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5)

#03

선아는 비어 버린 옆자리를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온기가 식은 자신의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선아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한우진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선아가 가물가물 눈을 감을 때까지, 선아의 볼때기에 제 입술을 마구 비볐다. 마치 아주 사랑스러운 연인을 대하듯.

그래서인가, 선아는 제 옆자리의 서늘함이 새삼스러웠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놓인 시계를 보자, 그가 훨씬 전에 출근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아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침대의 맞은편에 있는 화장대 거울에 제 상체가 고스란히 비쳤다.

얼룩덜룩한 몸은 난장이었다. 아픈 곳은 그가 새긴 멍 자국만큼이나 선명했다. 어제 그를 한없이 받아들였던 아래와 그가 미친 듯이 빨았던 유두가 아릿하게 아팠다. 몸은 깨끗했다. 허벅지 사이에 흐르는 것은 없었으며, 그의 타액이 묻어 있을 법한 몸도 닦아 냈는지 찝찝한 구석은 없었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한 탓인지, 허벅지 안쪽 근육이 쑤셨다. 선아는 어기적어기적 걷다가 결국 도중에 포기하고 다시금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곧바로 잠이 쏟아졌다. 이토록 게으른 자신이 어떻게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했는지 의아했다. 그와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시간조차 사치였는데. 이제는 이런 게 익숙해졌다. 참 간사한 저 자신을 향해 선아는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놓고 그에게 잘도 일한다느니, 어쩐다느니 떠들어 댔다.

죽은 자신의 남동생인 채선우만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과 이렇게 엮일 일이 없었다. 고상하기 짝이 없는 한우진이 구질구질한 채선아를 만날 수 있었던 계기는 채선우가 유일했다.

선아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와 처음 만난 장소는 선우의 장례식장이었다. 엄마의 찢어질 듯한 서러운 울음소리가 흉흉한 곳에서 그는 오도카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선아는 울지 않았다. 그때 선아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채선우가 감당해야 할 몫까지 모두 선아가 짊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물론 한참은 어린 남동생 선하의 부양까지 떠맡은 상황이었다.

선아는 그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책임감에 짓눌려 죽을 것 같았다. 무책임하게 가 버린 선우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의 사인은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였다. 간판에 홀로 처박힌 채선우는 그대로 즉사했다.

선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남았으면 틀림없이 불구가 되었을 남동생의 부양까지 맡을 뻔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더 큰 다행은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혼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아의 모친은 한없이 원통하다고 했다. 홀로 가슴을 치며 먼저 죽은 자식을 안쓰러워하던 그녀는 익숙하게 선아에게 화살을 돌렸다.

“미친년, 네가 뒈졌어야지!”

선아는 모친의 비난을 듣기만 했다. 평생을 들어 왔으니, 별생각이 없었다. 악에 받친 엄마가 악담을 퍼붓다가, 이내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길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폭력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이지만, 아직도 남의 앞에서 머리채가 잡히는 것은 별로였다. 더욱이 제 또래의 사람 앞에서는. 그것도 평생을 살면서 그런 꼴을 절대 보지 못했을 것 같은 남자 앞에선.

그렇다고 말리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타작을 하듯 마구잡이로 자신을 두들겨 팰 것을 알기에 선아는 침묵을 지켰다.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 버릴 기세로 마구잡이로 움켜쥐고 뒤흔들겠지. 볼썽사납게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앙다문 선아는 모친이 악귀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낯선 남자의 뒷모습만 제 눈에 보였다.

우월하도록 큰 키의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아의 모친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선아의 모친은 아까의 사납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금세 유순하게 변한 채로 제 앞에 있는 사내에게 울며 매달렸다. 사내는 그런 선아 모친의 어깨를 잡아 부축해 주며 그녀에게 조의를 표했다.

“어머니.”

그의 입에서는 그녀를 칭하는 말이 참 잘도 나왔다. 가끔 선아조차 입에 담기 힘든 단어가 그의 입에서는 유려하게 흘러나왔다. 선아의 모친은 마치 죽어 버린 아들이 다시 되돌아오기라도 한 듯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죽은 선우조차 엄마를 저렇게 깍듯한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선아는 낯선 남자가 부르는 그 단어에 목을 놓아 엉엉 우는 제 모친이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낯선 남자의 품에서 엉엉 울다가 지쳐 쓰러진 모친을 남자는 친히 영정사진 옆에 마련되어 있는 쪽방으로 옮겨 주었다. 둥글게 말린 그녀의 몸 위에 모포를 덮어 준 선아는 가볍게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제 목소리는 형편없었다. 그건 슬프기보다 창피해서 떨리는 목소리였다. 손가락이 절로 곱아들 정도로 창피했다. 자신의 치부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들켰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그녀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그는 그런 선아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놀란 선아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주춤 몸을 뒤로 물리자,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제 손을 거두었다.

