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이제 역병 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검체와 그것에 반응한 약초 추출액을 직접 사람의 몸에 실험할 차례였다. 상하지 않게 궁정 빙고에 보관한 시약들을 꺼내 챙긴 제이디가 리안이 묶여 있는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듯 맥동했다.
전에 보았던 그대로, 편히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매달려 묶인 리안이 희미한 숨을 쉬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이제는 방문자를 확인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제이디는 울컥 치미는 울분을 삭이고 감옥 관리를 맡은 궁정 간수에게 따지듯 말했다.
“실험체의 상태가 왜 이러죠? 이런 기력으로는 실험을 할 수 없어요. 그쪽이 대신 실험당하고 싶으세요?”
“무… 뭐라 했느냐?”
“신성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이라면서요. 이대로면 재판일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죽을 거예요. 당장 저 사슬부터 풀어요.”
“이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똑같은 대역죄인 주제에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미쳤어?”
이어지는 실랑이 소리에 희미하게 의식을 찾은 리안 베르딘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리안, 절 알아보시겠어요?”
제이디가 다급히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그는 온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미 성한 곳이 없었으나 가장 상태가 심각한 건 묶여 있는 목과 두 팔이었다. 봄의 문턱이지만 아직은 기온이 낮았다. 거기다 혈액 순환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시체보다 더 얼음장 같았다.
제이디가 품에서 녹색 환 한 알을 꺼내 리안의 입에 넣어 주었다. 부르트고 갈라진 입술을 어떻게든 벌려 밀어 넣었으나, 바짝 마른 식도를 넘지 못하고 도로 뱉어졌다.
“약이에요. 먹어야 해요.”
“…….”
그는 환도 물약도,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실험을 하기에 리안 베르딘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실험 불가능. 그 소견은 보고서로 작성돼 궁정 회의 자리까지 올려졌다. 황제는 몹시 언짢아했으나 마지못해 리안의 결박을 풀고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아무리 대역죄인이라지만 아직 재판도 치르지 않은 데다 제국의 두 번째 태양, 2황자였다. 처사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친딸마저 미끼로서 처형대에 올린 자비에르의 인성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감지덕지인가 싶었다.
그의 기력을 회복시키고자 제이디는 내내 리안의 옆에 붙어 그를 간호했다. 사슬에 눌리고 긁힌 목과 팔의 상처를 정성껏 치료하고, 피부에 묻은 먼지를 닦아 주었다. 그러다 리안이 문득 의식을 차리고 희미하게 눈을 뜨면, 제이디는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괜찮아요, 리안. 좀 더 쉬어도 돼요.”
“…….”
리안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하길 며칠. 마침내 리안이 선명한 정신을 되찾은 것은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갇혀 결박되었지만, 실험을 할 만큼의 기력은 회복되었다.
정신을 차린 리안은 가장 먼저 시야에 잡힌 여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역병을 치료할 실마리를 알아낸 모양이군요.”
어느새 조금 자라 그의 눈을 찌르고 있는 금발 머리카락을 제이디가 쓸어 올리며 안색을 확인했다. 제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고 돌리는 제이디는 여전히 황실 연구원 차림이었다.
“제가 역병을 연구 중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을 텐데요.”
“이단 처리에 혈안인 황실을 움직일 단 하나의 카드가… 그것이니까.”
“…….”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뜨문뜨문 말을 이어 가는 그는, 조금 회복되었다 해도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내색 한번 없이 제이디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제… 날 아프게 할 차례군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직 회복이 덜 되었을 테지만, 리안. 시간이 없어요…. 미안해요.”
“사람의 고통이라는 건, 느낄 수 있는 한계치가 정해져 있으니까… 나에겐 익숙해.”
그동안 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는 뜻일까?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제이디는 어디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은인은 죽어 가고 있고, 자신은 그런 그의 죽음을 이제 더 부추겨야만 한다. 그 운명을 못내 감당하기 어려워 도무지 말을 고르지 못하는 제이디에게, 뜻밖의 화제가 날아들었다.
