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240/256)

  

110화.

아무도 우리의 결합을 응원하지 않고, 일거수일투족이 평가되며, 반쯤 미친 내가 그녀를 가둬 두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옥 같은 이곳에서 나는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녀는 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이 늘 그렇듯 불신은 그만큼의 불안을 낳는 법이다. 그녀의 자의를 그 이후로도 난 믿지 못했다.

그녀가 첫날밤부터 총을 달라고 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대체 이 황궁에서 누구를 죽이려고? 모든 전쟁은 끝났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있었다. 그런데 대체 총을 왜? 나는 머릿속에서 끔찍하게 세워지는 가설 하나를 잊으려 애써야 했다. 이곳에서 그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남편인 나뿐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래, 해. 무슨 생각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래 봤자 이 끔찍한 곳의 기한은 5년이니까. 약초학 공부를 해도 좋고, 이 방 가득 찻잎을 채워도 좋아. 네가 우려 주는 차라면 나는 언제든 기쁘게 마실 거야.”

총은 위험했다. 잘못 다루다가는 병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그녀가 다칠 수 있었다. 차를 언급한 것은 나를 죽이려면 차라리 비상을 이용하라는 뜻이었다. 미친 황제들의 여자들이 자꾸만 도망쳤듯이, 그녀 역시 내가 견딜 수 없게 될 때가 있겠지. 그녀의 손에 죽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끔찍한 가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밤 그녀의 몸을 안고 잠들어야만 했다. 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었다. 그녀는 내 곁에서 딱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비록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고 할지라도 밤마다 그녀를 끌어안고 아침에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더 내가 그녀에게 바라지 않으면 그녀는 지금처럼 곁에 있어 줄 것이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황궁에서 나가 그녀와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그녀는 바쁘다며 늘 거절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심지어 몸을 섞어도 그녀는 딱히 내게 관심이 없었다. 황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감기를 알아도 그녀는 몰랐다. 어머니가 죽은 이후 단것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황궁의 사람들이 모두 다 알았지만 그녀는 내 생일에 다과회를 준비했다. 그녀의 차를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찻잎조차 주문하지 않았다. 내게 비밀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내게 묵인하라는 요구를 했다.

반쪽짜리 그녀를 안고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나의 낙원이었다. 그녀의 알 수 없는 실루엣에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결핍으로 속이 곪아 들어가도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 낙원에서 꽃이 시들고 하늘이 불타고 숨마저 막혀 와도 그녀만 있다면…….

이 지옥 같은 황궁에서 그녀의 반짝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으면 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밭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비록 그 작은 꽃밭에서 몇 걸음만 더 내달아도 불구덩이가 타오르는 벼랑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지라도.

“캐넌에서 서신이 오고 있습니다.”

사브르가 편지 몇 통을 건넸을 때 나는 그녀가 캐넌에 가 보고 싶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그녀가 캐넌에 발걸음을 하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정정하겠다. 발걸음이 아니라, 단순히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다. 몇 통 읽어 보니 작은 마님이 그립고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뻔한 내용이었다.

“전하지 마.”

아마 내 선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브르는 서신을 그녀에게보다 내게 먼저 전했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통령님께 드릴까요?”

“아니.”

나는 캐넌이라는 두 글자를 상기하기조차 싫었다.

“그냥 태워 버려. 내게 보고도 하지 마.”

그녀를 곁에 두어서 나는 더 외로워졌다. 그녀는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이는 일 때문에 언제나 바빴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스스로가 더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 황제들이, 사랑하는 여자가 도망치려고 하면 광기에 미쳐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녀가 회의에서 캐넌을 입에 올릴 때마다, 그를 부축하며 울고 웃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이쯤에서 사소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황궁에 있던 그 당시,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얕은 애정이라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변수도 달갑지 않을 만큼 누가 봐도 우리의 관계는 위태로웠다. 자신이 1순위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내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못하는 남편. 그 사실을 그녀만 몰랐다. 그녀는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하긴.

아메탄 왕궁에서 나도 바빴었다.

