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232/256)

  

102화.

이단은 무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가 그에게 모든 것을 기대길 바랐다. 그래서 그 옛날, 아메탄에 남겠다는 것도 싫었고, 캐넌에 있겠다는 말도 싫었다.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자신의 영역에 가둬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단은 그녀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끝내는 것을 보며 결국 이런 모습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새삼 생각했다.

아셰의 모든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그녀의 걱정대로 그 자리에서 눈이 돌아가 뛰쳐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끌어안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며 다독였던 것이다. 그는 아셰의 눈을 바라보고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당장 사브르를 찢어 죽이고 싶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해 주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아셰가 사브르를 놓아주자, 이단이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대륙에 사는 스타람인들의 대표로 가장 위에 올랐으니, 마력을 못 쓰는 사람들의 희망이 될 테니까.”

아셰는 그들을 바라보고 싱긋 웃은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멀어진 뒤 이단은 천천히 사브르의 굳은 몸을 억지로 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너의 자리를 찾은 걸 축하해.”

* * *

“이렇게 멀리까지 가자고?”

아셰는 지도를 펼치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단은 팔짱을 끼고 창틀에 걸터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없지만 맑은 호수가 있어. 내가 본 곳 중 손꼽히게 아름다운 곳이야.”

이단의 검은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사실 그가 새로 넓히고 온 영토의 영주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황궁에 머물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하고 토벌군의 부사령관을 새로운 영주로 임명했다. 다만 새로운 영지의 구석에 있는 성 하나를 이미 사 둔 모양이었다.

“성을 샀다고? 영주도 아니면서?”

“한량처럼 놀 수는 없잖아.”

그는 즐거워 보였다. 아셰는 서랍을 정리하다 말고 즐거운 비명을 작게 지르며 그의 앞으로 폴짝 뛰어 다가왔다.

“이거 봐! 아직도 가지고 있었네?”

그녀가 언젠가 잘라 준 흰 치맛단이었다. 손목에 매고 다니라며 캐넌에서 전해 준 것인데 황궁에 온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에는 징표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는 눈으로 긴 치맛단을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내가 길게 찢어 줬구나.”

그녀가 긴 천의 한쪽 끈을 잡은 채 배시시 웃었다. 그는 잠시 그때를 상기하는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부풀어 오른 그의 아랫도리를 눈치채고 그의 앞에 서서 그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그는 제지하지 않고 있다가 그녀가 그의 남성을 꺼내자 그제야 낮게 말했다.

“손목에 몇 번이나 감아야 했지. 그래도 네가 직접 감아 주어 좋았어.”

“정말? 어떤 기분인데?”

그가 그녀의 두 손목을 모아 아무 말 없이 동여매기 시작했다. 아셰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두 손을 묶으면 어떡해?”

“네 손목은 가늘어서 이렇게 묶어야 감는 기분이 들지.”

그녀의 두 손목이 캐넌의 흰 천으로 둘둘 감겼다. 아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긴 천의 매듭을 집중해서 짓는 이단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상당히 기분 좋았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내 몸에 징표가 될 무언가를 직접 감아 주는 건 마음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사브르를 그 자리에 올리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거지?”

그가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가까이 밀착시키며 물었다. 아셰는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원래 계획을 세울 때에는 안 될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가지 대안을 세우잖아……. 사브르가 내게 총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죽음 다음으로 그가 싫어하는 게 뭘까 생각했는데 바로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거더라고. 리한 카드민과의 대화를 엿들었거든.”

그녀가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영 복수로는 시원치 않아서……. 원래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계획은…… 총을 받으면 그를 죽이고 나도 죽는 것이었지만…….”

그가 기가 차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두 손이 묶인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드레스 끈을 내리며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똑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했나?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 네가 없는데 1대 통령의 명예가 무슨 상관이야?”

흰 가슴이 드러나자 아셰가 몸을 비틀었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서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포기한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사브르는…… 감시자의 역할을 사랑해. 하지만 가장 위에 오르는 순간, 몹시 외로워지겠지. 게다가 본인도 본인의 탐욕을 알고 있어. 독재정과 공화정은 다를 거라는 공화주의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거야. 나머지 영주들이 형편없으니까. 그 정도면 우리 아이를 죽였던 선택의 값은 치르는 거겠지.”

그리고 아셰는 이미 영주나 통령같이 지배권을 가진 사람들이 민간인을 정치적인 이유로 해치면 안 된다는 법률도 통과시켰다. 만일 사브르가 보복하려고 하더라도 그 법률이 또다시 그에게 딜레마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 구석까지 와서 조용히 살고 있는 그녀를 해한다면 그 스스로가 최악의 통령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정말로…… 이대로 떠나도 괜찮아?”