“리본이 삐뚤어져서…….”

선아는 그가 만졌던 자리를 손을 들어 매만졌다. 핀에 있는 조악한 리본이 선아의 손가락에 닿았다. 선아는 이번에는 과민하게 반응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더욱 푹 수그렸다. 분명히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었다.

그는 상주가 없는 장례식장에서 절도 하지 않고 부의금만 선아에게 건넨 채로 떠났다. 유달리 하얗고 뻣뻣한 종이 봉투 위에는 좋은 질감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선아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표면을 쓸었다. 글자가 양각된 명함은 울퉁불퉁했다. 그 촉감은 지금까지도 선아에게 선명했다.

두툼한 봉투에 든 돈은 선아의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그에게 되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선아가 슬쩍 모친에게 물었으나 모친은 망설임 없이 선우의 납골함을 더 좋은 위치로 옮기는 데 사용했다. 평소에도 알고 있었지만, 제 모친의 선우에 대한 모성애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선우의 친구라는 그는 이상했다. 선아는 그를 처음 봤을 때 당연하게도 자신과 나이가 같거나 더 많을 거라 예상했다. 선아는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에서야 그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녀의 반응에 우진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는 내가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작게 덧붙이는 그가 그때만큼은 제 나이로 보였었다.

“작은 사모님. 본댁 큰 사모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똑똑. 가볍게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선아는 다시금 가물대며 잠기려던 눈을 힘겹게 떴다. 그리고 낮잠을 한껏 늘어지게 잔 덕분에 조금은 개운해진 몸을 일으켰다. 선아의 나날은 단조롭기 그지없으나, 그래도 작게나마 할 일이 있었다.

“금방 준비하고 나간다고 전해 주세요.”

***

한신가의 아들들은 모두 결혼이 빨랐다. 일가친척들도 모두 그랬다. 늦어도 서른쯤에는 결혼했고, 빠르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이 빠른 만큼 아이도 남들보다 빨리 낳았다.

선아는 자신을 큰엄마라고 부르며 제 다리에 엉겨 드는 우진의 어린 조카들의 머리통을 차례로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리 어려도 사내애들 둘이서 한꺼번에 다리에 엉겨 오자 선아는 잠깐 비틀거렸다.

“선아 왔니?”

“네, 어머니.”

선아는 이제 막 태어난 막내아들의 갓난쟁이 손자를 안고 있는 자신의 시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우진은 모친을 닮았다. 그래서 선아는 자신의 시모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신 원장도 제 아들보다 더 선아를 편하게 대했다.

어떨 때는 대놓고 노골적이라서, 선아가 잠깐 그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우진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한신가의 식구들은 다들 우진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꼭 선아를 통해 전달했다. 그들의 그런 태도는 꼭 선아가 우진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세뇌를 시키는 것 같아서. 선아는 잠깐 그 몰래 이 다디단 착각 속에 맘껏 빠져 있기도 했다.

“미안하구나. 우진이가 안 온다고 하길래…….”

“아니에요. 임신한 동서들도 왔는데, 제가 당연히 와야죠.”

둘째와 셋째 동서는 벌써 나란히 두 번째 아이를 가졌다. 한신가는 손이 귀하지 않았다. 다만 여자애가 귀해서 그의 형제들은 물론이고, 그의 조카들도 모두 올망졸망한 남자애들이었다.

선아는 방 안에 있다가 자신의 인기척에 나오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살뜰히 제 아내를 챙기는 한신가의 남자들은 아무리 봐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무심한 남편 때문이기보다는 그런 환경에 놓여 있던 적이 없어서 그런 탓인 게 더 컸다.

“큰형은요?”

“아……. 연락하는 것을 깜빡했어요. 지금 연락해 볼게요.”

선아에게 달라붙었던 아이들은 우진의 얘기에 다시금 쪼르륵 재빠른 다람쥐처럼 각기 제 아빠의 품으로 엉겨 붙었다. 애들은 이상하리만치 우진을 어려워했다. 한 번도 살갑게 자신들을 대한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의 조카들은 항상 그 대신에 선아에게 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우진이 한마디를 하자, 이제는 그가 없을 때만 달라붙었다.

포근하면서도 어린애 특유의 따끈한 살결이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이 싫지 않은 선아는 그게 조금 아쉬웠다. 통화 연결음은 길지 않았다.

“우진 씨. 언제 끝나요?”

