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원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1)화 (2/116)

Ⅰ. 불순분자




스물한 번째 우주, 제국력 828년.

황성 록펠라 광장.

콰앙─!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강타했다.

제이디는 번쩍 눈을 떴다. 땅바닥에 엎어져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눈을 뜨자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 탄 것처럼 시야가 울렁였다. 눈앞에 자신의 손가락이 보였다.

움찔, 흙먼지로 지저분해진 손가락이 움직였다. 흐읍, 날숨이 들어가자, 폐부가 부풀어 올랐다. 제이디는 물에 빠졌다 건져진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쾅! 쿠궁─!

다시금 굉음이 온몸을 덮쳤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석조 건물이 허공에서 날아든 불덩이에 맞아 터져 나갔다. 그 파편이 지나가는 제국민들의 머리와 몸에 날아들어 박혔다.

“아악!”

“여기 좀 도와주세요! 아이가 있어요!”

혼비백산한 행인들이 저마다 울부짖으며 도움을 구하거나 도망쳤다.

“포격해!”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리고, 탕─! 귀를 찢을 듯한 총격이 시작되었다.

‘소리가….’

안 들려.

마치 물속에 빠진 듯 귀가 먹먹해졌다. 숨을 몰아쉬던 제이디는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을 듯 눈을 깜빡거리며 초점을 잃어 갔다. 먼지투성이 얼굴은 사고하기를 포기한 듯 그저 멍한 채였다.

“아가씨, 얼른 일어나요!”

그때, 생선 매대 뒤에 숨어 있던 한 여인이 외쳤다. 그녀는 쓰러진 제이디를 발견하고 재빠르게 기어 와서는 제이디의 겨드랑이에 양팔을 끼었다.

그리고 우악스레 기합을 내지르며,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끌어 생선 매대 뒤로 옮기기 시작했다. 공격을 당한 듯 한쪽 다리가 피투성이였지만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게… 무슨….”

“보아하니 영문도 모르고 휘말린 모양인데. 오해하지 말아요. 황실 쪽에서 먼저 공격했으니, 혁명군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는, 잘….”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몇 차례 더 제이디의 상체를 끌어당겨 필사적으로 움직인 여인이 마침내 매대 뒤로 완전히 몸을 숨겼다.

콜록! 콜록, 콜록! 매캐한 먼지가 들어간 제이디의 목에서 발작적인 기침이 튀어나왔다. 여인은 매대에 달려 있던 물주머니를 빼내 제이디의 입가에 흘려 넣었다.

쿨럭, 물을 마시면서도 기침을 내뱉던 제이디가 곧 진정되었다. 그러자 여인은 남은 물을 제이디의 얼굴에 뿌려 먼지를 닦아 주었다.

“엄마아!”

여인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겁에 질려 바들거리며 엄마를 불렀다. 마음이 급해진 여인이 제이디의 손에 물주머니를 쥐여 주고서 당부하듯 말을 전했다.

“몸에 물을 끼얹고 최대한 빨리 달려요. 명심해요. 혁명군 진영에 섞이면 표적이 될 수 있으니까, 꼭 골목으로 도망쳐야 해요.”

그때였다.

쾅!

또 한 채의 상점이 불 마법 공격에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다시 한번 엄마를 보채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도망치려는 여인의 앞치마를 제이디가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여인은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비장한 듯도 했고, 안쓰러워하는 듯도 했다. 제이디가 손에서 힘을 풀자마자, 여인은 뿌연 연기 속으로 달려 나갔다. 제이디는 그 모자에게 부디 변고가 없기를 바랐다.

‘정신 차려.’

지금 자신이 위치한 록펠라 광장은 불 마법으로 공격당하고 있었다. 화재 상황 한복판이라고 보면 되었다.

