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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 신혼일기 (25/27)

외전 2 : 신혼일기

“폐하, 제 배 속에 아기가 있대요.”

시아나가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라시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라시드는 손을 뻗어 시아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쿵, 쿵, 쿵, 쿵.

세차게 떨리는 남자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시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라시드가 살짝 붉어진 눈으로 속삭였다.

“사랑해.”

시아나는 웃으며 그의 가슴을 비비적거렸다.

“기뻐해 줄지 알았어요.”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주.

다음 날, 라시드는 어제의 환희에 가득 찼던 표정이 사라진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시아나, 어젯밤에 여성의 임신에 대한 책을 읽었어.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은 아주 힘들다더군.”

그 밖에도 입덧을 하여 먹는 것이 고통스럽다.

체중이 늘어남에 따라 온몸이 트고, 손발이 저리다.

병에 걸려도 태아에게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약을 먹을 수 없다.

산모에게는 쉴 새 없이 많은 위험 요소가 있었다.

라시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일을 잠깐 쉬면 어때?”

시아나는 황후로서 황궁을 다스리며, 라시드의 정무 또한 도왔다.

거기에 신 아실론드까지 신경을 쓰고 있으니, 업무량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꼬박 일을 해야 할 만큼.

라시드는 그것이 너무 걱정됐다.

라시드의 마음을 안 시아나가 눈썹을 내렸다.

‘폐하의 말에 일리가 있어.’

배 속에 아기를 품고 하기엔 너무 과한 업무다. 하지만…….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

쿠궁. 라시드가 번개를 맞은 얼굴을 했다.

그런 라시드의 손 위로 손을 얹으며 시아나가 말했다.

“무리를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예전보다 업무의 양은 줄일 거고, 최대한 조심할게요. 그러다가 몸이 힘들어지면 바로 쉬도록 할게요.”

시아나는 영특하고 자제력이 강하다.

그러니 그녀는 제 말대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라시드의 얼굴은 심각했다.

눈썹을 모으고 입을 꾹 다문 라시드의 얼굴에 시아나가 눈썹을 내렸다.

“그냥 폐하의 말대로 일을 쉴까요?”

“아니.”

번개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물론 라시드는 시아나가 당장 일을 쉬고, 폭신한 침대 위에 누워서 먹고 싶은 것만 냠냠 먹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제 욕심일 뿐.

시아나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

라시드의 다정한 말에 시아나가 방긋 웃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운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 * *

라시드는 황제의 업무를 홀라당 놓아 버렸다. 정확히는 황제가 꼭 결정해야 할 일을 뺀 나머지를 유능한 부하들에게 맡겨 버렸다.

그 후 남은 시간은 모두 시아나를 위해 썼다.

라시드는 시아나가 먹는 세 끼 식사를 모두 챙겼다.

“요즘 시아나가 입맛이 없다. 상큼한 과일 위주로 식사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모든 요리에서 치즈를 빼라. 치즈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을 하니까.”

황제의 서늘한 명령에 주방 시녀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죽음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라시드는 시아나의 업무도 도왔다.

“서류가 너무 많으니 내가 먼저 읽고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 주마. 하, 써야 할 편지도 너무 많군. 이것은 내가 답장을 할게.”

“……폐하는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얼마나 싫어하냐면 글씨 쓰는 것은 모두 신하에게 맡길 정도였다.

그러나 라시드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더 해 줘야지. 편지 쓰는 것은 너무 고된 일이니까.”

라시드의 말대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은근히 체력과 기력이 많이 쇠하는 일이었다.

‘그간 귀족들에게 성의를 다하기 위해 남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편지를 써 보냈어. 황제 폐하가 답장을 보낸다면 그들도 아쉬워하진 않겠지.’

그래서 시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요.”

덕분에 상냥하고 다정한 황후의 답장을 기대하던 귀족들은 싸늘하기 짝이 없는 황제의 편지를 받고 벌벌 떨어야 했다.

라시드의 내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아나의 곁에 착 달라붙어 온갖 시중을 들었다.

치장하는 것, 차를 따라주는 것, 목욕도…….

“그건 됐어요. 시녀들에게 부탁할게요!”

시아나가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쳤으나 라시드는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시녀가 실수라도 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시녀가 악의를 품고 너를 미끄러뜨릴 수도 있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너를 납치할 수도 있고. 아무튼 조심하는 게 좋아.”

기가 찬 말이었다.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만큼 보안이 철저한 황궁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라시드의 눈빛은 진심이었기에 시아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아무리 안전을 기했다고 해도 황궁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잖아. 게다가 아기를 가졌으니 더더욱 조심하는 게 맞아.’

