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 그 배우의 외도 생활 (8/11)

외전1. 그 배우의 외도 생활

“요즘 많이 바빠?”

팔베개를 벤 채 꾸벅꾸벅 졸던 남지유가 눈을 뜬다. 권성하가 그를 보고 있었다. 잠이 확 깰 만큼 다정한 눈빛이었다. 남지유는 눈꺼풀을 문지르며 잠깐 말을 골랐다. 겨우 꺼낸 목소리는 끝이 갈라져 있었다.

“복귀했다고 스케줄이 조금, 많아요.”

“피곤해 보여.”

“보시기에 예쁘지 않나요?”

자연스럽게 애교를 피우는 저 속을 조금만 파헤쳐도 시큰둥한 본심이 드러날 것이다. 권성하는 본래 무뚝뚝한 성격인 그가 제게 예뻐 보이려 고운 말로 포장하는 것을 퍽 귀엽게 여겼다. 살살 긁으면 발칵 뒤집어지는 모습도 꽤 볼 만했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여전히 예쁘지. 평소보다 빨리 싸고 금방 나가떨어지니까 우리 지유가 정말 조루가 됐나 싶어서 그랬어.”

“…지유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오빠가 지루인 거예요.”

“지유가 평균인 거고?”

“네에.”

권성하가 피식 웃으며 아프지 않게 뺨을 꼬집는다. 그래, 예쁜이 말이 다 맞지, 속삭이는 웃음소리는 부드러웠다. 홀딱 벗겨 놓은 채 구석구석 탐미하던 그가 입에 담기에는 참 간지러운 말이었다. 남지유는 멋쩍어져 시선을 내렸다. 이렇게 덮어놓고 예뻐할 때면 어른 앞에서 재롱부린 어린애가 된 기분이 든다. 진심으로 발끈한 게 창피스러워졌다. 손등으로 눈두덩을 덮는 그에게 권성하가 달래듯 나긋이 묻는다.

“졸려?”

“네……. 내일 또 촬영이 있어서.”

“이만 자자.”

큰 손이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감았다. 목덜미까지 쓰다듬는 온기에 천천히 졸음이 밀려들었다. 누가 옆에 있으면 항상 잠을 설치던 자신이 맞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큰일이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기저에 깔린 무언가를 겨냥한 위기감이 불쑥 떠올랐으나, 곧 수마와 함께 가라앉았다.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밤새 무리한 탓에 죽은 듯이 잠들고 말았다. 늦잠을 잔 육신이 신기하리만치 가벼웠다.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이던 남지유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나신을 감싼 구스이불의 촉감은 부드러웠고 그 안에 고인 온기는 황홀했다. 하얀 이불보에 스며드는 햇살마저 감미로웠다. 깜빡 잠들려던 찰나, 핸드폰 알람이 진동하며 울렸다.

“으…….”

이불 밖으로 손만 배꼼 내민 채로 이불 위를 더듬거린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가져와 알람을 해제하고 보니 오후 한 시였다. 숙면을 취한 것과는 별개로 구석구석이 쑤셔서 꼼작도 하기 싫었다. 팔뚝만 한 걸 뒤에 박아 대는데 멀쩡한 게 이상했다. 스케줄을 취소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으나 이뤄지지 못할 걸 상상해 봤자 부질없었다. 이불 속에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옆에 앉는 기척이 났다. 동거인이 이불을 걷어 내며 남지유의 잠을 깨웠다.

“일어나야지. 오늘 스케줄 있다며.”

“……조금만 이따가요.”

“어린애 달래서 학교 보내는 것 같네. 이럴 때 보면 애기가 따로 없어.”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베개에 뺨을 대고 있는 얼굴을 그가 쓰다듬는다. 정극을 찍느라 길렀던 머리카락이 눈가와 뺨에 흐트러졌다. 권성하는 귀찮지도 않은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정돈해 주며 잠이 깨기를 느긋이 기다렸다. 남지유가 깜빡 시선을 굴렸다.

“오늘은 쉬세요?”

“오빠도 조금 이따가 나가 봐야 해. 예쁜이 밥은 먹이고 나가려고 기다렸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바쁘시잖아요.”

“우리 지유, 떡친 다음 날에는 혼자서 걷지도 못하잖아.”

짜증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잠이 달아났다. 언젠가 섹스 후에 비틀거린 일을 가지고 여태 놀리고 있는 것이다. 남지유는 항변을 하는 대신 멀쩡하다는 걸 몸소 보여 주기로 했다. 이불을 박차고 나온 그가 침대 아래로 발을 디딘다. 순간 찌르르 등골을 달리는 통증에 다리 힘이 풀렸다. 고꾸라지려는 그를 지켜보던 권성하가 팔을 낚아채 세워 주었다. 귀 끝이 화끈거렸다.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남지유는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더듬더듬 변명을 주워섬겼다.

“이건, 그냥…… 아침이라 근육이 덜 풀렸나 봐요.”

“앉아 있어. 간단히 먹을 거 가져올 테니까.”

놀리지도 않으니 더 수치스러웠다. 권성하는 말이 없어진 남지유를 침대에 도로 앉히고는 뺨에 입을 맞췄다. 잠시 후 그가 침대 테이블에 따끈따끈한 빵과 수프, 주스를 담아 가져왔다. 먹음직스럽게 잘라 놓은 과일은 덤이었다.

“이렇게 안 챙겨 주셔도 돼요. 아침엔 입맛이 없어서 어차피 다 못 먹어요.”

“호강시켜 주겠다고 데려왔는데 굶겨서 보낼 순 없잖아. 오빠 맘도 생각해 줘야지, 응?”

같이 살게 되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권성하는 떡을 친 다음 날 아침을 차려 주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가정부가 해 놓은 음식을 데워 왔지만 가끔은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다. 남지유는 그것이 교미 후 제 새끼를 뱄을지도 모르는 암컷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빵을 찢어 주는 손길에 남지유가 결국 순순히 입을 벌렸다. 야금야금 받아먹는 남지유를 권성하가 흐뭇하게 바라본다. 오지랖 넓게도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까지 손수 떼어 주었다.

“오늘 스케줄은 어디야?”

“삼성동이었던 것 같아요. …왜요?”

“매니저 부르지 마. 가는 길에 태워다 줄게.”

“안 그러셔도…….”

“오빠가 걱정돼서 그래.”

방금 비틀댄 걸 놓고 하는 말이었다. 남지유는 민망한 화제가 오르는 게 싫어 입을 다물었다. 권성하가 낮게 웃는다. 부스러기를 닦아 주려는 듯 입술에 머무르던 손이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다 먹으면 같이 나가자.”

간단히 먹으라더니, 조금만 더 먹으라는 말을 반복하며 거의 반을 비우게 만들었다. 남지유는 불쾌한 포만감을 느끼며 외출 준비를 끝마쳤다. 외투를 한참 고민하다 코트를 입고 나오자 거실에는 이 실장과 경호원이 서 있었다. 남지유의 직업적 특성상 상주 가정부는 쓰지 못하지만, 경호원은 아래층에 머물며 잡다한 시중을 들었다. 정작 시중을 받는 남지유가 피해 다니느라 몇 번 마주친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을 볼 때마다 형수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하는 덩치들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남지유는 목례를 하는 경호원에게서 서둘러 시선을 돌려 권성하를 보았다.

“회사 가시는 거면 돌아갈 것 같은데, 그냥 저 혼자 가도 돼요.”

“몇 분 일찍 가는 것보다 우리 공주님 편하게 모시는 게 더 중요하지.”

“공…….”

경악스러운 단어를 저도 모르게 따라 하려던 남지유가 황급히 입을 다문다. 상사나 부하나 좆같은 호칭을 고수하는 건 똑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새빨개져서는 권성하의 어깨를 툭하고 때렸다. 호랑이가 그려진 어깨라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주먹질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다가온 입술이 속삭이듯 소심하게 타박을 했다.

“……사람들 듣는 데서 그러지 좀 마세요.”

“부끄러워서 그래?”

“다른 사람이 저희 관계 상상하게 만드는 거, 싫어요.”

“하하하. 그랬어? 오빠가 미안해, 응?”

진정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과였다. 애인의 허리를 자연스레 감싸 안는 팔이 솔직하다면 솔직할 것이다.

서로를 부르는 앙증맞은 애칭이나 붙어먹는 사이라는 걸 한껏 과시하는 스킨십은 남지유 혼자만이 부끄러워했다. 수행원들은 상사의 못 볼 꼴을 못 본 척해 주는 데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남지유를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권성하의 비서든 부하 직원들이든 이젠 스크린에서 자신을 보더라도 보스의 좆집이 폼 잡는다고만 여기지 않겠는가. 소중히 지켜 오던 배우로서의 자아가 훼손되는 기분이었다. 거세당한 것처럼 허전해졌다.

권성하는 시무룩 기가 죽은 애인의 허리를 감은 채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경호원이 재깍 움직여 차문을 열었다. 남지유를 먼저 오르게 한 권성하가 옆자리에 앉는다. 그는 코트 매무새를 정리하는 남지유를 가만 쳐다보다가,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쯤 물었다.

“삼성동에서 뭐 해.”

“화보 촬영이 있어요. 얼마나 걸릴지는 가 봐야 알 것 같아요.”

“그래?”

다디단 손길과 눈길이 얌전한 옆얼굴을 더듬는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권성하의 손가락에 감겨들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남지유를 주물럭거리는 걸 즐겼다. 마초들이 제 여자를 옆구리에 낀 채 과시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공예품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이라도 그렇다. 남지유는 종종 그의 바비 인형이 된 듯한 기분에 시달렸다. 남지유를 더 착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조차 익숙해지고 있단 사실이었다.

고급 세단이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린다. 남지유는 제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앞좌석을 넘겨보았다. 차후 브리핑이 있는지 이 실장이 태블릿PC를 들고 있었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요즘 마주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얼마 전만 해도 이사님을 제발 제시간에 출근시켜 달라며 애걸복걸하던 그였다. 아침부터 꼼짝없이 붙잡혀 시달리는 건 남지유인데, 감히 권성하를 원망할 수 없는 이 실장의 굴절된 원망은 오로지 남지유에게 쏟아졌었다. 어차피 동병상련인지라 그 원망에서는 일말의 동정도 엿보였었다.

‘……그걸 스치듯이 말하긴 했는데, 설마.’

설마 싶었다. 그러나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이 실장의 태도를 보자니 그 설마가 틀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순식간에 뺨이 홧홧해졌다. 보스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저 사람 좀 혼내 달라며 베갯머리송사라도 한 줄 알 것 아닌가. 말하지 말라했더니 참 입이 싼 남자였다. 남지유가 옆자리를 흘겼다. 내내 그를 지켜보고 있던 눈과 바로 마주쳤다.

“왜 그렇게 뜨겁게 쳐다봐?”

“…….”

할 말이 많은 입술이 방긋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듣는 귀가 둘이나 있는 곳에서 권성하와의 사생활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권성하는 불만스러워 보이는 입술을 엄지로 슥 문지르며 눈을 맞췄다. 바라보는 눈매가 깊다.

“오늘 스케줄 가기 싫어? 차 돌릴까?”

“아, 아니에요.”

“그럼 왜 그렇게 쳐다봤어. 너무 예뻐서 오빠 배꼽 아래까지 설레었잖아.”

남지유는 격벽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앞좌석을 살폈다. 다행히 못 들은 척은 해 주고 있었다. 한숨과 함께 울화가 올라온다. 미친 새끼,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애새끼와 똑같았다.

“아녜요. 그냥, 그냥…… 오늘따라 멋있으셔서. 그래서 본 거예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하아. 큰일이네. 꼰대처럼 굴기 싫은데 우리 예쁜이 이럴 때마다 집에 가둬 놓고 내보내기가 싫어져. 응?”

자고로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남지유는 격벽이 완전히 올라올 때까지 대꾸도 않고 기다렸다. 두꺼운 격벽이 운전석과 뒷좌석을 완벽히 분리했다. 방음 처리가 되어 있어 뒤에서 떡이라도 치지 않는 한 소리는 새어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권성하는 어여쁜 애인이 하는 짓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격벽까지 올려서 뭐 하려고 그래.”

“…제발, 다른 사람 있을 때는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돼요? 다들 티는 안 내도 속으로 절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다른 새끼한테 잘 보일 필요가 뭐 있어? 오빠 눈에만 예쁘면 되지.”

“지금까지 다른 애인들이랑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얼굴 팔릴 대로 팔린 연예인이란 말예요. 제발요, 오빠. 쪽팔려 죽겠다구요.”

권성하는 어여쁜 애인이 애원하는 중에도 그의 뒷덜미나 매만지며 잘생긴 이목구비를 감상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듣는 흉내도 내지 않는다. 뒷목 잡고 넘어갈 지경이었다. 남지유는 숨을 고르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직원들한테 저 좀, …이상하게 부르지 말라고 해 주세요….”

“이상하게?”

“그……. 하아…….”

그가 한참 망설이더니 겨우 입을 뗐다.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거요.”

