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8)화 (9/116)

주황빛 조명이 밝힌 비밀 연구실은 소담했다. 천장까지 뻗은 나무 선반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고 목재 연구대 위에 각종 화학 실험에 사용되는 유리 플라스크 등의 도구가 놓여 있었다. 향초를 피우는 덕에 그윽한 식물의 향이 주로 공기를 메웠다.

약초 및 물약 보관대는 특별히 한 번의 잠금을 더 따야만 열리는 구조였기에 얼핏 보면 ‘마녀’의 공방보다는 괴짜 교수의 화학 연구실이란 인상을 줄 따름이었다.

이곳은 본래 아카데미 설계도에는 없다. 초기 도면을 만들 당시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으로 측량되지 못한지라 공식적으로는 ‘건축가의 실수로 막힌 곳’이다. 즉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를 수밖에 없는 공간인 것이다.

로건의 스승은 로건만큼 엉뚱하고 불순하였는데, 그 스승의 스승의 스승을 거슬러 올라가며 쓰던 연구실이라 하니 가히 아카데미의 역사를 함께한 비밀 공간인 셈이다. 학생일 때부터 이곳을 눈독 들였다던 로건이 역시나 이어받아 대대손손 사제 관계를 통해서만 전수되고 있다.

환기되지 않는 밀실에서 또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 로건을 짜증스럽게 노려보던 제이디가 코를 비비며 제 책상에 앉았다. 진짜 내 숨통을 위해서라도 다른 연구실을 구하든 짓든 해야지, 원!

두 사람은 현재 해독초 연구에 한창이었다. 본래라면 ‘해독’이란 신성 마법의 독자적인 한 갈래로 알려져 있으나 분명 민간 약초로도 해독제를 제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해독 원리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면서 해독초에서 유효한 성분을 추출해 해독제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많은 ‘마녀’의 상황과 같이 해독제를 시판할 수는 없겠지만, 강력하고 무서운 독 마법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언젠가 분명 쓰임새가 생길 것이다.

머리를 대충 말아 묶고 안경을 고쳐 쓴 제이디는 어제 해 놓은 연구를 되새기며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찍. 찍찍.

쥐 케이지 앞에 놓인 공책에 세인트아마딜리아 초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에는 화학 공식과 다양한 가설, 증명 등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 막히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제이디는 며칠을 찝찝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오늘도 야심한 시간에 이곳에 나오게 됐다.

【세인트아마딜리아를 생초로 먹었을 때, 과연 안전할까?】

그게 문제였다. 약초에서 추출한 성분이 유클라디오 독즙에 즉각 반응하던 걸 보면 굉장한 효능이 있는 듯한데, 자꾸만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가열한 뒤 만든 물약은 괜찮은데 과연 생으로 먹었을 때도 괜찮은지, 체질에 따라 효과가 다르지는 않은지… 즉 부작용 연구가 미흡했다. 그래서 제국군과 혁명군의 시가전 당시 만난 남자가 저 때문에 부작용이라도 겪지는 않았을지 걱정되었다.

물론 그 ‘걱정’의 범주에 ‘죽음’이라는 결말까지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제이디는 여전히 자신이 그를 완벽히 살려 내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직 어린 제이디는 늘 스스로가 옳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생체 실험이 필요했고, 쥐를 잡았다. 그런데… 찍. 까만 콩알 같은 눈으로 절 쳐다보며 찍찍거리는 이 작은 생명체에 도저히 독즙을 주입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제이디는 식물을 사랑하는 만큼, 동물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의학의 발전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지만…

“가여운 것….”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게 위험한 실험을 해야 한다니!

“차라리 내 몸에 해?”

위협적으로 주사기를 들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제자를 스승이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튼 수차례 쥐 사냥에 성공해도 실제 생체 실험에 쓴 적은 손에 꼽았다. 제가 주입한 약물에 찍찍거리며 고통스러워하던 쥐들을 회상하면 요즘도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그렇다고 제 몸을 쓰자니 그건 그것대로 무섭고.

케이지에 갇힌 쥐를 보며 하염없이 고민하는 제자를 흘긋거린 로건이 고개를 저었다. 저리 마음이 약해서야.

“그러게 지금부터라도 마법 행정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거다.”

“언젠가 제 열정이 동정심을 이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쥐 새끼 하나 못 잡아서 끙끙거리는 녀석이 무슨 수로 약학을 하겠다고.”

“쥐 새끼가 아니라 알프레드요.”

“…….”

이번엔 알프레드냐? 소피아, 크리스티, 프레드릭, 노아…. 로건은 탈주하거나 실험당하거나 수명이 다해 죽어 나간 제이디의 쥐들을 떠올렸다.

제이디는 특히나 프레드릭이라는 갈색 생쥐 녀석을 살뜰하게 보살폈는데, 어느 날 프레드릭이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케이지를 갉아서 도망쳤을 때 몇 날 며칠을 슬퍼했더랬다. 로건이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철제로 된 튼튼한 새 케이지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앞길도 창창한데 더 코 꿰여서 내 꼴 나지 말고 다른 진로를 알아보도록 해. 아직 안 늦었어.”

