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59)화 (60/116)

“왜 안 되는데요?”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왜요!”

평화는 잠깐이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사이좋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금세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화근은 제이디가 맥 칼리스토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었다.

지난 과거, 습격을 당했던 졸업 무도회에서 자신을 지켜 준 맥 칼리스토의 사격 실력을 제이디는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 혼란한 와중에도 재빨리 허리에서 총을 꺼내 정확히 조준하고 격발하던 그 모습을 보며 제이디는 일종의 환상을 품게 되었다.

답지 않게 난처해하는 맥 칼리스토를 발견해 다가간 리안은 그런 제이디의 이야기를 곧 들을 수 있었다.

“제이디는 전투원이 아닌데, 탄약 낭비입니다.”

“낭비…?”

단호한 낭비 발언 이후, 잔뜩 토라진 채 눈도 마주치지 않는 제이디를 한참 관찰하다 리안이 결국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사격술을 배우고 싶어요?”

“네! 저도 제 몸 하나쯤은 지키는 법을 알고 싶다고요. 가뜩이나 마법도 못 쓰니까요.”

“맥 칼리스토처럼 되려면 10년은 걸릴 텐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길진 않습니다.”

“지금 약 올려요?”

리안은 제이디 놀려 먹기에 완전히 맛 들인 모양이었다.

“난 머리가 좋아서 어쩌면 몸을 쓰는 일도 금방 배울지 몰라요.”

“자신감이 굉장하네요. 좋습니다.”

리안은 작은 보조 피스톨을 꺼내 제이디에게 들려 주었다. 묵직한 무게감에 제이디는 총을 받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무거운 걸 늘 차고 다니면서 그렇게 가볍게 운용한단 말이야?

하지만 놀란 티를 내면 리안이 비웃을 게 뻔해서, 제이디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한 손으로 총을 쥐었다. 그 모습에 리안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진지한 척하며 파지법을 알려 주었다.

여기저기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행렬 뒤쪽에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던 헐리 무니 또한 팔짱을 낀 채 진귀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 지켜보았다.

‘잘 보라고. 전투에도 재능이 있는 ‘마녀’라는 걸 보여 줄 테니.’

굳건히 다짐하며 눈을 번쩍 빛내는 제이디에게 리안은 이어 조준법을 알려 주었다.

“사격은 반사 신경과 밀접해서 타고나는 게 절반이지만.”

그는 제이디의 등 뒤로 다가가 총을 쥔 제이디의 손을 제 손으로 덮었다. 리안이 이끄는 대로 팔을 들어 올리자, 그가 표적으로 삼은 나무가 보였다. 줄기에 난 검은 옹이를 맞힐 셈인 듯했다.

“뭐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게, 우리 혁명군의 지론입니다.”

탕, 예고도 없이 총알이 발포되었다. 안개처럼 흩뿌려진 화약에 코가 맵싸했다.

그때, 리안이 갑자기 다른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망설임도 없이 하늘 어딘가를 향해 총을 쏘았다.

“리안?”

그런데 그의 돌발 행동에 놀란 것은 제이디뿐이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툭. 무언가 땅으로 추락한 소리가 들렸다. 일제히 몸을 물린 구경꾼 사이로 보이는 건… 총 소리에 놀라 도망가던 새 한 마리였다.

“…….”

“반사 신경.”

또박또박, 그 네 글자를 각인하듯이 말하는 리안을 제이디가 여전히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야식이다! 외치며 기뻐하는 한 전투원 뒤로 헐리 무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멀어져 갔다.

마침내 화약 연기가 모두 걷히고, 제이디는 다시 나무줄기로 시선을 돌렸다. 총알은 정확히 표적의 정중앙을 맞힌 채였다.

“맨날 혼자만 멋있어.”

툴툴거리며 돌아본 등 뒤엔 밤바람처럼 시원하게 웃고 있는 리안이 있었다.

*  *  *

코라냐크로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황성의 눈을 벗어날 만큼 멀리 왔을 때는 자그마한 마을이 산발적으로 있어 더 이상 야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며칠간 비바람도 없었고 대기는 여전히 건조했다. 북부도 동부도 메마른 지역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비가 자주 오고 온난하던 남부와 서부에서의 생활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연이은 야영으로 피곤에 절어 있던 제이디는 오늘 밤 드디어 여관에서 묵을 수 있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리안, 보세요. 특별 훈련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나 봐요.”

탁, 탁, 탁. 나무 탄알을 넣은 연습용 총으로 작은 바위 조각 정도는 잘 맞힐 수 있게 된 제이디였다. 리안은 뿌듯해하는 제이디를 보며 엄격한 교육자 행세를 했다.

“여전히 어깨가 들리지 않습니까. 고개도 꺾이고.”

“리안은 정말 칭찬에 박하네요.”

“동방에 이런 말이 있죠.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나는 제이디를 키울 비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참 멋진 말이네요.”

“실탄이 든 건 훨씬 무거우니 지금 자세를 굳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네, 네. 알겠어요.”

몇 차례 제이디의 자세를 잡아 주던 리안은 그제야 만족할 만한 자세가 나왔다는 듯 흡족해했다. 연습용 탄알을 거의 소진한 제이디가 총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동방에는 또 이런 작품도 있죠.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제이디의 시선이 리안에게로 향했다.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1)

“…동방의 대륙도 여행했습니까?”

“아니요. 스승님의 책장에 있던 걸 보았거든요. 온갖 곳에서 온 책들이 있었는데… 공감이 가더라구요. 동방 예술가들도 헬리오스의 음유시인 못지않게 그 실력이 참 대단해요. 특유의 한이 있달까.”

