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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12/14)

외전 1

미소

보란 듯이 허리에 양손을 떡하니 올리고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마가렛의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다가 갑자기 거세게 꼬집힌 팔뚝이 얼얼하게 아파 왔다.

“내가 언제 그런 쓸데없는 짓 하랬어요?”

“당신도 우리 딜라일라 결혼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고 나한테 상의도 없이 그런 짓을 해요? 응?”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화난 모습에 로드릭이 얼마나…… 쫄았는지. 로드릭은 아주 오랜만에 마가렛이 화를 낼 때마다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느꼈다. 젊었을 적에나 쓰던 단어지만, 그 단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

로드릭 에리카는 쫄아 있었다. 세간이 이르기를 사랑스러운 마가렛이라 부르는 자신의 부인에게.

마가렛 에리카, 한때 마가렛 로제타였던 그의 부인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스러운 외모와 우아한 태도, 통통 튀는 말씨로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여성이었다.

그런 마가렛이 사실은 화가 날 때마다 로드릭의 팔뚝을 꼬집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심지어는 머리칼을 쥐어뜯기도 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심지어 그들의 딸인 딜라일라조차도.

로드릭에 비하면 한참이나 덩치가 작은데도 마가렛의 손은 묘하게 매웠다. 맞으면 아픈 곳을 쏙쏙 골라서 때리고 꼬집어 비트는 신기한 기술이 있었다. 처음 마가렛에게 손등을 꼬집혔을 때는 진중한 로드릭마저 억 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그날이 아마, 정략결혼 상대로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던 마가렛을 세 번째로 만난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로드릭은 직감했다.

자신은 평생 이 여자에게 꽉 잡혀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로드릭은 마가렛에게 아주 꽉 잡혀 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적당한 남자를 소개시킬 겸 축하 선물을 들려 딜라일라의 아카데미로 보냈던 날에 로드릭은 오랜만에 불같이 화를 내는 마가렛을 앞에 두고서도 꼼짝을 못 했다.

“우리 딜라일라한테 지금 누굴 갖다 붙였다고요? 필립 샤니? 샤니이이?”

“매기.”

“그 쪼그만 자식이 제 아버지 핏줄 믿고 얼마나 오만방자한지 수도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몰랐소…….”

“매일 처박혀서 일만 하니까 일 말고는 아는 게 없죠! 모르면 가만히나 있었어야지!”

물론 마가렛은 말로도 로드릭을 잘 때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가렛은 손보다 말로 로드릭을 때리는 일이 늘어났고, 당연히 그 솜씨도 늘었다. 마가렛에게 거세게 걷어차여도 말로는 지지 않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다 옛말이었다.

“그…… 샤니 군이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배경만 보면 오만할 법도 한데, 그래도 싹싹하고 모난 데도 없는 청년인 것 같아서…….”

“그거야 상대방이 당신이니까 그렇죠. 출세하고 싶은 남자들 중에 내무부 최고 위원 로드릭 에리카한테 싹싹하지 않을 놈이 어딨어요!”

꼬박꼬박 맞는 말만 하면서 듣는 사람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저 기술 좀 보게. 적어도 하나만은 확실했다. 마가렛은 그에게 싹싹하지 않은 흔치 않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정말이지, 그 마가렛 에리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그런 사람이 로드릭이 사랑하는 부인인 것을. 원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지 않는가.

“매기, 일단 화를 좀 거두고…….”

“당신이 화나게 했잖아요!”

씩씩 거친 숨소리를 내던 마가렛이 결국 로드릭의 정강이를 거세게 걷어찼다. 로드릭은 피하지도 않고 마가렛이 걷어차는 대로 정강이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마가렛의 화가 풀리기만 한다면야 정강이가 좀 아픈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유난히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던 발에 맞은 정강이는, 비록 내일이 되면 좀 부을지도 모르겠지만.

“됐어요. 난 내일 딜라일라 좀 만나러 갈 테니까, 당신도 같이 가든지 말든지.”

“그럼 나도 함께 갈 테니, 시간을…….”

“오늘은 내 침실에서 잘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마지막까지 팩팩 성질을 부리고는 휙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마가렛의 작은 뒷모습을 로드릭은 굳이 붙잡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다정하게 그의 옷에 달린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오늘도 수고했어요, 하며 뺨을 쓰다듬어 주는 사뿐한 손길을 받지 못한 것을 조금 아쉬워 할 뿐.

가든지 말든지, 하고 꺼낸 말은 같이 가자는 뜻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 침실에서 자겠다는 말은 내일은 다시 그와 같은 침대에서 잠들겠다는 뜻이었다. 속이 상해서 로드릭을 보면 계속 화를 낼 테니까 오늘은 따로 자고 내일 화가 좀 진정되면 다시 만나자는, 그런 말.

몇 십 년의 결혼 생활로 로드릭은 마가렛이 하는 말에 담긴 뜻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알아들을 수 있는 신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럴 때는 굳이 마가렛을 쫓아가지 않고 하룻밤 그냥 두는 것이 훨씬 서로에게 낫다는 사실도 이제는 잘 알았다. 어떤 일이든 갑갑한 상황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것을 못 견뎌 하는 로드릭이 화가 난 마가렛을 졸졸 쫓아갔다가 거하게 싸워 대기를 반복한 끝에 얻은 교훈이었다.

결혼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상대와 자신의 다른 삶의 방식이 부딪히고 또 부딪혀도, 끝내 그 가운데 어디쯤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정립되는 것. 그렇게 상대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엮어 가는 것.

“후…….”

푹 한숨을 내쉰 로드릭은 오랜만에 혼자서 잠들 준비를 했다. 마가렛이 이렇게 화를 낸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혼자서 잠드는 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준비를 끝내고 침대에 누운 그는 비어 있는 옆자리를 몇 번 더듬어 보다가 눈을 감았다. 분명 일과 사람에 하루 종일 시달린 몸은 피곤하기 짝이 없는데, 수마보다 먼저 오래된 기억이 그의 뇌리를 덮쳤다.

어려서부터 선대의 뒤를 따라 제 일만 열심히 하던 로드릭은 마가렛이 그의 정략결혼의 상대로 거의 결정이 난 뒤에야 그녀를 처음 만났다. 사교 같은 것에는 취미도 재능도 없었던 그는 그때까지도 사교계에 출입한 적이 없었으므로 마가렛 로제타에 대해서는 소문만 잔뜩 들은 차였다. 사랑스러운 마가렛. 온 세상이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마가렛 로제타를 처음 소개받는 선 자리에서, 로드릭은 그녀를 두고 정말로 소문대로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듣던 대로 정말, 미남이시네요.”

“과찬이십니다.”

“보통 이럴 때는 그쪽도 듣던 대로 정말 미인이세요, 라고 하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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