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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93화 (93/121)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 93화

그들은 후작성으로 출발하기 전, 후작 부인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후작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렇기에 후작성의 탐색을 맡은 기사들은 교대로 코렐리아를 감시하였다.

그들은 사용인들이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지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코렐리아가 따로 움직이진 않았나요?”

페르딘의 말에 마지막까지 코렐리아를 감시하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1 기사단과 페르딘은 거침없이 지하 감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감옥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기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기절했다.

사전에 말을 맞춘 대로 기사단은 세 부대로 나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르딘은 이시스 그리고 기사단원 열 명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지하 감옥의 동쪽을 흩어져 탐색하기로 했다.

빠르게 철창 안쪽을 살피던 페르딘은 일순 인상을 썼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지하 감옥의 축축하고 음울한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리서스 후작성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었다.

‘우리가 탐색하지 못했던 곳은 지하 감옥뿐만 아니라…….’

페르딘은 걸음을 멈췄다.

그를 뒤따라오던 이시스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페르딘은 작게 숨을 고르며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전하, 괜찮으신가요?”

이시스가 놀란 듯 페르딘에게 다가갔다.

“역시 아직 몸이…… 레옹 백작에게 당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시스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강한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페르딘은 그 순간, 어느 한 광경을 목격했다. 코렐리아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는 이능으로 그 장면을 짧게 본 적이 있었다.

에린이 코렐리아에게 끌려가 훈육을 받는 과거의 기억이었다.

리서스 후작성의 첨탑.

‘지하 감옥이 아니야.’

페르딘은 자신이 달릴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달렸다. 체력이 약한 이시스는 그를 따라오지 못했다.

페르딘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눈치채고 서둘러 쫓아온 제1 기사단 중 한 명이 그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나머지 기사단원들을 데리고 와 주세요.”

페르딘은 이시스를 업은 기사에게 외쳤다. 그는 자신을 따라온 나머지 두 명의 기사와 함께 첨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당연히도 문은 잠겨 있었다.

페르딘은 검으로 문의 손잡이를 날렸다.

그리고 그가 봤던 기억과 비슷한 모습을 목격했다. 검을 든 코렐리아가 후작을 내려치려 하고 있었다.

* * *

며칠 전 코렐리아는 수정구를 통해 디트리온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에린 리서스가 황제 폐하께 소드 마스터라는 증명을 받으러 황궁으로 온다고 합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그녀는 잊지 못했다.

에린이 소드 마스터라고?

대체 어떻게?

하지만 언제까지고 충격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코렐리아는 우선 지하 감옥에 있는 후작의 위치를 옮겼다.

만약 누군가가 그를 찾으러 온다면 지하 감옥을 의심할 게 분명했으니까.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그녀는 후작을 죽이고 모든 걸 은폐할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몰라.’

샬롯이 죽고 꼭두각시를 쓸 필요가 없어졌을 때부터 고민하던 것이다.

하지만 원래 그녀의 계획이 있지 않았던가. 후작에게 에린의 최후를 보여 주는 것.

어차피 마나 제어석으로 손발을 결박해 둔 이상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코렐리아가 고민하던 중, 제1 기사단과 페르딘이 그녀의 예상보다 빠르게 후작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페르딘과 저녁 식사를 함께한 후 코렐리아는 결정을 내렸다.

‘리서스 후작을 죽여야겠어.’

하지만 첨탑으로 향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제1 기사단이 계속해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사용인들도 감시당하고 있음을 눈치챈 그녀는 그들에게도 명령하지 못했다.

코렐리아는 열린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페르딘과 기사 두 명이 검을 겨눈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분명 지하 감옥으로 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페르딘과 기사단이 지하 감옥으로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후작을 죽이기 위해 첨탑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단 말인가. 코렐리아는 인상을 썼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전부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코렐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페르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코렐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페르딘이 움직였다. 그는 리서스 후작을 자신의 등 뒤에 숨기고 검을 뽑아 들었다.

