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전쟁 영웅 아졸 공작의 사랑스러운 딸, 아사야. 왕자비 후보로 일찍이 점찍힌 소녀의 인생은 남들이 짜 놓은 계획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향하는 곳만큼은 누구도 조종할 수 없다.
“드래곤을 갖고 싶으면, 왕자에게 달라고 해. 예물로 말이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멋진 왕자님이 아니다.
* * *
“약속했잖아, 내가……. 다시 널 되찾겠다고. 맹세했잖아, 눈물로.”
그녀의 대꾸에 드래곤의 무거운 머리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절망한 듯 보이는 동작이었다.
두 손을 뻗어, 아사야는 용의 거대한 머리를 최대한 끌어안았다.
“나 괜찮아. 왕자비가 됐는걸. 모두가 내 결혼을 축하했어……, 축하받는 결혼이었어. 내가 선택한 거야. 가브리엘. 그러니까…….”
횡설수설하며 아사야는 거짓말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은 그녀의 결혼을 만류하고 그녀의 선택을 저지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존재였다.
그래서 아사야는 그를 좋아했다. 그녀의 드래곤은 그녀가 만나 온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적으로 생각됐다. 가브리엘은 조용했지만 다정했고, 거대했지만 부드러웠으며, 날카로운 이를 가졌지만 그녀를 상처 입힌 적 없었다.
그런 사람이 그녀 곁엔 없었다.
“이제 널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우리, 언제든지……,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어.”
“…….”
“가브리엘…….”
흔히 해 왔던, 그래서 그리웠던 혼잣말로 아사야가 말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이상한 감각이 아사야를 감쌌다.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가 제 것이 맞기는 한가 싶었다.
“이제 다칠 일 없을 거야. 누구도 널 해치지 못해, 누구도…….”
누구를 향한 것일지 모를, 흩어진 감정들을 우두커니 느끼며 아사야는 혼잣말했다.
“누가 널 데려가고 우릴 해치려 한다면…… 나도 가만있지는 않겠어.”
조용히, 가브리엘이 그녀의 얼굴 앞으로 머리를 숙였다. 아사야는 저의 검은 용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무기력한 건 지긋지긋해.”
그러자 가브리엘이 천천히 목을 빼내더니, 큼직한 머리를 느릿느릿 움직여 제 주둥이를 아사야의 이마에 붙였다.
그가 제 이마에 키스해 준 것을 알고 아사야는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