권성하가 소리 내어 웃었다. 권성하는 목덜미를 매만지는 손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듣기 좋은데.”

“그거야, 오빠가 형수님 소리 듣는 게 아니라 그런 거겠죠.”

“음…….”

골똘히 생각하는 듯 손길이 한 곳에 머물렀다. 민감한 부위였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목덜미 솜털이 바싹 곤두선다. 몸을 살짝 틀어 손을 떨쳐 내려 했지만 외려 진득이 달라붙었다. 목 근처가 성감대인 걸 알면서 집요하게 만져 대는 게 참 뻔뻔스러웠다. 권성하는 매끈한 살결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하긴, 우리 지유 아직 서류가 깨끗하지. 식도 못 올렸는데 벌써 형수 소리 들으니 서러울 만해.”

“예? 아뇨,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오늘 바로 날짜 잡을까? 네덜란드든 미국이든. 같이 식 올리고, 혼인신고서 작성하고 나면 기분이 좀 풀릴 거야. 해외 나간 김에 같이 데이트도 하고. 응?”

사고 전개가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깜빡 넘어갈 뻔했다. 남지유는 뒷골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답답증을 느꼈다. 어차피 항상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남자였다. 이 지긋지긋한 애인 관계도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던가. 수없이 두드려 봤던 봉창이므로 아무리 설득해 봤자 소용이 없단 건 진작 배웠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옆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눈치껏 같은 곳을 빙빙 돌며 보스의 사랑싸움이 끝나길 기다리던 경호원은 공방이 잦아든 후에야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인사도 않고 곧장 내리려는 남지유를 권성하가 붙잡는다.

“왜요?”

권성하는 단단히 토라진 애인을 다디단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뽀뽀도 안 해 주고 가려고?”

“뭐가 예쁘다고 해 줘요? 놔주세요. 갈 거예요.”

“섭섭하네.”

웬일로 팔을 쉽게 놓아준다. 남지유는 슬금슬금 물러나 차 문에 붙었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권성하를 훑었으나 다시 붙잡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서둘러 차를 나섰다. 캐시미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뛰어다니면 위험한데.”

조금만 쑤셔도 금세 삐걱거리는 부실한 하체로 잘도 뛰어다닌다. 저러다 언젠가 넘어져 크게 다치지 않을까 새삼스러운 걱정이 든다. 애인이 사라지기까지 지켜보던 권성하는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차에서 내려 호텔 엘리베이터까지 뛰어가는 애인의 사진이 권성하의 손에 들어왔다. ‘인기배우 남모 씨,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다’ 따위의 타이틀로 나가려던 사진이었다. 아직 밀회 상대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내지 못한 듯 사진을 찍어 놓고도 보도는 보류되는 중이었다. 권성하는 남지유가 남자를 상대로 대가를 주고받는 것에 프로페셔널하다는 사실을 안다. 호텔 스위트룸에 가명으로 체크인 한 상대가 남자라는 사실 따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애인은 몇 주 전부터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호텔로 은밀히 향하기 시작했고, 오늘 아침에는 그 상대가 누군지도 알아냈다.

“이사님, 애들을 붙여 놓을까요?”

“들키지 않게.”

“알겠습니다.”

이 실장에게서 받은 자료에는 남지유의 밀회 상대가 체크인을 할 때 사용한 이름, 그리고 딱 한 번 밀회에 사용한 별장의 소유주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백이선이 부리는 비서의 이름이었다. 곱씹을수록 기가 차 웃음이 샜다.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머리가 텅텅 빈 것도 이 정도면 귀엽다니까. 안 그래?”

“…남지유 님께는 언제 말씀할 생각이십니까?”

“글쎄.”

권성하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이 실장은 생략된 뒷말을 굳이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 * *

“수고하셨어요!”

“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은 다행히 금방 끝이 났다.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남지유는 시계부터 확인했다. 답답한 메이크업까지 완벽히 지우고 나니 오후 일곱 시를 조금 넘겨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의 뒤로 가방을 든 매니저가 따라붙었다. 오늘 스케줄은 화보가 전부라 매니저로는 도엽이 왔다.

“형, 오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집으로 모셔다드릴까요, 아니면…….”

“알아서 갈 테니까 너도 들어가.”

“아, 혀엉. 저 이번에도 그냥 가면 대표님한테 혼나요.”

“어디서 앙탈이야?”

엘리베이터에 둘만 남게 되자 매니저가 심히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남지유도 매니저와 대표가 이러는 까닭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마 연애를 시작한 것인지 불안해서 그러는 거겠지. 어쩌면 연애 사실을 감춘다는 사실에 섭섭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는 언젠가 연애를 할 거면 말이라도 하라고, 내가 돈 벌자고 너 연애도 못하게 할 사람이냐며 큰소리를 땅땅 쳤었으니 말이다.

“뭘 걱정하는진 알겠는데, 아니야.”

“진짜 아니에요? 하긴 우리 형이 누굴 만나실 만한 성격은 아니지…….”

“죽고 싶냐? 계속 까불어.”

“하지만 확실히 알아 놔야 기사 떴을 때 대비라도 미리 해 놓죠.”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에 멈추었다. 매니저는 차량으로 향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보다 못한 남지유가 직접 차 문을 열어 매니저를 태웠다.

“형, 기다릴 테니까 나중에라도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지겹지도 않냐. 빨리 가.”

안전벨트를 매며 미적거리던 매니저가 결국 혼자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사실 남지유로서도 대표와 매니저를 이렇게까지 따돌리며 섭섭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싫든 좋든 밑바닥부터 오랫동안 함께하며 정이 쌓인 관계였다. 이게 정말 연애이기라도 했으면, 그 상대가 여자이기라도 했다면 진작 귀띔해 주었을 것이다.

혼자 남기가 무섭게 인적 없는 주차장에 남성 두 명이 나타난다. 일전에 약속을 무시하고 매니저 차량을 타 도망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 혼자 남자마자 그를 납치했던 인물들이었다. 그 후로는 솔직히 무서워져서 약속에 순순히 응하는 중이었다.

“약속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오래 못 있어요.”

“그건 저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남지유의 울적한 얼굴 아래로 욕설이 줄지어 쏟아졌다. 그는 연행하듯이 저를 태우는 인도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고급 외제 차량은 부드럽게 미끄러졌고 남지유는 탑에 갇힌 공주 신세가 되어 창밖만 응시했다. 어둑어둑해진 길가에 가로등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늦게 가면 권성하 이 새끼 또 지랄할 텐데…….’

그건 또 어떻게 달래 줘야 하나. 생각만 해도 피로가 쌓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 요즘 이래저래 마음 쓸 일이 많았더니 그게 몽땅 잠으로 오고 있는 듯했다. 권성하는 그새 잠든 그를 만지작거리며 구경을 하는지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간지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성가셔 고개를 젓자 웃음소리가 흘렀다.

……아니, 권성하? 짜증스레 뒤척거리던 남지유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좆됐다. 그가 이불을 박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든 그를 들여다보던 인물이 옆에 앉은 채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잘 잤어요?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차마 깨우지 못하겠더군요.”

뻔뻔스러워 말도 안 나온다. 권성하와의 동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백이선이 언제 깰지 모르는 그를 그대로 뒀다는 건 엿 한번 먹어 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하, 됐습니다. 어차피 말도 안 통하니까. 지금 몇 시예요?”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에게 백이선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슬립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배터리는 넉넉했으니 방전된 것은 아니리라.

“…왜 꺼져 있죠?”

“전화가 계속 오는데 제가 받을 순 없고, 지유 씨 깨실까 봐 잠깐 꺼 놨습니다.”

“…….”

이걸 씨발 말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욕을 퍼부을 기력조차 나지 않았다.

“이봐요. 들키면 피차 곤란한 건 아시죠? 이런 식이면 저 백 전무님 못 만납니다.”

“몸을 섞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차갑네요. 속상합니다, 저.”

“지랄, 진짜…….”

속마음이 거침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른 남지유는 정정하지 않고 핸드폰부터 확인하였다. 전원이 켜진 핸드폰에 알림이 주르륵 단번에 올라왔다. 부재중 전화가 7건, 문자가 3건. 시계는 11시를 겨우 맞추고 있었다. 지금 돌아가면 자정이 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지유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권성하에게 전화를 건다. 외투를 찾아야겠는데 어디에 놓은 것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호텔 룸을 돌아다니던 차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아, 오빠……. 죄송해요. 핸드폰이 꺼진 것도 모르고……. 많이 걱정하셨죠?”

손바닥 뒤집듯 애교 섞인 말투로 바뀌었다. 남지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백이선이 나지막이 웃는다. 혹시나 들렸을까 싶어 송화기를 감싼 남지유가 그를 노려보며 짜증을 부린다. 권성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남지유는 백이선에게 제 외투가 어디 있냐고 입을 벙긋대며 물었다. 백이선이 다가와 남지유의 허리를 감쌌다.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눈빛이 쏘아졌으나, 그는 아주 선선히 웃으며 호텔 드레스 룸으로 이끌었다.

“네에? 아뇨, 촬영은 금방 끝났는데 잠깐 차에서 눈 좀 붙인다는 게……. 정말 죄송해요. 얼른 집에 갈게요.”

조잘조잘 통화를 하는 남지유를 대신하여 백이선이 손수 코트를 입혀 준다. 팔소매를 잡고, 어린애 옷 입히듯 구겨지지 않게 꼼꼼히 손을 움직였다. 왼팔, 오른팔 차례로 입힌 그가 옷깃을 정리해 주며 은근슬쩍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서 권성하의 목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요즘 자꾸 늦네. 혹시 바람났어?

“그런 거 아녜요……. 자꾸 그렇게 의심하시면 지유 너무 속상해요.”

몸만 안 섞을 뿐이지 주기적으로 만나며 말을 섞고, 손을 잡고, 내킬 때는 혀도 섞었다. 남지유는 오롯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다소 뻔뻔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백이선이 핸드폰을 대지 않은 귀에다 입을 맞추며 웃었다. 권성하에게 소리가 새어 들까 봐 제대로 밀어내지도 못하는 남지유를 그가 힘껏 끌어안는다. 마주치는 눈빛에 불안이 서렸다. 짜증을 부리던 배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잡아먹히기 직전의 초식동물처럼 가련했다.

―자다 깨서 정신없을 텐데, 오빠가 데리러 갈까?

“아녜요. 오빠도 방금 피곤하시잖아요. 늦지 않게 들어갈게요. 걱정 마세요.”

―우리 예쁜이 누가 데려갈까 겁나서 그래.

“절 누가 데려가요. 오빠 같은 사람이나…….”

다 큰 성인 남성을 건들면 터질 것 같은 봉선화 취급하는 게 참 우습다. 한숨을 참던 남지유는 문득 허리를 조이는 팔 근육을 느꼈다. 깊숙이 몸을 감싼 백이선이 코끝을 맞대며 웃고 있다. 고개를 돌렸으나, 바로 턱을 붙잡혀 입술을 빼앗겼다. 질척한 입 안으로 혀가 미끄러진다. 권성하와는 송화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소리가 흘러들까 두려워 멀리 떨어뜨리자 카펫 위에 조용히 나뒹굴었다. 백이선은 남지유를 품에 가둔 채 마음껏 입술을 탐했다. 물기 있는 것끼리 부딪치며 흐르는 야릇한 소리가 드레스 룸을 메웠다. 멈칫멈칫 물러나던 몸이 벽에 부딪친다. 백이선은 도망갈 곳 없는 그를 팔에 가두고는 천천히 음미했다. 입술이 잠깐 떨어질 때마다 혀가 미끄러지며 뜨거운 숨이 터졌다. 몇 달 사이 민감해진 몸에 반응이 오고 있었다. 이러다 그날처럼 권성하를 통신으로 참여시킨 쓰리썸을 즐기게 생겼다.

“하아….”

겨우 정신을 차린 남지유가 발칵 백이선을 밀어낸다. 그는 성난 고양이처럼 눈을 흘기고는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통화는 아직 연결 중이었다.

“죄송해요.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의자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다정히 속살거리며 백이선을 노려보는 눈빛이 제법 매섭다. 남지유는 살짝 부은 입술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러 댔다. 싫어하는 남학생과 입술이라도 부딪친 것처럼 앙칼진 짜증이 담뿍 담겨 있다. 백이선은 코트 벨트를 정리해 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네에. 금방 들어갈게요. 네, 집에서 봬요. 오빠.”

전화를 끊은 남지유는 성큼성큼 호텔 현관으로 향했다. 백이선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데려다줄까요?”

“그럼 이 시간에 혼자 보낼 생각이었습니까?”

“권 이사가 데리러 올 수도 있잖아요.”

“내가 오지 말랬어요.”

앞서가던 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얼굴에 억울함이 맺혀 있었다.

“전화할 때 건드는 건 취미예요?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자기 일 아니다 이거죠?”

“쉬. 복도예요. 누가 듣겠습니다.”

