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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71화 (71/121)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 71화

“그래, 칼립스. 당신을 옹호했던 그 시종 말이야.”

“…….”

샬롯이 충혈된 눈으로 에린을 바라보았다.

“그 인간이 왜 죽었는지 알아? 그 같잖은 놈이 감히 코렐리아 님을 협박했어. 코렐리아 님은 아량을 베풀어 자신에게 넘어온다면 살려 주겠다고 하셨는데…….

“…….”

“그 버러지 자식이 말을 안 듣는 바람에 내가 조용히 처리했지. 걘 마지막까지 당신을 걱정하다 죽었어. 참 어리석은 놈이었지.”

에린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구나, 칼립스가…… 날 끝까지 걱정했어…….”

에린은 그가 자신을 원망했을 거라 여겼다. 그녀만 아니었으면, 칼립스가 죽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상냥한 칼립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걱정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에린은 큰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슬픔을 느꼈다.

‘지금이 기회야.’

샬롯이 칼립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에린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예상대로 에린이 실의에 잠긴 지금이 공격할 기회였다.

에린에게로 손을 뻗으면서 본 그녀의 얼굴이 정말로 슬퍼 보여서, 샬롯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녀는 완전히 에린을 얕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 에린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너무 깊게 박혀 있는 탓이었다.

만약 그녀가 방심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순간의 일격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너무 빠르게 벌어진 일에 뇌가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 걸 느낌과 동시에 샬롯의 고개가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이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았다.

샬롯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자신을 쳐다보는 에린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지독히도 무표정했다.

* * *

코렐리아는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하녀 한 명이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시원하신가요?”

“그래, 시원하구나. 솜씨가 늘었어.”

코렐리아의 말에 하녀가 뿌듯한 듯 미소 지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샬롯이 만든 리서스 후작의 꼭두각시 인형은 충실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다들 후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진짜 후작이 있을 지하 감옥을 떠올리며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아마 지금쯤 에린은 죽었겠지.’

샬롯이 실패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녀의 마법적인 능력은 이제 막 상급 기사가 되었던 레이먼보다 훨씬 뛰어났다.

게다가 그녀는 마나석을 삼켜 힘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킨 상태였다.

그 힘으로 부분적인 신체 변형까지 한 상태이니 아실리 공작을 제외한 이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은 아마 그녀를 손쉽게 제압하지 못할 터였다. 만약에 제압한다고 해도 크게 다칠 것이다.

그렇기에 코렐리아는 이번만큼은 성공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몇 번의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들의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은 없었다.

“꺅! 코렐리아 님!”

분명 그리 생각했다.

안마를 받고 있던 코렐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하녀 한 명이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무례하게…….”

“후작님이, 후작님이 모래가 되셨어요!”

“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코렐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 벌어진 일이지?”

“방금, 방금 그렇게 되셨습니다.”

“목격자는?”

“네?”

“목격자가 있냐고 물었어.”

“저…… 저 혼자 있던 상태…….”

코렐리아가 벽에 걸려 있던 검을 든 뒤, 그대로 방 안에 있던 하녀들을 베어 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빠른 손속이었다. 코렐리아의 입매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인형이 사라졌다. 그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명확했다.

‘샬롯이 당했다.’

인형을 만든 주술사가 죽은 것이다. 샬롯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당했다고?

‘대체 누구지? 또 그놈인가? 그 소드 마스터 녀석?’

우연이 세 번 반복될 수는 없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코렐리아는 어느새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페르딘의 편에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해.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일을 더 앞당겨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렐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레이먼, 샬롯.

그녀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둘 사라져 버렸다.

며칠 뒤, 후작성에 전령이 도착했다. 코렐리아는 도착한 전령의 말을 듣고 마음을 굳혔다.

“에린 경께서 서부의 승급전을 성공하셨다고 합니다!”

전령을 바라보는 코렐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언뜻 보기에 에린을 자랑스러워하는 미소 같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레이먼과 샬롯이 누군가에게 당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에린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코렐리아는 이내 결심했다.

오랜 시간을 이어 온 이 지긋지긋한 연극의 막을 내려야겠다고.

* * *

샬롯을 향해 검을 휘두른 에린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에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니 페르딘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직 그녀만을 담고 있던 그의 푸른 눈이 아른거렸다.

‘돌아가기로 했어…….’

에린이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그 순간 후드득 피가 떨어졌다.

‘헬릭스와 이시스가 죽으면 그가 슬퍼하겠지.’

에린은 샬롯이 들고 있던 약병을 챙겼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몇 번이나 약병을 떨어트릴 뻔했다.

드디어 칼립스를 죽인 자를 찾아 죗값을 물렸다. 하지만 복수를 성공했다는 생각과 별개로 눈에선 멋대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 샬롯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기 때문이다.

‘칼립스가 끝까지 나를 걱정했구나.’

새롭게 안 사실은 그녀를 더 괴롭게 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에린은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헬릭스와 이시스의 상처를 지혈했다.

그런 다음 기절한 그들을 챙겨, 이제는 조용해진 보육원을 혼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걸어가는 길에 헬릭스가 정신을 차리고 이시스를 업었다.

몸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서로를 지탱하며 결과적으로 무사히 서부의 신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신관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 나왔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세상에, 빨리 치유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에린 경, 정신 차리세요!”

“이시스 님, 헬릭스 경!”

서부의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에린과 헬릭스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에린의 상처는 심각했고 그건 헬릭스와 이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과거가 달라졌다. 아마 서부가 마물 떼에 당하는 일 역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에린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와중에도 생각했다.

‘페르딘이 서부에서 죽는 일도 없어지겠지…….’

만약 몇 년 후에나 그곳을 발견했다면, 실험이 계속 진행되어 수가 배로 많아지거나 마물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그럼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괜찮아, 이젠 벌어지지 않을 일이니까.’

그제야 에린은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드는 매우 깊은 잠이었다.

* * *

‘여기는 어디지?’

에린은 두 눈을 비볐다.

그녀는 분명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했었다. 아직 단련이 덜 된 몸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뜬 곳은 난생처음 보는 장소였다.

나무가 끝없이 쭉 이어진 곳이었다. 제국 내에도 숲이 많지만, 이렇게까지 거대한 나무가 줄지어 있는 숲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줄기에 장미와 비슷한 꽃이 피어 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기괴해 보였다.

에린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딘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왜 이런 곳에 온 걸까? 너무 무리한 나머지 결국 죽은 걸까?

몇 번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한 번도 이런 장소로 온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이 신이 준 마지막 기회였을까?

그래서 다른 때와는 다르게 이상한 장소로 오게 된 거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지옥인 걸까?’

그녀가 죽었다면, 헬릭스와 이시스는? 그들은 괜찮은 걸까? 에린은 문득 두려워졌다.

이대로 죽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아쳤다.

‘멍청이, 바보. 돌아간다고 했잖아.’

서부로 떠나지 말라고,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 그는 자신이 돌아오기를 굳게 믿고 있을 거였다. 그리고 그건 카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에린이 두 손으로 흙을 움켜쥐었다. 강한 힘에 손바닥의 살이 까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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