선아는 사촌 형들이 없는 틈에 아장아장 자신에게 걸어오는 그의 다른 조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무릎을 굽혀 핸드폰을 잡지 않은 다른 팔로 아이를 감아 안아 주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는 옹알이를 내뱉었다. 워낙 선아의 볼 가까이에 달라붙어 옹알거려서 전화 너머의 그도 제 조카의 옹알대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을 터였다.

“지금 본가에 식구들 다 모였어요. 다들 우진 씨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선아는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우진 씨?”

[선아 씨. 우리 아기를 빨리 가져야겠어요.]

스피커 너머의 그의 목소리는 꼭 어젯밤 침대 위에서 들려주었던 가라앉은 목소리와 같았다. 선아는 서둘러 종료 버튼을 눌렀다.

“형님. 큰아주버님은 언제 오신대요?”

“그, 금방이요.”

“어머. 열 있으신 거 아니에요? 얼굴이 빨개요.”

동서가 걱정스럽게 덧붙인 말에 발그레한 선아의 볼이 더욱 터질 듯 붉어졌다. 선아는 괜스레 목에 둘러맨 스카프를 매만졌다.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살갗이 동시다발적으로 화끈대는 것 같았다. 특히나 한우진이 어젯밤에 잘근잘근 씹어 놓은 부위들이.

결혼 전에도 항상 생각하던 것이지만, 선아는 항상 어쩜 남자가 저렇게 예쁘게 젓가락질을 할까 궁금했다. 어렸을 때도 그는 저렇게 단정한 모양새로 젓가락질을 했을 것 같았다.

젓가락질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에게 손을 밥주걱으로 얻어맞던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의 모친이 그녀의 버릇 중에 유일하게 뜯어고치지 못한 것이 바로 젓가락질이었다.

남들 보기에 흉할 정도로 못하지는 않았지만, x자로 잘못된 젓가락질을 하던 그녀를 모친은 항상 타박했다.

선우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정석적인 모양은 아니었지만, 그는 ‘남자애’라는 수식어 덕분에 사소한 그것뿐만 아니라 큰일이더라도 용서를 받았고 선아는 ‘여자애’라는 꼬리표를 붙여 큰일이 아닌 사소한 것에도 타박을 받았다.

훈계라는 그럴싸한 겉가죽을 쓴 모욕과 폭력에 어린 선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머리 깊숙이 박힌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머리가 클 만큼 컸어도 선아는 언제나 모친의 앞에서는 젓가락질을 잘 못해서 손바닥을 맞던 여섯 살배기가 되었다. 선우의 몫일 생선에 실수로라도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밥상에서 머리통을 얻어맞던 어린애가 되었다.

“아주버님은 항상 형님 생선을 발라 주는 것 같아요. 어째 3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요?”

선아는 입 안에서 숟가락을 빼내며 눈을 껌뻑였다. 시비 거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저 신기하다는 듯 혹은 보기 좋다는 듯 꺼낸 화두였다. 살짝 장난기가 어린 그녀의 목소리가 그걸 반증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모두가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괜히 혼자 찔끔한 선아는 눈치를 살폈다. 항상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버릇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지금까지도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했다.

하도 익숙해서 그녀조차 자각이 없었던 일을 콕 짚어서 듣자 선아의 시선은 절로 자신의 옆에 있는 우진에게로 향했다. 그는 별말 없이 제 앞에 있는 생선 살을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바르고 있었다. 지저분한 곳 없이 깔끔하게 발라 낸 생선 살을 그녀의 밥 위로 다시금 올려놓는다.

“버릇이라서요.”

그는 아무것도 아닌 듯 무심히 말했다. 선아는 그의 행동을 제지해야 하는 건지 갈등했다. 그녀의 시선이 절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신 원장과 한 회장에게 향했다. 자신이 이곳을 너무 편하게 생각했나 보다. 남들은 물조차도 조심스럽게 먹는다는 시댁이었다. 그동안에 별말이 없어, 그녀조차 이런 모습이 시어른 눈에 불편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바보처럼 이제야 깨달은 자신이 한심했다.

선아는 그의 팔꿈치를 살짝 쥐었다. 그러자 우진은 시선은 여전히 제가 바르고 있는 생선에 고정한 채 말하라는 듯 귀만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여전히 그의 손가락에 들린 젓가락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뼈와 가시만을 정확하게 살덩이에서 분리해 낸다. 퍽 진지한 얼굴로 살에 박힌 가는 가시를 떼어 낸다. 이제는 그가 젓가락질을 얼마나 잘하는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아는 그의 귀에만 들릴 법하게 작게 속삭였다.

“이제 됐어요. 내가 알아서 먹을게요.”

“이건 내 몫의 일이고. 선아 씨는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먹어요.”

“그게 무슨 억지…….”