콜록, 몇 모금 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 제이디는 물주머니를 정수리에서 뒤집어 남은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버려진 생선 매대 옆에 놓인 물 양동이까지 덮어쓰며 온몸을 적셨다. 생선을 헹궜던 물인지 비린내가 진동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들. 공기 중에 자욱한 화약 냄새.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새까만 재.

제이디는 정신을 차린 지금에서야 드디어 알아챌 수 있었다. 황실 마법대와 혁명군의 게릴라전이다. 정보꾼들이 그간 전단과 잡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알려 왔기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만. 하필이면 룸메이트인 휘노와 함께 간만에 외출을 나왔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으… 아. 아파.”

아무래도 헌책방을 둘러보려고 휘노와 헤어지고서 폭발의 여파에 휩쓸린 것 같다. 머리, 어깨, 허리, 무릎, 발목… 온몸이 쑤셨다.

탕!

“꺄악!”

총소리가 들리자 제이디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귓가에 가져간 양손이 주체할 수 없이 바들바들 떨렸다. 얼른 일어나서 여인이 알려 준 방법대로 도망쳐야 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제이디는 주문을 외듯 스스로에게 되뇌며 공황에 빠질 것 같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지가 사정없이 파들거려서, 도무지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을 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서, 서로 대항하는 두 세력을 살펴보았다.

게릴라전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한편에는 고급스러운 옷감으로 제작된 하얀 제복과 로브를 똑같이 갖춰 입은 무리가 있었다. 황실 마법대였다. 그들은 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불 마법 주문을 외며 무차별적으로 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인명을 무시하고 살생 마법을 사용하다니…. 아카데미에서 배운 바와 달랐다. 마력이 없는 인간을 상대로 하는 공격 마법은 제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나.

겁에 질린 제이디의 눈동자에 또다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가 맺혔다.

…죽는다. 맞으면 죽는다.

제이디는 본능적으로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쾅!

대지가 흔들렸다. 건물과 사람이 불에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옥도 한복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장전!”

다른 한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황실 마법대와는 달리, 어딘가 좀 더 범속하고 실용적인 옷들을 갖춰 입은 개성 있는 무리가 총을 들고 반격하고 있었다.

마법과 기술의 대결. 요약하자면 그러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원드와 총구를 들이대며 살생을 자행하다니. 내가 이 전장 한복판에 휘말리다니.

“미쳤어….”

허탈함에 이제는 충격을 넘어 실소가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이 무슨 미친 상황이냐고요….

“말세다.”

말세가 틀림없었다.

“어떡하지. 하, 어떡해.”

제이디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몇 차례 더 떨리는 숨을 몰아쉬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셋 하면 달리자.’

여기 계속 숨어 있는다고 목숨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지옥도에 떨어진 이상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건사해야 했다.

‘하나,’

웅크려 있던 제이디가 바닥에 두 손바닥을 짚고 자세를 바꿨다.

‘둘,’

숨을 들이켰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눈동자를 재빠르게 굴려 목적지가 될 만한 골목가를 발견했다.

‘…셋!’

그리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공중에 총알과 불이 날아다니는 전쟁 통 한복판을 헤치며,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터져 버린 상점 건물의 파편에 걸려 넘어지고, 뒤통수 바로 뒤로 날아가는 총알을 느끼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운석이 자신을 뒤따라 달리던 누군가의 정수리에 명중해 끔찍한 비명이 들렸지만…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로 했던 으슥한 골목가에 몸을 숨기는 것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안심하지 않고 한참을 더 달려 더욱 깊숙하고 어두운 골목으로 흘러 흘러 들어갔다.

“헉… 헉….”

마침내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털퍼덕, 바닥에 엎어져 숨을 골랐다.

“하… 씨… 겨우 살았어! 하.”

생존을 실감하기도 전에 기운이 쭉 빠져 제이디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그녀는 호흡이 진정되자 사위를 둘러보았다. 삐걱거리는 낡은 간판들에 적힌 글씨를 보니 술집이 모인 골목인 듯했다.

