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48화 (48/121)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 48화

* * *

코렐리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카론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얘가 왜 이러지? 코렐리아로선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카페에 앞에서 만난 카론은 그녀에게 평소처럼 웃으면서 다가오지 않았다.

‘데리고 오라 한 에린도 없이 혼자 왜 온 거람. 귀찮게.’

에린과 오랜만에 만나면 괜찮은 곳에서 교육을 하려 했더니 모든 게 다 틀어졌다.

“누님은 오늘 바쁘다고 해서 데리고 오지 못했어요.”

코렐리아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카론의 눈빛이 어쩐지 평소보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 말만 듣고 나와의 약속을 어기다니.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에린이 바쁘다고? 어쩔 수 없지. 그 애는…… 내가 올 때마다 항상 바빴으니까. 이해해. 아마도 나를 만나기 싫은 거겠지.”

코렐리아는 인자하게 웃으며 카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러자 카론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코렐리아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론을 바라봤다.

“카론?”

“아…… 죄송합니다.”

감히…… 카론 리서스가 자신의 손을 뿌리친다고?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것인가? 아무리 봐도 카론이 어딘가 이상했다.

원래라면 에린을 데리고 오지 못한 상황에 실망한 그녀의 눈치를 봐야 옳았다.

“카론, 오늘은 기분이 영 별로인가 보구나. 내게 웃어 주지도 않고.”

리서스 후작가의 꼬맹이들이 어딘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카론을 보는 코렐리아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에린을 만나고 온 그가 갑자기 왜 변했는지 코렐리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딘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오늘따라 피곤해 보이는구나.”

샬롯이 그런 코렐리아의 옆에 다가왔다. 그녀는 마치 카론과 코렐리아의 사이를 중재하듯, 그들의 사이에 자리 잡았다.

피곤해 보인다는 코렐리아의 말에 카론은 어색하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는 카론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 * *

카론은 한동안 음식을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머리로는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에 대한 마음과 관련된 과거를 모두 잘라 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네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이제껏 나를 지옥으로 떨어트렸다고 하면, 믿을 거냐고.”

그가 아는 어머니는 나이프 하나 들기 힘들어할 정도로 여린 분이었다.

카론은 그런 코렐리아가 에린에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직 에린의 팔에 남아 있던 자국을 떠올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누님 때문에 많이 속상하시죠.”

“누님은 대체 왜 어머니에게 그럴까요?”

“누님, 대체 왜 그래? 왜 그렇게 삐뚤어진 거야?”

뭣도 모르고 그 둘에게 내뱉었던 말들이 그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돌아왔다.

자괴감에 정말로 참을 수 없을 때 에린이 카론을 찾아왔다.

* * *

카론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는 에린의 앞에 놓인 드레스를 바라봤다.

“이게…… 대체 뭐야?”

“코렐리아가 보낸 드레스야. 파티에 이걸 입고 오라고 하더라.”

“그럼 지금까지 누님이 드레스를 선택한 게 아니었어?”

에린의 앞에는 코렐리아가 보낸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에린, 너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드레스를 보냈단다.]

그녀가 보낸 드레스는 채도 높은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알이 굵은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카론은 에린이 파티에 참석할 때마다 듣곤 했던 험담을 떠올렸다.

“에린 양은 안목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어쩜 저렇게 화려하고, 촌스러운 드레스만 좋아하는지…….”

“후작 부인께서 높은 안목으로 드레스를 골라 주실 텐데…… 아마 자신의 취향으로 입고 나오는 거겠지요.”

그들의 말은 전부 틀렸다. 에린이 입었던 드레스들은 전부 코렐리아가 손수 골라 준 드레스였다.

그리고…… 카론은 이제까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먹은 것도 없는데 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에린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카론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 삶에서는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카론이 자신의 아픔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그마저 그녀를 오해하고 매도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가 카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자 그가 지었던 표정을 에린은 잊을 수 없었다.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떨리던 그 눈동자를.

그때, 에린은 카론을 용서했다. 피해자끼리 서로를 탓하기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카론이 아니어도 그녀의 분노를 받을 사람들은 많았다.

남동생이 온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지금마저도, 에린은 그런 카론을 이해했다.

그녀는 코렐리아가 보낸 촌스러운 드레스를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카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디트리온의 기사 로함 말이야.”

에린의 말에 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로함이 실종됐다는 사실은 아텐츠 아카데미 내에서 유명한 일이었다.

디트리온이 그 일로 아카데미를 쥐 잡듯이 뒤졌으니까.

에린과의 말다툼 이후 벌어진 일이라 그의 실종에 리서스 후작가가 관여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와 다툰 날…… 늦은 밤에 로함 경이 내 방으로 찾아왔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카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물들었다. 늦은 밤에 디트리온의 기사가 그녀를 찾아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설마 누님을 모욕하려고 했나?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카론이 에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만약 에린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라면 그는 이 세상의 끝까지 그를 찾아 죄를 물을 것이다.

카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가, 그가 누님에게 무슨 짓을 했어?”

“아니, 그는 아무런 짓도 하지 못했어.”

“뭐?”

“내가 그를 제압했거든.”

카론은 에린이 한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에린이 로함을 제압하다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로함 경이 어떤 인간이었냐가 중요한 거지.”

에린은 그날 밤, 로함이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너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건 코렐리아의 뒤에 있는 사람 때문이었어.”

“…….”

“카론, 너도 기사이니만큼 기사들이 가장 경멸하는 일이 뭔지 잘 알겠지.”

“……?”

“로함 경은 흑마법으로 강해진 기사였어.”

“뭐라고?”

흑마법. 그 말을 듣는 순간 카론의 얼굴이 경멸로 물들었다.

흑마법을 이용해 강해지는 일. 그건 기사들이 가장 증오하는 일이었다.

마물이 지금보다 강성했던 먼 옛날엔 흑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강한 기사들을 늘리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알려지며 이제 와서는 사장된 방법이었다.

신성 교단에서도 언제나 흑마법의 위험성을 알리며 흑마법을 이용한 자들을 척결하려 했다.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에서 금지된 일인 것이다.

그런데 1황자의 기사인 로함이 흑마법을 사용해 강해졌다고……?

그 말의 무게를 카론은 모르지 않았다.

그의 손아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카론은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로함이 흑마법을 이용해 강해진 자였다면, 에린이…… 어떻게 그를 제압했단 말인가?

“그런 자를 누님이 어떻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카론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검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의문을 느끼고는 했다.

검을 좋아했고,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아버지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검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검을 든 순간 확신을 갖는다고 하더구나. 자신이 소드 마스터가 될 거라는 확신을.”

그러나 그는 아직 단 한 번도 자신이 소드 마스터가 될 거라고 확신을 한 적이 없었다.

카론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검의 선택을 받은 건…… 누님이었구나.”

“맞아. 로함 경이 날 찾아왔을 때의 일을 공론화하지 않는 것도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게다가 그가 내게 재밌는 말을 남겨 줬거든.”

그렇게 말하며 에린은 로함이 죽기 직전 자신에게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의 삶을 시궁창으로 몰아넣은 자는…… 세르기아 렉시아야. 후작 부인의 뒤에 그가 있지.”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지?”

“내 꼴을 봐라. 황제는 흑마법을 사용해 자신만의 기사들을 육성해 냈지. 그는 소드 마스터가 더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았어. 어차피 마물이든 기사든 꼭두각시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

“그래서, 너를 그렇게 만든 거다. 코렐리아 역시…… 그런 황제가 보낸 기사야.”

그 말을 끝으로 로함의 몸은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