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러게 왜 이런 짓을 벌인 겁니까?
조원식은 언론에 나간 기사를 두고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다.
분명 이런 류의 보도는 아예 하지 않기로 합의가 됐었는데, 그동안 소영하의 방탕한 행적을 시작으로 상세한 스캔들 기사들이 하나둘 도배되기 시작했다.
[스타의 위험한 외출]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을 시작으로 여자와 함께 집에 들어가는 사진까지.
이제는 흐지부지된 소영하의 결혼설까지 불거지며 소영하의 일반인 여자친구가 장미가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아가씨가 도착했습니다.”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중요한 시기다.
장미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여기저기에 두루 혼담을 넣고 있지만, 조원식은 아직 진무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 목숨 질긴 석민재만 제거한다면. 망연자실한 무혁은 다시 제품에 돌아오게 될 거라고 믿었다.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몇 해를 공들였는데, 이런 일로 진무혁을 잃을 수는 없다.
허물 하나 없이 완벽하던 제 계획이 이런 식으로 좌초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빠.”
아니라고 잡아 떼기에는 두 사람의 사진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혼날 짓을 한 걸 아는 건지 장미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서재로 들어왔다.
“소영하와는 정말 그런 사이인 거냐?”
“그럴 리가 있어요? 나한텐 정말 무혁 오빠밖에 없어요!”
“그런 애가 이 시간에 남자 집에 가 있어?”
장미는 절대 아니라고 항변했다지만 방금 전까지 소영하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도 사진이 찍힌 탓에 그 입을 막는 데만도 적지 않은 수고가 들었다.
“소영하는 대체 왜 만난 거냐.”
“무혁 오빠한테서 석민재를 떼 내려고 한 것 뿐이예요.”
“그래서 리조트까지 같이 간 거냐?”
조원식은 리조트에서 소영하와 함께 찍힌 CCTV 사진을 내밀었다.
익명으로 보내온 사진을 받아보고 소영하의 일정을 확인하니 두 사람은 정말로 같은 날, 같은 리조트에 묵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영화 리딩조차 내팽개치고 제 딸과 함께 그 먼 곳 까지 갔었다니.
새하얗게 질린 딸의 안색만 봐도 본인이 아니라 부정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건 무혁 오빠를 만나러 간 거였어요.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예요.”
“그 말을 어떻게 믿어!”
평생을 제멋대로인 딸이었지만 그래도 진무혁과 결혼시킬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돈으로 대학을 졸업시키고, 변변찮은 직업 하나 없이 진무혁 하나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차피 진무혁의 아내로 제 후계자를 낳아줄 수만 있다면야 그 정도는 얼마든지 봐줄 수 있었다.
“어디 놀아날 상대가 없어서 그딴 딴따라 놈을 만나?”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패악질하는 장미에 질세라 조원식도 언성을 높였다.
야심한 밤에 남자 집에 드나든 것만으로도 이미 남들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하건만.
자신 역시 평생을 그런 시선으로 봐 왔으니, 설마 그 잣대가 제 딸에게 지워지게 될 줄은 몰랐다.
“네가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한들, 누가 네 말을 믿어줄까?”
“대표님, 혜성 쪽에서 잠깐 들어오라십니다.”
“됐고, 장미 너. 당분간 외출 금지다. 카드도 모두 반납하고 오늘부터 집 밖으로 한 발 자국도 못 나갈 줄 알아.”
“아빠!!”
여차하면 비싼 값에 팔아치워야 할 딸이 조롱거리가 됐으니 그동안 들이밀어놓은 혼담도 모두 허사가 될 판이다.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인지. 한 집에서 오누이처럼 자란 진무혁은 말하기라도 좋지, 밤마다 클럽을 전전하는 딴따라와의 스캔들은 그조차도 이렇다 할 변명을 내놓기 어렵다.
“이사님, 조원식 대표 들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달려온 조원식 쪽은 쳐다보지 않고서 성준범은 엎드린 사람들의 엉덩이 위로 골프채를 휘둘렀다.
“내가 너희를, 이따위로 굴라고, 월급 주고 데리고 있는 줄 알아?”
한번 말이 끊길 때마다 풀스윙으로 내려치는 골프채가 엎드린 매니저들의 엉덩이를 후려갈겼다.
신음 하나 내지 못하고서 묵묵히 맞고 있는 매니저들 너머로 동쪽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이사님.”
“나가 봐.”
성준범의 축객령에, 매니저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기어가듯 사무실을 나섰다.
피범벅이 된 아이언 드라이버를 꽉 쥐고서 성준범은 이제야 조원식 쪽을 바라봤다.
“이건 대체…….”