결국 시아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시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시아나를 번쩍 안아 욕조로 들어갔다.

그 후, 얇디얇은 유리잔을 닦듯 시아나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그 손길에는 예전에 있던 진득한 욕망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아나는 조금 놀랐다.

‘정말 씻겨만 줄 생각인가 보네.’

라시드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 사라진 시아나는 풍성한 거품 속에서 눈을 감았다.

솔직히 말하면 목욕 담당 시녀보다 라시드의 커다란 손이 제 몸을 만져 주는 게 훨씬 더 좋았다.

더없이 따뜻한 애정에 감싸인 기분이랄까.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라시드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고귀한 제국의 황제였다.

그런 존재가 일을 줄이고 아내를 보살피는 것에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은, 안 좋은 여론으로 흐를 여지가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아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시아나의 생각이 맞았다.

* * *

츄츄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너에게 신경 쓰는 것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구먼.”

시아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데?”

츄츄는 입을 떼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시아나가 일부러 조사를 해 달라고 요청한 일이었기에 솔직히 말했다.

“황제는 제국 최고로 높은 자리에 앉은 존재임에도 일개 여자 하나에게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다.”

“교활한 황후는 배 속의 아기를 미끼로 황제를 제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

“이러다 아기까지 태어나면 제국은 황후의 세상이 될 것이다.”

시아나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폐하께서 나를 신경 쓰신다고 그렇게까지 엄청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물론 이건 극히 일부에서 나오는 이야기여. 대부분 황제 폐하께서 황후 폐하를 극진히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흐뭇해하는구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시아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스스로도 계속 신경 쓰였던 부분이기 때문에.

‘폐하는 여느 황제와 다른 길을 걷고 계셔.’

라시드는 시아나를 황후로 맞이한 후, 천명했다. 일생 한 여인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그것은 낭만적인 말이었으나, 자손을 번창할 의무가 있는 황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귀족들은 라시드의 사랑을 경계했다.

‘어쩌면 황제 폐하의 과도한 사랑 때문에 제국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시아나는 그들의 우려를 이해했다.

역사 속에서 한 여자에게 빠진 황제는 종종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라가 아예 멸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국의 누구도, 황제 폐하가 한 여자에게 빠져 휘둘리는 것을 원치 않아. 그것이 황후라 해도.’

시아나의 얼굴이 굳었다.

츄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아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시아나? 역시 내가 괜한 말을 전한 것 같구먼.”

“아니야. 내가 부탁한 거잖아.”

배 속에 아기가 있다 해도 언제든 귀를 열어 두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시아나는 황후니까.

츄츄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서 어쩔 셈이여?”

시아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야기꾼들을 이용해 ‘저런 말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다!’라며 역으로 몰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써도 크게 여론이 좋아지진 않을 거야. 폐하께서 유별나다고 할 만큼 날 사랑하는 건 사실이니까.’

가장 쉬운 방법은 따로 있었다.

라시드가 조금만 자중하는 것.

* * *

라시드가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

“나보고 너를 보살피는 것을 그만하라고?”

시아나가 눈썹을 내리며 대답했다.

“아주 그만하라는 게 아니에요. 조금만 줄여 달라는 거예요.”

“왜?”

‘내가 그러는 게 싫어?’라는 눈빛이었다.

아니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앞으로도 나만 신경 써 주세요!

라고 시아나는 소리칠 뻔했다.

그러나 시아나는 그 말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황제가 황후를 아끼는 건 모두에게 본이 될 모습이죠. 하지만 일을 줄이면서까지 신경 쓰면 이야기가 달라요.”

풀 죽어 있던 라시드의 눈빛이 일순 달라졌다. 그가 얼음처럼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네게 쓸데없는 말을 했구나.”

당장 찾아내서 그 괘씸한 입을 갈가리 찢어 버릴 테다.

라고 할 기색이었기에, 시아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라시드의 두 손을 꽉 잡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폐하도 알다시피 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잖아요.”

시아나가 라시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 그래 주시면 안 돼요?”

라시드는 시아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라시드는 허리를 숙여 시아나를 끌어안고 칭얼거리듯 말했다.

“시아나, 너는 다정하지만 어느 때는 너무 엄해.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참으라니.”

“……미안해요.”

“제발 사과하지 마. 그 말은 나를 더 괴롭게 하니까.”

“그럼 고마워요. 내 뜻을 존중해 줘서.”