제이디는 최근 자신이 졸업반 진학을 앞두자 로건의 걱정이 부쩍 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이디는 재미있었다. 스승에게는 어쩐지 괴롭혀 주고 싶은 구석이 있었다.

“‘내 꼴’이라 하면 졸업하고 타지에서 연구하다가 도망치고, 쫓기고, 이혼당하고 양육권도 뺏기고, 신분 세탁해서 황실의 개로 일하다가 아카데미로 발령돼서 재미없는 화학이나 대충대충 가르치다가, 천둥벌거숭이같이 들러붙는 제자한테 시달리면서 결국 창문 한 짝 없는 지하 쪽방 연구실에 갇혀 사는 거요?”

“…….”

“그러다 나름대로 애지중지 가르친 제자가 싹수없이 말하는 본새까지 대물림받은 것마저 알고 지금 교수님처럼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추가.”

“그래, 누가 널 가르쳤냐. 내가 가르쳤지.”

로건은 꽤나 자조적으로 말하고는 했지만, 제이디는 알았다. 오래 가르친 제자가 정말 안전하고 돈 되는 길로 전향한다면 그가 얼마나 쓸쓸해할지.

“저 졸업하면 쓸쓸하셔서 어떡해요?”

“괜히 아카데미 밖에서 연구하다 걸려서 나 끌어들이지나 마. 이제 조용히 좀 살자. 제자 같은 거 한 놈만 더 뒀다간.”

“스승이 학생한테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너 요즘 자주 새삼스럽다.”

후우, 흩날리는 담배 연기 너머 조명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 주황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지나고 보면 저 담배 냄새조차 그리워질 날이 오려나. 턱을 괴고 알프레드의 케이지에 빵 조각을 넣어 주며 제이디는 사색에 빠졌다. 달 밝은 어느 날의 한밤이었다.

*  *  *

토요일.

시가전이 있고 보름이 지났다. 제이디는 의료 봉사를 위해 소년공이나 입을 법한 멜빵바지를 입고 베레모로 머리카락을 가린 뒤, 로건 교수와 광장 거리를 찾았다.

황실 마법대의 습격을 받은 광장은 여전히 복구가 한창이었다. 황실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고도 가난한 자들은 신성 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해 생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원망의 화살이 제대로 황실을 향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혁명군 탓이라는 정신을 황실이 교묘히 주입 중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선전은 혁명군 쪽도 지지 않기에 일각에서는 황실을 향한 ‘불순한’ 분노를 꾸준히 키워 갔다. 반란기는 그렇게 고조되고 있었다.

민간 의술은 의술대로 탄압하면서, 무고한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고도 무상 치료를 해 주지 않는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이건 너무 부조리하잖아요.”

로건 교수는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두 사람 선에서 치료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다닐 뿐이었다. 그래. 이럴수록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하자.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 내고 제이디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어느 골목길 한편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돈을 낼 수 없다면 도와줄 수 없다지 않소.”

“치료비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이러다 팔이 떨어져 나가겠어요…!”

“나도 도와주고는 싶지만 협회 규율이 그렇다니까!”

저리 비켜! 신성 마법사로 보이는 누군가가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주민 하나를 매정하게 차 떨어뜨렸다.

흙바닥에 엎어진 여인이 마른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에 남자 하나가 팔을 붙들고 신음을 흘리며 골목 벽에 기대 있었다. 소란 통에 주변을 거닐던 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로건이 어깨에 멘 가방을 내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로건의 표정이 좋지 않아 제이디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부상은 시가전 당일에?”

“실례지만 누구신지….”

“경위를 자세히 설명할수록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신데 함부로…!”

“아악!”

통증을 호소하는 남자를 골목 바닥에 평평하게 뉜 로건이 그의 소맷단을 찢어 낸 뒤 상처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잠시 후, 로건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문제가 되는 오른팔은 마치 피가 찬 물 풍선처럼 검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으며, 환자는 열이 올라 몸 전체가 불덩이처럼 뜨거운 상태였다.

난데없이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에 아내인 듯한 여인이 기겁을 하며 초조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변장을 하기 위해 두 사람 모두 초라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던 데다, 로건은 수상해 보이는 수염까지 붙인 채였다.

“감염이다. 너무 늦었어.”

로건이 단번에 진단을 내렸다.

“아직 의식이 있는데요?”

“그래. 통증이 심할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당신들, 도대체….”

남편에게서 두 사람을 떼어 내려는 여인의 손길에 잠자코 끌려가며 로건이 심각한 얼굴을 숨겼다.

“이미 늦었다는 말입니다. 이 팔은 살릴 수 없어요.”

“그, 그럼… 그럼 어찌해야….”

“감염이 더 퍼지기 전에 팔을 잘라 내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어느새 옹기종기 주변을 둘러싼 행인들이 수상한 수염을 단 사내의 말을 듣고서 기겁하듯 탄식했다. 혼비백산한 채 남편의 곁을 지키던 여인의 얼굴은 급기야 혼절할 듯 창백하게 질려 갔다.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뭐 하시는 분인데 남의 팔을 자르네 마네 하는 거예요?”