순간 컥, 하는 소리에 선아는 그와 아웅다웅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틀어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의 맞은편에 있던 우진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다. 그는 서둘러 제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치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태도였다.

제일 끝에 앉아 있던 그의 막냇동생이 입을 가리고 애써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한우진은 그 가운데에서도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선아의 밥그릇 위로 제가 바른 생선 살을 올렸다.

“크흠.”

어수선한 분위기에 한 회장은 주먹을 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헛기침을 크게 했다. 그리고 선아를 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우진의 까닭 없는 다정한 성미는 저 한 회장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선아야. 그냥 하게 내버려 둬라. 이 노인네는 신경 쓰지 말고.”

선아는 필시 붉어졌을 얼굴을 숙였다. 그의 젓가락이 눈치 없이 선아의 밥알만 뜬 숟가락 위로 다시금 생선 살을 올린다.

“먹어요, 선아 씨.”

그는 마치 무슨 선아를 배곯게 만들면 안 될 임무라도 띤 사람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는 결혼 전에도 꼭 선아가 굶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굴기는 했었다. 선아는 힐끗대며 자신과 우진을 번갈아 보는 식구들의 은근한 시선에 돌을 씹는 기분으로 억지로 입을 움직였다.

오직 한우진만이 태연했다. 비어 버린 밥숟가락에 다시금 냉큼 올려진 하얀 생선 살이 이 순간 왜 이렇게 얄미워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선아는 지난 일을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남편은 남들이 보면 너무할 정도로 그녀에게 무심했다.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하기까지 했다. 3년 동안 항상 그랬다. 그런 그의 태도 덕분에 그가 제아무리 그녀에게 다정하게 군다고 해도 다행히 선아는 쉽게 착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아무리 선아라도 착각할 것 같았다. 그는 신발을 벗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막무가내로 맞붙였다. 선아가 그의 힘에 밀려 살짝 뒤로 물러나자, 그녀의 허리춤을 끌어안은 손아귀에 바짝 힘을 주고는 그녀를 제 품에 꽉 붙들어 맸다.

선아는 몰아치는 거센 입맞춤에 속절없이 끌려가 그의 손에 붙들린 채로 당하고 있었다. 그의 손만으로는 제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 선아는 팔을 뻗어 그의 목덜미에 제 팔뚝을 감았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허공에 들렸다. 키가 작은 선아를 위해 반쯤 굽혔던 그의 몸이 본래대로 곧게 펴진다.

그는 너무나 쉽게 그녀를 들어 올린다. 그가 안아 올린 탓에 선아의 얼굴은 그의 머리보다 더 위에 있었다.

잠시 떨어진 입술 틈으로 서로의 밭은 숨이 동시에 터졌다. 그는 그런 선아를 올려다보며 작게 속삭였다. 선아가 착각하리만큼 제법 절박하게.

“입 맞춰 줘요.”

선아는 그가 너무 쉽게 제 몸뿐만 아니라 제 감정까지 치솟게 만드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려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붙였다. 그는 간지러운 감촉에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틀어 다른 방향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선아는 자신의 입 속에 들어선 혓바닥을 힘겹게 받아 내며 비음을 흘렸다.

“으응.”

혓바닥 밑 부분까지 그는 빠짐없이 훑었다. 그의 잇새에 달게 물린 선아의 혀가 움찔댄다.

그가 언제 자신을 안아 들고서 소파까지 걸어왔는지 모르겠다. 선아의 몸을 우진의 커다란 몸이 짓누르듯 다가왔다. 젖가슴이 뭉개질 정도로 부드럽게 맞닿은 단단한 몸 덕에 그녀의 몸이 절로 소파 위로 널브러졌다. 충격을 완화해 주기 위해 선아의 뒷머리를 받쳐 들던 커다란 손이 빠져나갔다. 그게 조금 아쉬워 선아는 막힌 입으로 얕은 숨을 내뱉었다.

머리와 등에 닿는 가죽의 매끈한 질감이 푹신한 침대와는 다른 느낌이다. 선아가 신고 있던 단화를 그가 손수 벗겼다. 짝을 잃은 신발은 아무렇게나 거실 한편에 홀로 나뒹굴었다. 나머지 단화 한 짝은 어디에 흘렸는지 모르겠다. 신발 따위가 어디에 나뒹굴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선아는 잠깐 제 입속에서 그의 혀가 빠져나간 틈을 타서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그는 그녀의 뺨에 깊숙이 제 입술을 눌렀다. 그 힘에 보기 좋게 살이 오른 선아의 뺨이 푹 눌릴 지경이었다.