“내 편지… 왜 읽지 않았습니까.”
그의 녹색 눈이 제이디의 시선을 붙잡았다. 제이디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시선을 피했다. 차마 그의 혼약설을 전해 듣고 그를 의지하던 마음을 접어 버렸다,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이후 그것이 제가 생각했던 정혼의 개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제이디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 와서 그 당시의 감정을 되돌아볼 여유나 이유 따윈 없었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요.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니까, 그런 말도 이제는 의미 없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나에게 별다른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긴 중요하지 않아요.”
“…그 시계. 여전히 가지고 있네.”
제이디의 손으로 시선을 내린 리안이 말했다. 흐뭇함이 묻어나는 어조가 상황과 맞지 않아 제이디는 의아했다. 동시에 무안해져 괜스레 왼 손목을 감추며 시선을 내렸다.
그날 졸업 무도회를 떠나 3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괜한 오기에 그의 편지를 확인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제이디는 그가 딜레앙 백작일 적 제게 선물한 손목시계를 단 한 번도 손목에서 빼지 않았었다.
오래되어 당연히 낡고 해지고 흠집도 많이 난 그 시계를 알아본 리안이 다정하게 웃었다.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그렇게 빛나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이해되지 않아 제이디는 혼란했다.
“제이디… 만약에 말입니다.”
반응 없는 제이디에게 리안이 재차 말을 걸었다.
“이 모든 시간을 지워 버리고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무슨 뜻이에요?”
“당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는 겁니다.”
지키고 싶은 거라면 참 많았다. 그러나 단 하나도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나의 행보 때문에 잃은 사람도 있다. 곱씹을수록 힘만 드는 기억이다. 그럼에도 만약, 만약에.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그 누구도 잃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제이디. 개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만의 길을 닦아야 해.”
노을 아래 빨갛게 타오르는 머리를 흩날리며 그렇게 말하던 어머니를 보고 싶어. 헛된 소망이지만.
극복하지 못한 상처들을 재빠르게 묻어 버린 제이디가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괴롭네요… 희망 고문 같아서.”
“언젠가, 그 언제라도 내게 말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그래요. 날 아프게 할 계획은 잘 짜 왔는지 궁금하군요. 제국민의 유일한 희망이 겨우 이 대역죄인 둘이라니 우습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째서 이토록 여유로운 거지. 자꾸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이디는 리안 베르딘 또한 저처럼 모든 걸 포기한, 잃을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더 나누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제이디는 마지막으로 리안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리안. 황제의 ‘화원’이 뭔지 아시나요?”
리안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멀찍이 철창 밖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자카르 아르디오스가 다가왔다.
“사담이 길군.”
또 다른 목소리에 고개를 든 리안이 자카르의 시선을 마주했다. 제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생소한 호박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본 리안이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인사를 건넸다.
“친위대장 자카르.”
“…….”
“오랜만이군요.”
자카르는 저를 알아보는 리안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간 평민 시계공으로 위장한 뒤 전투에 참여했다고 들었으니, 어느 전투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친위대는 황명이 아닌 이상 황족의 호위를 하느라 궁정을 벗어나는 법이 잘 없었다.
자카르는 곧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날이었다. 제이디 헤이스터를 잡기 위해 아카데미 무도회 홀을 습격했을 때, 리안 베르딘 역시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허한다. 속히 진행해.”
먼저 시선을 돌린 자카르가 제이디에게 명했다.
따뜻한 물에 적신 물수건으로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리안의 얼굴을 닦아 준 제이디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시약들을 넣어 온 가방을 열려는데, 손이 떨려서 도무지 약을 꺼낼 수가 없었다.
“…….”
울먹이며 망설이는 제이디를 리안이 가라앉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가장 몸이 아픈 사람이, 오히려 제이디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양.
“해야 합니다.”
“…네.”
“어쩌면 내가 봤던 미래가 이것일 수도 있겠어.”
