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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107화 (107/121)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 107화

코렐리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에린은 분명 아실리 공작의 저택이나 후작성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이곳에 왔단 말인가.

아텐츠 아카데미는 제국의 중심부에 있었다. 쫓기고 있는 자들이 그곳에 잠입해 학생들을 납치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런데도 에린은 어떻게 알고 그녀를 찾아왔다.

‘소드 마스터의 마나 감지력이 뛰어나다고 듣긴 했지만, 여기까지 감지할 수 있을 줄이야. 에린이 아카데미에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에린은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곧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코렐리아는 도망갈 생각을 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에 있는 마나석을 내려다보았다.

혹시라도 소드 마스터를 만나게 되면 사용하라며 황제가 건네준 마나석이었다.

‘언젠가 이걸 쓸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리서스 후작가에서 처음 에린의 검을 봤던 그때부터 코렐리아는 직감했다.

그녀가 에린을 죽이지 못한다면 에린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란 걸.

에린은 자신의 살기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분노한 채 그녀에게 달려오는 기세가 매서웠다.

마치 그녀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그러니 공포에 떨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코렐리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에린이 오고 있는 숲 쪽을 바라보았다.

“코렐리아 님, 도망치셔야 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세가…….”

“저희만으로는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기사들이 희게 질린 안색으로 외쳤다. 어떤 기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검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기사들은 누구보다 소드 마스터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두려움에 떠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코렐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상대하기 힘들겠지.”

코렐리아의 목소리엔 은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에린이 자신에게 살기를 드러냈다는 사실 자체를 그녀는 견딜 수 없었다.

‘감히 에린 따위가 나에게 살기를 드러낸다고?’

에린은 자신에게 반항해선 안 된다.

십몇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건 당연한 진리와도 같은 일이었다.

코렐리아의 가슴 속부터 뜨거운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마나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도망, 도망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부재하시는 이상 상대할 수 없습니다!”

기사의 말에 코렐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문득 황제는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이상 늦든 빠르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에린과 만나게 되는 상황을 예상하였겠지.

‘그는 내가 마나석을 섭취한 뒤 에린을 없애길 바라고 있겠지.’

황제는 결코 이유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도망치지 않는다.”

코렐리아는 에린과 맞서기로 했다. 그녀는 마나석을 쥔 채 에린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린이 근처까지 온 게 보였다. 코렐리아는 마나석을 입에 집어넣었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불쾌한 기운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코렐리아의 눈에 기형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몸이 보였다.

마나석을 먹은 뒤 진행되는 마물화였다. 강력한 힘이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옆에 있던 기사들이 그녀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방해되니까 저택의 지하로 내려가. 예비 기사 놈들을 감시하고 있어라.”

그녀의 말에 기사들이 희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에린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분명 오랜 시간 동안 달려왔을 텐데도 숨이 찬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 특유의 무거운 기세가 에린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에린과 코렐리아의 두 눈이 마주쳤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엄청난 압박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에린이 코렐리아를 향해 물었다.

“아몬을 데려간 게 당신인가요?”

코렐리아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데려갔어.”

코렐리아는 두 눈을 휘며 아름답게 웃었다.

“그냥 데려간 게 아니야. 저항이 심할 거 같아서 상처를 입혔거든. 치료도 해 주지 않았으니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

“전부 너 때문이지.”

“…….”

“에린, 너 같은 애와 친해서 아몬은 그런 최후를 맞이한 거야.”

에린은 코렐리아와 눈을 마주친 채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생각했다.

코렐리아는 자신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겁을 주려 하지만 땅 아래에서 아몬의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다.

‘불안정하긴 하지만, 아직 괜찮아. 늦지 않았어.’

코렐리아가 하는 헛소리들은 에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하던 부정적인 말들이 전부 틀렸단 것을 페르딘과 그의 예비 기사단원들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내든 에린은 상처를 받지 않았다. 다만, 어린 시절의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언젠가, 당신에게 사랑을 바란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했죠.”

코렐리아는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에린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담담한 말에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아니에요. 당신은 내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해요.”

에린의 경멸 어린 눈동자에 코렐리아는 자신의 모든 시간이 부정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에린이 날 경멸한다고? 감히?’