“우리…… 침대에 가서…….”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가볍게 쥐고 저를 바라보게 했다. 지척에 있는 그는 혀를 내밀어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그러게. 나 기다리면서 얌전히 침대에 있지 그랬어요.”

“아…….”

“내가 어제는 너무 살살 했나 봐요. 걸어 다닐 수도 있고…….”

한우진은 선아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선아는 꽤 아프게 물린 입술이 홧홧해진 것 같았다.

“선아 씨는 나 칭찬해 줘야 해요. 내가 그 자리에서 손목 잡고 끌고 나가지 않으려고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참은 줄 알아요?”

그는 뻔뻔하게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붙이며 입술을 달싹여 낮은 어조로 은근하게 속살댔다.

그러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재킷을 벗었다. 와이셔츠 단추 하나하나를 착실히 풀어내며 그녀의 입술이건 뺨이건 목덜미건 수없이 성실하게 입술을 맞췄다.

선아는 쏟아지는 다디단 그의 입맞춤에 허우적댔다. 그는 정신이 없는 선아의 한 손을 쥐고 제 단단한 뱃가죽에 댔다. 선아는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단단한 살갗의 느낌에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의 하얗고 단정한 와이셔츠 사이에 제 손바닥이 있었다. 한우진은 선아의 손바닥으로 제 몸을 매만지게 했다. 선아는 자신의 살갗과 판이한 촉감과 두께의 몸에 홀려서, 그를 조금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가 선아의 손목을 붙들어 두지 않아도, 선아의 손이 그 촉감을 더 느끼기 위해 스스로 움직였다.

“마음에 들어요?”

무엇이? 선아는 가벼운 의문을 품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그의 늑골을 쓸었다. 근육과 지방이 적절하게 잘 배합된 남자의 두툼한 몸은 확실히 만지는 맛이 있었다.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우진은 미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꿀렁댔다. 마른침과 함께 삼키는 그의 낮은 신음에 선아는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남자의 몸 특유의 두툼한 옆태를 손바닥으로 쓸어 댔다. 새삼 그의 골격이 크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선아의 두 눈은 한우진에게 못 박혀 있었다. 드물게 얼굴을 찌푸린 한우진은 뭔가…… 야릇했다. 그리고 또…….

다른 손으로 우진의 매끈한 볼을 매만지자, 한우진은 거기에 기꺼이 제 얼굴을 가볍게 비볐다. 반쯤 내리감은 눈꺼풀을 바라보며, 선아는 엄지에 닿는 그의 입술을 조금 스치듯 매만졌다. 그 상태에서 우진의 두 눈과 마주쳤다.

뒷골이 슬그머니 서는 느낌이 들었다.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도 선아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다. 한우진은 몸을 숙여 입술을 내렸다. 그의 입술이 제 입술에 꾹 닿는 느낌이 들고서야 선아는 움직일 수 있었다. 눈을 내리감고 입을 벌려 그를 맞이했다. 그는 유영하듯 느릿하게 혀를 선아의 입 안에서 굴렸다.

그가 제 와이셔츠를 벗고, 제 버클을 푸는 움직임을, 그의 아래에 눌린 선아는 선명히 느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어깨에 매달려 호흡을 주고받는 것 같은 달착지근한 입맞춤에 더욱 집중했다. 지독히도 다디단 것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가 혀를 선아의 입 속에서 내빼고 그녀의 뺨을 핥을 때도 선아는 너무나도 달아서 아릿하게마저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잠시 떨었다.

가볍게 선아의 턱을 고정하고 있던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선아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손에 닿는 모든 부위를 그는 빈틈없이 매만졌다. 그러면서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겉껍질 같은 옷을 착실히 벗겨 냈다. 옷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그는 조심스러웠다. 새삼스럽게.

그는 종종 시선을 올려 헐떡이는 선아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옷을 벗기는 그를 도와 잠깐 팔을 올리거나, 등을 잠깐 들어 주면, 그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의 볼이 눌릴 정도로 세게 입을 맞췄다. 입을 벌려 살짝 깨물기도 했다. 선아는 그 감촉이 간지러워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럼 한우진은 조금 올라간 제 입꼬리를 감추지 않고, 그 입술로 제가 손을 댔던 곳곳을 깊게 내리눌렀다. 그러면서도 마치 그녀가 녹아서 없어질까 염려하는 사람처럼 제 잇새에 닿는 살갗을 가볍게 깨물며 그녀의 존재를 제 감각으로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는 유독 선아의 가슴팍에 잘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그리고 선아의 원피스 자락을 들치고 그녀의 속옷을 끌어 내렸다. 선아가 그를 도와 하체를 들썩이자, 그의 입술이 잠시 호선을 그리다가 다시금 선아의 흉곽을 꾹 짓눌렀다.