그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리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소매를 걷어 올린 제이디는 온통 상처와 흉터로 얼룩덜룩한 팔을 마주하고 멈칫했다. 그 팔에 상처를 더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널브러진 100구의 시체 속에서도 담담하고 강인했던 자가 고작 한 사내의 상처 많은 팔을 보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자카르가 묵묵히 지켜보았다.
눈물을 닦아 낸 제이디가 리안의 팔에 역병을 발현시키는 시약을 먼저 투입했다. 약속했던 100일이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20일. 오늘 리안이 성공적으로 병에 감염되면, 3일 안에 리안에게 유효한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는 죽고, 실험은 실패하고, 다른 실험체를 구해야 한다.
리안의 몸속에 들어간 시약은 혈관을 타고 빠른 속도로 퍼졌다. 그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자, 제이디의 손이 빨라졌다.
“다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상태가 이상해진 리안을 보며 겁에 질린 경비대원, 궁정 간수 등이 저마다 면포로 코와 입을 단단히 봉했다. 다들 ‘마녀’의 실험을 목격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에 무언가를 주입해 멀쩡한 사람을 순식간에 역병 환자로 만드는 것도 ‘마법’ 같았고, 옥중에 잔뜩 펼쳐진 알 수 없는 물약 같은 것도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황성 밖에는 신성 마법 없이도 사람 몸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자들이 있다’.
‘이단’, ‘마녀’ 등으로 불리며 자비 없이 처형당하던 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던 거구나.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서 모두 눈을 떼지 못했다.
“리안, 증상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때가 생각나.”
“네?”
“나한테, 이상한 풀을 먹였었지….”
“리안, 정신 차려요.”
콜록거리다가, 숨을 몰아쉬다가. 갑자기 몰려오는 농축된 증상에 제정신을 못 차리는 리안이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날,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
“운명이, …참, 가혹하지.”
제이디는 정신없이 움직이며 증상별로 효험이 있는 물약을 골라냈다. 리안의 허파에 귀를 대 보고. 호흡의 온도가 어떠한지, 열은 얼마나 나는지, 마비는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그리고 정확히 통증이 발현되는 부위가 어디인지 등.
마침내 정신을 잃기 직전, 리안은 스물둘 제이디에게서 5년 전 열일곱 소녀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걱정 말아요. 이번엔 그리 쉽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해요.”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때 그 소녀의 눈빛에서 읽히던 신념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리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분명 확신의 미소였다.
리안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제이디는 적절한 약물을 투여했다. 알려진 역병 환자의 최대 생존일은 3일. 리안은 7일이 넘게 살아 있었다. 제이디는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묽게 갠 죽만 마셔 가며 24시간 리안의 곁을 지켰다.
리안은 죽어 가다 살아나고, 다시 죽어 가다 살아나는 과정을 반복했다. 총칼에 맞고, 독에 걸리고, 살상 마법을 맞았을 때도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리안의 팔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주삿바늘 자국이 생겼다. 제이디는 필사적이었다.
다들 그녀가 실패할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제국 역사상 신성 마법이 해결 못 한 병을 치유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제힘을 증명하겠다며 발악하는 제이디는 그저 비웃음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곧 반전되었다.
95일 차, 리안은 역병으로부터 무려 2주째 살아남았다.
제이디는 수십 개의 약물로 병의 진행 경과를 일일이 막아 가며 마침내 역병에 효험이 있는 약물 몇 가지를 혼합해 농축할 수 있었다.
98일 차. 리안의 증상이 호전되었다.
100일 차. 리안의 병증이 거의 소멸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궁정 회의에 전해졌다.
【제국력 833년 봄, ‘마녀’ 제이디 헤이스터 역병 치료 성공】
수백만 남부인의 생명력을 좀먹고 북향하는 정체불명의 전염병. 제국 곳곳에 내전을 일으킬 만큼 파급력이 컸던 그 병을 어린 ‘마녀’ 하나가 고작 100일 만에 해결했다.
신성 마법의 권위를 땅에 처박는 ‘마녀’의 위엄 앞에서, 궁정 내 모두가 신앙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제이디 헤이스터는 황실의 위상을 무너뜨릴 이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