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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29화 (29/121)

그 악녀가 검을 든 이유 29화

* * *

개꿈이 분명하다.

에린의 말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코렐리아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기분이 더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꿈을 꾼단 말인가.

에린은 그녀가 신경 쓸 가치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레이먼이 지금쯤은 모든 걸 해결했을 거였다.

재능? 웃기지도 않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의 떨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샬롯!”

그녀가 큰 소리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하녀를 불렀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큰 키의 하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코렐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꿈자리가 뒤숭숭하셨나 봅니다.”

하녀의 말에 코렐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저번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됐어. 페르딘 렉시아의 예비 기사단원인 꼬마 마법사 말이야.”

“성공적으로 만나 말을 전달했어요.”

“그래서…… 받아들이겠대?”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요?”

샬롯의 확신에 찬 말에도 코렐리아는 불안한 듯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쪽 인간들 성향이 어떤지 알고 있잖아. 쓸데없는 정의감에 차 있는 인간들이야.”

“그러니까 더욱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진정한 정의를 가진 인간이라면, 제 오라비를 죽인 인간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을 테니까요.”

“…….”

“사실 무엇보다 레이먼이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래 봬도 상급 기사니까요.”

샬롯의 말에 코렐리아는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았다. 레이먼은 임무에 성공할 것이다.

레이먼이 만약 실패하더라도 지금쯤이면 토벌대가 인랑족의 영토에 도달했을 테니 결과는 똑같겠지.

인랑족은 반인반수 형태의 수인족 중 하나로, 사나운 성격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허락받지 않은 이들이 자신들의 영토 근처까지 온 것에 위협을 느낄 게 분명했다.

레옹 백작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테지만…… 그가 이끄는 기사단은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에 배가 끊겨 인랑족의 영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토벌대는 있지도 않은 지원을 기다리다가 큰 화를 입겠지.

코렐리아는 곧 닥칠 비극을 생각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드디어 인랑족의 영토에 도착했다. 아직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울창한 숲속은 어둡고, 서늘했다.

토벌대원들은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에린은 인랑족의 땅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페르딘에게 생길 비극을 막는 게 첫 번째이지만, 그것 외에도 인랑족의 영토에서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미래에 인랑족은 한 마법사를 데리고 등장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그 마법사는 국경선에 있는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

하지만 인랑족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종족이다. 그렇기에 에린은 그 마법사가 ‘인랑족에게 납치됐던 난민’ 중 한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한다.

원래라면 페르딘의 예비 기사단 말고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훗날 그 마법사가 예전에 구해 내지 못한 난민이라는 소문이 돌며 페르딘이 큰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에게 해가 될 일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페르딘은 인랑족의 영토 주변을 훑어보다 토벌대를 멈춰 세웠다.

인기척 없는 숲속은 너무 고요한 나머지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할 레옹 백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레옹 백작님께선 어디 계신 거지?”

토벌대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돌아가야 해.”

페르딘의 말에 데렉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알잖아, 페르딘. 황제가 알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임무에 실패했다고 네게 또 무슨 짓을 할지…….”

에린은 먼 곳에서 그들이 심각한 얼굴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페르딘과 데렉은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의 뛰어난 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한다. 이는 에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임무에 실패한다 뿐인가. 토벌대에 참가한 이들 중 절반이 목숨을 잃어 황제의 분노를 사게 됐다.

“수색대라도 보내야 해. 레옹 백작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는 걸 황제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데렉은 그렇게 말하며 토벌대를 유심히 살폈다.

그들 사이에 황제의 끄나풀이 있다고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데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페르딘은 결국 수색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을 후회했다.

릴리아와 아몬이 인랑족에게 납치당했기 때문이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릴리아랑 아몬이 납치당했다니?”

데렉의 큰 목소리에 그의 앞에 있던 예비 기사가 몸을 떨었다. 그는 극심한 공포에 빠진 것 같았다.

“젠장, 젠장!”

데렉은 욕을 내뱉으며 들고 있던 장갑을 내던졌다.

토벌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수색대 중 몇 명의 인원이 크게 다친 채 돌아왔다. 그리고 아몬과 릴리아가 인랑족에게 납치당했다고 전했다.

에린은 그 보고를 듣고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을 인랑족에게 릴리아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인질일 것이다.

이는 과거엔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몬과 릴리아 둘 다 원래는 아무런 피해 없이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가 너무 많은 미래를 바꾼 걸까. 그래서 정해진 운명이 틀어진 건지, 에린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어떤 위험을 무릅쓰건 그녀가 그들을 구할 거라는 거였다.

에린은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들을 바라봤다.

다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게 보였다.

필립이나 검술 학부의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이었다.

“페르딘 경,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의 예비 기사단 사람을 납치당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랑족의 영토 안엔 소드 마스터와 필적할 만한 무력을 가진 인랑족 족장이 있을 터였다.

레옹 백작이 있었다면 수색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당장이라도 도주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데렉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는 지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수색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저 기사 중엔 분명 황제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인랑족에게 인질이 잡힌 상황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면 페르딘의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든 큰 비난을 받을 게 분명했다.

‘심지어 만약 이대로 아몬과 릴리아를 찾지 못한다면…….’

데렉은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에 몸을 휘청였다.

“페르딘 경!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납치당한 사람은 구할 수 없어요. 저희만이라도 몸을 피해야 합니다.”

“페르딘 경!”

기사들의 외침과 동시에 에린이 몸을 움직였다. 페르딘에게 날아오는 긴 창을 막기 위해서였다.

챙!

맑은 소리가 울리며 창이 땅으로 떨어졌다.

에린은 검으로 창을 막음과 동시에 페르딘을 붙잡고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그건 분명 기이한 일이었다. 아무리 에린 리서스가 유별날 정도로 빠르게 강해졌다고 하나 조만간 상급 기사가 될지도 모르는 페르딘조차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창이었다.

그걸 손쉬울 정도로 간단하게 막아 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토벌대원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을 신경 쓰느라 그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벌대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벌레들이 여기 있었군.”

그곳에 인랑족 무리가 있었다.

토벌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들은 점점 뒤로 뒷걸음질 쳤다.

그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아무리 기사라도 마물이 아닌 수인족과의 전투를 경험할 일은 많지 않았다.

에린은 페르딘의 안전을 확보한 뒤 슬며시 앞으로 나갔다. 그녀는 날카롭게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인랑족은 총 다섯. 그들이 제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숫자부터가 많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은 사실 별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이곳에서 전투한다면 청력이 뛰어난 인랑족의 특성상 영토 안쪽에 있는 인랑족들이 바로 지원을 올 것이었다.

인랑족들은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토벌대에게 다가왔다. 마치 궁지에 몰린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그때, 페르딘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도망쳐!”

기사에게 있어 모욕적인 명령이었다. 하지만 치욕을 느끼는 것도 목숨이 붙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인랑족 토벌과 난민 구출. 이는 소드 마스터인 레옹 백작의 지원이 없는 채로 수행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다.

페르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몇몇 기사들은 바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페르딘 역시 바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데렉이 서두르자는 듯 옆에서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기사 중 몇몇이 목숨을 잃을 순 있겠지만, 모두가 전멸하는 것보단 나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페르딘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에게 달려들어야 할 인랑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린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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