남지유가 분한 얼굴로 입술을 깨문다. 당장 터지려는 울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백이선은 순식간에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저 억누른 울분을 건드려 펑펑 울게 만들고 싶은 못된 심보가 올라왔다. 그는 속마음을 숨기며 산뜻 웃고는 남지유를 VIP 전용 엘리베이터로 다정히 에스코트했다.

“계약 끝나면 다신 만나지 마요, 우리.”

“당신이 우리라고 표현하니까…… 참, 설레네요.”

“…….”

황당한 표정이다. 백이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B3층을 누른 그가 남지유에게 나긋하게 말했다.

“나는 지유 씨와 오래 보고 싶어요. 난 권 이사와 달리 당신 소유권 주장할 생각 따위 없습니다. 그냥 당신과 얼굴 맞대면서 식사하고, 데이트하고, 섹스하고…… 더 성공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것참 소박하시네요.”

“아… 비꼬지 마세요. 진심을 몰라주시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마음이 아프단 사람치고 너무나 유쾌한 듯 웃고 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는 남지유를 먼저 내리게 하고는 천천히 뒤를 따라왔다. 차키를 누르자 주차되어 있던 외제 차량이 깜빡였다. 남지유는 조수석 문을 손수 열어 주는 그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는 차에 올랐다.

“오늘은 경호원들이 없네요?”

“지유 씨가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내려 보냈습니다.”

“…….”

“걱정 마세요. 운전은 자신 있으니까.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죠.”

직접 차를 운전한 게 얼마 만일지 의심되는 그가 시동을 걸었다. 남지유는 긴장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차가 도로에 진입했을 때쯤에는 시트에 늘어졌다. 경호 차량이 따라붙고 있는 건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백이선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남자를 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남지유의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그게 오롯이 진심이 되려면 권성하에게 데려다주는 이 순간 시시한 질투를 접을 수 있어야 했다.

‘계약이 끝나면 다신 만나지 말자고…….’

그와 첫 거래를 할 때도 느꼈지만, 남지유는 뜻밖에 순진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사측에서 제안한 계약 기간은 3년이었고 그는 흔쾌히 사인을 했다. 아마 그가 말하는 계약이란 광고 촬영이 전부일 것이다. 언젠가 조건을 확실히 명시하지 않아 화를 당할 게 빤히 보였다. 구태여 그것이 언제라고 특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백이선은 웃음을 참지 않았고 남지유에게 의심 가득한 눈빛을 다시 한번 받아야 했다.

* * *

현관문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울렸다. 야밤에 유독 크게 들리는 소리였다. 남지유는 잠깐 심호흡을 한 뒤, 발소리를 죽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소파에는 권성하가 앉아 있었다. 그를 기다리며 업무를 보고 있었는지 소파 테이블에 노트북과 서류 몇 장이 널려 있다.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알은척도 안 하는 걸 보니 화가 났구나 싶어 심장이 철렁했다.

천연덕스럽게 애교를 부려야 하나, 기가 죽은 채로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중도를 택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가 권성하의 무릎 앞에 앉으며 살그머니 손을 잡는다. 외면하고 있던 시선이 그에게로 떨어졌다. 남지유는 기죽은 얼굴을 지어내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빠…… 저 왔어요.”

“왔어?”

“많이 늦었죠. 죄송해요. 잠깐 눈만 붙이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

남지유는 자신을 보는 그를 향해 깜빡, 눈을 삼박였다. 애교 있는 눈짓에 권성하의 입매가 사르르 풀렸다. 그는 남지유가 속 보이는 애교를 부릴수록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남지유의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제 무릎 위에 앉힌다. 남지유는 다리를 곱게 모으며 양팔로 그를 감쌌다. 다정한 손이 코끝과 입술을 나란히 건드렸다. 말 안 듣는 반려동물을 혼내긴 해야겠는데, 도저히 매를 들진 못하는 모양새였다.

“오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애교로 대충 때우려고 하면 못써.”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거예요. 많이 걱정하셨을 거 알아요. 오빠, 지유가 잘못했어요…….”

“말은 잘하지.”

나긋나긋 말하는 입에 손길이 내려앉는다. 권성하는 입술의 가장 도톰한 부분을 엄지로 문지르며, 말을 하느라 봉긋 벌어졌다가, 다시 풀어지는 모양새를 가만 바라보았다. 유심히 들여다보는 눈매가 깊다. 이 남자가 말없이 바라볼 때면 대개 욕정이 훤했으나 오늘은 의도가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찔리는 게 많은 남지유로서는 공연히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것이다.

남지유는 입술을 조금 더 벌렸다. 내내 입술만 보던 시선과 마주쳤다. 눈을 맞추며 웃고, 혀를 내밀어 엄지를 빨았다. 물기 많은 입술이 오므라들며 쪽 야릇한 소리를 터뜨린다.

“오랜만에 입으로 해 드릴까요?”

“그렇게 미안해?”

“하고 싶으신 것처럼 보여서…… 아니에요?”

“음.”

권성하는 가타부타 말없이 불투명하게 웃더니, 카우치에 애인을 가로눕힌다. 캐시미어 코트가 치맛자락처럼 흩어졌다. 늘씬한 몸 선을 따라 그의 손이 부드럽게 유영했다. 허벅지 안쪽부터 느긋하게 타고 올라와 꽉 조였다 풀어지는 허리선을 흐르는 손길은 마치 물뱀 같았다.

“…읏.”

말려 올라간 니트 아래로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귀국 후 다시 운동을 시작한 몸에는 근육이 날렵하게 짜였다. 그 육감적인 속살에는 권성하가 지난밤 남겨 놓은 잇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긴 흔적을 손끝으로 훑었다. 지나치게 민감한 몸이 긴장을 하며 아랫배를 조이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불시에 만질 때면 마시멜로처럼 무르던 유두가 어느덧 성적 긴장감에 딱딱하게 솟았다. 권성하가 도톰한 끝을 손끝으로 튕기며 웃었다.

“우리 지유 젖 좀 봐. 곧 우유 나오겠어.”

“…무슨 말을, 그렇게 저질스럽게…. 으응, 아. 싫어요….”

“입으로 빨아 주는 건 되고, 몸으로 하는 건 싫어?”

“씻지도 않았다구요…. 그리고 씻어도 싫어요. 어제 많이 했잖아요….”

“그래. 지유 다리 풀릴 정도로 많이 하긴 했지.”

카우치 소파는 충분히 넓었지만 성인 남성 둘이 마음 놓고 뒹굴 만큼은 아니었다. 긴 다리를 모아 접은 채 불만을 조잘거리는 남지유에게로 권성하가 몸을 기울인다. 그는 보송보송한 목덜미에 코를 묻고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남지유가 집에서 사용하는 샴푸 냄새가 낯선 향수 냄새와 함께 콧속으로 흘러들었다. 살결을 부드럽게 쓸던 손이 도톰한 젖가슴을 움켜잡는다. 가슴살이 뭉툭 삐져나오며 젖꼭지가 도드라졌다.

“흐으, 싫어…… 앗.”

권성하는 잠자리에서 썩 배려가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르고 달래든 혹은 겁을 주든, 결국에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으으응…!”

단단하게 솟은 선단이 입술에 빨려든다. 뜨겁고 축축한 입 안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 중 하나가 속절없이 농락당했다. 미끈한 혀에 도톰한 유두가 굴려지며 일어나는 전율은 아찔할 만큼 짜릿했다. 간질간질한 쾌감이 뒷덜미까지 솟구쳤다. 몸을 가만둘 수가 없어 허리를 틀며 신음하고, 도망이 여의치 않자 제 위에 버티고 선 남자의 등을 손톱으로 할퀴며 운다.

“아앗, 하아…! 아, 으응. 싫어요… 아, 오빠.”

쪽쪽 정성껏 입을 맞추는 소리가 흘렀다. 도망을 포기한 육체는 쾌감에 순순히 정복당하며 움찔, 움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반신에서는 벌써 열이 모이고 있었다. 요즘 하루걸러 하루씩 시달리고 있는데도 발기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자신은 젊어서 그렇다 쳐도 저보다 몇 살이나 많은 권성하는 정말 몰래 약이라도 처먹나 싶을 정도였다.

“아…! 아파, 깨물지 마요…….”

아파, 아파…… 하며 울자 권성하에게서 웃음이 샜다. 그는 자신이 한껏 물고 빨고 깨무느라 도톰하게 부어오른 유두를 살짝 꼬집어 비틀었다.

“으응. 싫어요, 아파…….”

“아빠라고 부르는 것 같네. 계속해 봐. 응?”

“……진짜, 아저씨 같아요.”

“너 걸음마 뗄 때 학교 다녔으니 틀린 건 아니지.”

“그럼 오빠라는 호칭이, 하아… 양심 없는 건 알고 계시겠네요?”

“그래서, 아저씨라고 불러 보게?”

그는 한 손으로도 능숙하게 벨트를 풀어 주고는 답답한 속옷을 내려 주었다. 어리고 예쁜 애인은 금세 발기가 되어 있었다. 꺼덕거리며 튀어나온 성기는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상품이라는 게 아까울 정도로 쓸 만했다. 도화색으로 물든 성기를 그가 천천히 문질러 애무한다. 다소 건방지게 말대꾸를 하던 얼굴에 쾌감이 서렸다.

“하아…… 정말, 안 씻었다니까요.”

“괜찮으니까, 산통 깨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내가 안, 괜찮다구요…… 아앗.”

어제도 많이 했으면서. 조그맣게 투덜거리던 소리는 곧 다디단 한숨으로 바뀌었다. 모든 감각이 집중되어 있는 성기에 자극이 쏟아졌다. 울컥 비집고 나온 액체가 요도 구멍에 둥글게 맺힌다. 투명한 물방울은 엄지손가락에 문질러지며 선단을 흠뻑 적셨다. 지문의 결이 느껴질 만큼 진득한 애무였다. 남지유가 허리를 비틀며 길게 자지러졌다. 처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는 달콤한 교성이었다.

“클리 문질러 주면 짜증이 풀린다던데, 우리 지유도 그래?”

“으응, 집에 오자마자 박을 생각이나 하시고, 자꾸, 변태처럼…… 정말……. 으으응, 아앗…!”

순간 허리가 움찔 튀더니, 그대로 절정이었다. 성기를 놓아주자 홀로 까닥까닥 움직이며 가슴팍까지 정액을 쏘아 냈다. 사출된 정액이 야트막한 가슴골을 느릿느릿 타고 내려와 배꼽에 고였다. 권성하에게 길들여지며 한결 민감해진 몸은 사정 후에도 한참이나 여운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아, 아…….”

그가 가쁘게 할딱거리는 사이 바지는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졌고, 속옷은 무릎께에 걸렸다. 조신하게 무릎을 딱 붙인 채로 신음하던 그가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모로 틀어진 기다란 다리 옆으로 권성하가 보였다. 아마 권성하에게는 회음부와 구멍까지 훤히 내보일 것이다. 그게 신경 쓰여 발끝이 꿈틀거렸다. 맨다리에 팬티와 양말만 걸친 그가 체념한 어투로 물었다.

“하실 거예요?”

“싫어?”

“싫다고 해도 하실 거면서…… 묻는 척하지 마세요.”

“안 넣고 비비기만 할게. 응?”

“…….”

가지런히 모은 발을 등받이쿠션에다 올려놓는다.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에서 산란한 빛이 은밀한 부위를 비췄다. 발갛게 부었던 구멍은 어느덧 붓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좁은 구멍에 비해 권성하는 유달리 큰 탓에 넣기만 하여도 찢어질 것처럼 빠듯하게 벌어지곤 했다.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지 꽉 다물린 곳이 움칠 오므라들었다.

“뭐야. 기대하고 있었어? 오빠가 눈치가 없었나?”

“아녜요! 그냥, 그냥 반사적인 거라구요…….”

조폭 주제에 항상 쓰리피스 정장만을 고집하는 놈도 집에서는 편안한 홈웨어를 입고 있다. 허리밴드를 내리는 것만으로 말자지가 튀어나왔다. 꺼덕거리며 선 좆은 열 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완전히 발기한 것이 아니란 게 신기할 만큼 커다란 사이즈였다. 좀 더 발기한다면 배꼽 아래에 딱 붙을 만큼 딴딴히 부풀어 오를 것이다.

남지유가 마른침을 삼킨다. 등받이에 얹혀 있던 다리가 소심하게 오므라들더니 회음부를 가리려 들었다. 양말을 신은 발끝이 구멍을 간신히 가렸다. 귀엽다 못해 깜찍할 정도라 권성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숭은.”

그러나 귀엽게 여기는 것과 욕구 해결은 달랐다. 가지런히 모은 종아리가 어깨에 오르도록 끌어안은 그가 허리를 튕겼다. 구태여 잡지 않아도 단단하게 발기한 좆은 회음부를 쓸고 허벅지 틈새로 미끄러졌다. 정말 놀랐는지 어깨에 오른 다리가 살짝 튀었다.

“흐아앗…….”