코렐리아의 검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차앙-!

얇은 팔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페르딘의 두 팔이 부르르 떨렸다.

‘상급 기사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실력이다.’

에린에게 들어 그녀가 기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줄은 몰랐다.

페르딘을 따라왔던 제1 기사단의 기사들도 그에게 합류했다.

“네놈들은 내 상대가 안 돼.”

코렐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그녀는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했지만 상급 기사 서너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고작 저 인원으로 후작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이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제1 기사단원들이 코렐리아를 상대하기 시작하자 페르딘은 리서스 후작의 상태를 살폈다.

“후작님?”

그가 후작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하지만 후작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단한 무언가로 머리를 강하게 맞았는지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후작의 맥박을 확인한 페르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건 아니다.’

다행히 기절한 상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에 큰 상처는 치료가 시급해 보였다.

“으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비명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기사 한 명이 코렐리아에게 어깨를 찔렸다.

코렐리아는 발로 그 기사를 밀쳤다.

그런 다음 다른 기사의 다리를 베어 냈다.

순식간에 두 명의 기사를 해치운 것이다.

페르딘은 후작을 밖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코렐리아가 금세 그에게 다가와 검을 내질렀다.

“어딜!”

그녀의 검이 페르딘에게 쇄도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늦게 피했더라면, 그대로 복부가 찔렸을 위치였다.

페르딘은 안고 있던 후작을 다시 바닥에 내려 두고 검을 고쳐 잡았다.

“페르딘 전하, 지원을 기다리고 계신 거군요.”

코렐리아의 말이 맞았다. 그는 리서스 후작을 보호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코렐리아는 그런 페르딘의 생각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후작만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 차앙!

맑은 소리가 나며 검이 맞부딪혔다.

“버리고 가시지 그래요?”

“…….”

“어차피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는 중립파의 귀족입니다. 이렇게 도와줬다고 해서 그가 당신의 편이 되어 줄까요?”

페르딘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럼 대체 왜 저 인간을 구하려고 하는 거죠?”

그는 후작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페르딘이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리서스 후작이 죽는다면, 에린이 슬퍼할 테니까.

“말이 많으시군요.”

그의 대답에 코렐리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답은 잘하시네요.”

그녀의 검이 매섭게 몰아쳤다.

페르딘은 필사적으로 후작을 보호했다.

그동안의 수련을 통해 상급 기사의 경지에 도달하긴 했지만 정신을 잃은 사람을 지키면서 싸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아직인가.’

싸운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이 억겁같이 느껴졌다.

결국 페르딘은 코렐리아의 검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의 허벅지가 길게 베였다.

페르딘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어.”

그러자 코렐리아의 검이 곧바로 리서스 후작에게 향했다.

페르딘은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에린이었다.

‘내가 여기서 일어서지 못하면…….’

에린은 그를 사랑한다고 했다. 함께 있고 싶다고 속삭였다.

‘리서스 후작님을 지킬 수 없겠지.’

코렐리아는 리서스 후작을 죽이고 그 역시 죽이려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에린은 약혼자도 잃고, 아버지도 잃게 될 거야.’

그녀를 울리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페르딘은 복부에서 고통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뭐, 뭐야!”

코렐리아는 후작을 노린 검이 페르딘에 의해 막히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검을 회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페르딘이 그런 코렐리아의 검을 한 손으로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당…… 신은…… 리서스 후작님을 해…… 치지 못해.”

코렐리아가 재빨리 검에서 손을 떼고 한발 물러선 덕에 그의 검은 왼쪽만을 스쳤다.

그녀는 반쯤 베인 팔을 반대쪽 손으로 감싼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페르딘 전하!”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마침 첨탑 위에 도착한 제1 기사단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코렐리아는 페르딘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페르딘의 흐릿한 시야 속, 코렐리아가 창문을 열고 첨탑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전하! 페르딘 전하,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이시스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페르딘은 무거워진 눈꺼풀에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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