그녀가 발악하며 외쳤다.

“그 눈은 뭐야, 감히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

코렐리아는 자신이 에린에게 더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렐리아는 그 사실이 참을 수가 없었다.

“에린, 전부 너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더는 들어 주기 힘드네요.”

“뭐?”

“전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열등감에 휩싸여 잘못된 일을 저지른 건 당신이죠.”

“그건 다 널 위한 거였어. 넌 행동도 말투도 모든 게 잘못된 아이였으니까.”

에린은 코렐리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말장난을 상대해 주는 이유도 코렐리아가 어떤 짓을 한 건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아몬에게 갈 수는 없겠어.’

코렐리아의 마나가 빠르게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과거에 서부에서 본 하녀 샬롯과 똑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샬롯보다 코렐리아에게서 더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코렐리아가 에린을 조롱했다.

“내가 지금 너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살려 달라고 해 봐, 그러면 살려 줄지도 모르지.”

“또 당신의 말을 믿으라고요?”

코렐리아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맞아, 방금 한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야. 네가 살려 달라고 내게 빌었어도 내 계획은 변하지 않아. 난 이 자리에서 기필코 널 죽이고 말 테니까.”

코렐리아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에린의 말대로 그녀는 에린을 살려 둘 생각이 없으니까.

그녀가 더 강해지기 전에 죽여야만 했다.

“내가 후회하는 게 있다면 널 이제까지 살려 둔 거야. 진짜로 소드 마스터가 될 줄은 몰랐지…… 이 징그러운 것!”

그 순간, 에린은 코렐리아에게서 기묘할 정도로 강한 기운을 느꼈다. 코렐리아가 빠른 속도로 에린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에린은 몸을 오른쪽으로 숙여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코렐리아의 팔이 기이할 정도의 각도로 휘어져 그대로 에린의 어깨를 베었다.

“소드 마스터라니, 별것 아니구나!”

이어서 코렐리아의 검이 에린의 허벅지로 향했다. 하지만 에린은 이미 뒤로 물러나 그녀의 검을 피한 뒤였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리며 땅이 진동했다. 코렐리아의 옆에 남아 있던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강렬한 힘이 검에 담겨 있었다. 마나석의 위력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웠다.

순간적으로 강해진 마나와 몸에 넘쳐나는 활력이 느껴졌다.

코렐리아는 희열에 차 검을 휘둘렀다. 에린이 별다른 반격을 하지 못하고 그녀에게서 도망치는 게 보였다.

‘정말 엄청난 힘이다.’

황제의 흑마법은 이제 소드 마스터와 맞먹는 경지에 오른 게 분명했다. 그녀는 머리가 쭈뼛 서는 강력한 힘에 취했다.

동시에 눈앞에 있는 에린을 이길 수 있다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역시 꿈은 꿈일 뿐이야.’

코렐리아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악몽을 떠올렸다. 역시 예지몽 따윈 없는 게 분명했다.

그 꿈은 전부 그저 말도 안 되는 개꿈일 뿐이었고, 그녀는 결국 에린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에린을 바라보았다.

“넌 지금 나보다 형편없이 약해! 신체 능력도, 마나도 하찮기 그지없지.”

에린은 말없이 검을 바로잡았다. 그녀의 검 끝이 코렐리아에게 향했다. 코렐리아는 위화감을 느꼈다.

에린이 검을 든 순간, 주변의 공기가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당신이 그래서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한 거야.”

“뭐?”

코렐리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에린이 꺼낸 말은 그녀의 역린이었으니까.

에린에게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기도 했다.

“신체 능력이나 마나가 중요한 게 아니야.”

만약 소드 마스터가 되는 데 그것들이 중요했다면, 에린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으리라.

인랑족의 영토에서 족장에게 죽었을 테고, 서부에서 샬롯을 만났을 때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닥쳐!”

코렐리아가 그렇게 외치며 에린에게 달려들었다. 강한 마나를 담은 그녀의 검이 에린의 심장을 노리며 날아갔다.

이제 결판을 내겠다는 듯 온몸의 마나를 쥐어짠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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