다시 시선을 돌리는 제이디를 리안이 가라앉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녀’란 참 모순적인 존재예요. 누구보다 가난하고 외롭지만, 누구보다 인류를 향한 사랑과 슬픔이 가득하거든요. 동부에 가면 정말 나 같은 ‘마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요?”

“분명 그럴 겁니다.”

리안이 갑자기 감상에 빠진 듯이 보이는 제이디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돌연 제이디가 빠르게 몸을 틀더니 어딘가로 총구를 뻗었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자, 짤막한 정적이 일었다. 제이디의 기대와는 달리… 사삭, 빗맞은 표적이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람쥐였다.

“반사 신경, 이었달까.”

“이번 건 괜찮았네요.”

“내 땅은 정말 10년 후에나 굳을지.”

“이제 겨우 며칠인걸.”

아쉽게 읊조리는 제이디를 격려하는 리안의 말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훈련이 끝났다.

*  *  *

모두가 잠든 시각이었다.

코라냐크와 맞닿은 거점 도시 아타르에서 멀지 않은 곳, 동부 접경 지역의 자그마한 마을.

간만에 폭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제이디는 어째선지 편안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몸이 편하면 도리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제이디의 습성 중 하나였다.

오늘은 또 무엇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제이디는 불면의 원인이 낯선 잠자리도 아니요,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아님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람쥐를 못 맞힌 게 열 받아!’

승부욕만큼 실력이 따라 주지 않는 영역은 전투 기술이 처음이었기에, 제이디는 난생처음 재능에 대한 갈망을 느끼며 밤늦은 때에도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집단생활을 하고 있어 마음껏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그보다 더 불만인 것이 있었으니.

“자리를 벗어날 때는 언제든 보고하세요.”

“밤이고 낮이고요?”

“네. 약속하는 겁니다.”

독립성이 강한 ‘마녀’ 제이디에게는 도무지 무리인 명령이었다. 통제적인 황성과 아카데미에서도 불법을 저지르고 다녔던 그녀이기에, 아무리 제국의 2황자이자 혁명군의 수장이 내린 명령이라 할지라도 호락호락하게 수긍할 생각은 없었다.

‘훈련을 더 해야 해.’

이러다간 내일이고 습격을 당해도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할 것이었다. 이미 지식의 정수에는 올랐으니, 이제는 싸움도 잘하는 인재가 되고 싶었다.

멈출 줄 모르는 열망은 제이디를 밖으로 이끌었다. 물론 곤히 잠들어 있을 리안에게 올려지는 보고는 없었다.

조심스레 여관을 벗어나 보초들을 따돌리고서 뒤뜰로 나온 제이디는 품에 챙겨 온 연습용 피스톨을 꺼내 나무 탄약을 장전했다. 달빛뿐인 어둠 속에서, 표적이 될 만한 돌멩이들을 주웠다. 꼭 아카데미 시절 밤늦게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실험에 쓸 야생 쥐를 잡던 때가 떠올랐다.

쓸 만한 표적들을 찾아 나란히 나열하고 정확히 스무 보를 세며 떨어졌을 때였다.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보초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제이디는 잠시 숨을 죽였다가, 기척이 사라지자 계획했던 대로 사격 연습을 시작했다.

탁, 탁, …

밤눈이 밝은 편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빗나가는 총알을 보며 제이디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토록 어려운데 혁명군은 어떻게 그 많은 야전을 치를 수 있었을까. 실탄이면, 이 어둠에 화약 연기까지 퍼져 시야 확보가 더 어려울 텐데.

졸려서 그런 걸까, 억지로 잠을 몰아내며 눈을 비비던 제이디의 귀에 다시 한번 바스락, 기척 소리가 들렸다.

즉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 총구를 겨누었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사람이 머무는 마을이니 야생동물이 아니야. 보초를 서는 구역도 아니고.’

예민해진 제이디는 순간 공포심을 느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철컥, 어디선가 자신을 겨누는 총구 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제국군에 붙잡혔을 때 몇 번이나 들었던 소리이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포위당했어!’

재빨리 딜레앙가 마차 뒤로 몸을 숨겼지만, 사방에서 포위된 몸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때, 전방에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

복면으로 입을 가린 채 총구를 겨누며 다가온 사내는 소란 피우지 말라는 듯 입가에 검지를 세웠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 와중에도 제이디는 떨리는 두 손으로 연습용 피스톨을 들어 올려 상대의 미간을 조준했다.

‘젠장!’

탁, 방아쇠를 당겼지만 손이 너무 떨린 나머지 나약한 나무 탄약마저 가뿐히 빗나가고 말았다. 자신을 겨눈 총구가 더욱 위협적으로 가까이 다가왔을 때, 제이디는 선택을 해야 했다.

‘소리를 지를까, 도망칠까.’

머리로는 여러 대처법이 떠올랐지만, 얼어붙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제이디 스스로도 본인 존재의 중요성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단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리안의 모습을 떠올리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신변에 대한 위협이 아닌, 코라냐크에 도착도 하기 전에 그를 실망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다음 행동은 모두 이성의 영역을 벗어났다. 가장 먼저, 제이디는 쓸모없어진 총을 버리고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

“총은 항상 칼과 함께 무장합니다. 근접전이 되면 본능에 따라 싸워야 하니까.”

갑작스러운 제이디의 행동에 반응할 때를 놓친 상대가 그대로 뒤로 엎어졌다. 그 순간 허리에서 작은 나이프를 빼 든 제이디가 그대로 사내의 목에 날을 겨누었다.

하지만 반항은 찰나였다. 왜소한 여성의 완력은 덩치 큰 남성의 힘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위치가 전복된 제이디는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속박된 채 정체불명의 무리 속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1)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작품 선집』, 새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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