흠뻑 젖은 눈동자가 권성하의 하복부를 살펴본다. 그러다 이내 주사 맞기 싫은 어린애처럼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끼는 옷에 정액이 묻을까 봐 상의를 쇄골까지 올려 놓은 손이 오므라들었다. 넣어 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권성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좆 끄트머리로 회음부를 문질렀다. 쿡, 쿡, 구멍을 비껴 나갈 때마다 안타까운 한숨이 터졌다.

“아! 으응, 오빠…… 아, 아아.”

남지유는 양손을 턱 아래에 둔 채 신음했다. 팔이 조여들며 가슴에 얕은 골이 생겼다. 권성하는 멋대로 꺼덕거리던 좆을 잡고는 아래로 시선을 던져 보았다. 열이 올라 발갛게 단 구멍이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가 기가 찬 듯 웃었다.

“지유야, 그냥 넣을까? 응? 보지 쑤셔 줘?”

“흐응, 안, 되는데…… 어제 너무, 많이 해서, 하으…. 쓰려서 죽는 줄 알았다구요….”

“한 번만 할게.”

“맨날 말은 그렇게 하면서 결국… 아, 흐응, 으…… 아!”

오물거리는 구멍을 가볍게 쿡쿡 눌러 대던 좆이 체중을 실으며 억지로 비집고 들어섰다. 좁은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그래 봤자 며칠간 빠짐없이 권성하를 받았던 구멍이었다. 쉽게 열려서는 금세 뿌리까지 집어삼킨다. 싫다는 놈한테 기어코 좆을 쑤셔 박은 권성하가 묵직한 숨을 토해 낸다. 그 아래에 깔린 애인은 아랫배를 긴장시킨 채로 헐떡이고 있다. 배꼽에 정액이 찰랑거리는 꼴이 가관이었다.

“아아… 흑, 으응, 흐….”

“울 만큼 좋아?”

“싫다고 했, 잖아요…… 앗! 흐응, 아, 아아!”

거부에도 아랑곳 않고 좆을 담근 채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이 빠듯하게 찰 만큼 커다란 좆은 그저 앞뒤로 살살 움직이는 것만으로 눈앞이 아찔해지게 만들었다. 권성하의 어깨에 올라앉은 두 다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꾸물거렸다. 남지유가 축축이 젖은 눈으로 권성하를 올려다본다.

“아흐으, 오빠…….”

“왜.”

“살살 좀… 제발요…. 흐으, 찢어질 것, 같아.”

“살살 하고 있잖아. 잘 먹고 있으면서 왜 엄살을 부려.”

“오빠가 너무 커서, 넣는 것도 힘들단 말예요….”

권성하는 고개를 돌려 어깨에 올라앉은 다리에 입을 맞췄다. 동시에 봐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음모가 회음부에 닿을 만큼 깊숙이 처박고, 좆 끄트머리까지 빼내어 다시 쑤셔 박았다. 남지유가 길게 자지러졌다.

“흐아앙! 하앗, 앙……! 하아, 오빠… 오빠아.”

어느덧 발기한 그의 성기는 배꼽 근처에서 달랑거리며 물을 질질 싸고 있다. 니트는 쇄골까지 걷어졌고 바지는 벗겨졌으나. 코트는 여전히 팔을 감싼 상태였다. 권성하는 박을 구멍과 보기 좋은 젖만 까놓고는 좆을 실컷 때려 박았다. 깊이 처박는 족족 신음이 터졌다. 목 놓아 우는 소리는 점점 새하얗게 바래 갔다.

“흐아아… 앗, 아응…! 아앙….”

갈라진 목소리로 이어지는 신음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소리를 많이 내는 편인 그는 기나긴 섹스가 끝난 후에는 항상 목이 잠겨 있었다. 권성하는 그가 잠긴 목소리로 ‘오빠, 오빠’하며 자지러지는 것을 좋아했다.

“흐응……! 하아! 아, 으앗!”

양손을 쇄골에 모은 채로 좆만 받아 내는 그는 마치 동정남처럼 뻣뻣했다. 소극적인 태도의 원인은 아끼는 코트에 정액이라도 묻을까 저어하는 마음일 것이다. 권성하는 마음대로 허리를 내두르며 보기 좋게 펼쳐진 어린 애인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모로 꼰 채 헐떡이는 얼굴, 쭉 뻗은 목선, 팔을 조이며 생긴 가슴골, 배꼽에 고인 정액, 흔드는 대로 달랑거리는 예쁜 좆까지. 어디 하나 어여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으으응, 오빠아, 빨리….”

“빨리 박아 줘?”

“아니, 아니… 흐으, 빨리 싸요…. 죽겠어…… 아, 아앙!”

권성하가 상체를 기울여 남지유의 머리맡에 있는 팔걸이를 붙잡는다.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팔 근육이 짐승처럼 꿈틀거렸다. 체중이 실린 좆이 더 깊숙이 파고 들어와 극점을 짓눌렀다. 반쯤 접힌 다리가 위태롭게 휘청거렸고 남지유는 안을 꽉 조이며 울었다. 스위치가 꺼졌다가 켜진 것처럼 순간 아찔하더니, 가슴까지 미지근한 액체가 늘어지기 시작한다. 고작 삽입이 깊어진 것 하나로 사정을 한 것이다.

“흐아아…. 아, 으응, 응….”

“너무, 조이는데.”

절정은 곧 접합부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러잖아도 꽉 조여 문 속살이 쥐어짜듯 경련했다. 권성하는 어금니를 악다물고는 녹녹한 안쪽으로 짓쳐들었다.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남지유가 펑펑 울며 매달려 왔다. 등에 손톱이 박혔다.

“흐앗! 아! 으으응! 오빠, 오빠아 그만, 싫어…! 아앙!”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백이선에게로 달려갔던 애인이 지금은 그에게 매달리며 자지러진다. 그는 도리질을 하며 우는 애인에게 입을 맞춰 주면서도 좆질을 멈추지 않았다. 몸을 섞어 온 시간이 있으니 느끼는 부분을 찔러 주는 것쯤이야 어렵지도 않다. 애인은 극점을 찔릴 때마다 찔끔찔끔 정액을 토해 내며 신음했다. 등에 박힌 손톱이 자국을 내려는 것처럼 아래로 미끄러진다. 재차 이어진 절정과 함께, 권성하는 애인의 가장 깊숙한 곳에다 정을 터뜨렸다.

“힉……! 하아, 아. 아으응…….”

응석을 부리는 듯한 소리가 권성하의 목덜미에 고였다. 권성하는 어느덧 제게 꼭 매달려 있는 그를 부둥켜안았다. 옆머리에 키스하며, 다정한 애인처럼 뺨을 훑어 주었다. 몰아붙인 탓인지 손에는 옅게 땀이 배어 나왔다.

“고생했어.”

“……저, 씻을 기운도 없어요.”

“오빠가 씻겨 줄게.”

“옷 갈아입을 기운도 없구…….”

“언제는 오빠가 안 입혀 줬어?”

다 잠긴 목소리로 약한 척 칭얼거리던 남지유가 힐끗 시선을 든다. 눈물이 맺힌 발긋한 얼굴은 언제 보아도 배꼽 아래를 설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것도, 아끼는 옷이었는데 오빠 땜에 다 버렸어요.”

“알았어. 조만간 꼬까옷 사러 가자.”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뺨에다 입을 맞춘다. 남지유는 얌전히 매달려 안긴 채로 권성하를 혀끝으로 부려 댔다. 이미 외도를 알고 있는 그가 자신을 떠보기 위해 부은 입술을 만져 보고, 샴푸 냄새를 맡아 보고, 다리 사이까지 확인했던 걸 모르는 남지유는 섹스 후의 포만감을 까탈스러운 응석으로 표출했다. 그토록 순진한 것이 꽤나 귀여웠기에, 권성하는 버릇이 나빠질 걸 알면서도 애인의 응석을 모두 들어주었다.

* * *

외도 생활을 하게 만든 광고 촬영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제주도 해안도로가 배경이라 오랜만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 예정대로라면 진작 촬영이 끝났어야 했지만 CF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새로운 감독을 찾느라 늦어졌다. 새 감독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지퍼를 열고 다니는 헐렁한 모습으로 방심시키더니, 촬영장에서는 차에 오르는 장면만 수십 번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필름 걱정이 될 정도면 말 다했다. 혹시 밉보인 적이 있나 싶었는데 관계자의 말로는 업계에서 유명한 완벽주의자란다.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는 연예계에서는 오히려 흔하다면 흔했다. 어차피 몇 십억이 오고 가는 광고였다. 며칠 고생하고 얻는 이득이라기에는 오히려 지나친 감이 있었다.

남지유는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섰다. 코디들은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며 따로 빠졌다. 어려서 그런지 체력이 엄청났다. 먼저 앞서가던 그에게 주차를 끝마치고 온 매니저가 따라붙었다.

“방으로 바로 올라가실 거예요?”

“마사지 좀 받으려고. 같은 장면만 계속 찍었더니 온몸이 쑤신다.”

“올라가서 제가 해 드릴게요. 형.”

사측에서 마련해 준 숙소는 내부에 워터파크가 있는 거대한 리조트였다. 원한다면 방갈로와 스파도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여행객 사이에 낄 체력이 없었다.

남지유는 매니저와 함께 뒷문으로 향했다. 일반 이용객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VIP용 통로였다. 라운지에서 곧장 엘리베이터를 잡으려는데 누군가 말을 붙여 왔다.

“잠깐, 혹시 남지유 씨?”

단순히 아는 배우라서 붙잡았다고 보기에는 남자에게 호들갑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매니저는 배우를 뒤로 보내며 대신 앞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역시 맞네. 오랜만이야.”

남자는 VIP용 라운지를 이용하는 특권층답게 말단과는 말조차 섞지 않고 재차 남지유에게 말을 걸었다.

“지유야. 아저씨야. 아저씨 몰라?”

남지유가 모자를 고쳐 쓰며 남자를 유심히 본다. 볼에 살이 덕지덕지 붙고 귓불이 큰 남자였다. 언젠가 그가 자신에게 관상을 자랑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기에는 정말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라 놀랍기도 했다. 남지유가 입을 살짝 벌린 채 남자를 본다. 워낙 잘난 마스크는 그 표정마저도 로맨틱하게 포장해 냈다.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고 매니저는 슬쩍 경계를 거두었다.

“형, 아는 분이세요?”

“어…… 뭐, 응.”

“그게 끝이야? 섭섭하네, 지유야.”

친한 척은. 남지유가 곤란하게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관리했다.

“먼저 올라가 봐.”

“괜찮으세요? 형 피곤하시다면서요.”

“아는 분이야. 잠깐 얘기 좀 하다 올라갈게.”

“알았어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세요.”

무언가 걸리는 듯 남자를 살피던 매니저가 잡아 놓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층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인적 없는 라운지에 정적이 고였다. 라운지에는 CCTV 몇 대와 테이블, 소파가 전부였다. 앉아서 얘기를 할 만큼 반가운 상대도 아니었고 이런 곳에서 나눌 만한 얘기를 할 상대도 아니었다. 남지유는 자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느물거리는 남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손목시계로 시선을 내렸다.

“3분 뒤에 올라갈게요.”

“너무 짜게 주는 거 아니야? 우리 인연이 있는데.”

“꽤 옛날 일이지만, 사장님은 잊을 수가 없어서요. 넣고, 싸고. 딱 3분이었죠?”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다고 했잖니.”

“그랬나요?”

남자는 최 사장과 만나던 중에 잠깐 도움을 받았던 상대였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그때 최 사장은 참 편리했었다. 막판에 비열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매달려 만나는 애인 대하듯 지극정성이었고, 다른 놈에게 도움을 받아도 눈치채는 법이 없었다. 지금 그를 간수하는 놈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 아무튼 영화 잘 봤다, 지유야. 반응 좋던데. 화면에 예쁘게 나와서 놀랐다. 포샵 한 건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까 더 예뻐진 게 맞네. 이게 카메라 마사지란 건가?”

“감사합니다.”

“내가, 영화 개봉했을 때 연락을 했었는데…… 답장이 없더라. 지유야. 혹시 아저씨 차단했니?”

“다 아시면서 왜 물으세요.”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대화하는 내내 시계만 보는 싸가지 없는 놈이기는 해도 그럴 만한 외모를 지녔다. 홀로 떨어뜨려 놓아도 어디서든 빛이 날 만한 외모는 단 한 번도 잊힌 적 없을 정도다. 겹겹이 싸고 있는 옷 아래 속살도 환상적이었다. 입에 단물을 문 것처럼 애교 있게 굴어 놓고는 다음 날 곧장 연락이 끊겼기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겉과 속이 심히 다르다. 눈앞의 상대를 샅샅이 관음하던 남자가 은근한 어조로 묻는다.

“그런데 제주도엔 웬일이야. 새 아빠랑 놀러 왔어? 아저씨는 오늘 사업 때문에 왔는데 혼자 자려니 적적하다.”

“촬영이요.”

“지금 올라가는 거면 끝난 거겠네. 아저씨 방으로 올라올래? 오랜만에 용돈 좀 챙겨 주고 싶어서 그래.”

“생각 없습니다.”