마침 유리창이 옆에 있어, 그곳에 비친 제 모습을 살펴보았다. 묶거나 땋지 않아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은회색 머리카락이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난리 통에 짝을 잃어버린 로퍼에다 잔뜩 먼지 묻고 구겨지고 해진 아카데미 교복. 어깨에 멘 네모난 갈색 가죽 가방. 거기다 생선 물을 뒤집어써서 그런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왠지 시야가 뿌예서 거슬렸는데, 안경에도 먼지가 허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제이디는 얼굴에서 안경을 떼어 내 알을 슥슥 닦았다. 그리고 다시 착용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거닐었다.

무릎이며 팔꿈치며 쓸린 상처가 따갑고 아팠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근처에서는 꼭 쥐라도 나올 것처럼 쿰쿰한 냄새가 올라왔다.

‘기숙사는 정반대 방향인데. 휘노는 어떻게 됐지….’

자신은 헌책방을 구경하기 위해, 휘노는 악기점에 들르기 위해 잠깐 헤어졌었다. 휘노를 찾아서 기숙사로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전쟁 통을 다시 뚫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황성에 온 이후 기숙사에만 갇혀 살아서 지리도 잘 모르고….

“아…!”

그때 발바닥에 술병 파편이 콱, 박혔다. 하필 로퍼를 신지 않은 발로 밟는 바람에 길바닥 사이사이 끼인 흙탕물과 이물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단 조금 더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잠시 절뚝이며 걷는데, 어두컴컴한 골목 한편에 한 인영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사람?’

호기심을 느낀 제이디는 겁도 없이 그 사람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는 시계공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단추가 뜯어진 하얀 튜닉은 피투성이였고, 색이 어두운 바지는 흙탕물과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

허리띠에 연결된 회중시계가 지저분한 바닥에 흘러 떨어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양각이 고급스러운 것이 평민이 소유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특이하게 생긴 총 한 자루가 무방비하게 놓여 있었다. 그걸 발견한 순간 제이디는 긴장감에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제국군이 들고 다니는 총검이 달린 길쭉한 머스킷이 아닌, 처음 보는 모양새였다. 섬세한 금장으로 장식되어 최고급 공예품 같아 보이기도 했으나 위협적인 건 확실했다.

남자는 딱 봐도 사경을 헤매는 듯했다. 아마 크게 부상을 당해 저처럼 몸을 숨긴 모양이다. 음침한 골목 벽에 등을 기댄 채 시근거리며 고통을 삼키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어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괜찮으세요…?”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 보았다. 반응이 없자, 제이디는 쩔뚝쩔뚝 가만히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제이디는 약초와 의술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정통 신성 마법으로 권력을 얻은 황실이 민간 의술 연구를 금기시하고 있어 이단 학문 취급을 받지만.

제이디는 황족이나 귀족과는 달리 마력이 전혀 발현되지 않는 평민 출신이기에 회복 마법을 배울 수 없었다. 대신 뜻을 같이하는 로건 교수와 함께 3년째 아카데미에서 은밀히 민간 의술을 연구해 오고 있었다.

황립 아카데미 소속으로서 ‘마녀’들이나 쓸 법한 방법으로 혁명군을 도운 걸 알면, 단순한 처벌로는 끝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치료술을 공부하는 사람의 본능일까… 어쩐지 아파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 쓰러진 남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여 절로 눈썹이 축 처졌다. 무엇엔가 공격당한 듯한 옆구리가 까맣게 괴사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찢긴 팔다리에선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인기척을 감지한 남자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제이디를 바라보았다. 탄탄한 흉곽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소낙비를 맞은 나무를 연상하게 하는 진갈색 머리, 그리고 마주치자마자 빨려 들어갈 듯한 진녹색 눈동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눈빛에 어째선지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치 야산에서 다친 맹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꼭 신비로운 밤의 숲에 이끌리듯, 제이디는 멍한 눈으로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이건 정말이지…

‘잘생겼다.’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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