀려 올라간 옷 사이로 드러난 가슴에 우진의 고개가 처박힌다.

입 안 한가득 젖가슴을 질겅질겅 씹는다. 그 감촉에 그는 탄식하듯 짧은 숨을 터트렸다. 선아의 두 손이 절로 그의 등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우진의 양손이 그런 선아의 양 가슴을 움켜쥐었다. 우진의 혓바닥에 선아의 유두가 마구잡이로 비벼진다. 꼿꼿하게 선 유두를 씹다가, 제 양껏 빨아들이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극에 선아는 미칠 것 같았다.

이 순간, 미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이미 선아의 아래는 물이 고여 있을 정도로 흥건했다. 선아가 느끼는 곳을 집중적으로 짓누르며 진동을 가하던 한우진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려 하자, 선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이 빠져나가지도 못하도록 꾹 힘을 주었다.

그런 선아의 아래를 달래듯 그가 검지와 중지를 돌려서 끝까지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다시금 안이 빠듯하게 차는 느낌에 선아는 잠시 전신을 떨었다.

***

한우진은 미친 듯이 해 댔다. 소파에서 하고, 기어가듯 도망가는 선아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겨서 하고. 주방에 물을 마시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잠깐 도망친 선아를 식탁에 엎어 놓고 했다.

그리고 버거운 듯 헐떡이면서도 그것을 다 받아 내는 자신도 미친 것 같았다.

종내에는 기절까지 하는 바람에 얼마나 했는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그와 어디에서 했는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선아는 자신의 등줄기를 천천히 훑는 손가락에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로 넘기는 손길에 다시금 눈이 감기려 했다. 귀의 연골을 매만지는 손길에 선아가 간지러워 잠깐 웃자, 우진은 선아의 볼록 올라간 볼에 입술을 깊게 묻었다.

“나 내일 출장 가요.”

“어디로요?”

“프랑스. 갑작스럽게 잡히긴 했지만 중요한 일정이라서 꼭 가야만 해요.”

선아는 제 머리카락을 검지로 꼬아서 장난을 치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제 손가락에 감겨 있던 머리카락을 풀어내며 우진은 제게서 조금 떨어진 것 같은 선아를 다시금 끌어당겨 제 품에 온전히 가두어 놓는다.

허리를 감는 느낌에 금세 익숙해진 선아는 제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압박감보다는 안온감이 먼저 들어서, 이제는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길들여진 느낌이었다. 선아는 더욱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타인의 온기가 금세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얼마나요?”

“2주 정도 걸릴 거예요.”

그의 출장은 언제나 짧았다. 유럽이나 미국에 간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 며칠 후면 그는 조금 피곤한 기색의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래서 선아는 그의 출장 기간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길다고 느꼈다.

“내가 없어도 어디로 도망 안 갈 거예요?”

장난스럽게 제 귀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선아는 키득 웃으며 제 팔로 감고 있는 우진의 허리 쪽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 못 가요. 나 도망갈 데도 없어요.”

선아의 둥근 엉덩이를 더듬던 그의 손이 뒤쪽 허벅지 틈으로 들어온다. 선아는 일부러 회음부와 그의 흔적으로 질척이는 제 밑을 스치는 우진의 손가락에 한쪽 눈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예민해진 곳을 다시금 쓸어 대자 그의 흔적이 울컥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정사에 미친 것은 그뿐만 아니라 선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발정 난 짐승처럼 그를 먹고 먹어도 부족해서 아래에 물기를 뚝뚝 흘리며 벌을 입을 벌려 그를 삼켜 대기 바빴다.

선아의 몸에서 비집고 나온 정액을 그의 손가락이 다시금 밀어 넣는 느낌이 들었다. 선아는 등허리가 찌릿 울리는 느낌에 허벅지를 잘게 떨었다.

“빨리 선아 씨가 임신했으면 좋겠어요.”

“흐읏.”

“그래야 내가 안심이 될 것 같아.”

서로의 입 안에 혀를 욱여넣은 채 상대방의 몸을 먹어 치우며 허기를 채우고 포만감을 만끽했다. 하지만 쾌감에 달게 절여진 몸은 자꾸만 갈급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삼키지 않으면, 쩍쩍 갈라지는 목마름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기도 수십 번이었다. 지금 이 입맞춤도 그 셀 수 없는 입맞춤 중의 고작 한 번이었다.

***

그의 출장으로 원치 않는 자유를 만끽하게 된 선아는 유일한 소일거리인 보호소 봉사 활동에 나섰다. 보호소 소장이 안쪽에서 문을 열기도 전에 철장 안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선아의 손길을 구걸하는 존재들을 바라보았다.

반질반질한 까만 두 눈에 항상 자신이 겹쳐 보였다. 애정 어린 손길 하나 받자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어 대다가, 이내 배를 까뒤집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로 깨갱거리며 구석에 숨기를 반복하는. 마치 그 거부를 기억도 못 하는 것처럼 애정에 굶주려 달려들기를 반복하는. 버림받은 것을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하는…….

“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전혀 예상에 없던 인물의 등장에 선아는 눈을 껌뻑였다.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반질반질한 낯으로 서글서글하게 웃음기를 띤 사내애는 익숙하게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팔뚝을 붙들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잡아당겼다. 선아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저답지 않게 팔을 거칠게 빼냈다.

“아.”

그러자 민망하게 손을 거둔 남자는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금방 안 들어오시면 얘들이 빠져나가려고 해서.”

산뜻한 사과와 제 발밑에서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는 강아지들로 인해 선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제가 생각해도 과민한 반응 같았다. 하지만 붙잡혀 있던 팔뚝이 아릿해 선아는 그 부분을 다른 손으로 쓰다듬었다.

“어? 선아 씨!”

멀리에서부터 선아를 보고 반색하며 달려오는 보호소 소장을 흘깃거린 선아는 불쾌한 느낌을 애써 끊어 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주의할게요…….”

“아니에요.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어요. 그래도…….”

“네. 주의할게요.”

서글서글하니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는 낯에 선아는 더 뭐라 말을 이을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여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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