“자, 잘라 주시오…! 잘라서 이 고통이 없어지는 거라면! 차라리 팔을 잘라 달라고!”

사경을 헤매던 남자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여보! 이자들을 어떻게 믿고 그런 소리를 해요! 조금만 기다려요,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타스 씨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시간이 없습니다. 곧 혼절하게 되면 당장 몇 시간을 넘기는 것도,”

“안 돼요! 팔을 자르다니!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여인은 재차 안 된다고 소리치며 로건을 만류하더니, 그들을 빙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무리로 달려가 엎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저희 남편을 좀 도와주세요…! 빚은 어떻게든 갚을 테니 누구라도 제발…!”

고상하게 차려입은 귀족 내외의 다리를 붙들고서 하소연하는 아내를 치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던 남편이 이를 악물고 로건의 팔뚝을 붙잡았다.

“사지 한 짝 치료하는 데만 몇백만 에크론이 든다고 알고 있소. 단번에 할 수 있는 자도 드물고 말이오.”

“그렇습니다.”

“우리 형편에, 돈을 구한다고 해도 그만한 액수를 갚는 것은 무리일 거요.”

“…….”

남자는 까무룩 정신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다급하게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내 자네들을 처음 보네만, 나 또한 상인이라 이리저리 주워들은 바 있어. 황성 밖에는 마법이 없어도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뒷일은 생각 말고, 어떻게든 조치를 해 주게나. 부탁하네…!”

로건의 팔목을 붙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식은땀에 젖은 잿빛 머리카락이 먼지투성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사내의 진심이 절실하게 전해졌다.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로건이 마침내 두어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웅성웅성, 떠들썩해진 주변 사람들을 물리며 로건은 가죽 가방에서 잘 벼려진 수술 도구들을 꺼내었다. 서둘러 수술을 준비하는 로건의 곁에 바짝 다가가 앉은 제이디가 침착한 척 애쓰며 조수로서 지시를 기다렸다.

“마취제와 지혈초를 준비해.”

그의 은밀한 지시에 물약 가방을 뒤적이던 제이디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교수님, 최근에 마티 씨에게서 마취초 수급이 안 돼서….”

마티스는 매주 일정한 삯을 받고 아카데미 밖에서 두 사람에게 약초를 공급해 주는 조력자였다.

“뭐?”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이런….”

절단 수술을 마취 없이? 전례가 없진 않았으나 자칫하다가는 감염이 아니라 쇼크로 죽을지도 몰랐다. 생살이 찢어지고 뼈가 잘리는 고통을 정신력으로만 견뎌 내야 했다.

어느새 남편 곁으로 돌아온 아내가 그의 다치지 않은 쪽 손을 꽉 붙잡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고 있었다. 역시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아내 또한 현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절단용 칼을 들고 망설이는 로건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제이디가 그를 막아서고서 아내에게 말했다.

“인근에서 가장 독한 술을 구해 오세요.”

“예…?”

“정신을 잃을 만큼 독한 술이요!”

순간 벙찌다 곧 말귀를 알아들은 여인이 손바닥을 치맛자락에 닦으며 재빨리 일어서 어딘가로 빠르게 달렸다. 그사이 로건이 구경꾼 중 장정 서너 명을 불러 남자의 사지를 각각 붙들도록 했다.

“교수님…!”

제이디가 정말 절단술을 진행할 거냐는 의문을 담아 속닥거렸다. 말이 없는 로건은 식은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우리만치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에 제이디는 초조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여기요! 술을 가져왔어요!”

마침내 여인이 인근 술집 주인이 기꺼이 내준 독주를 로건에게 전달했다. 로건은 술병 뚜껑을 연 뒤 혼절 직전인 남자의 턱을 열고 당부하듯 말했다.

“차라리 정신을 놓는 게 좋을 겁니다.”

매우 고통스러울 거라는 뜻을 이해한 남자가 눈을 감으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으로 단번에 술이 흘러 들어가고, 로건이 칼을 쥐었다. 장정 여럿이 남자의 사지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결박했다.

마침내 칼끝이 생살을 파고들자, 악몽과도 같은 비명과 누군가 구토하는 소리,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제이디는 수술의 모든 과정을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피만큼 뜨겁고 붉은 기운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사내는 왜 팔을 잃어야만 하지?

…왜?

처음부터 적절한 물약이나 환으로 처치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합법적인 유통망이 없으니 구하지 못해.

왜. 어째서.

어느새 부조리와 분노를 자양분 삼아 자란 어떠한 열망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이거 놔요, 제발! 우리 엄만 아무 죄도 없다고요!”

“가만있지 않으면 너도 마녀의 딸로 체포되는 수가 있어!”

불현듯 찾아온 그 감정은 낯설지 않았다. 제이디는 정신을 잃은 사내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아내는 까무러칠 듯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가 어느새 시리도록 차가운 냉정을 되찾고 가라앉은 채였다.

체념, 분노, 슬픔, 우울, 그리고 싹트기 시작한 반항. 그녀의 눈에도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제이디는 어째서 일부 제국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군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세계는 지금,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