하아. 그의 얕은 숨이 선아의 살갗에 온전히 닿았다.

단것을 혀로 굴리는 듯한 장난질은 이제 끝이라는 듯. 허벅지 안쪽을 쓸어 내는 큰 손이 열기를 한가득 머금고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바라는 바는 한 가지라는 듯. 선아는 크게 숨을 쉬었다. 아니면 제 목구멍으로 치솟는 열기에 눌려 질식할 것 같았다. 그가 손대지도 않았는데 가슴 끝이 벌써 아프도록 꼿꼿하게 달아올랐다.

“으응…….”

선아는 그가 빨아 주기를 원하는 곳만을 빼고 입술을 쪽쪽대고 있는 우진에게 보채듯 몸을 살짝 뒤틀었다.

“뭘 원해요?”

한우진은 선아의 가슴 둔덕에 제 뺨을 비벼 대며 물었다. 그의 뺨에 그녀의 젖꼭지가 문대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났다. 목 안쪽을 기묘하게 긁어내리는 목소리는 공연히 어젯밤의 그를 상기시켰다. 그에 아래가 반사적으로 젖어 드는 것 같았다.

“말해 봐요, 선아 씨.”

그는 선아가 말만 하면 뭐든 다 해 줄 것처럼 재촉하며, 선아의 반대쪽 젖꼭지를 제 손가락으로 문댔다. 하읏. 선아의 교성에 그는 손가락으로 지분대던 것을 그대로 잡아 돌렸다. 조급한 것은 꼭 그녀가 아니라 그 같았다.

선아가 여태껏 봤던 한우진은 정적이었다. 항상 남들의 우위에 서서 관망하는 태도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는 배부른 짐승이 할 일 없이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듯.

모든 상황을 제 뜻대로 통제하는 한우진은 항상 여유롭고 느긋했다. 그 탓에 감정의 폭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채선아가 알던 한우진은 항상 그랬다.

하지만 위에서 제 몸을 짓누르고 있는 그는 평소와의 모습과는 판이했다. 눈앞에 있는 그는 먹고 싶어 침을 뚝뚝 흘리면서도 먹으라는 주인의 명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덩치 큰 개처럼 보였다.

저를 달구기 위해 은근히 제 성기를 선아의 안쪽 허벅지에 묵직하게 누르는 태도도 그러했다.

선아는 정말로 우습게도 그가 마치 최선을 다해 저를 유혹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그가 아닌 저라고 착각하게끔. 한우진은 선아가 제대로 이 분위기에 취하게끔 했다. 제 온몸을 이용해서.

“빠, 빨아 줘요.”

선아가 헐떡이는 숨 사이에서 수치심 없이 스스로 이런 말을 그에게 당연하게 요구할 만큼. 제 허락과 같은 말이 떨어지자, 한우진은 덥석 그녀의 가슴살을 한가득 물었다. 혀로 굴리는 느낌과 힘껏 빨아 당기는 느낌에 선아의 고개가 절로 뒤로 넘어갔다.

안쪽의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은 더욱 습한 곳으로 기어 들어갔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젖어 있는 아래를 확인한 우진은 제 잇자국이 남도록 입 안에 든 선아의 가슴을 꽉꽉 물었다. 물고 있지 않은 가슴은 제 큰 손으로 마구 쥐어짰다.

쾌감에 가까운 아픔에 선아는 헐떡였다. 한우진은 고개를 들어 그런 선아의 얼굴에 입술을 꾹꾹 붙였다가 떼어 냈다. 그리고 빈틈없이 붙어 있던 상체를 세우며, 제 침으로 범벅이 된 선아의 살덩이를 힘껏 주물럭거렸다. 그때마다 그녀의 양 젖꼭지가 그의 단단한 손바닥에 마찰이 되었다.

가슴은 원래의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손아귀 안에서 형체를 잃은 채로 이지러졌다. 필시 그의 손자국이 엉망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우진의 혓바닥이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선아의 입술 사이를 갈랐다.

선아는 제 입 속으로 들어온 우진의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입을 최대한 벌렸다. 그 탓에 한우진은 더욱더 제 입으로 선아의 입을 틀어막듯 입술을 맞춰 댔다. 맞붙은 입술에서는 당연하게도 난잡스러운 소리가 났다.

정신없이 주무르던 손이 드디어 선아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갔다. 선아는 아릿하게 남은 아픔에 짧게 신음을 흘렸다. 한우진은 선아의 신음조차 제 입 안으로 달게 들이켰다. 선아는 자신의 숨통까지 틀어막을 작정인지 쉴 새 없이 밀고 들어오는 우진의 혀 때문에 공기가 부족했다.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겨우 그 집착적인 입맞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틀었을 때였다. 그녀의 입술 대신에 제 콧날을 그녀의 볼에 비비적대고 있는 한우진의 입에서 나직한 숨이 터졌다.