웬만큼 유명해진 뒤에도 간단한 용돈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연예인들은 많았다. 광고 하나, 작품 하나에 억 단위로 벌어들이면서도 잠자리 한 번에 억 단위 용돈을 받는 재미를 끊지 못했다. 아름답고 재능 있는 그들에게 유혹은 일상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남지유가 뜻밖인 듯 바라보았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용돈을 안겨 주고 끼고 놀았으니 거절이 의외일 만도 했다.

남지유는 손목시계를 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딱 3분이 되는 시점이었다.

“시간 다됐네요. 용건 끝나셨으면 먼저 가 볼게요.”

그대로 돌아서려는 그를 남자가 잡아챘다. 남지유는 제멋대로 팔목을 붙잡은 손에 불쾌감을 느꼈으나 그보다 누군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불안이 올라왔다. 손목을 비틀어 보아도 얼마나 억세게 잡고 있는 건지 빠지지 않았다. 고작 3분짜리 정력이 내기에는 과분한 힘이었다. 허튼소리라도 지껄일까 봐 매니저를 먼저 보냈건만, 괜히 보냈다 싶었다.

“씨팔 지유야, 아저씨한테만 도도하게 구는 거니? 아저씨가 용돈 부족하게 챙겨 줄 것 같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손이나 놔줘요. 누가 보면 사장님도 곤란하시잖아요.”

“비싸게 굴지 마. 지유 너 요즘 이 바닥에 소문 자자해. 새 아빠 잘 물었다면서.”

“…….”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스폰서 소문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지유는 진심으로 놀라 잠깐 말을 잃었다. 어쩌면 패닉이 온 것일 수도 있다. 최 사장과 만날 때도 소문 없이 깔끔하게 만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서 뭘 들으신 건지 모르겠는데…… 아닙니다. 오해하신 거예요. 저 손 털었어요.”

“손을 털어? 말도 안 되는 소릴. 쉽게 큰돈 만지기 시작하면 그 맛 절대 못 잊는다. 너도 그래서 새 아빠 잡은 거잖아. 안 그러니?”

바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백이선의 밀회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남자의 말은 남지유의 속내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당초 최 사장과 관계를 청산하려던 까닭도 어디까지나 ‘그 정도 도움은 필요 없어진 것’이 이유였다. 최 사장이 더 파워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비키세요. 여기 호텔 라운지예요. 누가 올 수도 있다구요.”

“그럼 아저씨랑 방으로 올라갈까?”

남지유는 남자의 기세에 주춤주춤 물러나며 손목을 비틀었다. 잡힌 손에 빨갛게 피가 몰리는 게 보일 정도로 틀어잡은 힘이 강했다. 폭행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갖가지 추문이 붙을 걸 생각하니 섣불리 주먹을 쓸 수도 없었다. 연예인 신분만 아니었다면 진작 사타구니를 걷어차 불알을 터뜨려 버렸을 텐데.

속으로 험악한 상상을 하는 그를 모르는 남자는 강제로 희롱당하는 듯 울상을 짓는 그에게 발정이 난 상태였다. 오늘 밤 도도한 남배우의 가랑이를 벌리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인스턴트 정력을 불태웠다.

“일단, 놓으세요. 놓고 말하세요.”

“나쁘게 한다는 것도 아니잖아, 아저씨가. 용돈이 맘에 안 찬다면 이해를 하겠어. 응? 근데, 뻔히 아는데 거짓말을 하면 아저씨 자존심이 상하잖아.”

“제발요. 누가 보면 피차…… 윽.”

CCTV가 닿지 않는 구석에 이르렀을 때 남자가 강제로 입을 맞췄다.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혀로 입술을 뭉개는 움직임이 집요하리만치 거셌다. 틈을 파고들어 속살과 닿았을 때는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다. 남지유는 저도 모르게 내지르려던 다리를 간신히 붙잡고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남자가 따라붙었다. 축축한 침이 남배우의 잘생긴 얼굴 곳곳에 오욕처럼 들러붙었다. 하반신에는 뾰족하게 솟은 그것도 닿았다. 남지유가 진저리쳤다.

‘씨발, 씨발, 씨발! 그냥 팰까? 이 새끼도 체면이 있으면 나한테 맞은 거 떠들고 다니진…….’

눈을 질끈 감고 참을 인을 새기던 찰나, 남자가 급작스레 떨어져 나간다. 감은 눈을 떠 보니 남성은 덩치 큰 남성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어째 낯이 익은 면면들이었다. 남지유는 피가 돌며 뜨거워지는 손목을 부여잡은 채로 황망히 시선을 굴렸다. 바로 옆에 백이선이 서 있었다. 백이선은 남자를 오물 보듯이 훑어보고는 남지유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좋은 냄새가 나는 손수건으로 더럽혀진 입술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촬영이 아직 한참 남은 귀하신 몸인데.”

“…….”

왜 여기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그가 잡아 준 숙소였다. 불시에 찾아올 것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남자를 처리해 준 백이선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남지유는 제 얼굴을 잡아 돌려 가며 확인하는 손길에 순순히 응했다.

“팔 부러지겠네! 나 다치면 책임질 거요?!”

남자는 팔을 허우적대며 얼굴을 붉혔지만, 정작 경호원들이 그를 놓아준 것은 백이선의 허락이 떨어진 뒤였다. 고소할 거라며 길길이 날뛰던 남자는 백이선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라울 만큼 얌전해졌다. 먹이사슬의 연계는 구태여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해 보였다.

“아……. 하하, 하. 남지유 씨 새 아빠가 전무님이셨습니까? 어쩐지, 그러니 제 권유가 성에 찰 리가 없었겠죠. 하하하. 전무님께서 봐주시는데 부족할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남지유 씨는 저희와 계약한 전속 모델입니다.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덕분에 지유 씨에게 흠집이 났네요.”

“그, 제가 홧김에, 실수를……. 전무님이 봐주시는 아이인 줄 알았다면…….”

“이 건에 대해서는 추후 사람을 보내 얘기하도록 하죠.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백이선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남지유를 이끌었다. 폭력과 추문을 불사할 각오를 해야 했던 그와는 달리 말 몇 마디로 상황이 종결되었다. 백이선에게 이끌려 어리바리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르던 그가 라운지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이제 보니 라운지 입구까지 경호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진작 알고 있던 사람처럼 치밀한 정리였다.

백이선에게 안겨 있다시피 기대 있던 남지유가 문득 CCTV를 떠올리고는 몸을 물린다. 작년에 새로 지어진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최상층까지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무한테나 몸을 열어 주니 주제도 모르는 놈이 날뛰는 거 아닙니까.”

“작정하고 달려드는 미친놈이 문제지, 내가 뭘 했다구요.”

남지유는 진심으로 발끈했다가, 화가 가라앉으며 서서히 울적해졌다. 백이선의 말대로 지난 세월에 심히 회의감이 밀려든 탓이었다. 백이선이 그의 뺨을 감쌌다. 억지로 눈을 맞추려는 손길에 남지유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지가 길게 내리깐 속눈썹을 훑었다.

“내가 실언했습니다. 울지 마요.”

“안 웁니다.”

“험한 일 당할 뻔한 사람에게 내가 말이 심했어요. 저런 놈한테 당하는 지유 씨를 보니까, 화가 나서.”

“…….”

남지유가 한숨을 내쉬며 백이선의 손을 걷어 낸다.

“CCTV 있는 데서 이러지 마세요.”

“그럼 라운지에서 찍힌 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생각지 못한 걸 지적받은 듯 남지유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란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내가 처리해 드릴까요?”

“…무상으로요?”

“이런, 알 만한 분이 이럴 때만 순진한 척 구네요.”

“…….”

초조함이 가라앉은 자리에 불안이 떠올랐다. 백이선이 무엇을 대가로 거래를 걸어 올지 몹시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남지유는 제 얼굴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시선을 피하며 백이선의 가슴에 올려놓은 손을 꾸물거렸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의 가슴을 간질일 때마다 백이선은 이상야릇한 성취욕을 느꼈다. 그를 한참이나 애태운 남지유가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뗐다.

“영상만 제대로 회수해 주신다면…….”

들어 올린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젖은 눈이 그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 * *

“남지유 씨! 조금만 더 야하고 대담하게, 아까 말한 것처럼! 알죠?”

사바나를 우아하게 걷는 표범처럼, 대지를 정복한 외로운 군주처럼…… 별의별 미사여구가 흩어졌다. 감독은 콘티 장면, 장면마다 아주 세심하게 코치를 해 주었다. 보다 추상적이거나 노골적인 예시를 드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감독은 그래도 알아들을 순 있는 예시를 들었다. 모델에 따라 자존심을 상할 수도 있겠으나 엊그제부터 새로운 고민에 시달리게 된 남지유로서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누가 다잡고 이끌어 주니 억지로라도 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낮의 해안도로에서 시작된 촬영은 노을이 지고 난 후에야 끝이 났다. 남지유는 매니저의 차에 오르자마자 녹아내린 젤리처럼 허물어졌다.

“저 감독 좀 너무하죠? 우리 형 짬이 얼만데 다 하나하나…….”

“도엽아, 나 좀 얼른 호텔에 데려다주라. 피곤해 죽겠다.”

“넵.”

매니저는 그에게 따뜻한 차와 담요, 수면안대를 건네주었다. 꼼꼼한 세팅을 마치고 난 뒤 매니저가 운전대를 잡았다. 로드매니저는 정말 밥 먹고 하는 일 중 하나가 운전인지라 낯선 도로에서도 매끄럽게 차를 운전했다. 수면안대를 쓰고, 담요를 덮고, 매니저가 준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채 선잠을 자던 남지유는 불쑥 울리는 진동에 번쩍 눈을 떴다. 하루 종일 기다린 연락이었다.

수면안대를 머리띠처럼 쓴 채 문자를 확인하는 남지유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매니저는 백미러로 그를 흘깃흘깃 훔쳐보았다. 웬 이상한 남자와 단둘이 라운지에 남았던 날부터 묘하게 넋이 나가 있던 배우가 이틀 만에 웃음을 지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아, 뭐…….”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으나 떠오른 웃음은 그대로였다. 매니저는 고민을 덜어 가뿐해진 배우를 따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차를 운전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남지유가 대수롭지 않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처럼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따로 볼일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서 쉬어. 주변에서 놀다 와도 되고.”

“놀 사람도 없는데 뭐 하고 놀아요. 그냥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전화해 주세요, 형.”

“알았어.”

주차 전에 먼저 내린 남지유는 모자를 눌러쓰며 엘리베이터로 뛰었다. 전용 층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와 있었다. 백이선에게 받은 출입카드를 찍으니 17F 버튼에만 불이 들어왔다. 신형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며칠 내내 명치를 꾹 누르고 있던 체증이 백이선의 연락 한 통에 싹 가셨다. 가진 게 권력과 돈뿐인 남자니 어렵지 않게 영상을 처리해 주리라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남지유는 디스플레이만 바라보다가 17층에 도달해서야 정면을 보았다. 문 앞에는 직원 한 명이 대기 중이었다. 그는 남지유를 스위트룸 안쪽으로 인도해 주었다. 새하얀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넓은 거실에는 백이선이 앉아 있었다. 직원은 발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채로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남지유는 그가 나가자마자 잰걸음으로 다가가 물었다.

“회수하셨어요?”

“급한 모양이네요. 예의 바른 지유 씨가 인사도 안 하는 걸 보면.”

남지유가 눌러쓴 모자를 벗으며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고분고분한 태도에는 백이선의 말을 잘 들으려는 의도보다는 급히 확인받고 싶은 조급함이 숨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선 씨.”

“하하. 말 잘 들으니 보기 좋네요. 풋내 나는 강아지 같아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어제오늘 이것 때문에 촬영이 안 됐어요.”

“광고주 앞에서 태만했다는 말을 잘도 하시네요.”

백이선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USB를 하나 꺼내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남지유가 집어 들었다. 노려본다고 파일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속을 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

“다행히 자세히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겠어요?”

“저한테 그냥 주시는 걸 보니 이건 사본인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원본은 뭘 해야 주실 겁니까? 거래 조건부터 말씀해 주세요.”

사본이 맞았고, 원본을 주는 대가로 거래 조건을 걸 생각도 맞았다. 그럼에도 백이선은 야릇한 아쉬움을 느꼈다. 스스로 생각해도 뻔뻔한 감정이었다.

“아무래도 지유 씨는 날 못 믿는 모양이에요. 내가 이걸 터뜨리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삼십억 들여서 겨우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었는데요.”

“동성 스폰서 스캔들이 터지면 위자료로 그 몇 배를 토해 내야 되는데, 알 만한 분이 왜 시치미를 떼세요?”

“혹시나 지유 씨가 회수한 데에만 안심했다면 꽤 기뻤을 것 같거든요. 순진한 분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안심해야 할지, 서운해해야 할지.”

“그러기에는 그간 절 너무 많이 엿 먹이셨어요.”