그녀는 약속을 모두 지켰다. 그뿐이었다. 나도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그 미칠 것 같은 괴리 속에서 켄 카세튼이라는 영주에 대한 질투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졌다. 대체 그녀는 왜 그 남자 곁에서 보였던 그 모습을 내겐 보여 주지 않는가? 내가 그를 쓰러트렸을 때 그녀가 울부짖으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에게 수면제를 흘려 넣던 그녀의 조심스러운 손짓과,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눈. 대체 왜 그녀는 나를 걱정하지 않지? 왜 내게는 여전히 짜증도 화도 내지 않고 그저 곁에 있기만 하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그 영주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서신을 막은 결정이 현명했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 영주가 ‘아내가 죽었고, 네가 그립다.’라는 서신을 보냈다면 더없이 예쁘지만 깨지기 쉬운 섬세한 유리잔 같은 우리의 관계가 위태로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황궁이라는 트라우마 가득한 장소에서 나는 점점 더 숨이 막혀 왔고,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와 집착도 커졌다. 눈앞에 있는데 잡히지 않는 것은 더욱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했다. 두 달 동안 기다리게 했다며 목소리를 떠는 그녀를 안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므로 나는 보채거나 짜증내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기다렸다. 그 결과로 점점 더 표현하지 못한 서운함이 안으로 쌓였으나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이단 엔리히 앞으로 선전포고가 들어왔을 때 내가 직접 출정한 것은, 또다시 황궁과 그녀에게서 도망쳐야 했던 내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으면 도망쳤다. 사브르에게 그녀를 절대 캐넌에 보내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이 마지막 지시였을 정도로 그 당시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과 집착을 억지로 참아 내고 있었다.

통령의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내겐 단 하나의 탈출구였다. 황궁을 나가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그녀의 손을 붙잡고 황궁을 나가 다른 곳에 정착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나는 차라리 눈앞에 보이는 적이 더 편했다. 어려운 적은 싫었다. 이를테면…… 그녀 안에 있는 그 남자, 내 안에 있는 그 남자, 내 안에 있는 나 자신 같은 것.

12

“있잖아, 이단……. 아이에, 아이에 관한 일인데……. 다니엘이, 으흑, 있잖아, 흑, 아니, 리젠이…… 그러니까 아이를 내가 잃고 나서…… 으으…….”

제이스의 궁에서 차분했던 그녀는 ‘아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후회되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뜻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울지 마, 제발. 그런 거 영원히 가지지 않아도 돼, 네가 이렇게 울지 않을 수만 있다면. 시점이 얽히고 시간 순서도 엉망인 그녀의 이야기는 아무런 체계 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가 끅끅대며 하는 모든 말을 천천히, 한 번도 끊지 않은 채 모두 들었다.

“그래서, 으흐윽, 내가 직접, 직접 아이의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당장 뛰쳐나가 사브르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태가 무서워서 그녀는 5년 동안 내게 말을 하지 못했다며 울었다. 그 와중에 울고 있는 그녀를 혼자 두고 뛰쳐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찢어발기고 싶은 상대가 내 눈 앞에서 걸어 다닌다고 해도,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말한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에게 자국을 남긴다는 캐시의 말은 맞았다. 내 미쳐 날뛰는 피를 막은 것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버틴 5년이라는 시간이었으니까. 역설적으로 그녀가 내게 모든 진실을 얘기한 이유도 내가 버틴 5년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았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나의 예외였다.

“……힘들었겠다, 그동안.”

그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부족해서, 네가 많이 고생했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그녀를 끌어안고 나는 조용히 울었다. 차마 내게 말하지 못했을 그녀의 오랜 괴로움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내게 나를 오랫동안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또 훌쩍였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보다 서로를 향한 안쓰러움이 서러워 울었다. 그동안 서로를 믿지 못해 빙빙 맴돌았지만, 서로를 위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여 여기까지 왔다.

“미안해.”

나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네가 홀로 너무 어려운 길을 걷게 해서, 미안해. 이번에도, 또 몰라서 미안해. 너를 의심해서 미안해. 네가 이 모든 눈물을 감출 수밖에 없게 해서…….”

만일 내가 네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너는 더 행복했을까. 복잡한 삶 같은 것은 질색이라고 한 그녀를 대륙에서 가장 복잡한 남자인 내가 억지로 곁에 두었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내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단 엔리히라서 미안해.”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더 이상 피를 보거나 누군가를 대놓고 해치기에는 본인이 너무 지쳤다고 했다.

“다니엘의 의도를 알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일 것을, 날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 줬어. 다시 다니엘의 얼굴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그를 해치고 싶지 않아.”

“…….”

“사브르는…… 사브르는……. 용서할 수 없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지만…… 아, 더 이상 누군가를 또 죽이고, 해치고……. 나, 이제 지쳤나 봐.”

“네가 생각한 만큼, 네 마음대로 해도 돼. 죽이고 싶지 않다면 죽이지 마. 눈 감고 싶으면 눈을 감고, 잊고 싶으면 잊고. 모든 것을 네 결정대로.”

나는 붉어진 그녀의 눈시울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네 마음대로 해. 네 마음이 편해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정말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내 마음대로 할 테니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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