선아는 질척대는 곳에 서슴없이 빠듯이 들어찬 그의 굵은 손가락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 질척거리는 소리에 선아는 절로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겨우 하나 들어갔어요. 힘 조금 빼 봐요. 선아 씨.”

선아의 귀를 잘근잘근 씹으며, 한우진은 낮은 목소리로 한껏 유혹적으로 속삭였다. 선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운뎃손가락에 선아의 새어 나온 애액을 묻히고 있는 그의 손길이 노골적이었다.

“흐응!”

젖은 손가락 하나를 마저 밀어 넣은 한우진은 크게 손목을 돌려 선아의 안을 둥글게 매만졌다. 가볍게 힘을 줘서 촉촉한 내벽을 꾹꾹 짓눌렀다. 손가락을 구부려 더 깊은 곳까지 침범했다.

선아는 그의 팔뚝에 매달렸다.

한우진은 제 긴 손가락을 선아의 밑에 다 넣은 상태로, 바짝 깎아 낸 단정한 손톱으로 안을 살짝 긁어내렸다.

“하읏.”

선아의 새된 소리에 우진의 엄지가 선아의 음핵을 문질러 댄다. 질 안을 들쑤시며 음핵을 돌리는 움직임은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좋아요? 선아 씨?”

귀의 지척에서 지독히도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선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그러잡았다. 하지만 한우진은 더욱더 거세게 움직였다.

내빼려는 손가락에 쫀쫀하게 달라붙어 딸려 오는 느낌에 그는 혀를 내밀어 선아의 귓바퀴를 크게 둥글렸다. 질컥질컥 물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움직였다. 선아는 가벼운 절정에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제 아래에서 손가락을 빼내는 움직임이 선명했다. 한우진은 손을 떼지 못하고 선아의 질척이는 아래를 다시금 손바닥으로 전체적으로 문댔다. 선아는 한껏 민감해진 곳을 마찰시키는 단단한 우진의 손에 다시금 안쪽 허벅지를 잘게 떨며 흐느꼈다.

“아! 우, 우진 씨. 그만……. 그만.”

선아는 말과는 달리 울먹이며 방만하게 벌어진 허벅다리를 그의 손에 가져다 붙였다. 본능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우진의 어깨에 매달린 손이 바짝 손톱을 세워 그의 어깻죽지를 꽉 부여잡는다.

단단한 살갗에 선아의 손톱이 박혀 들어가는 느낌에 한우진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선아의 다리 하나를 바짝 들어 올렸다.

그가 꽉 쥔 탓에 오금이 저렸다. 벌름대는 선아의 아래에 우진의 뭉툭한 좆 대가리가 닿았다. 선아는 그의 것이 단박에 제 안으로 들어오자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읏!”

좁은 구멍을 억지로 콱 꿰뚫듯 짓누르며 들어오는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우진은 선아의 목을 잘근잘근 씹으며, 제 입술을 그녀의 살갗에 비볐다.

“선아 씨 여기가 내 자지 씹어 먹고 있어요. 느껴져요?”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밀어 넣으며 음란한 말을 속살댔다. 선아의 시선이 절로 우진의 것이 박혀 들어가고 있는 아래쪽으로 향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헐떡이는 선아의 뺨에 우진은 다시금 쪽쪽 가볍게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반쯤 밀어 넣은 그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대신에 다디단 선아의 입술을 물었다.

잠깐 선아가 숨을 내쉴 때는 그녀의 콧잔등에 제 코를 가볍게 비비며 선아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제 입술을 찾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선아의 두 팔이 절로 그의 목둘레에 엉겼다. 기꺼이 선아에게 제 목을 내어 준 한우진의 거대한 몸뚱이도 절로 선아의 몸을 짓누르듯 무게감 있게 내리눌렀다.

“흐으.”

선아는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기분 좋은 무게감에 다시금 막힌 입 대신 작게 콧소리를 냈다. 두 몸이 한 몸처럼 빈틈없이 맞물린 채였다. 우진은 허리를 조금 더 앞으로 밀었다. 버거워하면서도 오물대며 제 성기를 물어 대는 선아의 아래에 한우진은 선아의 입 안으로 혓바닥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골반을 부여잡아 제 밑으로 더 잡아당기는 손길에 선아의 하체가 절로 위로 들렸다. 선아는 자신의 끝보다 더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그의 입술을 겨우 피해 고개를 틀며 헉헉댔다. 우진은 길게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를 핥았다. 펄떡펄떡 뛰는 맥박이 느껴지는 곳은 살짝 이를 세워 물었다. 가장하고 있던 그의 여유와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한꺼번에 제 몸통을 마저 다 밀어 넣었다.