“그러게 왜 이런 짓을 벌인 겁니까?”
성준범의 질문에 그 조원식조차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제 딸이라 옹호하는 건 아니라지만, 장미도 애가 타서 몰래 저지른 일이라고 하고.
애초에 조원식은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지시한 일이 아닙니다. 분명 뭔가 오해가…….”
“석민재는 어떻게 됐습니까.”
진작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석민재에게 손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이번만은 정말로 끝장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매번 알 수 없는 방해로 애꿎은 조직원들만 대대적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경호가 삼엄해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매번 핑계는 좋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제에.”
“이사님.”
“대표님도 엎드리죠. 제가 따님을 때릴 수는 없잖습니까?”
진심 어린 성준범의 말에 조원식은 이를 악물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주제도 모르고 저따위로 입을 놀리다니.
온갖 욕설을 삼키며 조원식은 애처로운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릎을 꿇으라고 한 적은 없을 텐데요.”
“이사님!!”
“CF 세 건이 날아간 것만 해도 삼십 억, 무마용으로 홍보 기사에 광고비에. 내려갈 주가까지 합치면 못 잡아도 손해가 백억은 족히 나올 것 같은데.”
손가락을 헤아리며 떠드는 내용이 기가 막히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토를 달 수도 없다.
자식을 잘못 둔 죄인이라 그는 제 아들뻘인 성준범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따님을 팔아서 그 돈을 메꿔줄 것도 아니고, 몇 대 맞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차라리 지금 당장 쳐죽일 수라도 있으면 속이 시원할 텐데, 이제 와 판을 엎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막 떠오른 아침 해는 오늘따라 피처럼 붉다.
그 빛을 뒤로하고 활짝 웃는 성준범을 보며 조원식은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
대표적인 한류스타 소영하의 스캔들이 터지며 그간 묻혔던 사건까지 모조리 터져 나왔다.
[스타의 위험한 외출]
스타커넥트 김영룡 기자를 필두로 그간 소영하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지며 상대인 조장미마저 덩달아 신상을 털려버렸다.
“상대는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 대표의 딸 조 모양으로, 아예 대놓고 이름을 써놓지. 진짜.”
내용을 훑어보며 A&Z 문성희 변호사는 대놓고 혀를 찼다.
기사만 봐도 알 사람은 다 알아볼 수밖에 없게 써놓았으니 이래서야 쉬쉬하고 넘어가기는 완전히 글렀다.
“얘네 리조트에서도 만났었다는데?”
“뭐야, 저때면 분명 변호사님이 갔을 때 아니었어요?”
“와. 이 좋은 구경을 놓치다니 대박이네 진짜.”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사무실을 둘러보며 민재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안 팀장의 성화에 오랜만에 출근했는데 아침부터 엉뚱한 스캔들로 온 회사가 들썩였다.
“민재 씨!”
“응. 오 대리.”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주말에 그거 봤어?”
토요일 밤에 터진 대형 스캔들은 주말을 불태우고도 모자라 월요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일요일에는 칭얼대는 제레미와 놀아주느라 바빴던지라 민재는 오늘 아침에서야 소식을 들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진짜 모르는 건가 봐.”
오 대리의 말에 민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 다 제대로 시치미를 뗀 덕분에 민재도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그래도 그렇지, 얄미운 두 사람이 이렇게 얽히게 될 거라고는 민재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집에까지 들인 거 보면 사귀는 거겠지? 처음도 아니라면서.”
“거기까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민재야.”
“아, 나 결재 올릴 거 있다. 이따가 봐!”
곤혹스러운 이야기가 길어질 때쯤 뒤에서 무혁이 다가오자, 오 대리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꽁무니를 뺐다.
덕분에 살았다. 어딜 가도 소영하의 스캔들 얘기뿐이라 민재는 무혁의 손을 잡고 겨우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들 난리네, 진짜.”
“재밌게 됐지, 뭐. 난 이제 진짜 속이 시원한데.”
“사악해.”
다른 건 몰라도 지금쯤 조원식과 성준범 둘 다 얼굴이 시뻘게져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요즘 들어 다시 활발히 활동하며 슬럼프를 극복하던 소영하에게, 단순히 교제도 아니고 치정 스캔들이 터졌다.
CF에 작품에 얽힌 게 많은데, 상대가 하필이면 같은 연예인도 아니고 부잣집 딸이니 결혼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냐는 말부터 나왔다.
장미 역시 무혁과의 약혼이 파투가 난 이후 연예인과 사귄다는 소릴 듣게 생겼으니 분명 혼담에도 지장이 갈 터.
두 사람 모두 치명적인 오점이 남은 셈이니, 조원식도 성준범도 사이좋게 한 방씩 먹은 셈이다.