백이선은 빙긋 웃었다. 사본 USB를 구명줄처럼 붙들고 있는 손을 살그머니 감아쥔 그가 부드러운 손끝을 문지른다. 뿌리부터 손톱까지 길게 뻗은 마디를 문지르며 손가락을 얽는 것뿐인데 성적인 의도는 차고도 넘쳤다. 남지유는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당장 옷을 벗겨 속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날것의 욕정이 그를 향해 있었다. 이토록 열렬한 욕정을 쏟아붓는 남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얼굴에 심장이 덜컹거린다. 광고 거래 건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래임에도 선뜻 예스라 답하기 망설여졌다. 만약 영상을 회수한 상대가 권성하였다면 원본을 받아 내려 애를 썼었을까, 희미한 의문이 떠올랐다가 잡념과 함께 가라앉았다. 어차피 며칠 더 제주도에 체류할 예정이었다. 권성하 역시 며칠은 더 바쁠 예정이라 하였다. 이 섬에서 권성하를 만날 일은 없다.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이 확실한데 왜 이리 속이 울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남지유는 동정을 처음 바치는 풋내기처럼 뜸들이다가, 결국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내일은…… 촬영 없어요.”

* * *

요구대로, 다리를 벌리며 엉덩이를 뒤로 빼었다. 가랑이에 간지러운 숨결이 스친다. 백이선에게 고환과 구멍까지 낱낱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가슴께부터 불이 옮겨 붙는 것 같았다. 수치스러워 눈가가 뜨거워졌다.

“당신 애기보지는 여전히 예쁘네요. 한 번도 뭘 넣어 본 적 없는 것처럼 깨끗해요. 털도 안 난 중학생 희롱하는 기분입니다.”

백이선은 색이 옅은 가랑이를 입술로 희롱하였다. 탱글탱글한 고환을 쪽, 빨아들였다가 서서히 놓아주면 잘 조이는 구멍이 오물거렸다. 그의 좆을 빨아먹던 입이 멈칫하기도 했다. 그가 애기보지를 가지고 노는 동안 남지유는 좆을 정성껏 물고 빨아야 했다. 좆은 펠라티오를 시도하는 게 두려울 만큼 커다랬고 수치심은 찌르는 족족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하아아……. 흑, 흐으.”

요령껏 벌려 애무하던 입술에 눈물이 스며들었다. 일전에 백이선을 놓고 ‘정상위만 고집할 것 같은 샌님’이라 칭한 적이 있는데 그 평가를 모조리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식스나인 체위는 일전에 딱 한 번, 권성하와 체험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 남지유는 자신이 퍽 순진했었다는 걸 실감했다. 이미 떡을 칠 대로 쳤는데도 뒤를 훤히 보여 준다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만큼 수치스러웠다. 그때 권성하는 드물게도 응석을 받아 주었다. 도저히 못 하겠다는 그를 끌어안으며 ‘애기한테 과한 걸 시켰네.’하고 눈물을 거둬 갔었다. 진짜 동정처럼 굴었던 것이 권성하의 질 나쁜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었던 덕일지도 모르겠다.

“아! 흐으, 앗! 전무님, 그러면, 저, 못 하는…… 으응!”

남지유가 좆을 뱉어 내며 운다. 쪽, 쪼옥. 뒤를 정성껏 빨아 주는 민망한 소리가 침실을 메웠다. 감정적 교류를 하고, 섹스를 하는. 정석적인 관계를 거친 적 없는 남지유는 누군가 성기를 애무해 주는 것조차 낯설어했다. 하물며 제대로 들여다보게끔 도운 적도 없는 뒤였다. 수치심과 쾌감이 맞물려 등줄기가 바르르 떨렸다.

백이선은 잠깐 입을 떼고 예쁜 색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뒤를 감상했다. 축축하게 젖은 구멍은 가만 놔두어도 오물오물 움직이고 있었다.

“빨아 주니까 금방 복숭아처럼 익어서는……. 따로 관리라도 합니까? 누군 여기에 미백크림을 바르기도 한다던데요.”

“거기를 누가, 그렇게… 으앗! 아으응, 전무님 저 너무, 너무…….”

좋아…… 남지유는 백이선의 좆을 잡은 채로 솔직하게 흐느꼈다. 진득하고 노골적인 애무에 다리 힘이 풀리는 걸 참는 것도 버거웠다. 다리가 풀려 백이선의 얼굴에다 엉덩이를 문지르게 되는 불상사만은 막고 싶었다.

겨우 정신을 다잡은 그가 잡은 좆을 다시 삼킨다. 선단에서 나온 물이 입 안을 짭짤하게 적셨다. 그는 고환을 주물러 가며 열심히 고갯짓을 했다. 하나 첫 경험과 다를 바 없는 체위에 먼저 무너지는 것은 남지유였다. 난생처음 당해 보는 구강성교도 그에 한몫했다. 그가 입 안 한가득 좆을 문 채로 자지러졌다.

“흐으응……! 으응, 흑! 흐으, 흐…….”

재벌가 자제의 고귀한 혓바닥이 남배우의 뒤를 샅샅이 훑는다. 주름 하나하나 섬세하게 훑는 움직임은 그러잖아도 민감한 몸을 훌륭히 달구어 냈다. 움찔, 움찔. 좁은 구멍이 흥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건들지도 않은 성기는 알아서 꺼덕이며 백이선의 가슴에다 정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아. 전무님, 아아아…. 그거, 으응, 미치겠…….”

엉덩이는 빳빳하게 세워지고 상체는 점차 무너져 내렸다. 남지유는 결국 펠라티오를 포기한 채로 애무에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뜨겁고, 축축하며, 부드러운 혀가 뒤를 핥아 주는 것이 이토록 짜릿할 줄은 몰랐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백이선의 음모에 고였다. 뒤를 핥아 주는 것만으로 한껏 단 그는 뾰족하게 세운 혀가 안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끼자마자 절정으로 떨어졌다.

“흐아아…!”

지독한 오르가슴에 시달리는 몸이 백이선의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백이선은 애무를 받는 내내 질질 싸던 남지유가 제 가슴에 사정을 한 것을 느끼고는 낮게 웃었다.

“보지 좀 빨아 줬다고 입 쓰는 솜씨가 형편없어졌네요.”

하아, 하아. 남지유는 정신을 가다듬는 것만도 벅차 보였다. 백이선이 그의 허벅지를 찰싹 내리쳤다.

“으응!”

“일어나서, 돌아앉아요. 나 보고.”

겨우겨우 허리를 세운 남지유가 백이선의 배를 타고 앉는다. 사정을 하며 풀이 죽었던 성기는 벌써 발기하는 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력이 남다른 말자지 둘을 상대하는 그도 보통 체력은 아니었다.

“직접 넣어 보세요. 내가 잘 풀어 줬으니까 쉽게 들어갈 겁니다.”

“아아…… 전무님.”

“안 어울리게 빼지 말고, 기분 나게 애교 좀 부려 봐요.”

남지유의 회음부에 단단하게 일어선 좆이 뭉툭 닿았다. 오히려 애무를 받느라 정신이 나가 사정을 시켜 주지 못했더니 닿는 것도 뜨거웠다. 그는 허리를 살짝 띄운 채로 백이선의 좆을 붙잡았다. 함박 입에 넣고 빨았던 축축한 선단이 구멍에 닿았다.

“저한테 그렇게, 서방님 소리가 듣고 싶으세요? …흐읏, 진짜 장가들 생각도 없, 으면서…….”

“지유 씨가 사모님 소리 듣고 싶어 할 줄은 몰랐네요.”

“서방님 같은, 성격 더러운 남자는 줘도, 안 가져, 흐윽! 으응, 으으응…!”

길고 굵은, 단단하게 발기한 좆이 구멍을 비집고 들어섰다. 남지유는 한 손으로는 좆을 잡고 한 손으로는 백이선에게 의지하며 허리를 내려앉혔다. 빠듯하게 벌어진 안으로 커다란 것이 쑥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아아! 으응, 흑, 아으응….”

“윽…. 권 이사 물건이 형편없습니까? 매일같이 품었으면 벌어졌을 법도 한데, 하……. 숫처녀 가랑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조임이….”

권성하의 물건이나 백이선의 물건이나 크기는 비슷했다. 휜 방향이나 귀두의 생김새, 각도 따위가 다를 뿐이다. 남지유는 백이선의 좆을 뿌리까지 삼킨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권성하와는 다른 방향으로 안을 가득 메운 느낌이 아랫배를 바싹 긴장시켰다. 수절하고 권성하하고만 관계를 가져온 게 얼마나 되었다고 이리 낯선지 모르겠다.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백이선이 허리를 굴렸다. 남지유가 고개를 꺾으며 울었다.

“응, 흐앗… 앙. 아아…!”

“허리 좀 제대로, 써 봐요. 당신 말 잘 타던데.”

“하아아…! 으응, 변태… 흑, 아으응, 응…!”

오랜만에 다른 좆을 타 보는 남지유는 숙맥처럼 헤매다가, 곧 구멍 하나로 남자들 지갑을 열게 만들었던 경력을 훌륭히 발휘했다.

“흐으, 응….”

양팔로 뒤에 체중을 실은 채, 아래를 조이고 풀어 가며 요령껏 흔들어 댄다. 발가벗은 허리가 살랑살랑 물결치는 모습은 백이선의 말대로 승마를 하는 자세와 비슷했다. 좆이 기다랗고 굵은 덕에 허리를 치다가 빠질 걱정도 없었다. 때문에 움직임에도 거침이 없었다. 백이선은 허리를 흔들 때마다 까닥까닥 흔들리는 성기를 보고는 웃었다.

“나중에 한 번, 당신 발가벗겨 놓고… 말에 태워 보고 싶네요. 아주… 관능적일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래요, 덧붙이는 백이선은 말 그대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유연하게 말 타는 흉내를 내는 아랫배 안쪽에서 좆이 요동치듯이 움직였다. 뭉툭한 귀두가 앞으로 내밀었다가, 뒤로 빠질 때면 민감한 부근을 사정없이 짓누른다. 남지유는 좁고 깊은 아래를 오물거리며 백이선을 사정으로 유도하기 위해 애를 썼다. 좆이 커, 자신의 절정까지 유도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릴 것 같은 성기를 붙잡으며 그가 우는 소리를 냈다.

“으응, 아… 어떡해. 서방님 지유, 또, 또 갈 것 같, 은데… 흐아아, 앙, 아아…!”

“내가 접대를 받는 건지… 후우, 지유 씨를 접대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 너무, 너무 커…… 아아! 앗, 아앙! 서방님 저어, 지유, 지유 좀, 어떻게… 으응!”

백이선의 위에 올라앉은 몸이 쾌감으로 바르르 떨린다. 백이선은 허리를 달달 떠는 그를 위해 직접 움직여 좆을 깊숙이 처박아 주었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잇따라 터졌다. 남지유는 목을 길게 젖히며 자지러졌다. 엉덩이를 움켜쥔 팔에 내려앉은 손은 무너지려는 상체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자른 손톱이 백이선의 팔뚝에 박혔다. 절정이 코앞인 것은 백이선 역시 마찬가지다. 안으로 치닫는 몸짓에도 스퍼트가 올랐다. 뭉툭한 귀두가 녹진녹진한 안쪽을 마구 두들겼다.

“으으응, 흐아… 아, 아아!”

문득 안이 강하게 조여든다. 백이선은 남지유의 절정을 느끼며 깊은 곳에다가 정을 터뜨렸다. 사정은 안을 가득 채우려는 것처럼 길고도 길었다.

“하아, 하아아……. 으응.”

남지유는 눈을 지르감은 채로 절정이 가라앉으며 밀려드는 여운을 느꼈다. 배가 얼얼한데, 절정 때문인 것인지 좆으로 흠씬 얻어맞은 탓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무너지려는 상체를 백이선의 팔뚝을 그러쥔 채 간신히 버텼다. 감은 눈두덩이 파르르 떨린다.

―쾅!

그러나 절정의 순간, 침실 문이 발칵 열리며 훤칠한 남자가 들어섰다. 남지유는 그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소스라치게 놀라 접합부가 잔뜩 조여들었다. 그는 구둣발 소리를 날카롭게 울리며 남지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동안 바빠서 연락도 어려울 것 같다던 남자였다. 지금 제주도에 있어서는 안 될, 그런데 왜.

“오빠가 왜, 왜…….”

“지유 씨, 집중해야죠. 나 아직 안 끝났어요.”

“앗! 하으응, …읏!”

백이선은 움켜쥔 엉덩이를 벌리며 허리를 한 번 털어 넣었다. 동시에 더 깊은 안쪽으로 무언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지유가 애인의 얼굴을 마주한 채, 외간남자가 주는 쾌감에 허물어진다. 기나긴 오르가슴으로 허덕이는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발갛게 부은 구멍에는 틈이 생기면서 거품이 비집고 나왔다. 발가벗은 몸이 바르르 떨렸다.

“아아……!”

권성하는 외간남자와 붙어먹던 애인을 떼어 냈다. 발정 난 고양이 다루듯 뒷덜미를 잡아 떼어 내는 손길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삽입되어 있던 좆이 빠지며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침대에 나신으로 주저앉은 남지유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안 내는 것도 아닌 권성하를 올려다본다. 쓰리피스 정장에 코트까지 걸치고,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그는 영화에서 나오는 인텔리 깡패 같았다. 일단 살아야겠단 생각에 다듬지 못한 변명부터 흘러나왔다.

