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107)화 (108/116)

알테미스 거리 중부.

마침내 혁명군은 목표로 했던 황궁 남쪽 성벽을 코앞에 두었다. 혁명군에 맞서 제국군 마법대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신성 마법사도 모든 대비를 마친 혁명군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방어 마법은 황실이 학생군에게 그러했듯 마력 억제제를 바른 탄알로 모두 뚫렸으며, 공격 마법은 온전히 집중하기도 전에 막혀 제대로 시전하지 못했다.

혁명군의 기동력과 공격을 막아 낼 만큼 속도가 빠른 공격 수단은 무언 마법뿐이었다. 그러나 황실에서 무언 마법은 정통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고, 무언 마법사는 집중력이 부족하며 마법사 자격이 없는 ‘가짜’ 취급을 받았다. 황실 마법대에 천시받는 무언 마법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황실은 자신들이 직접 몰아낸 ‘마녀’와 기술자, 무언 마법사 그리고 마력이 없는 평민으로 인해 몰락할 운명에 처했다.

최소한의 피해만 입으며 혁명군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마침내 알테미스 거리 북부. 황궁 남쪽 성벽이 보였다.

지상에 겹겹이 주둔한 제국군 보병 위, 성벽에는 황실 정예 마법사가 줄줄이 주둔해 있었다.

“아르니도스 이그니스 유피테.”

어디선가 황족의 융합 마법이 시전되었다. 몰려든 먹구름 사이 빠르게 형성된 번개가 수십 갈래로 갈라져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순식간에 형성된 단단한 마법 보호막이 혁명군 진영을 지켰다.

“마법대장이에요.”

공격을 막아 낸 미하리 시즐리가 피 섞인 기침을 토하며 경고했다.

‘화원’의 희생자 중 하나였던 미하리 시즐리는 눈에 독기를 품고 마법대장 율린과 맞섰다. 그는 황가의 방계로, 적지만 베르딘의 피가 섞여 있는 자이니만큼 쉽게 상대하기 어려웠다.

한 세기 하고도 5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베르딘 황궁의 성벽을 지켜 낸 자였다. 그 관록이 고스란히 묻은 늙은 얼굴로, 율린은 계속해서 빠른 공격을 퍼부었다.

미하리 시즐리는 그 거대한 마력과의 충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증오와 복수심을 담아 멈추지 않고 맞섰다.

어느새 두 눈을 하얗게 물들인 채 공중에 부양한 율린은 모든 힘을 짜내어 강력한 마법 폭격을 가했다. 혁명군의 마법사가 일제히 힘을 합쳤지만 오래 당해 내기는 어려울 듯했다.

와중에 제국군 보병들이 마력 억제탄을 장전한 뒤 사격을 준비했다.

“엄호해!”

티샤카 수송대가 단단한 철로 무장한 사륜구동 자동차를 몰고 최전방으로 향했다. 방어막을 펼치듯 옆으로 차체를 틀어 일렬로 늘어서서 제국군 보병의 공격을 막았다.

그 틈으로 똑같은 마력 억제탄을 장전한 혁명군 저격대가 총구를 성벽 위로 겨냥해 황실 마법대를 조준했다.

“발포!”

위로 향한 탄알들이 마법 공격대를 격파했다.

뒤이어 리안과 로제타를 위시한 정예 전투 부대가 보병 전열을 흩트리며 맹공격을 펼쳤다. 제이디는 리안을 엄호하며 달려드는 병사들을 쏘았다. 곳곳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마법대장의 특기는 공대지 공격이니 단 한 번이라도 폭격을 막지 못하면 전력 손실이 상당할 겁니다. 어떻게든 성벽 위 마법사들과 마법대장 먼저 처치해야 합니다.”

모두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떨어지는 마법대장의 번개 마법으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번쩍이기를 반복했다. 제이디의 지원 부대가 마법 융합기를 써서 보호막을 보탰지만 역부족이었다.

쾅─

마침내 공중에서 떨어지는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혁명군의 마법 보호막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연이어 날아든 폭격에 혁명군 진열이 흐트러졌다. 다시 빠르게 보호막을 재건했지만 이미 많은 사상자가 나온 뒤였다.

“작전을 바꿔야겠어요!”

아니타 리젤이 다급히 말하자 아놀드 막시무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심에 빠졌다.

“신무기는 화력이 강한 만큼 쉽게 과열돼. 반드시 써야 할 때가 오기 전까지는 아껴 둬야 해.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안전하게 개선할 방법을 찾았을 텐데….”

지난 ‘화원’ 폭파 사건 당시 혁명군의 신무기는 그 화력을 명백히 입증해 보였다. 대지의 마법 폭격과 다름없는 위력은 짧은 시간 단번에 적진을 휩쓸기 충분했다. 그러나 그만큼 탄환을 일반 총기의 몇백 배로 많이 소모했으며, 쉽게 과열되어 장시간 쓸 수 없었다.