“하나도 안 불쌍하긴 해. 이번 기회에 둘이 진짜 잘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의아해하는 무혁의 가슴에 슬쩍 머리를 기대고서 민재는 엄지로 그의 넥타이를 꾹꾹 눌러댔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좋아해야 우리 남편은 안 건드릴 것 같아서.”
“건드리든 안 건드리든 난 어차피 민재 건데.”
“몰라, 진짜.”
“신성한 사무실에서 지금 뭘 하는 거냐?”
아침부터 사랑이 넘치는 두 사람을 보며 안 팀장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다음 날 아침 민재가 없어졌다며 집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어른들에게 왜 밤에 편의점에 끌고 나간 거냐며 혼까지 났다.
분노하는 안 대표가 불을 뿜긴 했다지만 일이 제법 꼬인 탓인지 독사파에 대한 수사는 어째 또 흐지부지될 모양이었다.
“팀장님. 오셨어요?”
“무혁이 넌 됐고 민재는 내 방으로 들어와.”
집에서는 무혁의 아내라도 회사에서는 자기 부하라며, 안 팀장은 민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무혁을 달래고서 민재는 미뤄둔 일감들을 정리해 안 팀장에게 가져갔다.
“몸은 좀 괜찮아?”
“정말 괜찮다니까요. 어른들한테도 잘 말씀드려주세요.”
“이게 지금 그냥 넘어갈 일이야? 오늘 소영하 건도 그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솔직히 말해.”
추궁하는 막내 삼촌 겸 팀장님 앞에서 민재는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인 사정을 언급했다.
계약 결혼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서, 소영하와의 만남부터 헤어진 이후 찾아온 것까지.
성준범이 자신을 왜 미워하는 지까지도 모두 얘기하자 안 팀장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성을 질렀다.
“그러니까 결국 네가 내 폰을 팔아주러 나갔다가 그 꼴이 난 거였다고?”
“뭐, 굳이 따지자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런 젠장.”
안 팀장의 심부름이 아니었다면 소영하와 만날 일도 없긴 했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는 죄 없는 책상만 내리치며 민재를 똑바로 마주봤다.
“그래서, 저쪽에서는 왜 널 죽이려고까지 하는 건데?”
“저쪽은 아마 제가 성아린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네가? 아 맞다, 너 입양아였지 참.”
매사에 원체 무심하신 상사께서는 잠시 깜빡했다며 처음부터 모든 걸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늘 스캔들을 수습하려면 저쪽도 정신이 없을 테니, 아마 당분간은 민재에게도 쓸데없는 짓은 할 수 없을 터.
“일단 나가 봐. 자료는 정리해두고.”
“네, 팀장님.”
다음 분기 정기 총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성준범의 숨통을 죌 차례다.
HS엔터 내부의 방만한 경영 자료는 물론, 소속 연예인들의 마약 투여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책임은 성준범 쪽에 돌아가게 될 터.
소영하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주말을 뒤흔든 스캔들 탓에 HS엔터의 주가는 아침부터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저쪽이 불타고 있을 걸 상상하니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다.
오랜만에 출근한 김에 밀린 건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제레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민재, 어서 와. 보고 싶어.]
“뭐라는 거야, 진짜.”
무슨 애도 아니고. 그래도 이번 일만은 정말로 칭찬해줄 만하다.
“민재 씨, 요새 많이 밝아진 것 같아.”
오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들었다.
어쩐지 정말 요즘 들어 웃을 일이 늘어난 기분이 싫지 않았다.
***
본격적으로 일이 터지며 무혁도 덩달아 바빠졌다.
주말 일을 수습할 겸 무혁은 검찰에 있는 선배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 들어와서 이젠 좀 자주 볼까 싶었는데, 결혼하더니 요샌 통 만나기도 힘드네.”
“신혼이니까요.”
“좋단다. 조원식 딸은 이젠 아예 연예인을 만나는 모양이던데?”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오늘 그것도 네 작품이냐?”
정·재계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조원식에게 이렇게 대놓고 물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선배의 물음에 무혁은 뜻 모를 미소만 머금었다.
조장미가 어떻게 되든 그런 건 제 알 바가 아니지만, 사실 무혁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독사파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슨 일이 있겠어. 위에서 그저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지 뭐.”
사정을 알아도 외부인에게 말할 수는 없는 처지니 선배는 이미 공개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간단히 짚어줬다.
“지금 국무총리 아들 건으로 내사 중인 사건도 결국엔 흐지부지됐어.”
“그것도 조원식입니까?”
“마약도 그쪽 루트를 타고 들어온 거니까. 혜성도 조만간 넘어갈 줄 알았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