시아나는 그렇게 말하며 라시드를 향해 웃었다. 해사한 미소였다.

라시드의 서린 겨울처럼 가라앉은 마음을 한순간 따스한 봄으로 되돌릴 만큼.

결국 라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라시드는 시아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아나가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라시드는 시아나 옆에 착 붙어서 시중을 드는 것을 멈추고, 늦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업무에 임했다.

“폭주하셨던 황제 폐하께서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오셨다!”

라며 황궁의 사람들과 귀족들이 안심했다. 자연스럽게 황제의 황후를 향한 비정상적인 애정 표현에 대한 우려도 사라졌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시아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시아나의 일상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시아나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기를 가진 산모는 때때로 매우 불안정해진다는 사실을.

* * *

어두운 새벽녘, 시아나는 눈을 번쩍 떴다.

시아나는 동그란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기가 먹고 싶어.”

그냥 고기가 아니라, 기름에 튀긴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닭고기가!

어이가 없었다.

왜냐면 시아나는 배 속의 아기를 위해 저녁도 평소보다 많이 먹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잠자기 전에도 우유 한 잔과 비스킷을 먹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닭고기튀김이 먹고 싶다니!’

시아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옆을 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라시드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원래는 시아나를 곰 인형처럼 끌어안고 잤지만, 시아나가 임신한 후에는 혹시라도 배에 무리가 갈까 봐 참고 있다.)

‘지금 닭고기튀김이 먹고 싶다고 하면…… 폐하께서 또 난리를 치겠지?’

시아나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라시드가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황궁이 떠나갈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칠 것이다.

[당장 황후에게 닭고기튀김을 대령하라!]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꼭두새벽에 갑자기 닭고기튀김을 찾는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창피했고, 무엇보다 겨우 진정시켜 놓은 라시드를 다시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황제 폐하가 유난이라고 수군거리는 것은 싫어.’

시아나는 눈을 꾹 감았다.

‘다시 잠들자.’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 양을 세기 시작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닭고기튀김 다섯 마리…….

“……!”

시아나는 다시 눈을 번쩍 뜨고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다시 시작하자.’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닭고기튀김 네 마리…….

‘또 닭고기튀김이 튀어나왔어!’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세면 셀수록 양은 줄어들고 닭고기튀김만 많아졌다.

시아나는 식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상황이 낯설고 힘들었다.

새벽녘, 무언가를 먹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시아나는 눈썹을 한껏 모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시아나.”

“……!”

조금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시아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시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곤히 잠들어 있던 라시드가 눈을 뜨고 시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시드가 시아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왜 그래, 시아나. 무서운 꿈이라도 꾸었어? 아니면 어디가 아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냥 좀 잠이 안 와서 그래요.’

시아나는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아나의 몸은 주인의 생각을 배신하고, 솔직하게 고하고 말았다.

서러움에 눈물 한 방울까지 흘리며.

“닭고기튀김이 먹고 싶어요.”

“……!”

눈을 크게 뜬 라시드는, 조금의 고민 없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방을 나가 황궁에 있는 온 시녀들을 깨울 것이다.

시아나가 예상했던 대로.

‘그건 안 돼!’

시아나가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라시드의 가운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라시드가 허리를 숙여 침대 위에 있는 시아나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새벽에 닭고기튀김을 만들라고 시녀들을 들들 볶지는 않을 테니 안심해.”

“그, 그럼 왜 방을 나가려는 건데요!”

“내가 만들어 줄게.”

“네?!”

깜짝 놀랄 말에 시아나의 눈이 감자만큼 동그래졌다.

“책을 읽어 보니 임산부들은 시시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게 많아진다더군. 그때 생각했지. 내가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폐하는…….”

“그래, 난 황제야. 주방에 쉽게 들어갈 수 없지.”

우습게도, 황궁의 주인인 황제는 주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황제의 드높은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니까.

“나는 권위 같은 것은 떨어지든 말든 상관없지만 너는 아니니까 참았어. 시녀들에게 음식을 맡기고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했지.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잖아.”

“아…….”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

“…….”

시아나는 멍하니 라시드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시드는 시아나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춘 후,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혀 주고 이불까지 살뜰히 덮어 주었다.

뽀송한 이불 바깥으로 얼굴만 내민 시아나는 드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폐하가 정말 닭고기튀김을 만들어 오실 수 있을까?’

한때 시녀로 일했던 시아나조차 황궁 주방이 익숙지 않았다.