“오, 오빠…… 오해예요. 지유는, 그러니까, 영상 때문에……. 그게, 전무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지유야.”

“네, 네에…….”

남지유는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순한 얼굴로 권성하를 올려다보았다. 흠뻑 젖은 가랑이에 겁먹은 성기가 쪼그라져 있다. 백이선은 가련하리만치 기가 죽은 그를 보며 수건으로 좆을 닦아 냈다. 잘생긴 얼굴은 겁을 먹은 표정도 일품인지라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오빠가 너 백 전무 만나러 다니는 거 모를 줄 알았어?”

순간 남지유는 말문이 막혔다. 어쩔 줄 모르고 젖은 눈을 굴리던 그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권성하를 붙잡았다. 몰디브에서 데려온 그날부터 자신이 무얼 해도 귀엽게 봐주었던 남자가 오랜만에 무서워졌다. 지어내려 하지 않아도 정말 겁이 나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죄송해요, 지유가 정말, 오빠를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섹스는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믿어 주세요, 오빠. 그동안 지유한테 남자라고는 오빠밖에 없었어요. 네? 믿어 주세요…….”

권성하는 자신의 바지춤을 붙잡으며 우는 애인을 바라볼 뿐 대답이 없었다. 초조해진 남지유가 더듬거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섹스는요, 그러니까 제가, 치한을 만났는데, 그게 CCTV에 찍혀서요, 혹시나 구설수에 오를까 봐, 그래서요, 근데 그걸 전무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하셔서, 지유가, 지유가……. 두서없는 설명이었으나 필사적이었다. 남지유는 무서운 애인을 올려다보다가, 더욱 무서워져서 그의 바지춤에다 젖은 뺨을 비볐다. 정장바지에 눈물자국이 이어졌다. 지켜보던 백이선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남지유 씨가 이렇게 비는데 봐주시죠. 지유 씨라고 하필 호텔 라운지에서 옛 애인을 만날 줄 알았겠습니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매달린 남지유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권성하는 고개를 들지 않는 애인의 턱을 직접 잡아 세웠다. 흠뻑 젖은 얼굴이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인의 눈물에는 언제나 마음이 동하는지라 움켜쥔 손에서 힘이 풀렸다. 가죽장갑을 낀 손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거두어 주었다. 남지유는 힐끗 시선을 들어 눈치를 보았다가, 눈이 마주치자 딸꾹질을 터뜨렸다.

“예, 예전에요……. 오빠 만나기 한참 전에요, 그때 잠깐 도와주셨던 분인데… 다시, 시작하자고 하셔서, 흐끅. 지유는 싫다고 했는데, 그분이 막, 억지로……. 그게 하필 CCTV에 찍혀서…… 흐윽, 흑! 오빠 잘못했어요…….”

“또 영상을 찍혔어?”

“죄, 죄송해요. 오빠한테 제일, 먼저 의논을 드렸어야 했는데… 걱정하실, 것, 같고…… 실망하실 것, 같아서, 흐윽. 무, 무서워서…….”

권성하에게서 한숨이 새었다. 남지유는 겁에 질려 양손을 꼭 붙잡은 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영상은, 씨발 지유야.”

“…….”

“오빠도 그럼 지유 스캔들 자료 가지고 있는데, 응? 평생 출장 뛰라면 뛸 거야? 부르면 부르는 대로 와서 보지 벌릴 거냐고.”

떨어뜨린 고개는 말이 없다. 가죽장갑을 낀 손이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젖혔다. 서럽게 우는 얼굴이 드러났다. 권성하는 단순히, 애인이 다른 놈과 놀아난 것에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남지유는 더욱 두려워졌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자신이 배우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면서, 스캔들 덮자고 한 짓도 이해해 주지 않는 태도에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네가 그래서는 안 되지. 이상한 권리의식마저 고개를 내밀었다.

“좆 달린 놈들 무서운 줄 모르고. 너 한번 어떻게 해 보려는 새끼들이 설설 기는 게 재밌지, 지유야? 네가 다 턱 끝으로 부릴 수 있을 것 같지? 응?”

“…….”

권성하는 남지유조차 모르던 속내를 정확히 꿰뚫었다. 손 한번 잡아 보고 싶어서, 정확히는 고추 한번 넣어 보고 싶어서 간이라도 빼 줄 듯 설설 기는 놈들을 우습게 보고 있긴 했었다. 그리고 그걸 적당히 이용해서 단물을 빼먹어 왔다. 그 결과는 권성하가 말하는 대로였다. 영상을 찍혀 협박당하고, 강제로 추행을 당하고, 지금은 그걸 해결 보겠다고 또다시 남자에게 손을 벌리는 중이었다. 한 번 물꼬를 튼 연계는 웬만한 둑이 아니고서야 막아지지 않을 것이다. 남지유는 기어이 매를 든 권성하를 망연히 올려다보았다. 뭘 해도 늘 어여쁘다며 아껴 주던 남자는 이번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을 심산인 것 같았다. 발칵 겁이 났다.

겁을 집어먹고 달달 떠는 남지유를 권성하는 가만 내려다보았다. 젖은 뺨을 손등이 툭툭 건드린다. 가죽장갑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다른 새끼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도도한 우리 지유가 백 전무만 받아 주는 이유가 뭘까…… 응? 돈이 많아서 그런 거야, 꽂아 주는 백이 든든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백 전무 좆질이 실해서 무서운 것도 모르고 따라다니나? 으응? 그래?”

“…아, 아니….”

“지유야. 오빠 안 그래도 많이 참는 중이야.”

더듬거리면서도 부정하려던 남지유가 뚝 입을 다문다. 권성하는 항변을 들어 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싸늘한 얼굴이었다. 그는 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방을 슥 둘러보더니 입매를 비틀었다.

“봐줄 테니까 해봐. 우리 지유 출장 뛰는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오빠도 궁금하네.”

백이선이 제주도로 촬영을 떠난 애인을 따라나섰을 때부터 짐작했다. 애당초 손만 잡는 플라토닉 관계로는 만족을 못 할 음흉한 놈이었다. 그곳에서 공사를 치리라 짐작했던 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백이선이 부르는 대로 칠렐레 팔렐레 따라다녔을 애인은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혔다. 어여쁜 공주 취급을 받아 온 남지유는 내심 남자들을 제 구두나 닦아 줄 시종 취급했다. 한마디로 좆 달린 놈들 무서운 줄 몰랐다. 그러니 속내 시커먼 백이선에게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발끝으로 다루려 드는 것이다. 하긴, 웃고 울고 아양을 떨 때마다 발정이 난 놈들이 알아서 갖다 바치니 우습게 여기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흐으…….”

권성하는 한쪽 구둣발을 침대 위에 올린 채, 고개를 내렸다. 벨트와 지퍼만을 풀어 정성껏 펠라티오를 하는 애인의 발간 얼굴이 보였다. 애인은 흥분의 기미도 없던 좆을 입으로만 발기시킨 후 극진히 애무하였다. 윽박을 지르며 혼을 낸 탓인지 심히 기가 죽어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귀엽기는 했으나 앙큼하게 대드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우리 지유, 소원 성취했네. 서방질하면서 좆 받는 게 꿈이었잖아. 응?”

“으응, 음, 음…!”

“지유 씨, 그랬어요? 미리 말했다면, 더 좋은 자리를 마련했을 텐데요.”

붉게 단 눈가에 물방울이 대롱거린다. 양손으로 좆을 모시느라 눈물을 닦아 내지도 못한 채로 고개를 움직이는 얼굴이 서럽게 흐려졌다.

“…으응!”

펠라티오에 열을 올리던 남지유는 뒤에서부터 처박는 몸짓에 덜컹 권성하에게로 무너졌다. 대롱거리던 눈물이 고급스러운 맞춤정장을 적셨다. 백이선은 이미 한 차례의 정사로 녹녹해진 구멍에 사정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버릇이 없어 무서운 것도 없던 남지유가 권성하의 몇 마디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 퍽 귀여웠다. 제 좆을 깊숙이 받은 채 욕심껏 다른 좆을 받고 있는 것도 꼴렸다. 공사를 친 보람을 심히 느낄 정도였다.

“흐으응, 으음…….”

 입 안 한가득 물려 있던 좆이 앞뒤로 흔들리는 그를 따라 목젖을 건드리고, 목구멍까지 넘보았다. 숨이 막혔다. 결국 남지유가 품던 좆을 토해 냈다. 삼키지 못한 침이 주르륵 흐르는 동시에 숨이 헉, 크게 터졌다.

“하악, 하…! 아, 잘못, 잘못했어요… 흐아아, 힘들어요…. 흑, 으으으.”

두 남자 모두 보통 크기가 아니었다. 보통 오래가는 놈들도 아니다. 따로 받기도 힘든 사이즈를 앞과 뒤로 동시에 받자니 슬슬 한계였다. 턱이 얼얼하고 뒤는 욱신거렸다. 솔직히 무서웠다. 섹스하다 반병신이 되어서야 풀려날 것 같았다.

권성하는 울먹이는 그에게 발기한 좆을 들이밀었다. 작은 얼굴보다 훨씬 길고 묵직한 좆이 뺨을 툭툭 건들더니 높다란 콧대로 미끄러졌다. 선단에서 흐른 물과 남지유가 묻혀 놓은 침이 잘생긴 얼굴을 더럽혔다. 모욕적인 제스처에도 굴욕감이 희미할 만큼 무섭고 힘이 들었다.

“너 좋아하는 거 하는 거잖아. 뭐가 힘들어.”

“하아! 으으응, 잘못… 했어요, 지유가 잘못했어요. 흑, 으앗! 이제, 아, 안 그럴게요, 오빠… 아아아!”

애원하던 남지유가 권성하의 허벅지에 손톱을 세우며 자지러진다. 잘생긴 얼굴이 울상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백이선은 남지유의 풀 죽은 성기를 만져 주며 안으로 짓쳐들고 있었다. 철퍽, 철퍽! 강하게 처박힐 때마다 이미 싸지른 정액이 애액처럼 흘렀다. 허벅다리를 타고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남지유는 안으로 깊이 틀어박힐 때마다 온몸에 갈래로 쏟아지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흐으응! 싫어, 아으, 앙! 죽을 것, 같, 아아앙!”

“지유 씨, 당신 여기… 후, 진짜 보지처럼 젖었네요. 다 젖어서 질척거리는 거, 들립니까?”

“아, 으응! 이선 씨, 서방님 그거, 저, 저 이제 그만…… 아으응!”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아양을 떨던 입이 결국 실수를 저지른다. 남지유는 잘못을 느끼기도 전에 머리채를 잡혔다.

“씨발, 우리 지유 진짜 서방질했던 거네? 으응?”

권성하가 흐트러진 머리채를 잡아 자신을 보게 한다. 싫어, 아녜요, 아니에요, 반사적인 말대꾸가 흘렀으나 쾌락에 한껏 흐무러진 얼굴은 도저히 싫은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백 전무한테 서방님, 서방님하면서 대 줬어?”

“으응, 안, 안, 그랬… 하아! 으아앗, 아! 오빠, 오빠아. 지유 좀, 살려 주세요….”

“죽는 것보다 보지 씹창 나는 걸 걱정해야지. 지유야.”

“흑, 흐으응……. 아아! 자, 잘못했어요, 오빠, 오빠아…….”

오빠가 전무님 혼내 주고 저 데려가면 되잖아요, 이제 그만할래요, 그만, 그만…… 도리질을 해 가며 매달리는 남지유는 아직 한계까지는 한참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자기 편리한 대로 조잘대는 입술이 증거였다. 정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색색 가쁜 숨만 몰아쉬며 간간이 교성을 지르는 게 전부다.

권성하는 시끄러운 입술에다 좆을 문질렀다. 목구멍까지 실컷 유린당했던 남지유가 두려워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머리채를 뒤로 당겨져, 입구멍에 다시 좆을 품어야 했다.

“으응응…!”

권성하는 달아나려는 머리를 붙잡고 느긋하게 허리를 굴렸다. 길고 묵직한 좆이 목구멍까지 드나드는 윤곽이 늘씬한 목선에 그려졌다. 그간 이토록 폭력적으로 군 적 없었기에 남지유는 더욱 속수무책이었다. 제멋대로 애인 행세를 했던 그가 얼마나 다정했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만만하게 보고 기어올랐던 게 얼마나 멍청했었는지도 깨달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흐음, 응… 으응!”

앞과 뒤를 강하게 사로잡혀 말 그대로 구멍을 대 주는 형식이었다. 그것만도 힘든데, 남지유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와중에도 착실히 단 몸이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백이선이 찌르는 안쪽, 그 깊은 곳에 귀두를 대고 체중을 실어 묵직하게 눌러 주길 바랐다. 애가 타 허리가 달달 떨렸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원초적인 욕구였다. 문득 뒤에서 기가 찬 웃음이 났다.