기술부의 헤이미 롤랑이 과열된 신무기의 총열을 냉각하는 보조 기구를 만들었지만 이는 그저 시제품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로, 본래 계획대로라면 신무기는 성벽을 뚫고 나서 꺼내 들 카드였다. 벌써 사용한다면 막상 황궁에 진입했을 때는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희생되는 혁명군의 수가 많아 막상 성벽 진입 후 전력이 모자랄 것이었다.

혁명군은 결국 결전 병기를 조금 이르게 꺼내기로 결정했다.

전술 사령부의 작전 변경 수신호가 전해졌다. 최전방에서 제국군 보병을 정리한 정예 부대가 신호를 알아듣고 후퇴했다.

“리안!”

제이디가 탄 차량이 후퇴하는 정예 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급박한 상황, 탕- 리안에게 달려드는 보병 하나를 피스톨로 처치한 제이디가 달려오는 리안의 팔을 붙잡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리안이 피격당했을지도 몰랐다.

리안은 차에 탑승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오른팔이 다시 말썽이었다. 어깨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사력을 다했다.

제이디는 면포를 찢어 피가 흐르는 리안의 옆구리를 지혈했다. 그러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져 차량 안을 살폈다.

“로제타 씨는요?”

“…….”

리안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안의 표정은 마치 오랜 친구를 잃은 듯 서글퍼 보였다. 제이디는 할 말을 잃은 채 잠시 침묵했다. 갑자기 모든 호흡이 멈추는 듯했다.

입술만 벙긋거리던 제이디가 곧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살아 있을 거예요. 절대 죽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제이디의 격려에도 말없이 눈을 내리까는 리안의 모습에서 희망이란 엿볼 수 없었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로제타의 생존을 점칠 수 없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제이디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로제타 씨는 절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위인이 아니었다. 학생군 자유 행진 전 로제타의 ‘방패막이’ 발언으로 어색하게 헤어진 뒤 아직 제대로 풀지도 못한 상태였다.

“너, 생각보다 쓸 만할지도 모르겠구나?”

동방에서 건너온 화과자를 우물거리며 제게 그리 말하던 로제타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로제타의 화통한 미소를 본 날이었다.

“…로제타 씨는 절대 안 죽어요. 분명 황궁 주방 어딘가에서 새로운 과자라도 우물거리면서 나타날걸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설령 정말 죽었다고 해도 지금 이 전장 한복판에서는 반대로 믿는 편이 나았다. 제이디는 공허한 표정을 짓는 리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후퇴한 차량이 모두 후방으로 빠지자마자, 두두두- 무차별적인 총격이 이어졌다. 대열을 잡은 신무기 부대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성벽 위,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보충되던 황실 마법대 마법사들이 빠르게 날아드는 총격을 맞고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당황한 마법대장 율린이 공격을 멈추고 성벽 주위로 급히 보호막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신무기의 탄환에도 모두 마력 억제제가 묻어 있었으니.

결국 총격을 피하지 못한 마법대장 율린이 마력 억제탄을 맞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쏟아지던 마법 폭격이 드디어 멈췄다. 제이디와 헐리, 그리고 이크람 ‘마녀’들의 합작인 개량 마력 억제제이므로 당분간 마법대장은 마력을 운용하지 못할 것이었다.

결전 병기 앞에 무력한 것이 마법대뿐일까. 지상의 보병들까지 손도 쓰지 못한 채 모조리 전멸해 갔다.

마침내 제국군 보병 진열이 완전히 뚫리자, 베르딘 황궁 남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을 부숴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일반 제국민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돌진해 나갔다.

다시 전세가 역전되었음을 확신한 혁명군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더 빨리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사기를 되찾고, 부대별 전열을 재빨리 정돈한 뒤 자비 없이 성벽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타오르던 희망의 불꽃은 다시 한번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활짝 열린 성문 너머에…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 성벽을 향해 이어지던 총격이 전술 사령부의 다급한 명령에 일제히 중지되었다.

“흐으….”

성벽 너머에서 혁명군을 기다리던 것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겹겹이 늘어선 민간인 포로 무리였다.

최전방, 1열의 포로 수십 명이 결박된 채 꿇려 있었다. 저마다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그들의 뒤통수에는 일제히 제국군의 머스킷이 겨누어져 있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민병대가 그저 성벽이 뚫린 것에 고무된 나머지 계속해 돌진했다. 그 순간, 탕─ 제국군이 발포했다.

“꺄악!”

1열의 포로가 일제히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2열의 포로들이 연이어 채웠다.

“이, 이게….”

탕─

사로잡힌 포로 무리 뒤, 제국군 저격대가 발이 땅에 묶인 듯 멈춰 버린 민병대 여럿을 일제히 사살했다.

그리고 제국군의 최후방, 황궁 본성으로 향하는 길 정중앙에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혁명군을 주시하는 폭군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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