그런 주방에 라시드가 들어가서 닭고기튀김을 만드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시드라면 그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폐하는 나에 관련된 일만큼은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라시드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튀김 한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시아나는 침대에서 튀어 나가 두 손을 벌렸다.

‘닭고기튀김 님 오셨습니까!’

라는 얼굴로.

그런 시아나가 귀여운 듯 라시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혈히 환영해 준 두 손 위에 닭고기튀김을 놔주고 싶지만 접시가 너무 뜨거워.”

라시드는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려 둔 후, 더없이 우아한 모습으로 세팅을 시작했다.

새콤한 레몬티, 토마토가 곁들여진 아삭한 샐러드까지.

푸짐하게 차려진 상에 시아나의 얼굴이 한껏 상기됐다.

라시드가 포크를 건네자, 시아나가 붉게 물든 얼굴로 말했다.

“그냥 손으로 집어 먹고 싶어요.”

시아나는 늘 황후에 걸맞은 예법을 갖추어 우아하게 식사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것을 잊은 채 도톰한 고깃덩어리를 손에 들고 뜯고 싶었다.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보았던 산적처럼.

‘임신을 해서 그런가. 왜 갑자기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 감정을 참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제 앞에 있는 것은 라시드뿐이었으니까!

예상대로 라시드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품위 없이 먹는 건 안 된다고 탓하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야. 고기는 손으로 뜯어야 제맛이지.”

라시드는 닭고기튀김의 통통한 다리를 뜯어 시아나에게 건넸다. 제 주먹만 한 다리를 잡은 시아나는 앙, 하고 한 점을 뜯었다.

“헉!”

시아나는 저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내뱉었다.

부드러운 닭고기와 바삭하고 기름진 튀김옷의 조화가 절묘했다.

이건 음식이 아니야, 이건 예술이야.

사람을 감동시키니까!

닭다리를 순식간에 다 뜯은 시아나는 아차, 싶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턱에 손을 괸 라시드가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시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시드가 시아나의 입가에 묻은 튀김가루를 떼어, 시아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아사삭.

시아나의 입 안에서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났다.

“맛있어?”

라시드의 물음에 시아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요.”

라시드의 눈이 반짝거렸다.

시아나가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먹는 모습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귀엽고, 즐거웠다.

시아나가 라시드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나머지 닭다리도 제가 먹어도 될까요?”

라시드는 결국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물론이야, 시아나. 네가 원하면 지금 당장 주방으로 가서 닭다리를 더 튀겨 오마.”

라시드의 보라색 눈동자가 어찌나 호기롭게 빛나던지, 세상의 닭다리를 몽땅 잘라 튀겨 올 기세였다.

그래서 시아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닭다리는 두 조각이면 충분해요. 다른 부위도 먹고 싶고요. 전 닭의 다채로운 매력을 존중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시아나는 닭다리를 왕 하고 입에 넣었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닭고기튀김을 뜯어먹는 시아나의 볼에 라시드가 쪽 입을 맞추었다.

“이제부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말고 내게 말해. 언제고, 어떤 요리든 만들어 줄게. 아, 물론 아무도 모르게.”

한없이 다정한 남편의 말에 시아나는 두 눈을 부드럽게 휘었다.

먹음직스러운 닭다리 하나를 손에 들고.

그 후, 새벽녘에 눈을 뜬 시아나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할 때마다, 라시드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었다.

어떤 때는 상큼한 딸기 샐러드를, 또 어떤 때는 보슬보슬하고 노란 오믈렛을, 또 어떤 때는 모락모락 구운 감자를.

물론, 황제가 새벽마다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든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지만, 황궁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존귀한 황제와 황후의 명예를 위하여.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

시아나가 닭고기튀김을 먹고 싶다고 했던 그날.

라시드는 황궁의 주방으로 향했다.

황제가 되어 요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건만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사실 라시드는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견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라시드는 품속에서 은밀하게 챙겨 온 책을 꺼냈다.

<임산부가 좋아하는 100가지 요리>

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쭉 인기를 유지한 스테디셀러였다.

라시드는 책을 펼쳤다.

책에는 조리법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라시드는 작은 동물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 준 경력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요리 방법을 이해했다.

주방의 어디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진즉 공부를 해 두었으니까.

냉장 기능이 있는 마력석이 달린 항아리 안에는 잘 손질된 닭고기 한 마리가 보였다.

‘사육장에 있는 닭을 잡는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아도 되니 잘됐군.’

라시드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 생닭을 집어 도마 위에 놓았다.

“맛있는 닭고기튀김이 되거라, 닭아. 나의 시아나를 위해서.”

라시드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닭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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