“최소한의 체계는 해결됐어. 난 원래 제국인이 아니니까. 이브나 왕비의 흉내를 내고 싶었다면 캐넌에서 그토록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야. 이제 와서 말하지만, 네 말대로 난 공익엔 딱히 관심이 없어.”

그가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그녀의 가슴 사이로 입을 맞추었다. 두 손이 묶여 무력한 그녀는 이단이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것도 막지 못하고 잇새로 신음 소리만 흘렸다. 이단은 벌을 준다는 듯이 그녀의 유두를 깨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를 두고 죽겠다는 생각을…….”

“아!”

그녀가 몸을 비틀며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이단, 널 위해서 2년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했어. 그 어떤 멍청한 영주를 올려놓아도 국민의 삶이 안정되도록 말이야. 네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넌 그냥 딜라나나 시튼 중 아무나 통령 자리에 올려놓고 황궁을 떠나면 되는 거였어. 네가 원하는 건 초기 체제를 확실히 세우고 황궁을 떠나는 거였잖아. 사브르를 속이기 위해서만 그렇게 열심히 일한 건 아냐. 정말 널 도운 거지.”

이단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문지르며 아프게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린 채로 몸부림을 쳐서 그에게 벗어났다. 두 손이 묶여 있는지라 균형을 잡을 수 없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이미 옷자락은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가 있고, 어깨의 끈은 팔꿈치까지 내려와 가슴이 다 드러난 상태였다.

“네 행복을…… 정말로 생각 안 한 건 아니었어.”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짜로…… 진짜로 널 황궁에 붙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이야. 물론 너무 바빠서…….”

그녀는 창틀에 앉아 있던 그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은 뒤, 아까 풀어 두었던 바지 사이로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가 이성을 잃고 화를 내지 않을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었다.

“……조금 더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야.”

그는 그의 것을 핥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엉망인 드레스 차림으로 그의 아래에서 두 손이 묶인 채 그의 남성을 물고 부드럽게 혀를 움직이는 그녀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선정적이어서 창틀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건…….”

그가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가르쳤어?”

“네가.”

그녀는 그대로 그의 것을 입에 넣어 깊게 빨아들였다. 그의 몸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턱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신음 소리가 낮게 방 안에 울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뒤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침대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했다. 속옷을 단번에 벗겨 버리고 그녀의 연한 허벅지 안쪽 살을 그가 거세게 물었다. 그녀는 통증을 참으며 그의 머리를 잡았다.

“이단…… 앞으로 정말 잘해 줄게.”

그는 거칠게 그녀의 두 꽃잎을 벌려 혀를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할딱이며 말했다.

“이 황궁에…… 너만 보고 오지 못해서…… 미안해.”

척추를 타고 쾌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시트를 붙잡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가 단숨에 그의 남성을 밀어 넣으며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이단은 그녀의 다리를 붙들고 속삭였다.

“내 곁에 있었으니 됐어.”

그가 부드럽게, 천천히 그녀의 질벽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상관없어.”

“……아…… 아아……. 아읏…… 잠깐만, 잠시만…….”

“여기지?”

그가 근육이 일어선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으며 입을 맞추었다. 밀착한 몸이 또 한 번 하나처럼 움직이며 함께 떨렸다. 그녀가 그의 단단한 등을 감싸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어…… 조금만 더…….”

그녀는 그녀를 채우는 움직임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단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모든 자리는 내가 다 알지.”

이단은 다분히 성적인 의미로 말한 듯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는 그 어느 곳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태어나고 자랐지만 언젠가 떠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메탄 왕궁, 안정을 찾은 것 같았지만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렸던 캐넌, 절대로 5년 이상 머무를 생각이 없었던 황궁……. 아셰는 높은 신분을 타고났지만 대륙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머물 곳을 찾지 못했다.

“딴생각하지 마. 여유가 있나 봐?”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것을 눈치챈 그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온몸을 훑다가 결국엔 그녀의 손목에 도착하여 놓지 않겠다는 듯 세게 잡았다.

“아…… 아아…… 앗!”

이단의 입술이 그대로 가슴골을 핥다가 위로 올라왔다. 온몸에 붉은 흔적이 또 한 번 새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쾌감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깊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내 곁에 있어. 언제나. 다 괜찮으니까.”

몸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기분에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녀 역시 대답하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도 그가 다 괜찮았다고, 똑같이 속삭여 주고 싶었는데 그의 입술이 그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또다시 덮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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