“남지유 씨, 지금 내가 박아 주는 게 부족합니까?”

“으으응, 흐으…. 응, 으응.”

“우리 예쁜이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움직임을 멈춘 채, 스스로 허리를 살랑거리는 남지유를 내려다보던 백이선이 순간 골반을 붙잡는다. 퍽! 종전보다 더 거세진 좆질이 뜨거운 속살을 때렸다. 남지유가 애가 타 어쩔 줄 몰라 하던 극점에 쏟아지는 폭력이었다. 강하게 처박힐 때마다 접합부에서 물이 튀어 엉덩이와 허벅지를 적셨다. 남지유는 벌어진 입에서 좆물 섞인 침을 줄줄 흘려 가며 울었다. 목에서 길게 이어진 울음은 발정기 고양이의 울음과 흡사했다.

“흐으응……!”

강렬한 쾌감이 찾아들었다. 발가벗은 허리가 움찔움찔 튀더니 곧 다리가 풀려 침대에 무너지려 했다. 백이선은 오르가슴에 시달리는 남지유를 붙든 채로 느긋하게 허리를 털었다. 권성하는 목구멍까지 찔렀던 좆을 꺼내어 반반한 면상에다 정액을 늘어뜨렸다. 사정은 한참이었다.

“하악, 하아…! 아, 하아아. 흐으….”

백이선이 깊숙이 삽입했던 좆을 물린다. 팔뚝만 한 좆을 품고 있던 구멍은 붉은 속살이 비칠 만큼 벌어져 있다가, 서서히 다물렸다.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집을 향해 사출한 정액이 구멍에 찔끔 고였다.

용무를 끝낸 백이선은 무너지는 몸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늘씬한 몸이 침대에 아무렇게나 흐드러졌다. 백이선은 가운을 대충 여미며 내려와 생수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권성하에게 제의했다.

“하나 드려요?”

“침대매너가 영 형편없네. 누굴 남창 쓰듯 대해.”

“권 이사 취향도 만만찮게 더럽던데요. 하하하… 오빠라니, 지유 씨가 싫어할 만합니다.”

“지유가 당신 좀 혼내 달라던데 왜 그런지 알겠어. 좆같네. 아주.”

권성하는 침대에 늘어져 색색 숨만 몰아쉬는 남지유의 뒷목을 받쳐 주고는 시원한 물을 먹여 주었다. 목이 탔는지 잘 받아먹는다. 한참 목을 축인 남지유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흠뻑 젖어 짙어진 속눈썹이 깜빡, 삼박였다.

“오빠…… 화, 풀리셨어요?”

“좆질 몇 번 했다고 풀렸을 것 같아?”

“…죄송해요, 오빠. 오빠 말, 안 들었던 거 너무너무, 반성하고 있어요….”

“우리 지유는 맘에도 없는 소릴 깜찍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그가 늘어진 남지유의 몸을 돌아 눕힌다. 남지유가 당황스럽게 눈을 깜빡거리며 권성하를 올려다본다. 권성하는 정장재킷을 벗어 던지며 남지유의 위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그 다리 사이에서 슬슬 발기한 좆이 위협적으로 꺼덕였다. 남지유가 겁에 질려 무릎을 모았다. 바로 몇 주 전과는 상반된 반응이 돌아왔다.

“보지 쓰게 다리 벌려.”

“오, 오빠아…….”

“오빠가 강간에는 취미 없긴 한데,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지유야.”

“…….”

내내 엎드려 있던 무릎이 발그스름하다. 하얀 다리 중 유달리 눈에 띄게 색을 칠한 무릎을 남지유가 천천히 벌렸다. 시무룩 기가 죽은 성기, 어린 나이답게 탱탱한 고환, 우윳빛을 머금은 구멍이 드러났다.

“더러워진 보지 그대로 쓰라고?”

힐끗 권성하의 눈치를 본 남지유가 더듬더듬 손을 내린다. 구멍을 벌려 직접 긁어낼 생각이었으나 권성하는 매정하게 쳐 냈다.

“손대지 말고.”

“그럼 어, 어떻게요……?”

“싸야지 어떡하겠어.”

정액과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이 빨개졌다. 권성하뿐만 아니라 백이선의 시선까지 꽂히는 게 느껴진다. 남지유는 고개를 숙이며 훌쩍 코를 울렸다. 순간 손이 잡혀 깜짝 놀랐는데, 권성하는 그가 엉덩이를 붙잡게 하고는 손을 떼었다. 벌려서, 힘을 주어서 정액을 싸지르란 것이다. 억울하고 서러워 눈물이 똑 떨어졌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수치를 줄 일인가 싶었다. 바람났다고 화를 낼 거면 헤어지자는 말이나 받아 주든가. 울컥한 속맘은 그대로 눈물이 되었다. 백이선과 섹스를 한 건 정말 이번이 처음인데 태도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남지유는 서러워하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왈칵. 정액이 한 움큼 쏟아졌다. 우윳빛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흐으.”

근육이 잡힌 배가 조여들 때마다 구멍은 울컥울컥 정액을 토해 냈다. 발그스름하게 단 구멍이 오밀조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권성하의 시선이, 백이선의 시선이 꽂히는 걸 견딜 수가 없다. 남지유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열심히 아랫배를 조였다. 더는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직접 엉덩이를 잡아 구멍을 벌리자 쩍쩍, 젖은 소리가 났다. 귀까지 빨개졌다. 그는 금세 포기하고는 다리를 닫았다.

“오빠, 못 하겠어요…. 더, 더 안 돼요.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권성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애원하는 애인의 허벅다리를 잡아 벌렸다. 손수건으로 애인이 싸지른 정액을 닦아 내고, 곧장 좆부터 가져다 댄다. 애인을 보며 단단하게 부푼 좆이 단번에 끝까지 짓쳐들었다. 백이선이 닦아 놓은 구멍은 항상 버거웠던 큰 좆도 무리 없이 삼켜 냈다.

“아아아! 흐아, 앙…!”

박자마자 절정이었다. 권성하는 제 아래 깔린 채로 바들바들 떠는 허리를 다잡았다. 그리고 아랑곳 않고 좆질을 시작했다.

“흐앙! 아! 오빠아… 아으응! 안 돼, 싫어어…….”

“입, 다물어. 하…. 안 그래도 지금 많이 봐주고 있어.”

“흑, 흐으응……! 흐앙, 아! 으응…!”

오로지 자신의 쾌락만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몇 번이나 절정에 도달한 그를 배려하는 느긋한 좆질이나 몸을 어르는 손길도 없었다. 우습게도 이런 순간이 와서야 권성하가 자신을 많이 봐주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쩐지, 잡은 물고기 그 이상의 것을 놓친 듯 아쉬운 맘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이 화를 어떻게 감당하여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흐으, 힉…! 아, 으응! 흐아앙…….”

퍽, 퍽, 강하게 치달으며 남지유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밀려 올라간 머리가 침대헤드에 부딪치자 권성하는 혀를 차면서도 베개를 대어 주었다. 그가 한 손으로 침대헤드를 붙잡은 채, 제 아래에 깔린 애인을 노려보며 애인의 품으로 짓쳐든다.

“하아, 아아아…! 오빠, 으응…!”

활짝 벌어진 다리가 박히는 대로 팔락거린다. 아랫배에서 또다시 오르가슴의 전조가 올라오고 있었다. 제멋대로 하는 좆질에도 몸이 달아 어쩔 줄 모르는 스스로가 수치스러웠다. 언제부터 이렇게 밝히는 몸이 되었나 싶다. 성에 담백하던 자신을 음란하게 개발시켜 놓고 시치미를 떼는 놈이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으으응!”

가장 민감한 극점에 좆이 짓눌렸다. 권성하는 깊숙이 삽입한 채로 남지유의 납작한 아랫배를 지그시 눌러 주었다. 닿으면 안 될 부분까지 닿는 듯 아찔했다. 통각을 아득히 넘어선 쾌락이 절정처럼 올랐다. 습관적으로 권성하에게 매달려 안길 뻔한 남지유가 입술을 짓씹으며 베개를 뜯는다. 눈을 질끈 감자 뺨을 붙잡혔다.

“눈떠.”

“흐으으…. 시, 싫어요… 오빠, 저, 너무… 흑! 흐응…!”

“마음 같아선 네 보지 거덜 내서, 다신 몸 장사 못하게 하고 싶은데…… 하아.”

“아아! 아! 으응, 오빠 그거, 너무…! 아으응, 어떡해… 좋아…!”

“버릇이야 처음부터 다시 들이면 되니까. 오빠가 무섭게 한다고, 응? 억울해하지 마. …지유야, 알았어?”

“네, 네에… 아, 알겠, 으으응, 아…. 아아, 앙…!”

권성하가 피식 웃는다. 그는 애인이 유달리 느끼는 부분을 쑤셔 주며 허리를 놀렸다. 흥분에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직이 물었다.

“알아들은 거 맞아? 오빠가 뭐라고 했어.”

“하아…! 하으, 모, 몰라… 아아아! 흐윽, 거기, 아으응…!”

“하하하, 씨발. 지유야, 오빠 닥치고 좆질이나 해? 응?”

“으응, 응…!”

권성하는 애인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골반을 꽉 붙잡은 채로 허리를 놀리자 애인이 목을 젖히며 길게 울었다. 박는 족족 교성을 내지르며 자지러졌다. 어쩔 줄 모르고 허리를 튀던 남지유는 그대로 절정으로 떨어졌다. 바짝 선 성기에서 나오는 것 하나 없는 드라이 오르가슴이었다. 권성하는 허리를 몇 번 더 내둘러 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소리 많은 입이 웬일로 조용하다. 애인은 눈을 내리감은 채로 미동조차 없었다. 놀라 숨부터 확인했지만, 멀쩡히 붙어 있었다. 연이은 거친 정사에 혼절한 것이다.

“더 혼낼 수도 없게 만드네, 아주.”

죽을 것 같다며 울던 것이 일단 거짓말은 아니긴 했다. 백이선은 밀랍으로 만든 것 같은 정교한 얼굴을 만지며 의식을 확인해 보았다. 정말 인형처럼, 손길에 따라 맥없이 흔들렸다.

“권 이사가 지유 씨를 심히 몰아붙이긴 했어요. 겁에 질려서 울던 얼굴 못 봤습니까? 귀여웠는데.”

“무대 세팅해 놓고 부른 새끼가 할 말이야?”

제주도 바다에서 공사를 치는 것도 나쁘진 않겠으나 당장 중요한 건 혼절한 애인이었다. 권성하는 삽입했던 좆을 꺼내고는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 주었다. 순간 아래서 숨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까무룩 혼절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남지유가 상황 파악을 하는 것처럼 가물가물한 눈을 굴리고 있다. 그러더니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앉는다. 무얼 하나 싶었는데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권성하와 백이선의 사이에 주저앉았다. 손 모델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하얗고 기다란 손이 두 남자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기가 찬 듯한 웃음이 터졌다.

“남지유 씨, 뭐 하는 겁니까?”

“지유야, 정말 좆 여러 개 받는 거에 취미 있어?”

두 개를 동시에 받기라도 하겠냐는 뜻이었지만 갓 정신이 돌아온 남지유에게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말이었다. 남지유는 젖은 눈을 깜빡, 깜빡하며 양손에 좆을 쥐고 문질렀다. 지독히 시달린 후에도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권성하와 백이선이야 원래 가진 놈들이니 남지유와는 달랐다. 트집을 잡아 그를 맘껏 취하거나, 정신 못 차리고 아무한테나 몸을 여는 그를 실컷 혼내거나. 남지유를 그토록 초조하게 만든 이유는 과정에 사용될지언정 그 끝에는 존재치 않았다. 남지유가 그렇게나 생떼처럼 여기는 것들을 그들은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게 다루었다. 자존심이 상했으나 포기할 순 없었다.

그가 발가벗고 침대에 올라가게 된 까닭, 권성하와 백이선의 말대로 그는 욕심이 많았다. 어떻게 기어 올라왔는데 여기서 미끄러지고 싶지 않았다. 식탐 많은 애처럼 양손에 좆을 쥔 남지유가 고개를 돌려 가며 좆을 핥아 먹는다. 부어오른 입술이 한 입에 담기도 힘든 귀두를 양껏 담으려 애를 썼다. 지나치게 고분고분한 태도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서로 닿기조차 싫어하는 남자들의 좆을 한데 모아 혀를 굴려 댔다. 내리깔았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갔다. 절실함이 엿보이는 눈이 속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자료들 꼭, 없애 주세요. 네? 저, 배우 일 계속하고 싶어요. 연기도 더 하고 싶구요. 그러니까…….”

자신의 치부를 꼭 지워 달라며, 비밀을 지켜 줄 것을 당부하는 목소리에 미처 감추지 못한 절박감이 스며들었다. 두 남자처럼 대수롭지 않은 척할 여유는 그들을 한 번에 상대하며 부서졌다. 남지유는 다만, 평소처럼 애교 담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베갯머리송사는 조금 더 길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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