선아의 골반을 부서져라 세게 잡은 손바닥이 벌써 땀으로 흥건했다. 선아는 들쑤시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정신없이 들이박고, 잠시 물러나나 싶으면 다시금 더욱 깊숙이 제 몸통을 안으로 밀어 넣는 감각이 선득할 정도로 분명했다.

두툼한 귀두가 젖은 질벽을 긁어 대는 감각은 선아가 절로 아랫배를 꽉 조이게 했다. 몸통에 툭툭 튀어나온 힘줄까지도 선아의 예민한 속살을 여지없이 거칠게 긁어 댔다.

선아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시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아는 그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정확히 선아가 느끼는 지점을 쿵쿵 힘 있게 짓쑤실 때면, 선아는 아찔한 높이에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끝도 없는 무저갱에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밀어닥친 때 이른 절정에 선아는 감았던 두 눈을 까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 가득 찬 한우진은 잘게 떨고 있는 선아의 뺨을 제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선아는 턱턱 부딪치는 힘에 꺽꺽댔다. 입을 벌리고 있는데, 숨을 쉴 수 없었다. 앙앙거리며 울음과 같은 신음을 내뱉는 게 훨씬 낫다고 느낄 정도였다. 선아는 몸을 힘껏 틀었다. 하지만 한우진의 손아귀 아래에서는 소용없는 몸짓이었다. 벗어날 수 없었다.

우진의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자잘하게 붙어 온다.

“조금만 참아요. 금방 배 속에 싸 줄게요.”

달게 속삭이는 목소리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몸은 주체 없이 떨린다. 제가 그러는 와중에도 처박는 움직임을 멈출 생각이 없는 한우진의 팔뚝을 선아는 손톱을 잔뜩 세워 긁었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오르는데, 쿵쿵 처박으니 입조차 떼지 못하고 속절없이 휘둘린다.

목울대에서 나오는 짙은 숨은 선아의 이마에 들러붙었다. 이제는 아주 완벽히 작정한 듯 선아의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선아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안을 거세게 치받고 있었다.

이 반동이면 제 속에 박혀 있는 성기가 삐져나갈 만도 한데, 입구에 귀두가 걸린 듯 빠져나지도 않고, 빼낸 만큼 용케 턱턱 선아의 몸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들이박던 움직임은 드디어 선아의 안쪽 깊숙한 곳에 제 정액을 쏟아부을 때 겨우 멈추었다. 제 뿌리 끝까지 다 처박았음에도 한우진은 마치 자궁에 직접 수정을 시키려는 수컷처럼 제 음낭이 선아의 살갗에 비벼질 때까지 허리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선아는 각기 다른 생명체처럼 움직여 대는 우진의 등을 감싸 안은 채 헐떡였다. 한참 뒤에야 숨을 진정시킨 선아는 자신의 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귓바퀴를 매만지는 손길이 간지러워 눈을 내리감고 살짝 웃자, 제 입술 끄트머리에 한우진이 깊게 입술을 맞췄다.

소파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우진이 긴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한우진은 오래도록 공을 들이듯 하나하나를 제 손끝으로 매만졌다. 동그란 이마와 눈물기가 묻은 눈. 작지만 오뚝 귀엽게 솟은 콧등과 살결이 유달리도 좋은 볼을 매만지며 시선을 제 손과 같이 오래도록 떼지 못했다.

간혹 선아의 시선과 마주칠 때면 한우진은 제 시선을 둔 곳에 자잘하게 입술을 붙였다 떼어 냈다. 마치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여전히 하나인 양 서로가 이어진 채로.

선아는 자신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기 전에 한 손으로 그의 입술을 겨우 막았다. 불만스럽게 한쪽 눈썹을 비죽 올린 한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선아를 내려다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이었다.

“씻고 싶어요.”

제 몸을 무게감 있게 짓누르고 있던 우진의 몸이 떨어져 나가자 선아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잠깐 냈다. 한껏 민감해진 몸에서 그의 성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허벅지 사이로 흐르는 느낌도 물론이거니와.

선아도 소파 위에서 잔뜩 늘어진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꺅!”

선아는 갑자기 공중으로 들리는 몸에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한우진은 제 두 팔로 들어 올린 선아의 이마에 제 입술을 붙였다. 무게감 없이 단박에 그녀를 안아 올린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는 걸음을 옮겼다.

“내가 씻겨 줄게요.”

그의 품 안에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있던 선아가 기겁할 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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